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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11화
작성일 : 19-11-01 20:59     조회 : 268     추천 : 0     분량 : 15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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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글을 쓰고자 하였을 때 전생의 내가 신라인 최치원의 서자란 것에 의문이 깊었다. 그리고 ‘신라인이라는 내가 어찌하여 강원도 강릉 땅 산신이 되었을까?’ 하는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하였는데 이쯤 쓰고 보니 어느 정도 흐름 순서가 잘 맞게 되어서 기쁘다. 그리고 신라시대나 고려시대에 강원도의 사찰이 왕권의 지위에 있었다는 것을 문원을 통해 찾아볼 때마다 강원도의 위상이 역사와 함께 걸어온 배경도 알게 되었다. 강원도가 전국을 통해 부처님 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이 많이 있다는 사실은 그만큼 산세가 으뜸이라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다.

 한참 숨고르기를 하고 상원사 경내로 들어섰다. 먼저 대웅전에 들어가 문수보살상이 있는 상단에 삼배를 드렸다.

 “문수부처님이시여 저를 받아주십시오. 부처님의 부름으로 이 도량을 모시고자 가족과 홀로 남은 어머니를 버렸습니다. 불법을 배울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공손히 예배를 올렸다. 오대산 비로봉 중턱에 자리를 잡은 상원사는 워낙 높은 곳이라 낙엽이 이리저리 바람에 굴러다녔다. 서리가 왔었는지 나뭇가지에 붙어있는 나뭇잎들이 말라비틀어지고 있었다. 이제 이 추운 곳에서 살아야 하는구나.

 신라의 유명 선사들이 다녀간 선 사찰이라는 진여원 승사 소림초당의 앞에 섰다. 점심시간이 넘은 탓에 댓돌 위 하얀 고무신 두세 켤레가 졸고 있는 것을 보았다. 미리 전갈을 보낸 적도 한번 와 본 적도 없는 이 곳에 아버지가 정해준 대로 무작정 달려온 자신이 걱정이다. 만약에 받아주지 않겠다 하면 어찌할 것인가를 잠시 생각하게 되었다.

 “안에 스님 계십니까?”

 안의 기척을 기다렸다. 문이 열리고 스님이 합장을 하며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초라할 대로 초라한 마음을 안고 상원사 주지 스님이라고 여겨져 지고 온 주루목을 벗어놓고 공손히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스님의 거부감을 없애기 위하여 아버지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상원사에 오게 된 이야기며 어머니의 일이며, 명주군의 5개년 사업 이야기며, 명주군까지 오게 된 이야기며, 아버지가 이리로 가라고 했다는 웃어넘길 수 없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스님을 은사로 부처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아무런 대꾸도 없다. 안쪽으로 대고 소리를 질렀다. 스님이 들어왔다.

 “처사님을 모시고 방을 마련해 드려라.”

 일어나 스님을 따라 나섰다. 그리고 짐을 풀었다. 밥을 먹겠느냐고 물었다. 새벽 일찍 떠난 터라 몹시 배가 고팠다. 이제는 여기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그런다고 했다. 스님이 차려온 밥상을 받고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먹었다. 허기인지 허탈인지 모르는 시장기가 밥 거지처럼 숟가락이 무거울 정도로 입으로 들어가기가 무섭게 목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하룻밤 사이에 인생은 바뀌었다. 인가가 없는 첩첩산중에 나는 스님 세 분과 가족이 되어 살아야 한다.

 

 다시 서라벌로

 미향은 아들 동희가 떠난 뒤 며칠 동안 제대로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러다 병이라도 날 것 같아서 며느리를 불러 마주앉았다.

 “아가야,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미안하고 망설여지지만 해야겠다. 섭섭하다는 말은 하지 말아주기 바란다. 서라벌에 한번 다녀와야겠다. 집에 있으면 병이 날 것 같아서 바람이나 쐬고 돌아와야겠다.”

 서라벌에 간다는 말이 힘들었지만 해야만 했다. 며늘아기는 눈물을 흘렸다. 미향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말릴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곳에 농토와 집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당분간 바람을 쐬고 마음을 달랠 겸 다녀오시라고 했다.

 “어머니, 멀리까지 가시다가 몸에 병이라도 난다면 대감께 무어라고 하겠습니까? 아직은 어리지만 수인이를 데리고 다녀오십시오. 그러하시면 저도 마음이 놓이겠습니다.”

