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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괴물
작가 : 사열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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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화상 자국, 가슴에 깊은 상처를 지닌 장현성.
험악한 외모 때문에 늘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아 온 그가 이종격투기의 신성으로 떠오른다.
링네임 "괴물"
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을 피하기만 했던 ""괴물""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로 파이터 "괴물"로 비상한다.

 
제 14 화
작성일 : 16-07-12 14:44     조회 : 780     추천 : 0     분량 : 1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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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가가 가라고?”

 함께 술을 마시며 그간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범수가 기도 차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현성을 바라보았다.

 좀처럼 말이 없다 보니 그 과거가 어땠는지 정말로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술자리에서 간결하게나마 왜 그가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그 편의점 아가씨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나니 남아 있던 두려움보다 가련하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진짜… 니는 빙시다, 빙시!”

 덩달아 속이 상한 듯 혜주가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곤 술을 들이켰다.

 그렇게 술을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엔 갑갑한 일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특히나 현성에게는 말이다.

 그녀 역시 만만찮게 복잡한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이제 겨우 스무 살이 된 그에겐 세상의 벽이 너무나도 험하고 높았다.

 그 나이 차이 때문일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신경이 쓰여 속상한 마음에 혜주가 연신 술잔을 채우자 현성이 ‘누나, 적당히 마셔요’ 하고 그녀를 말렸다.

 “내 그래 술 안 약하거든?”

 ‘치!’ 하고 다시 퉁명스럽게 한 마디 던지며 발그레한 얼굴로 혜주가 고개를 돌렸다.

 취기가 오르면 제법 애교 있게 변하는 그 모습에 현성과 범수가 함께 웃음 지었다.

 “암튼 진짜… 현성이 니도 고생 많았네. 와… 나는 진짜 그런 일 있단 이야긴 많이 들었는데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

 범수가 함께 술잔을 들었다. 거드는 그 분위기에 현성이 ‘그냥… 별일 아닙니더’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함께 잔을 들고는 챙, 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소주를 들이켰다.

 벌컥벌컥 넘어가는 술이 이제 질릴 만도 하다만 그래도 이 순간… 위로받는 이 순간에는 그보다 달콤한 친구도 없었다.

 하지만 내내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혜주나 범수의 눈빛이 못내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해서 말을 돌렸다.

 “근데 누나는… 이제 그만둔다면서요? 가게 새로 차린다고.”

 “내 그런 돈이 어딨노, 빙시야. 범수, 니가 이상한 소리 했제? 그냥… 이제 더는 이런 거 할 나이는 아이잖아. 이 나이 먹고 계속 그러고 있으면 서글프니까.”

 다시 술잔을 채우는 혜주의 모습에 현성이 ‘누나…’ 하고 걱정스러운 듯 그녀를 바라보자 혜주가 ‘뭐!’ 하고 새침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의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에 기분 좋은 것을 감추지 못하고 후후, 웃음 지었다.

 “내 나가는 거는 아직 멀~었다. 니가 더 먼저 나갈 거니까 신경 쓰지 말고!”

 도도함을 잊지 않은 그녀의 말에 현성이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옴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현성을 바라보며 모든 오해를 푼 범수가 현성의 얇은 외투가 걱정이 되어 그의 어깨를 다독이며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현성아, 진짜 같이 쇼핑 한번 해야겠다. 옷 좀 사야지, 이 날씨에 그게 뭐꼬? 나는 돌아가면서 쉬어야 되니까 같이는 못 가겠고…….”

 “혼자 보내 봐야 뭐 제대로 하지도 못할 거고, 언제 쉬노?”

 흥, 하고 낚아채듯 혜주가 한 마디 던졌다. 그 말에 범수가 ‘오~’ 하고 들뜬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자 ‘오바 하지 마라! 변태야!’ 하고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내가… 야 답답해서 그런 거다! 멍청아!”

 새침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외침에 범수가 ‘예~ 누님~’ 하고 느긋한 얼굴로 웃음 지었다.

 그동안 현성은 쇼핑은 생각도 못 했던 모양인지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였다.

 “다음 주 월요일에 쉬는데예……. 근데 그날은 좀… 힘들 것 같심더.”

