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일찍 일어난 슬비는 부엌에서 엄마가 주신 반찬들을 작은통에 옮겨 담기 바쁘다. 아직 침대에 누워있는 연우를 깨워 억지로 욕실에 밀어 넣고 샤워를 마친 연우에게 회사 출근 준비를 재촉한다.
"더 자고 싶은데 왜 이렇게 일찍 깨웠어"
"어제 약속 했잖아 평창동 집에 가서 아침식사 같이 하기로..."
"그랬지만 지금 시간이 몇 시 인줄 알아?"
"응 새벽 5시 늦었어"
결국 슬비의 손에 이끌려 양손에 반찬이 든 가방을 들고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는 연우의 차가 평창동 집 앞에 도착했다. 대문 앞에 서서 조금은 떨리는지 초인종을 누르려고 하는데 막는다.
"오빠 비밀번호 알면 그냥 번호 눌러 아버님 깨시면 어떡해"
"그때 그 비밀번호 일까?"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 번호를 누르자 문이 열렸다. 슬비와 연우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직 잠들어 계셨고 연우는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잠시 잠을 청하고 슬비는 부엌으로 가서 음식들을 식탁에 차려놓고 밥과 국을 준비한다.
한시간이 지나 안방에서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나오신다. 잠이 덜 깬 상황에서 거실에 연우와 슬비가 있는 모습을 보고 눈을 비비며 다시 확인한다.
"편히 주무셨어요."
"너희들이 여기 왜 있는 거야 그것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아버님이 혼자 식사하기 좀 그런 것 같아서 어머니 오실 때까지만 저희가 함께 하려고 왔습니다."
"그래 좀 놀랍긴 하지만 어쨋든 이렇게 왔으니까 같이 식사를 하지"
부엌으로 들어가자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그 동안 이 음식들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알 수 있을만큼 침을 삼키는 꿀꺽소리가 들릴 정도로 그리웠던 집밥이다.
모두 자리에 앉아 식사를 한다. 비록 아무 대화도 없는 식사시간이 되었고 그 가운데 슬비가 두 사람의 눈치를 보기 바쁘지만 마음은 뭔가 뿌듯하고 계속 미소가 지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연우는 출근을 하기 위해 거실에 서 있다. 아버지가 연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묵직하게 만져준다. 그 손의 무게에서 왠지 모르게 좀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고개를 숙인다.
"어느 회사로 출근하지? 사무실이 어디에 있는가?"
"오아시스 블루 한국대표로 복직했습니다. 사무실은 옮겨서 청운그룹 본사 근처에 있습니다"
"잘 됐네 그럼 나를 청운그룹 본사까지 좀 태워주겠나?"
"어차피 같은 방향이니까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태워 드리겠습니다"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연우와 함께 나가는 모습을 보고 서 있는 슬비도 대문 앞까지 배웅했다. 같이 차를 타고 있는 연우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인사를 꾸벅하며 손을 흔들어 준다.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 집안 일들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한편 차 안에서 연우와 아버지는 아무말이 없다가 먼저 말을 하는 아버지.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고맙구나"
"어제 집에 다녀와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 몰랐어요."
"음식들도 정말 맛있더구나 반찬은 다른 맛이었지만 밥과 국도 괜찮았어"
"반찬들은 장모님이 평창동 집에 드리라고 했는데 아마 어머니께서 집에도 못 들어가게 해서 그냥 들고 왔는데 그 반찬들을 챙겨 간 것이었습니다"
"뭐라고? 우리 정여사가...? 그래서 레스토랑에서 나눈 대화들이..."
"그냥 모른 척하세요. 어머니와 슬비 사이에 뭔가 남아있는 것 같은데"
"재벌들은 끼리끼리 놀아 또 그렇게 해야 자신이 그 레벨이라는 것을 인증하는 것이라 믿지 이 세계에서 신데렐라는 좋아하지 않아"
그 말을 하는 동안 청운그룹 본사에 도착했다. 직접 문을 열고 내리는 건우아버지의 모습에 직원들이 깜짝 놀라 쳐다보고 그 차가 연우의 차라는 걸 알고 수근거리며 서 있다. 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회사를 향해 도로를 달리는 연우는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슬비에게 한통의 메시지를 보낸다.
[슬비야 고마워 너로 인해 아버지와 같이 출근하는 기분까지 느낀 하루]
청소를 하고 잠시 쉬기 위해 소파에 앉아있던 슬비는 연우에게 문자가 온 것을 확인하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런 연우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더 말하지 않아도 단 몇 글자의 문자에도 감동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