 미향은 생각지도 못했던 며늘아기의 말에 놀랐다. 손녀딸을 데리고 다녀오라는 부탁을 수락하였다. 손녀딸의 나이 겨우 14살이다. 수인이가 할머니를 좋아하니 데리고 가셔야 안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향은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손주는 남아서 가정과 집안을 살피라 이르고 어멈의 식솔을 데리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산중으로 들어와 나는 경전에 심취해 살았다. 금강경이며 화엄경, 아함경, 법화경을 두루 접하면서 부처님 경전의 아름다움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하루의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여 왜 진즉 불가에 들어오지 못했을까를 후회하며 세상의 일은 까마득히 잊어갔다.

 산중의 생활은 하루의 할일을 하지 않으면 밥 한 끼를 굶어야 하는 엄한 규율이 있어 스스로 행동을 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한 행동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은 밥을 한다거나 마당을 쓸고 기도를 하고 땔감을 하러 산으로 골로 다니며 지게를 지고 겨울에 지필 나무를 쌓아놓아야 한다. 봄이 되면 밭농사도 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땔감 한 짐 져보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산으로 갔고 그것이 한없이 즐거웠다. 공부할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산에서 나무를 하더라도 마음 속으로 외웠던 경의 내용을 하나하나 되새겨보는 시간이어서 지게의 나무가 무거운지 가벼운지 몰랐다.

 화엄경에 선재가 53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도를 얻으려 했던 과정이 있다. 선재가 부처를 찾아 세상을 돌면서 53 선지식을 찾는다는 것은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면서 경험을 하고 깨달아지는 것이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망상이 그러하다는 것이기에 공부를 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찾아 헤맨 선재의 53 지식은 세월만 허비한다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이것저것 다른 곳에서 부처를 찾아 헤매다 나이 들어 돌아보니 집 앞에 핀 매화꽃의 아름다움에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부처는 밖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찾아야 빠르다는 교훈이다. 곧 밖으로 찾는 부처는 세월만 허비하고 마음 속에서 부처를 찾으라는 경전 내용이다. 경전을 아무리 많이 보고 외운다 해도 부처가 될 수 없고 내가 곧 부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빠르다는 것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를 탐구하고 탐구하여 깨달아야 하기 때문에 어찌보면 부처가 되는 것이 쉽다고 볼 수도 있다. 팔만 사천의 경전 속에는 부처는 마음 안에서 찾으라는 가르침이다.

 나는 경전 속을 탐독하는 것이 더 좋았다. 금강경 내용은 부처님과 수보리가 미래의 중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느냐고, 어떻게 하면 부처를 만날 수 있는지를 수보리가 묻고 부처가 대답하는 문답형이다. 미래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느냐고 수보리가 부처님께 간절히 묻고 간절히 대답해 주는 경전이다. 어리석은 인간이 제대로 몰라 허둥대다가 죽음을 맞을까봐 속지마라 하시는 내용에서 부처님이 중생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다.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감동하여 그 뜻을 한순간 깨닫고 보면 감동의 소리는 눈물이 되어 볼을 타고 내려온다.

 해가 바뀌고 불가의 제자가 된 지 4~5년이 되었다. 점점 깊어지는 신앙을 체험하면서 깊은 산 4킬로 높이의 산 꼭대기에 있는 부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보궁으로 아침저녁 부처님 공양을 들고 오르는 의무를 부여받았다. 가파른 산길은 발자국만 간신히 옮겨놓을 수 있는 좁은 길이다. 가파른 곳이기도 할 뿐 아니라 긴 능선을 지나 돌계단을 올라가다보면 평평하고 아늑한 곳에 자리를 한 보궁이다. 전국에서 스님들이 공부를 위해 다녀간다는 곳이지만 산길로 4킬로면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처음엔 한 시간이 걸렸다. 공양그릇을 손바닥에 받쳐 들고 올라가다 넘어지기라도 하면 부처님의 한 끼 공양은 굶어야 한다. 그러한 임무는 한번 맡으면 삼 년은 해야 한다. 그만큼 수행의 길이 험난하였다.

