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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광무의 꿈
작가 : 백두혼
작품등록일 : 2019.10.22

대한제국의 마지막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홍종우의 삶을 보면 된다. 조선인 최초로 프랑스로 건너가 근대화를 통한 조국 조선의 부국강병의 길을 도모한 자. 김옥균 등을 수괴로 한 친일 매국노들과 벌인 흉험한 싸움.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 밀사는 이용익이었고 그의 곁에는 홍종우가 있었다. 근대사 전체를 통째로 뒤집는 위험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14. 건청궁의 피바람
작성일 : 19-11-06 18:13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37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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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건청궁의 피바

 

 

  1895년 10월 어느 날. 그는 오늘도 상하이 프랑스 조계의 형산 공원에 나와 걷고 있었다. 이용익이 있는 함흥 감영에서 겨우 세 달 정도를 거처하다가 이 곳 상하이로 넘어온 지 이제 여섯 달이다. 강 쪽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비릿하게 뺨을 스치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그는 가랑비를 피해 모자를 눌러 쓰고 근처의 카페를 찾았다. 프랑스 풍의 건물들이 촘촘하게 자리를 잡아 프랑스 식 빵을 팔고 프랑스 식 옷을 맞출 수 있는 지역. 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지만 프랑스 식 옷을 입은 중국 여인들이 흔한 지역이다.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이 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서 지겹도록 달라붙던 모기들도 이제 한산해졌다. 상하이라는 도시는 국가도 민족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오직 돈과 욕망으로 가득 찬 중국 대륙의 해방구였다. 그 곳에 프랑스의 조계지가 있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그곳에 스며들었다. 프랑스 어를 자유스럽게 구사하는 조선의 망명객은 그 곳에서 의외로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이용익에게서 받아 온 자금은 넉넉하여 작은 아파트를 하나 빌리고 소소한 일상을 꾸리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기약이 없기는 하나 상하이 체류가 오래 갈리는 없었다. 삼국 간섭이 이미 일어났고 조선에는 다시 힘의 균형이 맞춰지고 있었다. 일본군은 부산 쪽으로 철수 했고 박영효 일당은 도주했으니 조만간 새로이 정부가 꾸려질 거라 기대하고 있었다.

 

  카페에 앉아 진한 커피를 시켜놓고 품속에 넣어 둔 책을 꺼내 들었다. 'Le bois sec refleuri. 다시 꽃피는 마른 나무'. 책 표지의 상단에 기메 박물관 총서라고 적혀 있고 이집트의 스핑크스와 중동의 램프가 그려진 표지의 여백에 소설의 제목과 홍종우라는 이름이 크게 박혀 있었다. 파리에서 넘겨주고 온 원고가 이제야 출판이 되어 그의 손에 들어왔다. 며칠 전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관을 통해 책을 전달 받은 후, 늘 한 권을 품에 지니고 다니며 틈나는 대로 읽어 보고는 했다. 책을 만지는 그의 표정이 참으로 감미로웠다. 그가 살아 해 온 일 중에 가장 애정을 쏟고 자부심 갖는 일이 이 책의 출판이었다. 파리를 떠나기 전, 그가 머뭇거린 이유 중의 하나는 이 책의 출판을 직접 맞이하고픈 욕심이었다.

 

 이 책이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인연으로 시작된 일이었다. 상하이에 도착하여 그는 상하이 주재 프랑스 영사관을 찾아 부임한 지 며칠 안 되는 서른 남짓의 영사와 인사를 나누었다. 아직 고종에 의해 파직이 되지 않은 그의 신분은 분명히 조선의 관리였고 유창한 프랑스 어를 사용하는 조선의 관원을 맞은 프랑스 영사는 무척 호의적이었다. 그 젊은 영사의 이름은 폴 클로델. 오귀스트 로뎅과 더불어 이미 이름을 알리고 있던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의 막내 동생이었다. 그는 더구나 파리의 셍 제르멩 데 프레 거리를 누비면서 아르튀르 렝보의 후예라고 인정받았던 유명한 젊은 시인이었다. 그의 경우와 비슷한 시기인 1893년 파리를 떠나 뉴욕과 보스턴의 부영사 직을 마치고 상하이 총영사로 부임한 그에게 파리에서 이미 한 권의 책을 발간한 조선 관리의 존재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그들은 파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눈 적은 없었지만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장소에서 비슷한 사람들과 어울리던 사이였다. 그들은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과 인연을 나누었고 출판 예정이었던 '다시 꽃 피는 마른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보를 통해 기메 박물관 측에 문의하여 그의 소설이 곧 발행된다는 소식을 전한 것도 폴 클로델 영사였고 출간이 되자마자 외교 행낭에 넣어 상하이로 보내도록 수배한 것도 그였다. 그리고 책이 상하이에 도착한 날, 그는 젊은 영사에게 "마음으로 전하는 감사를 담아 증정합니다. 1895.9.22 홍종우"라는 서명을 적어 책 한권을 증정했다.

