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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기억의 시간
작가 : charlotte
작품등록일 : 2019.10.6

매일 사라지는 기억, 잊혀진 시간 속 어딘가에서 찾아야하는 스스로의 답. 불완전하기에 완전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어느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날들을 보내던 그녀가 찾은 기억의 조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녀의 이야기1
작성일 : 19-11-10 14:21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7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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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것은 전혀 예상 밖으로 빗나가지 않았고, 정확히 적중했다. 가장 소중했던 친구 윤슬은 몇 번의 자살시도 끝에 죽었으며 그래서 나는 한경원이라는 남자를 증오하기 시작했다. 매일을 그녀를 위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했다. 내가 저지른 한 순간의 잘못된 판단 때문으로 슬이는 끝까지 불행했으니까. 나는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짊어진 채 그 아이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한다. 슬이가 떠난 지 벌써 일 년 가까이 되어가는 시점에 의문투성이인 이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내게 슬이를 살려낼 수 있다며 도움을 청해왔다. 다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내 눈앞에 조금은 다른 윤슬이 눈을 감은 채 누워있었다. 다른 의미의 죄책감이 가만히 내려앉아 마음을 찍어 누른다. 그럼에도 나는 다시 보고 싶었던 친구를 만났다는 그 생각 하나로 다른 감정들은 애써 숨기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녀의 죽음 이후로 본 적 없었던 경원을 다시 만나게 됐다. 일말의 죄책감도 없어 보이는 그의 태도가 화가 난다. 뭐가 문제냐 따져 묻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으며 싸늘하게 지나친다. 몇 주가 지나도록 슬이는 깨어나지 않고 있었지만 곧 깨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확신이 든다.

 경원은 매일 같이 슬이를 보러 왔지만 그건 꼭 감시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결국 참지 못하고 몇 마디 쏘아 붙였다 싸움만 커졌다. 한 사람을 사이에 두고 이렇게 까지 치졸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것을 왜 이전까지는 몰랐는지. 지칠 대로 지쳐서는 서로 더 그녀를 위하고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이건 절대 슬이를 위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왜 아직도 못 일어나는 거죠?”

 깨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던 날이 한참이 지나도록 슬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참다못해 질문하는 내게 돌아온 것은 침묵을 강요하는 남자의 눈빛이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내가 여전히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오로지 다시 태어난 슬이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에는 반드시 내가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위험으로 부터든지 할 수만 있다면 나를 희생해서라도 꼭 그럴 것이다.

 한 달이 지난 뒤에야 처음으로 슬이가 눈을 떴다. 너무 기뻐서 속으로 얼마나 소리를 질렀는지 모르겠다. 다시 보고 싶었던 그 얼굴은 아닐지 몰라도 결국 같은 사람이 되살아났다는 것이 행복했다.

 “어머, 환자분 깨셨어요?”

 “누구시죠?”

 “저는 간호사고, 거기 누워계신 그쪽은 환자시죠.”

 “제가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죽으려고 하셨다고 하던데요?”

 기쁨도 잠시였고,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슬이에게 태연한 척하며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일 년 전의 죽음을 얘기하는 것이 힘들었다. 퉁명스러운 나의 태도에도 웬만해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그녀를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아파왔다. 애써 감정을 숨기기 위해서 계속해서 의미 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제야 약간의 표정 변화가 일어난다. 전에도 그랬듯이 시간 낭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이는 표정에 조금은 안심이 된다. 그제야 잊고 있었다며 남자를 부르러 밖으로 나갔다. 그와 동시에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억지로 눈물을 삼켜낸 뒤의 입안이 짜고 쓰다. 남자에게 슬이가 깨어났음을 알리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벌떡 일어선다.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그의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워 보이는 것은 찜찜한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다. 그가 왜 이렇게까지 즐거워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썩 좋게만 느껴지지가 않았다. 그로부터 윤슬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이 들기 시작했다.

 “괜찮으십니까?”

 여태껏 들어본 적 없었던 그런 목소리를 내며 멋들어지게 물어보는 그의 말에 슬인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모르는 것처럼 한참을 멀뚱히 바라보고만 있던 그녀가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고, 남자는 내게 여러 가지 지시를 한다. 아주 형식적이고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검사들을. 그래놓고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키득거리며 그녀를 돌아본다.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이다.

 나는 대체 이 사람을 왜 도왔던 것일까 생각해보면 결국은 슬이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러니까 결론만 놓고 보자면 나는 할 말이 없는 샘이다. 그래도 곁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되고 있으니 더는 말하지 말아야지.

 “여기요, 잘 보관해두고 있었어요.”

