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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4화
작성일 : 19-11-01 20:45     조회 : 301     추천 : 0     분량 : 1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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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왕건은 이번 시험에 합격한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뽑아 이들과 함께 딸려 보낼 계획이었다. 그것이 새로운 왕권을 학립하는 데 중요하다는 결론이었다. 왕명은 제술업 시험관에게 전달되었고 왕명을 전달받은 시험관은 고민하였다. 그 먼 곳 강원도까지 가고 싶어 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였는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쉽게 대답을 하는 나를 놀라워하였지만 어찌되었건 기뻤다. 첫 왕명을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안도가 시험관을 기쁘게 했다.

 “오, 자네가 정말 자원하는 건가?”

 다시 다짐을 받았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로 등을 두들겨주면서 그 곳에 가 있으면 머지않아 서라벌로 불러줄 것이니 걱정 말고 가 있으라는 것이었다. 이어, 며칠 내로 떠날 것이니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지시를 하였다. 시험에 합격한 다른 친구도 자기가 아니라는 것에 기뻐하면서 섭섭하다며 손을 잡아주었다. 이런 상황을 알 리 없는 어머니의 걱정이 앞선다. 보내줄 것인가? 그래도 꼭 갈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왕의 도시 명주군

 첫 출근을 하고 돌아온 내 얼굴을 보고 어머니는 기쁨에 넘쳤다. 사람들에게 자랑하여 잔치를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았다.

 그녀도 궁궐을 드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회상하면서 기생이 아니었다면 무슨 수로 최치원을 만나 동희를 낳을 수 있었겠으며 저런 훌륭한 아들을 가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아들이 어미를 떨어져 멀리 간다 하여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하였다. 아들과 마주앉아 다정하게 얘기한 적은 없지만 그녀는 아들의 마음을 알고 있다. 말을 자주 나누지 않는다고 자식의 마음을 모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녀는 이미 아들의 결심을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기에 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려는 의도도 있었다.

 어머니에게 소상히 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의 두 손을 잡았다. 궁궐의 모습이며 시험 합격자가 얼마며 시험관이 어떻고 하는 말들을 하고,

 “그런데, 제가 자원을 했어요. 강원도에 보내 달라 구요. 저는 궁궐은 싫어요. 낮선 곳에 가 살고 싶어요. 열심히 일을 하겠지만 가끔씩 쉬어가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설마 했던 것이 오고야 말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지금껏 둘이서 의지하고 살았는데 어찌 아들을 보지 못하고 살 수 있을까? 그동안 커진 사업을 접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방 마음을 바꾸고 웃으며 말을 했다.

 “참으로 잘 생각하였다. 그래 언제쯤 가게 되는 것이냐?”

 궁궐에서 시험관이 했던 말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그녀도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들의 손을 잡았다. 어미 생각은 안 해도 된다. 지금까지 어미는 네가 성공하기만 바라고 살았다. 이제 너의 꿈을 펼치고 살아도 될 나이가 되었으니 어디를 가든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을 할 것이야. 너는 잘 모르겠지만 어미가 하는 사업이 만만치 않단다. 내게 달린 식솔들이 어마어마하여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있기에 아직은 일을 버릴 수 없단다. 나중 나이가 더 들면 너에게 이 사업을 물려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단다. 그러니 어미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어미의 꿈이기도 하고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이기도 하니 네가 대신 이루어 드려라. 아버지는 어느 곳에서도 너를 향해 기도하고 계실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니 어미에 대한 걱정은 하지 말아라. 무겁던 근심이 풀렸다.

 이십 년 가깝도록 의지해 키워온 하나뿐인 자식이 벼슬을 받아 나라 일을 하러 간다는데 무엇으로 잡을 수 있단 말인가. 엄중한 책임을 지고 가는 아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녀는 이제 자식의 걱정은 내려놓아도 된다는 홀가분한 생각도 들었다. 그 무거운 책임감을 이제 내려놓고 살고 싶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 없이 자식을 키운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 남편이 보통 사람이 아닌 바에야 그 책임은 배가 되는 것이다.

 강릉은 왕의 도읍지다. 신라 왕실에 예속되어졌던 왕실은 김주원의 3대를 이어왔다.

 새롭게 세워진 고려 정부는 신라 내 외를 군림하면서 각 지방 세력들을 고려로 흡수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고려 영토가 강원도 위주로 있었지만 강원도 강릉은 신라가 통일하면서 신라의 왕실에 속해 있었는데 또 시대가 바뀌어 고려로 전향해야 하는 혼 돈의 시대를 맞게 되었다.