 “쉬면 쉬는 거지 뭐가 힘든데? 승지랑 만나기로 약속이라도 했나?”

 다시 혜주가 도끼눈을 뜨고 불만스럽게 이야기하자 현성이 ‘예?’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에 혜주가 눈에 띄게 크게 움찔하며 ‘뭐 다른 약속 있냐고?!’ 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홱 고개를 돌렸다.

 술기운 탓에 발그레한 그녀의 얼굴에 현성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단 생각이 들어 살짝 웃음 지었다.

 “그날 보호 관찰 담당자랑 만나기로 해가지고예. 저 만날라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심다.”

 “만날라는 사람?”

 “누군지는 모르겠심더. 그냥 뭐… 상담사나 그런 사람이겠지예.”

 아직까지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따로 약속은 없지만 그날은 그리될 것 같다는 말에 혜주가 ‘흠…’ 하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뭐? 대강 보고 정리해라! 알겠제?”

 화끈한 그녀의 목소리에 현성이 어색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갑작스러운 술자리에, 갑작스러운 약속이 당황스럽긴 하지만 은근히 반가운 기분이 드니까.

 특히나 혜주가 함께한다는 것에 설렘을 느끼며 현성은 그날 다른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마디 거들었다.

 “별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예.”

 

 ***

 

 쉬는 날이라고 하지만 마냥 쉴 수만은 없었다.

 일을 마치고 들어와서 평소보다 일찍, 다섯 시간도 채 잠을 자지 못한 현성이 조금 피곤한 듯 무거운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올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후우…….”

 따로 시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항상 약속이 정해져 있으면 그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는 편이었다.

 하루하루가 불투명하다 보니 덩달아 몸도 항상 긴장해 있고, 그러다 보니 잠을 쉽게 이룰 수가 없었다.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지나칠까 전전긍긍하다 보면 약속 시간보다 매번 일찍 깨긴 했다.

 물론 그것이 약속이 있거나 출근해야 한다거나 할 때에는 도움이 되는 편이었다. 긴장하고 있으니 그 시간보다 훨씬 더 일찍 일어나게 되니까.

 하나 매일 그런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육체적인 피로감은 둘째 치고, 정신적인 피로감이 물밀 듯이 밀려와 눈을 뜨고도 현성은 한참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꾸물꾸물 몸을 움직였다.

 침대가 비좁아 보일 정도로 큰 몸이지만 일어나기 싫어 꾸물거리는 모습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와 이래 힘드노…….”

 그러나 다른 게 있다면 그 어린아이는 아주 이른 나이부터 무엇이든 스스로 해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

 어깨 위로 누군가 올라탄 것만 같은 묵직한 피로감을 기지개를 쭉 펴서 간신히 떨쳐낸 현성이 몸을 일으켰다.

 왠지 모르게 코끝이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몸도 으슬으슬한 것이 범수가 말했던 대로 혹시 감기라도 걸린 게 아닌가 생각해 봤지만 딱히 몸에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웨이터 생활을 시작하고 나선 매번 그랬고, 오늘은 보호 관찰 담당자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평소보다 잠을 더 설쳐서 그런 게 틀림없었다.

 그리 생각하며 그가 화장실로 걸음을 옮겼다.

 벌써 한 달 가까이 생활하고 있는 모텔은 집처럼 익숙해진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모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니 한숨이 나왔다.

 소년원을 나온 후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해서 그런지 볼이 많이 홀쭉해진 데다 피로가 쌓여 초췌해 보이는 몰골이 평상시보다 훨씬 더 못나게만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쩔 땐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보면 자신도 괜찮게 생긴 것 같은 때가 있지만 아마 지금 보고 있는 모습이 현실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 모습일 것이다.

 화상 자국도, 초췌함도, 칼날처럼 날카롭게 날이 서 더욱 매서워 보이는 얼굴도…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생각하며 그가 한숨을 내쉬고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쏴아아, 하고 흐르는 물소리에 잠깐 정신이 팔렸던 현성이 이내 따뜻한 온수로 손을 적시고는 점차 차가운 물로 수도꼭지를 돌렸다.

 겨울날에 찬물로 세수를 하는 것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것보단 그 자체가 뜨거운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특히나 얼굴에 닿는 것들은 말이다.

