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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여섯개의 돌
작가 : 글쓰는토깽이
작품등록일 : 2019.10.4

여섯개의 돌(분노, 나태, 교만, 탐식, 색욕, 탐욕, 질투)을 이용해 붉은용을 현세에 강림시키려는 여섯 순교자에 맞서 세상을 지키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은빛마녀(6)
작성일 : 19-11-01 13:42     조회 : 192     추천 : 0     분량 : 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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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부엌칼에 베인 브리가의 집게손가락에 난 상처는 뼈가 살짝 보일 정도로 제법 깊어 아무래도 케네스의 말대로 꿰매야만 했다.

 찬장 서랍에서 바늘과 실을 가져온 케네스에게 손가락을 맡긴 브리가는 그가 내민 재갈을 입으로 꽉- 물고는 눈을 질끈 감으며 머리를 반대로 돌리고서 벌렁거리는 콧구멍으로 콧김을 뿜어냈다.

 

 “술 많이 마셨지? 그럼, 별로 아프지 않을 거야.”

 케네스가 브리가의 손가락을 잡으며 겁에 질려 있는 브리가에게 말했다.

 

 브리가는 케네스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하지만, 바늘이 상처 옆 살을 파고들자 브리가는 하마터면 입에 물고 있는 재갈을 뱉을 뻔했다.

 “아-으으으윽-!! 아프-! 아프-!”

 그리고 브리가는 바늘에 찔릴 때마다 재갈을 문 입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잠시 후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은 브리가는 케네스의 집에서 붕대를 칭칭 감은 손가락을 부여잡고 나와 레스토랑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런데 저 앞에 보이는 레스토랑의 창문이 깨지며 사람이 튀어나와 땅바닥을 구르자 그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의 뒤를 따라가던 케네스도 와장창-!! 하며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리자 브리가와 마찬가지로그 자리에 멈췄다.

 그리고 자신을 뒤돌아보는 브리가와 눈이 마주친 케네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그에게 걸어갔다.

 “이거 싸움이라도 난 거 같네, 다들 술을 너무 많이 마셨어.”

 

 “아… 유리 새로 갈려면 시간이 제법 걸리는데 말이야. 에이~”

 내일부터 소르바겐으로 가야 하는 브리가는 일거리가 늘어나자 짜증이 났다.

 

 툴툴거리는 브리가를 케네스가 달래며 땅바닥에 엎어져 쓰러져 있는 사람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깨진 창안에서 쏟아지는 불빛에 흙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얼굴이 보였다.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꿈틀거리는 사람은 세바스티안이었다.

 

 좀 더 가까이 걸어가는 그들의 눈에 엎어져 있는 그의 등이 날카로운 뭔가에 베여 피를 흘리고 있는 게 보였다.

 

 그런 그의 상처를 보고 놀라 당황한 케네스와 브리가는 그에게 황급히 다가가려 했다.

 “이-야야야야야야-!!!!”

 그 순간, 커다란 고함소리와 함께 사람 둘이 한데 엉켜 문에서 빠르게 튀어나왔다.

 

 야크의 허리를 꽉 잡고 들어 올린 채 달려 나오는 숀드레였다.

 

 그들 때문에 뛰려던 발을 멈춘 케네스는 숀드레의 팔에 붙들려 있는 야크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옆에서 입을 벌리고 멍하니 서 있는 브리가의 팔을 잡아당기며 얼른 레스토랑으로 뛰어 들어갔다.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부서져 나뒹구는 문짝과 여기저기 뒤집어져 있는 테이블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들과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아연실색했다.

 

 “아버지-!!!!!”

 

 밖에서 마티아스가 외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 케네스가 브리가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낮게 소리쳤다.

 “총!, 총! 어딨어?”

 

 “어? 어..저..기.. 저기 있어.”

 브리가는 목이 잔뜩 뜯겨 나간 채 죽어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고정하고서 손을 들어 바 뒤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브리가의 손끝을 따라 시선을 돌린 케네스는 벽에 걸려 있는 2연발 사냥용 엽총을 발견했다.

 

 얼른 뛰어가서 엽총을 들어 제 껴 본 그는 실탄이 들어있지 않자 얼이 빠져 있는 브리가에게 재촉하며 소리쳤다.

 “브리가-!! 총알-!! 젠장-!! 총알 어디 있냐고-!!”

