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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8화
작성일 : 19-11-01 20:55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1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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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도 사바세계의 미련을 가지고 있으시오. 그쯤 되었으면 무엇을 보았다고 하여도 마음이 움직여서는 아니 될 것이거늘 한낮 여인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였으니 당신은 신선이 될 자격이 없는 것 같소만.”

 “이 미친 중놈이 사돈 남 말하고 있네. 당신이야말로 부처의 경지에 다다른 자라고 생각하였는데 이 무슨 추태요. 아직도 여인의 속살을 탐내어 욕정에 사로잡혀 계를 어기다니. 마음으로 짓는 죄도 용서받기 어려울진대 행동으로 사음을 하다니!”

 “나는 아직 인간이고 마지막으로 해보지 못한 공부를 해보는 중이니 당신과 다르오.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닌 이상 사바세계의 마지막 시험을 치르는 중이니 세상 일에 관여하지 말고 속히 돌아가시오.”

 최치원은 말문이 막혔다. 살아서 챙기지 못한 사랑을 이제 와서 내가 그러한 자격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도 화가 났다. 죽이고 싶었다. 내 여자가 아니었던가? 그것은 집착이다. 그리도 끊기 어렵던 애욕의 집착을 끊었다고 믿었던 것이 잘못인가? 지금껏 모든 것에서 자유로웠다. 자유로운 줄 알았다. 어쩌란 말인가 대사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을. 세상일에 간섭할 자격이 없다. 세상일은 세상이 알아서 하는 것. 그 영역은 엄연히 구분되어야 함에도 잠시 착각하여 일어난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웠다. 그 허망함이란 사랑했던 여인을 다른 사내가 품었다니,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언제까지나 돌봐주고 지켜주어야 할 줄 알았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럼에도 그럴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무위 자유라 해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음을 어쩌랴. 그래도 마지막까지 물러서면 안 되었다.

 “어림없는 소리, 미향은 내가 데려가겠다. 이 곳에 머물게 할 수는 없지.”

 “착각하지 마시오! 사람 목숨을 마음대로 한다? 건방지게. 부처님도 못하는 인간의 목숨을 당신이 무슨 수로 데려간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요. 그 분과 나는 마지막 인연의 고리가 있었기에 부처님께서 보내준 마지막 여인이요. 당신이 마음대로 하지는 못할 것이요. 이 도량에서 한 발자국도 내 허락 없이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할 것이니 날이 새기 전에 돌아가시오.”

 “미련한 중 같으니라고. 부처를 팔지 마시오. 오만방자한 마음을 어찌 인연이란 멍에를 씌워 정당화를 주장하는 것이요!”

 “당신은 남편도 아니면서 질투의 화신으로 번개처럼 달려온 행동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요?”

 그것도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인간들처럼 가지각색의 산신들이 있다. 그 오만함은 인간을 좌지우지하려는 잡신들이 있기 때문이다. 귀왕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놓으려는 수작을 몰랐던 사실인데, 지금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귀왕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최치원은 색계의 마지막 경계를 거치는 자신을 돌아보며 바른 마음의 흐름이 정리되자 돌아서야 했다. 산으로 향하는 발길이 허전하였지만 새로운 감정을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달이 넘어가고 금세 동쪽의 밝은 기운이 서서히 허공을 변화시킨다. 일촉즉발의 공기 속에 산천이 숨죽이고 지켜보던 가운데 기운 빠지게 고요해졌다.

 대사가 방으로 들어와 보니 육신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밤이슬을 맞은 그의 그림자를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앉아있던 빈 육신은 찬바람에 놀라 떨고 있었다. 대사는 몸을 풀고 일어나 깔아놓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몸을 녹였다. 그리고 새벽잠에 빠져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기도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어 헛! 깜짝이야. 또 무슨 볼 일이 남았소!”

 최치원이 장대한 몸으로 기품 있는 옷을 입고 백발의 머리와 가슴께로 내려온 금발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대사가 앉아 공부하는 책상 맞은편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대사는 그 모습에 기가 눌렸다. 며칠 전 모습과 달랐다. 얼굴엔 미소까지 짓고 앉아있는 모습에 대사는 그의 맞은편 책상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지난번에 대사께서 많은 교훈을 주었소. 참으로 부끄러웠소. 떠나기 전에 대사께 인사라도 하고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들렀소. 경솔함에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소. 이제 서라벌 가야산으로 들어가 안주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대사께 부탁이 있어서 다시 들렀소. 이 못난 애비를 찾는다고 이 곳까지 찾아오는 명주군에서 아찬 벼슬을 하고 있는 내 아들 최, 아니 김동희를 대사도 아시지요?”