 그에게는 유난히 뜨거운 것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많았다.

 어릴 때 입은 화상이나 그의 부모님을 앗아간 화마, 그리고 그날의 끈적하고 기분 나쁜 더위 같은 것들 말이다.

 어쩜 선원이 되고 싶다 생각했던 것은 그것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현성이 적당한 차가움이 느껴지자 세수를 시작했다.

 비누칠을 하고 얼굴을 어루만지다 보니 까칠한 수염이 손끝에 걸려왔다.

 이걸 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던 그가 ‘담당자만을 만나는 날이 아니니까…’ 하고 일회용 면도기로 슥슥 수염을 밀었다.

 “…하나 안 하나 똑같은데.”

 이내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던 그가 비웃음같이 씁쓸한 웃음을 남겼다. 대체 그게 뭐라고.

 담당자를 만나고 혜주를 밖에서 만난다는 생각에 기묘하게 들뜬 마음이 갑자기 또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자 현성이 헛된 기대감은 가지지 말자고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을 망치는 가장 큰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기대감이므로.

 뭔가를 기대하게 되면 항상 실망만 남을 뿐이고.

 그래서 그는 기대하지 않았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래도 가끔씩 그 맘이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하고 뭔가를 바라거나 하면 무척이나 엄하게 자신을 매질하기도 했다.

 차라리 그 편이… 그리 크지도 않은 작은 기대조차 산산이 부서지는 것보단 덜 아팠으니 말이다.

 몸을 씻고 나온 그가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 입고 나갈 옷을 살펴보다 이내 에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범수나 혜주 말대로 옷을 좀 사긴 사야 할 것 같았다.

 웨이터로 일하면서 입는 셔츠 두어 벌과 까만색 정장 바지와 청바지, 그리고 그 위로 지금껏 입고 있는 얇은 점퍼 하나. 그것이 전부였다.

 일을 하러 갈 때 입는 옷 말곤 딱히 입을 것들이 보이질 않자 현성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도 아직은 스무 살에 불과했고, 스스로를 꾸미고 싶단 생각도 가끔씩 하곤 했다.

 그렇지만 현실의 여건은 그걸 전혀 충족시켜 주지 못했고, 그에겐 남들보다 더한 패널티가 있었다.

 잘 꾸미고 다닌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본은 갖춰야 하지 않나 생각하며 그가 까만 가방 안에 모아둔 팁들을 꺼내봤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옷 사는 데야 충분한 돈이긴 했지만 그걸 이렇게 써버리자니 다시 망설여졌다.

 혹시 몰라서 이 일을 그만두고 선원도 하지 못하게 되면 창호나 재운을 피해서 다른 동네로 가야 할지 모르는데, 그때 돈이 없으면 어떡하겠는가?

 걱정과 불안감에 그 돈을 모아두고도 전혀 쓰질 못하는 현성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매번 내쉬는 한숨이 얼굴을 더 망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에 또다시 씁쓸해졌지만 그런 것들이 현실을 극복시켜 주진 않는다.

 결국 현성은 다시 가방 안에 그 돈들을 집어넣고 여윳돈 오만 원 정도만을 챙겨 모텔을 나섰다.

 이제 겨울도 다 끝나가니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는 생각이 그의 머릴 스쳤다.

 ‘그럼 얇은 옷이나 몇 개 더 사서 안에 입고 다니자!’

 욕심을 포기하고 현실을 선택한 그가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으로 모텔을 나서는 동안 거리에는 제법 싱그러운 기운들이 가득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매일 저녁에 출근하고 새벽에 퇴근하던 그에게 정오의 거리는 무척이나 오랜만인 것 같았다.

 겨울날이라 쌀쌀했지만 햇빛만큼은 따사롭고 쾌청한 날씨인지라 우울한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고 생각하며 현성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을 옮겼다.

 담당자를 만나기 위해서 동성로까지 나가야 하지만 그렇게 멀진 않았다. 대구 동네 자체가 그리 큰 동네는 아니다 보니 중심부까진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다만 걱정되는 게 있다면 이런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에 편리함보단 거북스러움이 먼저 든다는 것 정도. 하나 그것도 익숙해지면 별일이 아니었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당연하다 생각하며 현성이 천천히 버스에 올랐다.

