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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추리/스릴러
기억의 시간
작가 : charlotte
작품등록일 : 2019.10.6

매일 사라지는 기억, 잊혀진 시간 속 어딘가에서 찾아야하는 스스로의 답. 불완전하기에 완전해질 수 있는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
어느 누구 하나 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날들을 보내던 그녀가 찾은 기억의 조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억의 조각들 1
작성일 : 19-11-10 00:12     조회 : 233     추천 : 0     분량 : 7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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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었나?

 “무슨 생각해?”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서 들려오는 굵직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소리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다 결국 뿌옇게 흐려진 시야 탓으로 넘어지기까지 했다. 굵은 목소리가 소리 내어 웃더니 사과를 한다. 아직 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눈 속에 손 모양의 상이 흐릿하게 맺힌다. 맞는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손이라고 생각되는 그것을 마주 잡았다. 꽤나 힘을 주어 나를 일으키는 일에 도움을 준 손은 내가 제대로 중심을 잡고 설 수 있게 되자 사라졌다. 겨우 현실에 적응한 눈앞에 새롭게 쓰이고 있는 기억 속 세 번째 등장인물이 나타났다. 죽은 기억은 이 사람을 알고 있을까? 자꾸만 질문형의 문장들만 머리를 헤집는 통에 잠시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내 앞에 서있는 이의 미간도 따라 찌푸려진다. 원래 사람은 상대의 행동을 따라하도록 설계된 것인가? 또 다시 질문, 아는 것은 무엇이며 대체 언제쯤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누구시죠?”

 “아?”

 “죄송해요, 제가 머리를 다쳐서 기억이 안 나거든요.”

 이게 뭐가 쑥스러운 건지 무척이나 수줍은 투의 말에 앞에 있던 남자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 머리에서 바로 입력해 입에게 전달한 문장은 다시 질문형의 단어, ‘왜’였다. 그의 표정만 봐서는 아마도 그가 내게 매우 중요한 사람이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이쯤에 미치자 조금은 미안한 감정이 고개를 들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좋은지 누가 대신 생각해서 이 사람에게 전달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겠지만 간호사라면 이 남자의 존재에 대해서 내게 알려줄 수 있을지도.

 “어째서 나까지….”

 나에 대한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 사람이라고 잊지 않아야 한다는 법이라도 존재하는 것일까? 그의 말에 조금은 당황스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무심결에 한 행동은 마치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죄에 해당하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이건 아니라고 본다. 작은 용기를 내기로 결심하고 고개를 벌떡 추켜올리는 순간 마주한 분노에 찬 시선 하나 아니, 둘. 간호사는 이 방을 나간 적이 없을 지도 모르겠고, 지금 상황이 몹시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하지만 그 분노의 시선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채는데 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무서운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입가로 가져간다. 지금 나는 공포영화 속의 한 장면에 똑 떨어져 누구보다 몹시 겁먹은 상태일 뿐이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 흔한 비명조차도 지를 수가 없다. 그녀의 손짓에 이미 내 목은 소리 내기를 정지해버렸으니 말이다. 간호사의 표정이 평상시의 온화한 미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소리도 없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긴다.

 “어머, 누구시죠? 죄송하지만 환자분은 지금 절대 안정이 필요하신 상태….”

 “가족입니다.”

 “네?”

 꽤나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간호사의 두 눈에는 숨기지 못하는 증오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 증오가 아니라 분노였는지 잠깐 헷갈린다. 뭐, 뭐가 됐든지 결국은 똑같은 감정일 테니 넘어가기로 하고 두 사람의 대화를 잠시 엿들었다. 그러니까 지금 병원에서는 내 신분증으로 찾아본 가족 관계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의견과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의견의 대립이 이어지고 있었다. 둘 중에 누구를 믿는 것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선 아무도 믿고 싶지 않은 억측에 가까운 주장인 것 같다. 간호사의 말이 맞는다면 나는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조차 없었던 건가? 나라는 사람은 참 불쌍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대화의 흐름에 정신을 맡기고 나니 아득해지는 기분에 절로 눈이 감긴다. 둔탁하게 부딪히는 듯한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그 뒤로는 전에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의 연속이었다.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그런 깊은 어둠 속에서 아무리 앞으로 걸어가 봐도 끝이 없을뿐더러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실낱같은 빛 한줌이라도 발견해보려 눈을 가늘게 떴다. 보이는 것은 아무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짙게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만이 주위를 가득 채울 뿐. 한참이 지난 후에야 희미한 빛이 서서히 비쳐든다.

