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
 1  2  3  4  5  6  7  8  9  >>
 
자유연재 > 현대물
사랑할 수 없는 우리
작가 : 현서
작품등록일 : 2016.10.4

39살의 인아. 실패한 유학 생활의 업적으로 영어학원 강사로 일하고 있다.
아직도 소박한 사랑을 꿈꾸고 있지만 얼마 전 실연까지 당했다.
그런 가운데 친구 선영의 결혼과 태라의 승진 소식은 인아를 더욱 움추려들게 만든다.
그런 인아에게 명문대생 훈남의 수현이 다가와 한없는 친절을 베푼다.
인아는 수현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잃어버린 청춘을 생각하며 슬프기도 하다.
수현은 왜 인아에게 다가온 것일까?

 
낡은 세월속에서
작성일 : 16-10-12 13:05     조회 : 576     추천 : 0     분량 : 512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녀석에게 수학 경시 대회는 왜 물어봤을까, 녀석에게 무얼 더 얻고 싶어서...

 

  난 아무것도 나를 빛나게 해 줄 그 무언가를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이와 함께 저절로 찾아오는 속물근성은 늙어가는 외양보다 더 추하다.

  라면 먹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운 이 녀석은 내게 어울리지 않는 숨 쉬는 명품이다. 이렇게 감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 여기련다.

 

  “이거라니까요. 쫄깃쫄깃 면발. 라면 좀 끓이시는데요.”

 

  녀석은 국물까지 다 비우고 나서야 말을 한다. 정말 배가 고팠나보다.

 

  “그럼, 혼자 산 게 몇 년인데.”

 

  대수롭지 않게 건넨 말인데, 녀석은 잠시 나를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돌려 버린다.

 

  “우리 엄마, 아니 어머니는 요리는 잘 하시는데 라면 맛은 영... 꼭 면이 푹 퍼질 때가지 끓이셔서. 그래서 중학교 때부턴 절대 엄마, 아니 어머니께 라면 끓여달라고는 안 해요.”

 

  “직접 끓이면 되지. 손 없어?”

 

  언제부터 녀석이 녀석과 가까운 사람들을 얘기하면 난 질투를 하고 있었다. 좀 전의 다짐은 어디로 갔는가.

 

  “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먹는 건 내가 하는 것보다 누군가 해 주는 게 맛있는 거거든요. 다른 요리도 잘 해요?”

 

  녀석은 나의 퉁명스런 말투에도 아랑곳 않고, 너스레를 떤다.

 

  “아니, 전혀. 난 누군가가 밥을 챙겨주는 일도 없고, 누구의 밥을 챙길 일도 없거든.”

 

  녀석은 말을 잘못했단 생각이 들었는지, 잠시 민망해 하더니.

 

  “그럼, 설거지는 제가.”

 

  “나 둬."

 

  녀석은 말릴 틈도 없이 냄비와 젓가락을 익숙하게 가져다 싱크대로 간다.

 

  “맛있는 라면 얻어먹고 설거지 냄새 나게 놔두면 민페죠.”

 

  싱크대의 물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오더니, 잠시 졸았던가.

  녀석이 내 어깨를 살짝 건드린다.

 

  “씻고 편하게 주무세요. 저 갈게요.”

 

  비몽사몽 간에 녀석이 현관을 빠져 나가는 게 보인다.

 

  “꼭 씻고 주무세요. 피부 상한데요.”

 

  잠시 후, 현관 도어락이 ‘삐리릭’ 잠기는 소리가 들린다. 녀석이 빠져나간 후, 여태껏 혼자 지내며 느꼈던 공허함과는 다른 색깔의 공허함이 녀석이 흘리고 간 채취와 함께 내 몸을 휘감는다.

 

  난 연애 상대 1호라는 혼자 사는 여자이건만, 난 한 번도 남자에게 ‘라면 먹고 가라.’ 며 끼를 부려 본 일이 없다.

  유유상종이었는지 남자가 그런 걸 청하는 일도 없었다. 조금 더 친해지면 그러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내 마음의 거리가 거기에 닿기 전에 남자들은 나를 떠나버렸다.

 

  현성을 한 번만 더 만났더라면, 그리 했을 지도 모를 것을, 현성은 그 한 번의 기회를 나에게 주지 않고, 떠나 버렸다. 어찌됐든 녀석은 우리 집에 방문한 첫 번째 남자다. 깔끔하게 정돈된 싱크대, 꽤나 익숙한 솜씨다. 녀석이 말한 대로 피부를 위해, 씻고 누우니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녀석의 후루룩거리는 소리가 자꾸 귓가에서 맴돈다.

