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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내 남친은 왕자님
작가 : 핑키pinky
작품등록일 : 2019.10.9

시작은 단순했다. 그저 좋아하는 외국 배우에 관해 원없이 대화할 수 있는 친구면 족했다. 거기에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면......그 나라의 친구이길 바랐다. 그리고 마침내 마음속에 간직했던 소망을 이루려는 찰나...... 여린 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현대 왕실 로맨스입니다.) *작가 이메일 pinkynjy@naver.com

 
보고 싶어요.
작성일 : 19-11-07 21:31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8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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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탑승 수속을 밟는 내내, 리나의 표정이 어두웠다.

 크리스 역시 애써 감추긴 했지만 문득문득 드러나는 쓸쓸함을 어쩌지 못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바라보는 수연 역시 편치 못한 얼굴이었다.

 지금 그녀의 마음은 꽤나 부대끼는 중이었다.

 인생의 절친을 떠나보내야 하는 마음과 연인이 되길 소망했던 이와의 이별을 앞둔 탓이었다.

 기약이 있다면 견뎌낼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크리스에겐 아직 확답을 주지 못한 상태였다.

 

 날마다 조금씩 호감을 더해가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상황도 중단될 위기였다.

 수연은 제 감정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나무랐지만 이상하게도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이토록 어중간하고 애매한 상황은 결코 바라던 바가 아니었다.

 헤어지는 마당이라면 차라리 깔끔하게 결론을 맺는 편이 현명한 일이었다.

 

 세 사람이 무거운 침묵 속에 서 있는 사이, 수행원 하나가 오누이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보고했다.

 크리스가 리나의 어깨를 토닥이자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리나야....”

 

 수연이 흐려진 얼굴로 다가서자 리나가 그녀를 꼬옥 안았다.

 

 “수연, 내 평생 한국 여행을 잊지 못할 거야. 널 다시 만나서 기뻤어. 여행 내내 행복했어. 우리, 다시 만날 수 있는 거지? 응? 떠나기 싫어.”

 

 수연은 가만히 친구의 등을 토닥였다.

 

 “그럼. 우리 또 만날 수 있을 거야. 두 번째 만났으니...세 번째도 소망하면 이뤄지지 않을까? 그래, 그렇게 믿자. 리나야, 네 덕분에 행복했어. 나 역시 평생 잊지 못할 거야.”

 

 수연은 리나의 마음을 다독이며 제 슬픔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두 사람이 작별인사를 나누자 이번엔 한 걸음 떨어져있던 크리스가 수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곧 남자의 너른 품이 그녀를 꼬옥 안았다.

 수연이 흠칫 놀라는 사이, 부드러운 음성이 그녀의 귓가로 스며들었다.

 

 “이번 여행....한국의 멋진 모습도 좋았지만....음....내겐 당신을 만날 수 있어서....그리고 마음을 고백할 수 있어서 더욱 기뻤어요. 나의 제안이 당신에게 부담이 되지 않길 바랄게요. 어떠한 답이라도 들을 테니....당신 마음이 가는 대로 해요. 수연, 고마웠어요. 잘 있어요.”

 

 떨어지지 못하던 발걸음들이 조용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대한 같이 있고 싶어 머뭇거렸지만 더 이상은 무리였다.

 조금씩 멀어지던 이들이 뒤돌아보았고 또다시 걸어가 뒤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펜스에 가로막힌 수연이 제 손을 들어 화답했다.

 하지만 안타까움으로 물든 손짓은 친구들이 유리문 뒤로 사라진 후, 허공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수연은 갑자기 뚝 끊겨버린 현실의 냉정함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것은 이별만큼이나 견디기 힘들 일이 분명했다.

 

 

 -딸랑-

 

 수연이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동네 초입에 새로 생긴 곳은 내부가 그리 넓지 않아 한눈에 훤히 보일 정도였다.

 주인장의 인사에 함께 인사한 수연은 곧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규림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느닷없는 약속에 이유가 궁금했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시간 맞춰 나온 길이었다.

 수연이 두꺼운 책을 펼쳤다.

 하지만 몇 줄을 지나지 않아 곧 머릿속으로 크리스가 피어났다.

 그의 다정한 눈빛과 미소가 스쳐간 자리로 곧 따스한 품과 부드러운 음성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수연이 내심 놀라고 말았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이제 얼마 안 남았는데 어쩌려고 그러니....휴우....’

