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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미래는 언제나 해피엔딩
작가 :
작품등록일 : 2019.10.18

요즘은 9포 세대라고 합니다. 연애, 결혼, 출산, 취업, 내집 마련, 인간관계, 희망, 건강, 외모관리. 이 모든 것을 포기한 세대라고 합니다. 사회가 이렇다보니 명리학과 관상, 사주가 유행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불운을 피하고자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관상학에서는 말합니다. 얼굴보다는 몸, 몸보다는 심신이다, 라고요. 즉 마음만 확고히 먹고 올곧게 행하면 비록 정해져 있는 팔자라도 팔자대로 흐르지 않고 조금이라도 좋게 운세를 틀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인생은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현대 사회에서 미래를 볼 수 있고 정해진 순리대로 사는 여주인공과 미신 따윈 믿지 않는 남자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누구라도 마음을 옳게 먹고 최선을 다한다면 비록 나아질 거 없어 보이는 미래라도 조금씩 희망의 물꼬리가 트인다는 게 전해지길 원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8
작성일 : 19-11-06 13:49     조회 : 209     추천 : 0     분량 : 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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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버스에 아가씨는 없었다. 와이셔츠가 푹 젖은 채 거친 호흡을 내뱉는 나를 테러범 보듯 바라보는 승객들만 있을 뿐이었다. 혹시 인상 더러운 걸어다니는 뼈다귀를 못 봤느냐는 내 말에 버스기사는 이미 전 정류장에 내렸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을 보았다. 4시 50분이었다.

  오, 주님.

 

  나는 버스정류장에 앉아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미래를 본다는 헛소리나 자기가 다치게 되어 있다는 말. 대체 왜 저러는지 알 수 없었다. 만약을 미래를 본다면 자기가 언제 죽을 지도 안다는 말일까? 자기에게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도 다 안다는 말이 아닌가? 그래서 자기가 이마를 다친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사실이라면…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 솟아있는 건물들 사이로 공사현장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앞 건물의 2층이 간판을 다는 공사 중이었다. 멍하니 볼 필요가 없었다. 모든 공사 현장을 샅샅이 찾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 곳에 그녀가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음식점 인테리어 작업을 하는 곳까지 찾아갔을 때 5시가 넘어 있었다. 주위에 모든 공사 장소에서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나를 놀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골탕 먹이고 집으로 돌아갔을 지도 모른다고. 차라리 그런다면 정말 눈물나게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가 다치는 것보다 내가 바보가 되는 것이 백배 천배 나은 일일테니깐. 그래서 나는 공사 중인 가게 옆에 대충 걸터 앉아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전화를 받자마자 누나가 물었다.

  “나 지금 미치겠어. 더 이상 소금 뿌릴 데도 없어. 가정부가 엄청 째려본단 말이야.”

  “그 여자 왔어?”

  “무슨 여자?”

  아니구나. 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너 설마 아가씨랑 떨어져 있어?”

  “아니야.”

  “맞지? 너 아가씨 잃어버렸지?”

  “아니라니깐.”

  “너 만약에 아가씨한테 뭔 일 생기면… 우리 다 끝이야.”

  “알아. 그럴 일 없어. 절대로.”

  “내 말 잘 새겨…”

  난 전화를 끊었다. 끊었던 담배가 절로 생각이 났다. 핸드폰 액정에는 5시 10분이라고 써있었다. 4분 후면 내 목숨도 날아가겠지. 누나 미안해.

  “어이, 아저씨.”

  앉아서 무슨 변명을 해야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드니 페인트가 얼룩덜룩 묻은 체크무늬를 입은 노인네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목장갑을 낀 그의 손에는 시멘트가 말라붙은 통이 들려있었다.

  “일할 데 찾는 거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데 아까 반장한테 공사현장은 왜 물어본거요?”

  그가 건물 옆에 세워진 봉고차에 공사자재를 담는 뚱뚱한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까 여기 근처에 공사현장 더 없냐고 물어봤을 때 퉁명스럽게 대답했던 남자였다.

  “일 하려면 저 사람 밑에서 일하지 마쇼. 순 양아치야.”

