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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현대물
괴물
작가 : 사열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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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화상 자국, 가슴에 깊은 상처를 지닌 장현성.
험악한 외모 때문에 늘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아 온 그가 이종격투기의 신성으로 떠오른다.
링네임 "괴물"
늘 고개를 숙이고 사람들을 피하기만 했던 ""괴물""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프로 파이터 "괴물"로 비상한다.

 
제 13 화
작성일 : 16-07-12 14:42     조회 : 601     추천 : 0     분량 : 1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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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현성이 오픈 준비를 마무리하는 동안 담배 사러 나갔던 범수가 가게 앞에서 승지를 만났는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야, 내 맛있는 거 좀 사줘요! 배고프다!”

 막 일어나 출근을 한 건지 배고프다 앙탈을 부리는 승지와 ‘니가 내보다 잘 버는데 내가 사야 되나?’ 하고 웃음 짓는 범수의 목소리.

 그 소리에 웬만한 준비를 다 끝내놓고 여유 있던 현성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승지가 그 자리에 같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마음이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혹시라도 동갑내기 친구인 아가씨가 그를 더러운 짐승 보듯이 바라보게 된다면… 못 참을 일은 아니지만 맘이 편안하지만은 않을 것이었다.

 “후…….”

 왠지 가게의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를 다시 볼 때마다 이런 기분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에 현성이 쓴웃음을 지었다.

 십만 원짜리 수표가 매 값이라면 꽤 싸게 먹힌 편인 것 같다고 말이다.

 “어? 현성이 왔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승지 역시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아… 왔나.”

 오히려 전보다 더 친근해하는 그 모습에 현성이 당황해서 움츠러들자 승지가 범수를 버리고 히히, 웃으며 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혜주와 달리 앳되고 풋풋한 느낌이 남아 있는 승지가 ‘오랜만이데이!’ 하고 장난을 치며 애교를 부리자 현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멈춰 서서 ‘어, 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괜찮나? 그날 내 니 미친 줄 알았데이! 무슨 술을 그래 많이 마셨는데?”

 촉새처럼 조잘거리는 승지의 빠른 말에 현성이 ‘그냥…’ 하고 어색하게 고개를 흔들자 범수가 ‘니 싫다 안 카나, 승지야!’ 하고 웃으며 장난을 쳤다.

 “…진짜가? 현성이 니 진짜 내 싫나?”

 승지가 입술을 내밀곤 삐진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아닌데…’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두 사람의 장난에 허둥지둥하는 그의 얼굴을 보고 승지가 다시 웃음을 터뜨리며 ‘그럼 내 맛있는 거 사죠!’ 하고 애교를 부렸다.

 “닌 진짜 너무한다, 승지야.”

 “왜요~! 내 돈 모아서 가방 사야 되는데!”

 동갑내기 친구는 아직까지 철이 없는 모양이다.

 무척이나 잘 웃고, 싹싹하고, 예쁘고, 덩달아 애교가 많아 귀엽기까지 한…….

 하지만 무엇인가 자신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다는 생각에 현성이 잠자코 있기만 하자 승지가 범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힐끔힐끔 그를 바라보며 ‘치!’ 하고 입술을 삐죽였다.

 “현성이 니! 맨날 혜주 언니만 좋아하고!”

 성격도 좋고 말도 많고 부산한 구석이 있어서 그런지 승지가 있는 곳은 언제나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밝은 모습 너머에는 왠지 모르게 외로움을 잘 타고, 사소한 것에도 슬퍼하는 모습이 있을 것 같단 생각이 현성의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걸 자신이 어떻게 해줄 수는 없었다.

 그의 역할도 아니고, 그로선 자기 앞가림하기도 급급할 뿐이니까.

 “그런 거 아이다.”