 유심히 그를 살펴보는 버스 운전기사를 외면한 채 다시 습관처럼 사람들이 없는 벽면을 바라보고 우두커니 섰다.

 평일 낮 시간이라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은 덕분에 심하게 부대끼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이런 곳엔 마음을 죄어오는 불편함이 가득했다.

 그가 다른 사람들을 괴롭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그를 괴롭힌 것은 아니지만 본인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그 자신을 어느새 이렇게 잡아먹고 있었다.

 ‘삑…’

 동상처럼 우두커니 서 있던 현성이 목적지에 도착하자 도망치듯이 버스에서 내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음을 옮겼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대구 시내는 다른 곳보다 유난히 사람들이 많아 붐비곤 했다.

 그게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유독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담당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물론… 그런 걸 존중해 줄 사람은 세상 천지에 몇 없겠지만.

 한숨을 내쉬며 굳은 얼굴로 걷고 있던 현성이 약속 장소를 발견하고는 서둘러 걸음을 재촉했다.

 여유 있게 출발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동 시간을 생각지 못한 탓에 시간이 조금 지체된 감이 있었다.

 <프라하의 봄>이란 이름을 가진 카페 안으로 들어간 그가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하던 알바생이 자신을 보고 움찔하자 쓴웃음을 지으며 가게를 둘러보았다.

 이내 그를 기다리고 있던 담당자가 그를 발견하곤 손을 들었다.

 “여기!”

 담당자는 소년원에서 함께 생활했던 김형범 교위가 아니라 서글서글한 눈매에 살집이 통통하니 오른, 처음 보는 삼십 대 남자였다.

 사람 좋게 생긴 얼굴이 인상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의 손짓에 현성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까 봐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그의 곁에 있던 젊은 여자가 ‘아…’ 하고 마치 그를 알아보는 듯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현성이 조금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직감을 뒤로한 채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반가워요, 장현성 씨!’ 하고 담당자가 손을 내밀었다.

 “앞으로 육 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은 이렇게 같이 데이트할 김동진이라고 합니다.”

 예의 바른 그의 목소리에 현성이 ‘아… 반갑심다’ 하고 조심스럽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내 그가 힐끔 여자를 바라보자 그녀가 조금 상기된 얼굴로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이쪽은 이지선 씨…라고 방송국 PD예요. 인사해요.”

 그 순간 현성의 얼굴이 매섭게 굳었다.

 “…PD라꼬요?”

 확연히 달라진 얼굴에 동진이 오해는 하지 말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

 “아, 현성 씨랑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고 부탁을 하셔서… 사전에 이야기했는데…….”

 “PD라곤 말 안 하셨는데예.”

 딱딱한 얼굴로 현성이 왠지 모르게 더러운 기분을 느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에 지선이 조금 당황한 듯 힐끔 동진을 바라보자 동진이 ‘일단은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하고 진정하라는 듯 손을 들었다.

 이내 현성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우선 지내는 건 잘 지내고 있어요? 보니까… 나와서 지금…….”

 “모텔에서 지내고 있심다. 웨이터 일하고 있고요.”

 전화로 이야기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하며 현성이 고개를 돌렸다.

 이 자리에 왜 PD가 나왔을까? 그게 너무나도 신경이 쓰이고 기분이 이상했다.

 “집은…….”

 “없심다. 고모 집이지, 내 집 아니잖아요.”

 기분이 바닥을 쳤기 때문인지 서슬 퍼런 대답에 동진이 진땀을 빼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지내는 데 혹시 불편한 거 있으면…….”

 “그런 거 없심다. 이야기 다했으면 가볼게예.”

 형식상 진행하는 절차이기도 한데, 그 자리에 저런 혹을 달고 나오니 제대로 이야기할 생각조차 사라진 현성이었다.

 그 가시 돋친 모습에 동진이 ‘아, 벌써 그러시면 안 되구요!’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최소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그런 거 이야기 듣고 싶으시면 최소한 옆에 저런 거는 안 델꼬 오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 화가 난 목소리에 지선이 움찔하다 ‘저런 거…’에 조금 기분이 상한 듯 힐끔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거칠어 보이는 외모와 무척 기분이 상한 듯 공격적인 모습에 심장이 쿵쿵쿵, 하고 요동을 쳤다.

