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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날 봐! Season1
작가 : 폭력햄스터
작품등록일 : 2019.11.6

 
날봐! #20
작성일 : 19-11-06 23:32     조회 : 198     추천 : 0     분량 : 3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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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의 집과 여주집의 거리는 10분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이다. 하지만 그녀의 쓸데없는 고집으로 뜻하지 않게 역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여주는 벌써 30분째 현관 옆 전신거울 앞에 서서 뚫어지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나, 어디가?"

 "응, 약속 있어."

 "누구 만나는데? 그 옷. 작년에 큰이모가 사준 거 아니야?"

 "맞아. 왜 이상해?"

 

 작년 초에 큰이모가 큰맘 먹고 사준 비싼 코트를 걸쳤는데 눈썰미가 좋은 태형이 단박에 알아보곤 아는 채를 했다. 하품하며 배를 벅벅 긁으며 제 방 문지방에 서 있다가 소파에 다이빙하며 이상하냐는 여주의 물음에 고개를 내저었다.

 

 "근데 그거 비싼 거라고 생전 안 입더니 어쩐 일로? 누구 만나는데?"

 "친구, 친구."

 "친구 아닌 거 같은데?"

 "아, 친구라니까? 왜 토요일인데 새벽같이 일어나서 시비야. 시비는? 더 자!"

 "새벽은 무슨. 벌써 12시가 다 돼가는데?"

 

 거울을 통해 보이는 태형을 향해 주먹을 높이 쳐들어 보였다. 그러자 태형은 배시시 웃어 보였고 그게 또 귀여운 여주는 고개를 내저으며 가방에 있을 립밤을 찾아 건조한 입술을 달랬다.

 

 "어? 누나, 나도. 우우-"

 "사내새끼가, 쯧. 그러고 보니까 너 씻기는 했냐?"

 "아, 씻었거든!?"

 

 씻었냐는 말에 버럭버럭하는 태형이 아직 아기 같았다. 무릎을 살짝 굽혀 태형의 엉덩이를 두어 번 토닥이고 얼굴이 붉어져 소리치는 녀석을 뒤로하고 립밤을 코트 주머니에 대충 찔러 넣고 도망 나왔다.

 

 

 *

 *

 

 

 버스 차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주말이라 그런지 꽤 북적였다. 익숙하게 들리는 방송을 흘려들으며 창밖을 바라보던 여주가 하차 벨을 눌렀다. 버스에 내려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먼저 도착했다는 민석은 보이지 않았다. 매서운 칼바람에 빨개진 코를 훌쩍이며 휴대폰을 바라보자 기다렸다는 듯이 울렸다.

 

 "여보세요? 어디야? 난 역 있는데 육교인데."

 "아, 엇갈렸구나. 난 역 반대편 육교야. 바람도 차갑고 추운데 먼저 영화관 들어가 있어. 내가 금방 갈게."

 

 먼저 들어가란 그의 말에 천천히 발걸음을 영화관으로 옮겼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건물들. 혼자 거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주위에 사람이 바글거렸던 10대와는 다르게 어느 순간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되고 회사, 집. 회사, 집인 패턴에 무료함을 느꼈다. 어느새 도착한 영화관 로비에도 역시나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뤘다. 그나마 구석에 위치한 의자가 제일 한적해 보여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친구들끼리, 커플끼리, 가족끼리. 저마다 끼리끼리 모여 떠드는 사람들을 한참이나 바라보다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적이며 립밤을 찾았다.

 

 "아, 어디 갔지."

 

 가방뿐 아니라 코트 주머니도 한참을 뒤적였는데도 나오지 않는 립밤에 결국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자 언제 온 건지 민석이 멀뚱히 자신을 내려다 보고 서 있었다.

 

 "뭐야, 왔으면 왔다고 이야기를 하지."

 "뭐 찾는 거 같은데. 뭐 찾아?"

 "립밤. 근데 없네."

 

 추운 날씨에 건조한 입술을 혀로 핥으며 민석을 바라보자 당황한 그는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그의 반응이 꽤 재미있었는지 살포시 웃으며 제 옆자리를 손으로 쳤다.

 

 "아직 시간 남았어."

 "그러게. 아, 팝콘 먹어?"

