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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7화
작성일 : 19-11-01 20:53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14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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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최달호와는 나이 차이가 있지만 내 지위가 위에 있으므로 달호는 항상 깍듯이 존중하며 챙겨주었다. 명절 때도 그렇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찾아와 외롭지 않게 동무해 주었다.

 주막에서 달호와 둘이 막걸리를 몇병 마시고 기분이 좋았다. 자기 집에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잊지 않고 늘 챙겨주는 것이 고마워 그의 뜻을 따랐다. 방 안에 들어서니 아주 잘 정돈되어 있었다. 명주군에 오고서 남의 집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서라벌에 있을 때에도 친한 벗이 없었기에 어느 집에 친히 들어가 밥 한 끼 얻어먹어보지 못했다. 그러한 성격 때문에 술이 들어가도 흐트러짐은 없었지만 그 날은 마음이 넉넉하여 그 곳까지 가게 되었다.

 “제가 잠시 안채에 들렀다가 나오겠습니다. 대감, 편안하게 앉아 계십시오.”

 최달호는 안채로 들어갔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방으로 들어왔다.

 “제가 이래봬도 먹여 살릴 가족이 여럿입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어려서 장가를 들었지 뭡니까. 대감께서 머나먼 강원도로 오셔서 외로워하는 것이 마음에 안되어 보였습니다. 서라벌에서 강원도로 부임 받아 오실 때 대관령 주막에서 처음 만났지요? 그 때부터 저는 대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초행에 외롭고 무서워 걱정이 많았는데 누구도 말 한 마디 걸어오는 사람이 없던 차에 정말 반갑더라구요.”

 미닫이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소녀가 들어왔다. 머리를 곱게 묶어 땋아 내리고 머리 끝에 빨간 댕기를 맨 소녀는 내 앞에서 나비처럼 절을 하였다. 당황하여 엉거주춤 서 있는데 달호가 딸의 손을 잡아쥐고 내 옆의 자리에 앉게 하고는,

 “제 여식입니다. 제가 볼 때는 매우 영리한 아이인 것 같아 대감에게 인사를 시켰습니다. 갑자기 놀라셨을 줄 압니다. 어여삐 보아주십시오.”

 먹었던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아직 여인에 대한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자리가 안정되면 부친의 소식을 찾아 돌아다닐 생각뿐이었다. 한창 혈기가 왕성할 때라 나도 모르게 정면으로 그 모습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버지 옆에 앉아서 반쯤 고개를 숙이고 얼굴에 홍조를 띠고 앉아 있는 소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저리 큰 따님이 계셨습니까? 참으로 결혼을 일찍하셨나 봅니다.”

 그리 말은 하였지만 가슴이 콩닥거리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나의 모습을 눈여겨보고 있는 달호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한 일이 있고부터 달호는 딸과 나 사이에서 중매 역할이 시작되었다. 술자리로 유인하여 집으로 데려가는 상황이 철저히 계획되고 있었다. 그렇게 맺어져 자식 남매를 낳았다.

 나랏일을 핑계로 집에 못 들어오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떠돌이처럼 바삐 살았다. 어머니가 오시면서 이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학산과 어단리 사이에 습지 조성을 할 곳에 몇몇 관리들과 시찰을 나왔다. 한 쪽으로 쓰러질 듯 서 있는 위태로운 오두막들이 많았다. 이번 물난리의 상흔을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드문드문 사과나무 과수원이 있었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물에 잠겼던 곳이기는 하여도 물 빠진 자리에 매달린 잘 익은 사과를 보면서 그나마 희망을 잃지 않고 가을 추수를 하고 있었다.

 물 빠진 습지에는 물이 고여있었고 가장자리엔 풀들이 시커먼 흙을 뒤집어쓰고 바닥에 누워있었다. 습지를 조성하려면 넓은 땅이 필요하다는 것을 현지 답사에서 확인하였다. 5개년 계획 속에 두 번째 계획은 저수지를 만드는 것으로 하였다.

 “남쪽 방향으로 앉은 높은 지역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를 다 받을 수 있는 곳이어서 과수농이 적합할 것이므로 과수 농가를 지정하여 농촌 발전을 위해 5개년 계획에 함께 넣어둡시다.”

