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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12화
작성일 : 19-11-01 21:01     조회 : 273     추천 : 0     분량 : 1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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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수인이와 함께 배운 친구들은 고려의 화랑이 되려는 꿈을 키웠다. 그리고 수인도 당연히 화랑의 꿈을 꿀 것이라고 믿었다. 어느 날 친하다는 친구가 수인의 옆에 와 서더니 과거시험을 언급하며 시험공부를 열심히 하여 과거를 함께 보자고 했다. 수인은 가슴이 뛰었다. 아버지인 동희도 과거에 급제하여 명주군의 아찬 벼슬까지 하지 않았던가. 꿈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은 안 될 말이다. 자신은 여자가 아닌가. 스스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은 할머니 뒤를 이어 무역업을 할 것이라고 새삼 마음으로 새겼다. 마음의 흔들림을 가라앉히고,

 “과거 급제를 하려거든 지금의 열배를 공부해라.”고 충고를 해주곤 입을 다물었다.

 꿈이란 누구나 가질 수 있다. 그러나 꿈을 다 이룰 수는 없다. 수인은 꿈을 꾼다. 서라벌에서 펼칠 꿈을 매일 꾼다.

 미향은 당의 상인들을 오래 상대하여 왔기에 그 사람들의 인간 관계에 대한 사정에 밝다. 신라가 망하고 고려의 조정이 강해지면서 나라의 위상도 새롭게 강화되었다. 그러한 배경을 이용하여 그들과 새로운 무역의 터전을 다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마지막 지혜를 다 이용할 것이다.

 그러한 마음의 자세로 다시 보부상을 결집하였다. 보부상을 함께 했던 자식들을 거두어 사업을 이어갈 능력과 교육을 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교육을 시키고 충성을 믿음으로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고려의 특산물을 국제적으로 선호할 수 있는 수출품을 찾아내어 시대에 맞는 사업을 할 수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았다. 이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5~6명의 젊은이들과 수인을 앉혀놓고 토론회를 가졌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어요. 소국이었던 우리나라가 대국이 되었어요. 그에 걸 맞는 품목을 찾지 않는다면 사업을 성공시킬 수가 없어요. 이제 나라를 대표하는 물건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서슴없이 무엇이든 좋으니 의견을 말해 봐요.”

 미향은 한 사람 한 사람 둘러보았다. 지루한 순간이다.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니 이 안건을 곰곰이 연구하여 좋은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우리는 앞으로 무역을 하는 사람이기에 언제나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어떻게 하면 선 두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를 생활에서도 잊지 않아야 살아남아요. 미향은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되었다.

 수인은 할머니가 자랑스러웠다. 저리도 투지가 넘칠까? 수인은 집에 있을 때 할머니가 임영관을 몇 채를 지었건 관심이 없었다. 수재민을 위해 옷을 만들었다던가. 집을 수십 채를 지었다던가 하는 것에 커다란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할머니를 따라나선 것은 백 번 잘했다는 생각에 어깨에 힘이 생겼다. 할머니의 말씀대로 외국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상품을 찾아낼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첫 강의

 절에서 의례 하는 일은 싸리비로 마당을 쓰는 것이다. 새벽에 올라왔는지 세 여인이 동시에 합장을 하고 나를 쳐다본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해인사에 첫발을 들였을 때 함께 했었던 사람들이다. 어느덧 해인사에 온 지 삼 년 세월이 지나갔다.

 어느 날 희랑스님께서 제자들을 모이게 했다. 이제 기력이 쇠진하여 몸도 제대로 움직이기가 힘든 상태였다. 나는 그동안 희랑선사의 시봉을 들면서 경을 해석하는 데 삼 년의 세월을 더 소비하였다. 그동안 행자로 지낼 적에 하였던 절의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며 정성으로 희랑스님을 섬겼고 삼 일에 한 번씩 몸을 씻겼으며 불편하지 않도록 병 간호를 하였다. 몸은 늙었어도 정신은 맑은 탓에 스님의 한 마디는 깨달음의 메시지로 전해졌다. 그러한 어느 날 목욕을 하였는데도 또 목욕하기를 권하셨다. 스님의 말씀대로 행했다. 깨끗한 승복과 속옷을 입기를 원하기에 그대로 했다. 시간은 오후 시간이었다. 자세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말씀하셨다.

