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기억의 시간
작가 : charlotte
작품등록일 : 2019.10.6

매일 사라지는 기억, 잊혀진 시간 속 어딘가에서 찾아야하는 스스로의 답. 불완전하기에 완전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어느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날들을 보내던 그녀가 찾은 기억의 조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억의 조각들 3
작성일 : 19-11-10 11:45     조회 : 226     추천 : 0     분량 : 764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쯤에서 머릿속을 헤집어놓은 생각은, 이 남자는 가족이라고 말했지만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것. 가족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가능성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아마도 나는 그에 대해 영영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며칠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아무래도 오늘은 주말인 듯하다. 밤이 늦도록 그가 계속 옆에 붙어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대화도 없이 끈질긴 침묵을 지키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곁에 누군가 계속 있어준다는 것이 묘한 안도감을 만들었다.

 “이제 가봐야겠다.”

 “고마워요.”

 “뭐가?”

 “기억도 못하는 내 옆에 계속 있어줘서요.”

 “내가 해야 할 일이잖아.”

 “네?”

 “그런 게 있어. 푹 자고, 내일은 날 기억해줘.”

 쓴 웃음을 짓는 그의 말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다. 왜 내 옆에 있어주는 것을 해야 하는 일이라 표현하나 그것만 둥둥 떠다닌다. 그가 떠나고 나타난 간호사의 표정은 거의 잿빛에 가까워보인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그냥, 그러네요.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좀 어때요?”

 “모르겠어요. 기억에도 없는 사람을 계속 마주하고 있는 게 그리 기분 좋은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미안하기도 하고, 힌트도 없는 수수께끼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마요. 그 사람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건 이유가 있겠죠. 실은 얘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 게 있어요.”

 주저하는 표정 속에는 감추어지지 않는 감정이 있었다.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헤아릴 수가 없지만 분명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간호사의 입이 다시 열린다. 앞뒤도 맥락도 없는 주절거림에 가까운 말은 차라리 혼잣말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말을 멈춘 그녀는 빤히 나를 바라본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려는 듯한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내 이름은 이은성이에요. 이제부터라도 절대 잊지 말아줘요, 내 이름.”

 “갑자기 왜….”

 “우리 친구잖아요. 그래서 무슨 일이 있든지 나를 잊지 않아줬으면 했어요.”

 “절대 잊지 않을 게요.”

 “꼭 그래줘요.”

 “그럴게요.”

 깊은 슬픔에 찬 말들은 내게 잊혀진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듯이 느껴졌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제부터라도’라고 했던 것. 어쩌면 나는 훨씬 이전부터 그녀를, 이은성이라는 사람을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더 괴로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꼭 기억해내고 싶다, 이은성이라는 사람을.

 그녀는 끝내 내게 말하고 싶어 하던 무언가는 자신의 깊숙한 곳에 숨긴 채 잘 자라는 인사만을 남기고 떠났다. 생각이 길어지는 오늘은 깊이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어느새 눈이 감긴다.

 이것은 나의 기억의 파편들 중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책인지 뭔지 모를 것을 들고 한참을 울고 있던 내게 누군가 다가온다. 얼핏 아는 얼굴인 듯 보이던 남자의 얼굴이 이내 흐릿해진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 탓일지도 모르겠다. 언뜻 나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는 것 같았는데, 그게 말인지 단어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리고는 나를 안아주는 강한 팔의 감촉이 몸에 닿는다. 그 순간의 전율은 소름이었던 것 같다.

 발악에 가까운 수준의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벌떡 몸을 일으킨 탓인지 잠깐 어지러워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려 깊게 호흡을 하고서 눈을 감았다 떴다. 그제야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남자와 시선이 마주친다. 그다, 꿈에서 보았던 그 얼굴.

 “괜찮은 거야?”

 “네, 언제 왔어요?”

 “좀 전에.”

 “깨우지 그랬어요.”

 “너무 곤히 자고 있길래. 그나저나 정말 괜찮은 거야?”

 그의 손이 움직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뒤로 물러섰다. 멈칫하던 손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씁쓸해 보이는 표정에 미안함이 고개를 들지만 내가 왜 그랬는지가 더 궁금하다. 꿈 때문일까, 다른 무엇 때문이었을까.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이 열리며 이은성이 들어온다. 깜짝 놀란 표정을 하고 들어오던 그녀가 남자를 발견하더니 어두워진 얼굴을 한다. 걱정스럽게 물어오는 괜찮으냐는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전혀 괜찮지가 않았으니까.

