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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10화
작성일 : 19-11-01 20:58     조회 : 307     추천 : 0     분량 : 14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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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마침 점심시간이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미향도 스님과 식당으로 들어왔다. 가설 집을 지어놓고 인부들의 식사를 해결해 주는 곳이다. 부엌에는 두 명의 아낙이 사발에 밥을 퍼 담고 있었다. 쌀과 보리를 섞어 지은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스님은 침이 꿀꺽 넘어갔다.

 “스님, 이리로 앉으세요. 낭원대사님도 안녕하시지요?”

 미향은 말을 하면서 낭원대사의 모습을 떠올린다. 일에 몰두하다가도 스치는 것이 낭원대사의 얼굴이다. 그럴 때마다 미소를 지었다. 절을 떠나오면서 스님과 마주앉아 이야기 한 번 해본 적도 없지만 마음에 자주 나타나고 있었다. 절에서 지냈던 일들이 그녀 인생에 커다란 의지가 되었다. 지금껏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살아본 적이 없었는데 스님이 마음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그녀도 느끼지 못하였다. 스님을 보니 낭원선대사가 생각났던 것이다. 낭원 스님이 마을에 다녀오라고 했던 말은 미향에게 하지 않았다. 절을 떠나던 날 언제든 찾아오라고 하였던 말이 떠올라 반가웠다. 스님 앞에 반찬을 밀어놓으며 아들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자애로웠다.

 “스님,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세요. 몇달 동안 절에서 얻어먹은 빚을 갚아야 하겠는데요.”

 미향은 웃으며 의견을 물어보았다. 스님은 얼른 대답할 수가 없다. 스님의 공양 때문에 마음은 솔깃하였으나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일하던 사람들은 순식간에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갔다. 점심시간에 어디라도 몸을 쉬고 싶었을 것이다. 한 쪽에서 공사 책임자와 아들 동희가 설계도를 들여다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미향은 숭늉을 떠 스님 옆에 놓았다. 밥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여럿이 먹으니 더 맛이 있었는지 반찬이며 밥그릇을 숭늉으로 깨끗이 씻어 마셨다. 집을 지어놓은 곳곳을 들여다보고 구경하면서 ‘이 곳은 임금이 살 궁궐이구나’ 스님은 그리 생각하였다.

 보살님이 이것들을 다 짓는단 말인가. 믿어지지가 않았다. 부자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믿어지지가 않았다. 잠시나마 이러한 보살님과 함께 지냈다는 사실에 스님도 어깨가 으쓱하였다. 마주보고 말을 못했다. 너무나 높이 있는 사람들이라. 아들인 대감도 훌륭하고 명주군에서 제일 부자가 보살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향은 스님과 함께 집으로 왔다. 절에는 쌀이 최고였다. 스님이 지고 갈 만하게 쌀 두 말을 자루에 담아놓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스님, 사람을 딸려 보낼까요?”

 “아닙니다. 제가 얼마든지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큰스님 공양만 아니면 하룻밤 자고 가도 될 터인데 다음에 내려오실 때는 큰스님께 말씀하시고 하룻밤씩 묵어가세요?”

 스님은 무어라 할 말이 없어서 웃기만 하였다. 그 외딴 곳에서 두 분이 의지하고 사는 것을 생각하니 미향은 마음이 아팠다. 거기에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다. 내려와 생각하니 철부지 아들같이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산으로 들어가는 상좌스님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관아로 쓰일 관청을 동현 서현으로 하여 건물을 지으려는 설계도입니다.”

 설계도를 살펴보았다. ‘어찌 이런 구상을 할 수가 있을까?’