 고개를 흔드는 그의 모습에 승지가 ‘흐음~’ 하고 가늘게 눈을 뜨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범수는 듣지 말라는 듯 ‘오빠! 여기 오지 마라! 우리끼리만 비밀 얘기할 거니까!’ 하고 유치하게 엄포를 놓았다.

 이내 그녀가 팔짱을 끼고 그를 화장실 쪽으로 이끌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음을 던졌다.

 “니 언니랑 했나……?”

 그녀의 물음에 순간 현성이 멈칫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다시 가슴이 두근거려 왔다. 혹시나 이것으로 인해 혜주가 덩달아 고생하게 될까 봐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런 걱정 가득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던 승지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하는 여자라곤 믿을 수 없을 만큼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히히… 안 그래도 그랄 줄 알았다! 딱 보면 척이니까!”

 “아… 어.”

 “그리고 혜주 언니가 그럴 리 없지. 그 언니 눈이 얼마나 높은데!”

 “…눈 안 높아도 다 똑같지. 내 같은 거랑은 아무도 안 칸다.”

 정말 별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흔드는 그의 모습에 승지가 ‘나는 아닌데~’ 하고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여자의 몸을 이용할 줄 아는 이 천진하고도 영악한 아가씨가 가슴을 밀착한 채 그를 압박하자 현성이 움찔하며 ‘와 카노?’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는 얼굴 같은 거 하나도 안 보고! 성격이랑 덩치만 본다!”

 그 말에 현성이 ‘어……?’ 하고 그녀를 바라보자 승지가 ‘나는 그렇다고!’ 하고 우쭐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때 다 니보고 멋있다고 난리 났었데이! 완전 술 꽐라된 게 갑자기 혜주 언니 계속 보더만 막 지 뺨도 때리고…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고! 혜주 언니 좋아하는 갑다 그러고!”

 눈치 빠른 아가씨들이 그걸 못 알아볼 리 없었다. 덩달아 승지 역시…….

 “내한테 그래 해줬으면 난 진짜 떼주는데.”

 히히, 웃으며 승지가 재고 따짐 없이 적극적인 눈으로 현성을 바라보자 그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아니다’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다 힐끔 바라본 승지의 목에 난 상처 자국들이 갑자기 신경이 쓰여 그가 ‘니……?’ 하고 물음을 던지자 승지가 ‘원래 다 그렇다!’ 하고 싹싹한 얼굴로 미소 지었다.

 그만큼이나 그녀 역시 어딘가 모르게 체념한 구석이 보였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현성이 다시 한 번 예쁜 게 좋은 것만은 아니란 혜주의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에게 이렇게 싹싹하게 굴고 적극적으로 마음을 내비치는 이유를 왠지 모르게 알 것 같다 생각한 현성이 아무 말 없이 승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녀의 머리를 다 덮어버린 큰 손에 승지가 히히히, 하고 웃으며 ‘다음엔 나도 해죠, 알았지?’ 하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할 수 있으면.”

 그 모습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현성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승지도, 혜주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들이라고 사정이 없을까.

 문득 재운이나 창호 밑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승지나 범수, 그리고 혜주 같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재운과 창호의 제의에 끌림을 느끼며 그 일을 떠올리던 그가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주제넘게 무슨 바보 같은 생각을 하는 거고?’

 스스로를 비웃으며 말이다.

 “진짜제? 약속했데이! 약속!”

 그런 그에게 승지가 아이처럼 좋아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그마한 새끼손가락에 현성이 어색한 얼굴로 자신의 굵직한 새끼손가락을 걸자 ‘와! 굵어서 안 걸린다!’ 하고 승지가 다시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도장 꽝! 이제 니 빼도 박도 못하는 거다! 알겠제?”

 혀를 살짝 내밀고 좋아하는 그 얼굴을 보며 현성이 ‘내가 할 수 있는 거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담배 있으면 담배 좀 도.”

 “담배? 응! 우리 기념적인 맞담배!”