  “그게 아니라…”

  나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충고 고마워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가려다 잠시 멈춰서 나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강렬하게 빛을 내뿜는 태양이 그의 그을리고 주름진 피부를 밝게 비췄다.

  “일자리 찾으면 여기서 이러지 말고 수수료 좀 떼도 인력사무소를 찾아가야지. 이 쪽에 일 많아. 저기 뒤쪽 건물도 저번에 잡부 좀 뽑더만.”

  “뒤쪽 건물이라뇨?”

  “여기서 뒤로 좀만 가면 있잖아.”

  나는 벌떡 일어나 뒤를 쳐다 보았다.

  “여기선 안 보여.”

  남자가 말했다. 그는 바로 옆에 상가들이 밀집한 곳을 가리켰다.

  “저어기 건물 사이로 들어가서 골목으로 들어가면 있어.”

  숨통이 다 트이는 기분이었다. 워낙 건물들이 밀집해서 있는지도 몰랐던 곳이었다. 나는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노인은 아무 것도 아니란 표정이었다.

  “젊은이, 열심히 사쇼. 그래야 늙어서 후회 안 해.”

  맞는 말이었다. 백번 만번 지당한 말씀이었다.

 

  건물 사이사이로 들어가니 인적이 완전히 드문 골목길이 나왔다. 나는 팬티가 가득 젖도록 뛰었다. 시간이 별로 얼마 남지 않았다.

  골목이 끝나는 지점에 비계가 쌓아올려진 3층 짜리 시멘트 건물이 보였다. 몇몇 인부들이 안전장비도 하지 않은 채 비계 위에 올라가 있었고 판넬을 들고 올라가는 인부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그녀가 있었다. 그녀는 남의 속도 모르고 마치 볼 일이 있는 사람처럼 태연하게 건물로 향하고 있었다.

  ‘이따가 제가 다칠 예정이거든요.’

  그녀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진짜 공사장에 있을 줄이야. 그녀 말이 맞다면 그녀는 지금 다치려고 하고 있는 것이었다!

  멍청한 계집애!

 

  “아가씨!”

  그녀는 나를 돌아보았다. 그녀가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망자라도 본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위험해요! 뭐합니까!”

  “오지 말아요!”

  그녀가 소리쳤다.

  “뭘 오지 마! 위험하다니깐!”

  “오지 말라면 오지 마!”

  그녀는 나를 슬쩍 바라보다 눈을 꼭 감았다. 그 순간 위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판넬을 들고 올라가던 노동자 한 명이 중심을 잃고 판넬을 놓친 것이다. 판넬이 바닥에 떨어지자 조잡하게 얽혀있던 비계들 흔들리더니 올라타있던 노동자 하나가 중심을 잡느라 버둥거렸다. 그 바람에 노동자의 공구벨트에서 무언가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에게로 향했다.

  다행히 내가 더 빨랐다. 난 그녀에게로 달려들어 팔을 잡고 내 쪽으로 끌어왔다. 노동자에게 떨어진 공구는 바닥에 재빠르게 추락했다. 일자드라이버였다. 일자드라이버는 바닥에 꼿꼿이 꽂혔다. 그녀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이런 젠장.”

  내가 중얼거렸다. 저것이 그녀에게로 달려들었더라면 그녀는 머리에 멋진 뿔 하나를 갖는 것이었다.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죽을 뻔 했잖아요.”

  그녀는 나를 밀쳐내더니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분침과 초침은 각각 오와 십사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 다섯시 십사분에 그러기로 되어 있어요. 공사 자재가 떨어져서 여기.’

  그녀의 말이 떠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매만졌다. 이마는 여전히 희고 매끄러울 뿐이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천천히 위를 쳐다보았다. 몇몇 인부는 내 목소리에 밑을 쳐다 보았지만 나머지 인부들은 어떤 일도 일어난 지 모른 채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마에 일자드라이버가 꽂힐 뻔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이게 무슨….”

  “날 구했어요?”

  묻는다기보다 중얼거리는 것에 가깝게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마도요.”

  그녀가 다시 시계를 보며 입을 틀어막더니 내게 시선을 던졌다.