 

 한숨을 내뱉은 이가 다시 집중하려 애썼다.

 

 -딸랑-

 

 “어? 일찍 왔네? 내가 늦었나? 히잇. 미안. 차가 왜 그리 막히나 몰라.”

 

 규림은 재빨리 의자에 앉더니 배시시 웃었다.

 수연이 피식 웃으며 책을 덮었다.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궁금했어. 무슨 일 있니?”

 “그럼. 일이 있지. 자, 받아라.”

 

 규림이 제 가방 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게 뭐야?”

 “뭐긴. 이 언니가 아무리 바빠도 하나뿐인 절친 시험을 어찌 잊을 수 있겠냐?”

 

 수연이 피식 웃었다.

 

 “어우 야. 무슨 대입도 아니고....”

 “뭣이여? 임용고시가 대입보다 훨씬 어렵다며 엄살 부린 게 누군데 이러셔? 넣어둬. 엿 대신 찹쌀떡 샀다. 이빨 다쳐서 시험 망치면 곤란하잖아.”

 “풉...그래, 고마워. 너한테 늘 받기만 해서 어쩌니?”

 “흠흠, 알면 됐다. 뭐, 언젠간 거하게 갚을 날이 오겠지.”

 

 두 여자가 까르륵 웃었다.

 

 “공부는 잘 되 가냐?”

 “아니. 집중이 잘 안되네.”

 

 수연이 한숨을 내쉬자 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난번 여행 때문에 그렇겠네. 하긴, 세상에 쉬운 공부가 어디 있겠냐? 시험은 또 어떻고....”

 “오, 위로해주는 거야? 고맙다. 넌, 어때? 주형 씨랑은 잘 만나고 있어?”

 

 규림이 곧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우리? 뭐, 그렇지. 히잇. 가끔 토닥이긴 하지만 애정 전선은 이상무다.”

 “잘됐다. 어쩐지 요즘 네 얼굴이 활짝 핀 것 같더라.”

 “그, 그랬냐?”

 

 규림이 쑥스럽게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저기....있잖아. 혹시 그 이후로 크리스랑 연락한 적 있어?”

 “응?”

 

 뜻밖의 질문이 수연을 당황 속으로 빠뜨렸다.

 

 “시험 앞둔 친구를 혼란스럽게 할 생각은 없다만....너랑 크리스, 뭔가 있지?”

 “뭐, 뭐가.....있다니....?”

 “지수연! 너랑 나랑 몇 년이냐? 내 눈은 못 속인다. 그날...너희 집에서 식사하던 날 말이야. 널 바라보던 크리스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거든. 너도 평소랑 조금 달랐고....내 촉이 맞지? 어서 불어라.”

 

 잠시 머뭇거리던 수연이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눈치....챘구나? 그동안 혼자서 고민하고 있었거든. 사실은....있잖아....크, 크리스가 고....고백했어.”

 

 규림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고백이라면....사, 사귀자고 했단 말이야?”

 

 수연이 제 친구의 안색을 살피며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헉! 진짜? 진짜 그랬다고? 어머, 웬일이야!”

 

 규림은 제 호들갑이 카페 안에 쩌렁쩌렁 울리는 것으로도 모자라 주인장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야, 이거 완전 사건인데? 세상에.....왕자랑 사귀는 게 실제로도 가능한 일이구나.”

 “어우 야. 목소리 좀....”

 “어? 어, 그래.”

 

 규림은 겨우 목소리를 낮추긴 했지만 입을 다물지는 못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한 거야? 넌, 뭐라고 했는데?”

 “그, 그게....아직 답을 못 해줬어.”

 “왓? 어우 야. 말이 되냐?”

 “말이 안 되는 일이잖아. 나 같은 사람이 감히....사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도 잘 모르겠어. 너무 혼란스러워.”

 

 수연이 기운 빠진 얼굴로 대꾸하자 규림이 제 가슴을 툭툭 쳤다.

 

 “으이그, 답답해. 이 숙맥을 어쩔? 솔직히 말해봐. 너 크리스한테 호감 있지?”

 “그, 그건....”

 “그가 왕자이기 때문이야?”

