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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광무의 꿈
작가 : 백두혼
작품등록일 : 2019.10.22

대한제국의 마지막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홍종우의 삶을 보면 된다. 조선인 최초로 프랑스로 건너가 근대화를 통한 조국 조선의 부국강병의 길을 도모한 자. 김옥균 등을 수괴로 한 친일 매국노들과 벌인 흉험한 싸움.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 밀사는 이용익이었고 그의 곁에는 홍종우가 있었다. 근대사 전체를 통째로 뒤집는 위험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17. 광무
작성일 : 19-11-09 22:17     조회 : 260     추천 : 0     분량 : 6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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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광무

 

 

  장미 넝쿨이 아름답게 꽃 피는 초여름, 그는 러시아 공사관을 나와 바로 옆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불란서 공사관으로 향했다. 붉은 벽돌로 곱게 치장한 불란서 공사관의 정원에는 붉은 장미가 만발했다. 당시 한양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었지만 일견 도서관처럼 조용했다. 르네상스 양식의 하얀 석재로 화려하게 치장한 러시아 공사관이 중무장한 초병들을 세우고 갖가지 인사들이 수시로 드나들어 번잡한 것과 대조적이다.

  고종은 지난 1897년 2월, 일 년 간의 러시아 공사관 생활을 마치고 경운궁으로 환궁했다. 경운궁과 러시아 공사관은 붙어 있다시피 가깝고 더구나 불란서, 미국, 영국 등의 공사관도 근방이어서 또다시 발생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대한 대처도 고려되었다. 고종은 경복궁 쪽으로는 발도 들여놓지 않았다. 끔찍하다 할 모든 기억을 피하고 있었던 것이다.

 

  도쿄와 모로코의 탕헤르 근무를 마치고 다시 한성으로 부임한 빅토르 콜렝 드 플랑시 공사는 예수회 회원일 정도로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조선 궁전의 연회나 외교관들의 파티에서도 활발하게 자기의 의견을 내세우는 편이 아니었으며 춤을 추는 일도 드물었다. 홍종우는 이제 조선 정부의 외사과장이었다. 조선에 나와 있는 외교 사절들을 직접 접촉하여 조선의 외교 정책을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중책이다. 외국어와 국제 감각이 필수적인 자리임은 당연하다. 당시 세계 외교 무대의 공용어는 물론 프랑스 어였다. 소속 국가를 막론하고 프랑스 어를 못하는 외교관은 절대 없었고 외교 문서의 상당 부분도 프랑스 어로 작성되었다. 그는 고종의 명을 받아 대임을 수행하고 있었고 이는 그의 능력이 정말 긴요한 임무였다.

 

 콜렝 드 플랑시 공사는 그를 정중하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홍공.”

 “안녕하십니까? 공사님. 이제 귀임하신 지 일 년이 되어가는군요.”

 

 콜렝 드 플랑시 공사의 부임 이후 공식석상에서 만난 바는 여러 번이었지만 사적으로 단 둘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두 사람은 이전에 1887년의 조불수호통상조약의 조인식 자리에서 만난 바 있었다. 그리고 파리에서는 단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지만 그것도 불발된 바 있었다. 그가 귀국할 무렵에야 파리로 귀국한 콜렝 드 플랑시를 펠릭스 레가메가 그의 귀국 송별연에 초대했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조선 쪽 인사들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는 것이 당시 프랑스 외교부의 훈령이었다.

 

 “우선 그동안 본국 조선과 군주 폐하께 귀국이 베풀어 주신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몇 년간 귀국 군주 폐하께서 참담한 고난을 겪으시고 안팎의 위기를 넘기셨으나 이제 홍공 같이 충성스럽고 능력 있는 분들이 모신다면 조선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것입니다.”

 “일전에 파리에서 공사님을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당시 귀국한 지 며칠도 안 되는 상황이어서 여러모로 여의치가 않았습니다. 펠릭스 레가메 씨에게는 이후 유감의 인사를 드렸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홍공께도 유감의 인사를 드립니다. 파리에서 홍공의 행적은 꽤나 자세히 들었습니다. 펠릭스 레가메씨에게도 들었고 에밀 기메 관장도 만났습니다. 제가 보낸 소중한 조선의 유물들을 직접 분류하고 정리하여 관리하셨다니 저로서도 고마운 마음 깊습니다.”

