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
 1  2  3  >>
 
자유연재 > 일반/역사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
작가 : Number3
작품등록일 : 2019.10.28

오남매의 파란만장 인생 스토리... 악연으로 끝나다...!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12화
작성일 : 19-10-28 19:59     조회 : 261     추천 : 0     분량 : 8117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꽁꽁 얼어 붙은 땅을 파기도 힘들만큼 혹독한 추위에 세상을 떠난 남편과는 달리 정숙의 옷 차림처럼 꽃 피는 봄 날, 혼자 몸부림 치다 떠난 명숙네 무덤가에는 이름 모를 꽃 한송이가 피어 있었다. 장사를 치루고 사십구제가 되어 다시 모였을 때 뒤바뀐 집안 분위기에 모두 혀를 내둘렀다. 새 집처럼 공사를 끝내고 큰 아이들이 각자의 방으로 독립을 한 것이며 온갖 살림이 새것 들이라 낯설기만 했다.

  집안을 좌악 둘러보던 금숙이 역시 한마디 하는 걸 잊지 않았다

 . “엄마 죽기 기다렸나 보네… 그래서 굶겼냐? 어쭈… 잘 나가는데… 불쌍한 노인네 살아 있을 때 좀 이렇게 하지. 순 나쁜년이야…” 명숙네 살아 생전과는 반대로 금숙의 팔딱거림에 영식네가 제까닥 반응을 보였다. “아가씨도 이제 여기 와서 간섭하지 말아욧, 그럴 자격 없으니…” 순간적으로 당한 금숙은 입을 벌린 채 제 귀를 의심하는 눈치였고 장사 지낼 때 보다 더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 어느 누구 하나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시어머니 대접은 커녕, 고양이 입에 생선을 통째로 물려주고 떠난 명숙네가 야속할 따름이었다. 덩치 큰 두 아들에게는 주어다 기른 자식처럼 온갖 학대를 일삼던 영식네가 두 눈 찍 찢어진 늦둥이만 감싸고 도는 통에 집안이 늘 어수선 했다.

  한창 미운 짓을 할 나이임에도 벌벌 떨며 역성을 들다 못해 계집애의 혀 짧은 소리에 뒤로 나자빠지는 시늉도 마다하지 않았다. 큰 아이들은 구박과 설움을 견디느라 눈치만 늘었고 간섭하지 말라는 한마디로 시누이들을 단번에 물리친 영식네는 더 기세 등등해서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허세를 부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교활하기 짝이 없는 영식네가 꼬리를 내려야 할 분위기에서는 …유…자를 붙여가며 어설픈 척 행동 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 아쉬울때면 아니어유, 그랬어유… 하며 느린 척 순한척, 은근슬쩍 구렁이 담 넘어가듯 교묘하게 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무서운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지방 출신이긴 해도 원래 사투리를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눈 찌익 내려가도록 순한 표정으로 느릿느릿 말하던 때와는 달리 금숙을 향해 마지막으로 간섭하지 말아욧.. 쏘아 부쳤을 때는 정확한 서울 표준말에 사나운 기운이 맴돌았다.

 생각 할수록 음흉한 속을 알 수 없는 연구대상 감이었다. 커 갈수록 보글보글 솟아나는 계집애의 머리털을 보며 명숙네 자매들은 먼 발치에서도 서로들 수근거렸다. 무서워서가 아닌, 드러워서 주위에 얼씬도 안 하기로 마음먹은 경숙이 자신 있다는 소리로 명숙을 부추겼다.

 “것 봐 언니… 내 말이 딱 맞지? 애까지 끌고 나가 바람 필 때부터 내 알아봤다구… 곱슬머리에 눈 찍 올라간 놈이라구 수영이가 언제 얘기 했었다며? 그 어린 눈에도 정확히 보긴 봤네. 미친년이야 한마디로… 지 새끼 수준을 뭘루 보고 바람 피우는데까지 끌고 다녔나 몰라…” 그러자 명숙이 목청을 높이며 더 흥분했다.

