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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혼자서는 못 죽습니다
작가 : 김백야
작품등록일 : 2019.10.21

무슨 짓을 해도 죽을 수가 없다.

 
11화: 나도 모르는 새에 살인자가 되었다
작성일 : 19-11-06 11:17     조회 : 216     추천 : 0     분량 : 5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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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이완은 비틀거렸다. 집에 가는 내내 헛구역질을 했다. 처음엔 공중화장실을 찾아 다녔지만, 나중엔 그냥 길거리에서 웩웩 속을 뒤집었다. 나오는 것도 없었다.

 

 손이 덜덜 떨렸다.

 

 '내가 살인자라고?'

 

 원망할 사람도, 기댈 사람도 없다. 이완은 유성지의 차가운 시선을 떠올렸다. 벌레 보듯 혐오하는 눈초리였다. 이완은 유성지보다 키가 훨씬 컸다. 그런데도 한참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

 

 그의 작품을 아무 걱정 없이 좋아할 수 있었던 대학생 때보다 더욱 그랬다.

 

 "현주야."

 

 서현주라면 이럴 때 어떤 말을 했을까. 버스에서 내린 이완은 집에 들어서지 않고 담장에 기대 섰다.

 

 지은 지 삼십 년도 넘은 빌라의 담장은 거무죽죽한 색이었다. 곳곳에 먼지와 거미줄이 끼어 더러웠다. 이완은 핸드폰을 꺼내 서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갔다. 이완이 배터리를 풀로 충전해 둔 덕택이었다. 아무도 받지 않았다. 무심한 신호음은 음성 메세지를 남기라는 안내로 넘어갔다.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되오니...'

 "현주... 현주야."

 

 이완은 힘없이 중얼거렸다. 서현주라면, 유성지의 말이 틀렸을지 옳았을지 어떻게 확신하냐고, 설령 옳다고 해도 네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했을 거였다. 아니다. 어쩌면 이완을 책망할지도 몰랐다. 너는 살인자라고, 유성지 작가가 널 경멸하는 것도 이해된다고.

 

 서현주가 어떤 성격이었더라. 이완은 음성 사서함으로 넘어간 전화를 끊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왜 사라진 거야, 현주야."

 

 빈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어."

 

 대답은 없다.

 

 "왜 이런 세상에 떨어지게 된 거야. 살려줘."

 

 이완은 쭈그려 앉았다가, 담담하게 지껄여 보았다. 대답은, 없다.

 

 검은색 트렌치코트에 거미줄 몇 개가 들러붙었다. 금세 지저분해졌다. 이완은 가죽 장갑 낀 손으로 코트를 털어냈다가, 이게 무슨 궁상인가 싶어 일어섰다.

 

 "어떻게 해야 하지."

 

 혼잣말이 나왔다. 미친 사람 같았다.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세상이 바뀐 걸 알았던 둘째 날처럼 이완을 가리키며 미친 사람 아니냐고, 친한 사람이 할당량을 못 지켜서 터졌나 봐, 같은 말을 중얼거릴 거였다. 그런 말조차 지금의 이완에겐 간절했다.

 

 길거리에서 소리치며 머리를 감싸고 우는 정신병자, 드라마나 영화에서 숱하게 지나간 그들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생각하자. 괜찮아.'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잠그며 이완은 애써 자신을 위안했다. 이완은 침대 옆 탁자로 다가가 습관처럼 서현주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예비 화면의 부재중 전화가 7통에서 9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완은 서현주의 핸드폰을 소중히 다루었다. 배터리 백 퍼센트를 유지했고, 충전기에 오래 꽂아 두면 오류라도 일어날까 두려워 주기적으로 충전기를 교체했다.

 

 '어차피 나는 죽지도 못해. 계속 살아가야 해.'

 

 손을 씻었다. 가볍게 세수도 했다. 이완은 베란다로 향해 트렌치코트를 털어낸 뒤 걸었다. 방으로 돌아와 검은색 폴라티와 짙은 색 청바지를 벗었다. 옷을 빨래 바구니에 정리해 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이완은 할당량 카드를 뒤집어 보았다.

 

 ...

 11월 21일 (금)

 8시 23분

 날씨: 바람이 차갑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모두 쌀쌀합니다.

 

 금일 할당량:

 서울매트로 공익 광고 3차 편집(1/1)

 ....

