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7  8  9  10  >  >>
 1  2  3  4  5  6  7  8  9  10  >  >>
 
자유연재 > 판타지/SF
Netwalker
작가 : HudmentJhinRaker
작품등록일 : 2019.9.6

프로급 마피아 조직원 르미데안느 드 블랑. 사이버 해킹 보안국 특수 요원 고준혁. 세계적인 대기업 제타 그룹의 회장 최문호. 가족을 잃고 사이버 킬러가 된 소년 서지환. 깊은 곳에서 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들간의 과거가 기어코 실체를 드러낸다.

 
NetWalker - 13
작성일 : 19-11-03 19:45     조회 : 196     추천 : 0     분량 : 8560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준혁은 해킹보안국 내의 기밀 자료실에 키카드를 대고 들어갔다. 손잡이에서 손을 놓자 무거운 철문이 스스로 닫히면서 잠겼다. 특무를 지령받으면서 그에게 정식으로 지급된 기밀자료 접근 승인 카드를 이용한 것이기는 했지만, 본래대로라면 일개 수색팀의 팀장일 뿐인 그에게 국가 기밀이나 다름없는 이 곳에 접근할 권한이 부여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소에는 얼씬도 못하였을 곳에 막상 이렇게 들어와 있으니 아무리 그가 윤리적인 어긋남 없이 정당하게 출입을 하였다고는 해도 그의 목에는 끈적한 죄악감이 달라붙어 호흡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준혁 한참을 문 앞에 서서 기밀 자료들이 담긴 수많은 서류보관함들의 행렬을 바라만 보았다. 자신에게 정말 하나하나가 국보급인 보관함의 파도 속에 끼여서 그것들을 들여다볼 자격이 충분한 것인지 헷갈리기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아무리 입에 발린 말로 정예팀이라고 해도 그는 일개 수색팀 팀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사망자들의 기묘한 사인이 핵심인 불길한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라는 특무 하나로 지금 당장 고속 승진을 한다고 하여도 신용단계 상 적어도 5년은 CHSA(Cyber Hacking Security Agency)에 붙어있어야 겨우 얻을 수 있을 권한을 그가 얻는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특무의 내용도 조금 수상했다. 피해자의 위치를 추적해 직접 찾아가 해를 가하는 사건은 분명 드문 일이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대뜸 고대의 서적들이 꽂혀 있는 유적의 서재만큼 조심스러운 장소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줄 만한 일은 아니였다. 그리고, 이 정도 사건쯤이야 극비 하에 진행되는 특무가 아니여도 평범한 보안 수준의 임무로써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었고, 이미 다른 임무를 맡은, 그것도 정예팀에게서 급하게 일거리를 빼앗아가며 특무를 내릴 만큼 심각한 일도 아니였다. 게다가 임무의 초점이 ‘범인 추적 및 검거'가 아닌 ‘사건의 전말 확인'으로 맞춰진 것은 상사의 말마따나 자신이 보안국에 들어온 이래 처음이란다.

 

 준혁은 지금까지 모인 조각의 앞부분을 조합해서 바로 알 수 있는 간단한 사실부터 한꺼풀 벗겨보았다. 특무의 핵심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야 한다는 곳에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보안국에서도 아직 이 사건의 꼬투리조차 잡고 있지 못한 상태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사건의 전말 정도야 굳이 일개 팀장에게 기밀 자료까지 제공해가면서 알아볼 필요도 없이 시간이 지나면 어느 정도는 밝혀지지 않겠는가? 게다가 그의 팀은 수사의 전반적인 부분을 도맡아서 진행하기에 적합한 부서가 아니였다. 오히려 사건 수사 및 증거 확보는 행동팀의 주요 업무였고, 그의 팀은 그저 그들이 가져온 정보와 증거를 조합해 범인을 색출해내고, 색출해낸 범인의 위치 정보를 뽑아다 주는 것이 전부였다.

 

 더 이상 벗겨 볼 것도 없이 벌써부터 이상한 냄새가 노릇하게 피어오르는 이번 특무를 준혁은 지금 당장에라도 상부에 도로 돌려보내고 싶은 충동이 흉부 깊숙한 곳부터 끌어올라왔다. 그러나 이미 시도한 전적이 있는 바, 그의 특무 수령 거부요청은 결단코 승낙되지 않을 것이라며 행정부서에서 으름장을 놓았다. 결국 그는 이 또한 인생이라는 단편선 중, 권력편의 일부라고 한탄하며 특무를 수령하였다.

