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미운 왕자 새끼
작가 : 어사화
작품등록일 : 2019.9.1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달의 뒷면 지하의 깊은 바다 속에는 아름다운 용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종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남성, 왕자 천마가 병에 걸려 혼인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지금 그의 유일한 치료법은 생김새가 비슷한 천천 대군의 몸에 그의 뇌와 생식 기관을 이식하는 것 밖에는 없다. 여왕과 국서는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고 천마의 호위병정 다니엘이 천천을 잡으러 인간 세상으로 오게 되는데 그 때부터 일이 꼬여 버렸다.
해외 파병 근무를 나갔던 천재 의사가 휴가 중에 사랑했던 사람과의 꽃잠을 이룬 다음 날 실종이 되었다. 그의 연인이었던 윤슬은 6개월을 그를 찾아 헤맸지만 끔찍한 소문만 들릴 뿐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녀 앞에 그가 나타났다.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이런 씨 발라서 뻐꾸기에게 던져 줘 버릴 새끼라고 욕을 한 바탕 들이붓고는 정신을 잃었는데 꿈 속에서 그가 타 준 치유꽃이란 전설의 꽃의 꿀물을 마시고 난 뒤부터 그에 대한 기억만 모두 사라졌다. 정신과에서는 해리성 기억 상실이라고 하고, 주위 사람들은 불쌍하다고 했다.
한국 병원에서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옮긴 병원에 삼신 할매가 천년 묵은 산삼을 먹어가며 삼일 낮밤을 빚어낸 듯한 조각 미남의 해외 파병 군의관 출신 병원장이 새로 취임을 하는데, 이 남자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거기다 이 남자와 계속 엮이는 걸 보니 그냥 스쳐 지나갈 인연은 아닌 것 같은데.......

 
사랑의 시
작성일 : 19-11-06 18:06     조회 : 243     추천 : 0     분량 : 7506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그녀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져 갔다.

 

 그는 그녀의 이마를 짚어봤다.

 

 “아~ 왜 이리 뜨거워?!”

 

 그는 응급실로 차를 돌릴까 하다 그러면 또 시끄러워질 것 같아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았다.

 

 다행히 성곽길로 가는 도로 곳곳이 쌓인 눈으로 통제가 되어 있었다.

 

 그녀가 내일 눈을 떴을 때 자신의 집에 데리고 올 수 밖에 없었던 핑계 거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는 병원에서 멀지 않은 오피스텔에 살았다.

 

 축축하게 물을 먹은 섬유들이 그녀를 안아 올린 그의 팔에 그대로 느껴졌다.

 

 그의 마음이 더 급해졌다.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도 더디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오피스텔 문을 여니 한기가 느껴졌다.

 

 윤슬을 가죽 소파에 일단 눕히고는 그녀가 입을 만한 옷을 찾았다.

 

 자신의 키에 비해 20CM정도 작아 보이는 그녀에게 맞는 옷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일단 열을 내리기 위해 많이 얇지 않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골랐다.

 

 “나는 의사다. 이 분은 환자다. 나는 환자를 케어 하는 중이다.”

 

 라고 체면을 걸며 빠르게 겉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구급상자를 들고 왔다.

 

 체온이 무려 40도에 육박했다.

 

 아휴~

 

 거친 숨소리와 기침 때문에 폐렴을 의심했으나 다행히 기관지음은 깨끗했다.

 

 요 며칠 사이 일어난 사건 사고 때문에 난 마음 몸살 같았다.

 

 그는 집에 구비되어 있던 5% 포도당 생리식염수에 비타민제를 섞어 IV를 놓기 위해 그녀의 팔에 토니켓을 묶는데 어찌나 앙상한지......

 

 “이래 가지고 말렛(의료용 망치)같은 수술 기구들을 어떻게 들고 수술을 하는 거야?!”

