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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동 희
작가 : 설매1
작품등록일 : 2019.10.21

동희는 아버지인 최치원과 5섯살에 생이별을 하고 기생이었던 어머니인 미향의 손에 키워졌다. 그 격변하는 신라말에 태어나 고려초기에 과거급제를 하여 알지도 못했던 강원도로 왔다. 아버지를 찾아보기위한 동희는 자원을 하여 낯 설고 물설은 곳에서 고려 완건의 칙사로 새 고려를 도와 강원도의 김주원왕권을 고려에 이입시키는 역활을 하여 고려 왕으로 부터 신임을 받았다. 그후 최치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동희로 하여금 어머니와 이별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하나뿐인 아들을 먼곳까지 보내주었던 미향은 보부상으로 돈을 모아 아들이 있는 곳으로 왔지만 동희는 아찬의 벼슬은 버리고 스님의길에 들어선다. 알지못하는 마음의 울림에 한번의 반항도 못하고 가족과 어머니를 홀로남겨 두고 산으로 들어간다. 부처의 부름은 그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변화시켜 어머니의 마지막가는 길을 도우게 된다.

 
3화
작성일 : 19-11-01 20:44     조회 : 278     추천 : 0     분량 : 14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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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미향은 아랫목 한 켠에 백옥 같은 이불을 깔아놓았다. 그리고 초야의 흔적을 담을 또 다른 곱고 부드러운 천을 백옥 위에 깔아놓았다. 자정이 지나고 주전자에 술이 다 떨어질 무렵 그녀의 가야금 소리도 흥을 돋우지 못하자 두 사람은 사랑의 몸짓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곱고 매혹적인 미향을 어서 어떻게 해보고 싶어 그녀를 안고 일어섰다. 그리고 아랫목에 깔아놓은 새털같이 부드러운 이불 위에 뉘었다. 흐트러짐 없이 입고 있는 저고리 끈을 풀어주고 치마끈도 풀었다. 그도 옷을 하나하나 벗어 윗목에 던져놓았다.

 그녀의 초야는 존중되어져야 한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조심조심 예의를 지켜주었다. 그녀의 가슴 위에 그의 가슴을 눌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며 입술에 키스하였다. 그녀 스스로도 몸의 근육이 하나로 열릴 때까지 긴장을 풀고 정성을 다했다. 육근이 풀리며 나오는 그녀의 가느다란 신음소리는 초야를 치루어도 된다는 신호였다. 호흡을 조절하고 조심조심 그녀의 붉은 장미꽃 봉우리에 이슬을 터뜨리려는 순간이다. 그녀의 근육이 풀렸다 싶었는데 다시 긴장상태로 무릎을 세웠다. 이 순간 세상이 어찌된다 해도 행동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녀의 입술이며 팽팽한 젖무덤이며 그녀의 모든 곳에 사랑으로 행하진 행위에는 처음 터널을 지나가야 할 순간에 정지되었다. 다시 조심조심 부드럽게 순간 요동치는 근육의 반란을 무엇으로도 잠재울 필요는 없었다. 다만 장미 꽃물이 부드러운 천 위에 수채화로 뿌려졌을 뿐 천둥번개와도 같은 환희의 기쁨은 피부 구멍마다 쌓여있던 오염의 찌꺼기를 속속 뿜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초야를 치룬 자리는한 사람만이 무사통과의 증표를 들고 의례적으로 왕래하게 되었다.

 

 탄 생

 신음소리는 수건을 꽉 문 입술 사이로 삐져나온다. 어멈은 분주하게 미향의 치마를 들춰가며 초조하게 배를 쓸어준다.

 “아씨, 조금만 더 힘을 주세요. 아기의 머리가 보여요!”

 혼자 외롭게 하늘에 목숨을 던지고 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멈의 소리에 힘을 주었다. 생살이 찢어진다. 좁은 문 밖으로 밀어내는 초인적인 힘! 양 손에 바위가 쥐어졌다면 부서지기라도 했을 어머니의 힘은 목숨을 건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인류 무엇이 이런 사랑을 배반할 수 있을까?

 “어머나, 공자님이네. 아씨! 공자님이예요.”

