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오랜만이네. 웬일이야?"
오늘은 잘 연락이 오지 않던 수영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할 말이 있다며 영등포로 오라는 말이 끝이었다. 짧은 통화가 아쉬웠지만, 금요일인 내일 만나면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 불금을 보낼지 신이 났다.
"여보세요?"
"흐음, 목소리가 많이 들떴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아니, 별일 없는데."
오늘도 운동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전화를 건 건지 간간히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민석의 전화였다. 매번 같은 시간에 전화하는 그에게 물었다.
"맨날 같은 시간에 운동해?"
"음, 야근 없으면? 아, 회식도. 근데 요즘 부쩍 나한테 궁금한 게 많은 거 같다?"
"뭐래, 진짜."
또다시 예고도 없이 끊어진 전화지만 민석은 기분 좋은 웃음소리를 냈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그녀와 연락이 되지 않은 일주일 동안은 곧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와 연락이 되는 지금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연락되는 것만이라도 감사했다.
*
*
낯선 지리에 벌써 다섯 번은 빙빙 돈 거 같았다. 오랜만에 입은 타이트한 원피스가 불편해서 제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낑낑거렸다. 도대체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수영에게서 카톡으로 온 가게는 보이지가 않았다. 살짝 짜증이 나 있었을까 알싸한 담배 냄새에 한 손으로 코를 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등 뒤에서 느껴지는 어깨동무를 해오는 낯선 느낌이 들었다.
"아, 김기범."
팔을 뿌리치며 몸을 돌려서 보자 익숙한 얼굴인 기범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얼굴 본 지가 언제인지 낯선 곳에서 만나니 더 반가움을 느낀 여주가 폴짝거리며 기범의 팔뚝을 잡았다.
"야아, 여기 어떻게 왔어? 너도 수영이한테 연락받았어?"
"난 이태민 연락받고 왔어. 안에 들어가면 정수정 있어."
"수정이? 아, 뭐야. 그럴 줄 알았으면 같이 올걸. 괜히 길 잃어버리고 개고생했네."
"정수정도 그 말 하더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약속장소에 다 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금연구역에 옹기종기 앉아있는 친구들이 보였다. 수정이처럼 자주 보는 친구도 있었지만, 기범이처럼 보기 힘든 친구들이었기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야, 왔냐?"
"어쩜 나이를 먹고도 길을 잃어버리냐?"
짓궂게 반기는 종현의 말에 기범이 자리에 앉으며 한마디 덧붙였다. 옆자리에 앉으며 팔꿈치로 기범의 배를 가격하는 척하자 움찔하며 몸을 내빼는 그였다.
"하여간 지지배가 무식하게 힘만 세서.."
"야, 너한테 들으니까 기분 나쁘다?"
"그것보다 왜 우릴 부른 장본인들이 안 오냐."
종현이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꺼내고 곧 딸랑거리는 문소리에 일제히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뚱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들어오는 태민과 수영이 들어왔다.
"근데 박수영 원래 여기 안 살지 않냐. 이상하네."
"둘이 같이 들어오는 게 더 이상해."
"무슨 표정 보니까 하나도 안 이상한데 뭘, 또 싸웠네."
혀를 내두르며 둘을 바라보던 여주는 옆에 앉아있는 기범을 밀었다. 그런 그녀의 손을 밀치며 흘겨봤다.
"아, 수영이 앉게 저리로 가라고!"
"내가 먼저 앉아있었거든?"
"어쩌라고, 비켜."
기범과 티격태격하는 동안 어느덧 가까이 다가온 태민과 수영이 빈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평소와 확연히 다른 둘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낀 여주는 티격태격하던걸 멈추고 몸을 뒤로 뺐다.
"어이, 우리 불러 모았으면 말 좀 꺼내 보지?"
"아직 한 명 안 왔어."
도착하고 줄곧 적막이 흐르는 테이블에 견디지 못한 종현이 턱을 괴고 있던 손을 푸르며 말하자 태민이 가게 문을 힐끔 바라보곤 대답했다.
"누구? 혹시 이진기? 진기야?"
"걔 아니니까 진정해라."
눈을 배로 크게 뜨며 흥분해있는 여주의 팔을 끌어 잡은 태민이 말했다. 그에 금세 시무룩해진 그녀는 종현과 똑같이 턱을 괴고 가게 문을 바라봤다. 그때였다. 딸랑, 하는 작은 종소리와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모두들 익숙한 얼굴을 반기며 의자에서 일어섰고 여주는 여전히 턱을 괸 채 그 얼굴을 흘겨봤다.
"여긴 어쩐 일이냐. 우지호."
"태민이가 불러서 왔는데."
"나 갈래."
진심인 건지 엉덩이까지 들척거리는 그녀에 수영이 식겁한 듯 말렸다. 잔뜩 인상을 쓴 여주가 자신의 팔을 잡아대는 기범의 손길에 자리에 다시 앉으며 여전히 서 있는 지호를 아까와 같이 흘겨봤다.
"무슨 이야기 하려고 쟤까지 다 불렀냐. 빨리 이야기해. 나 집에 갈래."
고등학교 1학년 이후로 본적도 찾은 적도 없는 그가 눈앞에 있자 불편함에 몸을 사렸다. 한눈에 보기에도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여주가 말을 하자 우물쭈물 가만히 있을 뿐 태민, 수영 둘 중 한 명도 선뜻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10분, 20분. 허송세월을 보내던 여주가 다시 엉덩이를 일으켰고 태민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결혼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