 5개 군을 시찰하면서 특성에 맞는 농업기술을 연구하여 잘 살 수 있는 지방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려면 훌륭한 인재를 선출하여 과학적인 연구와 기술을 도모하여 생산을 늘릴 수 있는 농업시대를 열어야 하겠다는 생각에까지 도달하였다. 참으로 가슴 뛰는 미래가 보였다. 홍수만 피할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 부친을 찾아야 한다는 평생의 무거운 숙제를 내려놓았으니 무엇이든 못하겠는가. 새로운 희망이 가슴을 뛰게 하였다.

 

 영, 이탈

 미향은 보현사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일어났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밖으로 나왔다. 밤사이 솔잎과 나뭇잎이 바람에 날려 마당에 분분하다. 그녀의 기운으로는 넓은 마당을 쓸어낼 수가 없다. 조용히 앉아 솔잎을 손바닥에 가지런히 모았다. 노랗게 떨어진 솔잎을 하나씩 손바닥에 놓으니 보는 마음도 예쁘다. 아침 바람에 얼굴 피부에 생기가 돌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몸도 가볍고 기분도 좋았다.

 안쪽을 살펴보니 대나무를 쪼개 만든 바구니가 있었다. 서라벌에 살 때도 마당의 풀 한 포기 자라게 두지 않았고 구석진 곳에도 먼지 쌓이는 곳이 없어야 했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그녀 눈에는 어느 곳엘 가도 그러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침 해가 깊어 아직 산 속에까지 비추지 못하고 있는 시간에 마당에 나와 앉아 있었다. 새벽에 법당에서 기도하며 목탁 치는 소리에 깨어나 아침이 밝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리는 애절하고 청아하게 산 속을 깨웠다.

 최치원도 이러한 외로움 속에 평생을 홀로 산 속에서 지냈으려니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무엇을 얻으려고 그리해야 했던가? 그리고 이 곳의 낭원대사와 저 젊은 스님은 부처님의 무엇을 가졌는가? 저들은 무엇을 얻었는가?’ 하는 생각으로 앉아 밤을 새웠다. 마당에 앉아 솔잎 하나하나를 손으로 집어 올리며 앉아있는 자기 자신을 살폈다. 나는 지금껏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지금껏 부를 안겨준 목적은 무엇일까?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천리만리 이 곳까지 오게 된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저런 의문이 생겼다. 그 의문의 화두는 이어졌다. 참으로 이상한 곳이로구나. 솔잎 하나하나가 손바닥에 모아지면서 무아(無我)를 맛보고 있었다. 돈 모으는 재미에 평생을 살아왔지만 오만하거나 자만하지 않고 식솔들을 챙겨주었던 것은 돈보다 사람이 더 값진 큰 재산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보살님, 아침 공양이 다 되었으니 들어오십시요.”

 “어머나! 스님께 아침을 지어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소쿠리에 가지런히 담겨진 솔잎을 보고 놀랐다. 언제 이렇게 많이 주워담았을까? 소쿠리를 들고 일어났다. 뜨락 한 쪽에다 놓았다. 부엌이 어딘지 살폈다. 그 쪽으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낭원대사님 공양상은 이미 들어간 것 같았다.

 작은 상에다 차려놓은 밥상이 보였다. “보살님, 방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리고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눈, 코, 입이 달린 귀엽고 예쁜 얼굴을 가진 상좌스님이 미소를 띠고 바라본다.

 ‘저리 맑은 얼굴이 있을까?’ 하늘에서 동자가 내려온 것 같은 모습에 한참 눈이 부셔 그냥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옷을 잘 입어서 나는 광채는 아니었다. 미향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마음에 쏙 들었다. 미향을 쳐다보고 자리에 앉기를 권하며 서 있었다. 밥상 위에는 집에서 가지고 올라온 반찬들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좁은 상 위에는 밥 한 그릇과 국 한 그릇에 수저 하나만 놓여 있었다.

 “스님은?”

 “저도 먹을 것입니다. 보살님, 어서 드십시오.”

 부엌으로 나갔다. 밥과 국과 숟가락을 들고 들어와 상 위에 올려놓으며,

 “스님도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마주앉을 것을 권하였다.

 낭원대사는 밥상을 앞에 놓고 앉아 있었다. 어제부터 이상한 현상이 낭원대사를 놀라게 하고 있었다.