 “정신이 좀 들어? 괜찮아?”

 “누구세요?”

 천천히 눈을 뜨고 제일 처음 마주한 천장은 익숙해질 줄을 모른다. 다음으로 내 시야에 가득 들어찬 것은 누군지 전혀 기억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뭔가 익숙한 느낌은 이 사람도 과거에 만난 적이 있다는 뜻이겠지. 이 사람도, 내가 이 사람 말고 또 누구를 만난 적이 있었나? 아무런 기억도 남아있지 않은 순백의 종잇장 상태의 뇌에 질문을 던진들 답을 얻을 수는 없다. 간호사를 붙잡고 물어보는 편이 어쩌면 더 빠를지도 모르지.

 “저기, 간호사….”

 “분명 필요한 게 생각이 날 거라고 했잖아요. 뭐가 필요해요?”

 “아, 그게.”

 이건 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내가 언제 이 간호사와 대화를 한 적이 있었나?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기분이 드는데도 나는 아무것도 기억해낼 수가 없다. 나는 기억이 사라졌으니까, 그것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 사실은 언제 알게 된 것일까. 어떻게 기억이 계속해서 지워져가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해냈다는 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니 어디서부터 뭐가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뭐가 있겠는가. 이것도 저것도 전부 시간낭비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의 말은 어색한 곳에서 점을 찍었고, 간호사를 향해 어색한 미소만 지어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한 사람처럼 그녀가 나직하게 한숨을 뱉는다, 비웃음 같기도 한 한숨을. 순간 잊고 있었던 남자의 얼굴이 불쑥 나타나 모든 시야를 차단한다. 기억하고 싶다, 이 사람은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어떻게 나까지 잊을 수가 있어?”

 “저는 지금 저에 대해서도 몰라요.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고요.”

 “어떻게 나까지!”

 같은 말을 반복하는 남자의 표정이 슬프다. 반대로 눈에 서린 것은 분노로 가득 찬 불꽃처럼 보였다. 저 눈빛을 언젠가 본적이 있는 것 같은 기억. 기억? 모든 것을 잊어버린 내가 기억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의사가 했던 말처럼 나는 나의 존재 자체를 의심해야 하는 것일지도. 의사는 내게 무슨 말을 했지? 그게 무엇이었던 잊혀진 기억의 시간 속의 조각으로 남아있다. 아주 흐릿해서 그게 말이었다는 것조차 확실하지가 않은 그런 옛날의 기억. 나는 기억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잃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은 흐릿한 저편의 조각들이 조금씩 찾아오고 있는 탓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건 전부 상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 부자연스러운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 건지 중간에서 난처해졌다.

 “슬아.”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부드러운데 어쩐지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기운이 흐른다. 난생 처음으로 불려보는 이름의 느낌. 내 이름이라고는 하지만 나의 것이 아닌 그 느낌이 나를 잡아당긴다. 이건 내 이름이 아니라고 확신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이 남자의 눈에 서려있다.

 “슬아, 윤슬.”

 “저, 저는 윤슬이 아니에요.”

 “뭐?”

 막을 새도 없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온 말에 남자의 표정이 급격하게 딱딱해진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가늠해보려는 듯한 남자의 행동이 이어지면서 확신한다. 나는 윤슬이 아니다. 어쩌면 이보다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꾸만 시야를 차단하는 남자의 행동이 불편하다. 알 수 없는 묘한 불안감에 시야만 차단하려는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정전이 이어진다. 정전일까, 누군가 나의 눈을 가린 것일까. 아득해지는 기분에 취해 눈을 감는다. 이제는 어둠 속인지, 빛이 쏟아지는 곳인지 구분도 가지 않는 경계에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 기억하려고 하지 마.”