 “근데 영식이 놈도 진짜 웃긴다. 쪼다는 쪼다야… 지새끼가 아니라는거 뻔히 알면서도 이뻐하드라. 지 마누라 무서워 이쁜 척 해 주는건지… 으이그, 도대체가 속을 알 수 없는 년 놈들이야…” 잠자코 듣던 금숙이 앞 일까지 훤히 꿰뚫어 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야무진 소리를 했다. “언닌 참 순진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모르겠어? 안 이뻐했다간 그 년이 또 기어 나갈꺼 아냐. 한 번 나간 년이 두 번, 세 번 뭐가 무서워 못 하겠어. 그 방면엔 또 이 몸이 도사거든. 뭐든 처음이 어렵지 그 다음엔 누워서 떡 먹기보다 더 쉽거든. 그년 무서워 쩔쩔 매는 꼴 하고는… 오빠가 아니야. 쪼다라니까. 그것두 쪼다 중에 상 쪼다….” 그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명숙이 고개를 끄덕였다

 . 도둑놈 씨나 다름없는 늦둥이를 사이에 두고 살갑게 굴던 영식네의 역마살이 도졌는지 쉴 새 없이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는데 걷잡을 수 없는 바람이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끼고 돌던 늦둥이가 거지새끼처럼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변하자 하찮은 동물도 그리 함부로 내놓고 키울 수 없을 것 같은 생각까지 들었다

 . 금숙의 말대로 이번엔 아주 나가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에 치를 떨던 영식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도 금숙의 족집게 능력이 신통했던지 명숙이 우스개 소리를 했다. “너, 거적데기에 깡통 하나 꿰차고 그 길로 나서라 아예….” 명숙네가 세상을 떠난 후 꼴 같잖게 구는 년 놈들로 인해 발 길을 딱 끊었던 자매들은 지 마누라의 가출로 영식의 속이 썩든 말든 내 알바가 아니었다. 날마다 퍼 마시는 깡 술 탓인지 병색이 더 짙어져 폐인이 되다시피 했고 살기 어린 눈을 피해 다니며 공포에 떠는 아이들만 불쌍했다

 . 아들의 거울은 아버지라더니 무슨 팔자가 그 모양인지 아비의 주정에 숨어다니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 날 정도로 영식의 주정 또한 만만치 않았다. 갖을 수모를 다 당하면서도 맏이라는 책임 때문인지 명숙이 앞장서서 영식네의 이복 오빠를 수소문했는데 시누이 년들이라면 넌덜머리가 난다는 말을 서슴 없이 전했다.

  그나마 손톱 만큼이라도 남아 있는 정 때문에 찾는 건지 이번에야 말로 사생결단을 내기 위해 찾는건지 아무도 그 속내를 알 수 없었으나 영식은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명숙의 가게로 낯선 전화가 걸려 오던 날, 왕십리 무슨 병원 응급실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영식을 주정뱅이로 오인한 채 한나절을 방치했으나 누군가의 신고로 119에 실려 갔다는 말을 전했다. 저혈당으로 지 몸 하나도 지탱하지 못하는 놈이 굶고 다니며 허우적거렸을 생각을 하니 그래도 핏줄이라고 명숙의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다

 . 그러면서 속으로 단단히 벼르며 이를 갈았다. “썩을 년.. 눈에 띄기만 하면 박살을 내버릴 테다…” 영식이 꽤 긴 시간 입원해 있는 동안 영식네가 몰래 드나들며 재산이랄 것 까지도 없는 것들을 싸그리 챙겨갔다. 어린게 눈에 밟혔던지 늦둥이만 데려가면서 장 씨알머리는 지긋지긋 하다는 내용의 개발새발 휘갈긴 쪽지를 남겼다. 걸핏하면 명숙네가 악담처럼 퍼붓던 과거가 생각나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장 씨알머리라면 지긋지긋해…” 무식한게 용감하다고 나름대로의 이혼 서류를 말끔히 정리한 채 지 멋대로 끝을 냈다. 어설픈 쪽지의 내용으로 보아 늦둥이는 장씨가 아닌 것이 확인 된 셈이었고 아픈 몸에 알거지로 이혼당한 영식은 팔을 긋는 쪼다 짓을 했다

 . 어거지로 선택한 인생에 수준이 안 맞아 못 살겠노라 푸념을 하던 영식의 악연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제대로 피지도 못한 불쌍한 인생이었다. 교묘하게 볶는 것도 모자라 팔자에도 없을 것 같은 손주 타령에 질릴대로 질린 경숙이 행적을 감추었다.

