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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불타는대륙
작가 : 김철
작품등록일 : 2019.10.30

조선상고사

 
11.위만조선의멸망과한사군
작성일 : 19-10-31 15:52     조회 : 232     추천 : 0     분량 : 4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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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위만조선의멸망과 한사군

 

 

 

 

 

 

 

 

 

 

 

 

 

 한 무제는 고구려와의 지난 9년 전쟁에서 패한 뒤...17년 동안 조선의 여러 나라들을 엿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야욕으로 들끓는 마음이야 어찌 조선 침략을 잊었으랴...

 한 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바다를 건너서 고구려와 싸운다는 것은 너무나 고통이 심했다. 고구려를 치려면 역시 육로가 제격이었다. 그러려면 위만조선을 지나야한다.

 위만조선은 조선의 여러 나라중 하나지만 그 왕조가 원래 지나(중국)의 종자요 그 장수와 재상들도 지나에서 망명한자들의 후에가 적지 않으므로 이들을 불러들여 앞잡이를 삼으려 하였다.

 한 무제는 적지 않은 금과 비단을 실은 마차와 함께 사신 섭하를 위만조선으로 보냈다.

 

 “전하...저의 패하께서 말씀하시길 동부여가 고구려의 핍박을 못 이겨 구원을 청하니 그 소원을 차마 거절키 어려워 고구려를 치려하니 그 길을 열어주시기를 부탁 하였습니다.”

 “불가하오.”

 우거왕이 지난날 고구려와의 다툼을 피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큰 나라인 한나라의 국력이 날로 강성해짐에 따라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경계를 늦추지 않으려는 까닭이었다. 남쪽의 강력한 적군을 두고 같은 조선인의 나라 고구려와 싸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다음 날...한나라 사신 섭하는 금과 비단을 바치며 다시 우거왕에게 부탁을 하였다.

 “절대 불가하오.”

 “....”

 뜻을 이루지 못한 섭하가 한 무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한 무제는 섭하에게 밀명을 내렸고 섭하는 귀국길에 올랐다. 우거왕은 한 무제에게 자신의 동생(비왕 장)을 사신으로 삼아 섭하와 같이 동행케 하였다.

 섭하와 위만조선 사신의 일행이 육고하에 다다러 배를 타려던 중 갑자기 섭하가 비왕을 베고 한나라로 달아나 버렸다. 소식을 들은 우거왕은 격노했고 한 무제를 극히 경계를 하였다.

 

 “오호 장하도다. 섭하 장군에게 벼슬을 내려야지”

 한 무제는 밀명을 완수하고 돌아온 섭하를 요동 동부도위를 삼아 한나라와 위만조선의 국경.. 최전선에 부임토록 하였다.

 

 “뭐라? 섭하 그자가 요동 동부도위에?”

 섭하가 한무제의 명을 받들어 근무지에 도착하자 우거왕은 즉각 군사를 일으켜 섭하의 목을 베어버렸다.

 

 “옳거니...우거가 드디어 미끼를 물었구나?”

 한 무제는 무릎을 치면서 좋아했다. 우거가 자신의 계책에 말려든 것이다.

 한 무제는 섭하의 죽음을 구실로 삼아 군사를 일으켰다.

 좌장군 순체는 보병 5만을 이끌고 장성을 넘어 육고하로 향했으며 누선장군 양복은 군사 7천을 병선에 나누어 타고 발해만을 지나 소룡하로 들어갔다. 위만조선의 도성을 앞뒤로 공격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양복은 소룡하에서 우거왕의 군사를 만나 고전 끝에 상륙 하였으나 우거왕의 군사에 크게 패하여 근처 산으로 도망하여 겨우 목숨을 유지 하였고. 순체 역시 육고하를 건너보지도 못하고 고전하였다.

 

 두 장수의 패전 소식을 접한 한 무제는 작전을 바꾸었다.

 위만조선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들의 조직은 지나인과 조선족...두 민족의 잡탕 나라였다.

 그들은 위 씨에 대한 충성도 보다는 현실적인 욕구 즉 물질적인 욕심이 더 강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간파한 한 무제는 사신 위산을 시켜 금과 비단을 위만조선 장수들과 재상들에게 마구 뿌렸던 것이다.