 그 한마디면 되었다. 몸은 피바다에 누워있는다 해도 웃는다. 살이 찢기어 너덜거려도 아무런 아픔도 못 느낀다. 그 순간 미향은 고개를 들어 아기의 이곳 저곳을 확인하고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고개를 뉘었다. 그렇게 나는 미향의 아들과 최치원의 아들로 첫 번째 태어났다.

 미향은 어멈의 정성으로 차츰 몸을 회복하고 있었다. 하얀 천에 싸여 자고 있는 아기를 매일 눈이 뚫어져라 보는 것이 행복이었다. 세상 밖으로 나온 아기가 일주일이 되었는데도 고운의 행방은 알 수 없었고 그저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실이 아니다 보니 본가의 집에 소식을 넣을 수도 없다.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내려다보니 영락없는 최치원 얼굴이다. 미향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손가락 하나하나 발가락 하나하나를 만지며 신비하고 신기한 아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엌에서 뛰어나간 삽살이가 요란한 몸짓을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아씨! 나으리께서 오십니다.”

 그 소리에 가슴이 뛰었다. 그 분의 모습이 궁금하다. 문이 열린다. 보는 순간 갑자기 예상 못했던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두었다.

 “미안하오, 이런 일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입술을 깨물며 참았다. 그리고 의연하게 미소를 지으며 아기를 그의 품에 안겨 주었다.

 “사내아이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예요. 얼마나 예쁜지요.”

 고운은 아기를 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녀의 몸에서 나온 자기의 분신을 보는 기쁨은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의 소중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어 따라오는 마음의 혼란은 잠시 동안 최치원으로 하여금 의문을 품을 만했다. ‘이 아이가 정말? 그녀를 만난 지 일 년도 채 안되는데, 아기가 생긴 것은?’ 하는 미궁에 들다가 강하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것은 죄악이라고, 기쁜 얼굴로 아기를 받아 안았다. 아기는 아버지의 체취를 맡고 눈을 한번 떴다 감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두 사람은 신기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몸은 어떻소?”

 “당신이 오시니 아프던 곳이 말끔히 나았습니다. 부엌 어멈이 고생하였지요.”

 “당신에게 면목이 없소 .”

 미안하여 미향의 얼굴을 마주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약간의 붓기가 있는 미향의 맑은 얼굴은 봄날의 매화꽃처럼 아름답다.

 “저는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서방님이 어떠한 선택을 하신다고 해도 저는 따를 겁니다. 이 아이를 이유로 서방님의 앞길을 막는 속 좁은 아낙이 되기는 싫습니다. 이 아이는 제가 훌륭하게 키울 겁니다. 제가 살아갈 희망이니까요.”

 미향은 무엇인가를 직감하고 그를 편안하게 마음 써 주었다.

 

 신라 정권이 바뀌어 왕건이 왕실을 장악했다. 그러나 아직 나라의 질서가 어수선하여 기존의 왕실 정책은 그대로 유지하도록 경순왕을 다시 왕으로 세워 왕건의 지휘 아래 두었다. 신라가 무너지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미향과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었다.

 궁궐에서 다시 복귀하라는 경순왕의 하명을 전해 듣게 된다. 고운은 신라의 왕실 쪽으로는 눈도 안 돌리고 살겠다고 다짐하였기에 왕의 칙서를 받을 수가 없었다.

 “나는 신라를 버렸소. 이 소리를 듣고 있는 내 귀를 씻어낼 것이요. 왕에게 그리 전해주시오”

 다시는 그런 어명은 받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미향과 동희를 세상에 남겨두고 산 속으로 깊이 종적을 감추었다. 그는 미리부터 계획하고 있던 불가에 귀의하기로 되어 있었다. 왕의 칙서만 아니었어도 그리 서둘러 들어갈 필요는 없었을 터이지만 고운은 모든 것을 버리고 홀홀단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불교 경전의 아름다움에 심취하면서 차츰 마음을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절을 자주 찾아 경전을 번역하기도 하고 일승에 대한 공부는 참선만이 빠른 길이라는 것을 실천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기 위하여 절에 들어가면 석 달씩도 미향의 집에 발길을 끊기도 하였었다. 미향은 배가 불러오고서야 그에게 알렸다. 그 날 밤 고운은 미향의 배를 쓸어주며 한숨을 지었다. 끝까지 책임져주지 못할 것을 알기에 자식이라니, 그에게는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그것을 알지만 미향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배 안에서 아기가 6개월이 되면서 꿈틀대는 것을 느끼며 기방에도 잠깐씩 들렀다 오곤 하였다.

