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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사랑에도 스위치가 있나요?
작가 : 은새옴
작품등록일 : 2016.10.7

작품을 수정하며 출간준비 중입니다.

완결 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

 
04화. 스위치 온, 스위치 오프 (Switch on, Switch off)
작성일 : 16-10-11 00:18     조회 : 505     추천 : 3     분량 : 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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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대리님, 아까 말씀하셨던 자료 여기 둡니다.”

 

 깜짝.

 

 “김 대리님, 이거 좀 봐 주십시오.”

 

 깜짝.

 

 새옴은 종일 이 상태이다.

 

 누군가 김태율 대리를 부르거나 그의 이름을 언급만 해도 새옴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거렸다.

 

 이 모든 게 어제 점심시간에 봤던 김태율 대리의 뒷모습 때문이다!

 

 ‘분명히 김태율 대리님이 맞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런 말이 없지?’

 

 어제 점심시간 후에 뭔가 한 마디라도 들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제 오후도, 오늘 오전도, 그저 조용히 업무만 보는 김태율 대리였다.

 

 덕분에 새옴만 안절부절 못 하고 있었다.

 

 “에잇, 몰라. 김 대리님 속을 모르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뭐.”

 

 결국 먼저 항복한 새옴.

 

 새옴도 김태율 대리를 신경 쓰지 않고 평상심을 찾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은새옴 씨, 지금부터 저랑 같이 회의 좀 들어가죠.”

 

 “예, 예에? 회의요?”

 

 이건 뭐지? 시간차 공격? 그나저나 무슨 회의?

 

 “어? 김 대리님! 그 회의, 땡처리 관련 간부급 회의 아닌가요?

 

 때마침 송승현이 끼어들어 이 상황이 뭔지 애써 이해해야 하는 수고를 덜어주었다.

 

 “그거.. 저랑 같이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요?”

 

 송승현도 이 상황이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나 보다.

 

 “아뇨. 이번엔 은새옴 씨랑 같이 들어갑니다.”

 

 멍해 있는 두 사람에게 빠르게 자기 할 말만 하고선 김태율 대리는 사무실을 먼저 나섰다.

 

 ‘...뭐지..?’

 

 새옴은 밀려드는 불길한 느낌을 애써 외면하며 서둘러 김태율 대리의 뒤를 따랐다.

 

 

 *

 

 

 침묵.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탈 때까지도 김태율 대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아악! 날 피 말려 죽일 생각인가요! 대화할 줄 모르세요? 하다못해 기침이라도 해 봐요!’

 

 엘리베이터라는 좁은 공간은 역시나 김태율 대리와 단둘이 있을 곳이 못 된다.

 

 김태율 대리는 자연스러운 듯 침묵을 지키고 있었고, 새옴 홀로 그 어색한 침묵과 싸우고 있었다.

 

 “오늘 회의, 잘 봐 둬요.”

 

 드디어 정적을 깨고 김태율 대리 특유의 건조한 목소리가 엘리베이터 안을 울렸다.

 

 “배우는 게 많을 겁니다.”

 

 “예, 예에...”

 

 

 *

 

 

 간부 회의실.

 

 일반 회의실에 비해 어쩐지 확 트인 느낌이 강했다.

 

 최소한의 인테리어 덕에 시선 분산을 막고 오롯이 회의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호오.. 간부 회의실은 뭐가 달라도 다른 느낌이야.’

 

 “아! 다들 왔는가. 어서들 이쪽으로 오게.”

 

 회의실에 먼저 와 있던 구 과장이 사무실 한 쪽 구석에서 손짓으로 둘을 부르고 있었다.

 

 기획마케팅 1팀의 김 과장과 함께 오늘 회의 건에 대해 의논을 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길게 늘인 U자 형 테이블 위로 꽤 맛있어 보이는 조각 케이크 및 다과, 음료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간부들은 회의할 때도 아무 간식이나 안 먹는 모양이네. 역시..’

 

 곧이어 간부들이 속속 들어와 자리를 채웠다.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들.

 

 기획마케팅 팀을 비롯해 홍보 팀, 재무 팀, 법무 팀 등 중요 부서의 간부급 및 임원들이 다수 참석하는 큰 회의였다.