 “일현은 나가서 행자와 정법스님을 방으로 데려오너라.”

 스님은 곧은 자세를 하시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스님들께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네.”

 우리들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지 조용히 앉아 있었다.

 “해인사에는 이제 새로운 바람이 일어야 하네. 지금껏 나라와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기도로만 일관해 왔는데 신도들의 수준이 예전과 달라졌음을 알아야 하네.”

 앞으로는 경전으로 신도들을 공부시키는 개혁을 시도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고 신도들을 결집하여 경전 강의를 시작하여야 한다며 희랑스님은 나에게 금강경 강의를 부탁하였다. 다른 스님들도 나에 대한 일은 대강은 알고 있었지만 그 어려운 금강경 강의를 하라고 하는 큰스님의 말씀에 의아한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정법스님이 한 마디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일현스님은 충분히 부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가피를 받았으니 이번 보름에 모이는 신도들께 통보하여 다음달 초하루부터 금강경 강의를 한다는 것을 서라벌 일대에 전파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는 지시였다. 미리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스님의 눈총이 느껴졌다. ‘정말 강의를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과 여기 온 지 삼 년밖에 되지 않은 스님에게 그런 큰 의무를 부여하는 큰스님이 망령이 들었나’ 하고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누구의 명령이라고 불만을 털어놓을 것인가. 두 스님의 대답 소리는 가늘고 길었다.

 이러한 날을 예상하고 강의 준비를 오래 전부터 공부하고 연습하여 왔다. 불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금강경에 대한 매력에 빠져있었다. 한자를 풀어 부처님 말씀을 전해야 하는 의무감은 해인사에 와서 삼 년의 세월이 더 겪으면서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경전 강의를 어떻게 풀어 어떤 방법으로 쉽게 전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고 연구하였다. 그냥 책을 보고 읽으며 해석할 것인가. 칠판에다 써가며 알기 쉽게 할 것일까를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칠판에 글을 써서 전달하는 것이 배우는 사람이 쉽고 이해를 빨리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무엇으로 글씨를 쓸 것이며 어디에 글자를 써야 할지를 고민하였다. 그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하기에 손쉬운 것은 나무보다 돌이 효율적이겠다는 판단을 하였다. 그렇다면 어디서 넓고 얇은 돌을 구할 것인가에 있었다.

 산을 돌아다니며 찾아보았다. 강가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시루바위라는 시루떡처럼 납작하고 네모난 바위가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냥 쓰기에는 험하고 너무 무거워서 힘들 것 같았다. 석수장이를 불러 얇게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글을 지우고 쓰는 데 편리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하였다. 돌이 각에 맞는 넓이와 길이를 재어 나무에 홈을 파기 시작하였다. 돌의 무게가 안전하도록 다리를 받쳐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리 해놓았다. 그 다음은 무엇으로 글씨를 쓸 것인가를 고민했다. 먹물을 갈아서 붓으로 쓴다는 것은 먹물의 한계가 있었다. 한 시간 여 내에 많은 글씨를 쓸 수도 있기에 먹물을 묻혀 붓으로 돌 위에 쓴다는 것은 매끄러운 돌이 먹물을 받을 수 없기에 글씨가 안될 것이었다.

 며칠을 두고 생각했다. 땔감으로 쓰는 참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만들어 쓰기로 하였다. 참나무 숯은 단단하여 쉽게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숯을 손에 잡기 쉽도록 천에다 감아서 갈아놓은 먹물을 찍어 쓰면 먹물이 숯에 스며들어 숯도 금방 닳거나 부러지지 않을 것이기에 해보기로 했다. 준비를 마친 지 며칠이 되었는데 희랑스님께서 그것을 미리 아시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고부터 세 사람의 보살은 나와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경전공부가 열린다는 소문을 내어 장안에 파다하게 퍼졌다. 그 대상들은 주로 관리 부인들이었다. 서민들은 먹고사는 문제에 급급하여 경전과 인연을 맺기에 힘들 것이다. 이제 며칠 앞으로 다가온 금강경 강의시간을 기대에 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자랑스럽게 하는 말 중에 남편들도 나온다는 것이다. 불법을 중시하였던 신라나 그것을 인용하는 고려가 대대로 이어진 불법을 나라가 정한 호국 신앙으로 삼았기에 그리 낯설지 않은 현상이다. 부처님 경전을 배운다는 기쁨은 그들로 하여금 처음 있는 일이라 가정에서 글을 배우고 시집온 여자들은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는데 기쁨을 금치 못하고 입으로 소문을 담아 날랐다. 처음부터 인연이 된 그 여인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불, 법, 승으로 새 이름을 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너무 감사하다며,

 “스님! 우리 셋의 이름이 불, 법, 승이면 부처님이네요? 그러한 능력도 인물도 아닌데요. 그리 대해 주신다면 열심히 노력하여 이름값을 해야지요. 그래도 이름이 너무 무서워요.”

