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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미운 왕자 새끼
작가 : 어사화
작품등록일 : 2019.9.1

인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달의 뒷면 지하의 깊은 바다 속에는 아름다운 용국이라는 나라가 있다. 그러나 이 나라의 종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남성, 왕자 천마가 병에 걸려 혼인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지금 그의 유일한 치료법은 생김새가 비슷한 천천 대군의 몸에 그의 뇌와 생식 기관을 이식하는 것 밖에는 없다. 여왕과 국서는 어쩔 수 없이 허락을 하고 천마의 호위병정 다니엘이 천천을 잡으러 인간 세상으로 오게 되는데 그 때부터 일이 꼬여 버렸다.
해외 파병 근무를 나갔던 천재 의사가 휴가 중에 사랑했던 사람과의 꽃잠을 이룬 다음 날 실종이 되었다. 그의 연인이었던 윤슬은 6개월을 그를 찾아 헤맸지만 끔찍한 소문만 들릴 뿐 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비틀거리던 그녀 앞에 그가 나타났다.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다고! 이런 씨 발라서 뻐꾸기에게 던져 줘 버릴 새끼라고 욕을 한 바탕 들이붓고는 정신을 잃었는데 꿈 속에서 그가 타 준 치유꽃이란 전설의 꽃의 꿀물을 마시고 난 뒤부터 그에 대한 기억만 모두 사라졌다. 정신과에서는 해리성 기억 상실이라고 하고, 주위 사람들은 불쌍하다고 했다.
한국 병원에서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옮긴 병원에 삼신 할매가 천년 묵은 산삼을 먹어가며 삼일 낮밤을 빚어낸 듯한 조각 미남의 해외 파병 군의관 출신 병원장이 새로 취임을 하는데, 이 남자 어딘가 낯설지가 않다. 거기다 이 남자와 계속 엮이는 걸 보니 그냥 스쳐 지나갈 인연은 아닌 것 같은데.......

 
아스라이 너의 목소리가 들려
작성일 : 19-10-28 22:42     조회 : 235     추천 : 0     분량 : 9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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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여자 하든지이~~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계속 들려왔다.

 

 “제발~ 잠 좀 자자고!”

 

 윤슬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조용하기만 하면 들리는 이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며칠째 진료실에서 출퇴근을 했다.

 

 연구실에 갔다가 이사장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내 여자 하라는 말에 답을 해야 할 거 같은 부담감에 피해 다니는 것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그녀를 계속 따라다니니 하루에도 몇 번을 마주친 것 같았지만.

 

 “일주일이 다 돼도 아무 일 없었잖아. 근데 뭘 보호해 준다고 지 여자 하래? 괜히 사람 마음만 뒤숭생숭하게.......”

 

 뭔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내가 지금 무슨 상상을 한 거야?”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욕실로 향했다.

 

 욕실을 나와서는 너덜너덜해진 몸과 정신을 추리닝 대신 짱순이 선물해준 명품 옷과 화장품으로 가렸다.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12월 31일! 일 년을 마무리 하는 뜻깊은 날이니까!

 

 버스 대신 택시를 탔다.

 

 이렇게 예쁘게 차려 입고 저번처럼 버스 안에서 추태를 부리면 안 되니까.

 

 눈이 올 거라는 일기 예보가 라디오에서 흘러 나왔다.

 

 잔뜩 화난 구름들로 얼굴을 가린 하늘을 보니 진짜 눈이 올 것 같았다.

 

 첫 눈이......

 

 한 해를 마무리 하는 날에 눈이 온다니 얼마나 로맨틱한가!

 

 설렘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곳곳에 정체가 되긴 했지만 예상보다 병원에 빨리 도착했다.

 

 택시에서 내리니 본관 건물 정면에 커다란 플랜 카드가 붙은 게 보였다.

 

 『축 국제 어깨 수술 수련 병원 지정』

 

 “맞다. 오늘 기념식 있다.”

 

 오늘 종무식과 윤슬이 주인공인 국제 어깨 수술 수련 병원지정 축하 기념식을 같이 하기로 했었다.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지.

 

 그녀는 손으로 머리를 콩콩 쥐어박았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이었다.

