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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5화
작성일 : 19-11-01 20:47     조회 : 275     추천 : 0     분량 : 1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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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져 터전을 잡을 사람들은 어차피 가야 한다면 땅이 정해지는 대로 짐을 꾸려 새로운 자리에다 움막을 짓고 생활을 시작할 사람도 있었다. 관에서는 마을이 비워지는 대로 시작할 부역에 대해 마을 벽에 공고를 붙였다.

 “백성들은 마을이 비워지는 대로 새로운 물길을 내기 위하여 둑방을 쌓을 것이니 집안 일들을 대충 정리하고 곧 시작하는 부역에 나오기 바란다. 부역을 나오는 사람들은 관에서 곡식을 품값으로 내줄 것이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부역에 나와 일을 하도록 하라.”

 추운 겨울을 어찌 보낼 것인가 걱정하던 사람들은 방을 보고 한 가닥 희망이 생겼다. 명주 관아는 일이 순조롭게 되자 중앙 정부에 서찰을 보냈다.

 ‘명주군이 모두 물에 잠겨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고 생필품이 모두 물에 떠내려가고 굶주림이 극에 달하였습니다.’라는 어려운 사정을 적었다. 그리고 왕건에게 아뢰었다.

 “이 곳의 내천 물길이 북쪽의 호수와 함께 있어서 비가 많이 올 때나 장마철마다 습관적인 침수지역으로 피해가 날 수밖에 없도록 지리적 환경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궁핍한 살림이 편할 날 없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명주군 관아에서는 북쪽으로 나있는 내천의 물줄기를 남쪽으로 이동하려는 계획을 세워 이행하려고 합니다. 그러한 계획이 실현되어진다면 명주군 관아에서는 자연재해로부터 벗어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대 고려 대왕이시여 저희 명주군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여 왕실의 재정으로 명주군을 도와주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왕실에서 도와주신다면 크나큰 광명으로 왕실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그러저러한 확신을 글로써 강조하며 왕명으로 윤허하여 달라는 간곡한 부탁과 이재민을 위한 구호물품도 절실하다고 적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부터 명주군의 책임자로서 왕에게 명주관아의 모든 보고를 써왔던 것이라 어렵지 않았다. 이 기회에 중앙정부의 재산을 얻어오겠다는 깊은 뜻이 있었다. 제일 빠르고 날렵한 말과 병사를 선출하여 파발을 띄워 서찰을 왕실에 전달하라는 명을 내렸다.

 태조 왕건도 명주군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이 있었다. 고려 초에 김순식의 반란을 억제하고 고려 왕실의 신하로 높은 벼슬을 하사한 정황으로 보더라도 명주군에 대한 왕건의 마음은 깊었다. 그리고 고려의 위상으로 첫 과거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오른 애숭이 동희에게 머나먼 천리 길 강원도로 보낸 것에 대한 고마움에 지금의 아찬 벼슬까지 내려 주었다. 그 혼란한 시기에 왕을 대신하여 목숨을 건 책사를 자원해 준 동희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경의 왕실에서는 아찬의 서찰을 받아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어려운 시기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책임자로서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임금에 버금간다 하여 기특하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길을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기발한 과학적 발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을 때, 그런 마음을 가졌다는 것은 다시는 하늘이 주는 재해를 겪지 않겠다는 계책이 아니더냐. 그 발상 자체가 기특하지 않으냐고 왕건은 크게 기뻐하며 궁궐회의를 하였다.

 “짐이 직접 가서 그 상황을 보고 백성을 위로하고 싶지만 이 곳의 정세가 조석으로 변하는지라 가보지 못함을 안타까이 생각하여 정세가 안정되면 찾아가 보리라!

 여봐라! 강원도에 보낼 금전과 곡식, 소금, 옷감을 넉넉히 챙겨 수레에 실어 보내라. 그리고 서찰을 써 줄 것이니 군졸과 함께 명주군 아찬에게 전하여라!”

 부하들에게 말했다. 그리하여 이재민을 구할 수레에 담긴 구호품이 명주 관아에 들어오고 있었다.