 상원사 내에서 공부만 하였던 나는 오전 10시까지 보궁에 올라가야 하고 기도가 끝나면 내려왔다가 오후 4시까지 다시 올라가야 하는 일을 반복하다보면 하루해가 저문다. 매일 반복되다보니 점차 오르내리는 시간이 빨라지고 마음의 여유로움도 생겼다. 밤에 배워둔 경전 내용을 외우며 올라가다보면 놀랍게도 순식간에 보궁 마당에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겨울해가 짧은 저녁시간에 어두운 산길을 내려올 때면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호랑이라도 나타나는 것처럼 오싹할 때도 있다. 그런 마음이 생길 때는 어김없이 길 옆으로 하얗고 예쁜 복슬 강아지가 나타나 상원사 마당까지 동무해주기도 한다. 그것이 이상하여 도반스님께 여쭈어 보았더니 그 스님은 미소만 지었다. 혼자 알아보라는 무언의 숙제를 주는 것 같았다. 그러한 날들이 싫지 않게 이어지고 때론 하얀 강아지를 안아 보기도 하였다. 그러다 문득 ‘아~ 호랑이구나. 내가 무서워할까봐 하얀 강아지로 보이는 구나’ 하는 생각에 부처님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져 눈물이 났다. 절에 올 때만 해도 눈물이 자주 나는 바람에 다시는 울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부처님의 은혜를 눈으로 확인하여 느끼다보니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 스스로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호랑인 것을 알고서 무서울 거라고 생각하였는데, 여전히 마음이 든든하여 어두운 산길을 인도해 주는 수호신으로 삼 년 동안 보궁에 오르고 내렸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보궁 기도를 하고 오르내렸던 그 삼 년의 세월이 나에게 커다란 깨달음으로 왔다. 경전을 통달하였다. 절에 들어 온지 6~7년이 되자 동안거를 마치고 주지 스님께 마음 정해진 곳이 있어 떠난다고 알렸다.

 그동안 거두어주신 은혜에 고마움을 전하고 발길 닿는 대로 이미 정해진 곳이 있기에 마음은 굳건하였다. 다음 날 입은 옷과 옷 한 벌을 챙겨 가방에 넣고 길을 떠났다. 그동안 동거 동락 하던 스님의 배웅을 받으며 강원도를 떠났다.

 발길은 상원사를 떠나 해인사로 옮겨가고 있었다. 법 사찰인 경전을 공부하는 곳으로 나의 공부를 시험해보기 위하여 부처님의 지시에 따랐다. 천리 길을 가방에 옷 한 벌을 넣고 탁발수행으로 길을 걷다가 간간이 산 속을 헤매다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다. 때론 허기도 견디며 길을 걸어 합천까지 당도하였다.

 해인사 아래 장터 주막거리에 당도하니 지난날이 생각났다. 대과에 급제하여 아버지의 소식을 찾아가던 길에 주막에서 하룻밤을 쉬어간 적이 있음을 생각하니 세월이 한참 지나간 것과 내 변한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다. 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른다더니 내 본모습은 이것이었다. 한 번 다녀간 길이라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는 안심이 피로를 가져왔다.

 그 때 묵었던 주막을 찾았다. 여전히 그 곳에 주막이 있었다. 혹시 주인이 바뀌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마당으로 들어갔다. 때는 이제 막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는 그림자가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시간이었다. 주인을 불렀다. 앞치마에 손등을 닦으며 나오는 여인을 보았다. 주인이 되었는가? 그 때 내게 술상을 드리러 왔으나 손님이 잠에 떨어져 대답이 없었다고 아쉬워하던 그 젊은 여인이었다. 이제 중년이 넘어 머리도 희끗희끗한 여인이 되었다.

 “묵어갈 방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안으로 드세요.”

 여인이 정해준 곳이 그 때 묵어갔던 방이었다. 우선 발을 씻어야 개운할 것 같아 주인에게 물이 있는 곳을 물었다.

  “우물이나 샘터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오. 먼 길을 걸어왔더니 발을 씻어야 할 것 같소.”

 주막 여인이 손짓하는 곳으로 찾아보았다. 주막을 돌아 좁은 골목을 지나 버드나무가 서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은 장터의 뒤쪽에 있는 우물터였다. 저녁 때라 아낙들이 물동이를 평평한 바위에 올려놓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을 달려온 청년도 아니고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줄 젊은 여인도 없었다. 엉거주춤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물동이를 옆에 놓고 차례를 기다리던 아낙들은 서로 이웃 간의 친한 모습으로 보였다. 무어라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내가 가까이 가자 모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였다.