 뭐가 그렇게 좋은지 승지가 계속해서 웃음을 띤 채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까만색 고양이가 그려진 레종을 꺼내 들자 현성이 여자들은 담배도 디자인 보고 피는가 싶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는데, 바보야~! 그카면 고양이가 니 혼내라 그란데이! 야옹!”

 애교 많은 승지의 모습에 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담배를 받았다. 그때…

 “승지, 오늘 일찍 왔네.”

 언제 출근했는지 혜주가 ‘우리 지각 대장이 웬일이고?’ 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이에 승지가 ‘언니!’ 하고 좋아하며 다시 그녀에게로 종종걸음을 옮겼다.

 “푹 잘 쉬었어요?! 어제 왜 안 왔어요? 언니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언니, 나이 들어서 힘들다.”

 “언니~! 나이 하나도 안 들었는데! 내 친구 같은데!”

 “그래서 요즘 니 좀 맞먹는 거 같던데?”

 “아, 아니에요! 언니이~!”

 히히, 웃으며 혜주에게 애교를 부리는 승지와 시크하게 그녀를 받아주는 혜주.

 힐끔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도도한 눈빛이 어쩐지 퉁명스러운 것 같았다.

 멍하니 승지가 내민 담배를 들고 있던 현성이 힐끔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왠지 모르게 반갑다가도 퉁명스러운 그녀를 보니 당황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왔습니까……?”

 그의 인사에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뭔가 토라진 듯 삐딱한 얼굴로 말이다.

 “그래.”

 이내 들려온 그녀의 대답에 왠지 모르게 반갑고, 기쁜 동시에… 가슴이 울렁울렁했다.

 그것을 느끼며 현성은 몸을 돌리고 벽에 기대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늘은 첫 담배를 땡기기도 전에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힐끔 그를 바라보는 혜주의 눈빛에 왠지 모르게 실수라도 했나 싶었다.

 딱히 잘못한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혹시라도 혜주가 승지를 질투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혜주가 이런 곳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는 공주처럼 아름다웠고, 현성은 그저 덩치만 큰 못난이였으니까.

 그런 느낌을 가지는 것조차 사치란 생각이 들어 애써 생각들을 떨쳐낸 현성이었다.

 

 ***

 

 밤은 안락과 환락이 오가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긴 밤의 끝을 알리는 어슴프레한 새벽은 누구에게나 피로할 시간.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을 느끼겠지만 아마 가장 피로한 사람들은 그 시간에 막 일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밤의 기운은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사람의 몸을 축 늘어지게 만드는 요상한 힘이 있으니까.

 현성 역시 마찬가지인지 가게 뒷정리를 마치고 나서며 조금 나른한 기운에 목을 양쪽으로 풀었다. 그리고 적막한 거리를 바라보았다.

 “…아직 어둡네.”

 신년이라 반짝 잘되던 장사도 다시 불경기와 더불어 일찍 끝이 나 주변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겨울밤의 쌀쌀함은 어둠이 가져오는 모양인지 유난히도 새까만 밤과 선명히 대비를 이루는 네온사인들 불이 꺼진 지 오래였다.

 마치 이 순간만큼은 모든 도시가 잠들어 버린 듯, 어두운 적막감 속에서 정말 몇 안 되는 간판들만 겨우 빛을 발하고 있을 뿐이었다.

 물론 그게 따스해 보인다거나 끌린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저 이 시간까지 버티고 있어야만 버틸 수 있나 하는 씁쓸함 하나뿐.

 그 불빛들 가운데 유난히도 밝고 선명한 편의점의 빛을 바라보던 그가 휴, 하고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새하얀 입김이 뻗어 나와 담배 연기마냥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다.

 자욱한 안개나 구름처럼 잠깐 모습을 드러낸 입김이 사라지고 꾸벅꾸벅 조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인지 모를 ‘그 애’의 모습이 얼핏 비쳤다.

 그 애의 나이가 몇인지는 몰라도 당시 교복을 입고 있던 것으로 보아선 현성과 비슷한 또래일 것이다.