 

 윤슬의 전문 분야가 관절경과 미세 접합이긴 하지만 가끔 응급 수술이 있을 때는 연장들이 쓰이는 수술도 안 할 수가 없었다.

 

 투덜대며 IV(정맥 주사)를 놓고 그녀가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침대로 안아 옮겼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받아 수건을 적셨다.

 

 열을 내리기 위해 물수건으로 팔과 다리를 닦아 주었다.

 

 왼쪽 발목에는 큰 수술 자국도 있었다.

 

 “이래서 힐을 신으면 바람 인형처럼 휘청댔구나.”

 

 수술 자국을 쓸어내리며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그가 중얼거렸다.

 

 “빨리 나아라~ 강 윤슬! 새해 첫 날부터 곤란하게 하지 말고......”

 

 이마에 물수건을 올려놓으며 그가 말끝을 흐렸다.

 

 아직도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깼을 때 그녀가 볼까 봐 창마다 내려져 있던 블라인드를 다 올렸다.

 

 이제 윤슬에게 더 이상 해 줄 게 없다고 느낀 그는 샤워를 하고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고 나오는데, 타종 소리가 들렸다.

 

 “새해를 이렇게 시작해서 어쩌나?”

 

 한숨을 쉬며 그는 그녀를 쳐다봤다.

 

 숨소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열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수액의 주입 속도를 조금 줄이고 이마의 물수건은 계속 갈아줬다.

 

 그는 그렇게 날이 밝을 때까지, 정상 체온으로 돌아올 때까지, 옆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

 

 *

 *

 

 윤슬이 점심때나 돼서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니 눈앞에 보이는 통창 밖으로 아직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았고, 그녀는 그것을 편안하게 누워 무념무상으로 감상하고 있었다.

 

 “좋다.”

 

 그녀의 얼굴에 아련한 웃음꽃이 피었다.

 

 “살았네.”

 

 이제는 익숙한 목소리.

 

 그녀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입고 있는 옷이며, 장식장에 가득한 훈장이며, 사진이며......

 

 모든 게 낯선데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만 낯설지 않았다.

 

 “제가 여기 왜 있어요? 이 옷은 뭐고요?”

 

 이불을 가슴께로 끌어 모으며 소리를 높였다.

 

 “내 이럴 줄 알았어!”

 

 그는 쟁반에 죽을 담아 가지고 오다 멈칫하며 중얼거렸다.

 

 “설명을 좀 해 봐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뭘 모르겠으면 소리부터 좀 지르지 마십시오. 전들 이러고 싶었겠습니까?”

 

 “......”

 

 경계를 풀지 않는 그녀 앞으로 쟁반을 들고 다가갔다.

 

 그리고 침대 옆 스툴 위에 쟁반을 놓고 자신은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녀가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뺐다.

 

 “fluid(수액) 달고 있는 거 보면 모르겠습니까? 어제 당신 두 번이나 의식 잃었어. 아프면 아프다고 해야지, 그것도 참으면 어떡합니까?”

 

 그녀는 손등에 반창고로 야무지게 고정되어 있는 IV line을 보았다.

 

 눈밭에서 구른 뒤 분명 차를 탄 거까지는 생각이 났는데 그 뒤로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두 번이나 의식을 잃었다고 하는 걸 보니 차 안에서도 의식을 잃었나 보다.

 

 “죄송합니다.”

 

 그의 눈을 보지 못했다.

 

 “마음 몸살인 거 같은데, 다른 지병 없는 거 맞습니까? 하루에 2번이나 의식을 잃었는데 검사 같은 거 안 해 봐도 되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저 아픈데 없어요.”

 

 “믿어도 될라나?”

 

 철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눈으로는 스툴 위에 올려져 있는 죽을 허겁지겁 떠먹고 있었다.

 

 철인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 스툴 위에 놓여 있던 쟁반을 무릎 위에 올렸다.

 

 그녀의 눈도 그 쟁반을 따라 움직였다.