 

 하지만 브리가는 자신에게 소리치는 케네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피가 흥건한 바닥만 뚫어지라 보며 턱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게…이게…”

 

 “브리가~!!!!!!”

 케네스는 정신을 놓으려는 브리가를 향해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정신이 반쯤 나가려던 그는 케네스의 고함소리에 정신을 차리고는 얼른 바서랍에서 실탄박스를 꺼내 그에게 건네 줬다.

 

 건네받은 실탄박스에서 실탄을 꺼낸 케네스는 떨리는 손으로 황급히 장전했다.

 

 “케네스-!!!! 저거-!!!”

 막 실탄을 총에 넣었을 때 브리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레스토랑 안에 울려 퍼졌다.

 

 “탕-!!!!!”

 

 몸을 돌린 케네스는 문으로 들어오려는 야크를 향해 서둘러 총을 쐈다. 그리고 그가 쏜 총을 맞은 야크는 문밖으로 튕겨져 나가 나뒹굴었다. 그들은 총에 맞은 야크가 죽은 듯이 쓰러져 있자 그 틈에 얼른 사람들을 성당으로 대피시켰다.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야크가 마티아스에게 상처를 입히자 케네스는 총을 한 차례 더 쐈다.

 하지만 총에 맞은 야크는 쓰러졌다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레스토랑 안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케네스와 브리가는 그의 총을 피해 안으로 들어간 야크가 마을 청년 시체 다리를 뜯어먹는 모습을 창밖에서 눈만 보이게 고개를 들어 쳐다보는 중이었다.

 

 

 “밀리온이 지금 자기 방에 있는 거, 확실한 거지?”

 케네스는 야크에게 눈을 떼지 않고 브리가에게 물었다.

 

 “확실해. 아마 지금 자고 있을 수도 있어. 어쩌면 아닐 수도 있고.”

 브리가는 밀리온이 깊은 잠에 빠져 이 소란을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럼 밖에서 이층으로 올라가 데려오는 수밖에 없겠네.”

 레스토랑 문 바로 위에 나 있는 2층 창문을 바라보며 케네스는 머리속으로 계획을 세웠다.

 

 “일단 자넨 저들을 성당으로 데려다 주게.”

 잠시 생각하던 그는 뒤쪽에 있는 세바스티안과 마티아스를 돌아보며 브리가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브리가는 고개를 끄덕이며 케네스의 다음 계획을 물었다.

 

 “그러고는…. 음, 자네도 그들과 함께 거기서 나와 밀리온을 기다리고 있게.”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자네 혼자 어떻게…?”

 말도 안되는 소리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브리가였다.

 

 “내가 아냐, 저들이 할 거야.”

 

 자신의 뒤를 바라보는 케네스를 따라 고개를 돌린 브리가의 눈에 두 명의 남자가 달빛을 등에 지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케네스의 눈짓에 세바스티안과 마티아스를 부축해 성당으로 데려가는 브리가를 흘깃 쳐다본 중년남자 질은 냉랭한 눈빛으로 케네스의 눈을 보며 야크의 행방을 물었다.

 “그놈 어디 있소?”

 

 “저기, 저 안에 있소.”

 손을 들어 레스토랑 안을 가리킨 케네스는 말을 이어갔다.

 “저… 2층에 아직 사람이 있는데 혹시 그 애를 구해줄 수는 없겠소?”

 

 “이제 와서 부탁이라니, 흥-!! 당신이 한 거짓말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간 거요. 촌장-!”

 케네스의 부탁을 들은 질은 그의 눈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싸늘하게 말하고는 그를 지나쳐 레스토랑으로 걸어갔다.

 

 자신을 질책하는 그의 차가운 목소리에 케네스는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죽어간 마을 사람들에게 죄책감이 들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그에게 동양인 남자 진우가 다가오더니 어깨를 두드리며 다독거린 후 질의 뒤를 따라 레스토랑으로 향해 걸어갔다.

 

 “지금 들어가실 건가요?”

 진우가 레스토랑 이층을 바라보며 서 있는 질의 옆에 서며 물었다.

 

 “굳이 뭐 하러, 곧 날이 밝아 오면 그때 잡으면 되는걸.”

 이 층 창문에 잠깐 비친 밀리온의 얼굴을 보고 있던 질은 몸을 돌려 달이 사라져 가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하긴-, 굳이 힘을 뺄 필요는 없죠?”

 “응?”

 뒤에서 자신들을 애타게 쳐다보는 케네스를 흘깃 돌아본 후 고개를 돌린 진우는 레스토랑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질을 보면서 속으로 웃으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렇지 당신이…훗-.’