 이 시간까지 일을 해야 할 만큼 그녀 역시 사정이 좋지는 않은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들자 현성이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얼굴이, 목소리가 자꾸만 맴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는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고, 후회의 대상이기도 했으니까.

 못 본 척하고 넘어갔더라면 하는… 비겁하지만 현실적인 마음.

 그리고 뭐라도 한 마디만 해줬더라면 하는 서운한 배신감.

 지금은 그 모든 것에서 초탈할 수는 없지만 크게 연연치는 않고 있었다. 연연해봐야 남는 게 없을 테니까.

 이내 현성이 ‘그 일은 연연하지도 말고, 매달리지도 말자’ 하고 고개를 흔들며 애써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이어 조금 추운 듯 팔짱을 꼈다.

 물론 지척에 숙소가 있어 남들보다는 훨씬 빨리 들어가기야 하지만 그래도 지켜보는 사람은 마음이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닌 옷 그거밖에 없나?”

 범수와 함께 가게를 나서며 혜주가 그에게 물음을 던졌다.

 아가씨들이 일찍 퇴근하고 웨이터들이 뒷정리를 하는 시간까지 그녀가 남아 있을 일이 뭔지는 알 수 없지만 왠지 모르게 범수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아… 예.”

 “팁 받아서 뭐 하는데? 옷 하나 사 입어라!”

 괜스레 까칠하게 느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현성이 ‘괜찮심더’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혜주가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문을 잠그고 나오는 범수가 ‘보는 사람이 추우니까 그렇지!’ 하고 목소리를 더했다.

 “진짜 하나 근사한 거 사 입어라, 현성아. 아무리 가까워도 그러다가 감기 걸리고 니 몸 축나면 니만 고생이다.”

 까칠한 혜주와는 정반대로 자상한 범수의 목소리에, 왠지 두 사람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직 우에 될지 몰라가…….”

 항상 그렇듯 그에게는 뚜렷한 미래란 것이 없었다.

 지금만 하더라도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상황이라 당장 돈을 그런 데 쓸 수는 없었다.

 끄덕이는 고개와 달리 말은 절대로 사 입지 않을 것처럼 하는 모습에 범수와 혜주가 조금 안타까운 듯 힐끔 그를 바라보자 현성이 ‘그럼 저는 먼저 가볼게요’ 하고 고개를 숙였다.

 “안 피곤하면 가가 술이나 한잔할래?”

 그런 그를 조금 뚱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혜주가 인사 대신 술이나 한잔하지 않겠냐고 물음을 던지자 현성이 ‘예?’ 하고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범수 역시 혜주가 이런 것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신기한 눈빛으로 그와 그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원래 오늘 범수랑 한잔할라 그랬는데, 니 뭐… 또 궁상떨까 봐!”

 ‘돈을 벌면 써야지’ 하고 투덜거리는 그녀의 말에 현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괜찮심다…’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야, 그냥 누나가 먹자 그러면 같이 가 마시는 기다! 니, 혜주 누나랑 같이 술 마시는 거 보통 일 아니데! 다른 애들한테 자랑해도 될 정돈데!”

 범수가 ‘튕기지 말고 같이 가자!’ 하고 이야기하자 혜주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부심 넘치는 그 모습에 현성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오늘 누나 왜 이렇게 오래 있었어요?”

 “왜, 내는 오래 있으면 안 되나?”

 오늘따라 까칠한 혜주의 목소리에 현성이 ‘아니요’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곧 혜주 대신 범수가 ‘오늘 내랑 술 한잔하기로 약속했었거든!’ 하고 씩 웃으며 대답했다.

 “기다린다 그래도 얼마 안 기다렸잖아. 금방 끝나가……! 맞죠, 누님?”

 “흥! 여자 기다리게 하는 남자, 최악이다!”