 “아니. 그건 아니야.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

 

 수연이 당황한 얼굴로 대꾸하자 규림이 입을 열었다.

 

 “그럼 됐네. 그냥 사겨봐.”

 “뭐라고?”

 “야, 사귀면 꼭 결혼해야 하냐?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봐야 좋은 남편감을 고를 수 있지. 너 아직 연애도 못 해봤잖아. 그리고 크리스가 프러포즈를 한 것도 아니고 한 번 사귀자는데 뭘 그렇게 재냐? 뭐....특별한 케이스긴 하지만 솔직히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 아니냐?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으면 그냥 넙죽 받아봐. 넌 너무 생각이 많아서 문제라니까?”

 “그래도 어떻게......”

 

 수연의 음성은 흔들렸지만 규림은 두 눈에 힘을 주며 친구를 응시했다.

 

 “다음 일은 나중에 생각해. 기다리는 사람, 생각해봤어? 나 같음 숨넘어가겠다.”

 

 규림과 헤어져 집으로 온 수연이 생각에 잠겼다.

 친구의 답은 명쾌해 그간의 고민을 한 번에 정리해주었다.

 당연히 혼자서 끙끙 앓던 이의 속은 시원하게 됐지만 수연은 더 이상 나아가기 못했다.

 2주 앞으로 다가온 임용고시는 그녀 인생 최고의 목표이자 우선순위이기 때문이었다.

 

 

 “로벤 공께서 항상 왕실에 마음을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약소하지만 맛있게 드시죠.”

 

 왕궁의 연회를 담당하는 홀에 10인용 식탁이 차려졌다.

 공식 일정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장소도 차림도 극히 이례적이었다.

 로벤은 넉살 좋은 웃음으로 입을 열었다.

 

 “여왕 폐하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황공합니다. 왕실의 식사 초대를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여왕을 가운데로 식탁의 이쪽 편엔 윌리엄 공과 크리스, 리나가 그리고 저쪽 편엔 로벤과 이레네 그리고 공작부인이 자리했다.

 다 같이 건배를 나눈 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시작되었다.

 여왕은 대화를 주도했고 로벤은 여유롭게 응수하거나 스스럼없이 새로운 화제를 내놓기도 했다.

 윌리엄은 그의 농담에 웃었고 크리스 역시 옅은 미소를 내보였다.

 

 이레네는 차분히 음식을 썰어 입에 넣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계산된 행동이자 습관일 뿐이었다.

 그녀의 오감은 맞은편에 앉은 크리스에게 백 프로 꽂혀있었다.

 이레네의 옆에 앉은 공작부인은 말을 아끼며 식사에 동참했지만 그녀 역시 장차 사위가 될 크리스를 틈틈이 살펴보느라 분주했다.

 

 모두가 나름의 목적을 감춘 채 웃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유독 표정 없는 이가 하나 있었다.

 리나는 홀에 들어올 때부터 이미 웃음을 잃은 얼굴이었다.

 공작 부부의 인사에 마지못해 예를 갖추었던 그녀는 친구인 이레네가 아는 체하자 싸늘한 얼굴로 겨우 인사말을 건넸었다.

 여왕은 리나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말로 양해를 구했지만 식사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딸을 내심 불안하게 여겼다.

 

 “그래, 왕세자께선 이번 여행이 즐거우셨습니까? 음, 어디라고 했던가....?”

 

 로벤이 크리스를 향해 묻자 그는 물 한 모금을 삼킨 후 입을 열었다.

 

 “한국입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 방문국이었는데 굉장히 유익했습니다.”

 “오, 그래요? 허헛. 하필이면 왜 그 멀고 낯선 나라를 택하셨는지 궁금했습니다만, 유익하셨다니 다행이군요.”

 “익숙한 것에만 머문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넓어진 것에 만족합니다.”

 

 예의를 잃지 않았지만 꽤나 담담한 한 마디였다.

 와인을 삼키던 로벤이 호탕하게 웃었다.

 

 “역시, 차기 왕위 계승자다우십니다. 안 그래도 완벽한데 넓어진 안목까지 갖추신다면 국익에도 큰 도움이 되겠군요. 허헛.”

 “과찬이십니다.”

 

 크리스가 겸손히 대꾸하자 여왕이 흐뭇한 얼굴로 웃었다.

 그녀에게 아들은 꽤나 든든한 존재였다.