 ‘내가 스님이구나’ 생각에 얼른 합장을 하였다. 한 여인이 용감하게 말을 걸었다.

 “스님, 우리들은 해인사 절에 다닙니다. 해인사에 가십니까?”

 상원사에 있는 동안 절을 찾는 사람들과 마주서거나 마주앉아서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스님이 되고 처음으로 여인들과 마주 대고 대화를 한다. 이제는 부처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경지에 올랐다는 생각으로 그동안 닫았던 입을 열었다.

 “네, 저는 강원도에서 왔습니다.”

 “어머나! 그 먼 곳에서 어찌 이 곳까지 오셨습니까?”

 “네, 먼 길을 걸어서 왔습니다. 해인사로 들어가야 하기에 주막에서 하룻밤 쉬어가려고 합니다. 발이 나를 따라 걷느라고 고생하였기에 물로 깨끗이 씻어 위로하려고 우물을 찾아왔는데 불자님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여인들은 내가 말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서로 쳐다보며 아무런 부담도 없이 웃었다. 나도 그녀들을 따라 웃었다. 상원사에서 공부할 때는 소리내어 웃어볼 만큼 즐겁게 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직 경전 보기를 즐겨하다 보니 경전의 이해가 일사천리로 풀릴 때면 마음으로 한없이 웃을 때가 많았다. 경을 이해할 때면 부처님 말씀이 고맙고 고마워 눈물이 난다. 그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러한 세월을 보냈던 내가 낯선 곳에서 처음 만난 여인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신기한 첫 경험이었다. 강원도의 책임자로 있을 적에도 여인이라고는 부인과 식솔들이 전부였다.

 “스님, 우리도 내일 해인사에 올라갑니다. 저희와 같이 가세요.”

 이 무슨 인연인가? 우물가의 여인들과 절에 함께 가게 생겼다.

 “아~ 그렇습니까? 저는 초행은 아니지만 젊은 시절에 며칠 묵어간 적이 있습니다. 공부하려고 가는 길인데 잘 되었습니다.”

 여인들은 신이 나서 서로 쳐다보며 약속을 하는 것 같았다.

 “스님은 몇 시쯤 올라가실 겁니까? 오전 예불에 참석하려면 새벽 일찍 떠나야 합니다. 스님께서 묵어갈 주막에서 만나요.”

 그녀들은 서로 쳐다보며 물동이를 이고 우물가를 떠났다. 자신감이 넘치던 여인의 나이는 40세 정도 되어 보이고 옆의 두 여인도 비슷할 것 같았다. 스님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거는 저 여인들은 해인사에서 어떠한 책임을 맡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하기에 부끄럼 없이 남정네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약간 설렜다. 여인들이 떠나자 커다란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던졌다. 아래로 내려다 보니 검은 물이 출렁거린다. 두레박 끌어올리는 것도 처음이다. 우물을 보호하기 위한 지붕도 있었다. 그 가운데 기둥에다 도르레를 달아 무거운 물의 무게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철철 넘치며 물통이 올라왔다. 아무도 없는 우물가에서 물통을 들고 한 쪽에 섰다. 우선 승복바지를 걷어 올렸다. 부어서 퉁퉁해진 다리에 물을 쏟아 붓고 또 길어 올렸다. 우물가에 그릇이라도 있으면 손발을 마음대로 문질러 씻고 싶은데 그런 것이 없어서 한 쪽 손은 물통을 들고 한 쪽 손으로 두 다리를 마사지하며 풀어주었다. 다시 시원한 물을 다리에 부었다. 피로가 한꺼번에 풀어지는 것 같은 가벼움이 있었다. 한 손으로 세수도 하였다. 우물가에 사람은 오지 않았다. 시원해진 몸으로 바위에 걸터앉아 쉬었다. 마음 속으로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승복을 입고 처음으로 찾아가는 곳이다. 우연의 만남인지 부처님의 도움인지 처음 만난 여인들과 해인사에 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해인사 주지 스님에게 미리 알려드릴 수도 없고 무작정 마음 가는 대로 떠나왔어도 한 치의 불안도 없었다. 그런다고 상대의 마음은 헤아리기가 어렵다. 좋아해 줄 것인가. 밀어낼 것인가를 생각하면 걱정도 되었다. 사람은 그릇에 따라 부처님의 사업에 동참한다. ‘나는 그러한 그릇이 되는가?’ 안으로 반문해 본다.