 

 ***

 

  몇 시 쯤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뒤 늦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자면서 몇 번 이 벨소리를 무시했던 것 같기도 하다. 잠결에 더듬거리며 전화기를 찾아들었다. 인구다.

 

  “여보세요?”

 

  “아직도 자는 거야?”

 

  인구의 말끝에 깊은 한숨이 전화기를 타고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어, 왜?”

 

  인구는 특별한 용건이 아니면 나에게 전화하는 일이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이니 서운할 것도 없는 것이다. 아니 나는 인구에게 용건조차 없었다. 인구가 나에게 가진 용건 또한 집안에 크고 작은 행사가 전부였다.

 

  “올 해 아버지 칠순인 거 알고는 있어?”

 

  그랬던가? 그랬구나. 벌써 그렇게 나이가 많아 지셨구나. 나에게 아버지의 모습이란 40대 후반에 멈추어 있었다. 군청에 근무하셨던 아버지는 꾸준히 할아버지 농사일을 도우시며 열심히 사는 분이셨다.

 

  많이 다정하거나 누구에게 자랑할 만큼 빼어난 부분은 없었지만 늘 부지런하시고 당당하셨다. 그런 아버지였는데, 그 후로 가끔 뵐 때마다 조금씩 늙어가는 모습만 보이실 뿐 다른 인상은 더 이상 받을 수가 없었다.

 

  “그렇구나.”

 

  인구의 한숨이 또 다시 들려온다.

 

  “여름휴가 때 부모님 모시고 여행 가기로 했어.”

 

  그리곤 아들 노릇 충실히 하는 착한 아들의 몇 마디의 푸념이 이어지고, 자기 처의 기특한 생각이라는 말까지 덧붙인 다음에,

 

  “누나는 안 갈 거잖아.”

 

  결론은 돈만 내라는 얘기였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효녀이며 무책임한 딸 취급을 받으면서, 부모님과 인구의 세 식구가 여행을 가는 경비 중 반을 내야 한다. 인구의 계산법,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인구 처의 계산법이었다.

 

  인구가 결혼하기 전에는 그래도 특별한 날이면 어색함을 꾹 참으며 가족들과 식사 모임에 참석했었고, 돈도 인구와 내가 반반씩 부담하는 걸 당연하다 여겼었다. 하지만, 인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동안, 나는 가족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식구가 늘어나 점점 더 많아지는 경비를 인구와 나는 똑같은 몫으로 계속 내야 했다. 뭔가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따지지는 않기로 한다. 나는 이미 세상에 둘도 없는 불효녀니까...

 

  어차피 이런 취급을 받을 거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상관없으련만, 유치원 때부터 쉼 없이 세뇌되었던 효라는 사상이 나를 그렇게 만들진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나는 대학 졸업장도 없이, 비싼 돈 들여 유학까지 한 몸이다.

 

  “돈은 언제까지 보내면 될까?”

 

  나를 위해 제대로 써 본 적 없는 거금 300만원을 쾌척(?)하면서도 나는 모든 일을 인구에게 떠넘기는 변변치 못한 누나로 인구에게 계속 저자세여야만 했다.

 

  어린 시절엔 인구와 그래도 의좋은 남매였다고 기억한다. 부모님의 아들 사랑이 딸인 나보다 큰 건 눈에 보이는 일이었지만, 우리가 성장할 때 사회 분위기를 생각한다면 딱히 억울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돌아오고 난 후부터는 인구의 차가운 태도에 난 인구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보니, 여러 개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우리들의 그룹 대화창에 선영이가 집들이를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지은 지 4년 밖에 되지 않은, 강남의 60평 아파트의 안주인은 그 동안 알던 선영이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우리를 보고 호들갑스레 반기는 행동은 여전했으나, 조금 더 우아해 보였다. 사랑받는 여인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왠지 모를 수심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거실에 들어섰는데도 집의 구조가 한 눈에 파악되지 않아, 우리는 이곳저곳을 헤매 다니며 집구경을 했다. 우리는 감히 이 집이 얼마짜리냐고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거실 넓은 창 아래로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것까진 좋았으나, 거실에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소파의 디자인이 영 구식이라 엉덩이를 내려놓으면서도 뭔가 불편함이 느껴졌다.

 

  “옥의 티네.”

 

  태라가 참지 못하고 불쑥 내뱉자, 선영은 시어머니가 고집한 이태리 명품 소파라고 하소연을 한다. 선영이가 그 소파를 얼마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지 알지 못하는 시어머니는 결혼하는 새 며느리에게 소파를 사주는 좋은 시어머니라고 ‘자뻑’하고 계시다는 말까지 덧붙인다.

