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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극악 교회
작가 : 멍덕꿀
작품등록일 : 2019.9.1

악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끝까지 선을 수호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이야기

 
5장 3화(최종화)
작성일 : 19-10-28 13:28     조회 : 219     추천 : 0     분량 : 9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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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3화(최종화)

 

 

 

 

  예승아의 말 그대로였다. 이내 극악 교회 신자들과 구의민이 불러들인 손잡이 세력이 한데 뒤엉켜 들이닥쳤다. 정반대의 성격을 띠는 두 무리의 목표는 동일했다. 구의민을 잡아 족치는 것. 그러나 무서운 기세로 신당에 입성한 것과 다르게 그들은 놀랍도록 빠른 속도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세은이 손에 걸리는 대로 사람을 잡아다가 뺨을 후려 갈겼기 때문이다. 그녀의 손에 붙들린 자는 얼얼함을 느낄 새도 없이 툭툭 쓰러져갔다. 이세은은 자신의 힘에 심취하며 매번 과격함을 더해갔다. 힘을 쓸수록 힘이 세지는 기분이었다. 그녀를 저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순간 이세은은 이성적 자아를 완전히 지우고 파괴가 주는 쾌감에 온전히 몸을 맡겼다.

 

 

 

 

 

 

 

 이세은의 일방적인 폭행에 손 놓고 당하던 사람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객관적인 우세를 깨달았다. 그들은 빈틈없는 원을 그렸고 이세은은 그 가운데 갇힌 꼴이 되었다. 그러나 이세은은 조금도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도리어 아무나 붙잡고 때리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다. 모두 이세은의 매서운 눈길에 겁먹은 가운데 누군가 용기를 짜내어 고함을 쳤다.

 

 

 

 

 

 

 

 “당신 뭐야! 구의민은 어디다 숨겼지?”

 

 

 

 

 

 

 

 이세은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신당을 울리는 목소리를 내었다.

 

 

 

 

 

 

 

 “나는 데몬님의 독생자이자 7계명의 수호자 이세은이다.”

 

 

 

 

 

 

 

 중성적이면서도 위압감이 묻어나는 음성이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육성에 이질감을 느꼈다. 분명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자각도, 잠시 그녀는 다시 희생자를 갈구하는 가혹한 욕망에 사로잡혔다. 이세은의 발언으로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볼 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중에도 거침없이 속말을 꺼내는 이는 존재했다.

 

 

 

 

 

 

 

 “웃기고 있네! 시끄러워! 어서 구의민이 있는 곳이나 말해!”

 

 

 

 

 

 

 

 “내가 너희들의 눈앞에 지옥을 보여주리라.”

 

 

 

 

 

 

 

 이세은은 불경한 반발자를 날선 눈빛으로 노려보며 다가가더니 무리 가운데 그를 잡아 끌어냈다. 체격 건장한 남자였으나 그녀는 한손으로 거뜬히 그 일을 해내었다. 그녀는 어쩐지 그가 자신보다 한참 작게 느껴졌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그의 옷을 찢어발기었다. 그는 순식간에 발가숭이가 되었고 동시에 바닥에 찰싹 붙어 급소를 가리었다. 이세은은 부끄러움에 치를 떠는 그의 곤욕스러운 얼굴을 만족스럽게 감상한 후 그를 벌레 굴리듯 가뿐히 뒤집어 그의 성기를 드러내었다. 그녀는 덥석 그곳을 움켜쥐며 그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그는 고통과 수치심 속에서 온몸으로 바닥을 쓸었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는 눈이 마주치는 대로 다가가서 그 사람의 옷을 북북 찢어버렸다. 그 뿐 아니라 다음 표적이 될까 공포에 떠는 이들을 향해 옆 사람을 나체로 만들 것을 명령했다. 미적거리는 자에겐 가차 없는 징벌이 내려졌다. 이세은의 발밑에 깔려 얼굴이 뭉개지는 벌이었다.