 “지금 환자분은 절대적으로 안정이 필요한 상태세요. 그러니까 억지로 뭔가를 떠오르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보호자 분. 부탁드립니다.”

 “아무 짓도 안했어.”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겠지만 제가 보기엔 전혀 그래 보이지 않네요.”

 정말 간호사의 태도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퉁명스러운 그녀의 말에는 날이 잔뜩 서있었다. 마치 그가 내게 위협적인 존재라도 되는 듯이 느껴질 정도로. 그와는 반대되게 나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전에 없이 따듯했다. 처음 눈을 떴을 때와는 조금은 달라져 있었다.

 매일 나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한 번씩 들리는 의사는 항상 똑같았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듯이 말하는 그의 태도. 아무 이유는 없지만 이 사람은 경계해야 할 인물임은 틀림없는 듯하다. 내 옆에서 내 손을 힘주어 잡고 있는 남자처럼.

 그는 마치 내 손을 절대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잡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프게 하거나 하지는 않는 수준이었다. 여전히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 얼굴의 이은성만이 지금 내가 믿어도 되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 확실해진다. 이유는 없다. 그저 내 감정이 전해주는 느낌에 불과할 뿐.

 “이름정도는 알려줘요. 계속 저기요라고 부를 수는 없잖아요.”

 시계를 흘깃 보더니 남자가 돌아갈 준비를 한다. 그 전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적막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제야 남자가 웃으며 나와 시선을 똑바로 맞춘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종일 나한테 말 건 적 없잖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럼 지금처럼 그냥 있어. 계속 궁금해 하다 보면 떠오르겠지, 나에 대해서.”

 “그냥 알려주면 안 되겠어요?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에요? 혹시 알아요, 알려주면 뭐라도 생각날지?”

 “…한경원. 갈게, 잘 자.”

 그동안 내가 눈을 감고 뜬 횟수로 계산한 보름동안 알지 못하고 있던 그의 이름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이름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는 것도, 내 이름보다 더 익숙하다는 사실도. 말없이 그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잊고 있던 무언가가 떠오른 듯이 걸음을 멈춘다. 한참 가방을 뒤적이더니 책 한 권을 꺼내들고서 다시 내게 돌아온다.

 “여기 있기 따분할 때 읽어 봐.”

 “고마워요, 잘 읽을 게요.”

 “갈게.”

 미소를 남기고 그가 떠났다. 건네받은 책을 한참 바라보다가 표지를 넘겼다. 울퉁불퉁한 글씨로 빼곡히 적어놓은 그의 편지 비슷한 것이 나타났다. 아니, 그의 생각인 듯도 하다. 자신이 읽던 책을 건넨 것인지 쭉 훑어본 속에는 그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어쩌면 타인의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 속에 빠져 들어가 있었던 나는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이은성이 문가에 서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서.

 “괜찮아요?”

 “조금 피곤하긴 하네요. 그건 뭐예요?”

 “아, 그 분이 주고 갔어요.”

 “오늘은 이름을 말해주던가요?”

 “네, 한경원이라고 했어요. 이름을 듣는데 전혀 낯설지가 않더라고요.”

 “그랬어요?”

 “저기, 은성씨.”

 “네?”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했던 거….”

 “언제든지. 언제까지고 그건 유효해요.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얘기할 상대가 필요해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은 것들 같은 것들을 들어줄 사람이.”

 “내가 그 상대인가 보네요.”

 고개를 끄덕이면 그녀가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주위를 살피고 문을 닫더니 잰걸음으로 내 곁으로 바짝 다가와 앉는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한참을 고민했다. 아무리 고민해도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는 방법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어서 그것이 오히려 걱정이 됐다. 다 듣고 난 후의 그녀의 반응이라든지 하는 것은 나중 문제였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좋은지 잘은 모르겠어요.”

 “천천히 해도 되요. 무슨 말을 하든지 듣기만 할게요.”

 “믿어줘요, 은성씨한테 내가 지고 있는 짐을 같이 짊어져 달라고 하는 얘기는 아니라는 거.”

 “알고 있어요.”

 “실은 처음 깨어날 때부터라던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때, 잠들 때도 계속 꿈을 꿔요. 처음엔….”