 과거급제를 한 사람을 새 고려의 책사 겸 왕건 측근으로 내려 보내기로 한 것은 나라가 혼란하여 강원도를 빠른 시일 내에 안정시키려면 명주 왕권을 하루속히 약화 시키는 일이다. 고려의 실질적인 집권을 의미하는 뜻이기도 하다. 김씨 세력을 꺾기 위한 왕의 권한의 상징이기도 하고 책사를 통해 차츰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 막강한 책임을 안고 군왕의 행렬에 합류했다. 몇날 며칠을 걸어 대관령에 닿았다. 왕을 모시는 측근은 말을 이용했지만 다른 호위병들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머나먼 길을 걷다보니 발이 퉁퉁 부어오른 군졸들도 있었고 발에 물집이 생겨 다리를 절룩거리기도 하였다. 왕건은 책사를 염려하여 말을 타고 가라 하였지만 새까맣게 젊은 내가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는 앞에서 차마 말에 올라 탈 수는 없었다.

 고생 고생하여 대관령 꼭대기에 올라서니 아래로 바다도 보이고 명주 도읍도 작은 마을로 보였다. 고개 마루에서 한참을 쉬었던 일행은 아흔아홉 구비 고개 길로 가지 않고 골짜기 지름길로 내려갔다. 대관령 반정의 길목 골짜기에는 물소리도 들리고 주막도 있었다. 일행은 길 옆에 자리하고 앉았다. 군졸들은 물 흐르는 바위에 걸터앉아 발을 씻으며 신라에 대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 사람이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이번 과거에 합격했다지요? 아직 어려 보이는데 이 곳 첩첩산중에 어찌하다가 오게 되었소? 여기 오면 집에 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요.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했겠소? 정말 걱정하는 마음이 읽힌다.

 “우리 통성명이나 합시다. 최달호라 하오.”

 “네, 저는 김동희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천리 타향 낮선 곳인데 어찌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몰라도 이제 거의 다 왔으니 마음을 놓으시오. 우리도 서라벌에는 처음 다녀오는 길이요. 많은 것을 보고 왕실의 구경도 하였으니 우리들은 평생의 한을 풀었소. 가문의 영광이지요. 그러면서 신라 천 년의 도읍지가 이제 고려에 넘어갔으니 백성들이 얼마나 원통하겠느냐며 자기들은 소문만 듣다가 신라에 가 보니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이제 공에게 이 곳을 감찰하라고 고려 왕실이 내려 보낸 걸 보면 강원도 관리들이 많이 바뀌겠다는 생각에 자신을 알리는 것 같았다. 미리 친해보자는 손 빠른 생각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좋았다. 과거 급제하여 오는 엘리트 관료에게 누가 성큼 가까이 할 용기가 나겠는가. 이 사람은 그 중에서 머리가 잘 돌아가는, 소위 말하는 화랑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산을 다 내려 올 때까지 달호는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명주궁에 언제 들어왔으며 녹봉은 얼마며 따위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명주 군왕의 심사는 그리 편치가 않았다. 머지않아 명주 왕권도 가져갈 것이고 신라의 백성이었던 시대도 끝났다. 새로운 권력을 받았으나 오래지않아 고려의 백성으로 살아야 할 운명이기에 나를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명주 군왕은 사사건건 책사의 눈치를 보아야 할 것을 생각하니 체통이 말이 아니었다. 떠나올 때 새 임금의 하명에 고개를 숙이고 뜻대로 거행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던 탓에 울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참지 않으면 어쩌랴. 겉으로 내색할 수 없었지만 분하고 원통함을 참아야 했다. 하필이면 과거급제가 발표된 때에 서라벌에 간 것이 후회스러웠다. 저 애숭이를 거쳐 모든 보고가 고려 왕실로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아득하였다.

 “명주 군왕은 들으라, 앞으로의 모든 정책 실행은 변함없이 군왕이 하게 될 것이나 한 가지, 왕실의 모든 재정은 제술업 시험에 합격한 6두품인 김동희 관리에게 보고하도록 조치할 것이며, 그 기록은 거짓 없이 반드시 보관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야. 그리고 머지않아 신라 도읍을 개경으로 옮길 것이니 이 곳 먼 곳까지 군사를 끌고 오지 않아도 될 터.”