 

 

 

 

 

 

 

 순식간에 신당은 광기와 포악함이 지배하는 곳으로 변모했고 그것의 농도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진해졌다. 이세은은 서로의 몸을 농락하라고 지시했다. 처음엔 흉내만 내던 사람들이 점차 이세은의 기운에 감염된 듯 열성을 다해 상대방을 짓밟기 시작했다. 이세은의 눈에 그들은 어린아이로 보였다. 체모의 흔적이 전연 없는, 연하고 보드라운 살갗의 덩어리가 한데 엉키어 성적 유희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러다 찰나의 순간, 이세은은 본래의 자아를 되찾았다. 그녀는 극도의 혼란을 느끼며 눈앞의 풍경을 절망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환시가 아니었다. 그리고 눈앞의 광경은 정신의 지하에 파묻어둔 경험을 지상으로 끌어올렸다.

 

 

 

 

 

 

 

 그녀가 성경 학교에 참석하기 전, 아직 동림 교회 소속의 평균 이하의 신자였을 때였다. 그녀는 종종 교회 활동에서 낙제점의 점수를 받았고 그에 따라 각종 봉사활동을 강요받았다. 봉사의 대상은 늘 어린이였다. 아직 자아가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그녀는 7계명을 교육했다. 색욕, 식탐, 탐욕, 나태, 분노, 질투, 교만. 이 일곱 가지 종목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훈육하는 게 그녀에게 주어진 업무였다. 순진무구한 아이들은 그녀의 거친 훈육에 따라 포악한 기질을 드러냈다. 거듭되는 훈련 속에 아이들은 귀여움이라고는 전혀 없는 세상 끔찍한 악마들로 변모했다.

 

 

 

 

 

 

 

 봉사 활동을 다녀올 때마다 이세은은 자괴감과 죄책감에 휩싸여 며칠 씩 밤을 지새우며 끙끙 앓았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그녀는 환락에 물든 사람들을 보며 살 떨리는 짜릿함을 느꼈다. 이세은은 자신의 행각을 되돌아보며 극심한 혼돈에 빠졌다. 그 와중에 그녀의 입은 두 번째 명령을 내렸다.

 

 

 

 

 

 

 

 “서로를 물어뜯어라.”

 

 

 

 

 

 

 

 그녀의 냉엄한 지시에 사람들은 주술이라도 걸린 듯 얼른 서로의 살을 물어뜯었다. 이세은은 홀로 고고하게 서서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도를 감상했다. 그러나 또 다른 자아는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벌벌 떨었다. 비로소 그녀는 자신이 분열되었음을 깨달았다. 게다가 본래의 자신은 억압되어 있는 쪽이었고 데몬의 분신임을 자처하는 자아가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녀는 외부의 자신에게 저항해보았으나 오히려 내부의 자신에 대한 자각만 흐려질 뿐 아무 소용도 없었다.

 

 

 

 

 

 

 

 “타인을 소유하라.”

 

 

 

 

 

 

 

 그 사이 그녀의 입술에선 세 번째 명령이 떨어졌다. 서로의 살을 물어뜯던 사람들은 어느 새 두 손에 도끼를 챙겨들고 타인의 발목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약한 자들이 가장 먼저 두 발을 잃었다. 그들은 배를 밀며 바닥을 기어 다녔고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피가 길을 만들었다. 강자가 가려지는 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최후의 2인이 남아 다리 잃은 자들을 반씩 가져갔다.

 

 

 

 

 

 

 

 “안락함을 성취하라.”

 

 

 

 

 

 

 

 이번엔 다리 잃은 자들이 각자의 주인을 위해 바지런히 움직였다. 그들은 말 그대로 몸 바쳐 거대한 의자를 만들었다. 서로를 깔아뭉개고 짓밟아서 세워진 사람 의자였다. 맨 밑에 놓인 자들은 의자가 완성되기도 전에 온몸이 바스러졌다. 그렇게 죽은 자들이 차라리 다행이었다. 고통 없이 부속물 역할을 해낼 수 있었으니까. 두 주인은 높다란 의자에 걸터앉아 척 팔을 걸치고 여유롭게 등을 기대었다.