 말 그대로 가족이라고는 남지 않은 그녀의 물품들 몇 가지는 내가 보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야 다시 제 주인에게로 돌아간다. 한참을 지갑을 들여다보고 있던 슬이, 겨우 꺼내든 신분증을 바라보다 거울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녀가 무어라 말을 한다. 내게 답을 원했던 말은 아닌 것 같지만 나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듯 말이 뱉어졌다. 의문이 담긴 표정을 한 그녀의 얼굴이 거울을 통해 내 시야에 들어찬다. 아차 싶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평한 얼굴을 유지했다. 결국 눈이 마주쳤을 땐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씩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이정도의 연기력이라면 나는 간호사가 아니라 연기자가 되었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슬이가 내게 무언가 질문을 하려고 한다. 지금은 그것을 피해야 하니 말을 바꾼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있는 듯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에 조금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나도 모르게 의미심장한 말을 건네 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뒤늦게 인지했다. 왜 그랬는지 후회가 밀려들지만 애써 침착을 유지한다. 계속해서 말을 돌리며 아리송하게 대화를 이끌었지만 그 사이에 자신만의 생각 속에 떨어진 듯 멍해진 그녀를 발견했다.

 “환자분, 환자분?”

 “네?”

 “지금은 뭐가 필요한지 잘 모르겠지만 잘 생각해보면 금방 떠오를 테니까 그렇게 되면 꼭 부르셔야 해요. 꼭이요. 그럼 저는 나가 있을 테니 푹 쉬고 계세요.”

 슬이를 향해 웃어 보이고 돌아서 병실을 나왔다. 편치 않은 마음으로 나오자마자 마주한 경원의 얼굴에 순간적으로 짜증이 일었다. 왜 왔냐고 화를 내고 싶지만 아예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 길게 한숨을 내쉬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나를 밀치고 지나간 그가 문을 열고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어쩐 일인지 문을 열어두고 들어가는 통에 흡사 엿듣는 사람이 되어 벽에 기대어 서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슬이에게 무슨 짓이라도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둔탁하게 넘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불안감이 고조된 탓인지 몸이 제 멋대로 움직여 나를 다시 병실 안으로 이끌었다. 들어가 보니 경원이 넘어진 슬일 부축해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마음에 안 들어.

 거의 찢어 죽일 듯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슬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흠칫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녀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낸다. 조금은 놀란 듯해 보이지만 그래도 그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지는 않는다. 어쩌면 더는 나의 존재를 숨길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나는 직업인의 직업적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내가 차분히 말을 이어가자 경원의 표정에 살기가 어린다. 그런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을 하고는 있지만 나 역시도 그와 같은 표정일 것이다.

 “가족입니다.”

 “네?”

 그가 회심의 일격이라도 날린 사람처럼 입가에 조소를 띠며 하는 말에 당황하고야 말았다.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는지 순간적으로 놀라 그를 매섭게 노려본 것 같다. 언뜻 보니 슬이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그가 뱉어내는 어처구니 없는 맨트들에 반박을 가하며 우린 또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알지 못할 싸움에 끼어들게 된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고 있었다. 가엾은 슬인 결국 정신을 잃었고, 나는 소리 없이 입모양으로 그를 향해 험한 소릴 하고 있었다.

 힘든 기다림의 시간은 한참이 지나고 눈 안에 슬이의 표정 변화가 생기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끝이 났다. 깨어나서 처음으로 나를 찾던 그녀의 시야를 완벽히 차단하며 끼어든 경원에게 그녀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슬픈 음성을 만들어내며 말을 하지만 슬인 그게 불편한 듯 나를 찾았다.

 “저기, 간호사….”

 “분명 필요한 게 생각이 날 거라고 했잖아요. 뭐가 필요해요?”

 “아, 그게.”

 그게 끝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는 것처럼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얼굴이었다. 처음으로 나와 대화를 나눈 사람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어색하게 끝나버린 말에도 나는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나를 먼저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안심이 되었다. 어색하게 끊겨버린 대화의 틈으로 비집고 들어온 경원이 다시 시야를 차단하려들며 대화를 시도한다.

 “슬아, 윤슬.”

 “저, 저는 윤슬이 아니에요.”

 “뭐?”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슬이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이후 그가 무어라 얘기했는지는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다만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말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윤슬!”

 날카롭게 찌르는 경원의 목소리에 다시 현실감을 얻은 내 눈에 다시 의식을 잃은 슬이가 보였다. 모든 사고가 정지한다. 순간 아득히 멀어진 끝에 걸린 스크린이 보인다. 지난날 보았던 그녀의 첫 자살시도 장면이었다.

 내가 경원과 슬이 몰래 만나기 시작한 뒤로, 그걸 슬이가 알게 된 이후로 그녀는 내게 말했었다. 내가 죽으면 죄책감이라도 느끼길 바란다고 했던 말 때문에 난 매일 같이 그녀가 죽는 악몽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그날은 다른 날보다 더 생생했던 꿈 탓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불안감에 휩싸여 찾아간 그녀의 집은 조용했다. 불길함에 빠르게 손을 움직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고, 슬이의 손에 들린 날이 선 칼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팔에서 흐르는 피를 발견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서 소리만 지르고 있었다. 슬이가 쓰러지고 나서야 이건 꿈이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그치며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손이 덜덜 떨리는 통에 지혈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금방 도착할 것이라던 구급대원들은 오지 않는 것만 같은 긴 시간이었다. 그녀가 응급실에 누워있는 동안 제발 깨어나만 달라고 수도 없이 기도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나는 경원을 증오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의 마음도, 인생도 짓밟고 뭉개버린 그를. 잠시나마 그에게 가진 설렘의 감정 따윈 이제 증오의 씨앗이 되어 내 안에 새로운 감정을 싹틔웠다.