 

 가시연꽃의 사연

 지난날 가끔씩 어머니가 보고 싶으면 경포호수 둘레를 돌아보곤 하였다. 습지 남쪽으로 가시연꽃이 피어 있었다. 가시연꽃의 잎사귀는 부채 모양으로 여인의 치마폭처럼 넓게 펼쳐져 습지를 덮었다. 연꽃처럼 웃자라 피는 것이 아니고 여인의 치마폭을 펴놓은 것 같은 연잎 위에 드문드문 피어 있는 요염하고 아름다운 꽃이다. 총체적으로 물 위를 덮고 있는 가시연잎은 오롯이 드문드문 피어 있는 가시연꽃을 보호하는 모성애의 보호막으로 습지를 덮고 있다. 가시연꽃의 잎은 기존의 연잎과는 종류가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 위로 개구리가 뛰고 메뚜기가 뛰고 잠자리가 난다. 부채살 같이 넓은 가시연잎 위에 여기저기에 빨간 가시연꽃을 피웠다. 가시연꽃은 연꽃과 달리 빨간 석유 꽃처럼 꽃잎이 좁고 뽀족하여 빨간 꽃잎이 겹겹이 색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있다. 신기하여 들여다보고 있을라치면 볼수록 아름답고 예쁘다. 꽃이 피는 계절에는 자주 찾아왔었던 곳이다. 귀하디 귀한 가시연꽃은 경포호수 습지에서만 자생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번의 물난리로 진흙 속에 묻혀버렸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한 가시연꽃의 자생지인 습지가 이번 호우로 땅속으로 사라졌다.

 호수를 끼고 흐르던 북천 강물은 사라질 것이다. 호수의 옆으로는 좁은 농로를 만들어 농수만 흐를 것이다. 수없이 밀물에 잠겨야 했던 경포호수는 오롯이 드러나 본연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이다. 북 내천을 받아 합류하였던 강문바다는 문이 닫힐 것이고 작은 도랑으로 통과하는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지점이 될 것이다. 경포대는 산봉우리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비가 조금이라도 오면 경포호의 물이 범람하여 배를 타고 건너야 마을이며 경포대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제 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김주원의 왕족이 누렸던 남쪽의 옥답은 강물에 밀려 사라져 갈 것이다. 그들은 대관령 가까운 북촌의 오죽헌이나 바다가 가까운 초당에다 새로운 터를 잡게 되었다. 명주관아의 기본 규칙에 의하면 관리들의 토지도 늘려준다는 약속으로 이전을 전개하였고 그들도 그렇게 알고 이전 결심을 하였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것을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다. 타당하지 않으니 명주관아 아찬 나리는 이 문건을 다시 검토하여 결정하지 않는다면 인정할 수 없다는 군민들의 민원이 빗발치듯 접수되면서 명주관아에서는 예상 밖의 일을 접하게 되었다.

 천 년의 권세로 신라의 녹을 먹던 권세가들의 부귀는 끝났다고, 새 고려의 정책을 따라달라는 그들의 시위가 작은 마을에서부터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정부로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요구가 타당하므로 관에서 세운 원칙을 깨고 기존 평수의 토지만 이전하는데 가질 수 있다는 원칙을 세우게 되는 이변이 생겼다.

 고을 전체의 기름진 땅은 대부분 그들이 차지하고 지금껏 풍요로운 삶을 살아왔다는 촌민들의 반란에 관아의 공평한 나눔에 대하여 아무도 이의를 달고 나서지를 못하였다. 새 나라의 토지개혁을 들고 나오는 데는 할 말이 없었다. 그것은 새 정부가 하고자 했던 가난한 백성들의 생활을 안전하게 보호할 의무를 시행하는 계기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토지분배는 제도에 따라 정부가 정하여 주는 대로 합당하게 한다는 대답을 받아내었기 때문에 누구도 반발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았다. 세도가들도 시대적 흐름을 대변할 명분이 없기에 설 자리를 알고 집안의 세간을 옮기는 데 시간을 활해 하였다.

 이재민들을 돕고자 미향의 분부로 신라에 다녀온 일행은 솜과 무명을 수레에 싣고 대관령을 넘어 도착하였다. 미향은 버선발로 나가 그들의 수고를 치하하고 수레에 싣고 온 물건을 풀기 시작하였다. 솜의 부피를 적게 하기 위하여 끈으로 묶고 또 묶었다는 것을 알았다.

 비가 그치자 순식간에 물이 빠져나가고 무엇부터 손을 써야 할지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 중에 떠내려간 짐승들도 있고 나무가 부러지고, 바위가 구르고, 흙이 패이고,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들 골골에서 이재민의 피해가 접수되었다. 통곡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재산 피해는 헤아리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불어나는 피해가 관아에 접수되었다. 관아에서는 대책본부를 설치하고 이재민의 구호대책을 세웠다. 한창 자라던 곡식들이 몽땅 물 속에 잠겼다. 사람들은 분주하게 쓰러진 곡식을 흙에서 건져내기 위해 논밭으로 나갔다. 흙으로 덮여있는 광경은 눈으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였다. 그래도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하늘을 원망하며 마냥 손놓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하기에 여자들은 집안에서 세간을 씻고 남자들은 논밭에 나가 살려볼 수 있는 곡식들을 일으켜 세우느라 허리가 휘었다. 점점 피해가 늘어나는 것을 집계하여 개경으로 다시 파발을 띄웠다.