 “압니다.”

 “그 아이에게 스승이 되어 주시오. 그놈도 하늘의 자식이라 잘하고 있오마는 그래도 아비라고 한 번 나타나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다행히 대사님이 가까이 계셔서 부탁하는 것이요. 내 아들 동희를 부처님 제자로 키워주시오. 부탁드리오.”

 그의 마음속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 숨어 있었다. 참으로 인연이란 묘하다. 끊어졌다가도 이어지고 오래도록 잊었는가 하다가도 살아나는 것이 부모와 자식 간의 깊은 정인가. 대사는 자식이 없다보니 그들이 하는 행동에서 부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낭원대사는 어릴 때부터 절에 들어와 부처님의 경전에 매료되어 불타는 의지 하나로 멀고도 먼 당나라에 들어가 고생하며 지냈던 생각이 떠오른다. 그 덕에 귀국하여 신라 왕실에 들어가 대사라는 직함을 받아 보람으로 살았다. 그러한 중책을 맡아 나라에 불법을 펴고자 노력했지만 세상이 바뀌고 왕실이 와해되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서 멀리 이 곳까지 흘러왔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인의 살 한번 제대로 부벼 보지 못하고 지금껏 산 속에서 생활하였는데, 부처님의 가피인지 평생을 부처님 아들로 살았던 내게 저리도 고운 여인을 보내주었으니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고 부처님께 엎드려 빌었다. 육체적 결합이 아닌 영혼의 결합이라도 그녀의 곱디고운 육체를 탐할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허무하고 민망하지만 어쩌랴. 그렇게라도 여인의 살 냄새와 여인의 향기를 체험해 보았다는 행복감에 대사는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처럼 행복하다. 잠시 잠깐의 인연도 이렇게 애절한데 가까이 있었음에도 만나지 못하는 심정이 어떠하였는지 짐작이 갔다. 미향과 최치원의 인연은 오래 전에 끝났다. 다만 미향이 그를 놓아주지 않은 까닭이다. 그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앉았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최치원의 전설

 지리산 제일 높은 달, 바위 신들의 세계는 마야부인의 휘하에서 분주하다. 땅과 나무, 바람, 자연과 일체 사람들을 통째로 아우러 다스릴 신왕의 취임식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신왕이 되었음을 알리고 달, 바위로 모시러 갔던 마야부인과 그의 일행은 최치원에게 의복을 갖추어 입히고 아래로 내려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최치원은 입었던 신복을 벗어 마야부인에게 주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속세의 인연을 마무리하고 떠나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어머니, 제게 시간을 좀 주십시오. 이 옷을 입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니 저를 두고 내려가십시오.”

 그리고 달려온 것이 미향이 살고 있는 강원도 명주군이었다. 퇴색해 버렸던 감정이 다시 살아났다. 미향과 아름답게 살던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일지라도 그녀와 꿈속에서 마지막 사랑도 나누었다. 행복했었다. 그리고 단 둘이 바다를 거닐며 호흡을 함께 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고도 못내 아쉬워 떠나지 못했는데 보현사에서 대사의 정사를 목격하게 되었다. 몸이 있으나 없으나 감정은 같았다. 여인에 대한 욕정도 마찬가지였다. 아상도 있었다. 몸만 없었을 뿐 마음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같았다. 산 속에서 혼자 있을 때는 모든 것을 초월했다는 자신감에 헌신짝처럼 몸을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미향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순간 마음은 설레었다. 몸을 버렸음에도 사랑의 감정은 가슴으로 전해져 아무런 경계도 없이 느끼며 사랑하였다.

 마야부인은 아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신들을 불러 수행하게 명하였다. 머지않아 서라벌에 거대한 산신제가 있을 것이다. 그 전에 아들의 취임식을 거행하여야 한다. 신라의 왕실을 지켜내지 못하고 신라의 불법을 지키지 못하였기에 마야부인은 가슴이 아프다. 신라 천 년 동안 불법을 수호하느라 신으로 할 일을 다 했다. 그나마 아들 최치원이 있었기에 새로운 왕국에 걸 맞는, 옛 서라벌을 이어 새로운 나라 고려를 잇는 신으로서 추앙받을 최치원을 만들기 위하여 혹독한 시련과 외로움으로 훈련을 시켰던 것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신라를 버리고 미향과 아들을 버리게끔 유도하여 여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미향을 마지막으로 만나 마음을 정리하는 데 아무런 미련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의 마음에 짐을 씻어내라는 의미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나라를 위하고 불법을 수호하는 데 큰 의가 있기에 이미 정하여진 최치원의 운명이었다. 그러기에 그의 앞에는 미향도 동희도 없다. 오직 나라와 불법을 수호하는 데 산과 자연을 통해 수만 년 동안 이어갈 거대한 신의 국가관이 있는 것이다. 그 기틀을 열어나가는 커다란 책임과 자비로움으로 세세생생 이름을 남겨야 하는 신의 취임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현사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녀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하는가?’ 슬펐다. 그러한 마음을 낭원대사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부랴부랴 일어서 보현사를 나왔다. 그녀의 모습이라도 마지막으로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까닭이 없음을 알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신 전

