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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이름, 용사
작가 : 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9.10.25

용사, 오백 년 만에 눈을 뜨다.

 
그 이름, 마음
작성일 : 19-10-31 02:04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4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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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은 용사의 도움을 받아 열아홉 구의 시체를 장사지냈다. 모두 소중한 가족이었다면서 그는 울적해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어린 아이를 묻고서, 청년은 기도하는 용사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전생에 사제였나요?”

 

  사도, 사제 다 비슷한 거라 여긴 용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그 말에 위안을 받는다.

 

  “제 가족들은 좋은 곳에 갔을까요?”

 

  아르콘을 만난 용사는 정답을 안다. 신이 떠난 이 세상에 더 이상 영혼을 이끌어줄 이는 없음을. 그들의 영혼은 그저 한결같이 안착할 곳을 찾아 세상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용사는 거짓말을 했다. 청년은 얼굴 근육이 잘 움직이지 않는지 어색한 미소로 웃어보였다.

 

  “정말 감사드려요. 왜 저만 언데드가 된 건지 모르겠지만, 아저씨 덕분에 제 가족들은 구원받을 수 있었던 거네요.”

 

  괴물에게 죽은 열여덟은 영혼이 더럽혀져 육체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다. 나머지 하나는 두개골이 부서져 영혼이 안착하지 못할 뿐이다. 용사는 청년이 진실을 알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혹시라도 말실수를 할까봐 입을 열지 않는다. 다행히 청년은 스스로 귀결을 내린 듯하다. 그가 말한다.

 

  “우리 마을엔 규칙이 있어요. 아저씨도 알고 있죠? 사람을 절대로 언데드로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죽은 자들 곁으로 보내주는 게 옳잖아요? 시체는 무조건 가루가 될 때까지 태우고, 절대 묻지 않는다. 만약 그럴 수 없는 상황이라면 쇠도구로 머리뼈를 부순다. 그래야 언데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아저씨, 사제 아저씨. 아저씨가 저를 죽여주세요. 가족들을 따라갈 수 있게, 은총을 내려주세요. 괴물들을 무찔러준 아저씨라면 믿을 수 있어요.”

 

  청년은 용사의 사정을 일절 묻지 않았다. 괴물을 물리쳤단 이야기를 끝으로,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않은 건, 이 세상에 아무런 미련도 남기지 않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일 거라고, 용사는 생각했다. 용사도 그것이 응당 옳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평온을 그에게 안겨줄 수 있었더라면 그는 고민할 것도 없이 청년에게 최후를 맞이할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용사는 당연히 그러지 않는다. 청년이 진실을 알게 되는 게 두려워서이기도 하고, 평온이라고는 일절 없을 죽음을 선사한다는 게 싫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규칙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청년의 머리 대신 심장을 부순 그의 가족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용사는 무기를 휘두르는 대신 배낭에서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 줄곧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지도를 볼 줄 아니?”

 

  “지도요……?”

 

  “길을 표시하는 그림이란다. 보는 법을 알려줄 테니, 보고서 흐릉달이라는 도시에 찾아가렴. 여기서 북쪽으로 열흘, 아니 네 걸음으론 보름쯤 걸리겠구나. 아무튼 가다 보면 무너진 성곽이 보일 거야. 거기에 가서 그레이스 하이룽호른이라는 사람을 찾으려무나. 그가 너를 받아줄 거야.”

 

  “북쪽으로 열흘? 보름? 사람을 찾으라고요? 아니에요, 아저씨. 저는 죽고 싶어요. 저를 죽여주세요.”

 

  용사가 말을 잘 못 알아들었다고 생각했는지 청년은 쇠도구로 머리를 부수는 시늉을 하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용사는 고개를 저으며 중년이 묻힌 무덤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차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너는 봤잖아? 알고 있잖아. 네 가족이 널 구하고 싶어 했단걸. 너는 살아야해. 언데드든 뭐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그리고 너의 가족이 네가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어. 그 마음이 중요한 거야. 그러면 넌 살아있는 거야. 살 수 있어. 절대로 지지 않아.”

 

  청년은 마음이 괴로워서 얼굴을 찡그리며 푹 파인 가슴에 손을 얹었다.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은 중년의 마지막 일격이다. 머리가 아닌 심장을 향했던 그 마지막 공격. 청년은 소중한 사람들을 전부 잃은 고통에 삶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더 이상 살아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언제고 시간이 흘러 이지를 상실한 망자가 되어 같은 인간을 공격할 스스로가 두려웠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가장 소중한 사람이 그에게 계속 살아가라며 자꾸 등을 떠밀고 있었다. 그는 삶과 죽음 앞에서 갈등했다. 고민 끝에 우스꽝스럽지만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내렸다.

 

  ‘죽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지만, 사는 건 그렇지 않아.’

 

  청년은 고민을 떨쳐내자 머릿속이 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제 아저씨, 저한테 지도 보는 법을 알려주세요. 흐릉달에 갈게요. 우리 아저씨도 그걸 바랄 거예요.”

 

  용사는 그 깨끗한 표정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평평한 바윗돌을 가져와 그 위에 지도를 깔았다. 그리고 뽑혀나간 팔다리와 열아홉 개의 쇠도구를 수거해 그 옆에 놓았다.

 

  “난 지금부터 너에게 지도 보는 법을 알려줄 거야. 너는 지금 사람들이 어디 살고 있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줘.”