 “파리에서는 참으로 많은 분들께 신세를 끼쳤습니다. 이후 조불 친선의 역할을 하여 이에 보답하려 합니다. 오늘 공사님을 찾아 온 것은 귀국에 공식적으로 문의할 사항이 있어서입니다. 물론 나중에 문서로 품의하겠지만.”

 “말씀 하십시오. 경청하겠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영은문을 허물어 없애고 독립문을 세우고 있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이제 우리 조선은 청나라는 물론이고 외국 그 어느 나라에도 의존치 않겠다는 자주독립의 열망이 하나 되어 이룬 일입니다. 이제 우리 조선은 군주 폐하의 존호를 황제 폐하로 바꾸고 국체를 황제국으로 전환하여 세계만방에 독립국가로서의 위엄을 나타내려 합니다. 이에 선린 각국의 의견을 사전에 타진하려고 이렇게 왔습니다.”

 

 콜렝 드 플랑시 공사의 대답은 한참 시간을 들인 후였고 무척 신중하였다.

 

 “물론 귀국의 국체를 귀국 스스로 정하는 것에 타국이 간섭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본국에 문의하여 공식적인 훈령을 받아야겠지만 크게 문제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단지, 지금 귀국에 필요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코자 하는 몇몇 국가는 생각이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귀국을 제외한 타국의 의사도 물론 개진 중입니다. 저는 나폴레옹 1세와 3세 폐하 치세의 제국을 경험하고 이제 민주 공화국으로 이행한 프랑스의 정체를 물론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자유 평등 박애의 혁명 이념으로 세계 평화주의에 이바지하고 있는 귀국을 크게 존중하고 있습니다. 향후에도 귀국의 선린 친선의 의지가 굳건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렇게 알고 물러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배웅해 드리지요.”

 

 그는 콜렝 드 플랑시 공사의 배웅을 받아 현관으로 나왔다. 장미 꽃 향기가 만발하고 꿀벌과 나비가 너울거리는 나른한 오후였다.

 

 “참, 홍공의 ‘다시 꽃피는 마른나무’는 잘 읽어 봤습니다. 에밀 기메 관장을 방문했을 때 한권 받았습니다. 놀라운 저술입니다. 그리고 홍공의 점성술 책도 곧 발행될 거라 들었는데 되는대로 이곳으로 몇 권 보내달라고 전하겠습니다.”

 

 그는 겸연쩍은 듯이 웃었다.

 

 “그건 참으로 창피한 책인데 결국 출판을 하는 모양이군요. 앙리 슈발리에가 꽤나 고생했을 겁니다. 허허..”

 “‘개인의 수호성을 순조로이 이끌고 한해의 운세를 알기위한 지침서’라니 얼마나 멋진 제목입니까?”

 “성현의 가르침도 옮기지 못한 주제에 그런 잡서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그는 인사를 하고 불란서 공사관을 나와 영국 공사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도 영국의 국화인 장미는 만발했고 벌과 나비는 팔랑거렸다. 그가 번역은 해 줬지만 앙리 슈발리에가 사 년간이나 머리를 싸 메고 완성시킨 ‘직성행년편람’은 그해 파리에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동양의 신비한 점성술 책이 서양인들의 운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인도할지는 그가 알바가 아니었다. 단지 그 운명의 별이 그에게 권총 한 자루를 안겼고 그는 그 운명의 별을 따라 공전하고 있었다.

 

  구름 하나 없이 푸른 10월의 하늘 아래, 화강암을 깎아 쌓아 올린 동그란 원단 주변에 만조 백관과 시위 군관들과 수만의 백성들이 몰려들었다. 소공동 남별궁 가운데에 천자로서 하늘에 직접 제를 올려 인사하는 원구단이 갖춰졌고 이제 고종은 조선의 황제로서 친히 그 즉위를 고하였다. 갖가지 색깔의 깃발이 나부끼고 사방의 백성들은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쳤다. 그는 궁내부 비서원승으로서 조복을 갖춰 입고 원구단의 아래에 서서 잠깐 하늘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기원했다. 이 강산 만백성이 풍요롭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날이 오기를, 그의 황제 폐하가 현명하고 공평하고 강인하게 이 나라를 영도해 가기를, 나아가 이 나라 조선이 부강하고 정의로운 나라로 자자손손 대대로 이어가길.