 

 화장과 복장을 말끔하게 해 와서.

 

 그녀는 코트를 한 번 쓸어내리며 발걸음을 곧장 연구실로 향했다.

 

 혹여나 이사장과 마주치기라도 할까 봐 온 몸의 신경을 바짝 세웠다.

 

 “어머, 강 교수! 너~어무 이쁘다. 치마만!”

 

 성형외과 인 공미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걸어오는 윤슬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쏘아 보고 있었다.

 

 “치마라도 이쁘다니 고맙네!”

 

 윤슬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죽자고 추리닝만 입더니 오늘 웬일이야? 치마를 다 입고. 보는 사람 아침부터 토 쏠리게!”

 

 “지는? 입술 보면 아침부터 혈액은행 습격해서 RBC 팩이라도 몇 개 뜯어 먹은 줄 알겠네.”

 

 윤슬은 눈을 흘기며 받아쳤다.

 

 “그래, 지금 많이 까불어라. 앞으로 그럴 기회가 없을 테니까.”

 

 윤슬의 어깨를 쓸어주며 공미는 미소지었다.

 

 “친한 사람처럼 왜 이래?”

 

 공미의 손을 거둬내며 말을 이어갔다.

 

 “수술실에만 들어가면 의료사고 낸다고 드디어 쫓겨나는 거냐? 부모님도 더 이 상 커버 못해 준대?”

 

 윤슬은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을 해서 속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층수를 확인했다.

 

 “이게 진짜!”

 

 약이 바짝 오른 공미는 윤슬에게 바짝 다가섰다.

 

 윤슬도 한 발짝 앞으로 다가서며

 

 “뭐! 내가 없는 말 지어 냈냐?”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를 빤히 쳐다봤다.

 

 공미가 먼저 눈을 내리깔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결혼할 거야. 내가 너무 이쁘다고 이사장님 집에서 시집 오래.”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뭐~어? 그 집 안도 취향 독특하시네.”

 

 윤슬이 눈을 부라렸다.

 

 “왜? 이사장님과 결혼한다니 이제 좀 나한테 고분고분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니. 이사장 사모님이랍시고 꼴깝 떠는 게 더 심해질 것 같은데 사직서를 써야 하나 생각 중이었어.”

 

 “흥!”

 

 그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윤슬이 얼른 올라타며,

 

 “바빠서 내가 먼저 올라갈게. 우리 폐쇄적인 곳에 단둘이 같이 있고 하는 그런 사이 아니잖아. 너는 다음 거 타!”

 

 문이 완전히 닫힐 때까지 닫힘 단추를 신경질적으로 계속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움직이자 그녀는 벽에 몸을 기댔다.

 

 한 순간 힘이 쫙 빠졌다.

 

 “뭐야? 와아~ 진짜 양아치 새끼네. 결혼할 여자도 있으면서......”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연구실에 들어와서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하지만 마음이 이상했다.

 

 서운한 거 같기도 하고 화가 나는 거 같기도 하고 미친 거 같기도 하고.....

 

 “왜 이러는 건데? 이사장이 결혼을 하든 말든 뭔 상관인데? 너 너무 이상하다 강 윤슬!”

 

 그녀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소파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뭐부터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책상 주위를 맴돌았다.

 

 그녀는 양 손으로 양 볼을 가볍게 쳤다.

 

 “정신 차려, 쓸데없는 것에 힘 빼지 말고.”

 

 코트를 벗어 옷걸이에 걸고는 가운을 걸쳤다.

 

 거울을 보며 립스틱을 덧바르고 옷매무새를 만졌다.

 

 그리고 그 동안의 성과와 소감이 적힌 인쇄물을 외우며 본관 세미나실로 향했다.

 

 세미나실 밖에는 병원 직원들과 내빈들이 간단한 간식을 먹으며 무리를 지어 이야기를 나누고 서 있었다.

 

 강단에 서서 발표 리허설을 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가운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봤다.

 

 짱순이었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치고 오늘 돌아온 모양이었다.

 

 짱순은 윤슬이 ‘여보세요’ 라고 말도 하기 전에 출근은 했는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자기에게 그럴 수 있는지 등등 쉴 새 없이 질문을 해댔다.

