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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무협물
팔사구생
작가 : 시후
작품등록일 : 2016.9.10

죽지 않는 무공. 죽을 수 없는 무공을 익힌 한 사내의 이야기.

 
이리 가도 저리 가도 혼인은 운명-5
작성일 : 16-10-11 13:48     조회 : 426     추천 : 1     분량 : 5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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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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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무백은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관을 주시했다.

 

 설사 생사대적을 마주한다해도 이정도로 긴장이 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열겠습니다."

 

 설무백이 무겁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허락을 받은 야월파파가 직접 관뚜껑을 열었다.

 

 지금 이곳엔 야월파파와 설무백 둘 뿐이었다.

 

 관뚜껑이 열리기 무섭게 팔하나가 불쑥 올라왔다.

 

 팔을 꺼내 관에 걸친 사내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아직 약기운에 취한듯 휘청거렸다.

 

 설무백과 시선이 마주친 사내가 말했다.

 

 "너... 너으 데져서..."

 

 "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설무백이 대소를 터트렸다.

 

 발음이 정확하진 않아도 뜻은 대충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늘마저도 씹어먹는 역천의 상을 가진 사내라더니 과연.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잡혀왔음에도 기죽지 않고 죽이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꺼내는 기백하나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

 

 

 

 덜컹거리는 진동이 멈춤과 동시에 영기는 다시 정신을 차렸다.

 

 "이... 이그... 애이래..."

 

 한숨 푹 자고 일어났으니 약기운이 많이 사라졌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더 심해진 것 같았다. 잠을 자고 있는 사이 또 약을 썼다고 봐야 했다.

 

 "시바... 그양 혀도르 지프라고..."

 

 그냥 혼혈을 짚던지 혈도를 제앞하던지 하지 도대체 왜 자꾸 약을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긴 그랬다면 진작 도망 쳤을 것이다.

 

 계속 약을 쓴 건 야월파파의 생각이었다. 혼혈을 짚거나 혈도를 제압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역천의 상을 가진 사내였다. 절대 방심할 수 없기에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손을 쓴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고수도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약에 잔뜩 취하면 결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끼이이.

 

 듣기싫은 소리와 함께 환해진 것을 깨달은 영기는 슬며시 눈을 떴다. 오래도록 빛을 못봐서인지 눈이 부셨다. 자연스레 인상이 구겨졌다.

 

 팔을 걸치고 힘들게 몸을 일으킨 영기는 그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좁은 관에 넣어뒀으니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던 거였다.

 

 눈앞에 중년으로 보이는 사내하나가 서있었다.

 

 누군지 몰라도 저놈이 대가린 건 알 수 있었다. 가만히 있는데도 살을 에는 듯한 기세가 피부를 콕콕 찔렀다.

 

 몸이 정상이어도 현재로선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영기는 이번 생에 무공 수련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공만 쌓았다. 그럼에도 십대고수와 엇비슷한 무위를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전생을 기억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 이룩한 경지는 그 깨달음을 잊지 않으니 강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한 고수는 그정도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었지만 진정한 고수는 무리였다. 몸이 따라와 주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기죽을 영기가 아니었다.

 

 원래부터 막나갔지만 지금은 약까지 취한 상태. 눈에 뵈는게 없었다.

 

 "너... 너으 데져서..."

 

 "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우씨.

 왜 쳐 웃고 지랄이야.

 

 안 그래도 인상을 쓰고 있는 영기의 얼굴이 더 구겨졌다.

 

 기분이 상했다.

 

 죽이겠다고 대놓고 협박을 하는데도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건 개무시를 당했다는 증거였다.

 

 설무백의 웃음소리에 야월파파가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아직 주변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 하지 못한 영기는 주위에 누가 있는지 몰랐다.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이다.

 

 "므야... 너드 하패여어? 너드 주거서..."

 

 설무백이 영기에게 다가갔다. 한 손으로 영기의 턱을 치켜들었다.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허... 이 얼굴이 제왕이 상이란 말이오?"

 

 "동시에 역천의 상이기도 하지요."

 

 "이 밋밋한 얼굴이?"

 

 "그렇습니다. 틀림 없습니다. 이 아이는 하늘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뭐야? 이 할망구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지?

 

 영기는 뜨끔 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태어나는지 아닌지는 모른다. 다만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늘을 거스르고 있는 거였다.

 

 누구에게도 들켜선 안 돼는 비밀이었다.