 그가 염원하는 조선 제국의 길이 이제 겨우 열린 것이다. 그가 가야할 길은 일견 멀고도 험했지만 한걸음씩 간다면 결코 닿지 못할 길이 아니란 것을 믿고 있었다. 그는 그 길을 군주정을 통해 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판단했다. 오백 년된 노목 나무에 다시 꽃과 열매가 만발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스스로 그 노목의 거름이 되기를 주저한 적이 없었다.

 

 이범진은 이미 주미 공사로 나갔고 이용익은 함경남도 광무감리 겸 탁지부 전환국장을 맡았다. 그는 궁내부 외사과장으로서 대한제국 성립의 중책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프랑스 대통령과 러시아 황제의 공식적인 축하 서신을 받은 것이 그 대표적인 업적이었다. 그리고 고종 황제의 즉위 이전에 이미 그는 비서원승의 자리에 임명됐다. 황제의 최측근에서 자문에 임하며 황제의 황명을 출납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었다. 황제가 마음을 열어 대화하는 최측근의 총신이 된 것이다.

 이후 여러 직책을 받아 전임을 하지만 1902년까지 비서원승의 자리는 늘 그가 돌아와 앉는 그의 자리였다. 잠깐씩 전임을 해 나간 자리들도 들여다보면 겸임의 경우가 많았다. 1897년의 장례원 근무도 겸임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의 모든 의식을 거행하는 실무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1898년의 흥양군수, 의정부 총무국장, 의정부 지방국장, 농상공부 광산국장, 1899년의 의정부 총무국장, 평리원 판사, 1900년의 법부 사리국장, 평리원 재판장, 1901년의 봉상사 부제조, 1902년 태의원 소경 등을 역임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비서원승과 겸임하였으며 재임의 기간도 짧았다. 늘 그는 비서원승으로서 고종 황제의 곁에 머물렀다. 외임은 고종 황제가 명하여 그가 필요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잠시 다녀오는 출장이었던 셈이다.

 

  1897년 11월 17일. 그의 마흔 일곱 번째 생일이었다. 그날 오후 서촌의 집 마당에서 진귀한 풍경이 벌어졌다. 마른 생선 몇 가지에 청주와 간장과 참기름을 고루 발라 널어놓는가 싶더니 소갈비 몇 덩어리를 통째로 소금 간하여 숯불에 굽는 등 잔치 음식 준비가 바빴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상투머리에 탕건만 겨우 올려놓은 집주인 홍종우였다. 겨우 생후 서너 달 되어 보이는 젖먹이를 업고 선 젊은 부인이 그의 주위에서 종종대고 있었다.

 

 “영감, 어찌 이러십니까? 제발 그만 두시고 사랑방에 드시지요. 세상 사람들 볼까 무섭습니다.”

 “부인이야말로 그 젖먹이를 업고 뭐 하시는 게요? 바람이 벌써 차가우니 얼른 들어가시오. 내 생일상은 아침에 잘 받아먹었지 않소? 저녁에 친한 친구들이 몇몇 온다하여 그 안주를 장만하는데 굳이 부인의 손은 필요 없소. 손 돕는 아이는 저기 있지 않소.”

 “그 어른들 오셔서 이 꼴을 보시면 얼마나 우습겠습니까? 영감 체통은 또 뭐가 됩니까? 제가 이제 아이 내려놓고 준비하겠습니다. 이것들을 어찌 해야 하는지 요리 법도나 일러주시고 들어가시지요.”

 “부인. 오늘 벗들이 맛보고 싶은 건 이 사람이 직접 하는 음식들이오. 요리의 법도라는 것이 말로 설명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어서 들어가시오. 기본 준비만 해 놓고 나도 들어가 씻고 손님 채비를 할 것이니 마음 쓰지 마시오. 우리 순북이 얼굴이 벌써 뻘개졌소.”

 

 그는 부인을 외면하고는 일하는 여자 아이를 채근하며 음식 준비에 다시 몰두했다. 음식물을 만지는 그의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살금살금 피었다. 그가 개인적으로 꿈꾸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다. 식구와 벗들을 위해 생선을 다루고 고기를 자르는 일. 한참 후 작은 상 하나에 준비된 음식 서너 가지를 올려 내어 부친의 방에 올리라 이르고는 세수를 하고 의관을 갖추기 시작했다.