 ‘이 무슨 변고란 말인가. 아직도 시험이 남아있단 말인가? 이 노릇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대사는 황망해하면서 아침 공양을 앞에 놓고 노려보고 있었다. 젊어 공부할 때 수도 없이 일어나는 욕정 때문에 고생하였던 일이 생각이 난다. 그 세월을 잊고 지낸 지가 언제인데 새삼스럽게 이러한 마음의 요동은 또 무어란 말인가? 몸의 구조가 심상치 않다. 무언가 요동을 치고 있다. ‘이 노릇을 어찌 잠재워야 하나? 쓰러져 가려던 고목나무에 새 잎을 틔우려는 건가?’

 어쩐 일인지 그것은 싫지 않은 감정이다. 미향을 본 후로 생긴 마음이다. 아직도 내게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았다고 부처님이 주는 과제인가? 이러한 혼돈 속에서도 그런 감정이 싫지 않은 것은 무슨 조화란 말인가. 속으로 웃어보기도 하지만 용트림처럼 살아나는 아랫부분의 감각을 억누르기 힘들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진한 감정은 미향을 처음 보는 순간부터 대사는 정신을 빼앗긴 것이다.

 미향은 서라벌에서도 이름난 기생이었다. 단 한 사람 최치원만이 그녀를 가질 수 있었다. 타고난 미모는 피부와 머리카락에 고스란히 미화되어 한 올의 티도 없는 피부가 그녀의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게 하였다. 며칠 동안 누워있었음에도 몸매에서 풍기는 향기는 그녀의 미모를 드러내 보이는 또 다른 매력이 묻어 있었다. 지금껏 절을 찾아오는 관리 부인들을 상대해 기도를 해 보았지만 이러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더욱이 나이가 들었음에도 말이다. 상좌스님이 공양 밥상을 치우러 들어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보살님을 오늘부터 기도에 동참하라 일러라.”

 밥상을 들고 나가는 상좌의 뒷모습에 대고 일렀다. 그것은 당연한 절차다. 절에 오는 사람은 의무적으로 기도에 동참하는 것은 법도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었다.

 미향은 부엌에서 먹은 그릇을 씻고 있었다.

 “보살님, 큰스님께서 오전 기도에 동참하라고 하십니다.”

 부엌을 살펴보니 그릇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제자리에 잘 정돈되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다져진 부엌 바닥은 윤기가 흘렀다. 남자가 사는 집이 어찌 이리도 깔끔할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씻은 그릇을 행주로 닦아 제자리를 찾아 올려놓았다. 이 곳에 기거하는 동안 스님들 밥은 자기 손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였다.

 아침 댓바람에 맑은 공기를 마시고 손가락 마디마디 감각을 살려놓아서 그런지 산사의 음식이 모두 입맛을 돋워주어 거뜬히 밥 한 그릇을 비우고 국이며 반찬을 깨끗하게 먹었다. 방에 들어가 손거울을 보며 얼굴을 만지고 머리의 비녀도 다시 꽂았다. 새삼스럽게 머리의 무게가 무겁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창포물에 머리를 감아 빗은 삼단 같은 검은 머리가 자신을 지켜준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었다. 허탈감에서 오는 회의인지는 몰라도 그리도 귀중하게 아끼고 가꾸어왔던 머리에 대한 의지가 한순간 허무하다는 생각으로 무너지는 것 같았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일어나 문을 열어보니 작은 스님이 책 한 권을 건넨다.

 “보살님께서 여기 계시는 동안 공부하시라는 큰스님의 분부십니다.”

 그리고 책을 펼쳐 공부할 곳을 알려주었다. 미향은 책을 받아들고 벽에 등을 기대어 방바닥에 앉았다. 허무가 엄습해오는 순간이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살아야 할 명분이 잡히지를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최치원을 만난다면 살아온 삶을 고스란히 그의 앞에 당당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몸의 세포들이 눕는다. 그녀의 몸도 스르륵 눕는다. 방바닥에 널브러진다. 눈을 감는다. 지금껏 한 번도 눈물을 흘리며 살았던 적이 없었는데 어쩐 일인지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엉망이다. 이러한 날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분은 무엇 때문에 왔을까. 죽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차라리 몰랐다면 이렇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을. 뜻 모를 미움이 북받친다. 단 한 번이라도 미워해 본 적이 있었던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니야! 동희가 있지 않은가. 목숨 같은 내 아들.