 “아닙니다. 보살님들이 그러한 이름을 가질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십니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적극적으로 해인사를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헌신하였다.

 금강경 공부는 한 달에 두 번 초하루와 보름에 하기로 정했다. 사월 팔일이 지나고 오월 초하루에 첫 강의를 시작하였다. 대웅전에 남녀 20명이 모였다. 법당이 꽉 찬 것 같았다. 기동이 어렵던 희랑선사도 법당으로 나오셨다. 나의 강의를 듣기 위함이다. 신도들은 가슴이 설레었다. 오랫동안 법당에 나오지 않았던 큰스님의 모습을 보는 신도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하였다.

 첫 강의이기에 부처님께 짧게 기도를 올렸다. 따라 읽는 경의 소리가 산을 타고 오른다. 법당 한 곳에 미리 준비해 놓은 시루바위로 된 칠판이 나무 사이에 끼워져 사각으로 안전하게 힘을 분산하여 써주기를 기다린다. 기도를 마치고 앞으로 나와 칠판 앞에 섰다. 떨린다거나 무섭다거나 하는 마음은 없었다. 미리 한 시간을 갈아 모은 먹물을 칠판 아래에 놓았다. 그리고 칠판에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참나무 숯을 길게 깎아 만들어 천으로 말아 연필처럼 돌 칠판에 쓰기 시작하였다. 너무 눌러 쓰다가 숯이 부러질까 염려하여 손가락의 힘을 적절히 조절해야 했다.

 ‘금강경 강의’라는 글을 크게 썼다. 신도들 20명은 신기하여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나름대로 문종이를 잘라 노트를 만들어 온 사람들도 있었다.

 “여시아문,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부처님의 말씀을 수보리가 직접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금강경은 수보리와 석가모니 부처님과의 대화의 문답으로 전개됩니다. 32수로 되어 있는 금강경을 부처님께 묻고 부처님이 수보리의 의문을 풀어주시며 부처님 열반 뒤에 어떻게 수행하고 어떻게 공부하여야 하는지? 수보리가 묻고 물음에 대답합니다. 그것은 우리 중생이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어떻게 부처님 법을 알고 공부하여야 하며, 어떻게 바로 이행하며, 어떤 것이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인지, 어떤 것을 버리고 어떤 것을 믿어야 하는지를 묻고 대답한 경전입니다.”

 나는 서론부터 시작하였다. 칠판은 글씨도 번지지 않고 잘 써지고 있었다. 한 번도 막힘없이 강의가 잘 되었다. 부처님께 감사했다. 이렇게 부처님 말씀을 전할 수 있어서 고맙고, 강의 들으러 많은 사람들이 와주신 것도 고맙고, 내가 그것을 할 수 있어서 고마웠음을 감사하였다.

 어머니가 가방에 넣어주셨던 금이 생각났다. 그것으로 종이를 사서 금강경을 번역하여 사람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 여인들과 산을 내려갔다. 종이를 사기 위해서다. 세 사람 중 불은 신도회장이고 법은 신도를 관리하는 사무를 맡아보고 승은 그들을 항시 따라다니며 도와주며 어울리는 보살이다. 강의에 모였던 사람들이 먼저 흩어져 내려가고 세 사람과 산을 내려왔다. 삼 년의 세월동안 그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불보살은 대갓집 여인이었고 법 보살은 화랑 집안의 여인이었다. 언제나 뒤에서 그들을 따라다니는 승 보살은 두 남매를 데리고 혼자 산다고 하였다. 양반집 며느리가 재산이 넉넉하여 여유롭다고 들었다. 그들은 언제나 함께 다녔다. 이제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다 보니 때론 농담도 서슴없이 한다. 그들과 함께 해야 하는 부처님 사업에 없어서는 아니 될 삼 보살들이다.