 말을 하면서도 조심스러웠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얘기한다는 것이 이렇게 두려운 것인지 몰랐다. 중간에 한 번씩 쉬어가면서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마치 꼭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 탓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꾼 한경원에 대한 꿈을 얘기하고 이야기를 끝냈을 때, 이은성의 얼굴엔 의미 모를 미소가 걸려있었다. 안도하는 것인지, 비웃는 것인지 헷갈리는 미소에 나는 침묵을 지켰다.

 “그게 끝인가요?”

 “현재로선 끝이에요.”

 “그래도 뭐라도 하나 기억이 났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그것도 나한테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은성씨한테는 얘기를 해도 될 것 같았거든요.”

 “갑자기 책임감이 막 느껴지는데요?”

 장난스럽게 하는 말에 의미는 두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결코 가볍게 건넨 농담은 아닌 듯도 싶었다.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기며 무의미한 대화를 이어나간다. 그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모르기는 해도 잠깐씩 멍해지는 것을 보며 내가 한 말들을 곱씹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 지금 나한테 한 얘기들 절대 선생님한테는 하지 마세요.”

 “왜요?”

 “그냥,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럴게요. 들어줘서 고마워요.”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늘 짜릿하잖아요. 내가 고마워요, 이렇게 얘기해줘서. 자, 이제 또 꿈을 꾸러 떠나요. 저는 일하러 가봐야겠네요.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어요.”

 “고마워요.”

 “잘 자요.”

 이렇게 평범하고 일상적인 느낌을 받은 건 이곳에서 눈을 뜨고 처음인 것 같다. 진짜 친구를 만난 것만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묘하게 편안한 느낌에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 푹신하게 꺼지는 위에서 여느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잠에 빠져들었다.

 며칠째 같은 꿈을 반복하고 있었지만 이곳이 어디인지 전혀 감이 오질 않는다. 다만 아주 익숙한 장소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 곳에서 만큼은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건 무슨 기억일까. 주위를 한참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낯선 시선이 내게 머문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주 끈질기게 나를 쫓는 시선이 있다. 한경원일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일까.

 애써 그 시선을 무시하고 주위를 살피니 아무래도 집인 듯하다. 개인 공간에서 느끼는 낯선 시선은 내게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벨이 울린다. 그제야 내가 소파에 꽤 오랫동안 앉아있었다는 것을 인지한다. 자리에서 일어서 움직이는 대로 나를 쫓던 시선은 문이 열리고 한경원이 등장하는 순간 사라졌다. 이로써 그 시선이 그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대체 그 시선은 누구의 것이었을까.

 여기서도 나는 그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서 그저 서로의 일을 했다. 때때로 마주치는 시선은 따스했고, 달콤했다. 아무래도 그와는 연인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저 친구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그가 무어라 말을 한다. 또렷하게 들리지 않아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말을 들은 나의 표정이 급격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지난번 꿈에서 마주했던 장면이 다시 이어진다. 한경원이 나를 안았던 것은 위로해주는 것이었다. 아주 다정하게, 동시에 위협적이었다. 목이 터지도록 소리를 지른다. 꿈은 끝났다.

 저릿한 통증을 느끼며 깊게 호흡을 한다. 길게 뱉어낸 숨과 함께 눈을 떠보니 놀란 표정의 의사가 우두커니 서있었다. 내가 꿈에서 느꼈던 낯선 시선은 그의 것은 아니었는지 문득 의심이 생긴다. 꿈과 현실의 조화였던 것일 수도 있겠지.

 “괜찮습니까?”

 “네, 괜찮아요. 언제부터 거기 계신 거예요?”

 “상태 확인하러 오 분쯤 전에 들어왔는데, 경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악몽이라도 꾼 겁니까?”

 말을 돌리려는 건지 내가 말을 하려는 순간 끊어버리는 행동에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말하는 오 분 전은 그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게 된 것을 그에게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이상의 어떠한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의사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내게 다가온다. 그 모습이 왜 위험하게 느껴지는 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자동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나의 행동에 그의 걸음이 멈춘다. 이미 꽤나 가까워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걸음을 멈췄다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말없이 나를 지켜보던 그가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라는 단어가 귀에 박힌다. 이 사람도 기억을 잃기 전의 나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쩐지 의심이 가는 그에게 내 기억을 드러내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겁니까?”

 “네, 단지 잠을 깊게 못 자서 그런 것 같아요.”

 “잠을 못 잡니까?”

 “누구라도 병실에만 있으면 그러지 않을까요?”

 “뭔가, 기억이 나신 겁니까?”