 

 윤슬은 세미나실에서 리허설 중이라고 간단하게 말하고 먼저 끊었다.

 

 그녀는 어디에 있었는지 전화 끊은 지 몇 초 되지 않아 나타났다.

 

 그리고는 강단 한 쪽으로 팔을 끌고 가더니 다짜고짜 따졌다.

 

 “너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제일 친한 친구를 어떻게 이렇게 배신할 수 있냐고?”

 

 짱순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윤슬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너 마귀할멈한테 당하는 거 이사장이 와서 구해 줬다며? 이사장이 이사장실로 너 불렀다며?”

 

 “으응, 그게 왜?”

 

 “야이 년아! 이사장이 너를 따로 불렀다는데 그럼 안 궁금해?”

 

 순간 아찔했다.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뭐라 하디?”

 

 짱순은 옆구리를 찌르며 대답을 종용했다.

 

 “핸드폰 돌려주더라. 복도에 떨어진 거 주웠다면서!”

 

 “진짜? 진짜 그것 밖에 없었어?”

 

 “그래. 뭘 기대한 거야?”

 

 “아니, 나는 백마 탄 왕자님처럼 나타나서 마귀할멈으로부터 너를 구해줬다기에 또 뭔가 있는 가 했지!”

 

 짱순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차마 내 여자 하라는 말을 들었다고는 하지 못하고 말을 돌렸다.

 

 “너는 그 놈이랑 휴가 잘 보냈냐?”

 

 “어! 얼마나 잘 해 주든지......”

 

 짱순은 몸을 베베 꼬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 그런 것 같았어. 전화 한 통 없었던 거 보면......”

 

 윤슬은 발표문을 보며 궁시렁댔다.

 

 “오~ 오늘 완전 이쁜데~”

 

 짱순은 기분 좋은 말로 화젯거리를 돌렸다.

 

 “치이! 네가 사 준 옷이라 그런가 보네.”

 

 “그런가? 밴딩 처리 돼 있어서 허리 부분도 편하지?”

 

 “어, 고맙다.”

 

 짱순의 휴대폰이 울리자 짱순은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맞다, 수술! 나중에 마치고 봐. 그래도 네 선물은 젤 비싼 거 사 왔어.”

 

 짱순은 윙크를 해대고는 뛰어 나갔다.

 

 윤슬이 웃으며 강단을 내려오는데 언제 왔는지 정면 귀빈석에 앉아 있는 철인과 눈이 마주쳤다.

 

 ‘내 여자 하든지~’

 

 그의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들렸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심장이 뛰었다.

 

 윤슬은 심장을 부여잡았다.

 

 심장아! 리렉스~ 리렉스 하자!

 

 윤슬이 먼저 눈을 돌리고는 심호흡을 했다.

 

 곧 식이 열린다는 방송이 흘러 나왔다.

 

 윤슬은 대기 자리에 앉아서 머리를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만졌다.

 

 드디어 윤슬의 순서가 되고, 윤슬은 그 동안의 성과와 소감에 대해 발표를 했다.

 

 윤슬이 주축을 이룬 견주 관절팀은 해외 의사들이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을 만큼 실력이 최고라는 말이었다.

 

 그 동안의 성과를 발표하면서 고생한 게 생각이 나서 그런지 박수 소리에 벅찬 눈물이 나오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그 때 강당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곧 건장한 남자 한 명이 말리는 사람들을 떼어 내고 강당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 남자는 몹시 흥분하여 3명의 관리 직원들이 붙어도 말릴 수가 없었다.

 

 “강 윤슬! 나와!”

 

 기념식장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 남자에게 쏠렸다.

 

 윤슬의 눈도 그 남자를 향했다.

 

 단번에 그 남자는 단상 위의 윤슬을 알아봤다.

 

 “니가 그리 용한 의사라며? 다른 나라 의사들도 네가 수술하는 걸 배우러 온다며?”

 

 그 남자는 윤슬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

 

 윤슬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우리 훈이한테는 왜 그랬어? 우리 훈이 어깨는 왜? 용한 의사면 다 되게 해 줘야 되는 거 아니야?”