 내가 왜? 땅으로 꺼지려는 마음에 반박하여 일어나 앉는다. 여자의 몸으로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장사꾼들과 교역을 하지 않았던가. 이러한 어려움을 수없이 겪으며 살아오지를 않았는가. 그 강단은 어디가고 이렇게 무너진단 말인가. 그리할 수는 없다는 오기가 생겼다.

 미향은 기생이었을 때나 기방을 운영하면서 신라 왕실과의 친분이 있었던 관계로 작은 구멍가게로부터 시작하여 당을 오가는 보부상을 키우고 그들이 가져온 당의 물건들을 왕실이나 기방으로 연결하여 거래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보부 상인들과도 끈끈한 의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며 인간관계를 맺었다. 시간이 돈이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알게 되었고 시대가 바뀌면서 행상 무역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각 나라에서 들어오는 귀한 보석이나 금 같은 것은 왕실의 관리들 안방마님들이 재물로 농 안 깊숙이 간직하였다. 그리고 불경이나 유학서, 의학서를 들여와 그들의 자식들이 배울 것이라 최우선으로 여기는 값나가는 물품들을 상업의 수단으로 여겼다.

 한 시대를 풍미한 여인으로서 이미 떠나버린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비애로 무너진다는 것을 그녀는 용납할 수가 없었다. 하고자 하는 일들이 아직도 많이 있다는 결론이다. 무너지려는 자신을 일으켜 지난 날 살아온 삶을 회상하며 허리를 세워 자세를 고처 앉았다.

 방금 전 스님이 주고 간 책장을 무심히 넘겨본다.

 ’천수경’ 한문이 빼곡하다.

 

 도량천

 도량청정 무하예

 삼보청룡 강차지

 아금지송 묘진언

 원사자비 밀가호,

 

 해설,

 온 도량이 깨끗하여

 한 점 티끌 없사오니,

 삼보님과 천룡님네

 이 도량에 오시도다.

 내가 이제 묘한 진언

 받아 지녀 외우오니,

 대자비를 베푸시어

 가호하여 주옵소서.

 

 미향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구절이 생생하게 눈에 들어온다. 도량이라면 절인데, 아침 시간에 마당에서 솔잎을 주웠던 것이 이러한 깨달음을 주는가 싶었다. 그것은 한 순간의 일이 아니다. 평생을 살면서 집 주위를 다듬어 온 것이 절에서도 이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녀의 삶에 원동력으로 다가왔다. 해가 점점 짧아졌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몰려와 마당 귀퉁이마다 쌓인다. 솔잎도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마당을 쓸고 간다. 자고나면 일거리가 기다린다. 쓸어도 떨어지고 쓸어도 떨어지고 산 속의 가을은 그렇게 깊어만 갔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저녁이면 천수경을 읽는 재미에 시간이 잘 갔다. 허무하다거나,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은 사라졌다. 하루하루 마음이 즐거웠다. 차츰 절 생활이 익숙해졌다. 손에 물을 담그고 살지 않았던 미향은 기꺼이 스님의 공양을 맡아 하였다. 집에서 해주는 것만 먹을 때보다 손수 만들어 먹는다는 뿌듯함이 그녀를 행복하게 하였다. 몸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집의 일은 가끔씩 올라오는 인편을 통해 듣고 있었기에 걱정이 되지 않았다.

 

 소멸 되지 않는 역사

 명주 고을에 공사가 시작되고 남쪽에서부터 시작된 남대천 공사는 어른아이 할 것없이 분주하다. 처음으로 돈벌이에 나온 가족들은 하나씩 그릇을 들고 바닥의 흙과 모래 자갈을 호미와 괭이로 긁어모아 그릇에 이고 들고 날랐다. 둑을 쌓는 데 기초가 되는 나무로 짠 네모난 상자를 채우느라 분주하다. 관에서 책임자로 나와 있는 사람들은 매일같이 그들이 갖다 넣은 훍이 상자에 채워지면 확인하여 관의 도장을 손목에다 찍어준다. 하루 일에 대한 숫자를 그들도 잊어버리지 않도록 확인하기에 쉽도록 하였다. 그 도장의 숫자는 그들의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돈이 되었다. 아기를 업고 일하는 엄마, 엄마를 따라 나온 어린 것들도 신바람이 났다. 북쪽은 북쪽 관할을 책임지고 남쪽은 남쪽 관할을 책임지고 강 양쪽의 넓이 2.5킬로의 거리는 멀게만 느껴졌다. 중앙의 시장가가 반쪽이다. 그 중앙의 집들도 어수선하다. 거리는 더 스산하였다. 부를 상징하며 자리하고 있던 기와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그 자리는 공사판의 중심이 되어 사람들이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마을이 사라진 곳은 쟁기소리로 분주하다.