 변방 군사력의 기능이 상실해 가는 상황에서 왕건은 새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당시 대외관계상 동북방 문제의 위기를 안정시키는 일환으로 새 고려의 책사로 하여금 정치 사회적으로 예우와 신분 보장을 해줌과 더불어 고려 중앙정부의 위력을 자연스럽게 공포한 셈이다.

 그렇게 어명을 받았으니 무슨 도리로 명을 어길 손가. ‘이제 명주 군왕의 왕 노릇은 끝이구나’ 하는 울분과 무능한 신라 골품제 세력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이제 왕실 재산을 빼돌릴 수도 없다. 왕실의 재산은 감사가 곧 이루어질 것이기에 저리 똑똑한 인재 손에 꼼짝없이 묶이겠구나 생각했다. 명주 군왕은 왕건의 대리인인 내게 신라의 백성이었음을 강조하며 위로한다는 말과 책사 대접을 하여 궁 안에서 머물 곳을 마련해 주었다.

 고운은 해인사에 머물렀다가 방랑수행을 결심하고 이 곳 저곳 발길 닿는 대로 머무르면서 경치 좋고 물 좋은 곳에 글을 남기고 다녔다.

 접시꽃

 

 거치른 밭 언덕 쓸쓸한 곳에

 탐스런 꽃송이 가지 눌렸네

 첫여름 비갤 무렵 가벼운 향기

 보리누름 바람결에 비낀 그림자

 수레 탄 어느 누가 와서 보리요

 벌 나비 부질없이 서로 엿보네

 본시부터 천한 데 태어났기로

 사람들의 버림받은 참고 견디네

  -동상에 새겨진 시

 

 나그네 집 밤비

 

 나그네 집 깊은 가을비는 내리고

 창 아래 고요한 밤 차가운 등불

 가엾다 시름 속에 앉았노라면

 내 정념 참선하는 중이로구나

 

 선법을 배워 익혔기에 어느 장소에 있더라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법력이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생각과 공상은 공부에 방해가 되었지만 버릴 수 있었다. 버릴 수 없었던 단 한 가지 신라에 대한 그리움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다.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잊어보려 하면 할수록 신라를 위해 살고자 했던 굳은 의지가 물거품이 된 안타까운 마음은 그의 신앙생활에 커다란 기둥이 되었다. 그것은 곧 부처의 길이고 참선의 길이고 모든 것을 잊고 의지하려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었다.

 어느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 원인은 선지식을 찾지 못한 길이기도 하였다. 지리산 깊은 자락에 있는 절에 찾아든 고운은 그 곳의 불사를 도왔다. 지게로 바위를 나르고 통나무를 나르고 삼시 세끼를 얻어먹으면서 일을 하였다. 일을 하면서도 화두를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목숨이고 살아갈 희망이었다. 한곳에 머무는 것은 하안거, 동안거에 선에 들기 위함이다. 그러한 시간이 흘러서 신라는 완전히 고려의 정토가 되었고 이제 더 이상 신라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부처님 공부가 점점 깊어감에 따라 사랑도 그리움도 나라에 대한 원망도 소멸되었다. 하늘과 내통하는 경지에 들었다.

 고려의 정부에서는 불법을 타박하지 않고 확장해 가는 정책이 있었지만 고운은 새로운 세상에 나와 불법을 펴 보일 기회를 갖으려 하지 않고 가야산으로 더 깊이 자취를 감추었다. 불법을 고려에 이입시키지 못하고 정계의 시선도 세월 따라 잊혀져가고 있었다. 부귀와 영화는 구름과 같고, 번개 불과 같고, 이슬과 같은 것임을 오래 전에 깨달았다. 혼자 있어도 즐겁고 먹지 않아도 배부르니 이미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었다.

  강릉 명주군에 들어온 지도 오래 되었다. 그동안 고려의 정세도 백제를 통일하고 안정 국면에 들어섰다. 명주 군왕도 고려의 틀 안에서 정치를 시행하다 벼슬도 내려놓고 정계에서 물러나 있었다. 왕의 자손들은 고려 정치에 흡입되었고, 작은 벼슬도 감지덕지하며 고려 왕건의 신하로서 불평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지금껏 책사의 의무를 수행하는데 고려에 공헌이 컸다하여 아찬의 벼슬을 받았다. 명주군에 속한 동해안 전반을 책임질 아찬의 벼슬은 시행된 것이었다. 젊은 나이에 큰 벼슬이었다. 강원도를 오면서 꿈꾸었던 하나의 일, 부친을 만나보는 일이 늘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여유로움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 미향은 사업에서 물러나 재산을 정리하여 그리운 아들이 있는 강릉으로 왔다. 오매불망 그리던 자식을 옆에 두고 살아간다는 외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그리고 아들이 왕에게 신임을 받고 아찬의 벼슬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에 눈물을 흘렸다.