 “기억하고 싶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를 않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가죠.”

 “저, 그런데 퇴원은….”

 “상태가 호전 되고 기억이 돌아오시면 그때 다시 얘기를 해보죠. 그럼.”

 단호한 의사의 말은 마치 내게 이곳에서 벗어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실험용 쥐를 가둬두고 이것저것 실험해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기억하지 못함으로 인해 겪어야하는 일은 생각보다 잔인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가 병실을 나서는 순간 문을 연 이은성은 깜짝 놀란 듯이 보였다. 그런 그녀에게 무어라 두어 마디 한 그가 태연하게 떠난다. 순간적으로 은성의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포착했다. 잘못 봤다고 하기에는 너무도 진하게 눈에 박힌 그녀의 얼굴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금세 활짝 웃는 낯으로 바뀌었다. 바깥을 휙 둘러보는 듯한 행동을 보인 그녀가 문을 닫고 내게 가까이 다가온다. 의사가 그랬을 때와는 다르게 아무런 거리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늘은 어때요, 또 뭔가 기억이 났어요? 밖에서 소리 들었어요. 혼자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 기다리다 왔는데, 선생님이 계실 줄은 몰랐네요.”

 순식간에 말을 늘어놓은 그녀가 나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 잠깐 텀을 두며 의자를 끌어당기며 곁에 앉는다. 빤히 그녀의 눈을 응시하는 나를 보며 멋쩍은 듯이 시선을 피하며 허한 웃음을 짓는다. 문득 점점 그녀가 많이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틀리지 않다면 그녀가 일전에 말한 친구라는 단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처음에는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우리,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도 친구였나요?”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처음엔 은성씨가 친구라는 단어를 써서 그래서 참 익숙한 사람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같은 꿈을 반복하다 보니까 어쩐지 더 익숙한 느낌이 들어요. 우리, 이전부터 친구였었나요?”

 “같은 꿈을 반복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그 사람이 나오는 꿈, 더 선명해졌어요. 그 사람 내 연인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뭔가 문제가 있었는지 난 그 사람 때문에 울고 있고. 그런데 그런 꿈을 꾸다보니 자꾸만 당신이 더 익숙하게 느껴졌어요.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거기서 난 당신 이름을 말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 친구였죠?”

 화제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으나 지금 내게는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원래였다면 그녀의 노력에 따라 나는 화제를 바꿔 다른 이야기들을 늘어놓았겠지만 확답을 받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끈질기게 물었다. 그제야 은성의 입에서 작은 숨이 뿜어져 나온다. 보일 듯 말듯 끄덕이는 그녀의 고갯짓에 조금은 안심했다. 이제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았다. 내게 도움이 될지 독이 될지는 아직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작가의 말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2 왜곡된 기억2 2019 / 11 / 10 226 0 2637   
21 왜곡된 기억1 2019 / 11 / 10 239 0 8093   
20 착시2 2019 / 11 / 10 217 0 4523   
19 착시1 2019 / 11 / 10 198 0 5639   
18 기억의 끝에서의 시작3 2019 / 11 / 10 223 0 3732   
17 기억의 끝에서의 시작2 2019 / 11 / 10 243 0 5687   
16 기억의 끝에서의 시작1 2019 / 11 / 10 243 0 4108   
15 한 사람을 위해 쓰인 책2 2019 / 11 / 10 224 0 5217   
14 한 사람을 위해 쓰인 책1 2019 / 11 / 10 231 0 8112   
13 그녀의 이야기4 2019 / 11 / 10 213 0 4437   
12 그녀의 이야기3 2019 / 11 / 10 226 0 7752   
11 그녀의 이야기2 2019 / 11 / 10 210 0 7178   
10 그녀의 이야기1 2019 / 11 / 10 222 0 7490   
9 기억의 조각들 8 2019 / 11 / 10 222 0 6153   
8 기억의 조각들 7 2019 / 11 / 10 245 0 6153   
7 기억의 조각들 6 2019 / 11 / 10 211 0 5586   
6 기억의 조각들 5 2019 / 11 / 10 216 0 6616   
5 기억의 조각들 4 2019 / 11 / 10 223 0 5813   
4 기억의 조각들 3 2019 / 11 / 10 227 0 7643   
3 기억의 조각들2 2019 / 11 / 10 231 0 4008   
2 기억의 조각들 1 2019 / 11 / 10 234 0 7936   
1 이야기의 시작, 2019 / 11 / 9 363 1 5829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