 오랜 기간 매일 만나 어울리며 일을 하다 보니 서로 꾀가 생겨서 관원들 눈속임이 시작되었다. 어찌하면 책임자의 눈을 속여 이익을 볼까 하는 얄팍한 마음이 생긴다. 관원의 눈에 띄어 주의를 받기도 하고, 책임자는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상자가 차지 않아도 한 표를 찍어주기도 하는 눈속임이 시작되었다. 그러한 일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무 이익도 받지 못하는 것이 분통 터지는 일이라며 눈을 부라리며 싸우려 덤비기도 하였다. 그러한 일들을 염려하여 책임자들의 공정성이 이행되어야 한다는 교육도 시켰다. 오래 걸릴 공사 기간 동안 나쁜 일이라도 생긴다면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이기에 그것을 중히 여기게끔 그들에게 알리고 서로 협조하는 마음으로 공사에 임하도록 이해를 구하기도 하였다. 공사 중에 사고나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기강을 다지기도 했다.

 전국에서 이재민의 물품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 마을마다 고을마다 전해지는 파발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대관령을 넘는 마차들이 아흔아홉 구비를 넘어올 때는 길고 지루하였지만 돌아가는 길은 희망으로 넘었다. 명주군에서 계획하고 있는 5개년 사업을 눈으로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돌아갔다. 하늘의 재해도 막을 수 있다는 인간의 노력을 현실로 보고 가기 때문이다. 계획을 실현해 나가는 명주군의 책임자 아찬의 지도력에 감탄하며 대관령을 넘어가고 넘어왔다.

 산사의 밤은 깊고도 길다. 저녁 공양을 마친 지도 몇 시간이 지났다. 낭원대사는 저녁 예불을 마치고 참선에 들었다. 아무리 부처님법이 깊어 무위의 자유로운 몸일지라도 가슴으로 일어나는 사랑하는 마음의 실체를 알 수가 없다. 도무지 밑도 끝도 없이 일어나는 성욕은 나이와 상관없이 지워야 하고, 일어나고 일어나도 지워야 하는 것이 부처님 법에서 제일 순위에 속하는 공부의 대상인데도 몸 떨림은 고문 중의 고문이라 예상하지도 생각지도 못했다. 낭패다. 평소 몸의 생식구조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어 감각조차 느끼지 못하였던 것이 아니던가. 생기발랄한 바람이 팽팽하게 들어갔다가 빠지고 들어갔다가 빠지고 참으로 거북스럽기가 민망하다. 다행히 넓은 승복이어서 나타나 보이는 일은 없겠지만 특히 저녁이 되면 선에 들지 못하고 정신이 산만하여 서성거리기가 일쑤다. 연신 ‘이~ 뭐꼬~오, 이~ 뭐꼬오’를 반복한다.

 미향의 방은 뒷채에 있었다. 그 곳에 발길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저녁만 되면 마음은 그 곳으로 가 있다. 하얀 속적삼을 풀고 하얀 속바지도 풀고…, 상상의 끝은 어딘가? ‘이~ 뭐꼬오, 이~ 뭐꼬오’ 헛기침을 해댄다. 고무풍선에 바람 들어간다. ‘이 뭐꼬, 뭐꼬~’ 한다. ‘에이~ 모르겠다’ 벌떡 일어난다. 방문을 열고 살금살금 뒷 채로 갔다. 이미 깊어진 밤은 조용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어차? 미닫이였지. 문을 잡고 살짝 밀었다. 달빛에 방 안이 환히 보인다. 그녀는 이불을 겨드랑이에 끼고 옆으로 누워 자고 있다. 가슴이 펄떡거린다. 살금살금 가까이 갔다.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순간 ‘에라~ 모르겠다!’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으아~~’

 달빛인지 새벽인지 문이 환해졌다.

 ‘이 노릇을…’, 이불 속에서 나온 낭원대사는 황망히 방을 나왔다. 누가 보지나 않았을까? 두리번거리며 기거하는 문 앞 방문을 열려다가 ‘아차 아니지’ 다시 돌아 선방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갔다.