 

 훈이? 훈이 어깨?......아!

 

 그 이름을 떠올리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기한 교수 대신 수술 했던 유망한 19세 야구 선수였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아이라 윤슬도 엄청 신경을 썼었다.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가려면 재활이 더 중요했기에, 윤슬이 직접 재활을 챙기기도 했었다.

 

 “수술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어요. 재활 운동을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하자고 했는데 퇴원을 시켜 간 것도 아버님이시고, 그 뒤로 제 연락도 안 받으셨잖아요.”

 

 윤슬은 억울했다.

 

 “수술 전처럼 구속이 안 나오잖아! 왜 애한테 할 수 있다고 희망고문을 해서 고통 속에서 살다 죽게 하냐고!”

 

 윤슬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서슬이 퍼랬다.

 

 “훈이가 죽다니요?”

 

 놀란 윤슬이 되물었다.

 

 “훈이에겐 야구가 전부였는데 야구를 못하게 됐으니 이 세상이 얼마나 지옥이었겠어? 어른도 참기 어려운데 그 어린 게......”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윤슬도 뭐라 해야 할지 머릿속이 하얘졌다.

 

 “우리 훈이 살려내. 우리 훈이 살려 내라고......”

 

 핏발을 세운 붉은 큰 눈이 순식간에 다가오더니 곧 잡아 삼킬 것 같이 윤슬에게 달려들었다.

 

 알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멱살을 잡은 손에는 힘이 점점 더 들어갔다.

 

 숨이 막혔지만 반항하지 않았다.

 

 그저 그 사람이 휘두르는 대로 밀쳐지고 땅바닥에 처박히고 또 멱살을 잡혔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가 그 남자의 손을 윤슬의 목에서 떼어내자마자, 연락을 받은 보안팀이 도착해서 그 사람을 데리고 나갔다.

 

 아직도 분이 안 풀렸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윤슬의 눈앞에서 멀어져 가고 있었다.

 

 바닥에 내팽개친 채로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기념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윤슬은 고개를 들 수도, 움직일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큰 그림자 하나가 사람들의 시선을 막으며 그녀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아까 그 남자의 손을 떼내 준 사람인 거 같았다.

 

 “괜찮은 겁니까? 숨 좀 쉬어 보십시오.”

 

 남자의 조용한 목소리는 놀이를 하듯 얼음처럼 정지한 정신을 깨우는 땡소리로 들렸다.

 

 “네, 괜찮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인 체 누구인지 보지도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시키는 대로 윤슬은 심호흡을 했다.

 

 그가 어깨를 감싸 일으켜 세워 주었다.

 

 “다친 데는 없습니까?”

 

 그의 차분하고 묵직한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머릿속까지는 아직 산소 공급이 원활이 안 되는 듯 멍했다.

 

 그는 가운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고 얼굴을 가린 머리카락들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목이 부어올랐습니다.”

 

 멱살 잡힐 때 목에 쓸림이 있어 피부가 부었다고 했지만 통증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다가와서 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더니 목에 둘러 주었다.

 

 손수건이었다.

 

 목에 쓸린 자국이 보기 싫었는지 빠른 손놀림으로 둘러 주었다.

 

 그의 가슴이 얼굴에 살짝 닿았다.

 

 그의 규칙적이고 빠른 심장 소리가 들렸다.

 

 은은한 치자 향이 좋아서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잠시만이라도 좋으니까 누군지도 모를 그의 가슴에 기대어 있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럴 틈을 주지 않았다.

 

 “문질러서 없어지는 거라면 좋을 텐데.”

 

 손수건을 둘러주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선 그가 쉰 듯한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했다.

 

 낯선 그가 하는 말들이나 행동이 전혀 싫지가 않았다.

 

 오히려 계속 무언가를 기대하게 했다.

 

 고맙다는 의미에서 윤슬은 그 사람에게 고개를 숙인 체 목례를 했다.

 

 “지금 당장 이 강당 안에 떠다니고 있는 산소라는 산소는 하나라도 빠짐없이 몽땅 다 먹어치우십시오! 안 그럼 제가 지금 당장 인공호흡 해 줘야 할 거 같으니까!”