 어릴 적부터 보아온 어머니는 시간이 허락하는 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셨다. 무역업을 하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 당신이 소아시아의 사업자를 만나도 언어에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한 어머니의 언어 구사는 자주 보지는 못하였지만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에게 ‘무엇을 해라, 무엇은 안된다’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 배우게 하는 교육방침을 세우고 회초리를 들어서 교육시키지도 않았다. 한 마디 질책도 들어 본 적이 없다. 무엇인가 항시 꿈을 꾸듯이 사색하는 모습은 아들인 내가 보아도 아름답고 우아했다. 어쩌다가 아버지를 만나 평생을 혼자 살면서도 자신을 원망 한다던가 슬프다던가 하는 신세타령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어찌보면 어머니가 안쓰러워 부친을 찾아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지켜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기 때문에 명주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자인 내가 남들에게 놀림이라도 받을까봐 어머니의 성을 따르게 하였던 그 기발한 생각은 감탄할 일이다. 살아오면서 나의 출생에 대하여 깊이 고민할 만한 그러한 여유가 없었다. 과거에 급제하기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책을 보았고 단 한 번의 시험에 붙어버려 천재라는 수식어가 주위의 눈길을 끌었다. 때마침 신라에 들어온 마지막 명주 군왕과 인연이 있었는지 나의 운명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명주 군왕의 직책이 소멸되면서 새로운 정부의 책사로 왕을 대신하는 업무를 이행하는 데 빈틈없이 해냈다. 낮선 곳에서 기존의 세력이 팽팽하게 짜여져 있던 신라의 군졸과 신라의 백성들이었던 명주군 관아 사람들은 나를 곱게 봐주지를 않았다.

 신라를 떠나올 때 군왕을 훈계하여 새로 부임하는 고려 왕실 책사에게 한 치의 어긋남이 있어서는 아니됨을 왕건은 어명으로 다스려 놓았다. 이제 모든 것이 안정이 되었다. 이제 무엇이 부러울 것이 있으리. 이 세상에서 둘만이 존재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복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라 임금이 인정해 주는 어머니를 가졌으니 내 생에 무엇이 두렵겠는가. 하늘이 고마울 따름이다. 공사가 끝나면 어머니의 꿈은 곧 이루어질 것이다.

 “현장 감독님은 전국의 사찰과 궁궐 같은 집을 지으시는 이름난 건축 기술자이니 설계도를 처음 보신 것은 아니지요?”

 집을 지어달라는 주문이 들어오면 나름대로 그들이 짓고자 하는 설계가 말로서 이행되는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그가 머리 속으로 설계를 하고 주인의 의도에 맞는 집을 짓곤 하였다.

 “제가 마님의 설계도를 보는 순간 현기증이 일었습니다.”

 서까래에 그릴 무늬 하나하나와 천정 기둥의 무늬며 선택한 색감 설명이 놀라웠고, 명주군이 사용할 자리는 보통 집과는 다르게 설계된 것에 놀랐다. 그는 설계 기술을 어머니에게 배우고 싶다고 했다. 섬세하기로도 어머니를 따라갈 수가 없다. 그러한 성격이기에 무엇이든 빈틈이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집과는 매우 가까운 거리이지만 스님의 뒤를 한없이 바라보다 현장으로 다시 돌아와 그들과 마주했다.

 “설계도를 보니 대감의 생각은 어떻소?”

 “어머니가 자랑스럽습니다. 어찌 단시일 안에 이런 설계도가 나올 수 있습니까?”

 어머니는 건축 설계에 대해 나에게 상세히 설명하였다.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관에서 건축 비용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서 돈이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동현 서현 두 채를 지으려면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고 그냥 바라만 봐서는 안될 것 같았다. 임시회의를 소집하였다. 공사 현장에 얼씬도 못하게 하는 바람에 무심히 있었는데 이제는 왕이 관심을 보이므로 알아서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임영관 내에다 관의 건물을 두 채를 지어준다는 모친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우리 관의 체면을 생각하여 ‘건설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말에 다른 의견은 없었다.

 

 6월이 되자 장마가 시작되었다. 보리가 들판에 황금물결을 이루고 일손이 모자라는 사람들은 아직 미처 거둬들이지 못한 곳도 있었다. 산이나 골에서 내려온 아침 안개로 보리는 마지막 잠에 들었다. 안개가 걷히면 구름 속에서 나올 햇살을 받아 그들의 쟁기소리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장마의 검은 구름이 생기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하기에 쟁기소리는 사각사각 빠르게 골짜기를 울려 퍼질 것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비가 많이 와 봤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아직은 내천 공사가 마무리가 되지는 않았지만 내천의 힘을 보고 싶은 것이다. 왕산골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성산마을을 지날 때에 보광리 골에서 내려온 물길은 성산에서 합류한다. 빗물이 거세게 부딪칠 성산 아우라지가 볼 만할 것이다. 거세어진 물줄기는 거리가 넓어진 남천을 내달릴 것이고 여유로운 운행으로 남천을 지나 안목바다와 합류하여 넓고 넓은 바다의 일원이 될 것이다.