 ‘이게 뭐야. 아하~ 미친놈! 어이구, 미친놈.’

 낭원대사는 좌선하고 있는 자기 모습을 보고 정신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큰스님, 아침공양 드십시오. 여기서 밤을 새셨나? 스님! 공양 드십시요!”

 미향은 여전히 마당에 나와 솔잎을 줍고 낙엽을 쓸고 하였다. 이제 그만 내려가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왕 올라왔으니 며칠만 더 있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천수경을 배우는 것도 재미있고 기도에 들어 목탁소리에 따라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상좌스님이 예불을 다 마쳤는데 낭원대사는 법당에 올라오지 않았다. 미향은 청수그릇을 비우면서,

 “큰스님은 몸이라도 불편하신가요. 오늘 예불을 안보셨네요?”

 “네, 오늘은 제에게 일임하셨어요.”

 미향은 청수를 다 비우고 촛불을 껐다. 타고 남은 초를 칼로 예쁘게 잘라냈다. 이틀에 한 번씩 법당을 물걸레로 쓸고 닦았다. 그럴 때마다 올려다 본 부처님의 미소가 포근하게 느껴졌다. 절밥을 먹다보니 마음으로 전해지는 지혜가 있었다. 대웅전보다 조금 위쪽에 삼성각이 있다는 것을 지혜로 부처님이 알려주셨다. 그 곳에 올라가 청소를 하기도 하였다.

 ‘혹시 서방님도 이런 곳에서…’ 그런 마음도 들었다. 호랑이가 그려진 탱화를 바라보았다. 흙 사이로 돌계단을 쓸어내리다가 다시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한심하여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난 밤에 천수경을 읽다가 일찍 자리에 들었다. 잠결에 묘한 기분을 느꼈다. 달거리가 끝났을 때의 그런 기분이었다. 최치원이 꿈에 보이던 날처럼 그런 행복감이 있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꿈을 꾼 것은 아니었다. 계단을 다 쓸고 내려와 싸리비를 들고 절 마당 밖으로 나왔다. 경사진 곳으로 돌계단이 있었고 그 아래까지 깨끗이 쓸었다. 양 옆에 떨어진 낙엽과 솔잎이 그녀 손 끝에서 수북이 쌓여간다. 힘은 들지 않았다. 찬바람에 손등이 거칠어지고 있었지만 상관이 없었다. 가지고 온 화장품을 두고도 바르지 않았다. 날이 밝으면 의례적으로 거울 앞에 먼저 앉아 얼굴의 피부를 다독이고 매만지며 살아온 만큼 조금씩 변하여 가는 자신을 보며 그리 애달퍼하지도 않았다. 부엌에서는 따뜻하게 데워진 물에 설거지도 하고 두 스님의 옷도 빨았다. 양지에 말려 이튿날 풀을 먹이고 다듬고 손질하여 다리미로 깔끔하게 다려 옷장 속에다 개어놓았다. 그 날은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신기하였다. 이러한 일들을 한번 경험해 보라고 서방님이 다녀가신 것은 아닌지 모든 것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도 없다. 명주군에는 남대천 공사의 일에 분주할 것이어서 돈을 벌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동편 공사현장에 몰려있을 것이다. 한동안 절에 올라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쌀과 옷가지며 반찬들이 올라올 때면 편지도 한 통 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있어도 좋으니 몸을 잘 추스리고 내려오라는 편지였다.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다.

 예불할 때를 빼고는 스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방이라도 닦을라치면 작은스님이 미리 일러둔다.

 “보살님, 큰스님 방과 제 방은 그냥 두세요. 제가 닦을 겁니다. 다른 방은 닦아도 됩니다.”