 왕실은 전국에 왕명을 내려 구호대책으로 재난을 당해 어려운 강원도를 위해 무엇이든 헌납하라는 파발을 지방에 내려 보내 이재민을 도울 것을 왕명으로 전달하였다. 그것은 전국으로 퍼져 전달되었고 대관령을 넘는 수레가 전국에서 줄을 이었다. 이재민을 도울 구호미와 헌옷가지며 그릇들이나 농가에 필요한 농기구가 명주군 관아 창고에 쌓였다. 우선 가재도구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이불이나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사람의 발길이 뜸했던 대관령의 아흔아홉 구비는 끝없이 이어지는 말 발자국으로 넓혀졌고 말을 탄 사람이나 무거운 수레바퀴로 인해 대관령 좁던 길도 다져지며 넓어졌다.

 구호미를 싣고 대관령을 넘어 온 사람들에게 관아에서는 후하게 대접해 보내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곧 물길이 바뀌어 진다는 데 대해 동쪽과 북쪽의 사람들은 장마가 쓸고 간 황망한 곳을 버리고 이사하랴, 집을 지으랴, 명주군은 그야말로 난리 통이다. 다음 해에 또다시 물난리를 겪으면 안된다는 굳은 의지가 더욱 강하게 대두되는 시점에서 전국에서 보내주는 구호미 파악에도 소흘하지 않았다. 속속 들어오는 5개 관내의 이재민 피해액을 파악하느라 난리를 겪고 있었다.

 아찬의 벼슬은 명주군을 대표하는 책임이 무거운 벼슬이어서 이러한 큰일을 감당해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라 밤낮없이 연구하고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면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피해가 늘어나고 복구사업을 한다 토지분배를 한다 하여 시급한 북쪽 일대와 동쪽 일대를 시찰하면서 바쁜 일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미향은 아들이 이 난국을 헤쳐 나가는 데 버거워할 것 같아 병이라도 나면 안 되기에 신경을 쓰고 아들 건강에 마음을 쓰도록 가족에게 명령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을 잠시 접어두고 옷을 만드는 데 시간을 보냈다. 행랑방을 치우고 집안을 돌보는 사람들과 모자라는 인력은 날품을 파는 사람들을 수소문하여 의식주를 해결해주면서 바느질일을 돕도록 하였다. 재봉틀이 한 대뿐이어서 재단해 놓은 옷감을 솜을 놓아 누비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큰 강이 새로운 곳에서 흐를 수 있도록 파고 메우는 공사가 마무리되려면 몇 달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생각하여 차분히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하였다. 늦은 가을에나 시작이 될 듯하여 그사이 백 벌이 넘어야 할 옷을 만든다고 하여도 모든 사람을 다 줄 수는 없을 것이기에 시간은 촉박하였다.

 장마 지나간 흔적이 아름아름 사라지는 들에는 어느덧 가을이 시작되는 바람이 불었다. 사경을 헤매던 곡식들은 인간의 손의 위대함을 대변하듯 새롭게 치유하는 바람과 햇볕이 한몫으로 도왔다. 농민들은 매일 논밭에서 살았다. 허리가 부러진 벼는 서로 묶어세우고 밭이랑이 흙으로 쌓여있던 곳은 물이 잘 빠지도록 물길을 만들고 포기하지 않기를 쉼없이 하였던 것이 어느 정도 효과를 봐 이제 제법 벼이삭과 옥수수 통이 볕을 받아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보고 허리를 펴기도 하였다. 모든 것을 손과 발로 만들어 낸 결실이었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삶이 이러한 행복을 맛볼 수 있게 하였다는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 관아의 책임을 맡은 아찬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어린 나이에 신라에서 머나먼 강원도로 벼슬을 받고 오면서부터 그의 소문이 무성하였다. 새 나라역사를 대변하는 역할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다. 생활은 언제나 청렴하게 정도를 지켰고 신라의 왕족이라고 하였던 명주 군왕의 세력을 통합하는 데에도 힘을 다했다. 명주 군왕의 시대는 끝났지만 강원도의 위력은 새 정치 고려왕국에도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러기에 고립되어지지 않은 옛 이름 하슬라의 위상은 전국으로부터 새롭게 인식되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살기 좋고 인심 좋고 경치 좋은 동해안으로 구경 오는 선비들이 늘어나고 곳곳에서 시와 풍류를 즐기려 오는 선비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에 유토피아 같은 동해의 깊고 맑은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인재가 태어나고 세상은 그렇게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언제나 세상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여 살게 마련이다. 과거의 내가 현재에 살고 미래의 내가 오늘의 내가 되어 사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다.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과와 복의 미래가 있어 현재에 있는 것이다. 전생의 일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알고자 한다면 현재의 삶에서도 얼마든지 과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든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한 생각의 능력을 키운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오랜 연습이 필요하다. 악과 선이 떠난 자리 악이 선을 지향하고 선이 악에 물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악이 될 수 없으며 영원히 선도 되기 어렵다. 그러기에 악한 마음이 충만할 때 악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공부를 하게 하여 선한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만약 악의 경계를 소멸시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이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충동을 잠시 머물게 하는 기술이 중도에 서게 된다. 옳지 않은 것에 동조하지 않는다면 그 순간 미래를 만들어 가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데 확신하게 된다.