 명주군 사람들은 북촌의 물을 남촌으로 옮겨놓은 것에 자부심이 대단하였다. 빗줄기가 거세어지면 남천의 둑방으로 몰려와 물의 양을 느껴보고자 했다. 앞으로 명주군은 장마에 의한 피해는 없을 것임을 그들은 확신했다.

 “이보게 우리는 역사에 남을 일을 했어. 자손대대로 자랑해도 손색이 없어요.”

 시대가 변하고 변하더니 태풍이 강원도를 강타한 무서운 물난리가 있었다. 인간이 행복을 목적으로 환경을 훼손한 결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의 영역을 인간이 마음대로 해치는 것에 대한 신들의 노여움이라는 말들이 사람들 입방아에 돌았다. ‘산신이 노했다.’

 루사의 태풍도 천 년 전의 기술로 이어온 저수지를 강타하지 못했다. 아슬아슬 지나갔다. 곳곳에서 수재민이 속출하여 사람과 짐승이 떠내려가고 집이 잠겼다. 마을은 피난을 갔고 저수지 둑이 위험하다는 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해져 불안은 극대화되었다. 사람들을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만약 어단리 저수지가 터진다면 강릉시가 모두 물바다가 될 판이라 집에 가만히 있으면 안되었다. 사람들은 귀중품만 챙겨 대관령 꼭대기까지 피난을 갔다. 다행히 저수지도 무사하였고 남천의 물도 아슬아슬하게 둑을 넘지 못하고 유유히 바다로 내려갔다.

 

 미향이 살던 집에 삽살개가 있었다. 삽살개에 대한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 있다. 주로 귀족 사회에서 길러져 오다가 고려 일반 백성들도 키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미향은 삽살이를 예뻐하였다. 최치원을 만나기 전에 미향은 삽살개를 가족처럼 의지하였다. 기방에서 당을 오가는 보부상으로부터 삽살개의 영특함을 듣고 어렵게 구하여 정을 쏟아 키웠다. 대문의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주인을 알아보는 영특함이 신기하여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을 텐데도 주인을 알아보고 반겨줄 때는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기쁨을 느꼈다. 하루 종일 집에서 주인 오는 소리에만 귀를 세우고 외롭고 긴 시간을 기다렸을 삽살이는 그녀의 가족이었다. 털이 눈을 가려 더욱 귀여워서 방을 내주기도 하고 금빛의 털을 비누로 감아주기도 하였다.

 동희가 태어나고 최치원이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삽살이는 놀이 감이며 친구이자 가족처럼 귀여움의 대상이었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동희를 따라다니며 외롭지 않게 함께 한 삽살이는 동희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삽살이는 미향이 서라벌을 떠날 무렵 늙어 수명을 다하고 죽었다. 앞서가는 신여성으로 애견용인 삽살이를 키웠고 신라, 고려를 거쳐 오랫동안 인간과 동등한 사랑을 받으며 살았던 영리한 애견이다.

 명주군 관아의 5개년 계획이 마무리되었다. 둑 쌓는 일이며 저수지 돌 쌓는 일 등의 마무리 작업이 끝났다. 그동안 관아의 사람들은 혼신의 노력을 하였다. 그러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오래도록 다녀오지 못하였던 낭원 스님을 찾았다. 그리고 휴가기간 한 달 동안을 절에서 머물기로 마음먹고 올라온 길이다. 벼르고 별렀던 일이라 올라오는 동안 가슴이 설레었다. 마당에 들어서자 아무런 기척이 없다. 이미 점심시간이 조금 지났음인지 조용하다. 우선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가지고 온 가방을 챙겨 인기척을 내었다.