 

 가만히 영기를 보던 설무백이 결단을 내렸다. 사실 결단을 내렸다기 보다는 이제 다른 방도가 없었다.

 

 "날은 언제가 좋겠소?"

 

 "역천의 상을 가진 사내에게 좋은 날이라니요. 가당치 않습니다. 아무때든 상관 없습니다."

 

 "오늘이라도?"

 

 "준비 시키겠습니다."

 

 어차피 시킬 혼인이다. 다른 방법도 없다. 설예린이 당장 죽을 수도 있다. 고민을 할 여유도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야월파파가 준비를 하기 위해 나갔다.

 

 영문을 모르는 영기는 어리둥절했다.

 

 뭘 하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자신과 연관된 일이라는 건 알수 있었다.

 

 "네가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다."

 

 "므어...?"

 

 "만약 네가 해낸다면, 내 모든 걸 너에게 물려 주마."

 

 "그니가. 그... 게... 므냐거...?"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했다.

 

 설무백이 다정하게 나와서 괜히 더 불안했다.

 

 역시나 날벼락이 떨어졌다.

 

 "우선 내 딸과 혼인을 해줘야겠다."

 

 이게 무슨 개떡같은 소리야?

 혼인이라니!?

 

 갑자기 뒷골이 띵했다. 발등도 아팠다.

 

 왜 납치를 당해 줬는데?

 

 소아영과 혼인하기 싫어서 알면서도 당해 준거다.

 

 근데 또 혼인하란다.

 

 이럴 수는 없었다.

 

 아무리 재수가 없어도 그렇지 이러면 안되는 거였다.

 

 "너마저 소용이 없다면... 그래서 내 딸이 죽는다면... 너 또한 죽는다."

 

 설무백의 협박이 이어졌지만 정신을 잃은 영기는 듣지 못했다.

 

 약기운도 약기운이지만 하도 열이 뻗쳐서 졸도를 해버렸다.

 

 

 

 ***

 

 

 

 영기 말고도 아닌 밤중에 날벼락은 맞은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설예린이었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예민한 설예린은 잠에 빠져 있었음에도 금방 깨어났다.

 

 처음엔 잘못 들었나 했는데 누군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똑똑.

 

 "누구세요?"

 

 "나다. 예린아."

 

 설무백의 목소리였다.

 

 "아버지?"

 

 "그래. 잠시 들어가도 되겠느냐?"

 

 "잠시만요."

 

 아버지라지만 속이 훤이 다 비치는 얇은 옷만 입은 상태로 맞을 수는 없었다. 대충 겉옷을 걸친 설예린은 방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양손으로 한 사내를 들고 계시는 아버지가 보였다.

 

 "이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성큼성큼 방안으로 들어선 설무백은 영기를 설예린의 침상에 고이 눕혔다.

 

 "누구예요?"

 

 "오늘부터 네 서방이다."

 

 설예린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앞으로 서방이 될 사람도 아니고 서방이라니.

 

 이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식이 혼인도 못해보고 죽을까봐 어디서 납치라도 해 온 것일까?

 

 어쨌든 용납이 안됐다.

 

 "당장 데리고 나가세요!"

 

 "예린아!"

 

 "제정신이세요? 전 이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혼인이라니요! 제가 죽으면 이 어린 사내를 놔주실 건가요? 새출발 하게 해주실 건가요? 아니잖아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 평생을 붙잡아 두고 쓸쓸하게 만드실 거잖아요! 이 어린 사내 인생은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는 건가요?"

 

 "상관 없다! 네가 죽으면 그놈도 죽는다!"

 

 "제가 싫어요! 제가 혼인하기 싫다고요!"

 

 "예린아, 이 아비의 마지막 부탁이다. 제발 내 말을 따라 주거라."

 

 설예린은 방금 전처럼 매몰차게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었고 그런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건가요? 혼인만 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다. 이 사내와 합방을 하거라."

 

 "합방이라니요!? 몸을 섞으라는 건가요?"

 

 "그래... 그럼 네가 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게 무슨 말씀 이세요?"

 

 설무백은 야월파파가 해준 이야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줬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설예린도 마찬가지였다. 죽기 싫었다. 무서웠다.

 

 해볼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게 뭐든 해보고 싶었다. 대신 한가지만큼은 꼭 지켜져야 했다.

 

 "좋아요. 대신 약속해 주세요."

 

 "무얼말이냐?"

