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책이 열린채로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을 때, 보조 사서는 책이 더 이상 열리지 못하도록 검은 책을 아예 닫아버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보조 사서는 검은 책 자체는 자신 또한 사서이니 자신이 손을 댄다고 한들 아직 쓰이지도 않은 책이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 이라는 추측이었다.

　그 해석은 우연찮게도 들어맞아 검은 책은 행동을 중단하고 그저 덜그럭 거리면서 자신이 펼쳐지기를 원하는 것처럼 심하게 요동쳤다.

　“강제로 반납을 시키면…그 대가는 어떻게 하려는 겁니까…”

　“흠…대가요?”

　곰곰이 생각을 하는 듯 한 사서는 손뼉을 짝-치더니, 곧이어 너무나도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당신의 목숨이겠죠? 아니면 당신의 아버지라거나.”

　“웃기지마!!!”

　소년은 단검을 사서에게 날렸지만, 사서에게 단검은 닿지도 못하고 중간에 떨어져 버렸다.

　“도서관의 반납은 대출을 한 당신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이자 징수입니다, 그걸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딴 거…내가 알 바냐!!!”

　소년의 단검이 휘둘러지는 동시에, 사서의 손 끝에서 하얀 빛이 공중을 가로질렀다.

　소년에게 적중해야 했을 그 빛이, 이윽고 소년의 앞을 가로막은 무언가에 의해서 저지되는가 싶더니 그 무언가를 바닥으로 추락 시켰다.

　보조사서의 얼굴에는 다급함과 초조함이 있었고 마지막에는 조금의 안도가 담긴 표정이 지어져 있었다.

　“…아…?”“이런…당신이 여기서 죽을 줄이야…”

　사서는 뜻밖이라는 표정과 함께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쓰러진 보조 사서를 안아들고는 말했다.

　“틀렸어요, 이미 숨이 끊어졌습니다.”“…뭐?”

　황당했다.

　자신에게 날아온 공격을 막으려다가 죽다니.

　그가 자신이랑 아는 사이였냐고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저 사서랑 같이 있고, 늘 사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면 그에겐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었다는 차이점 뿐 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이유는 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 일까.

　몇 명의 목숨이 자신의 손 안에서 끊어져 왔건만, 이 사람의 죽음조차도 난 무덤덤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단검을 들고 사서에게 찌르려 하고 있었다.

　“?”

　당연하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

　스승이 괜히 스승이겠는가.

　그는 언제나 나보다 앞서 있었고, 나를 마음만 먹으면 바로 죽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나를 살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나에게 무언가를 하라는 뜻 아니었을까.

　그가 죽었음에도 그의 손에 들려있는 검은 책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사서가 그것을 열어서 나마저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를 밀쳐낸 사서는 검은 책을 펼치더니 나를 향해서 읊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반납을 이행하지 않은 자, 처벌 받을지어다.』

　그렇게 외우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해줬었던 말을 떠올렸다.

　“누군가에겐 그가 하염없는 폭군이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마저도 버려가면서 누군가를 구할 줄 아는 영웅이기도 했단다.”

　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영웅이 되기를 원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자신을 버려가더라도 누군가를 구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이었다.

　폭군마냥, 내가 많은 사람들을 죽였더라도, 내가 이 손으로 죽이는 것 만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으면 했다.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영웅이 될 수 있기를 바랐던 것 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한 걸음을 더 내딛을 수 있었다.

　사서에게 단검을 던지는 것.

　당연하지만 통하지 않았다.

　사서에게 통하지 않을 공격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쏟아부었다.

　사서는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가 지칠 때 까지 계속해서 해 보라는 듯 공격을 가만히 받아내기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그저 저 보조사서가 죽기만 하고, 나는 그저 사람을 여럿 죽이기만 한 폭군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는 것은 싫다.

　나도 누군가를 구할 수 있어야 했다.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어야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제야 떠올랐다.

　내 가족은, 동생은, 아버지는?

　…이미 죽어버린, 어머니는?

　멍하니 있던 내 머릿속에 누군가가 말해주기를 바랐다.

　나는, 가족들을 구한 것 이었다고.

　하지만, 어머니를 따라 이대로 나까지 죽어버리면, 그때는 아버지와…동생만.

　그리고 아무도 남지 못 할 것 이었다.

　그랬다가는 내가 지금까지 한 행동이 뭐가 쓸모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뿐 이었는데.

　나는 그저, 내 가족을 지키고서 내 어머니를 만나고,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을 뿐 이었는데..

　무릎을 꿇은 내 위로 검은책의 마수가 덮치려 하는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서관의 시스템, 예외를 허가합니다.”“?”

　사서의 시선이 목소리가 난 쪽으로 향했다.

　그 목소리는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였다.

　아름다운 목소리였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으로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였다.

　내가 그쪽을 바라보자 그 이유를 알았다.

　백발의 머리카락, 그리고 새하얀 피부를 가진 여자가 있었다.

　그녀를, 내가 보고 나서 처음 느낀 감정은 물론 아름답다는 감정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녀는 사람 같지가 않았다.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 같은 목소리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의 외모가 인간에게서 느껴질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기 때문인지.

　나와 사서, 우리 둘 모두가 그쪽만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사서였다.

　“도서관의 시스템, 도대체 왜 갑자기 예외를 신청하는 겁니까?”