 “너는 아버지에게 효를 하였구나. 이제 나는 눈을 감아도 여한이 없이 죽을 수 있겠구나.”

 참으로 고맙다고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이 나왔다. 이럴 때 부친이 함께 계셨다면 하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그리움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대관령을 내려올 때 대관령 주막에서 만난 최달호는 장인이 되었다. 혼자 외롭게 지내던 나는 그의 딸과 인연을 맺었다. 최달호는 의지하는 가족이 되었다. 명주군에 온 동안의 세월은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외로울 때는 그가 옆에 있었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다 최달호의 성화로 그의 딸과 혼인도 하였고 자식도 두었다. 손주 손녀를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마음이 미안하여 미향은 재산을 대강 정리하여 이 곳으로 오게 되었다. 가족이 생기고 나랏일이 바쁘다보니 부친을 찾으려는 처음 먹은 간절함은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나라의 큰 벼슬을 받았으니 그 책임은 막중하여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마음에 죄를 지은 것 같은 어머니에 대한 생각도 없어졌으니 나랏일에 몸을 바쳐야 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새로운 계획

 현대여성답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미모는 세월의 흔적이 별로 이입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다. 많은 사람을 거느리고 살아왔기에 서라벌에서 데리고 온 식솔들이 있었다. 평생을 그녀로부터 호강하며 살아왔던 그들은 대를 이어 그녀 집에서 하녀가 아닌 식솔로 가족처럼 살아왔다. 미향이 강원도의 아들을 찾아 떠난다는 소리를 듣고 울면서 매달렸다. 미향은,

 “이제 독립하여 살아 보게나?”

 우리는 아씨 없이는 못 삽니다. 우리도 따라가겠습니다. 그러면서 따라온 식솔들이다. 따라온 식솔들이 아들네 식구보다 많았다. 미향이 고생하여 당도해 보니 너무나 마을이 작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아들과 함께 있어야 했기에 정을 붙여보려 노력을 하였다. 이 곳은 바다가 가까이 있어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았다.

 대관령 아흔 아홉 구비가 외부로부터의 문물의 유입을 막고 있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사업을 구상하였다. ‘이 나이에…’ 하면서도 ‘한눈에 다 들어오는 작은 고을 하나쯤이야’ 하는 만만한 생각으로 새로운 꿈을 꾸었다.

 지금껏 쌓아온 경험을 이곳에다 한번 펼쳐보리라.

 모든 것을 미련 없이 접고 아들 손주와 함께 여생을 보내려고 마음을 크게 먹고 재산을 거의 정리해 왔다. 미향은 마지막 사업이라 다짐하고 ‘무엇으로 시작해 볼까?’ 생각하자 미리부터 마음이 설렜다. 이제 아들 며느리 손주와 손녀가 있지 않은가. 무엇이든 못할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솟았다. 무엇을 해 볼 것인가? 며칠 동안 장터를 두루 둘러보았다.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지는 장터를 바꿀 수는 없을까. 그것은 너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관령이 너무 높기 때문에 어려울 것 같았다. 토지를 매입할 것인가? 그것도 관리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사업으로 객이 묵어갈 여관을 지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은 고을에는 주막은 있어도 고급 관리들이 묵어갈 정갈한 집이 없었다. 서라벌에서 상위급 사람들과 상대하다보니 여기 사람들 살아가는 형태가 너무나 가난으로 찌든 모습이었다. 아들을 위해 이 곳의 발전에 한번 기여해보자! 참으로 기발한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그러나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미향은 사업을 해 왔던 사람이다. 더구나 무역을 하던 큰손이 그냥 하는 일 없이 지낸다면 어찌 답답하지 않으랴.

 새로운 사업 구상으로 우선 넓은 땅과 장소를 물색해야 하였다. 따라온 식솔 한 사람을 데리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살펴보았다. 명주군 관아는 주막거리와 초가집들이 모여 있고 남쪽으로 기와집이 모여 있었다. 곳곳에 작은 산들이 있어서 이웃이 멀었다. 집 지을 자리를 물색하던 중 한 곳을 정하여 살펴보았다. 여러 채의 집을 지으려면 넓은 땅이 필요하였다. 시장 가까운 요지 땅을 팔려 할지가 문제였다. 쓸 만한 곳 몇 군데를 알아보고 다녔다.