 

 준혁은 주머니에 넣어 놓은 쪽지를 펼쳐 그곳에 적힌 번호판이 붙어 있는 자료보관함을 찾기 시작했다.

 

 “G열 32-9번… G열 32-9번… G열…”

 

 정신분열증 환자처럼 혼자 중얼거리며 찾기를 이십분쯤 지났을까 쪽지 속의 번호가 붙어 있는 서류 보관함을 찾았다. 그것은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보관함 사이에서 정강이 언저리의 높이에 틀어박히듯 끼어 있었다. 그는 보관함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손잡이는 녹슬어 까슬해진 다른 보관함과는 달리 매끈한 새것의 감촉이 느껴졌다. 손잡이는 자료실의 뜨뜻한 공기와 덩달아 달구어져 있었다.

 

 준혁은 일급 기밀 자료를 눈 앞에 두고 크게 심호흡 했다. 쥐고 있는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그 안에는 은색 비닐팩으로 밀봉되어 있는 두툼한 자료뭉치가 꽂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덥썩 집어 들고는 도망치듯 자료실을 빠져나왔다.

 

 준혁은 자료실의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와 함께 문에 기대었다. 그는 방금 막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사람처럼 숨을 몰아 쉬었고, 다리 힘이 풀려 몸을 기댄 채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한 책임이 딸려오는 것들이 사방에 깔려 있을 땐 몰랐지만, 막상 볼 일이 끝나자 곤두서 있던 온몸의 신경이 풀려버린 것이었다. 마치 아무렇지 않게 고요한 해변가를 걷다가 도중에 지뢰 주의 푯말을 발견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준혁은 이 안에 들어가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랐지만, 자신이 품에 안고 있는 것을 제자리에 갖다 놓기 위해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물을 찔끔 흘릴 뻔했다. 부하를 시킬까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써도 너무 잔혹한 일이었고, 권한 면에서도 문제가 됐다. 이제는 이 안의 서류들을 매일같이 꼼꼼하게 살펴보며 관리하는 이들이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준혁은 얼른 고개를 휘저음으로써 더 이상의 쓸데없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팀원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가 품에 안고 있는 종이 뭉치는 매우 가벼우면서도 그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하고 또 중대한 것이었다. 한순간 자신의 목숨이 이 종이 몇 장보다도 더 가볍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이리도 비참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 녀석을 반드시 붙잡고야 말겠다는 마음의 외침을 내질렀다. 그는 이미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것이 그의 본분이라는 사실마저 망각한지 오래였다.

 

 준혁은 자신의 자리에 앉아 밀봉된 비닐팩을 아주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개봉해 들여다보았다. 역시나 희미한 무게감과 어울리게 안에 든 것이라고는 얇은 파일에 꽂혀 있는 클립으로 정돈된 용지 대여섯장 뿐이었다. 고작 이런게 자신의 목숨보다도 중대한 물건이라는 것을 상기한 그는 재차 비참한 기분에 휩싸였다. 떨리는 손으로 팩에 손을 집어넣어 파일을 꺼내었다.

 

 새하얀 첫 장에는 한가운데에 ‘NetWalker, 정보'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고 그 밑에는 ’11.30 ~ ‘하고 정보 수집을 시작한 날짜가 표기되어 있었다. 준혁은 글과 사진으로 빼곡하게 도배된 용지들을 한 장씩 넘기며 시간을 들여 정독하였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지 않게끔 세 번은 더 읽었다. 그는 두 시간가량의 시간을 쏟아붓고 나서 튀어나올듯 욱씬거리는 눈을 감았다.

 

 처음 세 장은 각각 피해자들의 사진과 상세한 정보, 그들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 및 시각, 사망사유 등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그 다음 장부터는 연관성 있는 특징과 정보들끼리 주욱 나열해 놓고 그것들을 조합해서 나온 서류 작성자의 견해가 끝부분마다 적혀 있었다.

 

 사실 이런 자료에 작성자의 견해가 들어가는 것은 별로 좋은 영향을 기대하기 힘들다. 작성자의 추측이 실질적인 정보사이에 끼어 있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진실로 인식하고는 수사에 혼선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 자료도 아닌 고급 기밀 자료를 작성하는 직위를 가진 사람이 이런 초짜스러운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다소 의심스러웠다. 그덕에 상부에서는 이 사건을 어디까지 알고 있고, 어느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무슨 대응을 하려는 것인지 유추해낼 수 있었다.