 

 그는 죽을 한 숟갈 떴다.

 

 “닭고기 죽입니다. 좀 먹어 봐요.”

 

 침만 삼키고 있던 그녀에게 그는 숟가락을 입 앞에 가져다 댔다.

 

 “아~”

 

 “네?”

 

 “아~ 하라고!”

 

 “제가 먹을게요.”

 

 그녀가 그의 손에 들린 숟가락을 뺏어 가려 하자 철인이 팔을 거두어 들였다.

 

 “당신!...... 도대체 그 몸으로 어떻게 수술하는 겁니까?”

 

 그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죽 그릇에 처박으며 그녀의 몸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녀도 자신의 몸에 시선을 옮기며

 

 “어머머, 제 몸이 뭐 어때서요?”

 

 “정형외과 수술 도구들이 어떤지 내가 모릅니까? 그 앙상한 몸으로 수술 도구는 도대체 어떻게 들고 합니까?”

 

 “지금 제가 여자라고 얕보시는 겁니까?”

 

 그녀가 또 그렇게 받아 칠 줄은 몰랐다.

 

 괜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는 싫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잘 먹으라는 거죠! 뭐해요? 아~ 안 하고?”

 

 “지금 뭐하는 거예요? 이사장님 여자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녀의 말에 그는 다시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한 눈빛으로 한참 그녀를 바라보다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헝클어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이 어린이 이렇게 밥 먹이기가 어려워서야! 언제 이거 다 먹고 디저트 먹을꼬?”

 

 “뭐라구요?”

 

 “아~ 해요! 빨리. 팔 아파!”

 

 “이거 먹어도 되는 거예요?”

 

 “아이고, 까탈스럽기는....... 수랏간 나인도 모자라 기미 상궁까지 해야 되나?”

 

 그가 체념하듯 들고 있던 숟가락을 자기 입으로 갖다 넣었다.

 

 몇 번 안 씹고 넘겼다.

 

 “됐죠? 안 죽으니까 어서 먹어요.”

 

 그가 다시 죽을 떠서 입 앞에 갖다 대자 그녀는 그 때서야 받아먹었다.

 

 “으음, 맛있다.”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가며 자신도 모르게 익룡 소리를 냈다.

 

 눈빛에 생기가 돌아 반짝거렸다.

 

 그는 웃으며 다음 숟가락을 떠 먹여줬다.

 

 “이렇게 잘 먹을 거면서 앙탈은 왜 부립니까?”

 

 “미안해요, 이런 호사를 처음 누려봐서 낯서네요. 부끄럽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더 있으니까 많이 먹어요.”

 

 “네에!”

 

 그녀의 씩씩한 대답에 그는 깜짝 놀라 숨을 멈추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친 둘은 크게 웃었다.

 

 죽 그릇에 담긴 죽이 윤슬의 위장 속으로 거의 다 들어갔을 무렵,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둘의 시선이 같이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남 비서가 옷에 묻은 눈을 털며 들어오고 있었다.

 

 “이사장.....님!”

 

 그가 입을 떡 벌렸다.

 

 죽을 떠 먹여주고 있는 이사장님과 죽을 받아먹고 있는 윤슬의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남 비서는 시선을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보다 못한 철인이 일어나 남 비서를 맞으러 갔다.

 

 “새해 해 보러 안 갔어?”

 

 “해가 떠야 해를 보러 가죠!”

 

 “그럼 밀린 잠이나 좀 자지, 여긴 무슨 일이야?”

 

 “이거요!”

 

 그는 선물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뭐야?”

 

 남 비서는 윤슬의 눈치를 한 번 보고는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인 공미 교수님이 보내셨습니다.”

 

 “이걸 왜 받아 와?”

 

 철인이 눈을 부라리며 타박을 했다.

 

 “직접 올 거라는 걸 제가 막는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어디를? 우리 집에?”

 

 철인이 놀라 눈이 커지며 말했다.