 “아씨, 땅을 사시려고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여기저기 넓은 땅만 찾아다니는 미향이의 생각이 궁금하여 한 마디 물어 보았다. “그냥 앉아서 놀기만 한다면 세상이 너무 지루하지 않겠어?”

 그 한 마디만 답하였을 뿐 다시 물어보거나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미향은 아들 몰래 밤마다 설계도를 그렸다 지웠다 했다. 어떻게 지을 것인가. 서라벌에서 최치원과 함께 살았던 집을 회상해 본다. 젊어 한때 꿈같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를 생각만 해도 손끝이 짜릿해 온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수십 년을 살아온 세월 그 세월이 너무 길었다.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만날 수만 있다면’ 하는 아득한 생각을 잠시 하였다. 혼자 차지하고 살아갈 남자가 아닌 줄 알았기에 그리워 밤을 새우며 가슴 태운 날들이 새삼 사무친다. 아녀자 혼자 사업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닐진대 그래도 그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오늘날까지 버텨온 것이다. 최치원을 살아서 다시 만날 수 없다면 죽어 다음 생에는 그의 정실부인으로 못 다한 사랑을 하려니 하는 마음으로 살았기에 버틸 수가 있었다.

 그가 뿌려준 씨앗 하나가 훌륭하게 커주었던 것이 얼마나 긴긴날의 힘이 되었던가를 새삼 고마워했다. 그와의 추억이 있는 서라벌의 집은 그가 혹시 돌아와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어 그대로 관리인에게 맡겨두었다. 강원도를 오면서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집을 그대로 두고 땅도 얼마간 남겨놓은 것은 아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을 두어 맡겨둔 것이다.

 서라벌의 집은 한 가정집으로는 예쁘고 아름답지만 서울의 선비나 고급 관리들을 묵어가게 하려면 대궐처럼 우람하고 기품이 있는 집을 지어야 한다. 그러한 생각으로 설계를 하고 연구를 하고 고민을 하였다.

 방은 몇 개를 만들 것이며 집은 몇 채를 지을 것이며 어떻게 지을 것인가 몇날 며칠을 연구하고 설계하였다. 사람 부리는 데는 사업만큼이나 실력을 겸비해야 되기에 누구에게나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곧 돈이었다. 베풀어 준 만큼 그들은 진실을 주었다. 헤어지기를 서러워하였고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이제 새로운 곳에 생의 마지막으로 이루어 볼 꿈을 설계하고 있다.

  “어머니, 집사람에게 들었는데 매일 바다에 가신다면서요?”

 아내의 걱정을 말하였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봐온 미향을 알기에 더 할 말은 없었다. 평생을 사업하는 데 투신한 마음이 얼마나 허전하였으면 매일 바다로 나가실까? 그런 생각이 들어 그녀 옆으로 자리하고 앉는다. 마음이 평화로우니까 좋구나. 동해바다의 깊고 넓은 모습을 보기도 할 겸 운동도 하고 다닌단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들과 마주하였다. 그 모습에서 최치원을 본다. 아들 모습이 너무나 닮아 어떤 때는 가슴이 쿵 내려앉을 때도 있다. 얼굴이 붉어진다. 가슴이 뛴다. 아들을 바로 쳐다 볼 수가 없다. 어쪄라.

 “이제 그렇게 사세요, ‘

 애들이 다 컸으니 아기 돌볼 일도 없고 이리저리 구경 다니시며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이 곳도 살아보니 너무나 좋은 곳이예요. 내천이 흐르고 항상 볼 수 있는 바다도 가까이 있으니 심심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구나.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단다.”

 둘이서 오랫동안 오순도순 이야기할 기회가 없이 살아왔으니 오랜 세월동안 자주 만나지 못한 모자 간의 대화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아들의 얼굴에서 오매불망 그리워하던 임의 얼굴을 보았으니 스스로 부끄러워 마주 쳐다보기가 부담스럽다. 아직도 피 끓는 청춘이라기보다 마음이 늙지 않았으니 그녀의 가슴은 아직도 뜨거웠고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뒤에다 감추시는 겁니까?”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그녀가 뒤로 감추어 놓는 지필묵을 보았다. 자리를 일어서려다 다시 앉으며 물었다. 그녀는 뒤로 손을 돌리고 있었다. 무엇인데요? 어머니. 글을 쓰셨는가 보려는데,

 “이거~ 그냥 한 번 그려보고 있었지.”