 “에이, 누나! 그건 아니죠! 여자아들 맨날 약속 시간보다 늦게 나오던데.”

 “난 안 그렇거든?”

 다시 도도한 얼굴로 혜주가 흥, 하고 코웃음 치자 현성과 범수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두꺼운 오리털 파카를 입은 범수나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자신과 달리 얇디 얇은 외투를 하나 걸친 현성이 신경 쓰였던 혜주가 ‘빨리 가자!’ 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편의점에 좀 들어갔다 가자! 내 담배!”

 그녀의 목소리에 범수가 ‘예~!’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랐다.

 하지만 편의점은 현성에겐 들어가기가 무척이나 껄끄러운 장소였다.

 “저는 밖에서 기다릴게예.”

 그 말에 혜주가 살짝 인상을 구기며 이야기했다.

 “니 뭐 추운 거 좋아하나? 잠깐 들어오기 힘드나?”

 뭔가 알 수 없는 오해를 했는지 혜주가 예전처럼 그에게 쏘아붙이자 현성이 난감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얼핏 보이는 실루엣이 분명히 ‘그 애’가 틀림없었다.

 “그냥…….”

 “그러고 보니까 니 담배 심부름도 딴 아들한테 부탁했더만? 야, 귀찮아도 그카면 안 된다!”

 담배 심부름은 귀찮아도 웨이터에겐 남겨 먹기 좋은 것 중 하나였다.

 룸에서 팁을 못 올리는 대신, 잘 가던 담배 심부름이었는데 그마저도 다른 녀석들에게 맡긴 것이 안 그래도 마음에 걸렸던 범수가 이상하다는 듯 물음을 던지자 혜주가 ‘흐음…’ 하고 가늘게 눈을 떴다.

 “니 혹시, 저 안에 있는 알바생 여자라가 그카나? 혹시 니 보고 난리 부릴까 봐?”

 “…아니요.”

 뭐라 말하기 참 뭣해서 현성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그럼 밖에 있던가!”

 답답한 듯 혜주가 목소리를 높이곤 도도하게 편의점 안으로 걸음을 옮기자 꾸벅꾸벅 졸고 있던 ‘그 애’가 화들짝 놀라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현성이 한숨과 함께 돌아서선 ‘지는 담배 한 대 좀 태우고 있으께요…’ 하고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래, 금방 나오께.”

 뭔가 이상하다 느낌이 들었지만 많이 꺼리는 모습에 범수는 사연이 있으려니 하고 편의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 안녕하세요…….”

 밤 시간의 근무가 익숙하지 않은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귀여운 인상의 여자 점원이 그를 반겼다.

 범수는 그녀가 꽤 귀엽게 생겼다 생각하며 ‘네, 안녕하세요’ 하고 친절하게 답했다.

 동글한 얼굴에 하얀 피부, 쌍꺼풀은 없지만 크고 서글서글한 눈매가 무척이나 순해 보이는 귀여운 얼굴이었다.

 현금 지급기 앞에서 현성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궁시렁거리는 혜주가 서구적인 얼굴이라면 그녀와는 상반되는 동양적인 아기자기한 얼굴.

 혹시 현성이 이 애를 좋아하나 고개를 갸웃하며 범수가 힐끔 그를 돌아보았다.

 뒤돌아선 채 홀로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무척이나 착잡해 보이는 것이… 그런 이유는 아닌 것 같았다.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가 호기심을 느끼곤 점원의 명찰을 살폈다.

 ‘최진희’라는 이름의 이 점원과 현성이 과거에 알았던 사이는 아닐까 생각한 그가 ‘저기요,’ 하고 말을 걸자 진희가 조금 놀란 듯 ‘네, 네?’ 하고 그를 바라보았다.

 범수가 여자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있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가 말을 걸자 무척이나 놀라서 경계하는 빛이 역력한 진희의 모습에 범수는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며 ‘아…’ 하고 말을 이었다.