 

 “으이쿠! 제가 안 막았으면 이사장님 진짜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남 비서는 스스로 뿌듯해 하며 가슴을 주먹으로 한 번 쳤다.

 

 “그 여자 생각했던 거 보다 이상한 여자네.”

 

 “그나저나 뭐예요? 벌써 진도가 여기까지 나간 거예요?”

 

 남 비서는 철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그의 행동을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가 눈웃음을 지었다.

 

 “헛튼 말 하고 다니면 죽일 거야.”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남 비서의 몸을 한 순간에 얼렸다.

 

 남 비서는 똑바로 서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저는 자랑스런 이사장님과 예쁘고 똑똑한 강 윤슬 교수님의 무궁한 사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철인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 비서를 돌려세웠다.

 

 “아참, 그리고 어젯밤 일은 깔끔하게 정리 됐습니다.”

 

 “고마워, 수고했어.”

 

 남 비서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철인이 선물 상자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걸 어떡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어떡해요? 비서님이 오해했을 텐데.”

 

 윤슬이 침대에서 내려 와 철인에게로 걸어오며 걱정했다.

 

 “걱정 마십시오. 오해 안 하도록 이야기 잘 해 뒀습니다.”

 

 그는 얼른 선물 상자를 뒤로 숨겼다.

 

 “근데 뒤에 숨기는 건 뭐예요?”

 

 “비밀입니다.”

 

 그가 부엌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덩치 큰 양반이 혼비백산 하듯 뛰는 모습이란......

 

 웃겼다.

 

 그녀도 수액을 머리에 얹고 그를 따라 부엌으로 갔다.

 

 “뭔데요?”

 

 그는 미처 숨기지 못한 상자를 다시 뒤로 숨겼다.

 

 윤슬이 점점 다가가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윤슬은 고개를 옆으로 쭉 뻗었다.

 

 그가 막았다.

 

 좀 더 다가가 다시 고개를 옆으로 쭉 뻗었다.

 

 “죽 다 먹었습니까?”

 

 “이사장님이 손 꼼짝하지 말라면서요. 먹여줘야 먹죠!”

 

 “그럼 죽 마저 먹으러 갑시다.”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어 침대로 그녀를 밀고 갔다.

 

 “이제 그만 먹여요. 배 터지겠어요.”

 

 “우리 병원 에이스인데 자꾸 쓰러지면 제가 혹사 시켜서 그런다고 사람들이 날 욕할 거 아닙니까? 어서 먹어요.”

 

 그 후에도 철인은 그녀에게 과일, 떡 케잌 등 간식을 시간, 시간 먹였다.

 

 저녁에 윤슬이 하루 사이에 3kg이나 늘었다는 말에 철인은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

 *

 

 윤슬은 그 날 철인이 해 준 보양식 덕분에 몸 컨디션이 훨씬 좋아진 거 같았다.

 

 사실, 육체적인거 보다 정신적으로 보양이 더 잘 된 것 같았다.

 

 그가 잘해 줄 때마다 매번 반하면서도, 수목장지에서 만났던 그 남자인 걸 알고 난 뒤부터 매일 후회했다.

 

 그 때 유전자 검사라도 해서 혈연관계가 확실히 아니라는 걸 증명해 놓을 걸.

 

 지금은 그녀도 겁이 났다.

 

 혹시나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올까 봐......

 

 자신의 심장 속에 뿌리 내린 철인이라는 나무가 이젠 뽑아내지 못할 만큼 너무 빨리 큰 거 같아서......

 

 그래서 우리가 남매가 아니라고 확신하는 그의 말을 무조건 믿기로 했다.

 

 그는 새해라 바쁜지 시무식 때 본 이후로 몇 주 째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간간이 소문 일보 수현을 통해 그가 영국으로 출장을 갔고, 3월이나 되어야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다.

 

 말도 없이 떠난 그가 왠지 모르게 서운했다.