 고운은 유, 불, 도교를 섭렵한 정통한 학자이므로 불교를 신앙으로 삼은 건 당연하였다. 고운이 신라를 등지고 떠난 자리는 신라 백성과 산천의 초목까지도 흔들림 같은 여운을 남겼다.

 미향은 동희가 어느 정도 자라자 기방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사업을 하기 위하여 도시로 나와 살기로 마음먹었다. 기존의 집은 다른 사람으로 보살피게 두고 신라 중앙으로 진출하였다. 동희의 학업을 위하기도 하였다. 기생의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을까봐 학문도 최고의 학당을 찾아 배우게 하였다. 기방에서 셈이 빠른 기녀를 선택하여 함께 보부상 사업을 시작하였다.

 기생의 허울을 벗어내려고 옷이며 머리며 이미지를 바꾸어 누구도 빨리 알아볼 수 없도록 조심하고 말솜씨까지도 달라야 했다. 보통 남정네들을 능가하는 말투며 상술이 기본이고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인심을 얻어야 편할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것은 험한 세상에 여자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억척스런 결심이었다.

 고려가 세워지면서 여자들의 권위는 바뀌었다. 남자들의 처가살이가 당연시되고 여자는 경제권도 가졌다. 여자들도 족보에 올라가는 좋은 풍습들이 이행되고 있었다.

 나는 최치원의 아들 최무극이었지만 어머니의 성으로 호적에 올라야 했다. 시대와 상관없이 커가는 아이들은 꿈을 키우기 위해 무엇이든 하기를 원하지만 환경의 지배를 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어머니가 원하는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학문과 무예를 겸비하기 위한 기술에 영혼까지도 바치며 노력을 하였다. 어머니의 바람이기도 하였지만 어려서부터 배워온 학문과 부친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깊은 곳에 한으로 남아있는 나는 모든 것을 학문을 겸비한 무예 또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자신을 단련시켰다. 이제 18세의 나이가 되었다. 나라의 과거 제도는 양민을 원칙으로 실시되었다.

 인문과를 중심으로 부친을 닮아서인지 글 짓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기에 문과를 택하여 집중적으로 공부를 하였다. 시험을 알리는 방이 붙여지고 시험 날이 가까워지자 이런저런 생각을 접고 제술업, 동당시과에 등록하였다. 동상시과는 문학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시험이다. 부친이 집을 떠난 지 10년이 넘도록 소식 한번 없이 지나갔다. 과거에 합격이 된다면 지방으로 내려가 부친의 행방을 찾아보리라는 굳은 의지도 있었다. 그리고 외롭게 지내면서도 사업에 열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도 부친을 찾기로 결심하였다.

 시험장은 전국에서 모인 젊은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하여 공부해 온 결정의 날이다. 넓은 마당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선비들은 추운 날씨임에도 곧은 자세가 흐트러짐이 없었다. 시험관이 시험 과제를 높이 걸었다. 그것을 본 나는 자신감 넘치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집중적으로 공부해 왔던 것이 문제로 나왔다.

 나라에서는 시험관에게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조하였고 새롭게 세운 나라에서 새로운 인재를 뽑는 중대한 사안을 고려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아주 어려서부터 부친의 정신적인 교육을 배워온 탓에 그 영향은 컸다. 그러나 고시합격이 되고 안 되고는 하늘의 도움이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것이기에 시험장을 나온 뒤에는 시험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기로 하였다. 마당으로 내달아 마중 나오는 어머니는 고생했다는 한 마디뿐 다른 말은 없었다. 시험장에서의 긴장이 풀리자. 잠을 보충하기로 마음먹고 쉬어보기로 하였다.

 

 사랑하여 버린 자, 다음 세계를 체험하게 된다.

 나는 부친이 하던 대로 명상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릴 때 추억이 살아난다. 나를 좋아하시던 아버지의 기억이 그리움으로 변했다.

 “동희야, 아비가 좋으냐?”

 아버지를 쳐다보며 행복에 겨워 말한다.

 “저는 아버지가 좋습니다.”