 

 건하 역시 기획마케팅 팀의 이사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강건하 기획마케팅 팀 이사.

 

 회의실 안에서의 건하는 어제 옥상에서 만났던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어찌 보면 그는 자유롭게 스위치를 켰다가 끄면서 성격을 바꿀 수 있는 인조인간 같았다. 그럼 어제 본 그가 스위치를 켠 상태일까, 아님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는 그가 스위치를 켠 상태일까?

 

 새옴과 눈이 마주친 건하는 그녀에게 슬쩍 눈길만 주고는 곧바로 자기자리를 찾아갔다.

 

 그런 건하를 보며 새옴은 마음속에 가벼운 한기를 느꼈다.

 

 여기서의 건하는 확실히 노블레스의 임원일 뿐이구나.

 

 ‘숨 막혀..’

 

 처음엔 과하다 느껴질 정도로 넓어 보이던 공간이, 이젠 오히려 숨 막힐 듯한 위압감으로 짓눌려 있었다.

 

 회의는 바로 시작되었다.

 

 “현재 테러 및 재난 등으로 인해 외국 여러 나라들이 ‘해외여행위험지역’으로 분류지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경쟁업체인 나무 여행사가 터키 여행 상품을 ‘땡처리’ 상품으로 고객들에게 권한 것이 드러나 뉴스 보도되었습니다. 테러에 쿠데타까지 발생한 나라임에도 말입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노블레스에서도.....”

 

 아까 구 과장과 함께 있던 김 과장이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였다.

 

 새옴과 김태율 대리는 스크린 맞은 편 벽 쪽에 따로 마련된 의자에서 이를 조용히 참관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이었다.

 

 예상치 못한 테러와 재난으로, 외교부에서 여행 취소나 현지 철수를 권고하는 상황이 잦다고 했다.

 

 그런데 미리 확보한 항공편이나 호텔 등을 다 판매하지 못할 경우, 그에 따른 손해는 고스란히 여행사가 책임져야 하는 상황.

 그야말로 여행사로서는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 경쟁업체의 소위 ‘땡처리(기존 가격보다 저렴하게 판매)’ 여행상품까지 뉴스에 보도되고 말았으니..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 우리 노블레스까지 위험 지역의 여행상품을 모른 척 판매하게 되면, 이후 돌이킬 수 없는 이미지 실추를 안게 될 수도 있습니다.”

 

 홍보 팀 표 이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그래서요? 지금 상황이 어떤지 아십니까? 유럽 최고 인기 관광지인 프랑스까지도 현재 여행 유의 및 여행 자제 지역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벨기에도 마찬가지고요.”

 

 “맞습니다. 조 이사님 말씀대로라면 우리는 프랑스 및 벨기에 관련 모든 여행상품을 접어야 할 판인데, 그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요!”

 

 재무 팀에서 반발을 하고 나섰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이기지 않으면 죽는다.’, ‘회사의 존폐가 나에게 달렸어.’ 다들 이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그랬다.

 

 지금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회사의 브랜드 이미지를 지켜내야 한다는 쪽도, 뉴스 보도에 지레 겁을 먹고 큰 손해를 감당했다가는 회사 재정에 엄청난 타격을 입을 거란 쪽도, 사실 그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이기적이다’, ‘악덕 경영이다’라고 욕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각자의 가치관이나 회사 안위를 걱정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었으니.

 

 한동안 열띤 설전이 오갔다.

 

 ‘도대체 여기에 나를 왜 데리고 온 거지?’

 

 새옴은 옆에 앉은 김태율 대리를 돌아다보며, 새삼 의문을 품었다.

 

 ‘딱히 내가 있을 장소는 아닌 것 같은데...’

 

 표정을 읽을 길 없는 김태율 대리는 그저 회의에만 집중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회사는 인류애를 실천하는 NGO 같은 단체가 아닙니다. 이윤을 추구하고 사원들의 생계를 보장해 줘야 하는 이익 단체이지요.”

 

 차분하지만 힘이 실린 건하의 목소리가 새옴의 귀를 때렸다.

 

 모두의 시선이 건하에게 쏠렸다.

 

 “물론, 장기적인 안목으로 회사 브랜드 이미지를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건하의 카리스마가 회의실을 압도했다.