 

 환청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의 목소리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까지 했다.

 

 “나 아무래도 미친 거 같애!”

 

 그녀는 별관 로비를 걸으며 혼자 중얼댔다.

 

 “스승님이 왜 미쳐요?”

 

 뒤에서 불쑥 나타난 수현이 물었다.

 

 깜짝 놀란 윤슬이 기척 좀 하라고 기염을 토했다.

 

 “스승님 요즘 갱년기세요?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

 

 여성 호르몬이 온 몸에 흘러넘치는데 갱년기라니!!!!

 

 “나 아직 만으로 서른도 안 됐어.”

 

 윤슬은 이를 꽉 깨물었다.

 

 “요즘 젊은 여성들에게도 폐경이 많이 온다잖아요. 전조 증상일 수 있으니 조심하시구요. 우리 걸음에 속도를 좀 더 내어 보아요!”

 

 “왜?”

 

 “내 스승님 이럴 줄 알았어. 오늘 회식 있다고 했잖아요. 다들 지금 스승님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다구요.”

 

 “아~ 인턴, 레지던트도 아니고, 이 정도 짠밥쯤 되면 빠져도 안 되냐?”

 

 윤슬은 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꽐라가 되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무슨 언행을 어떻게 했을지 다음 날 전전긍긍 하는 것도 싫었고, 뇌와 위장에 알콜로 출렁이는 것도 싫었다.

 

 “오늘은 국제 어깨 수술 수련 병원 지정 후에 연수 온 다른 나라 의사들 환영 회식이잖아요. 스승님이 빠지면 어떡해요? 단합과 단결을 중요시 하는 정형외과 과장님 또 불호령 떨어졌다구요!”

 

 “어머머 미안해! 빨리 가자.”

 

 그녀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들 자리 잡고 앉아 한 잔씩 한 뒤였다.

 

 “왜 이리 늦었어? 빨리 와!”

 

 일어나 손짓을 하는 과장 옆으로 갔다.

 

 과장 옆 자리라니 오늘 술독에 빠져 죽겠구나!

 

 그녀는 찹찹한 마음을 어찌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과장 옆에 있는 빈자리에 앉자마자 과장은 찰랑찰랑한 소주 컵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때 과장과 그녀 사이를 파고 든 어떤 사람에 의해 그녀는 그 옆자리로 밀려나야 했다.

 

 이 사람 뭐야? 말도 없이!

 

 하지만 고개 돌려 그 사람을 볼 틈도 없이 과장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건배사를 했다.

 

 “자, 모두들 잔들 들고 우리 병원에 연수 온 선생님들을 환영하며, 최강 정외를 위하여”

 

 “위하여”

 

 과장이 잔을 먼저 부딪쳐 왔다.

 

 윤슬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부딪히고 옆에 앉은 그 사람과도 건배를 하려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철인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3월이나 돼서야 돌아온다던 철인이......

 

 옷도 추리닝 바람인데........

 

 철인은 뭘 그렇게 놀라느냐는 표정으로 윤슬을 쳐다보며 잔을 부딪쳐 왔다.

 

 그를 아직도 보고 있던 윤슬과 다르게 한 템포 빠르게 원샷을 하고는 철인은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술을 넘기느라 바빴다.

 

 재빠르게 윤슬의 손에 든 잔을 뺏어 자신의 빈 잔과 바꿔 놨다.

 

 그리고 공깃밥을 챙겨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내일 손 떨려서 우리 병원 매상 떨어지면 안 되니까 술은 내가 다 마셔줄게요. 강 교수는 밥 먹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그는 여러 가지 방법을 써서 정말 매상의 적 술로부터 그녀를 지켜줬다.

 

 소주 2병 분량의 잔을 비우고도 그는 자세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멀찌감치 앉은 수현이 이사장님 노래 듣고 싶다며 불러 달라고 청했다.