 세상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연습하여 가다보면 좋은 생각이 늘어나고 살기 좋은 세상에 자신을 이기는 일이 스스로 기쁨을 만들고 평생 공부하는 즐거움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내려앉으려는 삶, 위로 오르려는 삶, 모두가 자신의 마음에서 만든다는 걸 알게 된다.

 이론이야 어찌되었건 삶은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마음이 조화를 이루어야 삶의 가치가 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 마음대로 되느냐, 고 한다면 사실이지만, 노력하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이론은 삶은 곧 내가 만들어가는 예술품이니까 어떠한 경우에도 예술은 반복의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치원도 오랜 참선공부를 통해 마음을 항복받은 이후 영원히 죽지 않는 부처의 길을 완성했다. 바람과 구름과 나무들의 자연 속에서 그들과 함께 자연과 하나 되는 반복의 수행이 끝인가. 그가 할 일이라고는 공부밖에 더 있었으랴. 그 수행의 결과는 그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깊었다. 모든 것을 세상에 나와 전해야 마땅하거늘 하늘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늘의 자손으로 세상에 왔지만 시대적으로 나라의 주춧돌이 되지 못했다. 시련은 그의 꿈에 동조하지 못하였다. 투쟁하지 않는 자는 운명을 바꾸는 데 익숙해질 수 없다. 산으로 들어가 모진 외로움과 원망과 굶주림을 참으며 지나왔던 세월은 뼈를 깎는 시련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 승리자가 되기 위해 나를 버림으로써 긴 여행을 끝내는 자가 되었다. 아무리 도를 얻었다 해도 하늘의 허락이 없다면 인간과 함께 할 수 없고 추방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공부를 마친 최치원은 신라 백성의 안위를 지키며 살겠다는 새로운 원을 세웠기에 그것을 위한 준비는 끝났다.

 신라의 기둥이 되고자 했던 지난날의 헛된 꿈은 하늘이 허락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지만 새로운 세계 선의 경지에서 바라보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꿈을 지향하여 괴롭다. 하였는가. 어리석음을 가늠하게 되었다. 어리석음은 한번으로 족하다. 그러한 야심은 공부하는 데 크나큰 오기로 발생하였다가 인간과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을 천명하였다.

 나라의 수호신이란 인간을 사랑하는 더 큰 연민의 정이 충만할 때 영원불멸의 자리, 그 길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몰골은 산짐승처럼 머리와 수염이 얼굴을 가렸고 옷은 입었다고 하나 그 모습으로 마을에 나타난다면 모두 놀라 괴물로 오인되어 매 맞아 죽을지도 모르는 형상이다.

 최치원은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어스름한 달빛에 그림자처럼 마을 가까이 내려갔다. 처음 입고 있었던 옷과 갓을 길 옆 나뭇가지에 걸쳐 놓았다. 그리고 신라 궁궐을 향해 세 번 절을 하였다. 눈물이 검은 얼굴을 타고 내려온다. 당에서 있었던 일들이 회전되어 다가온다. 신라로 돌아온다는 기쁨이 얼마나 컸던가.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도 어머니에게 불효한 죄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을 부모님에 대한 불효가 새삼 그의 가슴을 때린다.