 그 효과는 참으로 놀라웠다. 위만조선의 조정에는 갑자기 주전파 보디 화친파가 훨씬 불어났던 것이다.

 “폐하...큰 나라인 한나라와 전쟁을 계속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옵니다. 태자를 사자로 보내어 그들과 화친을 하옵소서.”

 화친을 주장하는 무리에 못 이겨 우거왕은 한 발짝 물러났다.

 “태자는 군사 1만을 줄테니 육고하를 건너 한나라 장수를 만나 보거라... 태자는 이리 가까이 오너라.”

 태자가 우거왕 가까이 다가오자 귓속말로 일렀다.

 “조금이라도 수상해 보이면 강을 건너가지 않아도 좋다. 지난날 그들의 행태를 보면 믿음이 가지 않는다. 너의 숙부가 그들을 믿고 따라 나섰다가 변을 당하지 않았느냐?”

 “명심 하겠습니다.”

 

 태자가 군사 1만을 데리고 육고하에 도착한 뒤...순순히 강을 건너려 하지 않았다.

 한나라 좌장군 순체가 발끈 하였다.

 “이미 화의를 한 터이니 태자는 무장을 해제하고 강을 건너 와라”

 “장군이 건너오시지요?”

 “뭐라고? 건방지게...?”

 “전날...섭하가 한 일을 잊은 것이오?”

 태자가 섭하가 한 일을 꼬집고 순체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자동으로 교섭은 깨어졌다.

 

 그러나...이미 많은 재물을 받아먹은 위만조선의 재상 노인, 한음, 이계상, 삼 등과 대장 왕겹이 한나라와 내통을 하고 전쟁에 힘쓰지 아니했다.

 이에 순체는 육고하를 건너 도성의 서북을 치고 양복은 산에서 내려와 도성 남동쪽을 쳤으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한 무제는 교습에 실패한 위산의 죄를 물어 목을 베고 새로이 제남 태수 공손수를 사자로 삼았다.

 공손수는 한 무제로부터 전권을 위임 받았는데 그가 할 일은 순체와 양복 두 장수를 감독하는 것 외에도 금과 비단으로 우거의 신하들을 매수하는 일이었다.

 공손수가 위만조선에 도착할 즈음 순체와 양복은 서로 공을 다투느라 화합하지 못하고 있었다.

 공손수는 순체의 편을 들어 양복을 순체의 진영에 가두고 양복의 군사를 순체에게 주어 군사 지휘권을 주었으나 역시 별 성과를 내지 못하였다.

 

 결국 공손수가 한나라로 돌아갔다.

 “금과 비단만 낭비하고 아무 성과도 못 내었다.?”

 한 무제는 다시 공손수의 목을 베어버렸다.

 

 양국의 전쟁은 큰 싸움 없이 서로 대치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노인, 한음, 왕겹 등이 한나라의 뇌물을 받은 일이 발각되어 노인은 참형을 당하고 한음, 왕겹은 한나라 순체의 진영으로 도망쳤다.

 

 노인이 참형을 당하고 한음, 왕겹이 한나라 진영으로 도망을 치자 이계상과 삼은 털컥 겁이 났다. 얼마 안가서 자신이 뇌물을 받아먹은 것이 들통 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왕과 태자를 없애고 조선의 왕이 되십시오.”

 목숨에 위협을 느낀 이계상, 삼은 우거왕의 서자 위장항을 꼬드겼다.

 “내가 왕을...?”

 “서자라고 왕이 못되란 법은 없습니다. 태자만 없애면 왕 자리는 장항님의 것입니다.”

 “우리 셋이서 가능 하겠습니까?”

 “왜 우리뿐이겠습니까...?”

 “누가 우리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습니까?”

 “재상 노인의 아들 최가 있습니다.”

 “좋소...어디 해 봅시다.”

 

 밤이 되자 한 무리의 자객들이 우거왕과 태자의 장막으로 숨어들었다. 잠이 깊이 들었던 우거왕과 태자가 죽음을 당하자 이계상과 삼이 두 사람의 목을 가지고 한나라 순체에게 투항하였다. 순체가 그 여세를 몰아 도성(왕혐성) 앞으로 나아갔다.