 그렇게 시작하여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당의 학문은 어떻고 당의 사람들은 어떠한 옷을 입었으며 당의 놀이는 어떤 것이고. 그럴 때 부친의 얼굴은 먼 이국을 바라보는 듯 나의 머리를 만져주곤 하였다. 그리고 세 살부터 학문을 배워 쓰기를 배우고 배운 대로 글자를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부친은 업어주기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나무 사이로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금가루가 뿌려진 노오란 마당에서 놀아주기도 하였다. 내게는 짧은 추억이지만 너무나 귀중하여 한 순간의 시간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동희야, 이 우주는 마음이야. 마음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 대 공간에 존재한다. 우주의 모든 것은 파동으로 인하여 에너지로 우리를 살아가게 한단다. 그리고 너도 하나의 우주란다. 우주는 너와 내가 하나란다. 내가 없더라도 동희와 나는 하나이니까 언제나 함께 있는 거란다.”

 ‘그래, 그랬었지’ 잠을 청하던 나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다소곳이 앉아 명상을 한다. 맑음 웃음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시간과 공간을 떠나 아버지를 만난다.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골이 깊다고 힘들어 마라, 골이 깊을수록 능선은 높다.”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는 듯 가슴을 때린다. 아버지의 신조다. 그것이 내 가슴에 닿았다.

 “동희 자냐?”

 때가 지나도 기척이 없는 아들이 걱정이 되어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몸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나왔다. 따로 조용한 곳에다 공부방을 만들어 주었기에 공부가 안될 때는 그러한 자세로 명상을 하는 버릇이 있지만 누구도 그런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항시 미향이 간식이나 시원한 식혜를 가지고 밖에서 건네주고 갔기 때문이다. 나에 대한 정성은 하늘에 닿을

 정도로 지극하여 때로는 말려도 보았지만 그것이 행복하다는 말에는 할 말을 잃었다.

 “이제 시험도 끝났으니 두루 여행이나 다녀오너라. 그동안 공부하느라 심신이 야위어 있을 것인데 두루 다니며 맛있는 음식도 찾아 먹어보기도 하고 또…”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부친도 한번 찾아보라는 심사였으나 이미 불가에 몸을 두고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은들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래도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이 그를 위하는 것임을 진즉 알고 있지만 커가는 아들이 불쌍하여 한번 던져보려던 것을 참고,

 “안채에 먹을 것을 차려놓았으니 들어가자.”

 길 쪽으로 나 있는 집은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드는 곳이라 피하고 뒷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상을 차려놓은 곳에는 그릇에 담겨있는 백숙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반가워 내 손을 잡는다.

 “그 어려운 시험을 치렀으니 기가 다 빠졌겠어요. 마님의 정성으로 삶았으니 식기 전에 얼른 드세요.”

 상 앞에 다가앉았다. 백숙을 담아놓은 그릇에서 구수하고 달콤한 냄새가 콧속을 지나 뱃속으로 들어갔다. 어머니가 다가와 다리 하나를 들고 먹기를 권한다.

 “잘 먹겠습니다!”

 미향은 아들이 대견하여 안아주고 싶었지만 부담스러워할까, 봐 얼른 방을 나간다. 장터로 이사 오면서 밥 먹는 시간에만 잠깐씩 다녀가는 안방이다. 그래서 그런지 손님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세상에 둘뿐인 모자지간이라도 무작의 정을 쏟지는 않는다. 자식에 대한 교육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며 자리를 제공하는 데까지 거리를 두었다. 어려서부터 자립심을 기르는 데 범위를 지키며 살았고 아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으로 느끼도록 키웠다.

 어느 세도가의 자식 못지않은 풍요를 누렸지만 성정이 반듯하여 커가면서 영락없이 최치원을 꼭 빼닮은 모습이었다. 아들 앞에만 서면 최치원을 생각하게 되므로 미향은 마음가짐을 흔들림 없이 다잡는 습관이 되어 있었다.

 환한 방 안에 우두커니 혼자 먹는 백숙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언제나 조용하게 생활해 온 나는 그것이 익숙해 있었지만 오늘 만큼은 왠지 외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엄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절제된 생활과 절제된 행동을 몸에 익혀온 탓에 아무런 불편이 없이 살았다. 그것은 곧 부친의 영향도 있지만 어머니의 기본적인 교육 방식이었다.

 ‘떠나자! 어디든 세상 구경도 하고 보는 견문도 두루 익히려면 떠나자.’