 “스님, 오늘 강의를 위해서 너무 고생이 많았습니다. 우리들은 너무도 좋았어요.”

 “고생은 세 보살님이 하셨지요. 저는 기쁩니다.”

 “그런데 합천에는 무슨 연유로 내려가시는 겁니까?”

 언덕을 내려오며 불보살이 물었다. 모두가 궁금한 것을 참느라 기다렸다는 듯이 걸음을 멈추고 쳐다보았다.

 “소에 볼 일이 있습니다. 물건을 살 것이 있어서요.”

 “거기엔 여러가지 물건을 파는 곳인데 절에 쓰일 물건입니까? 스님이 쓰실 것을 사러 가시는 겁니까?”

 이들이 대신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마을에 다 내려왔다.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합천에 소가 몇군데 있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한 번도 가본 일은 없다. 그들에게 물었다. 제일 가까운 소가 어디에 있는가를 물어 소의 안으로 들어갔다. 점원인 듯한 사람이 다가왔다.

 “스님, 무엇을 찾으십니까?”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대로 종이가 있는 코너에 갔다. 급한 마음에 금을 들고 왔다. 금을 전으로 바꾸어야 종이를 살 것이다. 무작정 금을 들고 왔는데, 여기에서 금을 사는지 알 수 없어서,

 “금을 사십니까?”

 “네! 아~ 예, 삽니다.”

 돈으로 물건을 사본 적이 없다. 어머니가 그것을 아시고 쓰임에 편리하도록 작은 덩어리로 금을 넣어주었던 것이다. 금의 값이 얼마인지를 몰라 우선 종이를 무게에 달았다. 가져갈 수 있을 만큼의 양을 결정하고 금 한 개를 내밀었다. 그들은 아주 작은 저울로 금의 무게를 달아보고,

 “스님, 금이 한 돈입니다. 종이 값을 제하고 계산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라고 고개만 끄덕여 주었다. 다른 살 것이 없을까를 살폈다. 희랑스님께 좋은 차라도 끓여드리고 싶었다. 차의 종류를 살피고는 녹차 몇봉지를 샀다. 눈에 뜨이는 것이 많았다. 희랑스님의 겉옷과 속옷도 한 벌씩 샀다. 돈을 쓴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언젠가 과거에 급제하고 서라벌 장터에서 맛있게 사먹어 본 음식이 생각났다. 그 때도 어머니가 넣어준 돈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어찌 지내시는지? 어머니와 헤어진 세월이 10년이 지났다. 공부에 심취해 살다보니 어머니를 잊고 살았다. 한 번 다녀오고 싶어도 워낙 먼 거리라 생각 하니 마음에서 멀리하고 살았다. 물건을 챙겨 가방에 넣고 소에서 나왔다. 오월의 긴 해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없는 곳에 쉬어갈 곳도 없다. 고향 서라벌에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어머니와 살던 옛집에라도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이제 부처님 제자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에 대한 기쁨을 어머니께 보여드리고 싶었지만 너무 먼 거리여서 갈 수는 없었다. 이제 해인사에서도 자리를 잡았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태어나 살았던 신라의 땅을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가 등에 지고 있는 짐의 무게에 정신이 돌아왔다. 종이를 잘라 다음 강의 때까지 책으로 엮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잊고 있었다. 걸음이 빨라졌다. 마음이 바빴다. 그러한 생각에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해인사 마당에 당도했다.

 “일현 스님! 등에 지고 온 것이 무엇입니까?”

 “합천에 가서 물건을 사왔지요.”

 희랑스님의 옷을 사면서 함께 있는 도반의 생각도 하였다. 두 스님의 옷도 한 벌씩 샀다. 얼마나 다행인가 잘했다는 생각으로 방으로 들어갔다. 정법스님이나 행자스님이 뒤를 따라 들어와 호기심에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 가까이 앉는다. 가방을 풀었다. 두 스님이 놀란다.

 “스님 이 많은 물건을 무슨 돈으로 사오셨습니까?”

 그냥 웃기만 했다. 큰스님 옷은 따로 챙겨놓고 두 도반의 옷을 한 벌씩 내어놓으며 입어보라고 했다. 그들은 너무나 감사하다며 옷을 입어본다.