 

 눈에 눈물이 스물스물 고였다.

 

 자신이 한 수술 때문에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데 나는 이렇게 위로를 받고 있어도 되는 건지.......

 

 고인 눈물은 곧 폭포수가 되어 흘러 내렸다.

 

 둘의 모습을 보고 있던 식장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철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울지 마십시오! 여기서는 눈물 닦아주고 싶어도, 안아 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으니 말입니다.”

 

 마치 비밀 사내 연애를 하는 남자 친구 같이 말했다.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는 정신이었지만 그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고개를 들었지만 주체없이 나오는 눈물에 가려 누구인지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남 비서가 옆에 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귓속말로 그만 하고 자리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일단 나갑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남자의 말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윤슬은 고개를 끄덕였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윤슬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다.

 

 철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를 안아 들고 사람들의 시선을 헤치며 성큼성큼 걸어서 그 곳을 빠져 나갔다.

 

 다시 한 번 식장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남 비서가 사회자에게 사인을 주며 난처한 얼굴로 그 뒤를 따랐다.

 

 “아아. 보호자의 오해에서 비롯한 해프닝으로 인해 식이 잠시 중단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며 다음 식순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

 

 윤슬이 눈을 다시 떴을 때는 그녀의 진료실 간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일어나 앉았다.

 

 그녀의 팔에는 수액이 연결되어 있었다.

 

 함께 일하는 외래 책임 간호사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 1컵을 가져다주었다.

 

 “고마워요.”

 

 윤슬은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괜찮으세요?”

 

 “네. 그런데 제가 왜 여기 누워 있는 거죠?”

 

 그녀가 간이침대에서 내려오며 외래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사장님께서 이리로 모시고 왔어요. 응급실은 시끄럽다고.”

 

 “이사장님이요?”

 

 “아참! 깨어나시면 전화 달랬는데.”

 

 “아...... 뒷수습하느라 정신없을 텐데 그냥 두세요.”

 

 “그럼, 그럴까요?”

 

 윤슬은 근심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그 때서야 세미나실에서 있었던 일들이 차차 생각났다.

 

 그럼 아까 남자 친구처럼 위로해 주던 그 남자가 이사장님?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홍보부에서 그러던데 식은 잘 마무리 됐고, 훈이 일도 그 보호자가 음주 상태에서 괜히 교수님께 화풀이 한 거래요.”

 

 “다행이네요.”

 

 윤슬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그 때 병원의 소문 일보 수현이 급하게 진료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숨을 헐떡였다.

 

 “스승님! 스승님!”

 

 “야아~ 소문 일보! 무슨 일인데 이리 호들갑인데?”

 

 “스승님하고 이사장님과는 진짜 무슨 관계예요?”

 

 수현의 뜬금없는 질문에 윤슬은 당황스런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이사장님이 스승님 여기까지 안고 왔다면서요? 목에 손수건까지 둘러 주셨다면서요?”

 

 수현은 윤슬의 목에 둘러진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며 말을 급히 이었다.

 

 “이건 대단한 사건이라구요.”

 

 “야아! 너는 지금 이 상황에 그게 중요해?”

 

 “저 뿐만 아니라 지금 병원 전체가 그 이야기로 들썩들썩 하거든요. 설마 두 분 그 렇고 그런 사이 아니죠?”

 

 가만히 생각 해 보니 아까 철인과 자신의 행동이 사람들 입에 오를 내릴만 했다.

 

 후회가 되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피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해명하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해명을 하는데 마침 소문일보 수현이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수현아 미안해! 소문 잘 내는 너의 그 입 좀 이용하자.

 

 “오늘 아침에 너 뭐 잘못 먹었어?”

 

 “이사장님이 여성인 성별을 가진 사람한테는 사적인 눈길 한 번 안 주시거든요. 그런데 스승님한테는 그게 아니니까 말하는 거죠! 크리스마스 때 일도 그렇고!”

 

 “나한테만?, 왜?”

 

 “그러니까요. 스승님한테만 왜 그럴까요?”