 ‘아버님, 어머님, 용서하십시오. 살아생전 한번 찾아뵙지 못하고 지금에야 인사를 드립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식솔들에게도 용서를 빌었다. 제일 큰 죄는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신라의 백성으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와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지 못한 죄가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참회의 기도가 되었다. 인간으로 다시 볼 수 없는 고향을 향해 안녕을 고하고 있는 것이다. 일어나 산으로 들어갔다. 캄캄한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짐승들이 반겨주고 살펴주고 먹이를 챙겨 주었던 바위 틈 사이에 동굴 같은 집과 나무들 골짜기 물 흐르는 소리, 새벽안개 속에서 밝은 태양이 떠오르듯 그를 기다려주는 검은 산, 옷을 벗으려는 한 인간의 이별의 순간을 슬퍼한다. 바람이 밀어주고 바위가 비켜주는 어두운 밤 무수한 별들이 밝혀주는 길을 걸었다. 지리산 제일 높은 곳으로 달 바위까지 가리라. 참선을 하며 앉아 있던 곳이 달이 쉬어간다는 달 바위라고 하는 곳이다. 최치원은 남아있는 힘을 다 쏟았다. 산천은 온통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지리산을 붉게 물들이는 계절 4월이다. 깊은 골 남아있는 눈이 거뭇거뭇 보기 흉했다. 그는 마지막 길을 떠나는 것이다. 떠나야 한다는 시간을 오래 전에 알고 있었다. 이루지 못한 꿈이 한으로 남아있다거나 가족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거나 그러한 정은 이미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지리산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에 지리산 한 곳에 몸을 벗어놓고 짐승들의 먹이로 넘겨주기로 마음 먹은 지 오래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잘못 삐끗하면 그대로 굴러떨어질 험한 산이다. 더구나 캄캄한 밤에 발 딛는 곳이 위험하고 위험하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얼마를 더 올라가야 하는지를 마음으로 다 알 수 있기에 오르고 있었다. 정신이 혼미하다거나 몸이 휘청거리지도 않았다. 발이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오랜 산중생활은 지리산의 신들과도 소통하며 살았다. 외롭지 않았고 그들과 소통이라 하지만 함께 지냈다고 해도 말할 수 있는 세월이 갔다. 산신들과 지내면서 산신도 인간 세상의 사회처럼 여러 종류의 신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녀들이 섬기는 신, 조상을 지배하는 신, 나무 신, 인간 사이에 자기를 과시하려는 신들은 인간이 잠시만 눈을 돌려도 금방 화를 입히려는 못된 근성을 가지고 있는 신들이 많았다.

 최치원은 지리산을 지키는 제일 어른의 신과 그 수하들의 호위를 받고 다녔다. 이제 세상을 등지고 나면 그 어른의 뒤를 이어 지리산을 지키는 수자로 앉게 된다. 최치원의 학문과 재주가 아무리 뛰어났었다 해도 도를 가진 것만 못하다. 최치원은 산을 수렴할 도를 가졌고 그의 수하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산신의 세상은 아직 하대의 세상이라 산신 중에도 욕심을 발하는 세력이 있었지만 최치원은 이미 그들의 심의를 거친 상태다.

 고려시대에 접어들면서 고려는 또한 불교국가로서 불교의 가르침을 정책 전반에 반영한다. 불교 창시자인 석가모니도 당연히 필요했을 것으로 보인다.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도 이 시기부터 산신의 모습으로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마야부인은 많은 부처님의 어머니시다. 하늘의 인재 최치원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기에 지리산에 잠시 내려와 산신으로 있다가 최치원이 속세와의 인연이 다함과 동시에 그에게 산신의 자리를 물려주기 위하여 산신의 큰 어른으로 최치원과 항시 소통하고 살펴주었다는 것을 최치원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역사의 시작

 명주군 관아의 재해대책 본부에서는 군졸들을 인솔하여 남쪽 북쪽으로 이사를 가려는 사람들을 돕는가 하면 재해가 큰 집을 찾아 물에 잠겼던 가재도구를 물로 씻어주기도 하며 이재민들이 먹을 생필품을 나눠 주어 고통을 덜고 있었다. 두 달 여 지나니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이 되었다. 이사를 갈 사람들은 그 곳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관에서는 곧 시작할 남대천 공사를 서둘러야 한다는 것을 알리고 벽마다 방을 붙였다.

 “가산이 정리된 가정은 남대천 공사에 나올 차비를 하고 모월 모일까지 10살 이후의 아이, 어른할 것 없이 공사장으로 나와 부역을 하기 바란다!”

 방을 본 사람들은 마음이 바빠졌다. 돈벌이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랏님 덕에 나팔 분다고, 공사가 시작되면 금방 끝나지 아닐 터 흙과 자갈 모래를 쌓아올려 둑을 만들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을 예상하고 신바람이 났다. 웃을 일이 없었던 이재민들은 서로 만나면 웃었다. 우리는 몇 명이 나갈 수 있다느니 밭일 논일도 거의 끝났다느니 하였다. 걷어 들일 곡식이 적으니 가을걷이도 쉬웠다. 빠른 사람은 지붕 잇기도 끝났다. 볏짚이 없는 사람은 보리 짚으로 혹은 밀짚으로 지붕 잇기를 하였다. 겨울 지낼 나무가 문제다. 예전 같으면 눈이 펄펄 날리는 날에도 땔나무를 하러 산으로 가곤 하였는데 공사가 시작되면 돈을 벌어야지 나무하러 갈 새가 없을 것은 뻔한 일이다. 생각하니 웃고만 있을 수 없는 노릇이다. 마음이 급하다.