 

 “하지만 프랑스나 벨기에를 포함한 서유럽 지역은 중동 지역이나 터키 같은 나라와는 다르지요.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한국 속담을 들은 적 있습니다만, 위험을 대비하는 것과 겁을 먹는 것은 다른 것 아닙니까?”

 

 일순간 회의실이 극도의 긴장으로 가득 찼다.

 

 “우리는 사.업.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쿵.

 

 새옴은 강하게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에 얼얼함을 느꼈다.

 

 두 얼굴을 가진 사람.

 

 과거의 그도, 현재의 그도, 그는 변함없이 사업가이다. 그것도 아주 능력 있는 사업가.

 

 능력이 있다는 건, 그만큼 냉철하고 계산적이라는 것.

 

 회식 때나 옥상에서 건하가 아무리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어도, 사업가로서 건하는 전혀 다른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나가죠.”

 

 이 때, 김태율 대리가 새옴의 팔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

 

 

 “커피 한 잔 어떻습니까?”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쥐어주며 김태율 대리가 새옴을 이끈 곳은 옥상이었다.

 

 아,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일부러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어제 있었던 일로 날 추궁하려고.’

 

 새옴은 조금 전 회의실에서 본 건하의 잔상만으로도 충분히 피곤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김태율 대리 역시 피해 다닐 수는 없었다. 피하고 싶은 사람은 강건하 한 사람만으로도 차고 넘쳤다.

 

 “저.. 대리님. 어제 제가 여기서 강 이사님과 함께 있었던 걸로 뭔가 오해하..”

 

 “오늘 회의, 어땠습니까?”

 

 “예에? 회의요?”

 

 “글래디에이터란 영화, 본 적 있는지 모르겠네요.”

 

 “로마 검투사들 이야기를 다룬 거요?”

 

 뜬금없이 무슨 영화 이야기지?

 

 “네. 보긴 봤는데..”

 

 새옴은 김태율 대리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대답했다.

 

 ”이거. 이거 기억납니까?“

 

 김태율 대리가 갑자기 오른쪽 주먹을 앞으로 내밀더니 엄지손가락을 펴 들었다.

 

 ‘응? 엄지 척? 아...!’

 

 “알아요! 황제가 검투사들의 생사를 결정할 때 엄지손가락으로 결정하던 장면.. 맞죠?”

 

 김태율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시선은 그대로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향한 채.

 

 “사람의 목숨이 이 손가락 하나로 결정된다.. 난 그 장면이 아주 오래 기억에 남더군요. 어쩐지 지금 우리 세상하고도 크게 다른 거 같지 않고..”

 

 “네에..”

 

 ‘아! 그렇구나.’

 

 김태율 대리가 새옴을 간부 회의에 데리고 들어간 이유, 새옴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실은 김태율 대리님은 날 타박하려던 게 아니었어.’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들만의 리그’ 일지도 모르지요.”

 

 그들만의 리그... 김태율 대리가 하고 싶은 말.

 

 우리가 ‘끼어주지 않는’ 그들이 아닌, 우리가 '끼어들 수 없는’ 그들.

 

 그런 그들만의 리그.

 

 ‘날 염려해주고 있던 거구나. 혹시나 강건하 같은 사람들 때문에 내가 다치는 일이 생길까 봐.’

 

 “사무실로 돌아갑시다.”

 

 “아, 예.”

 

 둘은 옥상 벤치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어제 새옴이 강건하와 함께 앉아 있었던 바로 그 자리에서.

 

 끼이익.

 

 김태율 대리가 문을 열고 먼저 나섰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그의 뒷모습이 새옴의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어제의 그와 오늘의 그는 새옴에게 있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어제까지의 김태율 대리는 그저 무뚝뚝하고 속을 알 수 없는 팀 동료였다면,

 

 오늘의 김태율 대리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속이 깊은 인생 선배님.

 

 새옴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김태율 대리의 뒷모습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진심을 담아.

 

 ‘고맙습니다, 선배님..’

 

 

 *

 

 

 다음 날인 토요일 오전 6시부터 새옴의 스마트폰에서 경쾌한 음악이 울려 퍼졌다.

