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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92년생 박정희(貞僖)
작가 : 명약관화
작품등록일 : 2019.11.4

어느날 세상이 멸망하고 괴물들이 우후죽순 나타난다.
부대 복귀 날 뒤집힌 버스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군인, 박정희.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낮은 그는 위기 속에서 갈팡질팡하는데...
우연히 각성한 성좌와 함께 '마음이란 무엇인지' 점점 깨달아간다.

 
걷지 못하는 자(2)
작성일 : 19-11-06 09:33     조회 : 184     추천 : 0     분량 : 5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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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우우웅, 휘몰아치는 배기음.

 

 엑셀을 밟자마자 시원하게 쭉쭉 나가는 차.

 

 거의 4000cc에 맞먹는 배기량과 전륜구동의 힘이다.

 

 ‘내가 사고 싶었던 찬데’

 

 비슷한 모델인 맥스크루즈보다 훨씬 좋은 연비에 8단 자동미션과 애킨슨 사이클 엔진.

 

 최대한 출력손실을 제어해서 올해 출시한 현대의 기린아, 팰리세이드(PALISADE).

 

 아, 펠리세이드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태평양 풍경이 내다 보이는 캘리포니아 남부에 위치한 주택지구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뭐 그렇다구.

 

 아무튼 이 차를 사기 위해 그동안 적금을 4천만원가량 모아 놨는데 세상이 멸망할 때가 되서야 타게 되다니···

 

 지나가면서 박살나 있는 은행들을 볼때마다 눈물이 찔금 나올 것 같았다.

 

 타인에 대한 감정은 철벽 같으면서도 자기 자신에게는 존나게 솔직하다.

 

 멍청한 가슴 같으니라고.

 

 국민, 중앙농협, 우리, 하나··· 광주은행까지.

 

 시벌, 살아있는 건 어디 편의점 안 ATM밖에 없냐.

 

 “어디 불편한가?”

 

 “아뇨, 그냥 생각 좀 하다가··· 속, 속도 안 늦추셔도 됩니다.”

 

 내가 자꾸만 들썩거리자 신경이 쓰였는지 속도를 낮추는 어르신.

 

 백미러 뒤로 우리 차를 잡으려고 점프했다가 바닥에 처박힌 돼지 괴물이 보였다.

 

 조금만 더 엑셀을 풀었으면 바로 잡혔을 것이다.

 

 “걱정하지 말게, 내 무슨 일이 있어도 광주역까지 데려다주겠네.”

 

 다시금 풀악셀을 밟으며 신기와도 같은 핸들링을 보여주는 어르신.

 

 우리가 달리고 있는 도로에는 깨진 유리창과 찌그러진 차, 그리고 몇몇 괴물들이 입가에 피를 묻힌 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어르신은 그 사이를 귀신 같이 쏙쏙 피해갔다.

 

 어르신 말대로 5분도 안돼서 광주역에 도착할 것 같았다.

 

 ‘모텔장사 하기 전에 직업이 레이서셨나?’

 

 겉만 보면 60세는 훌쩍 넘어 보이는데, 핸들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의 핏줄이 젊은이의 그것처럼 발딱 서 있었다.

 

 “어르신, 근데 뒤에 보따리들은 뭡니까?”

 

 후탑석 그러니까 뒷자석에는 비단 보자기로 곱게 싸인 물건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내가 광주역에 가야한다고 차를 빌려달라고 하니까, 어르신이 잠깐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모텔 안에서 가져왔다.

 

 지금이 명절도 아니고 뭘 저렇게 꽁꽁 싸맸지?

 

 “···지금 타고 있는 차, 우리 아들이 사준 거라네.”

 

 비단 보자기 위로 울룩불룩 솟아난 형상들이 모두 뒤죽박죽이었다.

 

 “여름이면 땀띠 난다고 얇은 셔츠를, 겨울에는 춥다고 패딩을···”

 

 쿵! 눈 앞의 조그만 괴물이 얼쩡거렸지만 어르신은 핸들을 틀지 않았다.

 

 “내가 발이 아프다고 하니 족욕기랑···”

 

 보자기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들과의 추억이리라.

 

 “효자군요.”

 

 “···.흰머리 보기 싫다고 흐윽··· 젊게 살라고, 염색약도 어찌나 가져다 놓았는지··· 끅.”

 

 끝내 다시금 울음을 터뜨리는 어르신.

 

 속에서 북받쳐 오르는지 어르신은 핸들에 고개를 박고는 차를 세웠다.

 

 벌컥 하고 열리는 문.

 

 광주역이었다.

 

 다행히 아직 광주역은 시설물이 파괴되지 않았는지 겉은 멀쩡해 보였다.

 

 마음 속 드는 안도감에 뒤를 돌아보자 어르신이 이상한 짓을 하고 있었다.

 

 “뭐하십니까?”

 

 트렁크에서 꺼낸 20리터 말통을 손에 들고는 차 여기저기에다 쏟아 붓고 있었는데, 투명한 기름이 찰랑거렸다.

