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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날 봐! Season1
작가 : 폭력햄스터
작품등록일 : 2019.11.6

 
날봐! #29
작성일 : 19-11-08 18:07     조회 : 204     추천 : 0     분량 : 2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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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여주는 곧장 짐을 챙겨 보라의 집으로 향했다. 잡생각을 지우고 일에만 매진할 작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우습다는 듯이 오늘도 민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참 지겹도록 꾸준한 그였다. 고요한 방안에 혼자 침대에 누운 여주는 그를 생각했다. 이건 피하기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먼저 그와의 사이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워지는 정의에 그녀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집중력이 흐트러져서일까? 방금까지는 들리지 않던 보라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만 들려오는걸 봐선 아마 전화통화중인 거 같았다. 문을 슬그머니 열어 눈동자를 굴리자 소파에 앉아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건지 환하게 웃고 있는 보라가 보였다. 방문을 다시 닫으려던 때였다. 침대 위에 놓여있는 휴대폰이 요란스레 울렸고 통화 중이던 보라가 고개를 돌려 손짓을 했다.

 

 "쉬는 날 아닌가?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아, 그냥. 오빠는요?"

 "오늘 회식하고 온대."

 

 멍청한 소리를 내는 여주에 보라가 텔레비전 밑에 있는 선반에 있는 책자를 들고 오며 오빠도 없는데 치맥이나 하자며 건넸고 얼결에 받아든 여주는 겉표지만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너 요즘 잠 잘 못 자? 무슨 일 있지?"

 

 탁자 위에 책자를 올려두고 무릎을 당겨 안은 여주에 보라의 물음이었다. 잠깐 생각에 빠졌다. 이 이야기를 그녀에게 해도 될지 또 한다고 해서 내가 정말 솔직해질 수 있을지. 잠깐의 고민 끝에 고개를 조그맣게 끄덕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스스로 입을 열도록 보라는 여주와 같은 자세로 무릎을 당겨 안은 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2분, 3분. 시간이 흐르고 10분이나 더 있어서야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번에 이야기했던 그 사람 있잖아요."

 "아, 그 썸남?"

 "아니 썸남이 아니..네, 맞아요. 그 사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여주의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묵묵히 들어주던 보라가 천천히 움직임이 멈춰가는 여주의 입술에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지겹다고 연락 안 한다며."

 "그게, 저희가 무슨 사이인지를 모르겠어요."

 "무슨 사이인지 모른다니? 아까 네 입으로 썸남 맞다며."

 "아.."

 "근데 그 남자 너 진짜 좋아하나 보다. 네가 그렇게까지 연락을 피했는데도 꾸준히 연락 오는 거 보면."

 

 보라의 마지막 말에 아까부터 울렸을 휴대폰을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일주일 만에 휴대폰에서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안받...받았..받았다. 여보세요!?"

 "..나 귀 잘 들리니까 소리 지르지 마."

 "아..으응!"

 

 낮게 나오는 웃음소리를 애써 숨기며 민석이 떠드는 말소리를 가만히 들었다. 울렁이는 건지 들떠있는 건지. 딱 집어 표현할 수 없는 민석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침대에 누워 귀에 휴대폰을 올려놓고 눈을 감았다. 잠이 들려는 건지 웅웅거리는 그의 목소리에 잠이 들어버린 그녀였다. 고른 숨소리를 가만히 듣던 민석이 드디어 환하게 웃었다.

 

 "잘자, 내일 또 연락하자."

 

 

 *

 *

 

 

 알람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번쩍 떠진 두 눈이었다. 일주일 동안이나 잠을 제때 자고 제때 일어나지 못했던 그녀에게는 참 신기한 일이었다. 더 신기한 건 정말 개운했다는 것이다. 어제의 일이 진짜라는 걸 증명하듯 귀에 얌전히 놓인 휴대폰을 옆으로 치워두고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등허리에서 나는 뼈 맞춰지는 소리에 민망해져 콧잔등을 긁으며 문을 열자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는지 고요하기만 했다. 탁, 탁 거리며 거실을 유유히 가로지르던 설이가 문을 열고 서 있는 여주를 향해 뛰어왔다.

 

 "설이 밥 먹었어?"

 "밥이나 챙겨주고 이야기하지 그러냐."

 "악, 깜짝이야!"

 

 뒤를 돌자 머리는 새집 진 채로 서 있는 남준이 보였다. 요즘 디자인부 바쁘다고 하더니 푸석해진 꼴이 말이 아니었다. 고개를 대충 까딱이고 베란다로 나가 설이 사료를 펐다. 꼬리를 흔들며 따라오는 설이를 데리고 식탁 밑에 사료통을 내려놓자 코를 박고 열심히 먹는 녀석이었다.

 

 "설이 밥 말고 내 밥도 좀 줘라."

 "보라언니는요?"

 "오늘 본가 다녀온다고 휴가 냈어. 출근 우리 둘만 하면 돼."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이며 아침상을 차렸다. 아침상이라 거나한 건 없었다. 저녁에 요리한 찌개를 데우고 밥그릇에 밥을 푸고 냉장고에 남아있는 반찬들을 꺼내 올리는 게 전부였다.

 

 "잘 먹겠습니다."

 

 씻고 나온 남준의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묵묵히 밥을 먹는 그를 보며 보라가 본다면 거침없이 등짝을 내려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머리 좀 말리지 그래요?"

 "넌 좀 씻지 그러냐."

 "난 오빠가 일어나자마자 일 시켰으니까. 그리고 씻을 거거든요? 오빠가 설거지해!"

 

 뛰다시피 화장실로 들어가는 여주의 뒷모습에 남준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요즘 일이 힘들지 많이 피곤해 보였는데 간만에 제 장난에 말대답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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