 

 Tonight We are young (오늘 밤 우리 젊잖아.)

 So let's set the world on fire (그러니 함께 세상에 불을 질러 보자고.)

 We can burn brighter than the sun. (우린 태양보다 더 밝게 태울 수 있어.)

 

 어제 자기 전에 스마트폰 알람을 맞춰 놓았다.

 

 새옴은 바로 눈을 뜨고 침대에서 나와 스트레칭을 했다. 몸을 쭉쭉 펴주는 기분이 더할 나위 없이 개운하다.

 

 “오늘하고 딱 맞는 노래야.”

 

 오늘의 목적지는 강원도.

 

 낭만적인 풍경을 자아내는 새하얀 자작나무숲길을 걸을 예정이다. 남자친구가 아니라 오늘 처음 만나게 될 교육생들과 함께.

 

 새옴은 벌써 5년째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재능 기부로 트레킹하는 법을 지도하고 있다.

 

 젖은 머리에 수건을 두른 채 욕실에서 나온 새옴은 옷장에서 옷부터 골랐다.

 

 “새옴아, 새옴아!.”

 

 새옴 엄마가 아침을 먹고 가라고 계속 성화다.

 

 “배낭에 식량 잔뜩 챙겼어요!”

 

 새옴이 커다란 목소리로 씩씩하게 대답하고는 얼른 트레킹 복으로 갈아입었다.

 

 짙은 회색 팬츠에 스웨터, 그 위로 주홍색 점퍼를 입고, 마지막으로 연노랑 바탕에 귤색 줄무늬가 있는 방풍재킷을 입었다.

 

 평소에 블라우스와 슬렉스를 입었을 때보다 훨씬 앳돼 보였다.

 

 현관에서 새옴이 서둘러서 남색 트레킹슈즈의 끈을 묶고 있는데 아버지가 다가왔다.

 

 “명심하그라. 겨울산은 발톱을 숨긴 늑댄기라.”

 

 “저도 자알 알고 있죠. 누구 딸인데요.”

 

 대답과 동시에, 트레킹슈즈의 끈을 리본 모양으로 꽉 조였다. 아버지는 빙긋 웃으시며 새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려주었다.

 ‘너를 믿는다.’는 무언의 말씀이었다.

 

 정확하게 두 시간 후에, 새옴은 강원도에 도착했다.

 

 오늘 새옴과 함께 트레킹을 지도할 강사들은 나이가 지긋한 오십 대부터 젊은 삼십 대까지 연령대가 다양했다.

 

 그 중에서 새옴이 가장 어렸지만 등반 경력은 결코 뒤처지지 않았다. 전문 등반가인 아버지를 따라 어렸을 때부터 산에 올랐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시원하고 맑은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산이다!”

 

 새옴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아스팔트가 아니라 흙으로 된 땅에 발을 내딛자 발바닥 전체가 흙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새옴은 푹신한 흙이 깔린 땅 위에서 폴짝폴짝 뛰어보았다. 최근 들어 부모님과 함께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빴던 탓에 실로 3주 만에 오는 산행이었다.

 

 새옴과 함께 이곳에 온 일행들은 전문 등반가 집단인 ‘드림 클라이밍’에 속해 있었다.

 

 오늘 강사들 소개는 팀의 리더인 설재운 대장이 맡았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트레킹의 총책임을 맡은 설재운입니다.”

 

 나직하지만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오늘 이곳에 오신 분들은 트레킹을 처음 해보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여기 경험 많은 베테랑 강사께서 여러분을 도와드릴 겁니다.”

 

 설재운 대장이 소개말을 끝내자 곧이어 강사들이 한 명씩 소개에 나섰다.

 

 마지막으로 새옴의 차례가 되자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설재운 대장이 강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은새옴 강사를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오. 소녀 같은 외모이지만 산행경력이 무려 9년입니다.”

 

 사람들이 그래도 믿지 못하는 표정을 짓자 설재운 대장이 덧붙였다.

 

 “실제로 지난 번 산행에서 수풀에서 만난 뱀을 단지 이 스틱 하나로 물리친 여전사라고 할까요?”