 저 먼 곳에서 외치는 외침이 메아리처럼 들려왔다. 기억하려 한 적이 없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려던 것은 나를 찾기 위함일 뿐. 같은 말을 반복하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문장이 바뀌었다. 나인지 아니면 다른 누구인지 모를 이름을 부른다.

 “윤슬씨!”

 계속되는 고함이 귀를 찢는 듯한 느낌에 양 미간이 진하게 일그러졌다. 작은 변화를 느꼈는지 소리치던 목소리가 사라진다. 그에 따라 내 표정도 조금은 누그러진다. 잠깐의 고요를 뒤로하고 누군가의 속삭임이 들린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는 두 사람 이상의 대화인 듯했다. 아직은 눈을 떠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에 여전히 눈은 감은 채였다. 나에 관한 이야기는 아닐까 온 신경을 그 대화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속닥거리던 소리가 차츰 줄어들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대체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답답한 마음에 새어나온 한숨이 화근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 나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말이다. 알고 싶다, 그들이 얘기하는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해서.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천천히 눈을 떴다. 작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순간 조용해진다.

 “너무 시끄러워서.”

 “기분은 어떠세요, 괜찮아요? 기억을 잃은 것 말고 문제가 더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검사 다시 한 번 해보려고 얘기하고 있었는데 괜찮겠어요?”

 “뭐가 문제라는 거죠?”

 “이간호사 통해서 얘기 들었습니다. 계속해서 정신을 잃으신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다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계속해서 정신을 잃고 있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순간들 속에서도 나는 반복적으로 꿈속으로 빨려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을 잃은 것도 그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에서부터 생각이 길어진다. 그것도 아니라면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기 이전의 시점부터 재생되고 있던 것인지도.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묘한 다른 질문이 하나 생긴다, 나는 사람이 맞나. 진짜 윤슬이라는 인물은 다른 곳에 실존하고 있고, 나는 그 사람의 대체품으로써 준비되고 있는 존재는 아닐까? 아니, 이건 너무 과대 해석한 것 같다.

 무어라 말하고 있는 의사의 입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실은 제대로 듣고 있지 않았다. 나의 괜찮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괜찮으냐는 물음만을 던지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은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대답이 그들이 원하는 답이었는지, 유일한 답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며칠째 비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쩌면 나는 여전히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지만. 아직도 밤은 저물지 않았고, 내일은 저 멀리 도망치고 있는 중인 것만 같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나의 오늘은 다른 누구의 하루보다 긴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오늘을 끝내보고 싶다. 문득 나는 그런 이유에서 여러 번 죽기를 시도했던 것은 아닐까 싶었다. 여러 검사들이 차례로 이어지고 끝이 나면 다시 병실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맡긴다. 지칠 대로 지쳐버린 몸은 침대의 느낌에 그대로 가라앉아 눈을 감게 했다. 이로써 진짜 잠이라는 것을 제대로 자 볼 수 있겠구나 싶었다.

 “피곤하죠? 푹 쉬어요.”

 “저기, 그 분은 어디로 가신 건가요? 깨어났을 때부터 안 보이시는 것 같았는데.”

 “아, 그 분도 일은 하셔야 하니까요. 한참 곁에 앉아 계시다가 가셨어요.”

 “아, 네. 저, 그러면 저는 여기에 온지가, 입원한지 얼마나 된 거죠?”

 “글쎄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가 눈을 감았다 뜨는 모든 순간들을 하루라고요. 그러면 알게 되지 않을까요? 환자분이 기억을 잃고 난 이후의 시간은 말이죠.”

