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앉은 예준은 조금 전 협회에서 들고 온 작품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다시는 공모전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지만 그 동안 쌓은 명성들 때문에 내심 기대를 했다. 공모전으로 향하는 길과 자신이 가야할 길이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꼬여버린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대상을 받으면 단번에 해결해 버릴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예준은 캔버스 앞으로 다가가 손에 든 커터 칼의 날을 올렸다. ‘따다닥’하는 소리가 조용한 오피스텔 안에 울려 퍼졌다. 예준은 커터 칼로 로봇의 목을 그었다. 질긴 캔버스 위에 유화 물감까지 묻어 있어서 그런지 칼날은 생각만큼 캔버스를 찢어내지 못했다. 예준은 다시 힘을 주어 눌렀다. 캔버스 뒤쪽으로 날카로운 칼날이 쑥 삐져나왔다. 캔버스는 예준의 반복되는 칼질에 의해 점점 너덜너덜해졌다. 예준은 로봇의 머리와 여인의 몸이 완전히 분리된 그림을 촬영하여 유튜브에 올린 후 메시지를 남겼다.
‘제 작품은 쓰레기입니다. 공모전에 떨어졌어요.ㅎㅎ 높은 분들 보기에 수준이 안 되나 봅니다. 여러분께 쓰레기를 선물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쓰레기 작가 올림.’
예준의 글은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예준이 올린 영상 아래에는 예준을 동정하는 댓글이 무수히 많이 달렸고, 예준이 탈락한 공모전의 주체와 협회 홈페이지 주소가 공개되었다. 협회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협회와 심사위원들을 비난하는 글이 쏟아졌고 욕설이 난무하는 전화가 계속 걸려와 협회는 정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저명한 미술평론가는 협회가 시대착오적인 꼰대집단이라며 예준을 옹호하는 글을 SNS에 올려 네티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익명으로 글을 쓴 한 사람은 자신이 심사에 참여했고, 대회를 주관한 협회 측에서 심사에 영향을 미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협회 회원들의 탈퇴가 줄을 이었고, 국가의 보조금을 받는 협회를 해체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올라왔다. 전문가를 자청하는 예술계 인사들이 TV에 나와 각자의 견해를 쏟아내며 열띤 토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