 주막에서 저녁을 먹고 마음에 여유로움을 가지고 합천 시장을 돌아 둑이 있는 냇가로 나왔다. 합천 내천의 흐름을 바라보았다. 아련히 그리워지는 강원도의 식솔과 명주군의 사람들. 꼭 그렇게 홀연히 떠나와야 했던가? 불가에 들어오면서 까맣게 잊고 지냈던 지난 날이 무슨 연유로 떠오르는 것일까? 이 곳 사람들도 강원도의 물난리를 알고 있을까? 한 번쯤 합천의 책임자를 찾아가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야, 내가 뭐라고 지금에 와서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하지. 우연히 그러한 계기가 생긴다면 모를까’ 하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합천의 강을 보니 강원도의 남대천이 눈에 비친다. 남대천의 물줄기가 바다로 거세게 내려가는 모습도 눈에 어른거려 미소를 짓는다.

 5개년 계획이 성공한 것은 하늘의 인연과 일치하여 이루어진 것이리라. 생에 그러한 큰 일로 나라에 공헌했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부처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파하는 길이 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된다면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고 불쌍히 여겨 행복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선구자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부처의 세계는 인연법이다. 의심치 않는다.

 “흐르는 물처럼 부처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시오.”

 부처님 세계는 참선을 통해 관통하는 일승법이 정법이다. 깨달아 성불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그 길을 마다하고 부처님 말씀을 중생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기도를 했다. 삶을 헤쳐 나가는 데 필요한 것은 언어를 통해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이 그들로 하여금 무지를 벗어나는 길이다.

 과거에 급제하기 전에는 어머니가 국제적으로 무역을 하였기에 불교가 성한 아시아의 문물인 경전과 책을 많이 접해 보았다. 아는 만큼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부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언어를 모르면 아무리 똑똑하게 태어났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언어를 바로 배워야 한다. 그것을 알기 쉽도록 경전을 풀이해 대중들에게 부처님 세계를 알리고자 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여 경전 공부를 하였다. 이 곳에서 그러한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임을 다짐해 본다.

 주막의 아침은 일렀다. 하루 동안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주인이 문을 노크했다.

 “아침상을 드려도 됩니까!”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상원사에서의 하루는 새벽 4시가 되면 법당에 올라가 있어야 했다. 그것이 습관으로 되어 십 년 가까이 행해 온 터라 자연스러웠는데, 날이 환히 밝았는데도 깨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 웃음이 나왔다. 수건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세숫물은 문 앞에 있었다.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고 씻었다. 다른 방에서는 아무런 기척이 없다. 아침상에도 냄새나는 반찬이 나왔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면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이 먹었다. 고기를 먹어본 지가 언제인가. 절에서 고기라고는 입에 대어본 적도 없었다.

 일 년에 한두 번 절에 오는 사람이 죽은 아들이 좋아했다며 육 고기를 사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아들 제사에 놓아달라고 한다. 그럴 때는 대웅전 안에는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나이 든 부모가 자식을 위해 가지고 오는 정성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그 날의 냄새는 오래 기억되었다. 그만큼 절 내의 도량에서는 고기를 싫어하는 신들이 옹호하는 곳이어서 스님들은 고기를 먹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집에 있을 때는 반찬으로 고기가 흔히 있었다.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던 생각이 났다. 주막에서 들여온 고기를 먹었다. 그리고 다시 소금으로 양치를 하였다.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안녕히 계십시오. 잘 쉬어갑니다.”

 부엌 쪽에 대고 큰소리로 말했다. 주인이 놀라 뛰쳐나왔다. 다음에도 들려주십시오.”

 웃으며 대문을 향해 걸었다. 어제 우물터에서 만난 여인들 셋이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 여인들 옷차림이 어제와 달랐다. 등에는 쌀을 넣은 것 같은 가방에 무게가 느껴졌다.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정말 해인사로 가시는 겁니까?”