 “어이, 대감이 이 시간에 어인 일이십니까?”

 “안녕하셨습니까? 스님.”

 낭원대사는 놀라 마루로 나선다.

 반겨주는 스님의 손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합장하여 예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낭원대사는 작은 스님을 불러 차를 가져오라하며 기뻐하였다.

 “스님, 여기서 좀 쉬어가려고 올라왔습니다.”

 “왜?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낭원대사는 놀랐다. 관아에 일손이 얼마나 바쁜지를 알고 있는 터라.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잘 마무리가 되어 휴가를 왔습니다.”

 “오~ 고생하셨습니다. 얼마든지 계십시오.”

 상좌스님을 시켜 방을 깨끗이 손질하여 머물 수 있도록 하여 주었다. 스님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멍하니 앞산을 바라보았다. 곱게 물든 산이 아름답다. 이제 곧 낙엽이 질 것이다. 지금껏 입고 살았던 옷을 벗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직감하였다. 부친이 속세를 떠날 때처럼 모든 것을 이별해야 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건 없었다. 다만 걸리는 것은 모친 미향이었다.

 미향은 혼신의 힘을 기울여 임영관을 완성하였다. 꿈에 그리던 집이 다 마무리되어 얼마 전부터 개업을 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전국의 보부상들이 소문에 소문을 듣고 하룻밤씩 머물러 가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었다. 객사의 운영은 전적으로 남에게 맡겨놓고 미향은 집에서 쉬고 있었다.

 미향은 아들의 문안으로 많은 생각을 하였다. 한 달 동안 낭원 스님께 공부하고 오겠다는 동희의 얼굴에서 세상일에 지쳐있음을 보았다. 그럴 것이 명주군의 지형을 바꾸기 위해 계획을 세운 날로부터 5년 동안을 제대로 잠을 잤을 것인가? 몸이 피로할 대로 피로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일이다. 그러나 어미의 마음은 불안하다. 다시는 돌아올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 생각하면 이제 자식들도 돌볼 나이가 지났고 집안의 일도 안에서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그 길이 당연한 길이라는 걸 미향은 마음을 굳혔다.

 어찌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당연히 자식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는 결심을 하였다. 그리고 임영관의 일은 정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누가 이어가든 임영관은 명주군의 보물이 되어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을 알기에 미련은 없었다. 처음부터 그것은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지었기에 욕심이 없었다. 처음 생각에는 임영관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학교를 세울 계산도 했었다. 이제 몸도 마음도 지쳤다. 서류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임영관은 명주군 관아의 명을 받아 사업은 할 것이나 전 수입을 모아 아이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설립하는 데 쓰이기를 발원하는 서류를 만들어 관아에 올렸다. 모든 것은 관에서 운영하도록 하였으며 임영관 관리와 권리는 동희의 자손에게 있다는 것을 명시했다. 아비가 끝까지 챙겨주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죄책감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아들에 대한 배려였다.

 미향은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이렇게 되는 것이었구나, 그녀의 삶이 승승장구하여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것이 결과적으로 다 이런 것이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몸으로 행했을 뿐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이것이 최치원의 계획이었나?’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과연 그러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다음은 어쩌란 말인가? 인생에서 비단길을 걸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비단 옷을 걸치고 살았던 건 사실이다. 이제 모든 것을 벗어내고 보현사의 언덕을 올라야 하는가? 미향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 가슴 어딘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짜여진 각본대로 허수아비로 살았던 건 아닐까?’ 하는 섭섭함이 마음에서 꿈틀거렸다. ‘나는 누구인가?’ 억울함 같은 전율이 일었다. 마음에서 ‘용서할 수 없어!’ 자기는 허수아비의 심부름꾼으로 살았다는 것에, 나의 일생은 무엇인가? 밟혀야 한다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누구인가?’ 새로운 숙제가 가슴에서 꿈틀거리고 일어났다.