  그는 책의 앞부분에 실린 히아신스 롸종 신부의 서신을 다시 읽었다. 그의 헌사에 신부는 자애로운 답장을 보내왔고 그는 신부의 답장을 책에 넣어 같이 출판해 주기를 부탁하고 왔었다.

 

 “그대의 두번째 작품에 올리는 그대의 헌사를 기꺼이 받아 봤소. 그때는 듣지 못했지만 참 잘 고른 제목이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인간애(humanite)는‘마른나무에 다시 꽃필 것이오’.... 그대의 나이 드신 아버지와 아내와 아이들께 늘 하느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기도하오. 또 그대에게 고하노니 여기든 저기든 그 어느 곳에서든 우리 다시 만납시다.

 - 히야신스 롸종.”

 

 신부는 인종과 국적과 종교에 상관없이 만인이 만인을 사랑하는 세상이 하느님이 원하는 세상이고 침략과 약탈의 시대가 어서 끝나고 만국이 서로 돕고 사랑하는 시대가 열리기를 늘 기도했다. 신부는 그가 프랑스에서 만난 진실한 영혼이었다. 그가 평안한지 건강한지 무척 궁금했다. 그는 만년필을 꺼내 편지를 썼다.

 

 “진실한 친구 히야신스 롸종께.”

 

  며칠 후 그는 기별을 받고 프랑스 영사관을 방문했다. 그를 맞는 클로델 영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영사는 한 장 분량의 프랑스 어 보고서를 그에게 넘겨줬다.

 

 “어제 한양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보고서를 읽어냈다.

 

  “1895년 10월 8일 오전 2시 / 광화문 일대에 일본군 공사관 수비대 2개 중대와 조선군 훈련대 2개 대대가 집결

 오전 3시 /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일본군 소대의 호위 속에 광화문 도착

 오전 4시 / 일본 공사관 수비군 1중대와 우범선이 이끄는 조선군 훈련대 2대대가 경복궁 춘생문을 돌파하여 건청궁으로 진입. 숙직 중이었던 이범진이 월담하여 미국, 러시아 공사관으로 구원 요청

 오전 4시 30분 / 광화문 및 경복궁 곳곳에서 일본군,훈련대 연합 세력과 궁궐 시위대가 교전 시작. 훈련대장 홍계훈이 현장에 도착하여 훈련대를 꾸짖고 해산하여 했으나 일본군 장교에게 사살됨

 오전 5시 / 교전 상황 종료. 시위대는 패퇴하고 조선 훈련대가 경복궁 장악. 소수의 일본 낭인과 일본군은 건청궁 일대를 수색. 수색 중 국왕이 폭행 및 위협을 당함. 왕세자는 폭행당하여 부상. 왕세자비 역시 임신 중임에도 폭행당함(이후 사망) 시비 및 내관 다수 폭행 및 살해당함

 오전 5시 30분 / 건청궁 곤녕합에서 중전 민씨 발각. 궁내부 대신 이경직 피살.

 오전 6시 / 중전 민씨 피살 및 시신 소각

 오전 7시 / 일본 공사 미우라 입궁하여 흥선대원군 입회 하에 김홍집 내각을 종용 승인케 함”

 

 그는 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찌 이런 일이. 대명천지에 어찌 이런 무도한 일이....”

 “참으로 유감스럽고 참담한 일입니다. 귀국의 불행에 진심으로 애도 드립니다. 프랑스 정부는 이 무법한 사태를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미국, 러시아 등과 협의하여 사태의 정확한 조사와 처벌을 일본에 요구할 것이고 조선 정부에 대한 사죄와 보상 조치를 촉구할 것입니다.”

 “고맙소. 이제 나는 조선으로 돌아가야겠소. 이 원수 놈들을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오.”

 “홍공. 사적으로 드리는 말입니다. 지금 조선에는 김홍집, 유길준, 서광범, 조희연, 정병하 등의 친일 내각이 성립됐습니다. 홍공의 귀국은 위험합니다. 들어가면 홍공의 목숨이 위태롭지 않겠습니까?”

 “영사님. 그 동안 마음 써 주신 점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오. 이제 국왕이 모욕을 당하고 국모가 살해를 당하는 참담한 일을 당하였으니 어찌 이 한 목숨 염두에 두겠소. 이제 돌아가 목숨을 걸고 나라와 국왕의 원수들을 토벌할 것이오. 단지 영사께 부탁이 하나 있소. 이 편지를 파리의 롸종 신부께 좀 보내 주시오. 그동안 감사했소.”

 

  그는 살던 집을 급히 정리하고 짐을 꾸렸다. 한동안 몸에서 떼어놨던 MAS 1892 리볼버에 실탄을 장전하여 허리춤에 감췄다. 가죽 가방 하나와 갓통을 들고 그는 북경을 떠나 만주를 향했다. 그의 목적지는 우선 함흥의 이용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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