 

 할당량 카드로 시간을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시계라고 했다. 일 초라도 어긋나서 일을 제 때 마치지 못하면 곤란하니까.

 

 '최소한의 배려 같은 걸까.'

 

 이완은 원하는 게 없었다. 떨어질 곳도 없었다. 양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던 이완은 고개를 들었다. 유성지의 말이 떠올랐다.

 

 '오류라고 했지.'

 

 이완이 죽지 않는 게 오류라면, 고칠 방법도 있다는 뜻 아닌가. 유성지는 분명히 '가끔 그런 날이 있다는 얘기가 있으니까' 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할당량을 어겨도 죽지 않는 게 이완 뿐이 아닐지도 몰랐다. 이완은 번개같이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부팅을 기다리는 시간이 초조했다. 마우스를 쥔 손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이완은 반대쪽 손으로 오른손을 잡아 고정해야 했다.

 

 아는 포털이란 포털은 전부 띄운 이완은, 검색어를 쳐 넣기 시작했다.

 

 '할당량'

 '할당량 안 지켰을 때'

 '할당량 안 죽는'

 '안 죽는 법'

 

 연관 검색어가 주르륵 떴다. 할당량 없이도 안 죽는 법을 알아볼까요, 열심히 할당량을 지켜야겠죠, 우리를 위해서기도 하니까요, 이렇게 할당량 없이도 안 죽는 법을 알아보았어요. 이건 쓸데 없는 거니까 넘기고. 까만 눈동자가 화면 위를 바쁘게 돌아다녔다. 마우스 휠을 돌리던 이완은 곧 찾던 게시물을 발견했다.

 

 

 >>오늘 할당량 못 채웠는데 안 죽은 썰 푼다.

 

 오늘 알바 갔어야 했는데 못 갔거든?

 아침에 일어났는데 머리가 너무 아픈 거

 12시 지나서 할당량은 떴는데 올해 휴가는 이미 써 버렸고

 진짜 뒤질 것 같아서 이러다 보면 죽겠지 계속 누워있었는데

 자정 지나도 안 죽더라고

 인증샷 올린다

 죽기 전에 마지막 사진이라고 생각하고 찍었는데

 지금 난 살아있음 ㅇㅇ

 나 무슨 특수 체질 그런 거 아니냐

 내일도 알바 안 갈거ㅋㅋ 살아있는지 도전해본다 맞으면 개꿀

 인증 남기겠음

 

 게시글 아래로 자정 오 분 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카드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덧글이 이어졌다.

 

 ㄴ 주작임?

 ㄴ 구라 아냐?

 ㄴㄴ 이거 지난번에 S포털에서도 떴음. 가끔 안 죽는다고.

 ㄴ 한 번 안 죽은 사람이 또 안 죽은 선례 있음?

 ㄴㄴ 없을걸

 ㄴ 그러면 얘 위험한 거 아님? 또 시도한다잖아

 ㄴ 냅둬 응원한다

 ㄴ 야 진짜 안 죽으면 인증해라

 ㄴ 조심해 죽을지도 모르잖아

 ㄴ 너 어디 잡혀가는 거 아님? 연구 기관 같은 데로

 

 덧글은 하루 날짜가 지난 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ㄴ 얘 인증샷 안 올라왔어

 ㄴ 깜빡했겠지

 ㄴ 진짜 죽은 거 아님?

 ㄴ ㄷㄷ;;;

 ㄴ 살아있어?

 ㄴ 신고해야 되는 거 아니냐

 ㄴ 살아있어???

 

 

 연도를 거슬러 올라가면 비슷비슷한 글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시기는 전부 달랐다. 유성지의 말대로 가끔 일어나는 오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다.

 

 이틀 이상 할당량을 채우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이완 같은 케이스도 발견할 수 없었다.

 

 '난 하루가 아니라 이 주를 안 지켰어. 게다가 할당량 뿐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안 죽잖아.'

 

 고민하던 이완은 오랜만에 대학 홈페이지를 켰다. 학부생일 동안 지긋지긋하게 들락거렸던 페이지였다. 졸업생 신분으로 접속한 이완은 논문을 검색했다. 할당량의 의의, 할당량은 왜 존재하는가, 할당량과 인간의 관계... ...이런 철학적인 건 말고.

 

 '여기 있다.'

 

 [할당량과 죽음에 따른 통계_연구]

 

 비슷한 제목의 논문을 전부 결제한 이완은 처음 것부터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없어.'

