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에서는 거의 비상사태에 가까운 사건이 발생하고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아니 확실히 그러지는 않았지만, 초반에 내버려 두던 그 남자는 현재 왕국을 뿌리부터 흔드는 거대한 문제가 되었다.
“도대체 그는 왜 잡히지 않는 거냐!!!”
분노를 터트린 왕이 분노에 찬 숨을 토하면서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머리를 박박 긁자 근처에 있던 신하들이 진정하라면서 왕을 만류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끝날 위기였다면 왕이 이러고 있을 이유도 아니었다.
그나마 진정을 한 왕의 입에서 하나둘씩 군사의 이름이 튀어나온다.
“마를린… 그리고 체트로…. 이 둘마저 희생되었단 말이냐!!!”
거의 울부짖듯이 말하는 왕에게 신하들은 감히 어떤 발언을 하지도 못했다.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곧이어 고함을 터트리는 왕의 입에서 이때까지의 피해가 줄줄이 나온다.
“제 0대대를 제외한 전 부대에서 군사들 모두가 전멸했다! 게다가 제 0대대에서도 이제는 사망자가 나오는 추세에 경들은 더 할 말이 있나!?”
더욱더 움츠리기만 하는 신하들을 보고 왕의 분노가 최고점에 달했다.
“무슨 말이라도 한번 해보란 말이오!!!”
분을 참지 못하고 원탁에 놓여있던 찻잔을 집어 던졌다.
시가로 따지면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의 유물과도 같은 찻잔이 산산이 깨지자 그제야 몇몇 신하들은 얼굴을 찌푸리면서 방안으로 생각한 것들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제 0대대를 이제라도 꺼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것보단 슬슬 용제께서 나서는 게 더 나을지도…”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사람들을 일단 모두 뽑는 게 어떠하겠습니까?”
여러 가지 방안이 이제야 봇물이 터지듯이 줄줄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제야 왕의 표정이 조금은 풀리기 시작했다.
갖가지 방안들이 나왔지만, 일단 여기서 확정된 요소는 있었다.
제 0대대를 꺼내기로 한 것이었다.
아직 미숙하여 실전 가능성을 두고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인 만큼 그런 걸 따지기 전에 얼른 투입하자는 의견이었다.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듯한 원탁에서 신하들이 다시 모두 떠나가고 늙은 신하와 왕, 둘만이 남은 그 곳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신하였다.
“용제께서 힘을 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정말인가!?”
눈에 띄게 밝아지는 왕의 표정 그리고 신하의 표정 또한 밝았다.
“이 왕궁이 무너지면 더 이상의 공물을 받지 못하게 된다면서 그러셨습니다.”
“공물은… 공물은 더 바쳐야 하나?”
“이미 안팎으로 어려운 상태임을 인지하셨는지 이번만은 대가 없이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오오…. 감사합니다. 용제시여…”
이 자리에 없는 용에게 깊이 감사하며 남자는 기도를 올렸다.
그와 동시에 왕의 앞에서 푸르스름한 문이 갑자기 나타났다.
왕은 살짝 놀라기는 했지만, 그 문의 정체를 알고서 매우 기뻐했다.
“용제님의…. 게이트가 아닌가?”
“힘을 보탤 전력이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온 것은 온몸을 검은색의 로브로 둘러싼 인물들이었다.
그들의 정체에 수상하다는 느낌이 들 법도 한 차림이었으나 용제가 보냈다는 말 한마디로 모든 불신이 가시는 듯했다.
“용제님의 전령으로 도우러 왔습니다.”
그렇게 말한 그들은 먼저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 마나 서치 》
열댓명이서 동시에 사용한 마법은 왕궁을 중심으로 서서히 뻗어 나가더니 이윽고 전 왕국을 뒤덮을 정도로 커졌다.
마인화 한 남자는 이윽고 탐지 계열의 마법 잔재를 느끼고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또한 마법을 사용했다.
《 커버 더 서치 》
마나의 감지를 덮어버리는 마법을 사용하면 그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로브를 쓴 남자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탐색 마법을 피하려나 보는군.”
“그렇다고 해도 그것 또한 무효화 하면 그만.”
옆에 있던, 여자로 보이는 인물이 손가락을 왕궁의 창문에 가져다 댔다.
《 마나 이터 》
“모든 마나를 먹어치우면 탐지가 될 수밖에 없잖아?”
여자의 손가락에서 하얗게 되어 있는 구체가 떠올랐다.
이윽고 그 구체가 눈을 뜨듯이 갈라졌다.