 동이 트기 무섭게 산으로 나무하러 가는 사람이 늘었다. 열 살이 채 안된 딸자식에게 뒷일을 보라 시켜놓고 땔감을 찾아 나가는 부부도 늘어났다. 어린것들의 고생이 시작되었다. 입을 것 먹을 것이 그리운 생활에서 그것이 해결될 수 있다는데 무엇인들 못할까. 저녁밥상이 부실했어도 산에 가도 힘이 나고 들에 가도 힘이 났다. 명주군 사람이 아니라도 부역은 가능하였다.

 이재민이 명주군뿐이랴. 5개 관할의 백성들을 돌보는 관에서는 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남대천을 만드는 데 동참해 준다면 시일도 빨라질 것이고 지금도 속속 들어오는 구호품이 있어 관에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앙정부 고려는 ‘강원도의 이재민 돕기’를 전국에서 왕명을 실천케 하는 좋은 계기를 만들었다. 고관 관리들의 곳간을 강원도 이재민을 위해 비우라 하였다. 군졸들은 관리들의 집을 찾아 왕명을 전하고 그들의 권세가 낙화처럼 부질없었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하여 곳간을 여는 데 주저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것은 강원도 수재민을 위하는 목적이기도 하지만 그들의 풍족했던 재산을 걷어들이는 데 왕건의 수단과 명분이 되어 주었다.

 명주군 관아에서는 이 기회에 5개년 계획을 세우기로 하였다. 남대천을 새로 조성하는 일과도 연관을 지어 학산과 어단리 사이에 습지를 조성하여 많은 물이 한꺼번에 내려오지 못하도록 물을 받아 넣을 저수지를 조성하여야 한다는 의견에 모두가 찬성하였다. 물난리로 인하여 명주군이 고려 전체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상황에서 5개년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중앙정부에 얻어올 것은 더 얻어오자는 계획이기도 하였다. 이 계획은 앞으로 자연재해를 막을 수 있는 계획으로 선포되었다. 아찬의 머리를 통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왔다는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부귀와 영화가 몰려있던 동편 집들은 사라지고 북적거리던 저잣거리는 북으로 더 넓게 중심이 되어 균형을 잡고 형성될 것이다.

 

 몸을 벗다

 최치원은 동쪽 하늘이 하얗게 변하고 반짝거리던 별들도 흐릿해질 무렵 지리산 달 바위에 닿았다. 얼굴과 몸이 땀으로 젖었다. 달 바위 사이에 앉았다. 그 아래로 보이는 것은 날카롭게 생긴 바위가 전체를 이루고 있었고 보이는 것은 검은 절벽뿐 평소에도 아래로 내려 볼라치면 아찔하여 눈을 감았던 곳이다. 그는 거기까지 왜 올라갔을까? 생을 마감하기 위함이다. 마을 어귀에다 다 낡아 부서진 갓을 벗어 걸어놓고 낡아 너덜거리는 장삼을 걸어놓고 신라를 향해 하직 인사를 한 것도 그러한 생각 때문이었다. 숨을 마음껏 들이마신다. 나무껍질로 머리를 틀어 올렸다. 주위에는 모든 생명들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하늘에서 꽃가마가 내려온다. 선녀 옷을 입은 여인들이 가마에서 내려 최치원이 앉아 있는 바위 옆으로 와 섰다. 한 여인이 금으로 된 상자 같은 것을 열었다. 그 안에는 노란 금박이 옷이며 신발이며 머리에 쓰는 왕관도 있었다. 여인의 손에 들려나온 건 하얀 유리병이었다. 그 속에는 분홍 액체로 보이는 향수가 들어 있었다. 여인들은 날개옷을 새벽 하늘에 날리며 바위 둘레를 원으로 섰다.

 최치원은 요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 저 건너 절벽 사이사이 두견화 꽃이 동트기 전야를 하얗게 밝히고 있는 것이 보인다. 우뚝 솟아있는 지리산 달 바위 사이에 한 인간의 마지막 순간을 보려는지 주위가 밝아 온다. 고요하다. 그의 몸은 산짐승과 같은 날렵함과 사물을 관찰하는 눈 그 곳을 관장하였다. 살았음에 그는 영혼의 세계를 왕래하였고 그들과 더 친숙하였다. 낡은 건물을 벗을 때가 되었다는 순간에 봄의 기운은 얼음을 녹이고 꽃을 피우듯 최치원의 몸을 벗겨내는 데 동조하였다. 머리털, 얼굴, 가슴과 두 팔, 허리, 엉덩이가 몸 밖으로 설렁설렁 흔들어 벗겨내는데 성공했다. 선에 들어 꼬고 있던 두 다리도 길게 늘려 따라 나온다. 그의 몸은 허공에 떠 있다. 달 바위 사이에 앉아 있는 또 하나의 몸 위에서 내려다 본다. 최치원의 얼굴에 미소가 인다. 그리고 그림자 같은 손으로 그 얼굴을 쓸어 만진다. 아직 몸에 온기가 있다. 볼에서 마지막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배꼽 아래 모아진 엄지 두 손가락이 몸 전체를 받치고 있다. 눈물이 두 손등에 떨어진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틀어 올렸어도 새가 집을 지어놓은 것 같다. 앉아있는 자세가 그대로 있다. 순간 그의 목이 앞으로 꺾인다.

