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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이 세계의 1+1은 2가 아니다.
작가 : 요동치는하트
작품등록일 : 2016.8.31

무공과 마법, 과학과 오컬트가 공존하는 시대.
극동반도의 항구도시, 대산시에서 퇴역군인 유지, 광검사 유미, 전투인형 유나는 서가삼랑이라는 낭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한 의뢰가 들어오는데...
검이 춤추고 화약이 노래하는 슈퍼액션활극, 지금 시작!

 
Epilogue - 소녀
작성일 : 16-10-11 09:05     조회 : 613     추천 : 0     분량 : 4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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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헉! 허억! 헉!”

 

 남자는 도망쳤다. 지저분한 골목길을 내달린다. 주위에 깔려있는 쓰레기더미를 밟고 넘어졌다. 하지만 구르는 기세로 몸을 일으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체계적인 도시계획 없이 마구 잡이로 세워진 건물들로 이루어진 골목은 마치 미로와도 같았다. 길은 아무런 지표도 없이 이리저리 꼬여있고 별의 별 쓰레기와 잡동사니가 엉망진창으로 굴러다녔다. 남자는 거친 동작으로 장애물을 박살내며 전진했다. 코너를 돌다가 둥그렇게 싸여있던 비닐과 상자 더미를 부쉈다. 남자는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무너진 쓰레기 더미에서 꾀죄죄한 거지가 굴러 나왔다.

 

 “뭐, 뭐여?”

 

 거지는 막 자다가 일어난 모양인지 침침한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남자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눈앞의 거지가 길을 막고 있다. 남자의 한쪽 팔에는 문어의 것과 같은 촉수가 달려있었다. 촉수가 사납게 꿈틀거렸다.

 

 “비켜!”

 

 남자가 손, 아니 촉수를 휘둘렀다. 무공도 모르는 거지의 머리 따위, 스치기만 해도 부스러트릴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휘두른 촉수는 거지의 머리에 닿지 못했다. 거대한 검의 옆면이 거지의 눈앞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제길!”

 

 촉수의 남자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한 소녀가 그의 눈앞에 서 있었다.

 

 대충 묶어 내린 꽁지머리가 목에 걸린 목도리와 함께 살랑거렸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뜨거운 여름에 검은 재킷을 걸치고 치마 아래로는 새까만 스타킹을 신고 있다. 기이한 차림새지만 얼굴만큼은 절색(絕色)이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을 미모. 허리에는 길쭉한 칼이 매달려있다.

 

 소녀는 옆에 선 거지를 바라보았다. 죽다 살아난 거지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아기처럼 웅얼거리며 눈을 비비고 있었다. 소녀의 입가가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작은 손이 거지의 목덜미를 움켜쥔다. 가볍게 뒤로 던져버렸다. 거지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그녀의 눈이 촉수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긴장으로 굳어진 얼굴을 뜯어보던 소녀는 품에서 휴대기를 꺼내어 정보를 확인했다.휴대기의 화면에 현상금이 걸린 범죄자의 정보가 표시된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소수마귀(鮹手魔鬼) 정해원. 살인 9회, 강간 36회. 이 자에게 강간당한 여성 90퍼센트가 극심한 정신적, 육체적 피해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함. 그 외에 폭력 65회, 절도......”

 

 정해원의 이력에 대해서는 그 아래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새파란 불길을 담은 눈이 슬쩍 정해원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한마디로 정해원에 대한 모든 사항을 정리했다.

 

 “쓰레기군.”

 

 “이년이!”

 

 발끈한 정해원이 소수마귀, 문어 손의 귀신이라는 별호를 얻게 해준 기괴한 팔을 휘둘렀다.

 

 뒷골목 야매의사에게 수술을 받아 이식한 그의 촉수는 기공과 함께 운용하면 강철의 강도를 가지며, 자동차도 우그러트릴 수 있을 만큼의 악력을 뿜어내는데다, 자유자재로 휘기까지 해 방어하기도 까다로운 최강의 무기였다. 몸을 움직이기 힘든 좁은 골목에서라면 그 효과는 배가 된다. 그는 지금까지 그를 사냥하려고 한 수많은 현상금 사냥꾼과 낭인들이 골목에서의 기습에 쓰러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나빴다.

 

 쉬익!