 

 작성자가 적어 놓은 코멘트들을 일부 인용하자면 이렇다.

 

 ‘현재 피해자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 있는 남고등학생 두명과, 실업중인 중년의 남성 한 명으로 피의자는 남성으로 추정되오나 피해자들의 특수한 사망사유로 보아 미확인 무기를 사용하는 여성 혹은 노약자일 가능성도 다분함.’

 

 ‘피해자들은 모두 자택의 방문과 창문이 잠겨 있는 완전한 밀실 속에서 살해당하였다. 약물의 가능성을 의심하여 부검한 결과, 죽은 세포들이 학살이라고 표현하여도 무방할 만큼 체내에 대량으로 쌓여 있었다. 그러나 화학 약물이나 독극물의 흔적은 일절 없었으며 이상하게도 죽은 세포들의 열에 아홉은 뇌세포였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건데, 뇌에 끔찍한 영향을 미치는 매우 위험도 높은 특수한 살상무기의 존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다.’

 

 ‘세개의 건 모두 수도권 내에서 일어난 일이었으나 사망 추정시간 간격을 보아하니 혼자 해내기에는 다소 시간이 촉박하다. 공범자의 존재를 의심해볼 여지가 있다. 또 미확인 살상 무기의 범위도 고려해보아야 할 것 같다.’

 

 준혁은 이 세가지 코멘트만으로도 상부에서는 ‘미지의 무기’에 대해 큰 경계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첫번째 코멘트에는 미확인 무기라는 존재에 대해 슬쩍 말을 꺼내 보일 뿐이었지만, 두번째 장을 거치고 세번째로 넘어왔을 때는 이미 특수한 무기를 범죄자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기정 사실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자료 어디에도 미확인 무기가 어떠한 것인지 자세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았다. 그말은 즉, 그저 작성자가 코멘트를 적으면서 미확인 무기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느순간 그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하고는 그것을 사실인 것처럼 쓴 것이다.

 

 이를 통해 작성자는 매우 아둔한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것이 바로 앞서 말한 자료 위 작성자 견해의 가장 안 좋은 예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작성자의 견해가 들어 있는 것이 마냥 안 좋는 것만은 아니다. 이처럼 상부에서의 이 사건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도 있고, 어느 부분에 크게 신경 쓰고 있는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모두 알 수 있다. 그리고 때때로 정말 복잡한 정보의 조합을 논리적이고 해박하게 풀어놓은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에는 수사에 정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준혁은 형사 시절에 난해한 정보들 사이의 연관성을 지어주면서 필요한 정보만 응집시켜주고는 자신의 추측은 일절 반영되어 있지 않은 순수 논리만을 이용해 정보 속에 내포된 모순과 의미까지 풀어내주는 우수한 정보 수집가가 동료 중에 있어 매우 도움이 되곤 했었다.

 

 준혁은 자신이 모은 정보를 진지하게 살펴보고는 심각한 얼굴로 중요한 정보들을 선별해내던 그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를 데려와 함께 이 자료를 작성한 장본인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어 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났다. 만약 그가 옆에 있어준다면 분명 함정에 빠지는 일 없이 올곧은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좋은 수를 떠올렸다.

 

 ‘그녀석을 데려와 볼까?’

 

 특무는 극비하에 이뤄지는 임무이거늘 외부인을 데려온다는 것이 용납될 리 없었다. 그러나 이번 특무에 포함된 인원은 준혁과 그가 테러범을 찾아낼 때 도움을 준 상관, 이번 특무 지령을 전달하러 온 부하 하나와 상부에서 꽂아준 인사팀 한 명, 이렇게 네 명뿐이었기에 여러모로 난잡한 이 사건을 도맡아 직접 수사하기에는 딱 봐도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 인원 부족 핑계를 대고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는답시고 돌아다니는 시늉을 하다가 녀석을 데려와 앉혀놓으면 됐다. 간추려서 말하자면, 부외자를 데려다 관계자로 만들어 버리면 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준혁은 정예 수색팀의 팀장일 뿐 더러 성적 톱을 달리는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그런 그에게는 얼마든지 팀원을 스카우트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이 있었고, 앞에서 말했듯이 이번 특무 특별 구성팀원 중에는 인사팀의 엘리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니 유능한 인재를 하나 데려와 보안국의 남아도는 자리에 엉덩이 붙일 수 있게 해주는 것 즈음이야 식은 죽 먹기보다 훨씬 쉬웠다.