〔 배가…. 고프다. 〕
한 마디만을 외친 그 눈은 그 아무것도 없는 내부로 맹렬히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숨을 쉬듯이 천천히 그러나 점점 갈수록 태풍처럼 몰아치듯이 어마어마하게 커져 나갔다.
남자 또한 이변을 알아채고 숨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되었다.
“쳇…”
도서관을 나온 지 약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았다.
도서관이 문을 열기까지는 아직도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데….!!”
하는 수 없다, 도망친다.
마인화를 이룬 남자의 영창은 빠르고도 정확했다.
《 하늘을 달려라, 구름을, 산을 넘어서. 》
영창인지 시인지 알 수 없는 듯한 노래 비슷한 걸 읊조린 그의 발이 힘차게 땅을 딛고 도약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머릿속 한구석에서 아직도 정립 되고 있는 마법은 멈추지 않는다.
이건 한 번만 삐끗했다가는 왕궁뿐 아니라 이 나라 자체가 사라진다.
아내를 팔아넘긴 왕국은 밉지만, 그렇다고 이 나라 자체를 없앤다는 건 돌아갈 곳도 없어지고 지인들조차도 없어진다는 뜻 아니겠나.
“제기랄…. 왕국 놈들…”
도망치면서도 이를 갈면서 왕국을 그리고 용을 증오한다.
자신의 아내를 빼앗아간 그 왕국과 용을 없애고 죽이리라 다시 다짐한다.
이윽고 저 멀리 사라진 사내의 뒤로 무시무시한 폭풍이 몰아닥친다.
정작 사람들은 바람이 조금 강하다 싶은 느낌이었겠지만 그 정체는 마나를 먹는 귀신.
왕궁의 창문에 있던 여자의 손끝으로 모든 마나가 모였지만 여자의 말은 그다지 좋은 소식이 아니었다.
“하늘에 알 수 없는 마법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어.”
“파훼는?”“마나 총량이 너무 커 내 수준으로는 탐지가 고작이야 그것도 탐지 저해가 걸려 있어서 겨우 찾은 거야.”“대체…. 무슨 마법을 꾸미는 거야.”
왕조차도 이미 신하와 함께 사라진 그 원탁의 방에서 로브를 뒤집어쓴 그들은 고뇌한다.
알 수 없는 매우 거대한 마법이 있음에도 그들은 전혀 간섭하지 못한다는 압박감이 그들을 짓누르는 듯했다.
남자는 그 마법을 남겨두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국경을 넘고 옆에 있는 나라의 산속으로 들어간 남자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언가를 채취하고 있었다.
“일단은… 이걸로 세 개.”
* * *
남자의 손에는 푸르스름한 보석이 들려져 있었고, 남자는 이윽고 그 보석을 쥔 손에 힘을 주어 부쉈다.
“후우….”
착각인지는 몰라도, 보석에서 어떤 기운이 흘러나와 남자에게 흡수되는 듯했다.
아니, 기운이 아니라 마나가 나오고 있었다.
“마정석 재고는…. 이제 네 개가 끝인가.”
발치에 굴러다니는 푸른색의 정사각형으로 다듬어진 보석 네 개.
그 보석들을 바라본 남자는 뭔가 계산을 하듯이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적었다.
계산이 끝났는지 남자는 손가락을 뗐지만, 불안한 듯한 표정이었다.
“문제는 없다…. 이 정도면 오차범위 안이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남자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남자의 머릿속으로 아직도 헤집고 있는 마수식.
끊임없이 각도를 조정하고 크기를 조정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 드는 마나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자신의 마나가 이대로 보충 되지 않는다면 위험하겠지만, 남은 마정석의 재고 안으로는 계산이 끝날 것이라고 판단한 남자는 이윽고 가부좌를 틀었다.
“….후우….”
앉은 자세 그대로 숨을 멈추고서 자신의 몸속을 순환하는 마나를 더욱더 빠르게 순환시킨다.
새로이 들어오는 느낌에 만족해하면서도 그저 자세를 풀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있기만 한다.
점점 탈진하듯이 몸의 곳곳에서 살이 저절로 빠지는 듯한 기세가 보이자 남자는 곧바로 발치의 보석을 주워 다시 부쉈다.
그리고 일어섰다.
“슬슬 이쯤이면 되겠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쓱쓱 바닥에 새긴 남자는 이윽고 마법이 좀 더 멀어지는 걸 느꼈다.
“이로써, 도서관에 갈 동안의 시간은 벌었다.”
도중에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 써서 받침대를 만드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다.
불안한 마음 반으로 걸음을 옮겨 자신이 만든 문으로 도서관에 발을 디뎠다.
“어서 오세요.”
늘 다름없는 얼굴의 사서가 자신을 맞이한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만난 지도 벌써 열흘이 넘었다.