 

 출가하라

 보현사에 온 지 며칠이 지났다. 마음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법을 낭원 스님으로부터 배워 혼자 방에 좌선하고 앉았다. 체계적으로 배우기는 처음이다. 무엇이든 생각으로 오면 ‘이, 뭐꼬’를 받아 소멸시키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어찌되었건 내가 부처라는 걸 알아야 하는 기술은 내 안을 관찰하여 들어가다 보면 내가 부처로 보일 때가 있다. 부처를 보아야 마음을 비우는 데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앉아있기도 하고 얼굴에 열이 오르고 잘 안될 때는 마당을 거닐며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잠깐씩 하는 것이 아니라 몇 시간씩 반복되는 가운데 마음의 평정을 찾을 때는 한 시간이 5분도 안되게 지나가는 때가 종종 있었다.

 “동희야!”

 “?… 아버지”

 분명 아버지의 부름을 들었다. 무아에서.

 “네가 다섯 살 되던 해 무정하게 너를 버렸지. 너도 그 나이가 되었구나.”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아버지 맞으십니까? 진정으로 아버지십니까?”

 내 마음은 간절하였다. 그리도 그리워 울던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꿈에라도 한 번 만나보고 싶었던 아버지. 그리움은 오열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그래, 다 지나간 인연이다. 지금껏 어려운 일을 하느라 고생하였다. 고 이제 속세의 인연이 다 되었다고, 입었던 옷을 벗어야 한다.’ 고 하였다. 부친은 서라벌을 지키는 산신이 되었으며 어머니도 만나보았음을 말했다.

 “보현사에 있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기에 누구도 몰래 상원사로 가라.”고 일렀다.

 부처님과 인연을 맺을 때는 그 어떠한 것에 매여 있었다 해도 칼로 무 자르듯 사정없이 잘라 버린다. 오대산 상원사로 들어가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버지를 불러도 감감하다. 한 시간이 지나갔다. 다리의 저림도 느끼지 못했다. 나의 갈 길을 정해 주려고 오셨는가? 참으로 신기하여 좌선을 풀고 앉았다가 밖으로 나왔다. 마당을 걸었다. 이미 정하여져 있었던 일이지만 막상 부친으로부터 갈 길을 듣고 보니 조금 전의 마음과 달리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낭원대사에게 어찌하여야 할지를 상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도 나처럼 그러한 계시를 받았을 것이라는 걸 느낌으로 알게 되었다.

 “스님, 들어가 뵈어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오.”

 신발을 댓돌 위에 나란히 벗어놓고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두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감정도 없이 흘러내렸다. 슬프다거나 가족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흘러내렸다. 낭원대사는 무엇인가 짐작하고 있는 눈치였다.

 “대감 편히 앉게나. 무슨 일인지 말씀을 해 보시게.”

 낭원대사가 댓바람에 말을 놓는다. 그리고 손을 잡아 바른 자세를 하도록 하였다.

 “사람의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네. 자네 부친이 다녀가신 것을 알고 있네. 인연이 끝났다 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보이.”

 물어보고 싶은 말을 스님은 알고 있었다. 더 무슨 말을 하겠는가. 고개만 숙이고 앉아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였지. 이제는 자네의 일만 남았네. 어머니가 걱정인가?”

 고개를 들었다. 할 말을 잃었다. 평생 외롭게 살아오신 어머니를 남겨두고 가야 하는 것이 어머니의 인생길에 한으로 남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픈 것이다. 기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걱정말게 어머니는 이 세상에 보살로 오셨네. 전생에 많이 닦으신 분이라서 자네 생각처럼 외롭지 않을 걸세. 자네 앞날에 걸림돌이 아닐세. 이미 다 알고 계시는지도 모르지.”

 “네! 저의 일을 알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낭원대사의 말에 가슴이 또 먹먹해 온다. 차라리 잘 되었다고 입가에 미소를 흘렸다. 갑자기 답답한 가슴이 시원하게 쓸려 내려간다. 이제부터 서둘러야 한다. 한시가 급하다. 방으로 가 짐을 꾸렸다. 절에 올라온 지 20일도 안 되는 날이다. 가족에게는 한 번도 말했던 적이 없다. 지금부터 고민할 일이 생겼다. 우선 사직서부터 제출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을 생각할 일이다.

 “대감 어인 일이십니까? 사직이라니요. 안됩니다!”