 하늘과 맞닿은 곳에는 이러한 관경을 지켜보는 여인들이 있다. 그들의 날개옷은 나뭇잎 없는 나뭇가지사이를 흔들고 바람 없는 바람이 날개옷으로 춤을 추고 있다. 하늘에서 오색찬란한 가마가 또 내려온다. 가마는 허공에 떠 있다. 새털구름처럼 가벼운 몸으로 아름다운 여인이 아래로 내린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어머니가 자식을 보듯 인자하고 자비로운 모습으로 그의 옆으로 다가온다.

 마야부인, 석가모니 어머니시다. 최치원은 그의 앞으로 가 절을 한다.

 “어서 몸을 씻고 새 옷으로 갈아 입으셔야죠.”

 옷을 벗어 버렸어도 최치원의 몸은 인간 그대로의 모습이다. 향수병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던 여인은 그의 둘레에다 커튼을 쳐 경계를 하였다. 그리고 유리병을 건네주었다. 그는 커튼 속으로 들어가 향수병을 열고 머리를 감기 시작하였다. 작은 병에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머리를 감고 몸을 씻는 시간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하늘 여인이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속옷을 건네주었다. 마야부인이 커튼 속으로 들어오신다. 그리고 겉옷을 하나하나 챙겨 입혀주신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산신이 되셨으니 땅의 모든 생명체는 기쁨에 진동하여 반길 것이요.”

 마야부인은 아들을 어루만지듯 금색의 옷을 입혔다. 둘러섰던 하늘 여인들이 그를 보는 순간 놀라워하였다. 키는 거인 같고 얼굴의 수염이 그 위엄의 상징으로 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옷 입은 풍채가 구척의 건장한 신선 그 모습이었다. 둘러서 있던 하늘 여인들은 그 모습에 얼굴을 붉히며 서 있었다.

 “신의 세계를 통치하실 새로운 몸이니 이 어미의 마음도 기쁘오. 어디에 있건 우리는 하나요. 이제 사람의 몸을 벗었으니 자유로이 하늘 세상에도 들르시오.”

 말 한 마디 건너지 않았다. 마야부인이 어머니라는 걸 오래 전에 알았다. 최치원을 하늘 세상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하늘 법도에 따라 산신의 몸을 받을 수 있도록 세상과 인연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 때 새 날이 환이 밝아오고 있었다. 밤을 새워가며 산짐승들은 한쪽에 숨어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떨고 있었다. 산짐승들의 도움이 있었다. 밤인지 낮인지 모르고 앉아 있을 때는 먹이를 날라다 주었고 마음의 언어를 주고받으며 오래도록 함께 살았던 사람 친구가 자기들의 곁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인간이나 짐승이나 이별은 슬픈 것이다.

 

 재 회

 미향은 꿈속을 헤맨다. 최치원과 함께 첫날밤을 지냈던 그 때를 꿈에서 다시 행하고 있었다. 아릿아릿 가슴 떨리는 손길을 몸으로 느끼며 행복에 겨워 신음하고 있었다.

 “서방님. 아기가 생겼어요.”

 그녀는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최치원을 안고 돌았다. 그리고 웃옷을 받아 걸고 갓끈을 풀었다. 그녀는 부엌으로 들어가 과일과 식혜를 담아 방으로 들어왔다. 최치원을 만나면서부터 그의 집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았다. 하나에서 열까지 자기의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철저히 베일에 싸여 살았다.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와의 행복을 누렸다. 매일 드나들던 어멈에게도 입을 봉하는 주의를 주었기에 미향과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

 “무슨 소리요. 당신이 아기를 가졌다니요. 우리가 만난 지 얼마나 되었다구?”

 “그러게요. 만난지 3 개월 되었는데, 아마 아기가 3개월이 되었나 봐요. 호호호.”

