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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판타지/SF
패왕마검사
작가 : 인기영
작품등록일 : 201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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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드래곤 시엘.
그가 지키지 못했던 플로렐 공작가와의 언약이 오랜 세월을 흘러
그 후손에게 이어지게 되는 순간 잠들어 있떤 패왕의 피가 다시금 들끓는다.

 
제 13 화
작성일 : 16-07-12 13:47     조회 : 632     추천 : 0     분량 : 5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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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놈이 끝까지!”

 난 엉덩이의 상처에다 포션을 뿌려 주었다. 역시나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다. 그리고 남작의 입에다가 포션을 몇 모금 흘려 넣어주었다.

 그러자 남작의 창백하던 얼굴에 조금 핏기가 돌아왔다.

 “이리 내놔라!”

 남작은 반 정도 남은 힐링 포션을 빼앗듯 낚아챘다.

 그러더니 한 모금 더 마신 뒤에 반의반 정도 남은 포션을 기사와 병사들의 상처에 나누어 발라주었다.

 “젠장, 어지러워서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겠군. 이놈들아! 어서 일어나!”

 남작은 기사와 병사들에게 발길질을 선사한 뒤 비틀거리며 마차에 올랐다.

 마부가 남작에게 물었다.

 “어디로 모실까요?”

 “돌아간다. 우선 쉬어야겠어. 하지만 그 전에… 저 종이 쪼가리부터 빼앗아야겠군.”

 카를로스 남작이 이죽거리며 내 손에 쥐어진 종이를 바라보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저 돈에 환장한 돈 귀신이 그런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쓰고서 그냥 갈 리가 없다.

 처음부터 아예 백지화시킬 생각으로 계약서를 작성한 것이다.

 카를로스 남작은 이제 막 깨어난 기사에게 날 가리키며 명했다.

 “저 종이를 빼앗아서 갈기갈기 찢어버려라.”

 “알겠습니다.”

 기사가 검을 뽑아들고서 내게 다가왔다.

 가소로운 놈.

 -하라드.

 -말씀하십시오, 로드시여.

 -너희 당장 내 쪽으로 튀어 와라.

 -알겠습니다.

 텔레파시가 끝나는 순간 저쪽의 큰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카오스 나이트 셋이 쏜살같이 이쪽으로 달려들었다.

 내게 검을 겨누던 기사는 고블린들을 보고 기겁하며 소리쳤다.

 “카, 카를로스 남작님! 고, 고블린들입니다!”

 “뭐, 뭐라고! 이런 젠장! 빨리 도망쳐라!”

 기사와 병사들이 정신없이 말에 올라탔다.

 카를로스 남작은 마차의 문을 쾅 닫더니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는 내게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100골드가 내 목숨값이라고 했더냐? 이제 그게 네 목숨값이 되겠구나! 저놈들은 보통 고블린들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구해주지 못한 날 원망하지 말거라! 아하하하하!”

 그렇지. 이놈들은 확실히 보통 고블린이 아니긴 하지.

 고블린들은 빠르게 달려와서 내 앞에 일렬로 쫙 섰다.

 고블린들의 뒤를 이어 루스펠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쯤 마차는 이미 작은 점이 되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난 지평선 너머로 모습을 감추는 카를로스 남작의 마차를 보며 말했다.

 “네 목숨값으로는 100골드도 많이 쳐준 거야. 그리고… 아무리 급해도 바지는 입고 갔어야지.”

 황량한 바닥엔 카를로스 남작이 벗어둔 바지가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

 

 아버지는 내가 내민 종이 쪼가리를 보고 입을 쩍 벌렸다. 옆에 있던 어머니도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정말 카를로스 남작이 네게 이런 걸 써주었단 말이더냐?”

 “네.”

 “몬스터에게 당해 다 죽어가던 카를로스 남작에게 힐링 포션을 주는 대가로 100골드를 받아냈다고?”

 “네.”

 “그중 10골드는 우리 가문의 빚을 탕감하는 것으로 하고 나머지 90골드는 훗날 주겠다는 계약서까지 썼다, 이거지? 게다가 그에 대한 이자는 하루에 갑절씩 올라간다?”

 “네.”

 “너는 힐링 포션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마을로 가던 중이었고?”

 “네.”

 “힐링 포션은 창고에서 우연히 발견했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흠… 이런 젠장!”

 아버지가 의자걸이를 탁 쳤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뒤질 때는 아무것도 안 나오더니! 젊은 피만 좋아하는 더러운 창고!”

 아아, 이야기의 초점이 또 새나갔다.