 “무얼 그렸어요?

 그녀의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달라하여 보았다. 길을 그리고 집을 그리고 하나의 집이나 하나의 길이 아니라 어느 작은 동리 같았다. 집은 멋있고 기둥도 큼직큼직하여 무슨 궁궐 그림 같았다.

 “어머니, 서라벌 고향이 그리운 거지요? 궁궐 그림을 그리시는 것을 보니.”

 “아니오, 궁궐이 아니오. 여기서 둘러보니 작은 마을이 너무나 가난한 것 같아서 그들을 도와줄 수 없을까 고민하는 중이요.”

 그녀는 갑자기 아들에게 예우를 하는 말이 나왔다. 생각이 정리가 되면 말해주리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기 어렵다 하는데. 어머니가 어떻게 이제 편안히 쉬셨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엇인지 다른 사업구상을 하시려나보다 인사를 하고 방을 나왔다.

 

 고려는 수도를 송악으로 옮기고 불교를 호국신앙으로 삼았으며 북쪽 영토를 확장할 계획으로 왕건은 항상 서경에 머물러 살았다.

 영동지방의 백성들은 나라가 어찌되어 가든 상관없다.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으니 궁핍한 삶을 벗어날 수 없었다. 물물교환도 지리적으로 불편하고 산이 높고 골이 깊어 고개 넘어 사람들이 오고가기가 어려워 발전할 지리적 조건이 되지 못했다.

 장마철이 되자 며칠째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가 퍼부어대더니 집이며 곡식이며 낮은 지대는 다 물에 잠기고 경포 일대는 바닷물이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고 경포대 정자만 물 위에 솟아 있다. 명주군 관내에서 벌어진 물난리로 낮은 지역의 초가집들이 잠기고 있었다. 경포 일대는 배를 이용하여 높은 곳으로 이동하였고, 집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길거리로 나온 사람들이 산으로 관아로 대피하느라 북적거렸다. 서쪽에 자리한 명주관아는 지대를 높이 잡고 있어서 안전하였다. 밭에는 감자, 옥수수, 조, 콩잎이 한창 밭이랑을 채우며 크고 있었고, 논에는 벼이삭이 올라오는 중이었다. 풍년이 들었다고 풍년가를 부르며 좋아하던 사람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비 그치기를 빌었고 안타까운 마음에 원망을 하였다.

 그들이 무서운 것은 비가 그칠 줄 모르고 퍼부어대는 것이다. 관아에 모인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이 왕건이 나라를 뺏더니 하늘이 노했다고 숙덕거리기 시작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백성들은 어느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을 그대로 믿고 전한다. 임금이 백성은 챙기지 않고 다른 나라 땅을 빼앗는 데만 급급하여 하늘이 노했다며 숙덕거렸다. 신라나 고려나 백성들에게 이로운 것은 하나도 없고 자기들 권력 다툼에나 눈을 부라리니 나라꼴이 이 모양으로 굶어죽게 생겼다고 울분을 터뜨린다.

 관아에는 비상이 걸렸다. 사람들이 몰려와 밤을 새우며 불안한 심정으로 떨고 있는데 우선 먹여야 했다. 가마솥을 걸어 밥을 하고 국을 끓였다. 바다를 가까이 두고 있는 영동 지방은 몇 년에 한 번씩 혹독한 물난리에 가족을 잃기도 하고 재산을 몽땅 물에 떠내려 보내기도 하여 살림이 궁핍하였고 그 때마다 나랏님 원망을 했다. 이제 명주관아의 총책임을 지고 있는 입장에서는 그러한 백성들의 원망을 피해갈 수가 없었다. 삼년 동안 국곡으로 모아 두었던 곡식을 겨울을 지낼 양식으로 풀어야 할 형편이다.

 사람들은 산 목숨은 살아보자며 산으로 올라갔고 여전히 비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장대같은 비는 사람들 마음을 불안에 떨게 하였다. 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려 마을 높은 지대만 남아 있고 평지의 집들은 모두 잠겼다.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보니 개들이 물속에서 빠져나오려 헤엄을 치고 아수라장이다.