 돌아서면 떨어지고 돌아서면 떨어지고 가을 내 산속 생활은 나뭇잎 쓰는 것이 일이다. 그것이 곧 수행의 길이고 마음 닦는 길이기에 그만큼 기쁨도 있다. 장독이 햇볕에 반짝인다. 그것도 작은스님의 수행 도구이다. 어찌보면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다. 조용히 대화해 본 적은 없지만 부모는 있는지 형제는 있는지도 물어보고 싶었다. 먹고 살 길이 없어 중이 되는 길을 택해 산으로 들어온 사람들도 많았다. 형제가 많다보니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함도 종종 있고, 스님이 되고 싶어 들어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부처의 세계가 얼마나 오묘하길래 자식을 버리고 가족을 떠나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신선이 된 최치원은 생각이 곧 몸담는 곳이고 생각이 곧 행이니 그는 며칠동안 한 곳에 머물러 있다. 강원도 노추산 줄기에 있는 이성대 사당에 머물면서 그 산세를 감상하며 산신과 신선들이 모여 바둑을 두느라 그야말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그 곳에 매료되어 지내고 있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그들은 앉아있는 곳이 집이며 즐거움이다. 권력과 부귀만 탐하여 버둥거리는 오염된 세상, 그런 것이 없는 청산에 살리라 했던 대로 노추산은 강원도 강릉시, 정선군, 평창군의 3개 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아직 사람들의 발길에 오염되지 않아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강원도는 본래 높은 산이 많기 때문에 첩첩산중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노추산은 특히 산골 중의 산골에 위치한다.

 노추산이란 이름은 이 산의 동쪽 사달산에서 수도하던 설총이 공자가 태어난 ‘노’나라와 맹자가 태어난 ‘추’나라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전해진다. 네 명의 득도자가 나왔다는 전설이 있는 사달산에는 의상, 설총, 율곡 등이 수도하여 도를 통했다고 한다.

 서쪽 주능선을 향해 가파른 숲길이 나 있다. 능선마루 싸리나무 숲길로 올라가다 보면 아름드리 참나무, 단풍나무, 다래덩굴, 장송, 전나무가 무리지어 있다. 숲이 끊기면서 하늘이 환하게 뚫려 있는 너덜지대를 만난다. 왼쪽 암벽 위로는 이성대(사당)가 바라보이며 전망도 좋다. 너덜지대를 지나 암자 왼쪽 쌍룡바위에 올라선다. 깊은 골짜기의 경관이 가히 일품이다. 이성대 바로 밑에는 약수도 솟아난다.

 암벽 위 너덜지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벽 사이에 물들어 있는 단풍들이 화려한 색감을 드러내 눈을 뗄 수 없다. 여기도 좋고 저기도 좋아 신선이 된 최치원은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다. 더욱이 멀지 않은 곳에 애틋하게 그리운 여인이 있는 곳이다.

 사랑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그 많은 세월을 산 속에서 외로움을 참으며 백 번 천 번을 만나고 싶었던 여인. 그리움을 수행으로 삼아 목숨 걸었던 수행의 길. 살아 인연이 다함을 죽어서 그 인연에 연연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자유로운 몸이 되어 가까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멸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바람결에 다시 느껴보고 싶은 사랑이 가슴이 설렌다거나 하는 경계는 아니다. 다만 가까이서 지켜보기 위함이라. 신선들과의 놀음도 그에 버금가는 것인 줄을 몰랐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거리는 가깝고도 먼 것임을 경계의 규칙이 존재하는 이상 다른 미련은 없다. 그녀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부처의 길을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눈에 알아봤다.

 법력이 깊어 보이는 낭원대사가 머물러 있는 곳의 보현사를 그녀에게 알려주려고 잠시 그녀의 몸에 아픔의 기운을 넣어주었던 것이다. 당연히 그녀의 몸은 회복되었고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미향이 심신의 안정을 되찾으면 그 곳을 떠나가리라 생각하였다.

 

 인간과 신의 경계

 이성대의 능선마루에 보름달이 높이 떠 있다. 높고 깊은 곳에도 칠흑 같은 어둠을 걷어 고르게 비추어 주는 밝은 밤의 풍경을 바라보는 재미는 가슴을 비웠음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달밤의 풍미에 젖어 저 아래 보현사 마당을 보고 있었다. 고요가 보현사 마당을 지나 미향이 자는 창문까지 어린다. 최치원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그녀가 자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밤이 깊었기에 눈을 거두려는 순간 대사의 방에서 나온 그림자 하나가 달빛을 피해 미향이 자고 있는 방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저것이 무엇인가? 그림자는 미향이 자는 미닫이를 밀고 들어가는 것을 무심히 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 허허.”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위 모서리에 내려쳤다.