 아버지는 뭔가 더 나올지 모르니 당장 창고를 뒤져 봐야겠다며 뛰쳐나가려다 어머니의 제지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는 콧방귀를 탕 뀌며 말했다.

 “이 계약서대로라면 한 달쯤 뒤엔 카를로스 남작이 우리에게 줘야 할 돈이 모든 재산을 탈탈 털어도 감당이 안 될 텐데, 그치?”

 “그렇죠.”

 “그놈이 퍽이나 계약서대로 행동하겠다.”

 아버지는 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듯 입맛을 다셨다. 난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한데 카를로스 남작에게 5골드는 대체 왜 빌리신 겁니까?”

 “5골드를 빌렸다는 건 어찌 알고 빚을 청산하자 했느냐?”

 미안해, 달란트. 당신 이름 좀 팔게.

 “집사에게 들었습니다.”

 “이런… 내가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당부했더니. 넌 알 거 없다.”

 “말 안 해도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 알 거 같습니다만.”

 “어허, 알 거 없대도.”

 “보르네주를 마시느라 사용하신 게 아닙니까?”

 이번 기회에 아버지의 기를 조금 꺾어놓을 요량으로 작심하고 밀어붙였다. 대단히 불경스러운 광경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한데 어머니가 그런 내 말을 가로막듯이 말했다.

 “아르젠, 사실 네 아버지는 한 번도 보르네주를 마신 적이 없단다.”

 “…네? 그게 무슨…….”

 “술을 마셔 본 적 있니?”

 “맥주 정도는 마셔 봤습니다.”

 “그러니 아버지께서 무슨 술을 드시는지도 잘 몰랐겠지. 항상 말로만 보르네주, 보르네주 노래를 불렀지, 정작 입으로 들어가는 건 평민들이나 마시는 싸구려 술이었어요.”

 “…정말입니까?”

 내가 묻자 아버지는 심히 민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아, 기분이라도 내야 할 거 아니냐. 내가 보르네주를 매일같이 퍼마셨다면 집사가 옛적에 날 살해했을 게다.”

 “그럼 5골드는 대체 어디에…….”

 거기에 대해선 어머니가 설명해주었다.

 “노라를 알지?”

 노라는 우리 저택에 있는 세 명의 하녀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근래 날 보면 항상 시선을 피해버리곤 했다.

 “하루는 시종장이 홀로 한숨짓고 있기에 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단다. 그러자 시종장이 어렵게 말을 꺼내길, 노라의 어머니가 병에 걸렸는데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들어간다고 하더구나.”

 “…….”

 그래서 노라가 늘 죄 지은 듯한 얼굴로 날 피했었구나.

 할 말이 없었다.

 대단히 큰 충격을 받아서 머릿속이 멍해졌다. 아버지는 쓸데없는 얘기를 한다는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너무나 죄송했다. 이렇게나 크게 아버지를 오해하고 있었다니.

 “죄송합니다, 아버지.”

 “괜찮다, 내 자식아. 그만 가보거라.”

 “제가 사죄한다고 해서 금방 마음이 풀리시진 않겠지만 용서해주십시오.”

 “자식아, 괜찮다니까. 이 애비는 마음이 하해와 같아서 아무렇지도 않단다, 자식아.”

 “괜찮으시다면서 ‘자식아’라는 단어의 억양이 조금 센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해란다, 자식아. 넌 내 자식이잖느냐, 이 자식아. 아비가 자기 자식에게 자식이라고 하는 게 문제가 되느냐, 자식아?”

 “…마음이 단단히 상하셨…….”

 “야, 이 자식아! 그만 가보래도.”

 이거, 단단히 삐치셨다.

 고개를 들어보니 어머니가 살포시 미소 지으며 내게 밖으로 나가라며 손짓하고 있었다.

 나머지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난 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방을 나왔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할 겸 잠시 그 자세로 서 있는데 마침 노라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날 발견하고서 허리 숙여 인사를 건네는 그녀에게 툭 던지듯 물었다.

 “어머니는 많이 회복되셨니?”

 그러자 노라가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아, 알고 계셨습니까?”

 “응. 어머니는?”

 “괘, 괜찮아지셨습니다. 플로렐 공작님이 도와주신 덕분에 어머니께서 살 수 있었습니다.”

 말을 하는 노라의 목소리가 젖어들었다.

 나는 이제 15살인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래, 다행이다.”

 “괜히 저 때문에 카를로스 남작님과 마찰을 빚게 해서 죄송합니다. 정말로…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니야. 너 역시 플로렐 가문의 가족이야. 가족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않겠어? 그렇게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 숙일 필요 없어.”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4골드나 되는 큰돈은 제가 평생을 일해도 만져 보지 못할 만큼 너무 엄청나서…….”