 그들은 좋아라 웃으며 그렇다고 한꺼번에 대답하였다. 세 여인은 아주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같았다. 셋 중 한 사람은 그들 뒤에서 웃기만 하였다.

 오솔길을 걸었다. 모롱이를 돌아 고개를 넘었다. 그들과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길이 넓어지면 옆으로 서서 걸어가고 길이 좁아지면 일렬로 서서 걸어가고 항상 내 뒤에는 우물가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던 여인이 따라오고 있었다.

 날짜를 짚어보니 3월 초하루였다. 머지않아 부처님 탄신일인 4월 8일이 다가오고 있기에 미리 쌀을 지고 다녀오려는 모양이다. 나뭇가지들은 애잔하다. 겨우내 벗은 몸으로 견뎌낸 아픔이 봄 햇살을 받아 잎을 피우려 한다. 발걸음을 따라온 햇살이 산천으로 퍼져 더운 열기로 변한다.

 상원사에서 동안거를 끝내고 길을 떠난 지가 그리 오래 걸렸던 것이다. 오는 길에 절이 나타나면 잠시 쉬어오기도 하였던 것이 그리 되었구나 그리 급할 것도 없는 먼 길을 걷다보니 주위의 풍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경전 내용을 되새김하느라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산에서 얼마를 헤맸는지 인가를 찾느라 허기에 시달렸던 일이 새삼 생각났다. 그들은 그들대로 대화의 꽃을 피웠다. 아이들이 어떻고 남편이 어떻고 웃음을 터뜨리고 걸었다. 내 걸음이 빨라서인지 그녀들도 숨을 헉헉거리며 따라오느라 걸음을 빨리했다.

 “스님, 조금 쉬어가세요. 스님의 걸음이 너무 빨라서 숨이 차요.”

 그러면서 서로 쳐다보고 한바탕 웃고 자리를 잡아 앉았다. 아직 그늘되어줄 나뭇잎은 없었다. 아침 햇살에 비친 여인들의 얼굴은 싱그러운 꽃잎처럼 붉었다. 무엇인지 모르게 그냥 기분이 좋은 날이다. 그녀들이 권하는 대로 한 쪽에 앉았다. 대화를 잘 풀어가는 여인이 가방을 풀어 무엇인가 꺼낸다. 지난 구정에 남겨두었던 엿을 한 입에 넣기 좋게 잘라서 볶은 콩가루를 뿌린 한 조각을 손에 쥐어준다. 엿은 말갛게 햇볕을 받아 투명하다. 잘 고아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옆의 여인이 한 마디 한다.

 “그것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무엇인가 더 말을 하려다가 멈추었다는 것을 알았다. 엿은 입에서 살살 녹았다. 그렇게 맛있는 엿은 처음이다. 옥수수로 고았습니까? 엿의 맛이 너무 부드러워 입 안에서 금방 사라지는데요.

 옥수수를 갈아서 엿을 고아먹는 것이 보통인데 저의 집에서는 쌀을 쪄 만들어요. 그래서 색이 맑고 입자가 곱고 부드럽지요.

 그렇구나, ‘이 여인의 집은 행세께나 하는 집안인가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엿 몇 개를 더 먹고 길을 떠났다. 어느덧 해인사 마당까지 올라왔다. 오는 중에 사람을 보았거나 만난 일은 없었다. 마당에 올라서자 그들은 익숙한 걸음으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빠른 걸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처음 왔을 때처럼 그대로였다.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예의를 갖추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난날 만났던 스님이 기거하였던 방문 앞에 섰다. 손님의 방문을 의식한 주인은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방으로 들어갔다. 스님과 초면이라 서로 예의를 갖추었다. 강원도 상원사에서 수도했으며 부처님의 인연으로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오래 전에 한번 다녀갔고, 그 때는 희랑스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아니계시는지 물었다.

 “저의 법명은 일현이라고 합니다.”

 “아~ 저는 정법이라고 합니다.”  

