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청소년 시절이 강민주에게는 암흑시절 일지라도 한 줄기의 빛이 되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그녀의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아프시던 어머니가 퇴원한 것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갑상선암 때문에 수술 부위에 출혈이 일어나고 상처가 나는 부작용이 있었지만, 힘든 투병 끝에 치료를 마치고 가족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어두컴컴했던 민주의 얼굴이 민들레와 같은 화사한 색깔로 바뀌었다.
“어머니, 아침밥 차려주세요!”
민주가 어머니가 집에 다시 온다면 가장 원하던 것이 아침에 어머니의 집 밥을 먹는 것이었다.
“그래, 우리 아가. 뭐 먹고 싶니?”
어머니가 차가운 겨울의 눈마저 녹일 듯한 따스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보글보글 끓는 된장찌개와 참치 전이 먹고 싶어요.”
그녀의 암흑시절 속 유일하게 행복한 목소리로 민주는 대답했다. 민주는 암흑시절이 지나고 다시 행복한 순간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이러한 기억은 민주의 청소년 시절 속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낮에는 번화가 밤에는 반짝이는 유흥시설들로 가득 찬 남애환동에서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자∙∙∙오늘 설마 2차만 가려고? 3차는 오랜만에 아가씨들이랑 놀아야 하지 않겠어?”
민주의 아버지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직장 동료이자 친구들이 말한다.
“당연하지∙∙∙3차 말고 5차까지 가버려~.”
결국 술자리는 2차에서 끝나지 않고 아가씨들과 함께 유흥과 향락을 즐기는 3차까지 가버렸다.
‘째깍째깍∙∙∙’
정적 속 유일하게 들려오는 시계 소리 한가운데,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민주의 어머니가 있었다. 새벽 5시경 문을 여는 문소리가 들리고, 드디어 남편이 돌아왔다. 이에 대해 화난 듯이 민주의 어머니는 민주의 아버지에게 캐묻는다.
“당신, 지금까지 뭐 하다가 들어오는 거야? 새벽 5시야! 곧 있으면 나도 직장 가고 민주도 학교 갈 시간인데, 대체 뭐 하는 거야?”
민주 어머니의 날이 선 목소리와는 달리, 민주의 어머니가 화내는 것을 즐기는 듯이 헤실헤실 되는 민주의 아버지만 서있을 뿐이었다. 민주의 어머니는 김치공장을 다니기 때문에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새벽 5시까지 기다려서 넋이 빠질 뿐이었다.
“헤헤, 민주 엄마, 난 들어가서 쉴게.”
넋이 빠진 민주 어머니와는 다르게 본인이 무엇을 잘못한지도 모른다는 듯이 헤실되면서 들어가는 아버지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에 대해 화난 어머니는 아버지를 닦달하기 위해 아버지의 방으로 들어갔다. 평소 둘은 사이가 안 좋기 때문에 각자 방을 따로 쓰는 것으로 보였다.
“당신, 오늘은 또 대체 뭐 하다가 들어오는 거야? 이번 달 생활비는?”
민주 어머니의 말에 ‘오늘은’이라는 말을 붙인 것을 보면 민주 아버지가 늦게 들어온 날이 처음이 아닌 듯하다. 민주의 집이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의 생활비가 부족한 것을 보면 민주의 아버지가 생활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음을 알 수 있었다.
“당신, 이 립스틱 자국은 뭐야?”
민주의 어머니는 고기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인 셔츠에 미묘한 립스틱 자국을 발견했다. 그리고 격앙된 톤으로 말했다. 하지만, 격앙된 목소리는 싸움만 불러올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찾지 못했다. 결국 민주의 청소년 시절 속 어머니의 퇴원은 민주의 희망을 잠시나마 불러왔지만, 결과는 가정 싸움으로 번졌다.
그나마 민주의 학교에서의 모습이 괜찮았다면 민주가 절망의 나락으로 빠지지 않았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