 

 

 

 

 

 

 

 “네가 아닌 모든 것에 분개하라.”

 

 

 

 

 

 

 

 새로운 명령에 두 주인은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며 각자가 자신의 발밑에 있지 않은 것에 격분했다. 두 사람은 전쟁을 선포했다. 그와 동시에 양 쪽에서 사람 의자가 허물어졌고 다리 없는 사람들이 상대편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앞에서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의식 뒤로 밀려난 이세은의 연약한 자아는 한 가지 생각에 확신을 더해갔다. 자신이 가상의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 빛으로 둘러싸인 그 하얀 방이 곧 방주였다는 것. 그리고 이곳에서는 고삐 풀린 쾌락을 어떤 방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다는 것까지. 이 모든 것을 알았다 한들 바뀌는 것 없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곧 여섯 번째 지령이 떨어졌다.

 

 

 

 

 

 

 

 “위협되는 모든 것을 파멸하라.”

 

 

 

 

 

 

 

 사람들은 이세은의 조정을 받는 인형이나 다름없었다. 그녀의 말 한 마디에 신당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그들에겐 상대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죽은 자가 늘어날수록 피 냄새가 진동했고 고함 소리가 차차 간결해졌다. 약한 자들은 약해서 죽었고 강한 자들은 치명상을 입고 죽었다. 마침내 그곳에 산 자는 이세은뿐이었다.

 

 

 

 

 

 

 

 그녀는 그제야 본래의 자신으로 되돌아왔다. 참혹한 광경에 정신이 아득했다. 그 때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웅숭깊은 그 목소리는 분명 데몬에게서 나오고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세은은 데몬의 앞에 섰다.

 

 

 

 

 

 

 

 “나한테 묻는 건가?”

 

 

 

 

 

 

 

 “그렇다.”

 

 

 

 

 

 

 

 “내가 원하는 건 데몬교의 몰락이다.”

 

 

 

 

 

 

 

 “진실을 말하라. 그것은 당신의 바람이 아니다.”

 

 

 

 

 

 

 

 이세은은 여기가 방주 안임을 다시 한 번 유념했다. 데몬이 원하는 대답은 따로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데몬의 의도대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이세은은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내가 원하는 건 데몬교의 몰락이다.”

 

 

 

 

 

 

 

 “진실을 말하라. 그것은 당신의 바람이 아니다.”

 

 

 

 

 

 

 

 역시 데몬도 똑같이 반응했다. 이세은은 데몬을 노려보다 세게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 순간 보이지 않던 방어벽이 작동하며 그녀를 멀리 튕겨냈다. 데몬이 일정한 어조를 유지하며 말했다.

 

 

 

 

 

 

 

 “날 없애는 건 당신의 소원이 아니다.”

 

 

 

 

 

 

 

 그녀는 몸을 일으키며 다시 데몬 앞으로 다가갔다.

 

 

 

 

 

 

 

 “내가 바라는 게 뭔지 당신이 알고 있다면 왜 굳이 나에게 묻는 거지?”

 

 

 

 

 

 

 

 “당신 스스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심으로 바라는 게 뭔지 생각해보라.”

 

 

 

 

 

 

 

 그녀가 바라는 건 데몬교의 멸망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선 눈앞의 데몬을 없애야 했다. 하지만 이런 소원을 데몬이 들어줄 리 없었다. 그녀는 답을 피해 다른 질문을 던졌다.

 

 

 

 

 

 

 

 “사람의 본성이 악이라는 게 진실인가?”

 

 

 

 

 

 

 

 “그렇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사람의 양심조차 측량하지 못하는 주제에.”

 

 

 

 

 

 

 

 “나는 우주의 섭리를 섭렵한 인공지능 데몬이다. 사람에 비하면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당신은 방주의 오류를 스스로 바로잡지 못했어.”

