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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게임판타지
훼인
작가 : 려영
작품등록일 : 2019.11.5

이 픽션에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인터넷 온라인 게임이라는 중심 테마를 기점으로 해서 그 게임속에서 살아가는 젊은 게이머들의 생생한 실상과 우정 사랑 배신들의 모습들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데킬라 같은 사랑 우정 그리고 배신...... 21세기 현재의 시간속을 힘겹게 부딪치는 청춘의 군상들이 소리없는 독백처럼 숨결을 가다듬습니다. 인터넷 온라인 게임이라는 또다른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처절한 자화상입니다

 
[훼인] 34회 - 이별공식
작성일 : 19-11-07 12:45     조회 : 311     추천 : 0     분량 : 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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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별공식 ]

 

 다음날 오후 수범은 약속장소인 교대 앞 네거리로 나갔다.

 원래는 밖에서 그냥 만나고 간단히 헤어질 작정이었는데

 마침 장대비가 거세게 내리는지라 네거리 귀퉁이의 빌딩 2층에

 자리잡은 커피숖으로 장소를 바꾸었던 것이다.

 

 커피숖 현관위에는 '알리앙스' 라는 상호가

 고급스런 금빛 장식으로 박혀있었고

 30평 남짓 되보이는 커피숖안은 도로쪽 전면이 투명한 유리로

 오픈되어 있어 그런지 밖에서 볼때보다 훨씬 넓어보였다.

 

 옷에 묻어있던 빗물을 털어내면서 대여섯팀의 손님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내를 휙 둘러보려니까

 

 좀 구석진 창쪽 소파에 파묻히듯 앉아있던 시나브로 - 유진이

 손을 흔들며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베이지색 스웨트에 코발트 톤 자켓을 차려입은 유진은 화장을

 거의 안해서 그런지 아니면 몸 어딘가가 불편한 것인지

 안색이 파리하게 창백한 것이

 그 의외의 모습을 쳐다보며 맞은편 자리에 앉으려던 수범의

 굳게 닫혀있던 마음도 조금은 풀어 내리는 듯했다.

 

  "밖에 비 많이 오지?"

 

 천천히 말문을 여는 유진의 목소리는 날씨만큼이나 저만치

 가라앉아 있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눈 언저리도 두툼하게

 부어있는 것이 많이 울고 온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여전히 애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수범의 굳은 얼굴은

 상기되어 있을 뿐이었다.

 

  "어디 아프냐?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

 

 유진은 대답대신 머리칼을 쓸어올리면서, 서빙하는 아가씨에게

 손짓을 했다.

 수범은 비엔나 커피를, 여자는 핫쵸코를 주문했다.

 짙은 판유리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마주앉은

 두 사람 사이로 잠시동안 어색한 침묵과 정적들이

 숨막히듯 흘러갔다.

 

 수범이 결국에 유진을 이렇게 만나기로 마음먹은데에는 어젯밤에 네번

 

 째로 또다시 걸려온 전화에서

 

 애타게 간청하듯이 매달리던 이 여자가 마지막으로 만나서 꼭 얘기하고

 

 싶다던...... 그 촌스러운 부탁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남녀관계에 있어서 20 대 미혼의 선남선녀의 열애속으로 만남과 이별이

 

 라는 상투적인 공식들이 얼마나 가볍게 교차하고 있는가

 

 언제나처럼 가슴쓰린 헤어짐뒤에는 또다른 사랑

 

 - 쉬운 사랑을 찾아나서는 진부한 이별공식들이

 

 한겨울의 잦은 눈발처럼 흩날리고 있는 것을......

 

 이미 21세기라는 이 숨막히는 시간대속을 숨가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땅위에서 어쩌면 멜러영화의 시놉소스보다도 더 헤프고 힘겹게 소용돌이

 

 치면서 무수한 연인들 사이로 스쳐지나가고 있는 의미없는 해프닝정도일

 

 뿐이었다.

 

 하물며 지금의 두사람처럼 그저 게임안에서 조우하여서 현실상으로는

 

 겨우 서너차례 만나본것이 전부인 관계에서는......

 

 그런데도 수범이 썩 내키지 않는 이 자리에 구태여 나온 것에는 나름

 

 대로 반드시 알아내고 싶은......

 

 그러니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컬한 궁금증이 한가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짙은 보라색 에리프런을 가지런히 두른 아르바이트생이 날라다온

 

 비엔나커피잔을 한참동안 내려다

 

 보고 있던 수범은 컵 윗면에 마치 눈송이처럼 하얗게 덮여있는

 

 아이스크림을 혀끝으로 핥아내리면서,

 

 베르테르의 그 이상스런 마지막 얘기를 떠올려보았다.

 

 

  - 근데 말이야 아틸라... 아직도 한가지 알수없는 수수께끼가

 

  남아있단 말이야 찜찜하게 -

 

  - 수수께끼라면...... -

 

  - 웅 우리들 작전정보는 시나브로 그년이 빼내서 팔아먹었다

 

  손치더라도 말이야.