 

 수현은 목소리를 높이며 따졌다.

 

 “혹시나 사직서 낼까 봐 그런 거 아닐까? 내가 이래봬도 이 병원에 중요한 수입원이잖아.”

 

 “아~”

 

 수현이 빠르게 수긍했다.

 

 “그럼 사귀는 거 진짜 아니지요?”

 

 “곧 결혼할 사람을 내가 왜 건드려?”

 

 윤슬이 손톱을 긁적이며 말했다.

 

 “결혼 한 대요? 이사장님의 임자가 누군데요? 우리가 아는 사람이에요? 언제(하는데)”

 

 윤슬이 수현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야아, 정신없다.”

 

 수현은 자신을 입을 막은 윤슬의 손을 함부로 떼지도 못하고 물 밖에 나온 물고기처럼 파닥거렸다.

 

 윤슬은 고개를 내저으며 손을 떼 주었다.

 

 윤슬의 손에서 자유로워진 수현의 입은 숨을 거칠게 내쉬더니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서. 죄송해요. 누구예요? 이사장님의 임자가 될 사람이?”

 

 “성형외과 인공미!”

 

 윤슬이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역시~ 있을 줄 알았어! 강력할 줄 알았는데, 인공미 교수 정도면 뭐...... 돈 빼고 볼 거 없으니까.

  저 어때요? 나이도 어리고 이 정도 얼굴에 몸매면 이길 수 있을 거 같지 않아요?”

 

 수현의 반응에 윤슬은 놀랐다.

 

 자신처럼 화를 내거나 의기소침 할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어어.......”

 

 “오케이! 오늘부터 적극 대시! 도전!”

 

 수현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어어, 파이팅!”

 

 윤슬도 얼떨결에 두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힘없이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윤슬은 수현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이사장을 왜 좋아해? 그런 높은 자리에 앉은 놈들은 여성 편력도 심하고, 지가 이 세상의 왕인냥 지랄 꼴값 떠는 놈들이 많잖아?”

 

 “모르시는 말씀! 우리 이사장님은 그런 놈들하고는 차원이 다르다구요.”

 

 “네가 어떻게 알아?”

 

 “이사장님이 저의 롤 모델이시잖아요.”

 

 “아~ 네가 작년에 미쳐 있었다던 다시 환생했다는 히포크라테스 슈바이처!”

 

 “제가 어떻게 하면 육군 군의관이 될 수 있는지 공부도 했다니까요. 이사장님 계시는 곳에 가려구요. 아마 오징어 꼴뚜기 같이 생겨도 좋아했을 텐데 외모까지 페펙트 하잖아요.”

 

 수현은 핸드폰을 꺼내 캡처해 놓은 신문 기사 하나를 보여 주며 신난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사장님이 육군 야전병원 군의관으로 계실 때 신문에 난 기사인데요.”

 

 수현이 보여주는 기사를 읽어내려 갔다.

 

 “여기, 여기 그 때 인터뷰에서 팀장님이 하신 말들을 좀 보세요.”

 

 『그 날은 제가 마침 그 자리에 있어서 수술을 한 거 뿐입니다. 그리고 저보다 목숨을 건 수술에 망설임 없이 스스로 참여하고 끝까지 같이 해 준 동료들의 희생 정신이 더 놀랍습니다.』

 

 “캬아~ 멋있지 않아요?

 

 “오늘은 여기까지! 이사장님의 활약상은 다음번에 계속......”

 

 수현이 휴대폰 종료 버튼을 눌렀다.

 

 “수술이 있어서 이만!”

 

 수현은 신이 난 듯 폴짝폴짝 뛰어 나갔다.

 

 “그래......”

 

 윤슬은 아쉬웠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잠깐만! 저 신문기사 내가 어디서 봤더라? 분명 봤는데!”

 

 윤슬은 검지를 관자놀이에 갖다 대며 집중했다.

 

 “벨린저 상병 구하기...... 강철인 대위...... 강철인 대위......”

 

 신문에서 봤던 이름을 중얼대다 갑자기 멈췄다.

 

 눈에서는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그 남자다! 엄마 나무에서 만난 슬픈 얼굴의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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