 미향은 기다리고 기다렸던 기쁨에 한꺼번에 최치원 앞에서 웃음보를 터뜨렸다. 최치원도 기뻤다. 미향을 닮은 예쁜 딸을 갖고 싶었다. 그녀를 안아주었다. 또다시 황금을 깔아놓은 듯 반짝이는 마당에는 동희와 최치원이 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웃음소리는 천상의 음악처럼 아름다웠다. 동희가 행복에 겨워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가슴이 저리도록 행복하게 하였다. 동희가 마당을 빙빙 돌며 행복해 하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미향의 가슴은 그림 한 장면을 보는 듯하여 그 순간이 영원하기를 빌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최치원의 눈에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모습 그대로였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미향은 꿈이 아니기를 바라며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여전히 동희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는 맑고 아름다웠다. 행복에 겨워 그렇게 한없이 웃었다.

 웃음에 놀라 잠에서 깨었다. 눈을 떠 살펴보니 방안은 깜깜하여 문살 사이의 하얀 문종이만 흐릿하게 보일 뿐 조금 전까지의 행복했던 웃음은 허망한 꿈이었다. 미향은 죽은 듯 누워있는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한 번도 그런 행복한 꿈은 꾸어보지 못하고 살았다. 하얀 명주 적삼과 명주 바지를 입은 몸에는 땀이 촉촉하게 배어 있었다. 그와 첫날밤에 있었던 사랑의 순간들이 너무나 또렷한 현실감을 주었던 것이 꿈이었나? 정말로 생생하게 그와 동침을 하였다는 사실에 놀랐다. 배꼽 아래를 더듬었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것이 그녀를 허탈하게 하였다.

 ‘참으로 알 수 없는 꿈을 꾸었구나. 서방님을 꿈에서 만나다니 무슨 일일까?’ 가슴이 답답하여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 날이 새기는 멀었는지 문틀 사이는 흐릿하여 그냥 넋 놓고 바라보았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어 올리고 옷을 챙겨 입었다. 그렇게라도 서방님을 만났다는 것은 무엇이든 생각해봐야 했다. 좁은 방안에서 다시 회상해보기는 아깝고 답답함을 견딜 수가 없어서 밖으로 나가야 했다. 너무 외롭고 보고 싶을 때마다 꿈에서라도 한번 만나기를 얼마나 소원했던가. 그와 행복에 겨워 살았던 젊은 시절이 꿈에서 보이다니.

 ‘서방님은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니던가?’ 때때로 외로움에 시들어가는 자신의 몸을 곧추 세우고 동희를 바라보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인데 꿈에서 만나다니 날이 새기를 기다리자니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올라 지남철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옷을 지으러 들어올 것을 생각하여 정신을 차려보려고 노력해 보았지만 갑자지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그 자리에 쓰러질 것만 같다. 참을 수 없어 두루마기를 챙겨 들고 방을 나왔다.

 “아씨, 이 새벽에 옷을 차려 입고 어디를 가셔요?”

 어떻게 보았는지 신라에서 함께 온 어멈이 달려와 묻는다.

 “이보게 볼 일이 생겨서 그러는데 사람들이 오면 재단해 놓은 옷감을 내어 주게. 잠시 어디 다녀올 데가 있으니.”

 “아씨, 저도 따라갈래요, 이 새벽에 아씨 혼자 가면 안 됩니다. 나리께 무어라고 말합니까?”

 미향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문을 열고 나왔다.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냥 나와 버렸다. 어디든 혼자 걷고 싶었다. 새벽 바람이 차다, 기분은 좋았다. 지난 밤의 꿈을 되살려 차근차근 회상하고 회상해 본다. 바다가 있는 쪽으로 걸었다.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그의 숨결이 전해진다. 몸에 전기가 일었다. 손끝이 찌릿찌릿하다. 걸어가고 있는데 느껴지는 감정이다. 그 분이 돌아가셨나? 지금 나와 함께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바닷가에 와있다. 동쪽 바다에 하늘이 빨갛다. 해가 뜨려나보다. 해 뜨는 것을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떠오르는 해의 기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녀는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앞으로 앞으로 걸어간다. 바닷물은 너무나 잔잔하다. 바위 위를 걸었다. 그리고 앉아있기 편한 자리에 앉았다. 철썩철썩 옆에서 작은 파도가 바위를 깨운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셨습니까?”

 부인에게 물었다. 아침 밥상에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볼 일이 있으셔서 다녀오신다고 나가셨다는데 저도 못 뵈었어요.”

 관에 일이 바쁘다보니 일찍 출근하기 위해 아침을 먹었다.

 “이른 새벽부터 무슨 볼 일이 있었기에 아무런 귀띔도 없이 나가셨단 말이요?”

 “어디를 가셨는지 알 수가 없으니 어찌해야 좋을지요?”

 들어오시겠지. 어머니께서 혼자 가셨다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마음에 기다려 보기로 하였다.

 미향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모래 위를 걷고 있었다.

 “미향이 나요. 최치원.”

 마음에서 전해지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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