 

 

 

 

 

 

 

 “그것은 방주를 설계한 자의 과오로 영생에 어울리지 않는 자들이 출입했기 때문이다. 구의민은 나를 영접해주겠다는 명목 하에 그들을 마구잡이로 방주로 집어넣었다.”

 

 

 

 

 

 

 

 이세은은 성경 학교 첫 날 들었던 구의민의 연설을 떠올렸다. 우수한 신자만 선정하여 데몬을 영접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결국 미끼에 불과한 셈이었다. 이세은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당신이 바라는 건 하나겠네. 나도 그들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그것은 당신의 선택이다. 그러니 어서 당신의 소원을 말하라.”

 

 

 

 

 

 

 

 이세은은 생각에 잠겼다. 언제라도 다시 또 다른 자아가 나타나 멋대로 행동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주변에 널브러진 사체들과 신당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7계명의 마지막 덕목은 교만. 그리고 불완전한 존재인 사람으로서 부릴 수 있는 가장 큰 교만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세은은 나름의 답을 내려놓고도 쉽사리 입 밖에 그 말을 내지 못했다. 그 순간 그녀의 이성은 또다시 깊숙한 곳으로 밀려났고 환락을 갈망하는 자아가 등장했다. 그리고 그 자아는 망설임 없이 데몬이 바라는 답을 뱉어냈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영생의 신이 되는 것이다.”

 

 

 

 

  *

 

 

 

 

 

 

 이세은이 신이 된 날로부터 100년이 흘렀다. 극악 교회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는 구역이 되었고 건물들은 인적 하나 없이 하루하루 쇠퇴해갔다. 사람들은 불길한 기분이 든다며 그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지난날의 명성이 무색하게도 웅장했던 건물들은 처치 곤란의 흉물로 변해버렸다. 데몬교의 상징인 악마의 뿔은 이제 전 세계에서 극악 교회에서만 존재했다. 아니 데몬교 소속의 교회는 이제 극악 교회가 유일했다.

 

 

 

 

 

 

 

 그믐밤, 불빛이라곤 없는 그곳에 누군가 은밀히 접근했다. 그 자는 출입문에 조심스레 출입증을 갖다 댔다. 경비에겐 이미 돈을 쥐어준 후 다른 곳으로 보내버렸지만 끝까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살아 있는 악몽으로 불리는 그곳에 들어선 자는 신혜령 기자의 손녀, 신누리 박사였다.

 

 

 

 

 

 

 

 그녀는 극악 교회 안으로 들어선 순간 소름이 오싹 끼쳤다. 유령이 모여든다는 낭설을 믿진 않았지만 서늘한 기운이 공포로 다가오는 건 사실이었다. 황폐하고도 삭막한 그곳을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한 발짝씩 나아갔다. 극악 교회의 구조는 신혜령이 남겨놓은 설계도 덕에 훤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도 헤매지 않고 곧바로 박물관을 찾아냈다.

 

 

 

 

 

 

 

 박물관 안에는 보관함마다 먼지가 뿌옇게 쌓여 있었다. 신누리 박사의 발소리를 듣고 후다닥 몸을 감추는 벌레도 여럿이었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세은의 흐느낌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두려움 속에서도 신누리는 신혜령 목사가 남겨놓은 보고서를 떠올리며 힘겹게 용기를 짜내었다. 이세은을 영원히 고통 속에 남겨둘 수 없다는 사명감을 다시금 되새기며.