 

 소녀의 허리춤에서 빛이 번뜩였다. 깔끔한 발검술. 하지만 그 일격에 담긴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소녀가 뽑아낸 검이 울부짖었다. 고속으로 회전하는 톱니가 촉수를 물어뜯었다. 순식간에 피부와 근육, 뼈를 자르고 빈 공간으로 빠져나간다. 어깨 아래로부터 두 동강이 난 촉수가 땅에 떨어졌다. 한순간 늦게 피가 쏟아졌다.

 

 “으아아아악!”

 

 정해원이 팔을 감싸 쥐며 뒤로 물러섰다. 소녀는 무심하게 괴물형상의 칼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잡혀. 죽고 싶지 않으면.”

 

 정해원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소녀를 올려다보았다. 소녀의 등 뒤로 시커먼 그림자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고통으로 일그러져있던 그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잡았다.”

 

 소녀의 목덜미에 두꺼운 팔이 감겼다. 당장이라도 목을 부러트릴 듯이 힘을 준다.

 

 소녀를 뒤에서 덮친 것은 방금 그녀가 던져버렸던 거지였다. 거지는 어벙한 모습은 간데없고 잔혹한 미소를 띤 채 소녀의 몸을 옭아매고 있었다. 소녀는 정해원의 이력 마지막 줄에 적혀있던 문장을 떠올렸다.

 

 ‘정해원과 같이 행동하는 공범이 있음.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주의할 것.’

 

 거지가 말했다.

 

 “귀여운 아가씨, 가만히 있으라고. 조금만 움직여도 예쁜 목을 부러트려버릴 거니까.”

 

 거지가 입을 열 때마다 코를 쑤시는 것 같은 악취가 풍겼다. 소녀는 목을 죄어오는 압력 때문이 아니라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치 못한 기습을 당했는데도 소녀는 태연했다. 싸늘한 눈으로 정해원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그 도도한 눈은 정해원의 욕구를 자극했을 뿐이었다.

 

 정해원은 클클 웃으며 바닥에 떨어져있는 촉수를 집었다. 팔의 단면에 가져다대자 순식간에 달라붙는다. 어깨를 한 번 흔들자 촉수가 다시 살아 움직였다.

 

 그는 촉수의 끝을 소녀에게 가져갔다. 턱을 쓸어내렸다. 정해원의 눈에는 탐욕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조각상 같은 소녀의 미모에 꿀꺽 침을 삼켰다.

 

 “방금 했던 말을 돌려주지. 두 번 말하지 않는다. 포기하고 몸을 맡겨. 천국을 보여주도록 하지.”

 

 문득, 소녀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이런 방법은 나한테 안 어울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의아해하는 정해원. 그리고 소녀가 움직였다. 놀란 거지가 소녀의 목을 비틀었다.

 

 행색은 거지라도 그는 사실 상당한 공력을 갖춘 무공고수였다. 정해원은 그저 쾌락을 위해 여자를 범했지만 그는 강해지기 위해 여자를 범했다.

 

 여성의 정기를 빨아들여 쌓아올린 강대한 내공이 그의 힘을 끌어올렸다. 같은 두께의 철골이라도 부러트릴 수 있는 조르기가 소녀의 목을 조인다.

 

 소녀가 그의 팔을 움켜쥐었다. 작은 손이 붉은 빛으로 물들어있다. 거지의 표정이 변했다. 왜냐하면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악력이 그의 팔을 억눌렀기 때문이다.

 

 “흥.”

 

 소녀는 엄청난 괴력으로 팔을 뜯어냈다. 생으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에 거지의 입이 딱 벌어졌다. 소녀는 뜯어낸 팔을 놓으며 거지의 멱살을 움켜쥐고 허리를 숙였다. 정해원에게 거지를 집어 던진다.

 

 “이런 썩을.”

 

 정해원은 욕지거리를 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꿈틀거리는 근육덩어리를 휘둘렀다.

 

 우드드득

 

 뼈와 살이 뭉개지며 거지의 등짝이 움푹 파였다. 척추와 갈비가 모조리 나갔다. 즉사. 시체가 골목의 벽에 처박혔다.

 

 정면으로는 승산이 없다. 정해원을 등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소녀는 그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펄럭이는 재킷을 비집고 날개가 뻗어 나왔다. 작은 몸이 가속. 순식간에 양옆의 벽을 차고 날아 정해원의 앞을 가로막았다. 아수라의 눈이 살기를 뿜어냈다. 칼을 쏟아낸다.