 그런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금 전의 적막함이 사라지고 입맛이 좋아 백숙 한 마리를 뼈만 앙상하게 남겨놓고 먹어치웠다. 시험 공고 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으니 그 때까지 돌아와야 한다는 계산으로 떠날 채비를 마쳤다. 가장 먼저 찾아볼 곳은 부친이 머물 곳으로 보이는 사찰이다. 어느 곳인지 알지는 못해도 우선 해인사에 들러보기로 하였다. 어머니가 마른 오징어며, 인삼을 쪄 만든 홍삼이며, 잣이나 밤을 가방 가득 챙겨 넣어주어서 짊어진 가방이 무거웠다.

 “돈을 아끼지 말고 써라. 넉넉히 넣었으니 밤잠도 허술한 곳에서 자지 말고 언제나 몸을 조심하고 보고, 듣고, 익히고 돌아오기 바란다.”

 “몸 성히 잘 다녀오겠습니다.”

 멀리 따라오지 않고 돌아서 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은 여전히 아름답고 젊음이 충만한 에너지가 있어 보는 것만으로 곱고 행복했다.

  말을 타지 않고 걷는 길은 지루하였지만, 마음이 급할 것이 없어 여행길 이곳 저곳의 풍경을 감상하며 걷는 재미도 있었다. 길손이 하나 더 있다면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고개를 넘고 물을 건너 골짜기를 타고 걸었다. 한창의 나이에 걸음도 빨랐다. 해질 무렵에 합천에 닿았다. 걸음을 빨리하여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더 가면 해인사 가까운 마을까지 갈 수 있겠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다리도 아프고 하여 쉬어간다고 해도 급할 것은 없었다. 해인사에 부친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거기서 오래 머물렀다는 것은 알지만 ‘체취라도 남아 있을까?’ 하는 그리움에서였다. 주막을 찾았다. 절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저잣거리는 붐볐다. 생각 외로 주막집은 깨끗하였다.

  그동안 공부하느라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지 못해 술도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깨끗한 방 하나를 얻어 가방을 풀었다. 그리고 주인에게 발 씻을 물을 청하여 하루종일 혹독하게 걸었던 발을 차가운 물에 담갔다.

 주막에서 내온 음식을 반찬이며, 국이며, 밥 한 알도 남기지 않고 잘 먹었다. 집에서 세상물정을 모르고 살았던 탓에 음식귀함을 몰랐다. 잘 먹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정성에 먹었을 뿐이었다. 처음으로 집을 떠나왔기에 인생 공부도 하는 셈이다. 하루 종일 걷기 바빠서 등에 맛있는 음식이 있는데도 꺼내 먹지 못했다.

  초저녁부터 골아 떨어졌다. 누가 깨우는 사람도 없었다. 소변이 마려워 일어나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안쪽에 대고 식사를 청했다.

  “저녁에 술상을 드릴지 물으러 오니 코를 골고 주무시데요?”

  밥상을 들고 온 댕기머리에 젊은 여인네가 아쉬웠던 듯이 말을 걸었다.

  “해인사를 가려는데 여기서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아주 멀어요. 손님께서 어디서 오셨는지 몰라도 해인사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도 여기서 자고 가야 할 겁니다.”

  돌아오는 길에 또 자고 가라는 여인의 암시였다. 아침 식사도 깨끗하게 비웠다. 신발을 챙기고 일어서려는데 옆방에서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해인사에 가십니까?” 물었다.

 동행이 생겼다. 그는 새 정부의 관료로서 해인사 주지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적적했는데 동행이 있어 반갑다며 나이를 물었다.

  “네, 열여덟입니다.”

  어린 나이에 어찌 해인사에 가느냐며 혹시 중이 되려느냐고 묻기도 했다. 어찌어찌해서 머리도 식힐 겸 집을 나섰는데 함께 동행이 되어 반갑다고 했다. 과거시험을 치렀다는 말에 정색을 하며 손을 잡아주기도 했다. 그는 태조 왕건의 통일 전략을 찬탄하며 앞으로는 좋은 세상이 될 거라고, 이제 젊은 세대가 나라를 이끌어나가야 한다며 새로운 왕이 이루고자 하는 개혁을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있었다. 아직 나라 사랑에 대한 깊은 사고는 하지 않고 살았지만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가지고 시험을 보았기에 별다른 반발심은 없었다.