 나는 친절과는 어쩐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이에게서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에 대한 것도, 이곳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머릿속은 끝내 피곤함에 지고 말았다. 깊은 어둠이 몰려왔고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그 곳에서 나는 정처 없이 걷고 있었다. 계속해서 걷다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빛이 보였다. 달빛 아니면 별빛인 듯한 것의 작은 반짝임이 쏟아진다. 이내 환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있는데 무언가가 발치에 걸린다. 꽤 무게가 나갈 것처럼 보이는 상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본다. 열어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지나치기를 택했다. 비록 그 공간 속에는 나 혼자만 덩그러니 머물러 있다고는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또 다시 한참을 걷다가 다른 상자 하나를 또 발견했다. 이번에는 상자 겉면에 윤슬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며 상자를 여기 가져다 둔 사람이 누구인지를 살펴보지만 역시나 아무도 없다.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어보니 외관과는 다르게 내용물이라고는 카드 한 장이 전부였다. ‘자신을 끊임없이 의심해 볼 것’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장 하나가 머리에 깊이 들어와 박힌다. 꼭 해야 할 말은 전했다는 듯 앞뒤 설명도 없이 간결한 것은 어느새 내가 눈을 떴을 때에도 생생히 떠올랐다. 나는 나를 의심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도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같은 이유로 결코 의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오늘 기분은 좀 어때요?”

 별로 궁금하지는 않은데 일은 해야 하니 예의상 묻는다는 식의 질문. 그리 달갑지만은 않은 시간의 질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마주한 첫 질문치고는 그래도 괜찮은 편에 속할지도 모르지만 하루의 기분은 그 하루가 끝나는 시점에서 완벽해진다. 그러니 나는 아직 내 기분이 어떠한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다. 알지도 못하는 오늘의 기분을 지금 당장의 것으로 대체해 제법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러면 표정과는 다른 심드렁한 반응이 돌아오고 간호사는 화제를 바꾼다.

 이쯤에서 스치는 의문이 하나가 있었는데, 나는 어디서 이런 생각을 가져와 사용하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방식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모르겠다, 아무것도. 어디가 시작인지도 모를 생각에 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테지만 이것 또한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내가 원래 이랬는지도 알 수는 없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니까.

 간호사는 여전히 나의 지나간 모든 것들에 관해서 가장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그녀의 입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다른 것들은 잘만 떠오르면서 의외로 간단하고 단순한 것들은 전혀 채워지지가 않는다. 나라는 사람은 아무래도 잔머리라든지 아니면 단순한 쪽으로는 무지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뭐 궁금한 거라도 있으세요?”

 “네? 아, 아니요.”

 “제가 아는 것이라면 대답해 드릴 수 있으니까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지 말해줘요.”

 “그럴게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요. 이럴 때 써먹으라고 있는 게….”

 친구, 친구라는 말이 나왔다. 간호사와 나 사이의 연결고리가 친구라는 단어 하나로 몇 초도 되지 않는 순간 생겨났다. 그 단어가 이렇게도 반가운 단어인 줄은 몰랐었다. 이미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든 나는 상관이 없었다. 그저 상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일 뿐이었지만. 무어라 하는 입모양을 읽고 있는 것이지 생각의 꼬리는 이미 저 멀리로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헤실 거리며 웃는 나의 얼굴을 간호사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아, 그런데 그 남자 분은 안 오시네요.”

 “아마 당분간은 쭉 안 오실 거예요.”

 “네?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을까요. 보면 다들 그래요, 기억 잃은 사람 고통은 생각도 안하고 자기 기억 못해준다고 본인이 더 괴로워라하면서 만나기를 피하죠. 근데 결국은 그걸로 더 상처 받고 힘든 쪽은 기억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에게 내가 상처 입혔다는 생각 때문에.”

 마치 준비해둔 답이 있었던 것 마냥 술술 쏟아져 나오는 간호사의 말에는 감정이라고는 단 일 그람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그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아서 나도 모르는 새에 그 마음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힘들지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맨 처음으로 그를 봤을 때는 무서웠다. 기억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두렵고 무서웠던 것은 영영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을 까봐, 그래서 그가 더는 찾아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나의 두려움은 아무래도 혼자가 되는 일인 듯싶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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