 

 심지어 차 내부에다가도 뿌리고 있었다.

 

 “다가오지 말게!”

 

 쾅! 하고 닫혀진 문 소리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광주역 근방은 터미널과 달리 수정구가 별로 안 보였는데,

 

 그 덕분인지 주변에 괴물들이 보이지가 않았다.

 

 있다면 우리가 타고 온 팰리세이드를 멀리서부터 쫓아온 괴물들 정도?

 

 워낙 쾌속질주로 여기까지 달려왔기에 괴물들이 이 곳에 당도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었다.

 

 “이름이 박정희라고 했나?”

 

 “예.”

 

 운전석에 탑승한 어르신이 창을 내리고 내 쪽을 바라봤다.

 

 아까 모텔에서 나오면서 이름을 물어보길래 고민하다가 알려줬다.

 

 “자네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르신의 얼굴을 감싸고 있는 창틀.

 

 위잉 하고 창문이 조금씩 올라간다.

 

 불투명한 유리창이 어르신의 턱을 향해 올라가는 데 이상하게 꼭 낫처럼 보였다.

 

 목에 들이민 낫.

 

 “나는 자네 이름이 마음에 드네.”

 

 “어르신?”

 

 끝까지 올라간 유리창.

 

 “어르신!”

 

 운전석으로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다.

 

 짙은 선탠은 어르신의 얼굴을 그저 흐릿하게만 비추었고,

 

 먹구름 같은 유리창 너머로 어르신이 무언갈 적고 있었다.

 

 삐뚤삐뚤하지만 알아볼 수 있는 세 글자.

 

 - 고맙네

 

 부우웅웅, 이전보다 더욱 진한 배기음과 함께 팰리세이드는 눈 앞에서 멀어졌고,

 

 떠났다고 생각한 어르신은 광주역 인근을 돌아 다시 내 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4차선 도로를 갔다가 다시 유턴하고, 우회전에서 꺾다가 다시 직진, 그리고 또 다시 우회전.

 

 방금 차가 뒤집힐 뻔 했지만 팰리세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설마...?”

 

 뭘 하려는지 알겠다.

 

 저 어르신, 목숨을 걸고 토끼몰이를 하고 있었다.

 

 괴물들이 차를 따라 한 곳에 모이게,

 

 벗어나려는 괴물들이 있으면 차를 박아서라도 한 곳에 집중시키게 만들고 있었다.

 

 “미친.”

 

 불나방이 따로 없었다.

 

 수십 아니 대략 봐도 일백은 넘어 보이는 괴물들.

 

 그 형상도 어찌나 제각각인지 어떤 놈은 지네를 닮았고, 어떤 놈은 돼지를 닮았으며, 아까 모텔에서 내가 해치운 난쟁이들도 수십이 넘었다.

 

 끼이익 하는 드리프트와 함께 광주역에서 10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급정지를 한 어르신.

 

 트렁크에서 무언가를 추가로 꺼냈다.

 

 아까 꺼낸 말통이었다.

 

 ‘아니 새로 꺼낸 건가?’

 

 열린 트렁크 안으로 하얀색 비스무레한 게 몇 개 더 보였다.

 

 어르신은 말통을 온 몸에 들이붓고는 차 보닛을 열었다.

 

 보닛안에다가도 기름을 탈탈 털어넣고는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리고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는데,

 

 팰리세이드 지척까지 다가온 괴물들이 모두 아가리를 쩌억 벌리며 어르신에게 달려 들었다.

 

 푸우우, 몽글거리는 연기와 함께 이쪽을 바라보는 어르신.

 

 절체절명의 순간 눈이 마주쳤다.

 

 콰아아아아앙!!!

 

 굉음을 내며 폭발하는 차량.

 

 “크흑.”

 

 어찌나 규모가 큰지 내가 있는 곳까지 땅이 울렸다.

 

 뿌옇게 솟아오르는 연기는 매캐한 먹구름이 되어 허공을 맴돌았고,

 

 어르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물들은 모조리 불길에 휩싸였다.

 

 가히 불교에서 죄지은 자들이 간다는 화탕지옥이었다.

 

 “어르신···”

 

 생각해보니 어르신 이름도 몰랐다.

 

 야속하다.

 

 내 이름만 쏘옥 알아가 놓고, 물어볼 새도 없이 가버리다니.

 

 “···..”

 

 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마지막에 눈이 마주친 어르신은 웃고 있었다.

 

 괴물들을 데리고 간다는 생각에, 복수했다는 생각에 웃었을 것이다.

 

 “염병할 세상···”

 

 사는 게 지옥이고, 죽는 게 마음 편했을 어르신.

 

 화탕지옥을 보여주고 본인은 천국에 가버리시다니···

 

 휘이익 툭.

 

 폭발한 차량에서 굴러 떨어진 것인지 무언가가 도로변에서 활활 타올랐다.

 

 자세히보니 족욕기였다.

 

 어르신이 발 아프다고 해서 아들이 사줬다는 족욕기.