 

 설재운 대장이 실제로 가느다란 등산용 스틱을 들어 뱀을 쫓아버리는 행동을 취하자, 교육생들로부터 “와아-”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오늘 여러분에게 트레킹을 지도할 은새옴입니다.”

 

 “어머, 선생님이 너무 귀여워요.”

 

 50대로 보이는 한 여성 교육생이 마치 자기 딸을 대하듯 말했다.

 

 실제로 연노랑 방풍재킷이 새옴을 귀여운 병아리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재킷이 좀.. 많이 노랗죠?”

 

 재치 있게 받아치는 새옴의 말에 교육생들이 웃었다.

 

 “선생님이랑 딱 어울려요.”

 

 “산에서 선생님 찾기 쉬울 것 같아요!”

 

 “맞습니다! 제가 이렇게 눈에 띄는 색깔의 옷을 입은 건, 여러분이 멀리서도 저를 쉽게 찾았으면 하기 때문이에요.”

 

 교육생들 사이에서 “아아..”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산에서는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 많습니다. 부디 단독행동하지 마시고, 긴급 상황이 생기면 꼭 저를 먼저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안전한 산행을 책임지겠습니다.”

 

 믿음이 가는 그녀의 말에 중년부터 중학생까지 골고루 섞여 있는 교육생들이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새옴은 모임 장소 옆에 보이는 공터로 교육생들을 이끌었다.

 

 “산행 전에 먼저 스트레칭을 하겠습니다. 지금 서 계신 곳에서 사방으로 가능한 넓게 자리를 확보해주십시오.”

 

 새옴의 말투가 변했다. 부드럽지만 엄격하게.

 

 “스트레칭은 매우 중요합니다. 평소 사용하지 않아 굳어있는 근육을 깨우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산행 중에 근육 경련이 일어나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표정도 변해갔다. 친절하지만 진지하게.

 

 새옴이 모두의 앞에서 스트레칭 시범을 보이는데, 저쪽에 아저씨들과 남학생들 사이에서 유난히 키가 큰 한 남자의 머리가 불쑥 솟아 보인다.

 

 댄디 컷으로 내린 앞머리와 동그란 눈매가 꼭 ‘그’를 닮은 듯 보였다.

 

 ‘뭐야? 나 지금 교육생을 그 남자랑 착각하는 거야?’

 

 새옴은 한동안 어리둥절한 기분에 휩싸였다가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은새옴! 정신 차려!’

 

 그녀는 애써서 머리를 차갑게 만들었다.

 

 스트레칭이 끝나자 새옴은 배낭에서 참가자 리스트가 적힌 종이와 볼펜을 꺼냈다.

 

 “오늘 참가하신 분들의 출석을 확인하겠습니다.”

 

 새옴이 참가자 리스트를 보면서 호명을 시작했다.

 

 “김진우 님.”

 

 “예!”

 

 바로 새옴 곁에 있던 중학생 남자 아이가 씩씩하게 대답했다.

 

 새옴이 출석란에 동그라미를 표시하고, 재킷 주머니에서 인식표를 꺼내 주었다.

 

 “산에서는 인식표를 꼭 착용해주십시오.”

 

 “근데 이거 잃어버리면 어떡해요?”

 

 “이렇게 배낭에 부착하면 잃어버릴 염려가 없겠죠?”

 

 새옴이 남자 아이의 배낭에 직접 인식표를 달아주었다.

 

 “그래도 만약에 까불다가 잃어버리면 어떡해요?”

 

 “인식표는 산에서 길을 잃거나 조난당할 때를 대비하기 위한 겁니다. 까불다가 잃어버리면 안 되겠죠?”

 

 새옴이 진지하게 말하자 그제야 남자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새옴이 다시 참가자 리스트를 보며 이름을 불렀다.

 

 “강건하 님.”

 

 “네.”

 

 뭐? 방금 내가 누구라고 말했지?

 

 “강건하 씨?”

 

 의심을 담은 눈길로 해당 교육생을 찾으며 새옴이 다시 호명했다.

 

 “네, 저 여기.”

 

 교육생 무리 가장 뒤편에서 키 큰 남자가 검지로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말한다.

 

 정말로 ‘그’였다. 새옴이 가는 곳마다 불쑥불쑥 나타나는 그 남자.

 

 강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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