 그리고 질의 뒤를 따라 그도 얼른 걸어갔다.

 

 그 시간 한참을 사람의 배에 머리를 쳐박고 정신없이 내장을 파먹고 있던 야크는 전에도 느낀 적이 있던 기운이 레스토랑 밖에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게 그의 털끝으로 느껴져 왔다.

 아직은 좀 더 사람의 살을 먹어야 하는 자신을 방해하는 그 기운을 향해 그는 커다란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 기운이 살기로 변해 자신의 몸을 바늘처럼 콕콕 찌르자 본능적으로 피해야 한다고 느낀 야크는 두리번거리며 나갈 곳을 찾았다.

 그리고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벌겋게 충혈된 눈동자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했다.

 

 

 한편, 야크가 문을 들이받은 충격으로 인해 넘어져 있던 밀리온은 1층에서 괴물의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와 밀려오는 공포에 다리가 후들거리며 일어 설 수가 없었다.

 그녀는 덜덜 떨리는 다리로 창가로 엉금엉금 기어가 열려 있는 창문을 손끝으로 당겼다. 두 세 번 만에 창문이 겨우 닫히자 들려오던 비명이 약해졌다. 온몸에 힘이 빠져버린 그녀는 창 밑에 그대로 주저앉아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눈을 감고서 벌렁거리는 가슴에 손을 올려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진정시켜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계속해서 들려오던 비명과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조용해지더니 케네스가 브리가에게 소리치는 게 아래에서 들리더니 곧이어 ‘탕-!!!’하는 소리가 이층 바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에 그녀의 작고 여린 몸이 움찔거리며 감고 있던 눈이 번쩍 떠졌다.

 그녀는 천천히 일어서서 창밖을 살며시 내다봤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레스토랑의 부서진 문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에 땅바닥에 그 늑대 괴물이 쓰러져 있고 한쪽에서 케네스가 세바스티안을 부축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아래 1층에서 브리가의 재촉하는 목소리와 사람들이 밖으로 빠져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내려가도 되겠다 싶어 그녀는 안심하며 창가에서 벗어나 방문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그녀가 1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방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창밖에서 마티아스의 비명이 들려오더니 또다시 한발의 총성이 ‘탕-!!!!’ 하고 울렸다.

 그 소리에 그녀가 다시 창가로 달려가 밖을 내려다보니 좀 전에 총에 맞은 괴물이 쓰러져 있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워하는 마티아스에게 뛰어가는 케네스의 모습이 보였다.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을 한 그녀는 창가에서 몸을 돌려 자신의 방문을 열고 1층으로 황급히 뛰어내려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가 마지막 계단을 밟고 내려섰을 때 바깥에 쓰러져 있던 늑대 괴물이 부서진 레스토랑 문으로 뛰어 들어와 바닥에 있던 시체를 덮쳐갔다.

 소스라치게 놀란 그녀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손으로 막고 발소리가 나지 않게 발끝을 세워 계단을 다시 올라갔다.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벌렁거리는 자신의 심장 소리가 괴물의 귀에 행여나 들릴까 싶어 문에서 최대한 떨어져 무릎을 양팔로 끌어안고서 쪼그려 앉았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창밖에는 달이 저물어가고 새벽의 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적막한 레스토랑 안에서 계단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던 밀리온의 귀에도 그 소리가 들렸다.

 문에 재빨리 바싹 붙어 귀를 가져다 덴 그녀는 계단에 발을 올리는 소리와 ‘크르릉’ 거리는 짐승의 숨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며 눈앞이 노래져 갔다.

 그녀의 20살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밀리온은 이대로 죽을 순 없다고 생각하며 벌떡 일어나 순식간에 침대를 끌어 다 세워 문을 가렸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안심이 안 됐는지 그녀는 옷장이며 화장대를 죄다 끌어 다 문 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뭔가 생각났는지 화장대 서랍을 급하게 열고서 무언가를 찾던 그녀의 손이 기다란 뭔가를 쥐었다. 그것은 길이가 짧은 칼이었는데 자신이 어린 시절 사고를 당해 죽은 그녀의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었다.

 

 “쿵-쿵-쿵-쿵-쿵---"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문 앞에선 그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아 전신의 털이란 털은 죄다 곤두섰고 칼을 꽉 쥐고 있던 양손에 땀이 배어 나왔다.