달리 말하면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다만 벌써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박탈감에 망연자실해 하면서 그저 죽을 날 만을 기다릴 뻔했던 인생은 이 문을, 이 남자를 만나고서 새롭게 바뀌어 목표를 찾았다.
정말 고맙기 짝이 없었다.
저절로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지만, 웃음에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 멋대로 무표정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사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뭔가 불편함을 느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사서였다.
“아쉽지만, 오늘을 마지막으로 도서관엔 들르지 않으시겠군요.”
“…용케도 알아냈군.”
“더 이상 방문할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 후에 사서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아쉽다는 기색이 만연했다.
그런 얼굴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도울 일이 있냐고 물었기에 말없이 도서관의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운 책들, 그리운 제목들이 서서히 눈에 익어간다.
내가 함께했었던 책들 내가 온종일 씨름하면서 달달 외우며 안을 들여다봤던 책들.
그 모두가 내 변화 동안 함께 해준 시간들이.
이 도서관 안에 아직도 남아 있었다.
“….차라도 한잔하시겠습니까?”
“….그러지.”
말없이 앉은 자리의 옆에서 익숙한 얼굴이 하나 더 보인다.
“아, 안녕하세요….”
“…그래, 잘 지냈나?”
이 남자는 사서의 말로는 여기의 보조 사서라고 한다.
이 도서관의 보조 사서라니… 오히려 내가 되고 싶은 심정이다.
이렇게 훌륭한 도서관이라는 곳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런 큰 행운을 내가 얻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진심으로 이 남자에게는 행운아라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부럽군.”
“…네?”
살짝 놀란 것인지 차가 살짝 튀었다.
딱히 책망할 마음은 없었는데 먼저 사과하는 걸 보고 나자 살짝 자신감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
“이 차 맛있군.”
“감사합니다, 일단은 좋은 찻잎을 썼으니까 말이죠.”
“찻잎이라….”
찻잔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찻잎으로 보이는 물체를 보고 나서 차를 한 모금 더 들이킨다.
따뜻한 기운이 온몸에 퍼지는 듯한 느낌이다.
이 도서관에서 뭔가 몸도 마음도 치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지만, 언제까지고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마나가 더 이상 머무르는 건 위험하다면서 경종을 울려 온다.
“알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찻잔을 내려놓자 사서와 보조 사서가 나를 바라본다.
“이제…가시는 건가요?”
뜻밖에도 말을 꺼낸 건 보조 사서였다.
그 눈에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 들었다.
“뭐, 시간 나면 오도록 하지.”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약속을 하고서 앞으로 벌어질 것들을 예감한다.
왕국과 싸우고, 용과 싸워서 과연 내가 이길 수 있을 것인가.
꼭 돌아오겠다는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될 수 있으면 오겠다는 의사는 분명히.
문을 향해서 나아가자 사서가 나를 부른다.
“…아, 왜 그러지?”
“여기.”
사서가 건넨 건 검은색 표지를 한 책 한 권이었다.
“이건…뭐지?”
“아무 말 없이 가지고 계세요, 그럼 알게 될 겁니다.”
“그러도록 하지.”
옷 속에 넣고 나자 뭔가 나를 지켜주는 듯한 부적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 안을 한번 펼쳐 봤지만, 아무것도 없는 백지뿐인 책이었지만 말이다.
“그럼… 가도록 하지.”
“안녕히 가세요.”
꾸벅 처음으로 사서가 고개를 숙이는 걸 보는 듯했다.
새삼 놀라움을 느끼면서도 나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늘 익숙했던 문이 닫히고 익숙한 감각이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무거운 짐을 다시 내려놓는 듯한 느낌이다.
이 마법의 위력을 그리고 살상력을 가늠할 수 있었던 나였기에 이 마법이 실패하면 뒤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기억한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마정석 세 개를 전부 손에 쥐어 부숴버리고 몸 안으로 충분히 순환하는 마나를 느낀다.
왕국에서 마나가 다시 돌아오고 있는 것을 본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시동어를 읊기만 하면 끝난다.
이제 저들과의 전면전 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쿠궁..-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면서 마법을 떠받치고 있던 기둥들이 무너진다.
열두개 의 기둥들이 하나하나 풀려가면서 마법은 서서히 낙하한다.
대량 살상의 위험성과 더불어 마법 중에서도 최고위급의 수준이며, 나라 하나는 우습게 날리는 마법을 지금 왕궁에 떨어뜨린다.
운명을 손에 붙잡고 시동어를 읊는다.
《 떨어져라 》
하늘을, 공간을 긁으면서 낙하하는 그 마법의 이름은-
《 메테오 스트라이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