 

 “히이익!”

 

 정해원은 답지 않게 새된 비명을 지르며 방어했지만 소녀가 휘두른 검에는 용서가 없었다. 그 검은 무시무시한 위력으로 촉수와 함께 정해원의 목을 날려버렸다.

 

 정해원이 쓰러졌다. 소녀는 예기가 가득한 동작으로 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작은 입술이 냉랭하게 말했다.

 

 “쓰레기에게까지 베풀 자비는 없어.”

 

 골목 귀퉁이에서 잘생긴 청년의 얼굴이 빼꼼 튀어나왔다. 그는 소녀를 보곤 씨익 웃었다. 휘파람을 분다.

 

 “휘익-! 멋있다!”

 

 소녀는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보였다.

 

 ***

 

 “극동도 왕당파의 아이코 공주가 새로운 천황으로 즉위했습니다. 28일 오전 9시 경, 왕당파의 수장인 히무라 소우세키는 마지막 남은 왕족인 아이코 공주를 천황으로 모실 것을 공표했으며 그에 따라 비왕당파 측에서는 국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판단이라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TV에서는 극동도 내전 향방에 대한 내용이 한창 방영되고 있었다. 무덤덤한 눈으로 그것을 지켜보던 유미는 곧 고개를 돌리고 청소에 집중했다.

 

 아무도 없는 집안은 조용했다. 수린과 유지는 출근했고 유나는 학교에 갔다. 홀로 남은 유미는 집안을 청소하는 도중이었다.

 청소기로 바닥의 먼지를 빨아내고 물걸레질을 한다. 창문을 열고 먼지떨이를 휘둘렀다. 테이프를 들어 소파나 의자 등에 붙은 고양이의 털을 떼어냈다.

 

 앞치마 위에 목도리를 걸치고 허리에는 칼을 매달고 있는 것이 영 어색하지만 익숙한 솜씨로 집안을 치워나간다. 유나가 학교에 가는 날, 청소는 유미의 몫이었다.

 

 대강 정리를 마친 그녀는 마지막으로 사료봉지를 꺼내 뭉치의 밥그릇을 채워주었다. 멀찍이서 겁먹은 눈으로 유미를 훔쳐보던 뭉치는 유미가 자리를 뜨자 그제야 슬금슬금 밥그릇에 다가가 그곳에 머리를 박았다.

 

 할 일이 끝나자 유미는 기타와 악보를 가지고 거실에 있는 소파 위에 양반다리로 앉았다. 미리 켜놓은 TV를 보는 둥 마는 둥 하며 기타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문득 창밖을 바라보았다. 싱그러운 햇살이 반쯤 쳐놓은 커튼의 틈새로 쏟아져 들어왔다. 열어놓은 창 너머에서는 꺅꺅하며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가 들려온다.

 

 유미는 하루 중에서 청소 등을 마치고 깨끗해진 거실 소파위에 앉아 나른한 기분으로 기타를 치는 지금 이 순간이 제일 좋았다.그녀의 손이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며 기타의 현을 튕겼다. 다물어진 입속에서 잔잔한 노래가 응어리져 코를 통해 새어나왔다.

 

 눈을 감고 가볍게 리듬을 타는데 발치에서 무언가가 꼼지락거렸다. 슬쩍 돌아보니 뭉치가 그녀의 허벅지에 머리를 비비고 있었다. 뭉치가 이렇게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은 처음이다. 유미는 연주를 멈추고 뭉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 때 그녀가 어떤 눈을 했는지 유미 자신은 몰랐다. 뭉치는 여느 때와는 다르게 유미의 눈을 피해 도망치지 않았다. 아무런 감정도 담기지 않은 담담한 짐승의 눈동자가 유미를 마주보았다. 유미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귀를 쫑긋 세운 고양이의 작은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뭉치는 유미의 손이 닿자 머리를 흔들더니 이내 뽀르르 뛰어서 도망쳐버렸다. 거실을 빠져나가 자신의 집이 있는 수린의 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털 달린 짐승의 뽀송뽀송한 감촉만큼은 유미의 손끝에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유미는 미소를 지었다.

 

 연주가 다시 시작되었다. 조금 더 높아진 음의 콧소리가 흥겹게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녀가 연주하는 기타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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