 

 “쾅-!!! 우-다-다-당-탕--!!!”

 

 순간 방문이 엄청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리고 문 앞에 세워 뒀던 침대와 옷장 등이 극도로 긴장해 눈꺼풀을 한껏 올라간 그녀의 양옆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더니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양손으로 칼을 쥔 채 덜덜 떨며 문 앞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괴물을 본 그녀는 공포에 가슴이 죄어와 숨이 막혔다.

 그리고 괴물이 포효하며 자신을 덮쳐오자 그녀는 눈을 찔끔 감고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 시각 이제 막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선 질과 진우는 위에서 밀리온의 비명이 들려오자, 이층으로 재빨리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문이 훌쩍 열려 있는 방으로 들어선 그들은 눈에는 깨진 창문밖으로 저 멀리 뛰어내려서는 야크의 등만 보였다.

 그들이 창가로 다가왔을 때는 밀리온을 끌어안은 야크가 저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었다.

 

 “아-! 이런, 한발 늦었군요.”

 진우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질을 돌아봤다.

 

 “괜찮아. 어차피 그놈이 간 곳을 아는 자가 저기 있으니까.”

 질은 눈을 가늘게 뜨고서 창밖으로 뛰어내린 야크를 피해 나무 뒤에 숨어있는 케네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와-장-창-창!!”

 

 밀리온의 방을 올려 다 보고 있던 케네스는 창문을 부수며 야크가 밑으로 뛰어내리자 심장이 내려 앉는 듯 놀라며 얼른 옆에 있던 나무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 자신을 지나쳐 가는 야크를 본 케네스는 머리에 망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야크가 한 팔로 밀리온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었다. 케네스는 언덕으로 재빠르게 사라져 가는 야크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한 듯 무작정 언덕을 향해 달려갔다.

 언덕 위 육지의 길이 끝나는 그곳, 거기에 야크의 집이 있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언덕 위의 자신의 집 마당으로 들어선 야크는 어느새 저기 보이는 해안 끝에서 해의 머리가 서서히 떠오르게 보였다.

 그리고 갑자기 야크가 자신의 품에서 정신을 잃은 밀리온과 함께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더니 몸을 비틀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러 댔다.

 “크으윽~ 으아악~”

 

 “으…음-”

 야크의 고통에 찬 목소리에 밀리온이 정신이 들며 눈을 떴다.

 

 정신을 온전히 차린 밀리온은 눈앞의 늑대 괴물이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왜소한 남자의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괴물의 얼굴을 뚫어지라 쳐다보던 밀리온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괴물이 변한 남자의 얼굴은 자신이 너무나도 잘 아는 얼굴이었다.

 자신을 두 번이나 위험에서 구해 준 남자, 절대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그 남자의 얼굴이었다.

 

 “당신이 왜?”

 밀리온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만져 갔다.

 ‘덥석-‘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을 움켜잡은 야크는 손 때문에 도중에 멈춰야만 했다.

 

 “헉- 헉- 헉-!“

 눈을 뜨고 깨어난 야크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벌거벗은 몸을 일으켜 주위를 잠시 살펴보고는 이내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혼자 마당에 멍하니 앉아 있던 밀리온은 그가 들어간 문을 잠시 바라보더니 일어나 반쯤 열려 있는 문을 열고 어두운 집안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자리에 누군가가 흘린 피가 고여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집안으로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케네스와 그 뒤를 쫓아온 질과 진우가 야크의 집 마당으로 들어섰다.

 

 “역시 집으로 왔구만, 런던에 있었을 때 그때도 그랬지.”

 질은 마당 안으로 들어서며 바닥에 짐승 털이 듬성듬성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제발-!, 그 애를 구해 주십쇼. 제발-! 부탁드립니다.”

 질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애원하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케네스를 봤다.

 

 애원하는 케네스를 지나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질은 걱정 말라는 말투로 그에게 말했다.

 “이봐-! 촌장, 이제 그 애 걱정은 안 해도 돼. 저 길 보라구-.”

 

 그의 턱짓을 따라 해안을 바라본 케네스의 눈에 눈 부신 해가 떠오르며 수평선에 반쯤 걸쳐져 있는 게 보였다.

 

 “그놈, 사람일 때는 엄청 착하더라고. 그것도 멍청할 정도로…말이지.”

 케네스가 고개를 돌려 질을 다시 바라봤을 땐 이미 어두운 집 안으로 들어간 듯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야크를 비꼬는 듯한 그의 목소리만 남아있었다.