 “잠깐만. …방금 4골드라고?”

 “네? 아, 네…….”

 “5골드가 아니고?”

 “네에? 아닙니다. 4골드였습니다.”

 …뭔가 냄새가 난다.

 나는 그대로 뒤돌아서 아버지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아버지!”

 “왜? 이 자식아!”

 “1골드는 어디로 빼돌리셨습니까! 진짜 보르네주라도 한 병 사오신 건 아니시겠지요!”

 잔뜩 삐친 것 같던 아버지의 얼굴이 순식간에 온화하고 인자하게 변했다.

 “…아들아, 밤이 늦었잖느냐. 허허허. 어서 가서 자거라.”

 갑자기 말투 바꾸지 마세요!

 “아직 해가 짱짱한 게 안 보이십니까!”

 “허허허허허,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야지 않겠느냐? 허허허허허.”

 아, 내가 미쳐.

 

 

 ***

 

 “그동안 아티팩트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시더니,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그다지 큰일이 없었으니까, 실전 경험을 쌓는 데 도움이 되는 것 말곤 건드리지 않은 거지.”

 나는 루스펠과 아공간의 세 번째 방에 들어와 있었다.

 방 안에는 하얀 제단이 존재했고 그 위에 세 종류의 아티팩트가 놓여 있었다.

 난 일전에 루스펠이 일러주었던 아티팩트들의 대략적인 능력을 떠올리며 귀걸이 하나를 들어올렸다.

 “이게 메모리즈 이어링이었지?”

 “그렇습니다.”

 “복습 한번 해보자.”

 난 손에 들린 별 특징 없는 동그란 모양의 귀걸이를 이리저리 살피며 명했다. 그런 내 귀에 루스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귀걸이를 왼쪽 귀에 착용한 상태로 마나를 흘려 넣으면 착용자의 마나가 고갈되는 순간까지의 모든 영상과 음성이 고스란히 기억됩니다.”

 “마나가 고갈되지 않아도 중간에 마나를 차단하면 거기까지만 기억되는 것이고.”

 “그렇습니다. 영상을 담아두는 데 한계치는 없습니다. 귀걸이를 오른쪽 귀에 바꿔 착용하면 기억된 영상들의 목록이 눈앞에 떠오를 것입니다. 그중 꺼내어보고 싶은 영상을 선택하면 일루전 마법처럼 허공에 생생한 영상이 떠오르게 됩니다.”

 “오케이! 복습 끝.”

 난 귀걸이를 왼쪽 귀에 착용했다. 그리고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가 얇은 줄에 엮어진 목걸이를 들어올렸다.

 기억을 되짚어서 그 아티팩트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타스카였나?”

 “맞습니다. 타스카는 목걸이 형태의 아티팩트로서 거대한 신성력을 내장하고 있습니다. 신앙심이 없는 사람도 이 목걸이를 착용하면 신성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신성력은 모든 언데드 몬스터들의 적이며, 그 옛날 지상에 강림했다던 마족들을 상대로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었다.

 “타스카의 이용엔 제한이 없었지?”

 “전혀 없습니다.”

 “그럼 지금 착용해도 되겠네. 언젠간 쓸모가 있겠지.”

 난 루스펠의 손에서 목걸이를 빼앗아 목에 걸었다.

 은으로 만들어진 작은 십자가 모양의 펜던트를 옷섶에 넣어 감췄다. 그러자 은은하며 편안한 기운이 온몸 가득 넘쳐흘렀다,

 “음, 이것이 신성력이라는 것인가?”

 난 생전 처음으로 느껴 보는 신성력에 감탄하며 아티팩트의 방을 나왔다.

 마법진 앞에서 시엘의 이름을 네 번 부르고 동굴로 돌아온 내게 루스펠이 말했다.

 “그런데 카를로스 남작이 순순히 물러서진 않을 듯합니다. 언제든 다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릴 것 같습니다만.”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이번에는 아무런 장치도 하지 말고 그냥 놔둬. 한 번 더 찾아오면 시원하게 두들겨 패버릴 참이니까.”

 “아르젠 님이 가지고 계신 힘을 최대한 감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번엔 두 번 다시 접근도 하지 못하도록 감춰버릴 셈이야. 하지만 그 전에 나도 한 번 정도는 스트레스 좀 풀어야 하지 않겠어?”

 나는 텔레포트 마법진 위에 섰다.

 “괜찮겠습니까?”

 “다 생각이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시엘, 시엘, 시엘.”

 시동어와 함께 환한 빛이 일며 공간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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