 팔관회는 건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국가 의례 가운데 가장 중요시되었던 것으로 행사에 막대한 비용과 인력 동원이 필요하였다. 또한 하늘을 섬기는 명산대천의 용신을 섬기고 고풍으로 仙량이나 국선, 선가가 주최하였다.

 팔관회는 백성의 편안함을 부처님께 빌었다. 그리고 명산대천의 신들이나 선신을 불러 제를 올릴 때 처음으로 최치원이 지리산의 제왕으로 앉아 있었다.

  무녀들은 신과 연결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지만 신녀들은 지리산 신왕에 새롭게 등극한 최치원이라는 신에 관해 직접적인 말을 삼가고 입을 봉하였다. 그러나 민중 속에 사는 산 기운이 뛰어난 무녀들의 입을 통해 알게 모르게 고을마다 집집마다 지리산의 산신은 최치원이라고 전하는 데 급급하였다.

 최치원은 그렇게 지리산에 안주하여 구 신라 신 고려의 안위를 책임지는 거대한 직책을 부여받고 두루 산신들을 만나고 신의 세계를 개혁하는 데 몸을 던졌다. 신들도 인간과 같이 불법을 계승하여 백성들을 의롭게 하고 그들의 평안과 안녕을 사심 없이 수호하는 행을 할 수 있도록 신왕의 취임식에서 전국에서 모인 신들 앞에서 설법하였다.

 오늘 전국의 산신을 대표하여 신의 세계를 이끌어 갈 새로운 법을 정하고자 합니다. 백성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의 신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산신들도 부처님 법을 익혀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되는, 그러기에 인간이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자비를 배워 그들이 고통받는 것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인간의 고통을 부추기는 못된 근성을 근절하고 지혜있는 신이 되는 수행을 행하도록 교육을 시킬 겁니다. 신들이 사악하지 않고 인간을 이롭게 하는 부처의 근본 자비를 통해 이루어 낼 것입니다. 전국에서 모인 신들은 모두 지혜롭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조상신들을 동참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 나라를 위하여 누구에게나 부처의 법을 배워 백성들을 인도하는 지혜로 불법을 배울 수 있도록 우리의 신들이 앞장서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신의 세계를 믿고 모든 액운과 행복을 기원하는 것을 이용하여 인간을 괴롭힌다든가 하는 행위는 없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아상으로 계속 유지가 된다면 결국 인간들은 신을 무시하고 다시는 신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군림하려는 마음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빠르게 변하는 인간 세상에서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인간에게 버림을 받는 시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걸 말씀드립니다. 새로운 왕의 시대는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들도 행복하여 임금을 신뢰하며 다함께 잘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신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애민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이롭게 한다면 결코 사람들은 신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신왕 취임식에 참석했던 신들은 은근슬쩍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강원도 이성대 사당에서 바둑을 두며 며칠을 보낼 적에 강원도의 높은 산세와 같이 높은 경지에 있는 산신들과 만나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관계로 그들은 미리 서라벌에 와 묵고 있었다. 웅성웅성 신들이 돌아가고 강원도의 신 이성대 주지인 신선 범일국사는 최치원의 취임 인사를 듣고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두 신선은 자리를 옮겨 지리산 달 바위 사이로 올라갔다. 옆구리에 바둑판을 끼고 신의 제자가 따라붙었다. 달 바위는 칼끝 같은 바위로 된 절벽이 하늘과 맞닿은 곳으로 신선이 놀기에 적합한 곳이다. 강원도 이성대 주지 범일국사는 미리 약속되어진 일이라 주저하지 않고 행사를 뒤로 하고 달 바위에 오른 것이다. 높은 곳이라 바람의 강도가 높았지만 바람은 신들이 당도하자 슬금슬금 자리를 깔아주고 그들의 훈수를 보기 위하여 납작 앉아 있었고 파란 하늘도 내려와 주위를 밝혔다.