 보현사의 밤은 고요 그 차체다. 산에서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잠들었거나. 숨을 죽이며 보현사 뜰을 지킨다. 새소리 짐승소리 산천이 모두 잠든 고요한 밤. 대사의 방은 여전히 고요하고 대사의 몸은 한쪽에 막대기처럼 꼿꼿이 앉아있다. 눈은 아래로 깔려있고 언제부터 그리 있었는지 몰라도 밤이 깊었다. 여전히 달빛이 문틀 사이로 방 안을 엿본다.

 미향의 방문이 열렸다 닫힌다. 잠자고 있는 듯 고요한 밤이지만 깨어있는 것들도 있을 것이다. 낭원대사는 매일 밤 참고 참아도 참지 못하는 마음을 날이 새면 후회하고 후회하였다. 누구도 보지 못했다해도 양심을 꾸짖어봐도 밤이 이슥히 깊어지면 미향의 방 미닫이가 열렸다 닫힌다. 밤의 고요만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대사의 숨소리는 고르게 방안을 덮는다. 미향은 여전히 옆으로 누워 잠들었다. 하얀 적삼사이 속살이 드러나 있다. 아래로는 발목과 정강이가 달빛에 익어 아름답게 이불 밖으로 드러나 있었다.

 이불 속으로 들어간 대사의 숨소리는 방 안 공기를 술렁이게 한다. 이불을 밀치고 대담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그녀의 허리께로 간다. 적삼을 풀고 속바지를 풀었다. 대사의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머리에서부터 차례로 속살을 더듬어 내려간다. 그리고 봉긋한 젖무덤으로 입술이 옮겨간다. 숨가쁜 행동은 바지를 풀고 아래로 아래로 뜨거운 입김을 거칠게 뿜어낸다. 그녀는 편안한 자세였다가 어느 사이 반듯하게 누워있었고 숨소리 고르게 잠들어 있었다.

 이성대 너덜지대에 별이 쏟아진다. 허공을 담았던 산천은 검어졌다가 밝아졌다가 변덕스럽다. 무위 자유의 몸에 불꽃이 번쩍하며 주위로 검은 바람이 일고 있다. 육신 없는 몸에도 예외 없이 손마디가 불끈거린다. ‘휘이~익’ 고요가 흔들린다. 구름 한 점 걸려있지 않은 봉우리들 사이를 지팡이를 타고 아래로 내달린다. 한순간에 보현사 절 마당 지붕 위에 내렸다.

 “이 못된 중놈, 나오너라!”

 무아에 빠져 그녀의 몸을 덮고 있던 대사의 귀에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대사의 몸놀림이 멈칫한다.

 “당장 나오지 못할까!”

 대사는 진입하려던 몸짓에 이상이 생기는 것을 느끼며 행하려고 하던 짓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달빛은 마당에 개미가 기어간다 해도 다 보일 듯이 밝았다.

 놀라 마당 한가운데로 걸어나온 낭원대사는 별이 총총한 하늘을 살폈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9척의 긴 그림자가 대사 앞에 나타났다. 용머리 지팡이가 대사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치려는 순간 대사는 하늘로 솟았다. 그리고 법당으로 날아들어가 세워둔 주장자를 손에 쥐었다.

 “이 야심한 밤에 이 어인 행패시요!”

 “무엇이! 행패라고! 이 못된 중놈 같으니라구!”

 “무엇을 보셨는지는 몰라도 당신이 세상일에 무슨 참견이요.”

 “무어라, 세상일에. 네 행동이 정당하단 말이냐!”

 “아무튼 당신은 이미 세상과 인연을 끊은 몸이고,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당신 관할이 아니니 돌아가시오.”

 “무엇이? 이 못된 중놈 같으니라고.”

 야 아 압!-야 탁! 타 탁!!

 일촉즉발, 내려치는 용머리 지팡이를 대사의 주장자로 막았다. 다시 허공으로 날던 최치원의 용머리 지팡이가 대사를 향해 내리치려는 순간 대사의 주장자가 허공을 차고 올라 막았다. 최치원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알고 또 한 번의 시도로 대사를 내리치려 하였지만 대사의 주장자가 막았다. 그들은 서로 몸을 날려 허공에서 주장자와 용머리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깊은 밤 그 기압 소리에 놀란 산짐승들은 벌벌 떨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기합소리만 요란한 주장자와 용머리 지팡이는 고요만 깨웠을 뿐, 산이 쩡쩡 울리도록 보현사 둘레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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