 "아니, 공포 영화 볼 때만."

 

 여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언제 한번 꼭 둘이 공포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민석이었다. 나란히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던 여주는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민석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에 크게 움찔한 민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녀를 바라봤다.

 

 "뭘 그렇게 놀라? 이제 들어가자."

 "응, 가자."

 

 그렇게 일어섬과 동시에 떨어져 나가는 여주의 손에 아쉬움을 느껴 입맛을 다셨다. 실내여서 춥지도 않은데 습관인지 아니면 혹시나 민석이 손잡을걸 예상한 건지 코트 주머니에 손을 꼭꼭 숨긴 여주였다.

 

 "저기, 야."

 "으어!?"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 갑작스레 들리는 여주의 목소리에 혹시나 몰래 힐끔거리고 있던걸 눈치챘건 갈 싶어 바보 같은 대답을 하고 말았다.

 

 "나 자리 잘 못 찾아. 눈도 잘 안 보이고."

 "아.."

 "아이, 답답해서 나 원 참."

 

 살짝 찡그린 얼굴로 민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잡힌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민석이 활짝 웃으며 손을 빼고 다시 여주의 손을 잡았다. 꼬옥, 맞잡은 두 손에 이번에는 여주도 활짝 웃었다. 잔잔하게 시작하는 영화에 집중하는 여주와는 다르게 민석은 도통 집중하지 못한다. 자리를 찾아들자마자 제 손에서 빠져나간 여주의 손의 감촉이 남아있어 비어있는 손을 괜히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고개를 돌리자 여주는 이미 영화에 푹 빠진 듯 보였다. 이미 절정에 달하는 영화를 한번 바라보고 그런 영화에 집중한 여주의 얼굴을 한번 바라보다 민석은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우는데도 예뻐?

 

 

 *

 *

 

 

 영화를 보고 나와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서도 연신 코를 훌쩍이는 여주였다. 뭐가 그렇게 서러운 건지 어깨도 들썩거리는 모습에 영화 때문인걸 알면서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썩이는 마른 어깨를 손으로 감싸자 잔뜩 젖은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그녀에 민석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영화가 그렇게 슬펐어?"

 "응, 나 진짜 엄마한테 잘할래."

 

 울음의 여파인 듯 잔뜩 울렁이는 목소리로 아이 같은 말을 내뱉는 여주가 귀여워 웃음이 났다. 그게 자신을 비웃는 것이라 생각이 든 건지 팔꿈치로 민석의 배를 찔렀고 생각보다 아픈 느낌에 짧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 김여주. 아프잖아."

 "아, 뭐! 네가 먼저 나 놀렸잖아."

 "귀여워서 그러지, 귀여워서."

 

 머리를 흩트리는 민석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주는 입술을 비죽이며 먼저 앞으로 걸어갔다. 어떻게 저런 모습 하나하나가 다 사랑스러운지 민석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또 자신을 설레게 할지 흐뭇하게 웃었다.

 

 "훅훅 들어오지 마, 멍청아."

 "내가 언제?"

 "몰라, 절로 가."

 "난 교회 갈 건데?"

 "닥쳐."

 "아, 왜애."

 

 식당에 마주 보고 앉은 둘은 들어오면서부터 계속 티격태격했다. 도대체 저런 할배개그는 어디서 배워온 건지 인상을 쓴 여주가 고개를 돌려 테이블 옆 벽에 기다랗게 붙은 거울을 바라보다 깜짝 놀라 했다.

 

 "야, 나 팬더 같아?"

 

 동그랗기만 한눈을 제 손으로 아래로 당겨 민석을 보며 물었다. 우와, 또 심쿵. 저런 것마저도 귀여워 보인다니 저거 완전 심장폭격기아님? 요란스럽게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며 고개를 내젓자 여주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다시 거울을 바라보며 제 얼굴을 살폈다. 아마 영화관에서 울어서 마스카라가 살짝 번진 것이 눈에 거슬리는 모양이다.

 

 "에이, 마스카라 번졌는데."

 "다음부터는 마스카라 하고 나오지 마."

 "안돼, 이거 안 하면 진짜 밋밋해. 이거 하는 거랑 안 하는 거랑 얼마나 다른데."

 "안 해도 예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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