 “이 곳은 자주 올라와 하늘과 소통하던 곳이요. 몸을 벗은 곳이 또한 여기고. 그런데 벗어놓은 허술하던 몸뚱이는 누가 먹어 버렸나?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없구먼. 허허허. ”

 “참으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 허접을 벗은 탓에 각 곳의 산신들이 당신을 따라 여기까지 왔다가 가지 않았소? 한판 겨뤄봅시다.”

 “지난 번에는 서로 승부가 나지 않았지만 이번은 다를 거요. 내 집에 왔으니 산천초목이 모두 내 편이 되어 나를 응원할 것이니. 허허허.”

 최치원은 기분이 좋았다. 벼랑 끝 달 바위 틈 사이에 자리를 깔고 앉은 두 산신은 바람도 없는데 금발의 수염이 슬렁슬렁 날린다.

 “내 집에 오셨으니 이성대 주지가 흰 말을 가지시오.”

 “뭘 그리 텃세를 부리시오. 강원도의 이성대가 아름다움으로 말하면 풍경이 으뜸인 것 같소만.”

 “무슨 소리요. 지리산을 말할 것 같으면 신라시대 내내 무수한 인재를 키웠고 고승들은 얼마나 많이 탄생하였는지 이성대 주지도 알 만한 일이거늘 아니 그렇소?”

 “허허허. 한 나라의 백성이고 한 나라의 산하인데 곳곳의 아름다움이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요. 더 좋고 나쁨이 어디에 있겠소.”

 그들은 서로 금발 수염을 쓸어내리며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바람이 없으니 구름도 오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움직임이 없다. 달 바위 아래 능선마다 골골마다 술렁이고 겨울잠에 깨어난 짐승들이 술렁인다. 달 바위로 올라가 보자. 나무들이 일제히 고개를 빼어 달 바위로 올라간다. 최치원의 왕림을 환영하기 위하여 그들은 앞을 다투며 하늘 닿아 있는 달 바위로 올라갔다. 최치원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앞의 바둑판이 흐려졌다. 그들과 동거 동락하던 일들이 가슴을 적신다. 그들이 있었기에 외롭지 않았고 배고프지 않았다. 다람쥐와 새들의 모이를 축내며 살았던 긴 터널의 시간들이 새삼스럽게 되돌리어 그들의 고마움에 두 신선은 그러한 마음을 공유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둑판만 노려보고 있다.

 짐승들은 모의를 하였다. 누가 용기를 내어 저 자리에 갈 수 있겠느냐고. 누가 겨우내 먹고 남은 식량 중에 제일 맛있는 먹이를 골라 두 신선 앞에 가져다 놓을 용기가 있는지를.

 서로 앞장서기를 주저하면서 용기를 내지 못한다. 그 때 목줄이 부풀어 오른 다람쥐가 나섰다.

 “제가 가겠습니다. 지리산 왕께서 평소 좋아하시던 도토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자 토끼가 앞으로 나섰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대왕께서 평소 좋아하시던 머루와 다래를 가지고 왔습니다.”

 “어흥, 모두 물렀거라. 어리석구나. 지금의 지리산 왕이 되셨는데 그러한 음식을 드시겠느냐?”

 서로가 자기들이 가지고 온 먹이를 내밀며 신의 왕이 되어 나타나신 산신에게 바치려고 앞을 다투고 있었다. 그것을 지혜로운 토끼가 한 마디 하였다.

 “우리의 성의를 보여주는 일이니 모두가 가지고 나온 것들을 차례로 신왕의 앞에 갖다놓으면 어떨까요?”

 그 자리에 모인 산의 백성들은 모두가 손뼉을 치며 환영하였다. 다음엔 누가 먼저 갈 것인가를 정하였다. 제일 작게 생긴 산쥐부터 차례로 줄을 지어 올라갔다.

 “허! 참, 오늘 배가 터지겠군. 당신도 내 덕에 배가 터지도록 먹어야겠소. 얼마나 고마운 일이요.”

 “핫핫핫! 어디 먹어봅시다.”

 벌레, 나무뿌리, 머루, 다래 등 산에서 먹을 수 있는 온갖 것들이 그들 옆으로 쌓였다. 그 모든 것들을 최치원은 얼마 전까지 먹고 살았었다.

 “고맙구나. 그동안 나를 먹여 살리느라 고생하였느니라. 너희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가까이서 보지 못할 왕이기에 그들은 하나같이 슬펐다. 귀를 쫑긋 세우고 옆자리에 물러나 있었다.