  아니 아들을 낳던지 혼자 나가 살던지 결정을 하라는 노인에 명령에 복종해 주느라 이게 왠 떡이냐 싶어 얼씨구나 하고 나왔다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이었다

 . 쪼들릴 망정 이 꼴 저 꼴 안보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절로 펴졌다. 남편이 보란 듯이 아이들에게는 끝까지 잘 키워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쪽지만 형식상 남긴 채 혼자 방을 얻어 나오긴 했으나 너무 신나고 좋은 나머지 웃음이 저절로 실실 나왔다

 . “용호 애미 집 나간거 다 엄마 탓이니까 애들 책임 져요. 여자들 등살에 내가 지레 죽게 생겼으니… 아, 그리구 손주 타령 좀 그만하슈. 아들 놈 키워놔야 무슨 영활 보겠다구…” 셋 씩이나 딸린 아이들을 노인네에게 떠맡기고 수시로 드나들던 남편은 이제야 정말 신혼 같다며 좋아하는 눈치였다. “다 지나서 하는 말이지만 장모님 같이 살때두 그렇고 눈치는 좀 보이드라. 처제 드나들며 난리칠 때면 생지옥이 따로 없는 것 같고… 말을 안 해 그렇지 좀 지나치긴 하드만… 여자들이 어째 그리 술들을 좋아하는지, 참 대단해 당신네 자매들…” 지난 시절을 돌이켜 보면 친정에 얹혀 살면서 경숙 자신도 불편하게 한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남편이야 오죽 했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부잣집에 데릴사위 들인 것도 아니면서 아침 잠 없다는 핑계 김에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바시락거리며 얼마나 큰 체를 하던지 보기에도 민망했다. 어쩌다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 그 옛날 주정뱅이 남편에게 하던 식으로 술이라면 지긋지긋 하느니, 넌덜머리가 나느니 하며 상대방을 궁지로 몰아넣는데 선수였다.

 영식으로 인해 분가를 하던 날, 그 날도 남편은 정말 신혼 같다며 어찌나 좋아 하던지 경숙의 마음이 찌릿찌릿 아팠던 기억이 지워지질 않았다.

  내색은 하지 않아도 처가살이의 설움이 컸기 때문인지 단 둘이 있는 시간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그 짓도 잠깐이더니 다시 엄마 타령을 하는데 하루가 멀다하고 말 끝마다 엄마 엄마, 노래를 불렀다. 하긴 떨어져 있어도 경숙이 수 차례씩 아이들을 몰래 보러 가는거나 다 큰 어른이 제 엄마 찾는거나 다 같은 심정이겠지 싶어 별로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마음으로는 넌 우리 엄마한테 그렇게 잘 가봤냐… 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었으나 가고 없는 사람 들먹이는 일조차도 하기 싫었다. 같이 살던 지난 날에 서운할 걸로 치자면 장모나 사위나 마찬가치 였을 꺼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깢 손가락 하나 다친 것으로 어리광에 심한 엄살까지 부리며 바카스라도 사들고 드여다 보았느냐 따지는데 그 투정에 맞서던 경숙이 속에 품었던 서운함을 모두 쏟아냈다. “어머니, 남들도 엄마 죽어 상심이 크겠다고들 해요. 어머닌 손가락 다쳤다는 핑계로 장례식에 오시기나 했어요? 정말 너무 하시네요…” 그 말을 듣던 노인네는 속이 터진다는 듯이 가슴을 퍽퍽 두드리며 심통을 부렸다. “어차피 나이 먹으면 언젠가는 다 죽게 마련인게야. 그리고… 너무 서운하게 생각할 것 없다. 여자가 죽은 상가엔 가는게 아니라더라…” 말도 안 되는 뻔뻔스런 소리에 가슴을 치고 싶은 것은 오히려 경숙이었다.