 여왕으로서의 수십 년은 왕실 존폐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온 시간이었다.

 국민과 소통하는 모습은 큰 감동을 일으켰고 이제 왕실은 굳건해져 있었다.

 크리스는 왕위 계승 1순위자로서 걸맞은 교육을 받아 왔지만 그에 못지않은 인품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꽤나 사랑받고 있었다.

 여왕은 굳건히 다져진 왕권과 왕실을 그에게 넘겨줄 수 있어서 기뻤다.

 그것은 어쩌면 아들이 꽃길만을 걷길 바라는 어미의 마음인지도 몰랐다.

 

 로벤의 농담에 또 다시 미소 짓던 여왕이 이번엔 이레네를 살펴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사한 차림인 이네레는 한눈에 보아도 귀티가 흘러넘쳤다.

 빼어난 미모가 전부는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남다르다고 느끼긴 했지만 지금의 모습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표정과 자태 그리고 매너.......

 그 모든 것은 그녀가 차기 왕세자비라는 걸 이미 정해놓은 것 같았다.

 

 ‘완벽해. 더없이 아름다운 커플이 되겠군.’

 

 여왕이 흐뭇한 얼굴로 미래를 상상하는 사이, 난데없는 음성이 날아와 그녀의 단꿈을 박살내고 말았다.

 

 “죄송하지만, 먼저 일어날게요.”

 

 리나가 벌써 몸을 일으킨 채 서 있었다.

 여왕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윌리엄과 크리스도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아무리 제 서열이 손님들보다 높다고 해도 이런 행동은 굉장히 무례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로벤이었다.

 그는 최고의 귀족인 동시에 의회의 수장이었고 매년 왕실을 위해 거액의 후원금을 흔쾌히 내놓는 사람이었다.

 또한 왕실의 존폐 여부에 당당히 맞섰으며 여왕의 통치가 안정기를 맞이하는데 일조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리나, 무슨....일이니?”

 

 여왕으로부터 최대한 가다듬은 음성이 스르륵 흘러나왔다.

 

 “쉬고 싶어서요.”

 

 여왕은 더없이 당당한 딸의 한 마디에 기가 찼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건 알겠다만.....음....귀한 손님들께 예의를 갖추려무나.”

 

 리나가 맞은편에서 자신을 응시하는 시선들을 당당히 마주했다.

 

 “죄송하지만, 먼저 가도 되겠죠?”

 “리나.....”

 

 여왕의 점잖은 음성이 허공을 가르는 사이, 로벤이 껄껄 웃기 시작했다.

 

 “공주께서 여독이 풀리지 않으신 모양이군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어서 편히 쉬시지요.”

 “고맙습니다.”

 

 리나가 가벼운 인사를 남기긴 후 사라지자 이레네는 동그래진 눈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싸늘해진 분위기를 만회하고자 여왕이 서둘러 나섰다.

 

 “귀한 손님들께 무례를 끼쳤군요.”

 “아이고, 아닙니다. 여왕 폐하. 오히려 빨리 만나 뵙길 청한 저의 불찰이죠. 허헛. 공주께서 그 먼 길을 다녀오셨으니 얼마나 피곤하시겠습니까?”

 “그리 여겨주시니 고맙습니다.”

 “폐하, 그나저나 이 와인은 어디 산입니까? 캬, 맛이 일품이군요. 안 그렇습니까? 윌리엄 공?”

 

 로벤이 여왕의 남편을 응시하자 그가 껄껄 웃더니 잔을 들어올렸다.

 두 남자의 건배로 인해 싸늘했던 분위기가 급속히 녹아져갔다.

 여왕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잔을 들었지만 속상함을 완전히 지워내지 못했다.

 

 “리나!”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 요안나 여왕이 딸의 방문을 훌쩍 열었다.

 

 “꺅! 노크는요?”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아까의 그 행동, 대체 뭐라고 설명할 셈이니? 어디 들어보자꾸나.”

 

 격앙된 음성이 터져 나왔지만 리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자리가 불편했어요.”

 “불편하다고 했니? 그래, 편치 않다는 것쯤은 진작 눈치 챘다만, 며칠 전부터 누차 얘기하지 않았니. 엄마의 간청을 무시한 거니?”

 “아니오. 감히 여왕 폐하를 무시하다니....가능한 일인가요?”