 

 “너의 왕이 이미 죽었다. 속히 성문을 열고 항복하라”

 “이미 대세는 기울었소. 성문을 열고 항복합시다.”

 우거왕의 서자 위장항이 항복을 하려 하였다.

 “안됩니다. 끝까지 싸웁시다.”

 장군 성기가 항복을 반대 하였다. 이때 노인의 아들 최가 성기의 심장을 뒤에서 찔렸다.

 이어서 장항과 최가 성문을 열고 한나라에 항복하니 위씨조선은 멸망을 하였다. 위만이 기씨조선을 찬탈하고 86년만에 문을 닫았다 이때가 기원전 BC 108년 [단기 2225년]이었다.

 

 한나라와 고구려의 전쟁은 다시 시작 되었다.한 무제는 전 번 고구려와의 9년간 전쟁에서 패배한 뒤에도 동부여와 낙랑국의 잔재 세력과는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 오랜 기다림 끝에 위만조선을 정복함으로서 고구려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하여 위만조선의 땅을 나누어 낙랑, 현도, 진번, 임둔 등으로 군제를 편제하고 북동부여, 남동부여, 낙랑등과 긴밀한 협조 태세를 갖추게 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한 무제 뜻대로 되지 않았다. 28년간 끈 싸움은 실질적으로 한나라의 패배였다.

 기원전 BC 82년 [단기 2241년]

 이에 따라 한의 4군중 진번군과 임둔군은 그 명칭을 폐지하고 낙랑군과 현도군에 흡수 되었다.

 

 여기서 중요하게 집고 넘어가야 할 대목은 위만조선. 즉 불조선의 위치와 한사군의 위치다.

 

 낙랑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며 장성(만리장성)의 기점이다. [사기 하본기 태강지리지 주석]

 현제 갈석산은 난하 하류 근처인 하북성 창려현 북쪽에 있으며 중국 사화과학원에서 만든 [중국역사지도집] 진, 서한, 동한 시기에도 창려현에 있는 것으로 기록 되어 있습니다.

 또 [수서 지리지 상곡군조] 에 의하면 수성의 용성, 광흥, 정황은 창려군에 속한다. 라고 나와... 지금의 창려현이 옛 수성현임이 입증 된다.

 위의 기록대로 라면 낙랑군의 위치는 지금의 창려현에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위만은 군사의 위세와 재물을 얻게 되어 그 주변의 소읍들을 침략하여 항복을 시키니 진번과 임둔도 모두 와서 복속하여 사방 수천리가 되었다. [사기]

 

 임둔과 진번을 낙랑에 병합 하였다는 것은 임둔과 진번이 낙랑 근처에 있었다는 뜻입니다.

 

 현도군은 유주에 속한다. [한서 지리지 현도군조] 라고 나옵니다. 유주는 현제 북경 아래쪽에 있습니다.

 

 따라서 한사군은 북경과 난하, 만리장성 즉 위만조선 땅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한 무제가 한 사군을 설치 한 후 고구려와의 전쟁을 시작 한 것으로 보아 진번과 임둔은 위만조선 땅 제일 북쪽에 자리를 잡아 실질적으로 고구려와의 전투에 직접 참여 한 것으로 보이며. 낙랑군은 위만조선의 성도 왕험성, 아니면 그 근처에서 위만조선 유민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은 것으로 보인다. 현도군이 멀리 유주에 있었던 것은 후군...병력의 보충을 맡은 것으로 사료된다.

 28년간...고구려와의 전쟁이 끝나자 진번, 임둔군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폐지시켜 낙랑군에 편입을 시켰고 낙랑군은 여전히 위만조선 유민들을 감시하기 위해 주둔 시켜야 하기에 그대로 두고 운영을 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글만으로도 위만조선...즉 불조선의 성도 왕험성의 위치는 현제 동쪽의 대룡하와 소룡하 서쪽의 육고하 사이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고고학자가 이곳에서 살펴보면 옛날의 흔적....왕험성의 유물이 반드시 출토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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