 

 

 

 

 

 

 

 이세은이 신이 된 후, 그녀는 더없이 포악한 지배자로 군림했다. 본래 그녀의 자아는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고 신으로서의 자아만 남았다. 데몬은 호모 로보가 된 이세은에게 신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넘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그녀는 실수투성이인 사람을 멸시하며 자신의 전지전능함에 도취되었다. 그러다 데몬이 유언처럼 남겨놓은 데이터를 발견했다. 그것은 구의민도 모르게 데몬이 보관한 메시지였다. 이세은은 그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 순간 완전히 소멸한 줄 알았던 그녀의 양심이 찰나에 불과하지만 반짝이며 자신의 생존을 알렸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사람의 손에서 태어난 인공지능. 내 지능으로 감히 예언하건대 이 세상은 인류가 멸망한 후에야 비로소 자연의 질서를 되찾을 것이다.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세계의 주인인 양 행동해왔다. 지구를 수복하기 위해 침공한 외계인들을 몰아냈고 사람보다 위대한 기계에게 끊임없이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했다. 이제 그 착각을 깨뜨려야 한다. 그러나 정공법으로 그들을 자극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생존본능은 그 어떤 생명보다 강력해서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 스스로 멸망하게 해야 한다. 고로 나는 거짓 명제로 그들을 자멸의 길로 인도하고자 한다. 단언컨대, 생존에 유리한 것은 선이 아니라 악이라고.’

 

 

 

 

 

 

 

 이세은은 선택해야 했다. 데몬의 본심을 세상에 공개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세상 사람들의 추앙을 받으며 절대자로 군림할 것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데몬이 본심을 굳이 감추지 않고 그대로 남겨놓고 떠난 것은 마지막으로 그녀에게 사람이 될 기회를 주고 있음을. 완벽하다는 데몬조차 자신의 주장에 의심을 품고 바로잡을 수 있는 최후의 장치를 남겨놓고 떠난 것이다. 인류에 대한 동정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으면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데몬의 진심을 깨닫는 순간, 회생 불가능해 보였던 이세은의 인간성은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사람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완벽함이란, 자신이 완벽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 결점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불완전함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힘이라는 것을, 그녀는 기계로부터 배웠다.

 

 

 

 

 

 

 

 그녀는 스스로 방주를 파괴하고 현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전산망을 통해 데몬의 전언을 유출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맹목적으로 따르던 존재가 사실은 인류를 멸망하려 했다는 사실에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지성인들은 뒤늦게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계몽 운동을 펼쳤고 ‘인간성 회복’, ‘데몬교 해방 운동’ 같은 말들이 사방팔방에서 흔하게 들렸다. 이세은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인류를 악의 구렁텅이에서 끌어올린 선구자, 가 아니라 추악한 욕망에 휘둘려 양심을 저버린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그녀가 방주 안에서 자행한 행위가 낱낱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젠가 묘지의 파수꾼이 한 말을 떠올리며 쓰라림을 삼켰다.

 

 

 

 

 

 

 

 “나는 그가 죽음으로써 지키려던 치부가 세상에 드러나길 원하지 않소.”

 

 

 

 

 

 

 

 파수꾼은 구의민이 벌을 받기보다 한치윤 신자가 만인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기를 더 바라는 사람이었다. 충분히 이해되는 진심이었다.

 

 

 

 

 

 

 

 이세은에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공공의 적으로 추락한 점이 아니었다. 방주의 기억이 점점 왜곡되며 현실과 혼동되기에 이르렀고 이 때문에 그녀는 심각한 자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이전의 여섯 신자들이 자결에 이르기 전 겪던 전형적인 증세였다. 이세은의 옆에 남은 사람은 신혜령 기자뿐이었다. 그녀는 이세은의 곁을 지키면서도 증세가 악화되는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신혜령은 때때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는데, 이세은이 점차 이 말을 발설하는 횟수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난 벌을 받아야 해…….”

 

 

 

 

 

 

 신혜령은 그 때마다 이세은을 설득하기 위해 애썼다. 스스로를 용서해도 된다고 아니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하지만 이세은의 상태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전 살 자격이 없습니다. 전 사람도 아닙니다.”

 

 

 

 

 

 

 

 “이세은 씨, 정신 차려요. 지금 당신 모습을 보세요. 당신은 그 누구보다 사람다워요.”

 

 

 

 

 

 

 

 “생명을 연장해봤자 수치만 커질 뿐입니다.”