 

 준혁은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옆자리의 후배가 화들짝 놀랐지만, 잔뜩 흥분한 그에게는 이미 그런건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재빨리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그리운 번호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규칙적인 수신음이 들려왔다. 준혁은 초조하게 그가 전화를 받아들길 기도했다. 이러고 있자니 마치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에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을 때의 그 설렘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캠퍼스 시절의 풋풋했던 그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잠시 향수에 젖어들어 과거의 달콤함을 되찾을 지경까지 다다르기 직전에 수신음이 끊기면서 그리운 목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려왔다.

 

 “여보세요?”

 

 방금 자다 깬듯 매우 피곤해 보이는 잠긴 목소리였다.

 

 “여보세요.”

 

 그러나 정작 준혁의 목소리는 경쾌하다 못해 쾌활한 울림이 서려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고형사님.”

 

 “고 형사라니 참 그리운 호칭이구만. 그나저나 지금쯤 한창 근무 시간일텐데 성실하다 못해 근면한 네가 잠이나 자고 있었다니 믿기 힘든 일인데?”

 

 건너편에서는 못들은 것인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여보세요?”

 

 이번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준혁은 더 크게 말해볼까 생각했지만, 늘어지는 하품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그가 잠시 졸았을 뿐임을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소리가 멈추었고, 이내 그가 대답했다.

 

 “사흘 전부터 잠복근무 중이에요. 어제는 제가 철야를 했어서 두시쯤에야 다른 인력이랑 교대하고 쉬고 있었어요.”

 

 이전보다 조금 더 힘이 실려 있는 목소리였다.

 

 준혁은 한가지 이상한 사실을 눈치챘다. 그는 분명 사무직으로 준혁과 함께 책상에 앉아서 상황 브리핑이나 지시를 내리는 관제탑같은 역할이었다. 근본부터 사무직으로 채용된 그는 잠복근무를 할만한 체력도 안되거니와 상황에 맞춰 급습할 순발력과 판단도 다소 모자랐다. 그래서 늘 총지휘는 준혁이 맡아왔었고, 대신 상황 예지력이 뛰어난 그는 늘 옆에서 서포트를 해주는 역할이었다. 아무리 다른 팀원이 있다고는 해도 그런 그가 잠복근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넌 사무직이잖아. 게다가 연약한 녀석이 잠복근무라니 무슨소리냐.”

 

 “말씀 한 번 마음 아프게 하시네.”

 

 그는 잠시 실실 웃더니 굴곡없는 톤으로 말을 이었다.

 

 “고 형사님 은퇴하시면서 제가 여기 팀 총책임자가 됐어요. 그런데 애들이 형사님 빠지니까 패닉이라도 온건지 제 지시에 잘 따르지도 않고 완전 젬병이라니까요. 그리고 지금은 범인 잡을 마음은 코빼기도 없는 그냥 몸이 근질거려서 가만히 못 있는 녀석들뿐이예요. 무슨 망나니들도 아니고… 이런 녀석들을 도재체 어떻게 그렇게도 잘 다루셨던 거에요? 아, 잠복근무는 제가 하도 답답해서 직접 나온거에요. 이것들은 고형사님 은퇴하시면서 귓구녕도 안 파고 다니는 건지 제 무전이 잘 안들린다네요. 뭐 현장에 나와봐야 무전으로 대화하는 건 그대로지만. 아니, 어쩌면 현장 무전 음질이 더 나쁜 것 같기도 해요.”

 

 준혁은 그가 숨도 쉬지 않고 하는 말을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다.

 

 누군가에 대해 헐뜯는 말을 할 때에는 숨도 쉬지 않고 말하면서 그속도도 평소보다 두배는 더 빨라지는 것이 그의 버릇 중 하나였다. 예전엔 별로 좋은 버릇 같지 않다며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할때마다 조금씩 꾸짖고는 했지만, 지금은 그저 추억에 불과했다. 그의 험담이 예전보다 몇배는 더 빨라진 것으로 보아 그동안 쌓인게 많은 모양이었다.

 

 “아, 죄송해요. 오랫만에 듣는 목소리인데 안 좋은 소리만 늘어 놓았네요. 그래서… 뭐 때문에 연락했다고 하셨죠?”