 관아의 사람들이 어안이 벙벙하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사직서를 찢으려 하였다.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사정했다. 마음에 병이 생겨서 수양차 전국을 돌아다니며 구경이나 해 보려고 그러니 내 길을 막지 말아달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절에 다녀오더니 정신이 잘못된 것이 아니야?’ 하듯이 보는 데 그들이 어찌 내 속내를 알 것인가. 그러한 의심을 받은들 어쩌랴. 발길을 돌려 집으로 왔다.

 어머니께 인사를 했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미향은 아들이 내려오자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올 것이 왔구나.’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고 있다. 그래도 사직서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다. 미향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어머니께 불효를 하였습니다. 관에다 사표를 제출하고 오는 길입니다. 용서 하십시오 어머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어미에 대해서는 아무런 걱정 말아요. 아들이 좋은 생각을 하였는데 어느 어미가 섭섭해 하겠소. 어찌 보면 늦은 감도 있어요. 얼른 식솔에게 잘 이해를 시켜보시오.”

 어머니가 고마웠다. 이 난처함을 아들이 더 힘들어 할까 염려하는 마음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최치원과는 다르다. 최치원은 신라에 대항할 길이 없어 스스로 포기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움이 있었던 처지였다. 동희의 입장은 전혀 달랐다. 나라의 임금이 인정하고 칭찬하여 준 자리가 아니었던가.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미향은 알고 있었다. 그런다고 떠나지 않을 사람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가슴이 아프다.

 이튿날 새벽같이 장인인 최달호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대감! 사직서를 냈다니요! 어디 몸에 병이라도 난 거요? 이거야 원 기가 막혀서.”

 “죄송합니다. 장인께 미리 말하지 못한 것은 죄송합니다. 그러나 제가 몸이 많이 나빠요. 제가 처음에 여기 올 때부터 벼르고 별렀던 계획이예요. 장인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

 달호와 처음 만나던 날 대관령을 내려오면서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였다. 이 먼 곳까지 어찌 오느냐기에 이곳저곳 구경하기 위해 선택했노라고 말했었다. 달호는 그 말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기억하고 있었지만 안 될 말이다. 더욱이 가족이 있는데 가족과도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사직서를 내다니. 딸이 서둘러 보낸 전갈을 듣고 밤새 한잠을 못자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한걸음에 달려왔던 것이다.

 “절대 안 되네. 가족을 두고 유람이라니. 사직서만 쓰지 않았다면 대감의 말을 이해하겠는데 이것은 아니지 않은가?”

 얼굴이 푸르락 거리는 것을 진정하려고 애를 쓴다. 타일러 볼 심산이다. 자식이 컸다고는 하지만 아직 혼례도 안 올린 상태가 아니던가. 그의 아버지 최치원에 대해서도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최달호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떠나면 다시는 안 올 것 같은 예감에 밤이 새도록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아 있을 딸의 신세를 생각하면 부모로서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껏 사위 잘본 덕에 집안이며 이웃에게 얼마나 칭찬을 들었던가. 만약 사위가 사라진다면 떵떵거리며 살던 집안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이다. 개경의 임금도 사위를 높이 알아주었는데 이 일을 어찌 수습한단 말인가? 달호는 가슴이 탈 수밖에 없다. 사위의 마음을 돌릴 사람은 미향이 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렇지’ 벌떡 일어났다. 어려운 안사돈이 대수냐. 이 일을 막을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못할까.

 갑작스러운 장인의 행동에 홧김에 집으로 가려고 일어나는 줄을 알고 따라 일어섰다. 달호는 옆에서 울고 있는 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너의 시어머니가 계시는 방으로 가자.”

 딸의 손목을 잡아끌고 걸었다. 미향의 방문 앞에서 발이 멈췄다. 조용했다. 문살 사이로 밝은 빛만 환히 비친다. 달호도 급한 김에 달려오기는 하였지만 순간 제정신이 들었다. 아들 하나를 믿고 평생을 살아온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처지에 무어라고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달호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딸의 인생도 불쌍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오죽할까? 그 자리에 앉아 땅을 치고 통곡할 수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도 없어서 집으로 오고 말았다.