 며칠을 두고 장대 같은 비가 그칠 줄 모르고 쏟아 붓더니 날이 새자 동쪽 하늘에 붉은 구름이 차츰 밀려가고 환하게 해가 났다. 명주군 전체가 물바다로 변하여 아수라장이 되었던 곳곳에 차츰 물이 빠져나간다. 낮 시간이 되자 원래의 모습이 드러났다. 비는 그쳤지만 바로 집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급한 마음에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집으로 찾아들어가는 사람이 늘어났다. 보름 동안 구멍 뚫린 것처럼 줄곧 내리던 비는 하얀 뭉게구름 사이로 햇빛을 드러냈다. 관아에서 며칠을 먹고 자고 하던 사람들은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순식간에 관아를 떠나 집으로 돌아갔다.

 녹봉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명령에 따라 발빠르게 움직였고 피해가 큰 마을엔 군졸을 동원해 부역을 나갔다. 경포호수 일대는 물이 금방 빠지지 않았다. 산을 가까이 둔 마을은 산이 무너지고 도랑이 넘쳐 토지가 물에 힙쓸려가고 초가집이 주저앉는 등 피해가 심하여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흙벽으로 지은 초가집은 오래 물 속에 잠겨 있었기에 새로 지어야 할 지경이다. 이번 장마로 마을이 침수되어 오도가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다음에 또 이런 일을 대비하려면 어찌하면 좋을 것인지 관리들의 의견을 듣기 위하여 회의를 시작하였다.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거듭하였으나 별다른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그 곳에 모인 사람들 마음은 하나같이 ‘하늘이 하는 일을 어찌한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다. 나는 문득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기존의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 되겠다는 기상천외한 의견을 내놓았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이었다. 기존의 냇물은 경포호수와 연결되어 있어 비가 조금만 내려도 호수가 넘쳐 마을을 오가는 데 불편함이 많았다. 대관령 산줄기 골골마다 내려오는 물을 호수가 받아 강문바다로 내려가게 되어 있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호수로 모여 물 양이 만만치 않아 비가 조금만 왔다하면 그 곳은 배가 없이는 다닐 수가 없는 곳이 되었다.

 관아에서는 어느 쪽으로 물길을 낼 것인가에 대해 의논하였다. 일부에서는 내 의견에 놀랐으며 또다른 일부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어떤 이들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내친 김에 강력하게 남쪽을 택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였다. 남쪽은 마을이 집결하여 있고 농토가 기름져 관아에서는 내 놓아라 하는 부자들만 사는 곳이다. 그러나 물길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방법 외에는 물난리를 막을 뽀족한 방법이 없음을 설득했다. 물길을 바꿀 수만 있다면 물난리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그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도가들이 차지하고 있는 알토란 같은 토지들은 거의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새 나라에서도 토지개혁을 하고 있다. 이 기회에 밀고 나가지 않는다면 안될 것이기에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하늘의 재해를 막아보자는 데 어쩐단 말인가. 이러한 논란을 풀 수 있는 방법으로, 반상회를 열어 관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총의를 모아 남쪽 사람들을 설득하기로 하였다. 농토뿐 아니라 좋은 집들은 남쪽에 다 모여 기와집 부자 동네로 알고 있어 서민들은 그쪽 땅 한 평도 집 한 채도 가지지 못하고 사는 형편이었다. 의견이 분분하였지만 나는 설계도를 그려 관아로 가지고 왔다. 책임자들을 관아로 불러서 설계를 보여주고 이것이야말로 명주군 백성들이 다 함께 살 길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동리를 대표하여 모인 사람들은,

 “우리는 찬성하는데요. 양반들이 허락하실 런지? 우리는 관의 계획에 따를 것입니다.”

 그들은 이 기회에 토지라도 얻어볼까 하는 마음에서,

 “토지를 더 받을 수 있습니까? 토지를 더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더 늘려주시는지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면 주민들을 설득하는데 수월할 것이라고 사려 되옵니다.”

 그 말은 남쪽을 차지하고 있는 토지 주인들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주민 대표 중에 똑똑한 사람이 있었다. 참으로 용기 있는 발언이다. 그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젊은 사람이다. 눈에는 총기가 초롱초롱 반짝였다. 그래도 마을 대표로 나왔으니 무엇인가 마을 사람들에게 이익 되는 것을 얻어가야 한다는 반짝 아이디어가 그의 눈을 더욱 빛나게 하였다. 물론 그런 문제도 의논이 되어 있었다.