 “혹시… 저기 밖에 있는 사람, 아는 사람이에요?”

 그 순간 혜주가 힐끔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성격상 속 간지러운 물음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데 그걸 저 오지랖 대왕이 속 시원하게 긁어준 것이다.

 그 모습에 혜주가 덩달아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진희를 바라보자 그녀는 안에 다른 여자 손님이 있어 안심한 얼굴로 힐끔 편의점 밖을 바라보았다.

 외로워 보이는 크고 너른 뒷모습을 하고 홀로 담배를 태우며 서 있는 남자. 쌀쌀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들어오지도 못한 채 밖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듯한 모습에 진희가 ‘아…’ 하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죄책감이 느껴지는 그 떨리는 목소리에 순간 뭔가가 머리를 스치자 혜주가 멈칫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왜 저 멍청이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저러고 있는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녀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현금 지급기에서 돈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아… 혹시 아는 사람인가 해서.”

 아니라곤 하지만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생각하며 범수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네…’ 하고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며 그를 힐끔힐끔 살피는 진희의 얼굴에는 단순한 난감함보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함이 보였다.

 “말보로 레드도 하나 주세요.”

 그 와중에 혜주가 찾은 돈을 내밀며 담배를 달라고 하자 진희가 ‘아, 네…’ 하고 떨리는 손으로 말보로를 찾아 혜주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거스름돈을 건네며 힐끔 그녀를 살폈다.

 “왜요? 뭐 할 말 있어요?”

 눈치를 살피는 듯 소심한 그녀의 모습에 혜주가 까칠한 얼굴로 한마디 던지자 진희가 깜짝 놀라 ‘아, 아니요!’ 하고 고개를 흔들었다.

 “할 말 있으면 제때 제대로 해요. 그런 것 때문에 누구는 인생 망칠 수도 있으니까.”

 뭔가 뼈 있는 그녀의 말에 순간 진희가 크게 움찔했다. 그러고는 죄인처럼 파리해진 얼굴로 ‘죄송합니다’ 하고 고개를 숙였다.

 거스름돈과 담배를 챙긴 혜주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 당당한 뒷모습이 조금 화난 듯 보여 범수는 그녀가 뭔가를 아는가 보다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지치고 피로한 새벽 시간에 무척이나 슬퍼 보이는 진희의 모습에 그가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저 누나가 원래 좀 까칠해서…’라며 뒷수습을 하고는 그녀를 따라 편의점을 나섰다.

 “볼일 다 봤어요?”

 벌써 담배 하나를 다 태우고 빨개진 귀로 그가 물음을 던지자 혜주가 ‘그래! 빙시야!’ 하고 또 괜히 툴툴거렸다.

 원래 까칠하긴 하다만 어제는 무척이나 친절하고 귀엽다가 오늘은… 정말로 토라진 것처럼 보이는 그 모습에 현성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자 혜주가 흥! 하고 아무 말 없이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아…….”

 갑자기 또 왜 이러나, 하고 현성이 주춤하며 그녀를 바라보자 혜주가 ‘가자!’ 하고 걸음을 옮겼다.

 차가운 몸에 따뜻한 사람의 몸이 닿자 어떤 옷을 입은 것보다 따뜻한 것 같았다.

 마치 함께 누워 있던 그날을 떠올리게 하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범수가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흐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이내 미소를 지으며 혜주에게 소리치듯 말했다.

 “누나, 나도 추운데!”

 “니 팔짱 껴! 오리털!”

 혜주가 흥! 하고 까칠한 목소리로 대답하자 범수가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두 사람을 따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진희가 하아,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날, 그녀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너무 두려워 도망쳤던 그녀가 그녀를 구해준 사람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그 모든 게 그녀의 탓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상처와 함께 죄책감이 밀려오자 버티다 못 해에 진희는 계산대 위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말았다.

 “…미안해요…….”

 그의 말대로 이제 와선 모든 것이 늦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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