 

 출 가

 돌아보니 낯선 길 석가모니 부처님도 마지막 궁궐을 떠날 때 하늘의 신들이 도와주지 않았던가. 그렇게 별 탈없이 잠잠하게 날이 밝았다. 미향은 아들이 입을 옷을 준비해 놓았다. 여러 벌의 옷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사치인 것 같아 정성들여 한 땀 한 땀 두 벌을 만들어 놓았다. 집 나가면 고생하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향은 아들이 지고 갈 가방 한 귀퉁이에 주머니를 달고 황금덩어리를 챙겨 넣었다. 공부할 토굴이라도 지을 수만 있다면 족하였다.

 집에 더 있을 까닭을 찾지 못하고 어색하게 죄지은 얼굴로 가족을 등졌다.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가고자 하는 행선지를 말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알기에 미향이 챙겨주는 가방을 어깨에 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동이 트기 전에 집을 떠났다. 죄지은 일도 없는데 도망가듯 돌아서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자식들에게는 여행을 다녀온다는 말로 아무렇지도 않게 전송을 받았다.

 속이 깊은 달호의 딸도 남편이면서도 손님 같았던 분을 모시고 살면서 언제나 어려웠다. 아버지의 성화에 어려서 결혼한 남편은 자신에게는 버겁고 항상 모자람을 자각하면서 죄스럽게 느끼며 살았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떠날 준비를 평생을 두고 해왔던 것처럼 느껴졌다. 시어머니도 예삿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여 어려웠고 임영관을 지으면서 나랏님과 소통하였다는 소리를 듣고는 더욱 그러한 생각으로 살았다. 이제 남편 대신 어머니를 잘 모셔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도 하였다. 미향의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아주 떠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달 바람이나 쐬고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미향은 방으로 들어와 천정만 쳐다보았다. 보현사에 가서 아들의 밥을 해 줄 수 있다는 기대를 하였기에 그리 애닯지 않았는데 계획이 완전히 빗나갔다. 아들이 어디를 갔는지 모른다. 묻지도 않았다. 최치원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마당이 요란스럽다.

 “대감님! 아찬 어르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향이 마음을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고쳐입고 마당으로 나갔다. 명주 관아에서 달려온 관원들이 마당에 줄을 서 있었다.

 “대감을 만나게 해 주십시오. 우리는 대감을 보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같이 애절하게 하는 말이다. 미향은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았다.

 ‘귀한 자식을 두었구나.’ 떠나고 없는 사람을 저리도 찾는 사람들은 가족 같이 챙기고 아꼈던 동료들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던 아들의 모습을 가슴으로 안았다. 이미 떠나고 없는 사람을 어떻게든 잡아보고 싶은 심정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그들도, 명주 군내의 사람들도, 산천초목도 그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울었을 것이다. 이별의 슬픔을 가슴에 안고 홀연히 떠났을 아들을 생각하니 부처의 세계는 참으로 매정한 세계라는 것을 알았다. 갈 사람은 이미 가고 없다. 미향은 사람들 앞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휘청거리는 다리로 어멈의 부축을 받고 안으로 끌려가듯 자리를 떠야 했다. 부귀영화가 무엇이냐. 한낱 물거품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것을 버리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한 처지에 직면한다면 열 사람이라도 부귀를 버리는 용기를 가질 것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가슴의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다시 정신을 차려야 했다. 며느리가 애절한 눈으로 먹기를 청한다.

 “너도 먹자. 나도 먹고.”

 며느리의 손을 잡아주었다.

 “너도 나와 같은 처지로 평생을 살겠구나.”

 밥상을 옆으로 미루고 서로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지. 남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집안의 주인이 흔들리면 부리는 사람들도 힘들어진단다. 아이들을 위해 지혜롭게 살아주기 바란다.”