 

 마지막 논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쐐기가 박혔다.

 

 한 번 이상 오류가 뜬 사람이 연속적으로 죽지 않는다는 보고는 없다.

 

 '나만 이런 거야. 하루아침에 세상이 바뀐 것과 연관이 있을까. 나인 이유가.'

 

 녹차를 연거푸 들이키던 이완은 생각했다.

 

 '왜?'

 

 이완이 바라본 이 세계는 인과가 확실했다. 간단해서 잔인하기까지 한 공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할당량이 있고, 그걸 지키지 않으면 죽는다. 이완은 동물의 할당량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논문을 클릭했다. 호기심이 생겨서였다.

 

 '인간의 발 밑에서 개미도 거미도 사마귀도 모든 동물들이 불시에 터져 나간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할당량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인간은 고지능 포유류이기 때문에, 놀고 싶은 욕구가 동물보다 월등히 크다.'

 

 이완은 마지막 줄을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땅 위에서 제일 많이 터져 나가는 종족은 인간이다."

 

 

 논문 스무 개를 내리 읽자 눈이 뻑뻑했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노려보던 이완은 회사 드라이브에 접속했다. 유성지의 연락처를 찾기 위해서였다. 이완의 명함을 본 유성지가 광고를 작업한 적 있다는 말을 흘렸던 것이다.

 

 '유성지 작가에게 연락해야겠어.'

 

 이완이 죽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을 터였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비틀린 세상에서 이완만이 예외라면, 이완 역시 서현주처럼 어느 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지도 몰랐다.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하고.

 

 '나만 현주를 기억하는 게, 나 역시 현주처럼 사라질 사람이라 그렇다면? 아니, 아니야,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아......'

 

 이완은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죽는다고 하더라도 기억되고 싶었다. 죽지 않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썩은 동아줄과 같은 생각일지언정 놓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유성지 작가와 마주친 것도 우연이 아닐지도 몰라. 분명 까닭이 있으니까 그렇게 되었던 게. 그 작가가 어떤 힌트가 되어줄지도 모르잖아.'

 

 일하지 않으면 타인에게 할당량이 넘어가는 걸 알려준 것도 유성지였다. 이 세계에선 상식에 가까워 보였지만, 이완은 멋대로 의미를 두기로 했다. 유성지를 동경했던 과거의 향수도 한몫 했을 거였다. 이완에게 유성지는 현주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었다.

 

 사원용 페이지에 들어가니 락이 걸려 있었다. 회사 컴퓨터에서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둔 의례적인 거였다.

 

 '그러고 보면, 최근엔 집에까지 업무를 가져온 적은 없었지.'

 

 퇴근한 이후로 할당량이 갱신되는 일은 잘 없었다. 주 대리가 말하기로는, 직급이 애매하게 높고 중간일 수록 잡무가 많다고 했다.

 

 '떠넘기기 쉬워서 그런 걸까. 하위 직원에게 맡기기는 불안하고, 일을 처리할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을 테니까.'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주 대리 같은 사람이었다.

 

 '내 업무는 누가 처리했을까.'

 

 주 대리, 아니면 다른 팀 사원들일지도 몰랐다. 이완이 복귀하자마자 늘어놓은 주 대리의 타박은 화풀이였을지도 몰랐다. 이완을 걱정해서가 아닌, 자신의 업무가 늘어났음을 알리는 잔소리. 그렇다고 해도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변함없었다. 회사에 나가지 않았던 날들이 떠올라 괴로워졌다.

 

 침대에 누워 있기만 했을 때도 힘들었는데, 진실을 알게 된 지금은 더 힘들었다.

 

 '정신차리자.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이완. 몰랐잖아......'

 

 이완은 스스로에게 형편없는 위로를 중얼거렸다. 락을 손쉽게 뚫렸다. 목록을 뒤적이던 이완은 유성지의 연락처를 기어코 찾아냈다.

 

 마음이 급했다. 이완은 망설임도 없이 유성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갔다. 초조한 마음에 원룸의 끝에서 끝까지 왔다갔다 걸었다. 서현주가 있었다면 정신 사나우니 그만 좀 하라고 말했을 터였다.

 

 ...

 11월 22일 (토)

 1시 17분

 날씨: 눈이 내립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

 

 금일 할당량:

 유성지 작가의 연락처 알아내기(1/1)

 유성지와 통화하여 약속 잡기(0/1)

 ...

 

 한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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