 결국 그녀는 눈을 계속 바라보지 못하고 피하다가 이렇게 취급당하긴 억울한 듯 ‘저기요!’ 하고 그를 불렀다.

 “제가 같이 동행해서 조금 당황하신 것 같은데… 저는 그런 게 아니구요……. 혹시 <주먹이 운다!>라는 프로그램 아세요?”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내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현성이 ‘그런 거 모릅니더’ 하고 얼굴을 피하던 것과는 달리 매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공격적인 그 모습에 지선이 무척 긴장한 듯 바짝 굳은 얼굴로 ‘저기, 그러니까…’ 하고 말을 이어갔다.

 “저희가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게 뭐냐 하면 왜… 그, 지역마다 주먹으로 유명했던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이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리고 또… 그분들이 정말 전설이 맞는지 검증하는 프로그램 같은 건데…….”

 가슴이 심하게 요동쳐서인지 몇 번이고 준비했던 말들이 머리를 빙빙 돌아 제대로 나오지도 못하여 지선은 버벅거리며 프로그램 설명을 시작했다.

 결국 흐지부지 끝이 난 말이, 마치 잘못을 저질러 변명을 늘어놓는 아이처럼 자신감이 없자 그녀가 ‘이게 아닌데…’ 하고 쓴웃음을 띤 채 그를 바라보았다.

 “내 어떻게 지내는지 누가 궁금하다 캅니까? 티비서 찍어달라고요?”

 무척 가시 돋친 그의 대답에 지선이 ‘그런 게 아니라…’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사람 때려 쥑이고 소년원 갔다 와서, 지금은 우에 지내고 있는지 퍽이나 궁금들 하시겠네예.”

 면도날처럼 바짝 날이 선 목소리가 무척이나 위협적으로 들리자 동진이 ‘아니… 현성 씨, 그게 아니구요…’ 하고 지선보다는 한결 능숙한 얼굴로 미소를 잃지 않고 중재에 나섰다.

 “그러니까… 현성 씨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사연이 있잖아요. 사실 현성 씨, 처음에 사회 적응이 많이 어려웠다고 전에 전화 통화로 이야기를 했었는데… 얘기를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현성 씨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고 적응해 나가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여기 지선 씨도 그런 생각으로 현성 씨를 찾아온 거지 뭐, 그게 범죄 다큐멘터리나 그런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좀 진정하세요.”

 두 손으로 동진이 현성을 진정시키는 동안 그가 식어버린 차가운 눈으로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더러운 기분이 엄습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뭔가 몸이 피로하고 기분이 별로였다 싶었는데 이 일로 기분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방송국 PD가 그를 촬영하길 원한다니. 무엇 때문에?

 “내 빙시 아입니더. 구라 치지 마이소. 나와 봐야 내는 나쁜 놈이고, 내랑 싸울 놈만 착하고 멋진 놈이겠지예? 내같이 생긴 놈이, 못된 짓까지 해왔으니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리고 까불까불거리다가 반듯하고 잘난 아들한테 직빵으로 깨지고 무너지는 거 찍고 싶은 거잖아예? 내 모를 줄 압니까?”

 이유는 뻔하지 않은가? 소년원에 있을 때 그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는 듯 현성이 차가운 눈으로 지선을 노려보았다.

 모르지 않았다. 단지 모르는 척했을 뿐!

 그 말에 당황한 지선이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하고 해명했다.

 “저희가 연락을 하면서 김형범 교위님이라고 현성 씨랑 친했던 분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현성 씨가 그런 게… 좀 사연이 있다고 하셔서! 그래서… 그걸…….”

 그러나 현성이 이야기했던 것이 자신이 그렸던 핵심 그림이고, 그것을 영락없이 들키고 나자 수습이 안 되었다.

 우물쭈물 지선이 변명처럼 늘어놓는 말에 현성이 더는 화를 내는 것도 무의미하다 생각했는지 짧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내 빙시 아이라 안 캅니까!”

 예상보다 감정적인 현성의 목소리엔 상처가 묻어나고 있었다.

 “미안해요. 그럴 의도가 아니었는데…….”