 미향은 밤새 고민 끝에 서라벌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최치원과 살았던 집으로 갈 것이다.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려고 했던 보현사에는 이별의 소식도 보낼 수가 없었다. 아들이 없는 보현사에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함께 왔던 식솔들을 데리고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이 곳에 와 아들과 함께 명주군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아쉬움은 없었다. 자식이 떠난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그녀의 인생에 감옥살이밖에 안 된다는 판단을 하고 고향인 서라벌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서라벌을 떠나올 때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하고 돌아보고 돌아보던 일이 생각났다. 가족 같은 어멈의 자손들과 의지하고 살 것을 다짐하며 며느리에게 어찌 또 이런 소식을 전할 것인가를 고민하였다.

  아찬의 벼슬을 내려놓고 가정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나는 발길이 편할 리가 있을까. 빠른 걸음으로 명주군을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가 뒤를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걸었다. 이것이 무슨 힘일까? 걸어가면서도 자신이 행하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이 등이라도 떠밀어 내쫓는 기분이다. 이상한 것은 얼마만큼의 거리를 걸었을 때.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신기하다. 모든 것들이 너무나 낯설어 보이는 것이다. 지금껏 정을 붙이고 살던 곳이 아니던가. 그 순간 지난 과거의 일들이 한꺼번에 다 소멸되어 허공 어딘가로 분분히 날아가 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으로 인간 세상과의 인연은 끊어지는 건가.

 ‘아버지! 저는, 어찌해야 합니까? 저는 어디로 갑니까? 망망대해의 외로운 배 한 척이 갈 길을 일어버린 나약한 생명입니다.’

 ‘부처님, 제 갈 길을 열어 주십시요.’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다. 상원사를 찾아가는 길이다. 대관령 입구에 들어서니 하늘이 환히 트인다. 무슨 죽을죄라도 졌는가? 부랴부랴 떠나온 집이 아득하고 낯설어서 다시는 돌아다보지 않았다. 꽁지가 잘려 버린 도마뱀처럼 산으로 산으로 달리기를 한다. 가다보면 새로운 꽁지가 돋아나겠지.

 마음과 몸이 가볍다. 대관령 산길로 들어섰다. 전국에서 몰려드는 보부상들의 발길이 느껴진다. 대관령 산길에는 늦가을의 단풍이 오색을 자랑하며 골짜기마다 희희낙락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아름답다. 그 속으로 깊이깊이 함유하였다. 상원사로 가는 길은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해 걸어가는 몸과 마음이 가볍다. 홀홀단신 자유의 순간을 느껴보는 것이다. 가파른 언덕을 넘을 때도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풍경은 일찍이 보지 못했던 가을의 태양과 나무들의 조화였다. 어찌 올라왔는지 대관령 중턱에 있는 아흔아홉 구비의 중간 지점으로 올라왔다. 잠시 바위에 앉아 쉬어가리라 생각하니 목이 마르는 것을 느꼈다. 산 중턱에 물이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가 챙겨주신 가방을 열어보니 손끝에 닿는 무엇이 있었다. 쉬어갈 겸 그 속을 살폈다.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 꺼내보니 물을 담아 꽁꽁 봉하여 넣어준 병이 있었다. 그것을 꺼내는 손길이 떨렸다. 눈에서 뜨거운 것이 또 볼을 타고 내린다. 과거를 지웠다고 생각하였는데 어머니의 미소가 아른거린다.

 ‘그래요. 이별을 서러워 마세요. 우리는 언제나 가슴에 있어요.’ 가슴을 전하는 전율이 있었다. 뚜껑을 열어 물을 마셨다. ‘어쩌다 사내의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가.’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택한 길이 아니던가. 이제 다시는 마음 약한 짓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다. 대관령 중턱에서 내려다보니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다. 막바지로 불태우는 다비식 그것이었다.

 5개년 계획을 완수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지나다보니 가족과 바다에 가서 오붓하게 놀았던 일도 없다. 가을의 맑은 하늘 아래 하늘과 바다는 하나로 파랗고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모두가 다 지나온 세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일어섰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야 상원사 입구가 보이는 일주문에 다다랐다. 횡계를 지나는 길은 그래도 평지라 수월하였지만 산으로 오르는 길은 끝이 없었다. 우선 한숨을 돌리려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남은 물을 모두 마셨다. 이제 돌계단을 오르면 내가 살아갈 상원사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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