 “큰스님은 저희에게 모든 걸 일임하시고 뒤로 물러나 계십니다. 스님께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법스님은 기도 시간이 되었다며 옷을 챙겨입고 스님 방으로 안내했다. 큰스님이 계시던 방을 정법스님에게 넘겨주시고 이제 뒷방으로 물러나 입적할 날만 기다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누워계시던 희랑 큰스님께서 일어나 앉으셨다. 정법스님이 나에 대한 설명을 올렸다. 나는 삼배의 예를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희랑선사의 눈과 모습에서 예전과 같은 서늘한 법력의 광채가 있음을 나는 보았다. 스님은 달라진 내 모습을 살펴보시고 이를 드러내어 웃고 계셨다. 정법스님이 방을 나가고 나는 소개를 다시 소상히 하였다.

 “부친의 이름은 최치원이고 저는 강원도 명주 관아에서 아찬의 벼슬을 하다가 부처님의 인연으로 모든 걸 버리고 승가에 귀의하여 상원사에서 공부를 하였습니다. 경전에 심취하여 마음으로 전해지는 부처님의 뜻을 따라 이 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상세히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는 내가 스스로 놀라웠다. 희랑스님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런 말씀도 없다.

 “스님을 뵈오니 가슴이 벅찹니다. 저의 아버님은 제가 불가에 들어오기 전에 입적하셨습니다. 은연중에 아버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상원사에 들어가라는 부친의 명은 청천벽력 같이 내 가슴을 울렸습니다. 그로부터 7~8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일현은 오늘부터 내 방에서 기거하여라.”

 주지 스님의 지시가 떨어졌다. 안심이다. 새로운 행자생활로 돌아간다고 해도 좋았다. 스님의 시봉을 들면서 스님의 법을 전수받을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그러한 각오가 되어 있었다.

 

 미향의 일행은 신라에 도착했다. 미향이 신라를 떠난 지 5~6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손녀딸을 데리고 온 것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마 서라벌에 돌아가 살겠다는 말을 며느리에게 할 수가 없었다. 손녀를 딸려 보낸 며늘아기는 바람을 좀 쐬고 꼭 돌아오라는 신호였지만 미향의 생각은 달랐다. 아들의 핏줄인 손녀를 데리고 왔으니 서라벌에서 산다고 해도 그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덜 들 거라는 판단이다. 그리고 덜 외로울 것 같았다. 아들 대신 손녀에게 정을 붙이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멈의 식솔과 그동안 비워두었던 집을 손질하느라 바쁘다. 오랫동안 비워두었던 집안의 가구들은 사람을 두고 관리를 하였다 해도 주인의 손길이 멈추어 있었기에 문제가 있건 없건 살림살이 모두를 싹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수인을 위해서도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서라벌은 문물이 교차하는 곳이라 유행이라는 것이 있었다. 가구며 그릇이며 이불이며 모두 바꾸었다. 집의 구조도 지붕도 손질하였다. 그것은 최치원의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이제 남은 생을 손녀인 수인을 통해서 새롭게 꿈을 꾸며 살고 싶었다. 손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였다. 아들에게만 주었던 정을 이제 수인에게 주었다. 떨어져 있었던 동안 다 커 버린 손녀. 어려서 한 번도 정겹게 안아주지도 못했던 것들이 새삼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수인이 가족을 떠나 따라와 준 것도 고맙기도 하고 그 아이로 인해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되어서 미향은 수인이가 보석같이 귀하다고 생각하였다.

 먼 길을 걸어 잘 따라오던 수인이 대견했다. 오는 며칠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의지가 되었다. 어린것이 어떠한 생각으로 따라나섰는지는 몰라도 겉보기에는 새로운 세상 구경에 신이 나 있었고 즐거워하였다.

 ‘이 아이도 나와 같은 기질을 가졌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오는 동안 가까이 손도 잡아보고 소록소록 정이 솟았다.

 “수인아, 할머니 따라가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갈 거니?”

 “네, 할머니 따라갈 거예요.”

 떠나오기 전에 했던 말이다. 14살이면 다 컸다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사람을 들여 어려서부터 공부를 많이 했다. 머리로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거라고 믿었다. 수인을 남자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미향은 가슴이 뛰었다. 남자로 세상을 살아가자면 자기의 몸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 했다. 무예를 익혀 무서움이 없는 아이로 키울 것이라고 기대에 부풀었다.