 

  용사는 지도에 한 점을 짚었다.

 

  “여기가 우리 위치. 이쪽이 북쪽, 이쪽이 남쪽이야. 여기까진 이해했지?”

 

  “네.”

 

  “그래. 그럼 너희 마을이 있던 곳은 어딜까?”

 

  “이쯤이겠죠.”

 

  청년은 정확히 위치를 짚었다.

 

  “조금 엇나갔지만, 맞아. 비슷해. 방향감각이 좋구나? 이게 초원을 뜻하는 기호, 이게 수원 그리고 평야. 나머지가 숲과 산 그리고 구릉이야. 이러면 정확한 위치가 어딘지 알겠지?”

 

  “여기인가요?”

 

  조금 자신 없는 대답이었지만, 정답이었다.

 

  “맞았어. 어떻게 알았지?”

 

  “바람을 등지려고 평야에서도 구릉이 있는 쪽에 자리 잡았거든요. 덕분에 그렇게 춥지 않았던 기억이 있어요.”

 

  “자, 지도에 있는 그림으로 네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겠지? 그럼 다음은 거리 감각이야. 이 손가락 한 마디가 몇 미터나 될까?”

 

  “미터요? 미터가 뭐죠?”

 

  청년은 도량형을 몰랐다. 용사는 짐작했던 사태에 생각해뒀던 설명을 덧붙였다.

 

  “지도 위에서 이 손가락 한 마디 만큼은 평야에서 숲까지 이동하는 거리지. 그럼 이 거리를 실제로 가려면 얼마나 걸릴까?”

 

  “하루 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우리가 북쪽에서 왔을 때 산을 타고 내려왔거든요. 이 손가락 한 마디면 산하고 평야까지 이어져요.”

 

  “맞아. 그럼 여기 흐릉달이 있어. 남쪽으로 얼마나 내려가야 도착하지?”

 

  “두 달? 어쩌면 두 달 보름은 걸릴 거예요.”

 

  “그게 바로 거리라는 거야.”

 

  “하지만 아까 보름이면 될 거라고 하셨잖아요.”

 

  “우린 언데드니까. 잠을 자지 않아도 되고 지치지도 않지. 밤눈도 밝아. 그러니까 일반적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안 돼.”

 

  “아…….”

 

  청년은 완전히 알아듣지 못한 탓에 아리송해 했다. 지도는 원시적인 삶을 살던 그에게 너무나도 어려웠다. 그래도 용사가 꾸준히 설명을 반복하니 시나브로 개념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한나절이 더 흘러 위의 설명을 세 번째 반복했을 쯤, 용사는 청년이 혼자서도 흐릉달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용사는 청년에게 자기가 지고 있던 배낭을 지어주고 쇠부분만 똑 때서 넣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다리뼈 두 개를 갈아 칼 두 자루를 만들어주었다. 하나는 박도처럼 넓었고, 하나는 단검처럼 짧았다. 그 대가로 용사는 청년의 지식을 활용해 새로운 약도를 그렸고, 현재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인류는 모두 수렵에 의존한 도피 생활 중. 적어도 청년이 보아온 모든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고 한다. 언데드 무리나 괴물에게 쫓기게 될 경우를 대비해 마을은 언제나 해체할 수 있도록 스무 명 안팎의 집단을 이룬다. 그 숫자는 흔적을 많이 남기지 않고 이동할 수 있고, 몇 달을을 주기로 일주해야 할 수렵지를 망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주에도 방어에도 가장 용이한 숫자가 스물이다. 그런 이유만으로 집단은 이런 구성을 이룬다. 그것은 한 자리에 정착하지 못하는 인류가 짜낸 나름의 지혜이자 역사지만, 얄팍한 수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저 근근이 멸종을 피하고 있을 뿐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당연하다, 당장의 생존에 급급한 상황이니까. 신의 보살핌이 없는 세상이란 이런 것이다. 작금의 현실은 그런 사실을 강요한다.

 

  용사는 청년을 배웅하며 니알라의 말을 떠올린다.

 

  “스물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녀석은 한 줌의 생명조차 구할 수 없다라…….”

 

  하지만 보라, 비록 그 몸은 죽었으나 심신은 틀림없이 인간인 존재가 지금 기로에 섰다. 그는 여러 소중한 사람들의 염원과 용사의 분투 그리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고뇌하는 훌륭한 인간이다. 이런 이들을 하나 둘 모은다면 한 줌이 무엇이랴. 모든 인류를 구원한다는 소망은 더 이상 소망이 아닌 현실이 될 것이다. 용사는 그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약도를 손에 든 채 떠나는 그에게 더 이상 고통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남은 것은 희망찬 미래뿐이므로, 청년은 분명 흐릉달에 도달할 것이다. 용사는 그러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는 바삐 걸음을 옮긴다.

 

  청년은 처음으로 집단을 벗어나 혼자만의 여행길에 올랐다. 처음엔 모든 게 두렵고 막막했지만 그는 며칠 지나지 않아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많은 이들의 마음이 그에게 머물고 있었다. 보름이 지났지만 흐릉달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불안해하지 않는다. 여유를 가지고 지도와 비교해 보며 차근차근 길을 찾는다. 그리고 다시 보름이 흘러서 저 멀리 안개 너머로 무너진 성곽을 찾았다.

 

  그가 흐릉달에 도착한 것은 한 달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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