 

 이제는 불에 타 형태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족욕기를 바라보며 입을 들썩였다.

 

 뭐라 말을 하고 싶은데 나오질 않았다.

 

 그저 고개 숙인 체 묵념을 올리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입안은 텁텁했고,

 

 눈물은 역시 흐르질 않았다.

 

 ********

 

 위이잉, 발을 올리자 자동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

 

 멸망해가는 세상 속 정상으로 작동하는 기계문명의 힘이 반가웠다.

 

 아까 어르신이 천국행 티켓을 끊고 홀로 가버리기에 기분이 살짝 달짝지근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다 오르자 내 기분 또한 원래대로 돌아왔다.

 

 갈 사람은 가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않겠는가?

 

 “조용···하네.”

 

 광주역 내부 광장에 들어섰다.

 

 예전 초군반 시절에 장성에서 교육받고 휴가 때 여기서 매번 집으로 가는 티켓을 끊었던 지라 길은 훤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텅텅 비어있다.

 

 ‘사람들이 모두 대피한 건가?’

 

 대피령과 비상계엄령이 떨어진 지 2~3시간 정도 되었기에 모두 대피한 것일수도 있지만 어째 찜찜했다.

 

 광주역에는 정말 괴물들의 침입이 없었는지 핏자국 같은 흔적도 없고 그저 모자와 가방 그리고 옷가지 같은 잔해물들만이 널려 있었다.

 

 ‘옷가지?’

 

 겉옷이면 뛰어가다가 벗겨질 수 있겠지만 셔츠랑 바지까지 널려 있다니?

 

 논리적으로 이상했다.

 

 ‘시부럴, 불길한데?’

 

 그냥 다시 나가서 어디 안전한 곳에 피신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천장에서 스피커가 울려퍼졌다.

 

 “현재 광주에서 용산역으로 가는 KTX-999번행 열차를 타시는 분은 8번 역, 8번 역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와, 저거 타면 부대까지 금방인데··· 정말 운행하는 건가?

 

 바닥에 그려진 화살표를 따라 8번 역을 향해 걸어갔다.

 

 ‘예전에 8번역 찾느라고 한참을 뛰어다녔지.’

 

 열차가 도착해 있을 수도 있으니 빨리 가야겠다 하는 생각에 서두를 때,

 

 멈칫.

 

 잠깐, 나 방금 뭐 한 거지?

 

 의식 속 자연스레 움직이고 있는 ‘나’의 뒤로 ‘나’가 생각했다.

 

 붕 떠있는 듯한 느낌.

 

 몸에 힘을 의식적으로 주자 방금 느꼈던 괴리감은 없어졌고, ‘나’는 ‘나’의 몸을 되찾았다.

 

 “시발··· 이거 뭐야?”

 

 내 몸이 순간 내 몸이 아닌 느낌.

 

 욕설이 절로 나왔다.

 

 나는 현재 8번 역으로 가다 멈춰 7번 역 에스컬레이터 부근에 서 있었고,

 

 천장에서는 스피커가 자꾸만 8번 역으로 가라고 기계처럼 말을 반복했다.

 

 ‘7번 역으로 내려가자.’

 

 가슴에서는 본능적으로 8번으로 가라고 소리치고 있었지만, 내 합리적 이성과 흔들림 없는 판단력은 7번을 선택했다.

 

 가슴 이노무시키, 네가 언제부터 일을 했다고.

 

 에스컬레이터는 소음이 발생하니 옆에 있는 계단을 이용했다.

 

 혹시 몰라 발동한 기도비닉.

 

 낮에 쓰면 효과가 반감되는 경향이 있지만 그래도 계단 벽에 딱 달라붙어 은, 엄폐를 유지했다.

 

 절반쯤 내려왔을까? 눈에 보이는 철도와 기차들.

 

 다른 플랫폼에 있는 기차들은 다 시동이 꺼져 있는데, 유일하게 8번 역만 작동하는지 불이 켜져 있었다.

 

 활짝 열린 출입문은 덤.

 

 ‘응?’

 

 출입문 앞에서 미소를 띈 채 서 있는 철도 승무원들이 보였다.

 

 ‘아직 대피안하고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었나?’

 

 의아함에 계단을 조금 더 내려갔는데,

 

 자세히 보니 이것들이 허공에다가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아무도 맞은 편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오질 않는데 기계처럼 고객맞이를 하고 있다니?

 

 ···뭔지는 몰라도 미친 것 같았다.

 

 여기 더 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다시 몸을 돌리려 할 때,

 

 툭

 

 누군가 나를 밀었고 몸이 앞으로 기울면서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우오어어어···’

 

 사람은 죽기 전 수만가지의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고 하지 않는가?

 

 매트릭스처럼 느려진 시간 속 나는 간신히 고개를 돌렸고,

 

 눈동자를 열심히 굴려 나를 밀친 범인을 확인했다.

 

 상체는 사람이지만 하체는 거미의 몸을 한··· 스파이더맨?

 .

 .

 .

 아, 스파이더걸이네. 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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