  “이보게 자네는 새로운 왕을 어찌 생각하는가?”

  갑자기 물어오는 바람에 그를 쳐다보았다. 과거를 보았다면 그만한 대답은 할 수 있을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이는 50이 넘은 듯 보였다. 부친이 생각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지만 그러나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걸 알고 말이란 항시 조심하여 행하라고 했던 어머니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도 어른이 묻는데 성의없이 대답할 수는 없어서,

  “제가, 무어라 말할 수는 없지만 백성들이 새 임금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나라의 임금이 바뀌면서 시행하는 시험을 본 상태라 새로운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그는 기존의 신라 왕실의 녹을 먹던 사람으로, 왕실이 임금이 바뀌고 많은 혼란을 겪고 있지만 시대의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였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기존의 정치가들에게 궁궐 운영을 그대로 맡겨 두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냐면서 한숨을 크게 쉬었다.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였다.

 지금이나 천 년 전이나 배불러 죽는 사람은 백성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천 년 동안 자기들 집안만 떵떵거리며 살던 골품제도를 누렸던 사람들이 농토나 재산을 나라에 바칠 생각을 하면 얼마나 배가 아팠을까를 생각해 본다.

 선을 향한 정치는 국민을 이롭게 하고 나라를 넓혀 국운을 다져 강력한 군주로 추앙받는 것이다.

 그리움

 고개를 넘고 비탈길을 지나 해가 세시 방향으로 기울었을 때쯤 해인사에 당도했다. 초행길에 혼자 왔더라면 찾아오기가 힘들었을 것인데 동행이 있어 빨리 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 경내에 들어섰다. 골이 깊고 산이 높아 마당 한 켠으로 나무 그늘이 지고 있었다. 한숨 돌리면서 경내를 둘러보니 이 깊은 곳에다 절을 지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기둥 하나하나마다 아름드리다. 문틀도 두텁고 문살도 투박하다. 지붕엔 궁궐처럼 검은 기왓장이 기울어진 햇볕을 받아 반짝였다. 탱화의 화려함과 정갈한 구조가 경내를 엄숙하게 하였다. 법당은 그리 넓지는 않았지만 2~30명이 앉을 수 있는 넓이로, 한쪽으로 방석이 놓여 있었다. 동으로 만든 부처님 세 분이 정좌하고 계시는 상단에는 그릇에 담긴 흰 쌀이 있었다. 방석을 깔고 절을 하였다.

 갑자기 눈물이 흐른다. 정말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는데 볼을 타고 흐른다. 그대로 엎드려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옆의 사람이 볼까봐 얼른 밖으로 나왔다. 뜰을 내려와 경내를 돌아보았다. 서까래마다 화려한 연꽃 모양의 그림은 절을 더 신비롭게 했다. 벽면 둘레에 그려진 팔상도 그림을 천천히 의미하며 둘러보았다.

 “이보게, 들어 가세나. 스님도 만나봐야지?”

 참선에 드셨는지 댓돌 위에 하얀 고무신 두 켤레가 걸어가듯 움직이듯 가지런히 놓인 곳으로 찾아들었다.

 “스님! 계십니까?“

 방에서 젊은 스님이 문을 열고 반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주지 스님이 놀라며 그를 반긴다. 나는 뒤쪽에 쭈뼛 서서 그가 하는 대로 스님께 삼배를 올리고 마주앉았다.

 “공께서 같이 온 젊은이는 자제분이신가요?”

 “아닙니다. 저 합천주막에서 만났습니다. 이번 과거 시험을 보고 머리를 식히려고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며칠 쉬어가게 해 주십시오.”

 “먼 길에 고생이 많았구려. 푹 쉬어가도 괜찮으니 편히 앉아요.”

 무릎을 꿇고 앉았는데 스님의 말씀을 듣고 편하게 앉았다.

 “신라의 형세가 어떻소?”

 “완전히 새 왕의 권한으로 옮겨졌지요. 경순왕을 내치지 않고 있는 것은 신라 백성을 위해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수 없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스님은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았다.

 “그래 젊은 화랑은 뉘 집 자손인가?”

 순간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했다. 부친의 이름을 밝혀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동행도 있고 하여,

  “저는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어찌 과거시험은 잘 본 것 같은가?”