 “와~ 스님, 몸에 딱 맞는 것이 좋습니다. 새 옷을 입고 합천으로 놀러갑시다. 우리 꽃구경 가요!”

 행자스님이 신이 났다. 산천엔 꽃들이 피는 계절이다. 불, 법, 승 보살들과 산을 내려가면서 보았다. 그러나 별다른 감동이 없었다. 마음 가는 곳이 다르기에 길을 찾아 걸었을 뿐 살필 겨를이 없었다. 그녀들도 꽃에 대한 감각이 없는지 아무도 꽃이 피었다거나 예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행자스님의 말을 들으니 웃음이 나왔다. 오직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다보니 그러한 무감각이 되었던 것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차라고 쓰여 있네요. 차가 뭐예요?”

 행자는 처음 보는 것인가. 나는 차 봉지를 뜯어보았다. 말려진 작은 입자가 보였다. 겉봉투에는 차의 이름과 끓여먹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스님, 주전자에 물 좀 끓이세요. 차 맛 좀 봅시다. 향기를 코로 음미하며 마시는 차입니다.”

 나는 서라벌에 있을 때나 강원도에 있을 때는 차를 즐겨 마셨었다. 어머니가 언제나 머리를 맑게 하는 차라며 공부방에다 넣어주셨다. 공부하다 머리가 아프다거나 공부가 지루할 때는 언제나 주전자에 있는 차를 따라 마셨다. 절에서는 공부하다 막힌다거나 힘들 때는 시원한 샘물을 마시는 버릇이 있었다. 차반을 들고 희랑선사의 방으로 들어갔다. 스님은 누워계셨다. 찻잔을 옆에 놓고 앉았다.

 “스님, 다녀왔습니다. 몸이 불편하신 건 아니십니까?”

 스님은 눈을 떴다. 그리고 일어나려고 힘을 준다. 오전에 법당에 가셨다가 한 시간이 넘도록 앉아계셨다. 스님을 부축하여 내려오면서 스님이 곧 떠나시리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스님을 의지하여 시봉하면서 스님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깊이 새겼다. 그러나 이별을 해야 한다는 현실을 억지로 부인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희랑스님은 어려서 출가하여 한때는 신라 왕실에서 벼슬도 하셨다. 나라가 망하면서 해인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시고 절을 지키셨다. 그 세월동안 나와도 인연이 되었다. 스님을 부축해 일어나 앉아있게 해 드렸다.

 “스님, 오늘 합천에 갔다가 소에 들러 향기가 좋은 차를 사왔습니다. 행자스님이 물을 끓여 만든 차를 가지고 왔습니다. 향이 어떤지 드셔보십시오.”

 스님은 꼿꼿이 앉아 찻잔을 받아 향을 음미하다가 입에 대었다.

 “향이 좋구나. 너도 그동안 차 맛을 잊고 살았지? 고생 많았다. 너의 아버지가 가끔씩 여기 다녀갔단다. 너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제 나도 어디든 떠날 때가 되었다. 그동안 내 수발드느라 힘썼다. 해인사는 너에게 맡겨놓고 가마. 부디 부처님 법을 다 전하고 오너라.”

 그리고 두 스님을 오라고 하였다. 그동안 정이 들었는데 이제 마지막이 되는 것인가? 눈물이 앞을 가려 걸을 수가 없다. 운명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두 스님이 방으로 들어오자. 스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내 진즉 떠났어야 하는데 이제 편히 떠날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 오늘 법당에서 일현의 강의를 들으니 감개가 무량하였다. 내가 하는 말이 정법에게는 섭섭할지 모르겠구나. 허나 부처님 법은 어느 누구 욕심으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른다. 법 납은 적지만 미리 닦아놓았던 인연인지 일현스님을 여기 해인사 주지로 임명한다. 그러니 서로 도와 흔들림이 없도록 이행하기 바란다. 나는 이제 때가 되어 떠날 것이다. 내가 입적하면 화장을 하여다오. 훗날 또 인연이 닿으면 우리 또 만나자. 그동안 살아온 것이 하루해와 같구나. 열심히 정진하여 부처를 이루어주기 바란다.”

 한마디의 흐트러짐 없는 말씀은 어길 수 없는 힘으로 다가왔다. 정법스님과 행자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삼배를 하였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미처 일어날 겨를이 없었다.