 “이보시오 이성대 주지여. 우리가 이기고 지는 것이 무엇이 중요하겠소. 천진무구한 저들의 눈빛을 보시오. 인간들이 저들만 같았으면 세상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거늘 서로 싸우고 헐뜯는 인간들을 보면 이 곳이 얼마나 아름답고 순수한 곳인지 알지 않겠소? 비록 하늘 세상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이 청산을 두루 유람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요. 당신은 어찌하여 이성대에 머물게 되었소?”

 궁금하였다. 최치원은 이성대 주지사의 일대기를 그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달 바위 바람이 그들 사이를 좁혀준다.

 “내 이름은 범일이요.”

 “핫, 범일국사?”

 범일 어머니 문씨는 물동이를 이고 바위산 돌 틈에서 나오는 샘물을 담으러 들어갔다. 6월의 신록이 천지를 싱그럽게 하는 어느 날 바람이 그녀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날따라 문씨 처녀는 마음이 들떠 있었다. 산이든 들이든 막 쏘다니고 싶은 충동으로 선택한 것이 고작 물동이를 이고 돌산에 샘물 길러 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걸었다.

 그러한 마음이 오월을 지나 유월이 되자 명주군에라도 내려가 바람이라도 쐬고 오고 싶었지만 부모님께 허락을 받을 명분이 없어 물동이를 이고 돌산으로 들어왔다. 올라오는 길 양옆으로 나뭇잎이 반짝이는 모습은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우물 한쪽에 물동이를 내려놓고 우두커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산 바위 사이사이에 피어 있는 분홍 철쭉꽃이 문씨 처녀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하였다. 문씨 처녀는 앞산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산이든 어디든 떠돌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넋 나간 사람처럼 물동이에 물을 퍼 담고 있었다. 집에 내려가고 싶지 않았는데 언제 채워졌는지 물동이에 물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녀는 반항하는 행동으로 물바가지를 들었다. 물동이에 퍼 담은 물을 떠 벌컥벌컥 마시려다가 바가지를 들고 서 있었다. 기울어진 해가 구름에 가려졌다가 나와 물동이 안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물동이 안에서 말이다. 문씨 처녀는 그것이 신기하여 바가지를 들어 해를 건졌다.

 “해를 마셔야지.”

 바가지를 기울여 해를 벌컥벌컥 마셨다. 타는 가슴을 물이라도 실컷 마셔 달래보려는 듯 물바가지를 입에 대고 마셨다. 숨도 쉬지 않고 한참을 마시다가 숨이 막혀 입에서 물바가지를 떼었다. 참았던 숨을 미처 돌리기도 전에 난데없이 억센 사내의 손길이 그녀의 손에 든 물바가지를 가로채고는 남은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이 아닌가? 문씨 처녀는 놀라 나자빠져 쓰러질 뻔하였다. 바람에 스치는 사내의 달콤한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그것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짙은 향기가 되어 그녀를 사로잡았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 키는 9척으로 커 보이고 모자를 쓴 모습은 비렁뱅이 탁발스님처럼 보였다. 그 사람은 문씨 처녀가 마시다 남은 바가지의 물을 다 마셨다.

 돌산 샘물터는 처녀의 집에서 조금 떨어져 있고 집이 그 샘물을 길어다 먹는 곳이다. 평소에도 샘물가에만 오면 그녀는 해방된 마음으로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버릇이 있었다. 누가 볼 사람도 없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었다. 그 사내는 마시던 물바가지를 샘물 속에 던져 넣고 물동이를 기울여 동이에 담겨져 있던 물을 반쯤 쏟아 버렸다. 그것을 보고도 문씨 처녀는 바위가 되어 입과 다리가 땅바닥에 붙이고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한 행동을 바라볼 뿐 한 마디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바람같이 나타난 사내는 물동이를 들고 부지런히 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녀는 그 사내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찌해야 할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사내를 따라 지남철에 끌리듯 숲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다가 어느 지점에 멈추어 섰다. 처녀는 어떻게 거기까지 따라왔는지는 몰라도 사내가 멈추자 그녀도 멈추어 섰다. 사내는 물동이를 한 곳에 내려놓고 편안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내가 하는 행동이 너무나 여유로운 모습이라 사내를 쳐다보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여기 와 앉으시오.”

 지남철에 끌리듯 사내 옆에 가 앉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고 사내가 좋았다.

 “나는 떠돌이 거지같은 중이요. 어디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아서 어디에 산다는 말을 할 수가 없소. 두어 번 당신을 본 적이 있소. 오늘 행동은 미리 계산되어진 것은 절대 아니요. 나도 모르게 이 곳까지 왔고 당신이 좋아졌소.”