 “마을만 비워준다면 가지고 있던 땅의 배를 나누어 줄 것이니 그들에게 그렇게 전하라. 그리고 집을 지을 수 있는 나무도 허락할 것이니 그리 전하고.”

 조건이 타당하다. 누가 제동을 걸 사안이 아니었다. 벼슬을 가지고 큰소리치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기에 새 정부가 내놓은 중요 정책을 반박할 명분이 서지 않았다. 기존의 땅보다 늘려준다는데 욕심이 생기기도 한 것이다. 고집이 꺾이고 도읍이 바뀌는 계기가 진행되어지고 있었다.

 미향은 비 그친 집 둘레를 정리하였다. 집이 높은 지대에 있었기에 망정이지 어찌할 뻔했을까? 모두 가슴을 졸이며 가재도구며 살림을 지켜냈다. 마당에 물이 차기는 했어도 방에까지 아슬아슬하게 넘어오지 못하고 빠졌다. 곱던 마당에 진흙더미가 쌓이고 예쁘게 피어 있던 꽃들이 흙에 범벅이 되어 깔려있는 것을 물로 씻어주며 집안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일찍 퇴궐한 아들을 보자 비 피해로 걱정할 것이 안쓰러워 쳐다보았다. 집안 정리가 며칠 걸리겠어요. 그래도 여기는 지대가 높은 관계로 살림살이는 물에 잠기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다들 살아갈 걱정에 앞이 캄캄하다고 그럽니다. 어머니, 이제 명주군 일대에 큰 공사가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이번 비 피해가 너무 크다보니 관은 기존의 물길을 다른 데로 바꾸려 해요. 속에 있던 포부를 말하였다. 고생하여 지은 곡식들이 물에 잠겨 있었으니 그들의 마음이 오죽하리.

 “물길을 바꿔요! 어떻게?”

 “남쪽으로 흐르게 하려는 계획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셨소?”

 백성들이 너무 불쌍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만 된다면 해마다 물난리는 안 겪어도 될 것 같아 그것이 성공한다면 이곳 지형이 완전히 바뀌는 이변이 있을 겁이다. 마을 전체가 다르게 형성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공사는 오래 걸릴 것 같아 내년 장마철 전에 물길을 돌려놓아야 안심할 것인데, 겨울엔 영동지방에 눈이 많이 오는 곳이니 깊은 겨울을 빼면 시간이 촉박하다.

 겨울에도 공사를 해야 할 텐데 추위에 떨며 부역을 하여야 할 백성들이 옷이며 먹을 것이 걱정이었다. 아들의 걱정을 듣고 미향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아들의 걱정을 덜어주고 싶은 생각에서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서라벌로 인편을 보내어 솜과 무명 옷감을 사다가 옷을 지어 나누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돈이 있으니 얼마든지 가능하였다. 서라벌에 남겨놓은 재산으로 논이며 밭이 상당히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는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

 미향은 데리고 온 한 사람을 서라벌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말과 수레를 주어 물건을 사서 싣고 오도록 당부하였다. 시간이 걸려도 좋으니 당에서 들어오는 솜과 무명을 싼값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이 편지를 전해주면 알아서 잘해 줄 것이니 먼 거리에 고생스럽지만 나라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조심하여 다녀오게. 돌아올 때 호위무사를 채용하여 무사히 잘 가져오기 바라네. 미향은 수레에 먹을 것을 실어주며 당부하였다.

 

 물길을 돌리려는 관아의 정책이 발표되자 남쪽의 관료들은 가산과 집을 정리하는 데 바빴다. 그들이 새 터전을 마련할 곳은 남쪽과 북쪽으로 갈렸다. 아래 바다 쪽 사람들은 강 건너 남쪽으로 가고 윗쪽에 살았던 사람들은 강이 흐르던 북쪽으로 가기로 결정지었다. 높고 낮음 없이 평정하였다. 누구 한 사람 반대하고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장마가 쓸고 간 도시는 을씨년스럽다. 더구나 새 터전으로 가 집을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살림살이가 없으니 이사하기는 어렵지 않겠으나 새 집을 짓는다는 것이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더 이상 집이 물에 잠기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저잣거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 하여도 좋았다. 어떤 사람은 집의 기둥과 서까래를 뽑아다 새로 짓는 집에다 쓴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한 혼란 속에서도 새 물길과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자들은 토지가 더 생길 것이고 집도 새로 짓는다는데, 그 곳에 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물에 잠겼던 살림살이를 볕에 말리며 집을 정리하느라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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