  “당신은 날 구했으면 안 됐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화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빤스가 다 젖고 비상금 5만원까지 쓰면서까지 구해줬는데 이딴 헛소리나 하고 있다니!

  “큰 일 날 뻔 했다고! 알아?”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다리가 휘청거리는 바람에 나는 다시 한 번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만지지 마!”

  난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침을 꿀꺽 삼켰다.

  “만지지 마요. 진짜 큰 일 날 수도 있어요.”

  그녀는 잠시 내 표정이라도 살피듯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걷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겁에 질린 표정은 처음이었다.

 

  공사장을 나와 도로변으로 나왔을 때 나는 앞서서 그녀를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화들짝 놀라더니 내 손을 뿌리치려다 잘 되질 않자 남은 손으로 내 몸을 사정없이 후려치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착각하는 것 중 가장 큰 착각이 자기 주먹은 안 아프다고 착각하는 것인데 주먹은 주먹이다. 나는 아픔을 참을 수 없어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진정해요! 쫌!”

  터져나온 내 목소리가 서울 하늘을 쩌렁쩌렁 울렸다. 평화롭게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난 내 돈줄을 진정시키는 게 먼저였다. 흥분한 사냥개처럼 빳빳하게 경직되었던 그녀의 손에 힘이 스스르 풀려나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는 따라서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대체 왜 이러는 겁니까?”

  “절 구했으면 안 됐어요. 구할 수도 없었고.”

  “무슨 말이에요. 확실히 설명해줘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데요?”

  그녀는 잠시 아무 말도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마다 우릴 바라보고 가는 게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녀도 그걸 신경 쓰는지 우릴 쳐다보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일단 놓죠.”

  “도망가지 않는다면.”

  “알았어요.”

  난 손을 풀었다. 그녀는 손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많이 아프냐고 물어보려다가 많이 아플 게 당연했기에 묻지 않기로 했다.

  그녀는 이 상황 자체가 짜증 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 오늘 공사 현장에서 다치기로 되어 있었어요.”

  “다치기로 되어 있다니.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여기 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제 미래에는 그렇게 되어 있다고요.”

  “아직도 미래를 볼 줄 안다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헛소리가 아니에요! 난 정말로 미래를 볼 줄 알고 심지어 제가 언제 죽는지까지 알아요.”

  난 코웃음을 쳤다.

  “언제 죽는데요?”

  “이번년도 8월 15일이요.”

  그녀가 덤덤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여행계획이라도 물은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이 몇 월 며칠인지 생각했다. 7월 14일이었다. 그렇다는 말은…

  “한 달 남았어요.”

  내 생각이라도 읽은 건지 그녀가 말했다.

  “믿으라는 겁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믿었으면 좋겠어요.”

  “왜요?”

  그녀가 침을 삼켰다. 난 움직이는 그녀의 울대를 바라보았다. 내 이마에서는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려 눈썹에 맺혔다. 내가 눈썹에 땀을 닦을 때 그녀가 말했다.

  “한 달 뒤 당신도 죽으니깐.”

  난 그녀의 방에서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을 생각했다.

  “한 달 뒤 차 사고 당해서 죽는다는 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돼.”

  “그러면 제가 당신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있는데요?”

  “찾아봤겠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아니면 사람을 시켰다거나.”

  “엉덩이에 점까지?”

  “우리 누나가 좋아요에 미친 또라이에서 내 비밀을 SNS에 올렸거나…”

  나는 말을 흐리며 입을 다물었다. 내 엉덩이에 점이 좋아요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특히 난 털까지 났으니깐.

  “다 연석 씨가 말해준 거예요.”

  그녀가 말했다.

  “미래에 우리는 친구가 되거든요. 그래서 술 한 잔 하면서 비밀을 털어놓은 거에요. 난 연석 씨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4학년 때 학교에서 배탈에 걸려 바지에 똥 지렸다는 것부터 혹한기 때 엄지발가락이 동상에 걸려서 아직도 감각이 없다는 것까지. 더 말해줘요?”