 

 한창 험담을 이어나가던 그가 정신을 차린듯 기존에 해야 했을 말을 뒤늦게 하였다. 이대로 신세 한탄만 들어주다가 통화가 끝나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준혁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아, 너 내가 CHSA에 들어갔다는 거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죠. 어느날 갑자기 거기에 간다고 선언하시면서 은퇴하셨잖아요. 그때 다른 박 순경이 고 형사님이 군대에서 취사병이셨냐고 물어봐서 처음에는 다들 농담인줄 알고 미친듯이 웃어 댔었잖아요. 이야, 벌써 오래전 일이네요, 그것도. 그런데 진짜 CHSA들어 가신거에요? 그 빡세기로 유명한 데를?”

 

 준혁은 머쓱하여 괜히 슬쩍 코를 쓸었다.

 

 “당연하지. 그리고, 놀라지마라, 나 벌써 정예 수사팀 팀장이야.”

 

 “오, 진짜요?”

 

 “못 믿겠냐? 말투가 왜 그래?”

 

 그는 살짝 웃음소리를 내더니 대답했다.

 

 “아니, 뭐, 고 형사님 정도라면 그정도는 쉬운일 아닌가 싶었어요.”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마 낯부끄럽게”

 

 “헤헤, 그나저나 정예 수색팀이 무슨 의미인가요? 일반 수색팀도 있는 건가요 그럼?”

 

 “정예라는 수식어가 붙는 팀은 그 부서에서 가장 우수한 팀에게 붙는 최고의 명예지. 참고로 수색팀은 9개의 팀이 있어, 그 중 가장 우수한 팀의 팀장이 바로 나라는 이야기지.”

 

 너머에서 한동안 반응이 없었다. 준혁은 그의 잠복이 들킨 것인가 싶어 내심 긴장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걱정은 산산조각이 났다.

 

 “뭐라고요? 그런 고속 승진이 세상에 어딨어요!”

 

 “야야, 너 잠복 근무라면서! 그렇게 소리 질러도 되는 거야? 빨리 목소리 낮춰 인마! 이거 완전 나한테서 헛 배웠네?”

 

 준혁은 깜짝놀라 자신도 목소리를 낮추며 호통을 쳤다.

 

 “죄, 죄송합니다.”

 

 그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추면서 사과했다.

 

 “사과할 것 까지는 없었어. 크흠, 일단 잡담은 여기까지만 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도록 할게. 내가 이번에 맡은 임무가 있는데, 어떤 살인 사건의 전말을 내가 파헤쳐야 하거든? 그런데 내용이 너무 심오하고 정보도 부족한데다가 너무 막연해서 갈피도 못잡고 있어.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내가 상부에서 내려받은 자료들을 이메일로 보내줄테니까 네가 살펴보고 좀 추려줘라. 이거 작성한 놈이 순 엉터리라서 요점을 통 모르겠어.”

 

 “음… 분량은 얼마나 되죠?”

 

 “얼마 안돼. 양면으로 A4에 뽑았을 때 서너장 정도 분량이야.”

 

 그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더니 대답했다.

 

 “교대까지 아직 한시간 정도 남아 있으니까 한 번 봐드릴게요. 그런데 임무 자료를 이렇게 아무나한태 막 보여줘도 되는거에요?”

 

 “네가 아무나냐?”

 

 둘은 가볍게 웃었다. 전화 건너편에서 그가 말했다.

 

 “다되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잠도 깰 겸 콜라나 한 캔 마실랬는데, 돈 굳어서 좋네요.”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5 NetWalker - 14 2019 / 11 / 10 184 0 11079   
14 NetWalker - 13 2019 / 11 / 3 197 0 8560   
13 NetWalker - 12 2019 / 10 / 27 198 0 10648   
12 NetWalker - 11 2019 / 10 / 20 211 0 8947   
11 NetWalker - 10 2019 / 10 / 14 194 0 7133   
10 NetWalker - 9 2019 / 10 / 14 215 0 8459   
9 NetWalker - 8 2019 / 10 / 14 203 0 11305   
8 NetWalker - 7 2019 / 10 / 14 206 0 7989   
7 NetWalker - 6 2019 / 10 / 14 204 0 11096   
6 NetWalker - 5 2019 / 10 / 14 200 0 6992   
5 NetWalker - 4 2019 / 10 / 14 187 0 8637   
4 NetWalker - 3 2019 / 10 / 14 196 0 6896   
3 NetWalker - 2 2019 / 10 / 14 191 0 11433   
2 NetWalker - 1 2019 / 10 / 14 234 0 10733   
1 NetWalker - Prologue 2019 / 10 / 14 344 0 816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