 

 “도둑장가 들더니 집들이도 않코, 이런 도둑놈에 행실이 어드메 있음? 하하.”

 “어서들 오시오. 내 오늘 제대로 벌을 받으려고 불렀지 않소.”

 

 목소리 큰 이용익이 앞장 서 들어오고 행색은 관원이되 관원보다는 길거리 왈짜로 보이기 십상인 두 사람이 뒤를 따라 들어섰다. 지게에 바리바리 짐을 진 일꾼 두 사람도 그 뒤를 따랐다.

 

 “쌀섬에 마른 생선에 마른 꿩고기도 좀 챙겼음. 정짓간이 어드메임? 그리고 이건 홍삼인데 어르신 잘 좀 다려 드리기오.”

 

 한참 시끌벅적 후 사랑방에 둘러 앉아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용익의 옆에 앉은 검은 얼굴에 단단한 몸의 사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과천 군수를 하고 있는 길영수외다. 반갑소이다.”

 

 그의 맞은편 그의 옆에 앉은 사람은 그도 익히 알고 있는 이기동이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으나 일찌감치 출사한 무신 출신으로 강녕군수와 공주 감영의 영장을 거쳐 법무국장, 재판소 판사를 맡고 있었기에 안면은 있는 사이였다.

 

 “승지 영감.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이제야 술 한 잔을 같이 나누게 되었습니다.”

 “다들 고맙소이다. 이렇게 누추한 곳을 찾아 주시니 오늘 별 것 없는 안주지만 맛있게 잡수시고 즐겁게 놀다 가시지요.”

 “이보우, 홍형. 이 두 사람은 나랑 호형호제 하는 사이니 홍형하고도 형제하면 될 듯 한데, 다들 어떻겠슴?”

 “사내가 뜻 맞는 벗을 얻는다면 형제의 연인들 붕우의 연인들 뭐가 어렵겠소.”

 “홍형이 마흔 여덟이시고 내가 마흔 넷에 이 영감이 마흔 둘에 길 군수가 갓 마흔이니 홍형이 큰 형이고 내가 둘째고 이 영감, 길 군수 순으로 형제를 맺으면 되겠구만. 다들 어떠시오?”

 “나와 이용익 대감은 어언 이십여 년 친우로 지내 왔으니 새삼 호형호제는 무슨. 다만 두 분께서 이 모자란 사람을 형 대우 해주시면 아우님 두 분을 잘 모시겠소이다.”

 “승지 영감 위명은 오래 전부터 들어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멀리 불란서 유학에 서 돌아와 서양의 법도와 문물에 통달하실 뿐 아니라 역적 김옥균을 참살하시고 그를 따르던 종왜 반도들을 떨게 하시니 황제 폐하의 신임을 한 몸에 받고 계시지 않습니까? 모자란 동생으로 형님을 잘 모실까 두려우나 허락해 주신다면 죽는 날까지 아우의 도리를 다하겠습니다.”

 

 이기동이 먼저 인사를 하고 길영수 역시 고개를 숙여 다시 인사를 갖췄다.

 

 “자자..이제 늦장가 들어서 세월 좋다는 승지 영감 술 한 잔 받아 보우다.”

 “우리 오늘 크게 취하도록 마십시다. 이 몸이 직접 몇 가지 음식을 준비했으니 입맛에 맞을지는 모르겠소.”

 “근데 동경 바닥을 쩌르르 울렸다는 서양 요리는 다 어데가고 늘상 먹던 조선 요리만 올라왔음? 아하...이거 기대 좀 했는데..”

 “허허..조선 사람한테는 조선 음식이 최고요. 불란서 요리가 대단하다 하나 우리 조선 사람 입맛에 어디 맞을 턱이 있겠소? 이형이 꼭 먹고 싶다면 내 다음 기회에 준비하리다.”

 “형님, 아우들 잔도 좀 받으시지요.”

 

 그들은 그날 밤을 새우도록 잔을 비웠다. 후세 사람들 입에 크게 오르내리게 되는 홍길공이 모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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