 

 “여기서 기다리세요. 얼른 데리고 나올게요.”

 부드러운 말로 케네스를 안심시킨 진우 역시 그의 옆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텅 빈 마당에 혼자 남은 케네스는 그들이 들어간 어두운 문 안을 바라보다 뭔가 생각이 난 듯 급하게 그들에게 낮게 소리치며 안으로 쫓아 들어갔다.

 “저기 잠깐만-!!! 지하실에 말이요~!!.”

 

 

 한편, 집 안으로 들어온 밀리온은 창을 통해 해가 들어와 조금은 밝아진 복도가 보였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복도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짧은 복도를 따라 창을 가린 커튼 때문에 어두운 침실로 들어선 그녀는 바지만 겨우 걸친 채 침대 위에 웅크리고서 돌아누워 있는 야크를 발견했다.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서서 창을 가린 커튼을 옆으로 활짝 걷었다. 그러자 제법 큰 창으로 해가 들어와 돌아 누워있는 야크를 밝게 비췄다.

 하지만 햇빛에 드러난 야크의 몸을 본 밀리온은 깜짝 놀랐다. 그의 옆구리에 뭔가 박혀 침대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건 자신의 쥐고 있던 엄마의 유품이었다.

 조금 전 야크가 자신을 덮칠 때 우연히 꽂혀버린 것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뻗어 칼을 잡아갔다. 하지만, 막 칼을 잡으려던 그녀의 손목이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잡은 야크의 손을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크으윽-! 그냥, 놔….둬.“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몸을 살짝 일으킨 야크는 온몸으로 퍼지는 고통에 신음을 뱉아냈다.

 

 “하, 하지만 놔뒀다가는….”

 밀리온은 야크에게 잡혀 있는 손을 빼고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런 그녀를 쳐다보던 야크는 자신의 옆구리에 박혀 있는 칼로 시선을 돌렸다.

 칼은 그의 옆구리에 깊이 박혀 칼자루만 보였다.

 칼자루를 유심히 보던 그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바라봤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에서 자신이 찾고 있던 여자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눈을 잠시 감았다 뜬 야크는 밀리온을 불렀다.

 “저기….”

 

 “네?”

 가라앉은 목소리로 야크가 자신을 부르자 그녀는 흠칫하며 그를 쳐다봤다.

 

 “이거 당신 것이 맞소?”

 야크는 자신의 옆구리에 꽂힌 칼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물었다.

 

 “네-? 마…맞아요. 하지만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그건 그쪽이 덮치는 바람에….”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단지 이게 그쪽 게 맞는지만 알면 돼.”

 야크는 손바닥을 연신 흔들며 미안해 하는 그녀의 손을 잡으며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건 원래 엄마 거에요. 지금은 저에게 남겨준 유품이지만….”

 밀리온은 말끝을 흐리며 희미하게 기억나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너무 어릴 때 엄마를 잃어서인지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이 잘 안나는 그녀였다.

 

 “은빛 숲의 마녀는… 그리.. 쉽게 죽지 않아….”

 야크는 고개를 흔들며 그녀에게 말했다.

 

 “네? 방금 그게 무슨 소리죠?”

 방금 야크가 한 말이 자신의 엄마를 가리키는 것을 알아챈 그녀는 그에게 되물었다.

 

 “당신…. 어머니는… 아마…. 살아 있을… 거….”

 피를 많이 흘려 점점 정신을 잃어가는 가는 야크였다.

 

 “이봐요!! 정신 차려요~!!!”

 그녀는 엄마를 알고 있는 남자가 정신을 잃어가자 서둘러 남자를 흔들어 깨웠다.

 

 그녀가 흔들자 어느 정도 정신을 되찾은 야크는 그녀의 손을 붙들고 자신의 옆구리에 꽂혀 있는 칼자루를 잡게 했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 해….”

 그녀의 손을 잡고 야크는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알았으니까-! 말이나 해요-! 얼른-!!”

 다 죽어가는 듯한 그를 향해 그녀는 재촉했다.

 

 “엘하즈… 게보… 케나즈… 투리사즈…”

 그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을 하자 그녀는 그의 입가에 귀를 바짝 대고서 따라 말하기 시작했다.

 

 “엘하즈 게보 케나즈 투리사즈”

 그녀의 말이 끝나자 손에 쥐고 있던 칼자루에서 은색의 광채가 빛나더니 곧 사라지며 잠잠해졌다.