 그 목소리에는 일을 너무 쉽게 보았던 지선의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

 그 말이 또 ‘그 애’의 말처럼 들려와 현성이 공허한 눈으로 ‘됐심다, 괜찮심다’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내 같은 거한테 뭐 바라겠심까. 그냥… 난 사람 같이만 대해 줘도 좋겠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게 안 되나 보네예. 그런 데 죽어도 안 나갑니다. 다시 묻지도, 찾아오지도 마이소. 죽어도 안 합니다.”

 완강한 그의 거절에 지선이 섭외를 하는데 완전 큰 실수를 범했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최소한 그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고 접근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신임 PD가 송구스러워 몸 둘 바를 모르는 동안 동진도 현성이 그렇게까지 싫어할 줄은 몰랐기에 ‘미안해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하고 사과했다.

 그러나 현성은 더는 말이 없었다.

 “…더 할 말 있심까?”

 이런 상태론 확인해야 할 것들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겠단 생각에 동진이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곤 ‘전화로 나머진 이야기할게요’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간신히 마음잡은 사람을 흔들어놓는 게 그의 일이 아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마음잡은 사람들이 다시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막는 사람이었으니까.

 오늘은 큰 실수를 저지른 게 틀림없다고 여긴 그가 고개를 흔들자 현성이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카페를 나서는 뒷모습이 무척이나 외롭고 고독해 보였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지선이 ‘하아… 어떡하면 좋아요…?’ 하고 죄책감을 느끼는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저 친구가 저렇게 안 좋게 생각할 줄은 몰랐네요. 그래도 예의 바른 친구라서 얘기는 좀 들어볼 줄 알았는데… 잘못 생각했어요.”

 동진이 한숨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에 지선이 ‘어쩔 수 없죠’ 하고 천천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생각했던 대로 곰처럼 큰 덩치에 무척 무서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서운 용모와 달리 무척 여린 속이 방금 그녀와의 만남에 깊은 상처를 입은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좋은 소재다 싶어 들뜬 나머지 너무 경솔했단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자 지선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제대로 사과를 해야겠어요!’ 하고 동진을 바라보았다.

 “예? 안 그러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니요! 그래도 할 말은 해야죠! 내가 저 사람 기분 상하게 만들었으니까, 미안하다고 이야길 해봐야죠.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프로그램의 존망과 커리어에 집착하다 보니 생긴 사태가 틀림없었다.

 그게 그녀의 본심은 아니었기에 지선이 성큼성큼 현성의 뒤를 따라나섰다.

 당찬 신임 PD의 모습에 동진이 ‘매력 있으시네’ 하고 호감 가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홀로 남아 커피를 들이켰다.

 그사이 카페 밖으로 빠져나온 현성은 큰 키만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어느새 저만치 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지선이 ‘저기요!’ 하고 그를 부르며 뒤따라 달려갔다.

 편안해 보이는 운동화와 스포티한 패션이 단발머리와 함께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그녀의 부름에 현성이 힐끔 고개를 돌렸다.

 “…미안해요. 정말 그럴 생각은…….”

 “괜찮다 안 캅니까.”

 “하나도 안 괜찮잖아요? 그냥 껍데기로 사과만 하는 거 아니라구요. 그쪽 기분을 하나도 생각 못 했으니까… 정말 미안해서 사과하는 거라구요.”

 그렇게 꼬인 모습으로 받아들이지만 말아달라는 지선의 목소리에 현성이 조금 의외라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진심으로 미안한 얼굴로 ‘진짜 정말 미안해요’ 하고 사과하자 그가 이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얼떨떨한 얼굴을 하고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괜칞심다.”

 현성이 뒤돌아서서 다시 걸음을 옮기자 지선이 ‘후…’ 하고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정말로 그녀의 사과를 받아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미안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장현성이라고…….”

 화상 입은 얼굴과 큰 키와 덩치를 가진, 그리고 섬세한 마음을 가진 남자.

 분명히 그가… 헛으로 그런 일을 벌인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지선이 뒤돌아서며 핸드폰을 꺼내고는 통화 목록에서 ‘김형범 교위’를 찾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곤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다시 멀어진 그 뒷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보았다. 전임 PD와는 ‘다른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살려보겠노라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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