 미향이 서라벌에 왔다는 소문이 돌았다. 매일같이 손님이 찾아들었다. 미향에게 신세졌던 사람들, 함께 무역업을 하였던 사람들이 찾아왔다. 거의가 남정네들이다. 젊은 사람 늙은 사람들이 무슨 새로운 꿈이라도 안고 온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찾아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반가웠다. 마음이 외롭고 허전하여 집안일에 몰두하는 동안 어떻게 알았는지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미향이 돈 많은 사람으로 서라벌에서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 미향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였고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이 서라벌 장안에 풍문이 자자하였다. 어떠한 연유든 간에 그들은 하나같이 미향을 찾았다. 그녀에게 새로운 무엇이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미향은 수인으로 인해 새로운 삶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다. 생각은 길지 않았다. 수인에게 남장을 하게하고 무예와 외국어를 가르쳐 무역업을 전수시킬 생각을 하니 꿈이 부풀었다.

 “수인아, 너는 이제부터 남자가 되는 거야. 여기 사람들은 너를 모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해. 남자들과 무예도 배우고 외국어를 배워 서라벌에서 꿈을 키우고 싶지 않니. 네 생각은 어떠냐?”

 수인의 눈에서 광채가 났다. 그것을 보았다.

 “네, 저도 그러고 싶어요.”

 미향은 수인의 치마저고리를 벗기고 바지와 남자 저고리를 입혔다. 미리 준비해 둔 옷이다. 키가 남달리 컸는데 영락없는 사내아이다. 말솜씨나 행동은 남자들과 놀다보면 자연스럽게 닮아갈 것이기에 무예학교에 입학을 시켰다. 그리고 외국어인 당의 말을 미향이 집에서 가르쳤다. 수인은 나날이 달라졌다.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서라벌의 이곳 저곳을 구경시키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서라벌을 알아야 무슨 꿈이든 꿀 수 있기에 어린 손녀에 대한 기대심리는 아들 동희와는 달랐다. 수인에 대한 사랑은 샘물 솟듯 하였다.

 “마님, 저의 보부상을 맡아주십시오,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습니다. 마님이 맡아 해주신다면 제 뼈가 가루가 되더라도 마님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이요? 잘하고 있는 보부상을 내게 맡긴다니.”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사람은 서라벌을 떠나기 전에 미향의 일을 도왔던 사람이다. 이 곳에 오면서부터 자주 문안을 오던 사람이다. 조그만 가게를 시작으로 보부상을 차려 해 오던 중 사람들을 잘 부리지 못한 탓에 빚만 지고 가산이 거덜 나게 되었다고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빚쟁이가 몰려와 가게의 물건을 가지고 간다느니, 돈을 내놓으라느니 하여 한시가 급하다고 엎드려 사정하는 것이 아닌가. 미향은 수인이 어느 정도 컸을 때 한번 생각해 보기로 마음먹었던 일인데 들어보니 알거지에 빚더미에 앉을 그 사람이 불쌍하기도 하여 빚을 갚아주고 보부상을 맡기로 했다.

 “마님, 물건 값이라도 챙길 수 있도록 마님이 맡아주십시오. 그거라도 없어지면 우리 가족은 거리로 나앉게 생겼습니다. 어찌하면 좋을까요?”

 그리하여 계획에 없던 보부상을 새로 시작하게 되었다. 수인이 18세가 되었다. 이제 의젓한 사내처럼 늠름한 모습으로 컸다. 무예도 갖추고 외국어도 능통하게 할 줄 알았다. 이러한 수인의 모습에서 사람의 가능성은 참으로 무한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작은 가게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수인에게는 오히려 다시없는 기회가 되었다. 사람 다루는 법이라든가 돈의 관리까지 미향은 철저히 훈련을 시켰다. 무예와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써 수인의 생활양식은 크게 변했다. 남자이면서 여자의 섬세함을 갖춘 수인은 커갈수록 동희를 닮아갔다.

 피는 못 속이는가? 사업가로 키우려는 미향의 꿈은 변하지 않았다. 남자였다면 사회의 어느 분야든 나서서 꿈을 펼칠 수 있지만 여자이기에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에는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여장부로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무술과 무예를 겸비한 수인은 남정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지만 그들과는 거리를 두고 행동하였다. 사업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과 행동에서 사람들의 신뢰가 얻어야 한다.

 할머니에게서 체계적으로 철저한 교육을 받고 있기에 한 치 흐트러짐이 없이 행동과 말을 조심하여 누구도 가벼이 대할 수 없도록 교육에 만전을 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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