 

  아틸라 네가 맡고 있는 본군라인 30명의 세세한 정보들을 어케

 

  적혈쪽에서 그토록 죄다 세세하게 다 알고 있는가하는게. 혈원

 

  레벨이랑 클래스 접속율까지 그것도 너무나 정확하게.....

 

  시나브로는 지난 가을에 우리가 사하라로 재출발할때 일부러 내가

 

  맡고 있는 2군쪽으로 라인이동시켰잖아. -

 

 그렇다면 혹시 본군안에 또다른 스파이가 있다는 말인가......

 

 끝없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베르테르의 단정적인 결론이 기분

 

 나쁘게 이어지고 있었다.

 

  - 음 그래서 본군라인 30명을 전부다 체크해봤는데 말이야. 그럴만한

 

  인물이 도무지 안보인단 말이야.

 

  그건 아틸라 너도 잘 알쟎아 걔들 모두 서버 초창기부터 같이 해왔던

 

  독종멤버들이고 그중에도 절반은 원주의 같은 겜방에서 먹고 자고하는

 

  명석이네 패거리쟎아. -

 

 

 혈원들의 세세한 개별정보는 직계소속혈원들만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지라 같은 '사하라' 이름의 혈맹마크에 속해 있다손치더라도 라인이 다른

 

 시나브로가 3개월이 넘게 지나면서 많이 바뀌어버린 혈원들의 세부상태를

 

 그렇게 일목요연하게 파악하는 것에는무언가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마치도 맞추다가 말아버린 퍼즐판위의 몇조각 퍼즐조각들이 수범의 머리

 

 후면부안에서 둥둥 떠다니며 답답한 의문과 상념만을 어지러이 늘어뜨리

 

 고 있을 뿐이었다.

 

  "아 이 찻집은 커피맛보다 찻잔이 더 이쁘네."

 

 파스텔톤의 다각형무늬가 심플하면서도 조금은 파격적으로 수놓인 크림색

 

 찻잔을 고요한 눈길로 내려다보던 유진은 그저 혼잣말처럼 뇌까리고 있었다.

 

 언뜻 메마른 웃음소리도 어색한 공간속을 타고서 느껴져왔다.

 

 그녀는 한참동안이나 찻잔에 고정시키고 있던 시선을 수범쪽으로 돌려서는

 

 눈동자를 크게 부풀리면서

 

 대화를 시작해나갔다.

 

  "이번에 많이......많이 놀랐지?"

 

 목소리 끝이 미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진홍색 립스틱만 연하게 바르고 나왔는지 화장기가 거의 없는 얼굴이었

 

 지만, 매끈하고 이국적인 특유의 마스크에서는 여전히 싱싱하고 매력적인

 

 아름다움이 물씬 풍겨 흐르고 있었다.

 

  "흠 유진이 네가 더 놀랐던거 아니니? 그래 마지막 3차전에서는 너네

 

  대장에게 일러바친 정보가 잘못되서 그쪽도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

 

  었을텐데......"

 

 여전히 사무적으로만 무뚝뚝하게 나오고 있는 수범의 무성의하고 기계적인

 

 말투에 유진은 정색을 하더니 시선을 창문 밖으로 돌려버렸다.

 

 비스듬하게 보이는 도로옆으로 노란색 유치원 버스가 서 있었고 역시 노란

 

 색 비옷을 똑같이 입고 있는 유치원생들이 교사의 인솔하에 버스안으로

 

 가지런히 오르고 있는 광경이 보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도 어릴적에 몇번 키워본 적이 있었던 병아리 떼같다는

 

 느낌이 들어서는 저도 모르게 잔잔한 미소가 입가로 흘렀다.

 

  "나 이제 그 게임 그만할 거야. 그리고 오늘 저녁이면 이 서울 하늘도

 

  마지막이야......"

 

 

 마지막?

 

 뜻밖이다 싶었지만 유진은 여전히 창밖쪽만 바라보며 독백과도 같은

 

 어조로 혼자만의 얘기들을 내뱉고 있었다.

 

  "답답하지만 그런대로 재미는 있는 곳이었는데......"

 

  "멀리가니?"

 

  "......"

 

 유진은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

 

 이 메마르고 복잡하기만한 도시안에서 그동안 시달리고 부딪혔던 과거의

 

 시간들을 되새기고 있는지

 

 그녀의 시선속에는 짙은 무게가 실려있었다.

 

  "그래도 지금은 우리가 같이 있쟎아"

 

  "?"

 

 언젠가 비디오방에서 같이 보았던 그 '귀여운여인' 이라는 영화에서

 

 쥴리아 로버츠가 혼잣말처럼 뇌까리던 대사를 뜬금없이 지금 이 여자가

 

 똑같이 내뱉고 있는 것이다.