 “일현스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드립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큰스님 말씀대로 해인사를 책임지고 잘 지켜 나갈 것을 큰마음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정법스님이 큰스님 앞에서,

 “큰스님, 일현 스님을 도와 저희들은 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해인사를 잘 지킬 것입니다. 스님은 아무런 걱정을 마십시오. 그동안 큰스님 그늘에서 아무런 무서움이 없이 살았는데 큰스님 안 계시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갑니까?”

 “참으로 고맙구나. 정법아~ 네가 그러하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이별이란 새로운 시작인 것을 모르느냐? 몸은 사라지지만 마음은 하나라는 것을 모르느냐? 이별을 서러워 말라. 인연이 끝나면 육신은 흩어지는 법. 일현을 의지하여 열심히 정진하여라.”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정법스님은 큰스님의 두 손을 잡고 울면서 대답했다. 큰스님 저도 그러한 마음입니다. 부디 마음을 고정하시고 떠나신다는 말씀은 거두어주십시오. 오래 의지하였던 부모 같았던 큰스님을 어찌 이별 한단 말인가. 소리죽여 울었다.

 “몸은 떠나지만 마음은 남을 것이다. 아무 걱정 말고 일현을 믿고 의지하여 불법을 전하는 데 정진하기 바란다.”

 행자는 너무나 슬피 울고 있었다. 큰 스님은 힘에 겨워 자리에 눕기를 원했다. 해인사는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스님의 장례를 의논해야 했다. 행자는 스님 옆을 떠나지 말라는 책임을 주었다.

 희랑스님은 해인사에서 많은 불사를 하셨다. 공들여 지어놓은 요사채가 몇번의 화재로 불에 탔다. 그럴 때마다 다시 불사를 거듭하셨고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해인사를 지켜오셨다. 그 중에 제일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은 신라가 망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 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에 동희가 절에 다녀가고 최치원의 아들이 서자라는 것을 알았을 때 놀랐던 기억이 있었는데 다시 중이 되어 찾아와 기쁨으로 살았다. 삼 년 여의 시간 속에 해인사를 맡겨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계속 관찰하였다. 강의하기 위해 법당에 차려놓은 칠판이며 글씨를 쓰기 위해 마련한 도구가 기특하여 절을 맡기고 떠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날이 새면 합천에 스님의 위독함을 알려야 했다. 신도의 도움이 없이는 큰일을 어찌 치르겠는가. 마음이 바쁘다. 스님의 옷을 새것으로 사온 것도 다행이다.

 

 이 별

 다비식이 시작되었다. 합천에 기거하는 사람들은 관군이나 백성이나 큰스님의 열반을 슬퍼하며 해인사로 올라왔다. 장례 절차는 합천군 관아에서 도와 정법스님이 주관하였다. 날씨가 아침부터 바람 한 점 없다. 새벽부터 타오른 불꽃은 오후가 되자 한풀 꺾이어 커다란 생나무 토막만 타고 있었다. 장례를 시작한 지 5일만이다. 부주의로 일어날 산불을 조심하여 미리 물을 준비하여 화재 위험을 막았다. 조용하게 바람 한 점 없이 타올라가던 불길은 곱게 타다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목탁소리에 맞추어 스님의 열반을 도왔다. 며칠 밤을 새운 탓에 힘들었다. 이제 화재 위험이 없어지자 며칠씩 고생하였던 남자들은 집으로 갔다. 이틀 뒤에 다시 올라와 뒷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마당이 허허롭다. 땅으로 내려앉는 불꽃이 어두운 밤공기를 덮는다. 며칠을 함께 고생하였던 불, 법, 승 삼 보살들은 방으로 들어가고 기척이 없다.

 별이 초롱초롱 밝다. 산천이 모두 슬픔에 잠겨 덩그러니 앉아있는 느낌이다. 해인사를 받쳐주었던 대들보가 사라졌다. 이 가벼워진 해인사를 어찌 누를 것인가. 모든 신들이 손을 놓고 슬퍼하고 있는 것을 느낀다.

 “그동안 애쓰셨습니다. 이제 저희들에게 맡겨주시고 편히 접고 가소서.”