 

 “칼을 뽑아….”

 

 야크의 목소리에 그녀는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고 칼을 천천히 뽑았다.

 

 칼이 뽑히자 상처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그녀는 놀라 칼을 쥔 손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상처를 막으며 좀 전에 했던 이상한 말들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그런 그녀의 손등 위로 야크가 자신의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야크의 상처에서 피가 멈추더니 상처 부위에서 하얀 광채가 나가 시작했다.

 이내 그 하얀 광채는 점점 커져가더니 둘을 삼켜버리고는 돌연 팟-하고 사라졌다.

 

 

 그들이 사라지고 얼마 뒤 복도를 따라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침실 문이 열리며 질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방으로 들어와 침대 위에 남아있는 젖은 핏자국을 만져보더니 방금 전까지 여기에 야크가 있었다는 걸 알아냈다. 분명히 그는 집 안으로 들어올 때 야크에게 소리치는 밀리온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지금 그 둘의 모습이 사라진 듯 보이지 않았다.

 “이거 참 이상하군.”

 

 혹시 비상구라도 있나 싶어 벽을 훑어보던 질은 문밖에서 케네스가 진우에게 다급하게 말하는 걸 들었다.

 

 “여기 지하, 지하실에 그자가 만든 무슨 석실 같은 게 있소. 혹시 그리로 가지 않았을까요?”

 

 “어디로 내려가면 되지?”

 질은 아마도 그들이 케네스가 말하는 그 석실이라는 곳으로 간 것 같아 방문 밖으로 나오며 케네스에게 급히 물었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가면 그리 내려가는 지하실 입구가 있소.”

 

 케네스는 질과 진우를 지하실로 내려가는 입구가 있는 주방 안으로 데려갔다.

 그런 다음 그는 주방 선반에서 양초를 찾아 켠 다음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실 바닥에 도착한 질과 진우는 케네스가 철문을 들어오려 열자 촛대로 가져가 대고서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훑어봤다. 불빛에 드러난 돌계단이 아래로 뻗어 가더니 어둠 속에 삼켜져 버렸다.

 질은 잠시 쳐다보더니 발을 움직여 밑으로 계단을 밟고 내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진우가 케네스를 살짝 쳐다본 후 뒤따라 걸어 내려갔다.

 그렇게 그들은 한참을 내려가자 룬 문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는 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질. 여긴 어떤 용도로 만들어 놓은 걸까요?”

 진우는 돌계단을 밟고 내려가며 촛불로 주위를 둘러보는 질에게 물었다.

 

 “글쎄, 그건 나도 모르겠군. 벽이 온통 룬 문자로 가득한 걸로 봐서는 뭔가 여기서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게 분명 한 것 같은데 말이야. 사실 나도 룬 문자를 그다지 잘 아는 편이 못되어서 말이지.”

 혹여나 야크가 여기 숨어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돌계단을 내려온 질은 그들이 보이지 않자 실망한 얼굴로 벽에 가득 새겨져 있는 고대 룬 문자를 찬찬히 훑어봤다.

 하지만, 고대 룬 문자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는 야크는 고사하고 석실에 아무런 단서도 얻지 못하자 방으로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올라 가려고 돌계단에 막 발을 올리자 위에서 케네스의 목소리가 지하실에 울리더니 철문이 ‘쾅’ 하고 닫혀 버리는 것이었다.

 곧이어 철문 밖에서 어떤 단어들을 큰 소리로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라!! 이사!! 라이도!!”

 

 순간, 질은 남자가 빠르게 소리치고 있는 말이 주문이라는 걸 알아챘다.

 

 “이런, 젠장-!!, 여긴 함정이었군-!!!”

 질은 미간을 잔뜩 모은 채 진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거 큰일이군요. 일단 저라도 빠져나가…. 응?”

 진우가 양 손바닥을 모아 둔갑술을 사용하려 할 때였다.

 

 “쿠아아아아아아아----!!!!!!”

 

 남자의 주문을 외치는 소리가 끝나자마자 벽에서 진동이 일어나더니 룬 문자들이 거대한 소용돌이로 변해 질과 동양인 남자를 빠르고 강하게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저건-!!”

 질에게 말하려던 진우와 질은 순식간에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둘을 집어삼킨 소용돌이는 잠시 뒤 점점 사그라들더니 벽에 새겨져 있던 룬 문자들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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