  이게 무슨 개뼉다귀 뜯는 소린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노인네의 억지가 불쌍할 정도였다. 어쩌다 부딪치는 노인네와의 댓거리 조차도 불편했던지 남편이 점점 더 큰 소리를 내며 닥달을 했다. 맘이라도 편하자고 방을 얻어 독립을 한 것이 아니라 성가신 혹을 달고 사는 느낌이 들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지 어머니 소리가 엄마로 둔갑하는 꼴도 보기 싫어 못 들은척 무시를 하자 쿵쾅거리며 염병을 떠는데 아이구 웬수… 소리가 절로 나왔다.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점점 더 난폭해지는 남편을 보며 중간에서 이간질 하는 노인네에게 오기를 부리던 경숙은 약이라도 먹여 둘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

  솟구치는 눈물을 참으며 그전 같으면 남편을 사랑하기 때문에 잘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으나 이젠 그런 남편으로 인해 가졌던 마음까지도 싹 정리하고 싶었다. 날이 갈수록 괘씸하고 미운 마음이 노인네보다 남편 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교활한 노인네와 덩치 큰 마마보이 사이에 끼어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던 경숙은 다른 것 다 필요 없으니 아이들만 달라는 요구를 했다. 그것은 차마 못하겠던지 눈이 찌익 내려앉던 남편이 아이들과 경숙을 위해서라면 노인네와 의절하겠다는 결심을 했으나 그리 오래 가지 못 할 결심이었다. 입으로만 멀리 하느니, 다신 안 본다느니 떠들어 대던 남편은 어미새의 둥지를 기웃거리며 잠시나마 외면 했던 시간들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머릴 조아렸다. 안성댁과 주정뱅이 아비가 머릴 맞대고 명숙네를 헐뜯던 그 시간처럼 둘은 머리만 맞대면 역적모의라도 하는 것처럼 끝없이 경숙을 헐뜯었다.

  다 큰 어른의 입에서 나오는 엄마 소리가 징그러울 만큼 혐오스러워 귀를 틀어 막고 싶다는 충동까지 들었다. 경숙을 피해 노인네 특유의 간교함으로 아들을 차지한 어미새는 행복에 겨운 모습이었다. 어미새의 품에서 속닥거리는 날이 많아짐에 따라 뒷걸음 치던 모습은 처음 만나던 날의 당당하고 자상한 모습이 이미 아니었다

 . 연애시절, 낮고 그윽한 음성으로 사랑을 노래하던 그 목소리가 아까울 만큼 말투도 점점 쌍스럽기 짝이 없는데다 걸핏하면 형제들까지 들먹이며 속을 뒤집었다. “니네 형제들 팔자 한 번 끝내준다. 어째 하나같이 그 모양들이냐…” 점잖은 척, 자상한 척, 감싸주던 남편의 모습은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모습을 보며 경숙은 남편과 연관 된 끈을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하는 심정으로 그를 처음 만나던 날의 맞선을 떠올렸다.

  남겨질 아이들 생각에 가슴이 아파서 마음을 추스리며 화를 달래다가도 금방 다시 치밀어 올라 자신을 주체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노인네가 생일을 핑계 삼아 남편을 낚아 갔을 때 경숙은 마지막 결심을 했다. 아이들에게 만일… 이라는 가정하에 부모의 이혼에 대해 물어보니 큰 아이는 둘이 알아서 하되 어떠한 불편도 주지 말라는 식으로 쏘아 부쳤다.

  순하고 여린 둘째는 즈이반에 엄마 없는 아이가 너무 불쌍해 애들끼리 그 애 얘기하면서 울었던 적이 있었는데 엄마든 아빠든 양쪽 다 있는게 좋다며 눈물을 흘렸다

 . 경숙의 성격이면 모습까지 고대로 빼닮은 막내는 “그래, 이혼만 해 봐라… 확 뛰쳐나가 내 멋대로 살 테니…” 하는 행동이나 말투 하나까지 경숙의 어릴 적 모습을 연상시켰다

 . 아이들과 슬픈 대화를 하며 하나도 슬프지 않은 척 차렸던 마지막 생일상의 임자는 그 날 돌아오지 않았고 경숙은 밤 새 짐을 사이좋게 나누었다. 면도기에 칫솔까지 완벽하게 싸 놓은 보따리를 보며 부딪치는 순간, 어떤 말로 멋지게 해치울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덜그럭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남편이 들어서는 동시에 짐 꾸러미를 날리며 아무 감정도 섞이지 않은 목소리로 아주 작게 “나가…” 그 한마디만 던졌다.