 

  “싫다고 다른 거 사달라고 말하지 그랬어?”

 

  평소 선영의 성격이라면 그리 어려운 말도 아닐 것 같아 우리 모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사람이 결혼하자면서 딱 두 가지만 부탁한다고 하더라.”

 

  그 하나는 하루 빨리 아이를 갖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자신의 어머니와 의견충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저 살기도 힘들어 종족 번식의 본능마저 잃어간다는 이 시대에 선영의 남편처럼 잘 나가는 남자는 아직 그 본능이 살아 넘치나 보다고 생각됐다. 선영의 남편은 또 그 때문에 자신의 첫 번째 결혼이 실패한 거라고 강하게 믿고 있는 거 같았다.

 

  “그거 뭐 어려운 일이겠어 생각하고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지.”

 

  그런데 시어머니는 결혼 전 선영의 산부인과 진료 기록을 요구했으며, 임신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보고나서야 결혼을 허락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임신했냐는 질문을 민망할 정도로 자주한다는 것이다.

 

  “이제 두 달 밖에 안 됐잖아. 너무하네.”

 

  “너 그런 얘기를...!”

 

  “왜 이제 하냐구? 니들이 말릴까봐. 나 이 결혼 꼭 하고 싶었거든.”

 

  태라가 발끈하니, 선영이 고해성사하듯 솔직한 말에 우리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모르면 몰랐을까, 이런 집을 소유한 남자와 결혼 얘기가 오간 이상 쉽게 그만 두기는 힘들었을 거 같다.

 

  “남편이랑 사이는 좋은 거지?”

 

  “그럼, 꽤 자상한 사람이야. 시어머니야 뭐 직장 상사쯤으로 여기면 되고...”

 

  매일 들볶는 직장 상사도 있는데 일주일에 두 번 쯤 볶이는 건 참을만하다며 선영은 다시 본래의 유쾌함을 되찾았다.

 

  “그래, 시어머니는 어쨌든 힘든 존재야. 내 생각을 말하면 들어주는 적이 없더라. 근데 나 문득 그런 생각 들더라. 나보다 2배나 오래 살며 쌓아온 고집인데, 내 고집이 아무리 세다한 들 어떻게 이기겠냐고. 그게 옳든 옳지 않든. 그래서 이제는 그냥 ‘네네.’ 하고 말아.”

 

  영주는 그간 잘 말하지 않았던 속내를 드러내며, 선영에게 결혼 선배의 조언을 하는 듯 했다. 영주에게 드디어 동지가 생긴 것이다.

  영주의 말을 들으며 지혜롭게 사는 법이란 어쩌면 덜 생각하고 덜 비판적이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영의 집에서 나와 태라가 전철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우린 평생가야 저런 집에 살아나 볼 수 있을까?”

 

  “그러게.”

 

  얼마 전, 막대한 경쟁을 뚫고 승진을 한 태라도, 열심히 살아가는 영주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긴 마찬가지인가 보다. 나는 뭐 말해야 입만 아프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 아직은 결혼 잘하라고 가르치기보다, 공부 잘하라고 가르치는 부모가 더 많다는 건 순수한 사회라고 해야하나, 바보같은 사회라고 해야하나 구분이 서질 않는다.

 

  전철을 갈아타고 마을버스를 타며 집으로 가는 길이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진다.

 

  IMF당시 나를 위해 헐값으로 부모님이 사 놓은 언덕길에 다세대 건물에 작은 집. 당시 난 이 집을 보고도 좋다 싫다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원룸이라고는 하나, 침실과 거실이라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으니 혼자 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아니 22살의 나이엔 과분한 집이었다.

 

  이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고 살았다. 언젠가 내 신상에 변화가 생기면, 결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이 집을 떠나게 될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 세월이 17년이나 흐르고, 집은 세월이 흐른 만큼 낡은 건물이 되었다. 아무런 발전도 변화도 없이 그저 낡아가고만 있다. 내 모습처럼...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9 기억(2) 2016 / 10 / 17 436 0 6378   
8 기억(1) 2016 / 10 / 14 590 0 5112   
7 기억속으로 2016 / 10 / 13 433 0 5902   
6 낡은 세월속에서 2016 / 10 / 12 577 0 5126   
5 같은 공간, 다른 세상 2016 / 10 / 11 563 0 4722   
4 축제가 끝나고 2016 / 10 / 10 490 0 5094   
3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2016 / 10 / 7 477 0 5039   
2 그가 떠난 자리에 2016 / 10 / 6 850 0 10270   
1 실연앞에서 2016 / 10 / 5 824 0 5357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