　그 목소리는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목소리를 들은 여자는 사서를 바라보더니 그저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도서관의 관리자, 부관리자의 생명의 박탈을 확인, 그에 따른 인과관계의 조율에 따라 이번 한정으로 대출자의 반납의 의무를 면제합니다.”

　“네?”

　그 목소리와 동시에, 사서가 내게 펼쳤던 검은 책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 * *

　“갑자기 그게 무슨…”사서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그 여자는 사서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관리자, 당신의 부관리자의 생명의 박탈의 이유를, 지금 응답하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그건 단순한 사고고, 그것이 반납의 면제와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도서관의 시스템.”“인과관계의 조율은 당신의 관할이 아닙니다, 관리자.”

　그렇게 말한, 시스템이라 불린 그녀는, 보조사서라고 한 그의 시체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이미 시스템 인과관계는 복구했습니다. 보조사서, 깨어나세요.”“…응?”

　죽었다고 했던 보조사서가 다시 눈을 뜬 건 그때였다.

　“나는…?나는 분명…”

　“어떻게…죽었던 사람을 어떻게!?”

　“하아…도서관의 시스템, 이건 당신의 독단입니까?”“도서관의 운영방식에 따른 정상적인 수단입니다, 관리자.”

　그렇게 말한 그녀는 곧이어 보조사서의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에 이렇게 답했다.

　“당신을 살린건 저에요, 시스템이든 뭐든 편하게 부르세요.”“네? 어…”갑자기 자신을 시스템으로 소개하는 그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는 보조사서에게 사서가 말했다.

　“보조사서, 이쪽은 도서관의 중요한 업무인 대출, 반납 등을 결정하거나 보류하는 최종권한을 가진 도서관의 시스템입니다.”

　“너무하네요, 저도 당신처럼 이름이 있었으면 하는데 시스템이 뭐에요.”약간 화난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다시 소년쪽으로 돌아서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무너진 인과관계는 이번엔 이쪽 선에서 처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게 얼마만에 당신이 나온건지-”사서가 뭐라고 하든 간에 아랑곳 하지 않고, 시스템이라 불리우는 그 여자는 소년을 다시 문으로 데려갔다.

　“가세요, 당신의 소원이 이뤄졌잖아요?”“…네.”발걸음을 내딛은 소년은, 자신을 보고 있는 동생과, 더불어 아버지의 시선을 볼 수 있었다.

　“형아…”“…플루야?”자신은 이제 암살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또한 거칠게 살아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리고, 이세상은 난생 처음으로 종전이라는 것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중에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것 문화라는 것이 점점 발전하기를 시작했고 곧 이어서 기술 합작, 나라간의 동맹 등을 이어가면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아예 잊은 것처럼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조사서, 사서 그리고 시스템은 보고 있었다.

　“오랜만에 아무도 죽지 않는 결과로군요…아쉬워라.”“당신은 죽는 결과에 걸었나 보네, ‘

　“아무튼 이제 잘 된게 아닐까요.”

　보조사서의 한마디에 시스템을 키득 웃고서 동의한다.

　“그래, 어떻게든 이제 다 된거야, 이제 이 일은 우리의 손을 떠났으니 이제 저 꼬마가 잘 해 주기를 바랄 뿐이지.

　“…아, 너무 많이 오랫동안 나와 있었어.”

　그 말만을 남기고 도서관의 시스템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그녀는 어느샌가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어떤 말이 나지막이 들리는 듯 했다.

　‘…고마워.’

　그 말을 끝으로 사서도 더 이상의 말을 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을 뿐 이었다.

　그리고 나는 퇴근을 해야 할 지 아니면 일을 해야 할지 몰라서 서가 사이로 들어갈 뿐 이었다.

　그리고 사서는, 미친 듯이 집필을 하는 것처럼 휘갈겨 쓰던 책을, 손에 잡고서 자신의 눈앞에서 다시 쓰려고 시도했지만, 곧바로 실패한 것처럼 책을 다시 품으로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꼭 당신의 책을 만들 수 있기를…”그의 소망은 여기 오는 그 누구와도 다르지 않고 또 매우 다른 소망이었다.

　무황을 잃은 광무제국은 그들의 간부를 즉 무황의 아랫 세력들에게 통치를 맡기려 내려가고 또 내려갔지만 결국 남아있는 것은 플루의 아버지 뿐 이었기에 플루의 아버지는 얼떨결에 광무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해서 플루는 그저 미소지으며 바랄 뿐 이었다.

　옛날에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던 아버지처럼.

　누군가에겐 폭군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겐 따뜻한 영웅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자신같이 그 누구에게도 드러나지 않은 영웅을 더 많이 퍼뜨릴 수 있도록.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서 다시 자신의 동생을 만나러 갔다.

　동생은 이제 자신을 무섭게 여기지 않았고, 예전처럼 그 두 형제는 서로를 껴안았다.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의미로, 평소보다 더 꼬옥 끌어안았다.

　동생은 형을 무서워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에, 형은 동생을 아버지에게 홀로 맡기고서 혼자 사라졌던 것을, 두 명 모두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이제 헤어지지 않으면 되는거야.”

　“응, 그러자.”그리고, 플루는 하늘을 보았다.

　지금은 없고, 앞으로도 제 옆에 있지 않을 어머니를 생각하고서.

　앞으로 몇 십년 후에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동생을 데리고 뒤쪽으로 가는 그의 모습은.

　그 아무도 모르고 있었지만 영웅이라 불리기에 충분한 뒷모습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