 나는 언제까지나 그 곳을 떠나지 않았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삼 일만에 다비식의 불꽃이 꺼졌다. 스님의 유골을 정리하였다. 삼우제를 지내고, 49제를 지내고, 큰스님의 빈 자리는 금강경 강의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금강경을 책으로 엮어 배포하였고 스님의 빈 자리를 기도로써 산천의 초목과 도량을 달랬다. 불가에 들어온 지도 20년이 되었다. 몇 차례의 경전 강의를 했다. 큰스님 열반하신 지도 몇 년이 지나갔다. 화엄경 강의를 2년 가까이 했다. 이제 절도 전과 같이 안정이 되었고 강의가 끝났다는 기쁨과 허전함이 한꺼번에 엄습해 온다.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공부한 사람들은 스님에 대한 그 고마움을 무엇으로 대신할 것인가를 의논하였다.

 “오늘로서 2년 동안 하였던 화엄경 강의가 끝났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살던 큰스님을 잃고 우왕좌왕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그래도 부처님의 가피로 경을 의지하여 공부하느라 그 어려움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아서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여러 불자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다른 경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그동안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금강경이며 화엄경 강의를 듣고자 찾아온 스님들이 많았다. 해인사 내에는 스님들이 많이 오고가고 했지만 아주 자리를 잡은 스님들도 있었다. 그렇게 해인사가 점점 알려지는데 기초가 되었다. 대웅전을 나왔다. 방에 들어서자 그동안 몸이 쇠약해졌음을 느꼈다. 쉬기도 할 겸 서라벌에 한 번 다녀오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래 한 번 다녀오자’ 그 곳에 가면 어머니의 소식이라도 들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해인사 스님들도 자리를 잡았고 공부하러 들어온 스님도 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정법스님과 마주 앉았다.

 “모든 것이 스님이 계셨기에 마무리가 잘 되었습니다. 희랑큰스님의 말씀대로 잘 이겨냈습니다.”“아닙니다. 일현스님이 계셨기에 가능했습니다. 해인사의 위상이 널리 알려질 것입니다.”

 서로가 잘 협동한 결과였다. 서라벌에 다녀와야겠다는 말을 했다. 절을 한동안 비워야 될 것 같습니다. 꼭 다녀와야 할 곳이 있어서 내일 떠납니다. 아무래도 한 달 여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스님께 부탁드립니다.

 “스님을 찾는 분들이 많을 것인데 그리 오래도록 절을 비우시려고요?”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걸었다. 걸음이 빨라진다. 19세에 떠나왔던 곳을 나이 들어 다른 모습을 하고 그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희망에 차 보인다.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가 어찌하느냐에 따라 그 아래 백성들의 생활은 달라진다. 강원도의 얼굴들도 보인다. 모두들 많이 변했겠지. 보고 싶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왔던 강원도 명주군이 생각난다.

 ‘지금 그들은 어찌 살고 있을까? 모두 다 보고 싶다. 무정하게 두고 온 가족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어머니는 돌아가셨을까?’ 그러한 생각이 밀려온다.

 내, 죽어서 강원도로 가리라. 내 어머니가 지어놓은 임영관과 지금도 변함없이 철철 흘러갈 냇물과 저수지 깊은 물이 눈에 어른거린다. 어느 사이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내 아들, 딸 모두 결혼을 했겠지. 어머니를 닮은 부인은 그동안 얼마나 답답한 세상을 살았을까. 내 어머니처럼 잘 살고 있겠지. 처음으로 해 본 생각이다. 그러한 생각으로 발걸음을 재촉하여 서라벌 가까이 당도했다. 옛 신라의 향기가 코로 들어온다. 어린 시절 공부하였던 글방이며 화랑도의 후예를 꿈꾸었던 무예를 배우던 동기들이 있었지. 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정계에 들어가 벼슬을 하고 있겠지. 이런저런 과거의 기억들이 한꺼번에 우루루 쏟아져 나왔다.

 “방이 있습니까?”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왔다 긴장이 풀린 탓일 게다. 저녁 때가 지났을 시간에 주인의 수고가 생각났다.

 “식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네, 됩니다.”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지고 온 것이라야. 책 몇권 가방에 있었다. 가방을 풀고 밖으로 나왔다. 발의 피로를 풀어주기 위함이다. 주인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우물터가 있으면 손발을 씻고 싶은데 주인에게 부탁하였다.

 “이 어두운 밤에 저기 물통에 있는 물을 마음대로 쓰세요.”