 “리나!!!”

 여왕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자 리나가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엄마께는 불만 없어요.”

 “그럼, 왜 그러는 거니?”

 “잘 아시잖아요. 거들먹거리는 로벤이 싫고 요조숙녀인 척 연기하는 이레네도 싫어요.”

 “뭐, 뭐라고?”

 

 여왕이 당황스런 눈빛으로 딸을 응시하자 그녀가 또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잘 알아요. 늘 말씀하셨죠. 그 가문이 엄마를 도왔다는 거....로벤은 왕족인 우리가 함부로 대할 존재가 아니라고요. 하지만 자신이 돕고 싶어서 도왔으면 거기서 끝내야죠. 우리가 보답을 안 한 것도 아니고....잘난 척하며 앉아 있는 꼴이라니....”

 “리나! 너무도 무례하구나! 로벤 공은 귀족이기 이전에 네 친구의 아버지이기도 하시다.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던?”

 

 여왕이 언성을 높였지만 리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제 엄마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친구요? 누가요? 전 이레네를 친구라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 아인 날 친구로 대해주지 않았거든요. 그동안 어땠는지 아세요? 제 인사를 씹던 아이는 오빠가 등장할 때마다 나를 굉장히 반겼죠. 이게 이레네의 모습이에요.”

 “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친구를 모함하지 마라. 크리스를 좋아해서 그랬던 거겠지.”

 “엄마, 그렇다면 이레네가 더 싫어요. 어떻게 사람이 돌변할 수가 있죠? 크리스가 좋다면 나를 원수 대하듯 하는 게 정상인가요? 그건 인간답지 않잖아요. 나랑 친하지 않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적어도 한결같고 진실해야죠. 난 친구가 다 이레네처럼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걔가 이상한 애였어요. 이제 다시는 이네레를 제 친구라고 말씀하지 마세요. 내 인생에 진정한 친구는 수연, 하나뿐이니까요.”

 “리나! 너!”

 

 여왕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파르르 떠는 사이, 곧 두 남자가 들이닥쳤다.

 로벤 가족을 배웅한 후, 함께 정원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윌리엄과 크리스였다.

 윌리엄이 제 부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여보, 여기에 있었구려. 피곤했을 텐데 이만 쉬러 가십시다. 리나도 컨디션이 별로라고 하질 않소.”

 “얘길 마저 끝내야겠어요.”

 “어허, 대화라는 것도 모두가 좋은 컨디션에서 해야 하는 법. 내 보기에 오늘은 당신이나 리나나 많이 피곤해 보이는군. 자자, 우리에겐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소. 오늘은 족하니 그만 가십시다.”

 

 윌리엄이 제 부인을 끌어당기며 움직이자 그녀는 곧 뒤로 돌아선 모습이 되고 말았다.

 여왕은 무언가를 더 얘기하려다 말고 남편의 손에 이끌려 본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던 크리스의 시선이 제 누이를 향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리나는 꽤 울적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이 없었다.

 크리스가 누이의 곁에 앉았다.

 

 “리나, 괜찮아?”

 “잘난 척하는 로벤의 모습, 오빠도 봤지? 우리가 왜 비굴해야 해? 우리도 할 만큼 하고 있잖아. 으스대는 꼴, 더 이상 보기 싫어. 그리고 이레네는 내 친구도 아니야. 크리스, 절대로 속지 마! 가식일 뿐이라고. 나에게 진정한 친구는 수연 밖에 없어!”

 

 감정이 격해진 듯 리나는 어깨를 들썩이더니 곧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쳐내는 누이의 모습이 크리스의 마음을 안타까움으로 물들였다.

 그가 리나의 등을 토닥이자 그녀는 제 오빠의 어깨에 기댔다.

 

 “수연이 너무 보고 싶어. 크리스, 나......수연이 너무 그리워.”

 

 슬픔 속에 빠진 누이를 달래던 손길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리나의 고백은 곧 그의 고백이기도 했다.

 확답이 들려오지 않아 애타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 모든 걸 떠나 수연이 너무 보고 싶었다.

 수줍어서 붉어지던 얼굴, 포근한 미소, 예의를 잃지 않은 언행......

 새삼스레 떠오르는 모습들은 그의 가슴 속에서 그리움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수연.....보고....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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