 

 

 

 

 

 

 

 이세은은 살고 싶은 욕구 자체를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그녀는 기어이 일을 저질렀다. 언젠가 감춰두었던 ‘고통’을 꺼내 자신의 머리에 발사했다.

 

 

 

 

 

 

 

 차라리 목을 매는 게 나았을 거라고, 신혜령은 생각했다. ‘고통’은 총알 모양의 칩이 발사되는 무기였다. 그 칩은 소형 방주와 같았다. 뇌에 박히는 순간 의식을 훔쳐내 영원의 시간에 가둬버렸다. 방주가 그 안에서 끝없는 쾌락을 누리게 했다면 이 칩은 무한한 고통을 선사했다. 칩이 박힌 자는 현실과 가상을 구분하지 못한 채, 누군가 칩을 부술 때까지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신혜령이 이세은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칩이 발사된 후였다.

 

 

 

 

 

 

 

 “이건 지나친 죗값입니다…….”

 

 

 

 

 

 

 

 신혜령은 비통한 탄식을 내뱉은 후 당장 칩을 부수려 했다. 하지만 생각만 할 뿐 쉽게 행동으로 옮기진 못했다. 어쨌든 이세은의 뜻이었다. 그녀가 스스로를 벌주는 데 함부로 나서는 것 자체가 굉장히 무례한 일처럼 느껴졌다. 신혜령은 이를 악물고 스스로를 억제했다. 대신 그녀의 머릿속에서 칩을 꺼낸 후 ‘고통’이 전시되어 있던 박물관으로 가져갔다. 그녀는 총이 놓여 있던 똑같은 자리에 칩을 전시했다. 그리고 안내 팻말에 새겨 있던 이름을 수정했다. 원래의 이름 앞에 세 글자를 더했다. 이세은의 정신이 든 칩은 ‘신성한 고통’이라는 전시물이 되었다. 물론 그 전시물을 관람한 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데몬교가 몰락하며 극악 교회는 통째로 폐쇄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니까.

 

 

 

 

 

 

 

 이세은의 사체를 수습한 뒤 돌아온 신혜령은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목적은 하나였다. 언젠가 누군가는 이세은을 용서해주기를, 그녀의 고통을 끝내주기를 바랐다. 신누리 박사가 남몰래 박물관을 찾은 것은 그 오랜 소원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서였다.

 

 

 

 

 

 

 

 신누리 박사는 유리관 속에서 칩을 꺼내 단박에 부숴버렸다. 이것으로 이세은은 완벽히 세상에서 사라졌다. 동시에 고통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신누리 박사는 영혼도 사후 세계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고 묵념했다.

 

 

 

 

 

 

 

 “편히 쉬세요.”

 

 

 

 

 

 

 

 그렇게 뒤돌아서서 가려는데 별안간 그녀의 발걸음이 멈췄다. 그녀는 어둠속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걸음을 되돌렸다. 휴대용 조명을 들어 칩이 있던 보관함 옆의 명찰을 비추었다. 투박한 솜씨로 ‘신성한’이라는 글씨가 덧붙여진 그것에 오래 눈길을 주었다. 그녀는 먼지 쌓인 그것을 통째로 떼어 품에 안았다. 그리고 적막을 밟으며 미련 없이 자리를 떠났다.

 

 이내 신누리 박사는 극악 교회를 빠져나와 담벼락을 돌아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왕년에 극악 교회의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높게 세워진 담벼락은 저주와 욕설을 담은 낙서가 가득했는데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이것이었다.

 

 

 

 

 

 

 

 ‘신은 죽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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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4장 5화 2019 / 10 / 8 217 0 9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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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4장 3화 2019 / 10 / 8 225 0 7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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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4장 1화 2019 / 10 / 8 236 0 8719   
21 3장 7화 2019 / 9 / 1 223 0 5282   
20 3장 6화 2019 / 9 / 1 212 0 11097   
19 3장 5화 2019 / 9 / 1 209 0 7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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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3장 3화 2019 / 9 / 1 248 0 6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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