 슬이가 깨어났다. 정확히는 그녀의 얼굴에서 예쁘게 물결치는 눈썹을 봤다. 남자가 그녀를 부르는 소리에 찡그리던 것은 주위가 조용해지자 다시 편안하게 바뀌었다. 남자는 나를 침대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진 곳으로 끌고 가 조용하게 속삭인다. 하지만 내 귀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살았다는 것, 윤슬이 다시 깨어났다는 것만 중요했다. 두 번 다시 놓치지 않을 것이다. 꽤 오래 정신을 잃었던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은 경원이 아닌 나여야만 한다.

 차츰 기력을 회복한 슬인 더 이상 쓰러지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생각했고, 이젠 그녀와의 친구 관계를 회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친구라는 말을 꺼내버렸다. 미묘하게 변하던 그녀의 표정, 나는 어느새 슬이에게 더 많은 것을 바라게 되어버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그냥, 그러네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좀 어때요?”

 “모르겠어요. 기억에도 없는 사람을 계속 마주하고 있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미안하기도 하고, 힌트도 없는 수수께끼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마요. 그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이유가 있겠죠. 실은 얘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게 있어요.”

 나는 끝까지 말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하다 끝나버렸다. 내가 하는 말은 차라리 혼잣말에 가까웠고, 그녀가 이해하지 못했으면 했다. 아직은 온전히 기억하는 것이 없는 사람에게 전부를 알린다면 슬이를 또 다시 잃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으니까. 말을 멈추고 그녀와 눈을 맞췄다. 다행히도 내 바람대로 내 말을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내 이름은 이은성이에요. 이제부터라도 절대 잊지 말아줘요, 내 이름.”

 “갑자기 왜….”

 “우리 친구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든지 나를 잊지 않아줬으면 했어요.”

 깊은 슬픔이 나를 덮치며 불현듯 떠오른 불안감에 뱉어낸 말을 슬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꼭 당부하며 하는 말에 그러겠다 답하는 것이 그나마 큰 위안이 되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더 하다간 내가 먼저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서 황급히 자리를 떠나야 했다.

 슬이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린다. 다른 이가 서둘러 가려는 것을 제지하며 걸음을 옮기는데 경원이 때맞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한 박자 걸음을 늦추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괜히 부딪히고 싶지 않으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손이 닿으려하자 놀라서 뒤로 물러서는 슬이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걱정스레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어쩌면 경원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컥 화가 치밀었다. 간호사로서 그러면 안 되는 건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환자의 안정을 부탁한다고 퉁명스럽지만 정중히 말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대답하는 그의 표정에서 분노가 올라오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내게는 그런 것 따위는 전혀 두렵지 않은데.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네요.”

 날카롭게 찌르는 말에 넌 그녀를 위협하는 존재일 뿐이니 제발 여기서 사라지라는 의미를 내포해 전달했다. 그는 그걸 그대로 이해했는지 드러내놓고 자신의 화를 표현한다. 마치 보란 듯이 슬이의 손을 힘주어 잡는 그의 행동에 살짝 미간이 좁혀진다. 더 없이 따듯하게 그녀의 상태를 살피고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와 함께 그 공간에 있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남자가 나를 호출한다. 누군가 슬이의 비명에 대해 그에게 전달했을 것이 분명했다.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남자의 방에 노크를 한다. 들어오라는 흔한 말 한 마디도 돌아오지 않았지만 차분히 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날아드는 물체를 가까스로 피했다. 파삭 소리를 내며 부서진 물체가 발밑에서 찬란하게도 빛을 낸다. 맞았으면 온전한 몰골을 하고 있지는 못 했겠다는 생각에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왜 피했어, 그냥 맞지.”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할 짓을 왜 했어 그러면.”

 “….”

 “은성아, 잘 좀 하자. 응?”

 “네, 알겠습니다.”

 “제발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이제 이러는 것도 지겹지 않니?”

 “죄송합니다.”

 “넌 할 줄 아는 말이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것 밖에 없니?”

 “아닙니다.”

 “가까이 와봐. 어, 문은 잠가야지?”

 끔직한 고통의 시간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암시하는 남자의 말에 손이 떨린다. 의사라는 이름 뒤에 숨은 또 다른 그의 얼굴을 본 것은 내가 이 남자의 일을 돕기 시작한 직후부터였다. 처음엔 의도치 않은 것처럼 시작된 그의 가벼운 폭행은 더욱 더 과감해져 갔다. 그리고 교묘하게 얼굴이나 옷 밖으로 들어나는 부분을 피해가며 때리는 통에 아무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슬이가 깨어나지 않아 불안했던 날, 내가 뱉은 한 마디로 인해 호출을 받았었다. 침묵을 강요하는 구타였다. 그것은 어느 순간 매일 반복되었고, 일상으로 변해있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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