 무슨 말을 했으면 좋겠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내는 문씨 처녀 가까이 다가와 앉는다. 그녀의 두 손을 잡는다. 그녀의 심장이 곤두박질친다. 사내 손에 잡힌 손을 빼려는 시도도 행해지지 않는다. 무엇에 몸 전체를 저당 잡힌 것처럼 아무런 부정의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사내가 그녀를 안는다. 몸이 떨린다. 사내 입술이 닿는다. 아~ 그녀는 가느다란 비명을 삼킨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사내의 입술이 그녀의 입에 닿았다. 꿈꾸어 오던 장면이다. 나뭇잎처럼 사내의 향기가 좋다. 그녀는 사내의 뜨거운 입김에 혼미하여 그의 목을 안고 힘을 가한다. 사내의 부드러운 행동이 그녀를 풀밭에 눕게 하는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파란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새들도 나무에서 재잘거린다. 사내의 손이 닿는 곳마다 그녀는 부끄러워 움츠렸다. 한가한 숲속에는 인기척 하나 없고 재잘거리던 산새들도 조용해진다.

 문씨 처녀와 그 사내의 만남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조건하에 자연이 허락하였다. 그 순간이 단 한 번의 사랑이라도 그 사랑을 충실히 이행하여 사랑을 소중히 간직할 것이다. 사내의 서툰 애무도 그녀의 첫 경험도 천천히 그리고 사랑스럽게 달래듯 오래도록 그녀의 몸을 관찰하고 애무하여 두고두고 간직하리라. 자연이 주는 남녀의 행동은 태초로부터 이어지는 종족보존의 씨를 심는 행위 그것이다. 누가 학습시키지 않았어도 자연의 숨결과 행동은 서로를 사랑하게 만든다. 벌과 나비와 같은 행동으로 꽃이 피면 날아와 꽃술에 안는다. 꽃술은 파르르 떨기도 하고 행복에 겨워 춤을 추기도 한다. 열매를 맺는 순간에 서둘러 행할 필요도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의 행위는 나뭇잎도 바람도 새도 숨을 죽이고 기다린다. 하늘의 동조와 땅의 기운은 그렇게 하늘 사람을 땅으로 점지하기 위해 순결한 몸에 한 번의 경험으로 씨앗을 심어주고 부모는 하늘 자손을 키우며 한평생 불행과 행복을 경험한다. 씨앗을 받은 사람이나 씨앗을 심은 사람은 미리 고민할 필요도 느낄 일이 아니다.

 눈발이 펄펄 날리고 문씨 처녀의 배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었지만 알아채지를 못했다. 매달 치르어야 할 달거리가 몇 달째 없었을 뿐이다. 사내의 얼굴도 부끄러워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나이며 이름이며 물어볼 용기도 없어 눈을 감고만 있었다. 그 사내는 아쉬워 또 한 번의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고서야 날이 저물어 헤어졌다. 언제 또 만난다던가, 어디에 산다던가, 따라간다던가, 데려가라 던가 하는 말들이 입 밖으로 나와 보기만 했어도 그녀는 한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내를 생각하면 그립고 보고 싶어 밤마다 애태우던 세월이 얼마던가? 따라가지 못한 것에 대한 어리석음보다 한 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 무엇을 망설이고 혼자 남아 있을 까닭이 없다. 기다리는 시간이 하루가 여삼추라 했던가. 뱃속에서 몇 차례 생명의 신호를 보냈어도 아무런 생각을 할 줄 몰랐다. 달이 차고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고려 정부와 강원도 인연은 계속 이어졌다. 명주군의 5개년 계획이 시작된 지도 몇 달이 지났다. 남향진과 안목의 사이에 내천의 공사가 시작되면서 바닷물이 올라오는 것을 먼저 나무를 베어다 막으며 아래에서 위쪽으로 바닥을 퍼 올려 둑을 조성하였다. 12월이 되면서 한쪽에다 불을 피워놓고 간간이 시린 손을 녹여가며 공사의 진도를 높이기 위하여 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나무를 베어 날랐다. 그러는 가운데 공사 현장에는 사람들이 개미처럼 모여들었다. 빠른 시일 내에 공사를 마칠 생각으로 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모두 받아주었다. 농사철도 끝나고 방에서 가마니나 자리를 만들며 겨울을 보낼 계절에 돈벌이라니 누구라도 마다하겠는가. 공사 현장에는 날마다 낯선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러다보니 지방 사람들의 텃세가 있기도 하였다.