  충분했다. 특히 바지에 똥을 지린 건 나도 잊고 있었던 비밀이었다. 어느 흥신소도 이렇게 최선을 다해 알아보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는 땀을 닦았다. 땀이 걷잡을 수 없이 나고 있었다. 불쾌하고 끔찍하고 짜증났다. 더위를 먹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쩌면 지금 먹었거나.

  “돌아가요, 연석 씨. 돌아가서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말아요. 부탁입니다.”

  난 그녀가 아까부터 계속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말하고 있었다. 차갑게 나를 쳐다보던 눈빛은, 그 기운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것도 미래에 포함되어 있는 겁니까?”

  내가 말했다.

  “내가 미래를 볼 줄 안다고, 위험하다고 돌아가라고 저한테 말하는 거 말이에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절대요. 연석 씨가 오는 것까지가 펼쳐진 미래였고 그 다음부터는 제가 임의로 변경한 거예요. 적어도 나 때문에 죽는 건 피하게 하려고.”

  “피하게 한다?”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이지만, 당신이 저 때문에 죽는 운명이니깐 차라리 나를 만나지 않는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에요. 그래서 당신과 친하게 지낼 미래를 없애려고 했던 거고.”

  “그 말은 미래도 바꿀 수 있다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운명은 바꿀 수 없어요. 정해진 미래를 어긋나게 되면 다른 결말의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어긋난 시점에서 결말은 똑같은 새로운 미래가 펼쳐질 뿐이에요. 종착점이 정해진 기차가 다른 선로에 들어선다고 다른 지점을 종착점으로 삼을 수 없는 것과 같다고요. 먹기로 되어 있으면 먹어야 되고 자기로 되어 있으면 자야 되고 다치기로 되어 있으면 다쳐야 된다는 말입니다. 이해 돼요?”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만졌다.

  “제가 공사장을 지나가다 다치기로 되어 있었듯이요.”

  “그 말은 달리 말하면 종착점은 같으니깐 저랑 친하게 지내든 안 지내든 어떻게든 내가 당신을 구하려다 죽는다는 뜻으로 들리는데, 어떻게 해요? 헛수고 하셨네요.”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입술을 씰룩였지만 그 뿐이었다. 나는 이런 무의미한 짓은 그만하고 싶었다. 미래가 어쩌고 저쩌고. 아마 군대를 가기 전이라면 믿었을 지도 몰랐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세상의 모든 부조리를 다 겪은 대한의 건강한 남아였고 이런 농담을 받아줄 시간이 없었다. 날은 더웠고 배는 고팠다.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돌아가자 말을 꺼내려 할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보다 나으니까요.”

  나는 입을 벌린 채 딱 멈췄다. 날렵한 손목이 목을 탁 친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뱉은 말에 비해 조금의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사랑이라뇨.”

  내가 물었다.

  “날 사랑해요?”

  “사랑하게 돼요.”

  그녀가 대답했다.

  “미래에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가 돼요.” 마치 그냥 자려는 아이에게 이 닦고 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확고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녀의 원피스가 여름바람에 하늘거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내 팔뚝보다 얇은 흰 허벅지가 보였다. 우리 동네 허수아비에 거적데기를 입혀놓은 느낌이었다. 내 스타일은 아닌데.

  “믿기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그녀가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나도 그랬으니깐.”

  난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그녀는 말을 이었다.

  “어찌됐든 우리는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당신은 차에 치이려는 절 구하려다 같이 죽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요. 차라리 당신이 절 구해서 죽는다면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길 바래요. 전 더 이상…”

  그녀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걸 볼 수 있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는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더 이상 사랑하는 사람이 저 때문에 죽는 걸 원치 않아요. 그러니 이제 절 찾아오지마세요.”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들고 있던 정장 자켓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땀을 잘 흘리는 날 위해서 누나가 닦고 다니라고 넣어줬던 손수건이었다. 내가 손수건을 건네자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다 나를 쳐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제발 저한테 정주지 말아요.”

  제발. 그녀는 내게 애원을 했다. 부탁도 아닌 애원. 그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나를 지나쳤다. 나는 두 번째로 떠나는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아까와 달리 그녀를 쫓아갈 수 없었다. 그래, 그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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