 “네, 최선을 다 했습니다.”

 주지 스님은 나의 얼굴을 한참 주시하다가

 “시험 발표 날짜는 언제쯤인가?”

 “한 달쯤 뒤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튿날 함께 온 동행은 산을 내려갔다. 경내를 돌아보며 아버지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여기서 무엇을 찾으려 했을까. 무엇이 있어 가족과 세상을 등지고 사는 삶을 택했을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그리고 어제 법당에서 있었던 눈물은 어떠한 의미로 나온 것일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겼다. 물어봐야 한다, 아버지의 행방을. 급한 마음에 스님 방에 들어가도 되는지를 물었다. 스님은 허락해 주었다. 스님은 무심히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큰스님께 여쭈어 보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가? 말해 보게나.”

 “어제는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저는 신라 왕실에서 아찬 벼슬을 하시고 정계를 은퇴하신 최치원의 서자 김동희라고 합니다. 성은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고 합니다.”

 내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고 계시던 스님의 얼굴이 갑자기 놀라움의 눈으로 변하더니 마음을 다시 정리하고는,

 “그런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 사실인가?”

 “네, 사실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부친의 소식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저도 이제 컸으니까 부친의 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하여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 어머니는 어떻게 사시는가?”

 “어머니는 무역업을 하고 계십니다.”

 “상업을! 어머니가?”

 “무역업을 하십니다. 부친이 떠나시고 저를 키우면서 서라벌로 집을 옮기시고 당을 오가는 상인들을 관리하며 무역업을 하고 계세요.”

 “대단한 어머니를 두셨구먼, 그러나 자네가 말하는 자네 부친을 나는 모른다네. 이미 속가를 떠나 머리를 깎은 중인데 어디든 못 가겠나. 아는 바가 없으니 며칠이 되든 마음 편히 쉬도록 하게. 그리고 부처님 도량에 발을 들여놓았으니 밖으로 나가서 저 뒤뜰에 가보면 싸리비가 있으니 마당이나 쓸어 밥값이나 하게나!”

 불호령 같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뜨셨다. 미리 짐작은 하고 왔지만 스님의 말씀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 소리내 울 수도 없고 그 길로 법당으로 들어갔다. 처음 해보는 절이지만 부처님을 향해 계속 절을 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아닌가. 얼굴을 들어 부처님을 쳐다보니 투박하게 생기신 부처님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너와 나는 하나다. 떨어져 있어도 항상 가슴에 있으니.”

 하는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 쟁쟁 울린다. 밖으로 나왔다.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었다. 기분이 좋았다. 마당 구석구석 먼지를 다 털고 쓸었다. 산중의 기온이 쌀쌀하였지만 이마에서 땀이 내려와 눈 안으로 들어간다. 소매 끝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하늘을 쳐다본다. 하얀 구름이 여기저기 그림처럼 떠돈다. 점심공양이 되었다고 부르는 소리에 빗자루를 제자리에 갖다놓고 얼굴과 손을 씻고 상머리에 앉았다.

 “아직도 부친이 궁금한가?”

 스님의 미소 짓는 모습에 나도 따라 미소를 지었다.

 어렵게 왔으니 머무는 동안 부처님 공부나 하고 가게나. 과거 급제하여 소임을 다하려거든 부처님 공부를 해야 한다네. 부처님의 경전 화엄경은 나라를 다스리는 교재이니 마침 잘 찾아왔네.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렸으니 거기에 맞는 사상을 가지고 임하면 출세도 빠를 걸세. 자네 부친은 세상에서 꿈을 펼치지 못하였지만 만고의 부처님 제자로서 만대의 학자로 남을 걸세. 자네도 부친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부처님을 섬겨서 나라의 큰 일물로 남게나. 싸늘했던 스님이 저리도 자비로울 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부드럽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호령하셨던 것은 아니구나 생각했다.

 어머니가 넉넉히 넣어주시던 돈 생각이 났다. 주막에서 묵어갈 차비만 챙겨 놓고 남은 돈은 스님 앞에 내어 놓았다. 저에게 쓰라고 주신 돈입니다. 작은 돈이지만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종종 찾아와서 부처님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었다. 자네를 종종 보고 싶어질 거네. 자주 찾아주기 바라네. 훌륭한 어머니를 두어서 자네는 복이네. 그리고 어머니의 성을 받은 것에 대해 너무 섭섭하게 생각지 말고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사하며 살게나. 어떠한 직책을 맡더라도 열심히 노력하여 훌륭한 인재가 되어 나라에 공헌하기 바라네. 하였다.