 한편 학산과 어단리 사이에도 돌 깨는 기술자들이 높은 둑을 쌓기 시작하였다. 저수지를 만들어 물을 가두고 비를 받아 가뭄 때 물을 아래로 내려보내 가뭄을 해소하려는 계획이다. 하늘도 도와주는지 12월인데도 눈이 오지 않았다. 강원도에는 언제나 봄이 되어서야 눈이 오는 때가 많아 눈이 쌓인다 해도 봄바람에 쉽게 녹기 때문에 일의 차질이 적을 것이었다. 관에서도 그러한 날씨의 조건 때문에 일의 능률을 매일 파악하고 검토하느라 집에 들어가는 날이 드물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자 옷이 낡아 추위에 떠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불을 피워놓은 곳에서 손발을 녹이며 일을 하였다. 그것을 대비하여 미향이 계획하여 만든 옷들이 거의 완성이 되었다. 미향이 없어도 만들어 놓은 옷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매일 늘어나는 사람들을 다 주기에는 턱없이 모자라 어찌하여야 할지를 두고 내게 물어왔다.

 “나리, 아씨가 안 계시니 나리께서 결정하여 주십시오. 아씨가 애초에 이 곳의 사람들을 위하여 옷을 만들기로 하였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만들어 놓은 옷이 모자랍니다. 그렇다고 똑같이 추위를 이기며 일을 하는데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고 하기가 어렵기에 나리께 여쭙니다.”

 그들의 말을 들으니 무어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영동지방의 사람뿐 아니라 영서지방에서도 겨울 돈벌이를 하기 위해 대관령을 넘어 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들도 똑같이 추위에 떨고 있는데 그들을 빼놓고 옷을 나눠준다면 그들이 얼마나 섭섭할 것이며 인심이 나쁘게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옷은 몇 벌이나 지었느냐?”

 “아씨께서 백 벌을 지으라고 하셔서 백 벌을 채웠습니다.”

 “그러면 남자들은 하의를 주고 여자들은 상의를 주면 어떻겠느냐?”

 “그러면 이백 사람을 줄 수 있겠습니다.”

 “그러고도 못 받는 사람은 구호물품이 남아 있으니 그것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내일은 일하는 현장으로 옷을 가지고 와서 나누어주면 되겠구나.”

 고민거리를 해결하니 옷을 지었던 사람들의 마음이 가벼웠다.

 “내일 언제쯤 가지고 가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갈 때 나누어 주는 것이 좋을 듯하니 해가 질 무렵에 들고 나와서 나누어주도록 하여라.

 ‘어머니께서 오셔서 보았으면 좋을 것을’ 하는 마음으로 사랑으로 돌아왔다. 일이 바쁘다보니 어머니를 보러가지 못하였다. 옷을 챙겨 올려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5개년 계획만 끝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벼슬을 접고 산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머니도 절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대사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분의 제자가 되어 부처님께 귀의하고 싶었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인데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남은 가족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참선을 하던 생각이 났다. 그런 때도 있었는지 아득하다. 집에 돌아오면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어머니를 두고 산에 들어갈 수 있을까? 어머니께서 나를 놓아주실까? 평생 한으로 살아오셨는데 아들마저 산으로 들어간다고 하면’, 그런 생각에 이리저리 뒤척였다.

 겨울해가 짧았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려 한다. 바느질로 지은 옷을 보자기에 싸서 현장으로 나갔다. 진갈색 옷감으로 솜을 넣고 누볐다. 남녀가 편히 입을 수 있도록 웃옷과 바지를 지었다. 그 옷의 모양은 서라벌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었다. 여러 사람이 머리에 이고 남쪽 공사장으로 나갔다. 관에서도 나왔다. 해가 지자 일손을 놓으라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손목에 도장을 찍은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 한 쪽에 불이 피워진 곳으로 몰려들었다. 관에서 나온 사람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이 쪽으로 모이십시오. 오늘은 여러분들에게 선물을 드릴 것입니다.”