 

  "오빠! 왜 그랬는지 궁금하지? 하지만 이유는 묻지 말아줘. 이젠,

 

  이제는 구차한 변명 같은 것도 싫고"

 

  "돈 때문이겠지, 창녀처럼"

 

 시나브로가 적혈의 정예 스파이였고 그동안 일년 가까이 자신을 철저

 

 히도 이용하고 농락해왔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았던 며칠전의 그 공포

 

 스런 충격과 감정들이 되살아나면서 수범의 입에서 자신도 미쳐 생각

 

 지도 못한 말까지 불쑥 튀어나와버렸다.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툭 쏘는 눈초리로 수범을 흘겨보더니

 

 이내 고개를 가볍게 흔들면서 또다시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시선에 초점을 잃은 듯 힘이 영 없어 보이는 것이 슬픈 그림자가

 

 확연하게 느껴져왔다.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방금 내뱉은 그 말이 좀 심하다 싶었지만

 

 이정도로 물러서거나 약한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다는 자존심 비슷한

 

 자기합리화와 남자의 진한 에고이즘이 불쑥불쑥 가슴언저리 너머로

 

 번득이고 있었다.

 

  "........."

 

 수범은 주머니속에서 담배를 꺼내 천천히 불을 붙였다.

 

 나이가 어리든 많든, 남자들은 이렇게 멋적고 어색한 시츄에이션에

 

 부닥치면 담배를 피우면서 애써 자신의 허전하고 못난 모습을 위장

 

 해보려는 식의 가면을 쓰곤 한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도 안나거나 허전한 분위기속에서

 

 스스로를 구차하게 가려보는 것이다.

 

 담배 첫연기가 채 하늘로 사라지기도 전에 유진은 문득 테이블위에

 

 놓여있는 수범의 담배갑으로 손을 뻗어서는 대뜸 한대를 피워무는

 

 것이었다.

 

 이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첨 보는 것인데 불을 붙이는 모습이나

 

 연기를 뱉어내는 모습들 자체가 꽤나 능숙하고 안정되게 보이는 것이

 

 홧김에 한두대 피워대는 입담배 수준은 아닌 듯 싶었다.

 

  "햐! 오빠랑 같이 있으니 담배맛도 참 좋으네"

 

  "......"

 

 수범이 이번엔 아무런 대꾸조차 않고 있자 또다시 어색한 침묵이 흘러

 

 갔다.

 

 커피숖안의 CD 플레이어에서는 날씨탓인지 아까부터 조용한 발라드

 

 음악만을 틀고 있었는데,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위로 그 음악들이 뽀얀 색깔을 입히고

 

 있는 듯했다.

 

 유진의 담배개피가 절반쯤 타들어갈무렵, 유진의 눈동자에는 매운 담배

 

 연기탓인지 이슬 비슷한 게 빠르게 맺혀 들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수범오빤 참 멋있었어. 게임안에서도 그렇고 이렇게 직접

 

  만나봐도 그렇고 다른 남자들과는 분명히 색다른 면이 있었어

 

  어쩌면 동화책속에나 등장하던 왕자님같이...

 

  전혀 다른 세상사람같았어, 때묻지 않은 꿈속나라 사람처럼......"

 

  "또 나를 놀리는 거니?"

 

  "아냐 이것만은 100% 진실인데......"

 

 유진은 여태 입에 대지도 않고 있던 핫쵸코를 스푼으로 휘젓더니 입술에

 

 갖다대려다 말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상체를 문득 앞쪽으로 바싹 당겨앉더니 탁자위에 두손을 가지

 

 런히 모으고는 수범의 두눈을 똑똑히 바라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왜냐고는 묻지 말아줘.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고 게임일뿐이쟎아.

 

  그리고 유진이는 오빠 정말 좋아했었어 내 자존심이상으로......"

 

 촉촉한 음성으로 얘기를 하던 유진은 말을 끝맺지도 않고 소파에서 일어

 

 서더니 갑자기 수범 옆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여태 눈망울속에 맺혀있던 이슬같은 것이

 

 둥그러이 커지는가 싶더니 이내 눈물방울이 되어서는

 

 그녀의 뽀얀 뺨을 타고 흘러내렸고

 

 유진은 애써 눈물을 닦으려하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어색한 포즈로 지켜보던 수범은

 

 또한번 어리석게 착하기만 한 청년 - 그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아......"

 

 유진은 과감히도 수범의 입술로 자신을 가져갔고

 

 그 돌연한 키쓰를,

 

 이 두렵기만 한 사랑을

 

 남자는 천천히 받아들였다.

 

 시간도 공간도 모두 다 멈추어져버린 적막한 관계속에서

 

 그렇게 두사람 사이로는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기나긴 입맞춤이 뜨겁게 그리고 애타게 이어져갔다.

 

 이제는 그렇도록 가슴시린 애증의 그림자마저도 모습을 감춰버리고서

 

 숨막히는 감정의 실루엣만이 힘겹게 드리우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창밖으로는 장대비처럼 퍼붓기만 하던 빗줄기마저 그쳐버리고

 

 불그스럼한 노을만이 서쪽하늘 깊숙히 아로새겨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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