 

 "만약 이 방법이 효과가 없다면... 그래서 제가 죽는다면 이 사내를 풀어 주세요. 원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아버지가 도와 주세요. 그럼 시키는 대로 하겠어요."

 

 "약속하마. 내 꼭 약속하마."

 

 설예린은 아버지를 꼭 안아 줬다.

 

 이런 말도 안돼는 일까지 벌일 정도로 자신을 위해주는 아버지가 고맙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다. 어쩌면 곧, 혼자가 될지도 모르기에...

 

 설무백이 설예린의 등을 토닥거렸다.

 

 "슬슬 녀석이 깨어날 때가 됐으니 아비는 이만 가보마. 꼭... 해야 한다."

 

 "아빠도 참... 알았으니 그만하세요."

 

 얼굴이 창백해서 그런지 붉어진 설예린의 볼이 더욱 돋보였다.

 

 설무백이 나가고 설예린은 침상에 누워있는 사내에게 눈길이 갔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자신보다도 더 어려 보였다.

 

 생긴 건... 그냥 그랬다. 특별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평범한 인상이었다.

 

 이런 인상이 귀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내...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참 잘도 잔다.

 

 겉옷을 벗은 설예린은 속이 다 비치는 얇은 옷만 입은 상태로 침상으로 올라갔다.

 

 

 

 ***

 

 

 

 무언가 야리꾸리한 느낌에 정신을 차린 영기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하아... 아... 하아..."

 

 절대 일부러 낸 소리가 아니다. 본능적으로 나온 거다.

 

 옆구리에서 낯선 손길을 느낀 영기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신이 드는 순간 튕기듯 몸을 일으 켰는데... 몸이 안움직였다.

 

 점혈을 당한 것 같았다.

 

 낯선 손길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영기는 눈알을 내리깔아 아래쪽을 힘들게 확인했다.

 

 또래로 보이는 웬 소녀 하나가 야시시한 옷을 입고 올라타있었다.

 

 절로 욕이 나왔다.

 

 "야이 색녀야! 나이도 어린 년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당장 저리 안 떨어져!"

 

 약이 많이 깼는지 말은 제대로 나왔다.

 

 영기는 옳다구나 하고 내공을 돌렸다.

 

 이딴 점혈쯤이야 시간이 좀 걸릴진 몰라도 얼마 든지 풀수... 풀수 있는데... 내공이 쥐똥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산공독이다.

 

 정신을 잃은 상태로 흡입을 했다면 완전 제대로 중독 당했을 것이다.

 

 "약다음엔 독이냐? 엉? 도대체 니들 뭐하는 새끼들이야!!!"

 

 "아, 정신이 들었어?"

 

 "보면 모르냐, 이 정신나간 년아! 어린 년이 겁도 없이 어딜 올라타! 당장 내려와!!!"

 

 "미안해. 나도 사정이 있어서... 대신 너도 만족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 볼게."

 

 "그딴 노력 하지마! 하지마! 아무것도 하지마아---!!!"

 

 설예린은 손가락으로 열심히 영기의 몸을 긁었다.

 

 우선 흥분을 시켜야 뭘 해도 할 수 있었다.

 

 꼼짝도 못하고 당하고 있는 영기는 죽을 맛이었다.

 

 나름 자극을 주려고 하는 것 같긴 한데 이건 애무가 아니라 고문이었다.

 

 남자경험이 전무한 설예린의 한계였다.

 

 참다 못한 영기가 소리를 질렀다.

 

 "아악!! 아파! 아프다고! 손톱으로 그렇게 세게 긁으면 어떡하냐고!"

 

 "아파? 미안... 내가 처음이라..."

 

 "할 줄 모르면 하지나 말든... 뭐? 처음이라고?"

 

 "응..."

 

 당연히 색녀인 줄 알았는데 처음이라니...

 

 남자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여자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아니지.

 

 그걸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

 

 승질나 죽겠는데 지금 남생각할 때냐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나오는 대로 내뱉었다.

 

 "야이 미친년아 아무리 남자가 궁해도 그렇지 납치까지 해서 이러는 년이 어디있어!!!"

 

 영기의 입은 노상 거칠었다. 말을 가릴 기분이 아니었다.

 

 노발대발하는 영기를 보며 설예린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래도 포기는 안했다.

 

 "미안. 정말 미안해. 다시 잘 해볼게."

 

 "뭘 다시해! 하지말라고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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