  어떤 변명이나 핑계 따위도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커다란 등치로 거뜬히 막아선 남편의 입에서는 계집애처럼 조잘거리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내가 왜 나가냐… 나가려거든 니가 나가지…” 경숙의 등 뒤에 있던 아이들을 발견한 남편은 마주치는 시선이 두려웠던지 금방 말투를 고쳤다. “이 사람이 왜 이래.. 애들 보는데 챙피하지두 않어?...” 큰 애라면 간도 빼 줄 만큼 좋아하던 아이의 입에서 “우리 아빠 맞어…? 창피해 못 살겠어…” 소리를 하며 눈을 흘기자 당황하는 남편의 모습이 처참해 보였다.

  둘째는 슬그머니 남편의 팔을 잡아 끌며 소리 없이 눈물만 주루룩 흘렸다.

 “아빠, 그냥 얼른 들어가요. 엄마한테 먼저 잘못했다구 사과하시면 되잖아요.” 무대뽀에 고집통머리 막내가 “그래, 이 따위로 살려거든 그만들 끝내. 이혼이 애들 장난도 아니고… 우리들이 싸울 땐 왜 뭐라구 했어? 어른들이 더 싸우면서. 그런 모습 보는 나두 짜증나…” 하며 열두살 답지 않은 말투로 지겨움을 표시했다

 . 오남재 중에 네명이 아무렇지도 않게 해치우던 이혼을 심각하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느 한 쪽의 잘못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만 여겼었는데 막상 코 앞에 닥쳐 보니 부모의 이혼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지, 또 얼마나 큰 상처로 남을는지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살면서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질까 그것이 두려워 자신을 굽힐 수가 없었다

 . 남편과의 문제라면 불협화음 없이 잘 할 수도 있었으나 가장 큰 문제점이 간교한 노인네였다. 언젠가 잠든 노인네의 손금을 장난 삼아 몰래 들여다 본 적이 있었는데 운명선이 어찌나 길게 뻗쳐있던지 경숙이 뜨악해서 소리쳤다.

 “어머닌 벽 뿐 아니라 천장까지 똥 칠 하면서 오래 사시려나 봐…”

 그 소리를 들으며 앞으로 얼마나 더 사신다구.. 하던 남편의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얼른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더 절실했다.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거북하고 짐스러운 존재였다. 은근슬쩍 내던져진 짐을 슬금슬금 풀던 남편에게 경숙이 작은 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새끼들 다 팽개치고 나 혼자 없어져 줄까, 아니면 단체로 약 먹고 뉴스거리 만들어 줄까…”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아주 조용히 말하는 경숙의 모습이 섬찟 하리만큼 무서웠다. 제 입으로 쏟아내는 말 그대로를 행동으로 옮기고 마는 성격이란 걸 아는 남편은 그제서야 상황 파악을 했던지 푹 떨구었던 고개를 빳빳히 들고는 소리를 질러 댔다

 . 목청 큰 놈이 이긴다고 등치만큼 커다란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도록 질러대는 소리가 과히 예술이었다. “이혼이 무슨 유행인 줄 아냐? 오… 너도 나도 다 하니 한번 해 보겠다 이거군. 하긴 다섯 중에 하나 남아 봤자 어디 빛이나 나겠어?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암, 풀 세트로 해야지… 그거 별거 아니야. 이혼녀들 무리 속에 끼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인데 내 얼마든지 해주지…” 그 말을 듣던 경숙은 마지막까지 치사하고 든적스럽게 구는 남편을 쳐죽이고 싶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지만 오남매의 마지막 이혼은 경숙의 참패였다.

  모든것이 다 끝나버린 서글픔 외에는 이제 더 이상의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질 않았다.

  얼키고 설킨 인연의 끝은 결국 악연이었다는 것 밖에는…!

 

 

 
작가의 말
 

 .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12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12화 2019 / 10 / 28 262 0 8117   
11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11화 2019 / 10 / 28 278 0 16578   
10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10화 2019 / 10 / 28 256 0 9875   
9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9화 2019 / 10 / 28 239 0 17755   
8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8화 2019 / 10 / 28 259 0 17380   
7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7화 2019 / 10 / 28 269 0 17575   
6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6화 2019 / 10 / 28 237 0 15363   
5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5화 2019 / 10 / 28 248 0 19207   
4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4화 2019 / 10 / 28 239 0 19037   
3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3화 2019 / 10 / 28 252 0 18808   
2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2화 2019 / 10 / 28 232 0 19069   
1 인연, 악연으로 마침표...1화 2019 / 10 / 28 400 0 15494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