 

 난처한 표정으로 윤슬을 쳐다보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요즘 유행하는 노래를 모릅니다.”

 

 “괜찮아요.”

 

 “분위기를 띄울 신나는 노래도 잘 못합니다.”

 

 “괜찮아요.”

 

 “그럼, 제 노래를 듣다가 혹시 잠이 오면 잠시 주무셔도 됩니다.”

 

 한 사람은 빼고......

 

 입술까지 올라 온 말을 애써 삼켰다.

 

 그는 윤슬을 힐끗 쳐다봤다.

 

 “네~”

 

 노래방 기계 옆에 있던 수현이 철인이 말한 노래의 번호를 눌러 주었다.

 

 그는 목을 가다듬더니 부끄러운지 목을 한번 쓸어 내렸다.

 

 반주가 흐르니 그가 눈을 감고 입술을 뗐다.

 

 귀에 익은 노래였다.

 

 목소리도 노래와 잘 어울리고 가사도 어떻게 그렇게 또박또박 전달이 잘 되게 발음을 하는지......

 

 자리에 있던 여자라는 사람들은 눈에서 꿀을 떨어뜨리며 그를 보고 있었다.

 

 윤슬도 여자라는 사람이었기에 마찬가지였다.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눈을 떴다.

 

 그를 바라보고 있던 윤슬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윤슬을 틈틈이 바라보며 노래를 이어 불렀다.

 

 김동률의 취중진담이라는 노래가 이렇게 달달한 노래였던가?

 

 윤슬도 귀가 호강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네 앞에 서면/ 준비했었던 말도 왜 난 반대로 말해 놓고/ 돌아서 후회하는지/ 이젠 고백할게/ 처음부터 너를 사랑해 왔다고/ 이렇게 널 사랑해♪

 

 고음도 안정적으로 올라갔다.

 

 회식장 안은 그의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여자 사람들은 아예 철인 앞으로 모여 들어 입에서는 침을, 눈에서는 꿀을 떨어뜨리며 철인의 노래를 감상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23 사랑의 시 2019 / 11 / 6 244 0 7506   
22 사랑, 그 낭만에 대하여 2019 / 11 / 4 235 0 6145   
21 12월 그 때 그 날 우리 2019 / 11 / 1 226 0 5886   
20 제20화 어김없이 2019 / 10 / 30 241 0 6929   
19 아스라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 2019 / 10 / 28 231 0 9290   
18 미움 받을 용기 2019 / 10 / 27 218 0 7317   
17 Yes i am 2019 / 10 / 22 238 0 5240   
16 하루살이 2019 / 10 / 19 250 0 7021   
15 미로 2019 / 10 / 18 224 0 6574   
14 권선징악이 필요해 2019 / 10 / 16 262 0 7071   
13 말 못할 이유 2019 / 10 / 12 243 0 6569   
12 오해 2019 / 10 / 9 224 0 6667   
11 외눈박이 2019 / 10 / 5 230 0 6218   
10 추리닝 천재의 우아한 아침 2019 / 10 / 3 235 0 5952   
9 괜찮다가도 2019 / 9 / 28 239 0 7644   
8 그녀의 엄마 = 나의 어머니=? 2019 / 9 / 24 216 0 7082   
7 두번째 첫 만남. 2019 / 9 / 21 228 0 6871   
6 기억나지 않은 사람에 대한 기억. 2019 / 9 / 18 236 0 5692   
5 인간의 상처를 닮은 꽃 2019 / 9 / 13 235 0 6237   
4 내가 모르는 내 안의 그녀 2019 / 9 / 10 239 0 5961   
3 동 트기 전의 어둠을 닮은 그녀. 2019 / 9 / 8 232 0 6492   
2 제2화 꼴뚜기 왕자 인간 세상에 오다2 2019 / 9 / 3 228 0 6249   
1 제1화 꼴뚜기 왕자 인간 세상에 오다. 2019 / 9 / 1 395 0 7786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