 쟁기를 챙기던 사람들이 무슨 말인가 의아하였다. 선물이라니 누가 선물을 준단 말인가. 호기심에 한 쪽으로 모였다. 관에서 나온 사람들 옆으로 깨끗하게 차려입은 아낙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솜을 넣어 만든 옷입니다. 우리 아찬 어른의 모친께서 여러분이 일할 때 추위에 떨 것을 생각하여 여러분을 돕고자 만든 옷입니다. 날씨가 추울 때 입으라고 오래 전부터 만들었습니다. 한 벌씩 드리고 싶었는데 일하는 사람들이 많은 관계로 한 벌씩은 모자라서 남자는 바지를 가져가시고 여자 분들은 윗도리를 가지고 가셔서 내일부터는 이 옷을 입고 추위에 떨지 않도록 입고 나오셔도 됩니다. 그 소리에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고마움을 표했다. 옷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도 마음이 흐뭇하여 기분이 좋았다. 옷을 받아든 사람들은 옷으로 얼굴을 부비며 하루 종일 얼었던 피부를 녹였다. 그러한 모습을 한 켠에서 바라보았다. 어머니의 깊은 정이 느껴졌다. 남자로 태어났으면 큰 벼슬을 하였을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 평생 아끼며 벌었던 돈을 사람들을 위해 베푸시니 자식 된 도리를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옷을 받아든 사람들은 빠르게 집으로 돌아갔다. 할 일이 많은 사람들이다. 여인네는 소여물을 끓이고 빨래를 하느라 밤이 깊도록 집안 일을 살펴야 했고, 남정네는 말뚝에 매어둔 소들을 마구간으로 몰아야 하는 등 하루 종일 못한 집안 일을 해야 하기에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합 류

 대관령 줄기마다 내려와 모인 물이 북천으로 흘러 강문바다로 합류했던 것을 남쪽으로 돌리는 일이다. 물줄기는 보광리 골에서 반대의 길을 잡아 남쪽으로 꺾어내려야 했다. 물길을 바꾼 물줄기는 보광리를 지나 왕산 골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합류하여 남천의 강을 지나 안목 바다로 흘려보낸다는 것이다. 보광리 골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성산의 물줄기와 합류하여 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성산과 홍재동까지 새롭게 내는 강천은 산을 남으로 두었기에 집이 한 채도 없어 물길만 잡으면 쉽게 합류가 되었다. 그러한 계산은 설계도가 잘 되어 있어 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공사를 시작한 지 7~8개월이 되었다. 강의 길이는 작업을 강행하는 바람에 안목까지 연결된 상태다. 우선 물길을 연결해 열어놓았으니 그 다음 작업은 천천히 하여도 될 일이다. 첫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물길을 돌려놓으려는 것이기에 산신께 고하여 제를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날을 잡아 음식과 과일을 정성껏 준비하였다. 보광리 물길이 반대 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지점에다 제단을 설치하였다. 그 날은 관내 모든 백성들이 먹고 쉬는 날로 정했다.

 수레로 음식과 과일을 날랐다.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역사를 바꾸는 일에 공헌했다는 자부심으로 산신제를 지내는 데 동참하여 나름대로의 의기양양한 자부심을 안고 의식을 치르려는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제 지내는 절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온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도록 푸짐하게 소와 돼지를 잡고 과일이 차려졌다.

 제를 주도하는 책임자로서 제복을 입고 대관령 산신에게 고하였다.

 유~세차, ○월 ○일 ○시에 산신님께 고합니다. 영아래 명주군 하슬라 고을에 사는 아찬 김동희가 명주군을 대표하여 명주군의 안녕을 위하는 크나큰 공사를 시작하였기에 강원도 대관령 산신께 고합니다. 해마다 장마의 피해로 인명과 재산과 농토가 비로 인해 분실되어 왔습니다. 백성들의 고통과 걱정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하였습니다. 다시는 그런 피해가 나지 않도록 물길을 남쪽으로 돌려서 그 피해를 막기 위한 군민의 노력으로 물길을 바꾸려고 합니다. 고금에 없었던 자연을 사람의 힘으로 물길을 바꾸려고 합니다. 공사장에서나 사람들 사이에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저희들을 보살펴주시고 허락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강건하고 풍요로운 명주군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부디 저희들의 성의를 어여삐 여기시어 차려놓은 음식을 즐겁게 드시고 명주군을 보살펴 주십시오.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일제히 제사를 지냈다. 다시는 재산과 인명을 물난리로 잃지 않게 해달라는 간절한 바람이었다. 제를 지낸 음식들은 다시 수레에 실어 성산 학교 마당으로 가지고 왔다. 준비해 온 자리를 깔고 무덕무덕 모여 앉았다 여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음식을 나르며 먹고 즐겼다. 하늘은 청명하여 오월의 꽃내음이 그들의 마음을 취하게 하였다. 봄 씨앗을 다 뿌린 농촌의 들판은 그들로 하여금 풍요롭게 하였다. 죽어도 종자 씨앗은 먹지 않는다는 신앙 같은 농부의 마음은 물난리에도 챙겨두었기에 봄 씨앗을 서로 나누어 가며 빈 곳 없이 뿌렸다. 그러한 그들이 오랜만에 여유로운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마음껏 먹고 취하며 흥으로 가무를 즐겼다.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람이 난데없이 나를 업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합류하여 빙글빙글 돌면서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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