 고맙습니다.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편안히 계십시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일주일간 절에 머무는 동안 부처님에 대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스님이 주시는 화엄경을 가벼워진 보따리에 넣었다.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정리되었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공부해 왔던 것을 다시 정리하다 보니 시험 발표할 날이 다가왔다. 아침 일찍부터 세수를 하고 밥을 먹었다. 함께 시험을 치른 동료도 있었지만 혼자 뒤뜰을 거닐며 시간을 보내다가 저잣거리로 나갔다. 벽마다 붙여놓은 하얀 종이에 써진 합격자 명단 아래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명단에 김동희라는 이름이 한눈에 들어왔다. 문과 제술업과는 두 사람의 이름이 올라있었다. 다른 한사람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 자리를 떴다. 시험 합격자는 언제까지 궁의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를 학인하고 저잣거리로 들어섰다. 배가 출출했다. 음식을 만들어 파는 곳으로 들어갔다. 골목길이 비좁다. 사방에서 기름 냄새가 허기를 부추긴다. 지난번 해인사 가던 길에서 먹었던 음식 생각이 났다. 무엇을 먹어볼까? 솥뚜껑을 뒤집어 놓고 지져놓은 보랏빛 수수전병이 눈에 들어왔다. 먹음직한 만두도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거리에 서서 음식을 먹었다. 누가 본다고 해도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눈에 드는 음식을 먹다보니 배가 불렀다. 저잣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녀 보았다. 그 날이 장이 서는 날인줄 몰랐다. 온갖 것들을 물물교환으로 가지고 나온 장터에는 희망이 넘쳤다. 모든 사람들 얼굴이 밝았다. 사는 것 같았다. 나는 저잣거리를 다녀온 후부터는 외롭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것에 생동감을 느꼈다. 제대로 웃을 줄 모르고 살았다. 아버지가 떠난 자리가 너무 무섭고 외로웠으며 딱히 재미있는 것이 없어 공부만 하였다. 혼자서 아버지와의 추억 속에서 살았다.

 그것은 이제 성숙해졌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이제 모든 고민은 끝났다. 새로운 내가 되기 위한 시작이었다. 아침 일찍 궁으로 들어갔다. 멀리서 지붕만 보이던 크고 우람한 궁궐은 공부한 보람의 대가라는 자부심으로 가슴을 폈다. 시험 합격자가 모이는 장소에는 미리 와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멀리서 온 사람들은 주막에서 자고 왔을 것이고 가까이 사는 사람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서로 기쁜 마음에 통성명을 하는 등 소란스러웠다. 시간이 지나 시험관인 듯한 사람들이 각 분야의 합격자들의 명단을 불렀다. 이 곳 저곳에서 대답하는 소리가 우렁차다. 그 중 한 사람을 그 때야 알아봤다. 그의 옆에 섰다. 시험관은 한쪽으로 오기를 손짓하더니 가지고 나온 궁궐의 옷 두 벌을 나누어 주었다. 갈아입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말하였다.

 “환영한다!”

 두 사람이 좋은 점수로 합격하는 바람에 자기의 입지가 굳건해졌다며, 새 정치에 첫발을 디딘 첫 번째 시험에 합격한 두 사람을 격려해 주었다. 그리고 이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강원도에 보낼 것이다. 누가 자원 하겠는가?”

 이게 무슨 말인가? 시험에 합격한다면 지방 어느 곳이라도 지원하리라고 마음먹지 않았었던가? 그러면 내가 가야지. 옆의 친구의 얼굴을 보니 어디서 왔는지 전혀 가고 싶지 않은 표정으로 시험관의 눈을 피하고 서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손을 들었다. 그 순간 옆의 친구와 시험관의 얼굴이 금방 환해졌다. 그것은 기회였다. 해인사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 때 궁궐에는 강원도 명주 군왕이 신라 서라벌에 와 있었다. 신라 왕실에서 아니, 새 나라 고려의 왕이 된 왕건에게 허락을 받기 위하여 군졸들과 관리들이 함께 며칠째 묵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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