 친절하여 고마웠다. 놋대야를 가져다주었다. 얼굴과 다리를 씻었다. 수건도 옆에 갖다놓았다.

 아욱 장국의 맛이 다른 냄새를 덮어버렸다. 시장끼가 한꺼번에 밀려와 차려온 음식을 다 비웠다. 음식에서 속세의 냄새가 많이 났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적응하는 것도 편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때로는 몸에서 받아들이지 않는 음식도 먹어야 할 때가 있고 기도에 열중하다보면 신장님이 고기 근처에도 못 가게 할 때도 있다. 공부에 따라 생각이 합일할 때는 그것을 허락한다는 몸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원효스님은 의상과 함께 당으로 공부하러 가는 길에 날이 저물자 어두운 동굴에 들어가 잠을 잤다. 얼마를 자다가 원효스님은 갑자기 목이 말랐다. 잠결에 일어나 희미한 동굴의 불빛에 비치는 바가지 속의 물을 맛있게 마셨다. 그 물맛이 어찌나 맛이 있었던지 잠을 깨서도 생각이 났다. 지난 밤의 물맛을 생각하며 바가지를 찾아 들고보니 그것은 바가지가 아니라 해골 안에서 썩은 물이었다. 원효스님은 맛있다고 먹었던 물이 해골 썩은 물이었음을 알고 먹은 해골 물을 토하며 경악해 하다가 깨달았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배가 고프면 무엇인들 못 먹으랴. 부처님 말씀을 제대로 알고 수행한다면 계를 파하는 것도 계를 지키는 것도 마음에 있는 것이라는 것을 금강경에도 말씀하셨다.

 상을 물리고 밖으로 나왔다. 서라벌에 들어가자면 내일 오전은 되어야 할 것 같다. 저 멀리 보일 듯한 서라벌 쪽의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그 곳에 가면 어머니를 만날 것 같은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과연 만날 수 있을까? 안될 말이다. 강원도에 계시는 어머니를 어찌 만날 것인가. 그곳에 가족들과 있을 것이다. 기대로 들끓던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도 좀처럼 마음이 안정이 안 된다. 방으로 들어와 자리를 펴고 잠을 청했다. 멀고도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기에 금방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하얀 문종이에 해가 비쳐 대낮같이 밝았다. 무엇을 서둘 것인가. 서라벌 어머니와 살던 집에 가족 중 누구도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아 서둘러 일어나지 않았다.

 

 어머니

 가슴이 뛰었다. 대문이 보였다. ‘ 아니야 다른 사람이 살고 있을 거야.’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였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전에 살던 집보다 많이 달라져 어머니집이 아닌 것 같았다. 꿈에 부풀어 단숨에 달려온 자신이 한심하여 전신의 맥이 다 풀렸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래도 한번 들어가봐야 하겠지? 다시 일어났다. 처음부터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모양이 변한 집을 보는 순간 실망감이 밀어닥친 것이다.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확인하고 난 후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하였다.

 ‘꽝 꽝 꽝!’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생겨났는지 주먹에 힘이 들어 있었다. 안에서 기척이 없다. 다시 꽝꽝꽝 두드렸다. 기척이 없다. ‘빈 집인가?’ 집과 대문과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 예전 같았으면 삽살이가 먼저 알아차리고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고 곧이어 버선발로 뛰어나왔을 어머니. 안에서 아무런 기척이 없다.

 미향은 이제 나이가 들어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다. 기력이 쇠하여 기동도 어려웠다. 혼자 집에서 세월을 보내고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처지다. 누가 보아도 아직은 깨끗하고 정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지만 미향은 매일 아들 동희의 생각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고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매일 부처님께 기도를 하였다. 어디에 있는지 살아있기는 한 것인지 요즘들어 부쩍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도 없는 집에 하루 한두 번씩 다녀가는 손녀 수인이가 올 시간이 되었는지 밖에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방망이 두드리는 것처럼 두근거렸다. 이 무슨 변고야 내 가슴이 왜 이리 난리인가. 일어나려고 하여도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밖에서 또 한 번의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미향은 일어났다. 방문을 열어젖혔지만 밖에서는 들리지 않았다.

 안에서 기척이 없다. 집이 비었나보다.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려봐야 할지를 생각해야 했다. 뒤에서 인기척이 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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