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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극악 교회
작가 : 멍덕꿀
작품등록일 : 2019.9.1

악이 상식이 된 사회에서 끝까지 선을 수호하며 살아가는 자들의 이야기

 
5장 2화
작성일 : 19-10-28 13:26     조회 : 208     추천 : 0     분량 : 9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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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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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장 2화

 

 

 

 

  이세은은 비로소 모든 의문의 답을 알아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도 씁쓸하고 아픈 깨달음이었다. 그녀는 과거에 범한 자신의 경솔하고 미련스런 행동을 곱씹으며 속울음을 삼켰다. 돌이켜보면 구의민과 최태준에게 자신은 너무도 요리하기 손쉬운 존재였다. 역설적이게도 이 순간 그녀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저항은 끝까지 그들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실험체가 되어 실험을 실패로 만드는 것, 그것뿐이었다.

 

 

 

 

 

 

 

 다만 그녀의 마음을 쥐어짜는 진실이 한 가지 있었으니, 구의민의 실험을 실패시키는 방법이었다. 고지훈의 말대로라면 어떠한 쾌락의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도 그녀는 감정의 동요 없이 버텨야 했다. 그러나 이제껏 데몬교의 만행을 지켜본 그녀로서는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었다. 단 일격에도 쉽사리 나가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공포심과 대등한 몸집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감히 대적할 수도 없는 존재와 정면으로 붙어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무엇보단 그녀는 망자가 된 자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들이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경험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그녀의 자아를 상당 부분 차지하고 있었다.

 

 

 

 

 

 

 

 이세은은 터덜터덜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거리를 둔 채 그녀를 쫄래쫄래 따라오던 고지훈이 흠칫 놀라 덩달아 멈춰 섰다. 이세은은 뒤돌아서 그에게 다가갔다.

 

 

 

 

 

 

 

 “신전으로 날 안내 해요.”

 

 

 

 

 

 

 

 그 말을 듣자마자 고지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역시!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있다니까! 잘 생각했어요. 막상 해보면 거부감 같은 건 싹 가신다니까요!”

 

 

 

 

 

 

 

 고지훈은 들뜬 마음으로 앞장서서 그녀를 안내했다. 그녀는 속으로 차분히 계산을 해나가고 있었다. 일단 방주 안에 들어간다면 쾌락에 완전히 동화될 때까지 빠져나올 수 없다, 만약 그 안에서 자극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면 구의민의 승리다, 내 실패를 딛고 방주의 오류를 정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방주 속 세계관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 순간 나는 양심을 잃고 ‘호모 로보’라는 괴물이 되기 때문이다……. 이세은은 이 게임의 본질을 깨달았다. 애초 자신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신전으로 향하는 비밀 통로는 예배당 지하에 있었다. 고지훈은 어둠 속에서 익숙하게 길을 찾아가더니 숨겨진 문을 열어젖혔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이 넘쳐흐를 듯 꽉 차 있었다. 이세은은 막연한 두려움에 휩싸여 선뜻 발을 옮기지 못했다. 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고지훈은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가지도 않아서 그의 모습이 완벽히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 하세요? 어서 오지 않고.”

 

 

 

 

 

 

 

 이세은은 다시는 이 길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강한 직감 속에서 끌려가듯 통로로 들어갔다.

 

 

 

 

 

 

 

 동공의 존재를 느낄 수 없을 수준의 암흑을 허우적거리며 지났더니 이번엔 눈이 멀 것만 같은 새하얀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이 등장했다. 갑작스런 빛에 이세은은 찡그리며 눈앞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빛의 해일에 떠밀린 듯 자꾸만 뒷걸음치는 그녀에게 고지훈은 문 앞에 서서 먼저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그녀는 신전 지하로 연결된 문이 열렸음을 인지하고 눈을 힘겹게 깜빡이며 시린 눈으로 시야를 확인했다. 모든 색을 온몸으로 거부하는 듯 한 하얀 벽이 사방에 보였다. 흰 벽지가 아니라 빛을 발하는 화면이 만들어낸 방이었다. 잠시 후 한 벽에서 미세한 틈이 생기더니 유리 장식장 같은 직육면체가 밀려 나왔다. 고지훈은 여기서 기다리라는 말만 남긴 채 직육면체 안으로 들어갔다. 돌출 되었던 그 상자는 고지훈을 데리고 원래 자리로 들어갔고 이세은이 벽을 더듬었을 때는 어떤 틈도 발견할 수 없었다.

 

 

 

 

 

 

 

 오롯이 흰 빛만 존재하는 그곳에서 이세은은 심한 멀미를 느꼈다. 차라리 방이 움직였으면 낫겠다 싶을 정도로 지독한 정적과 무의 세계였다. 눈을 질끈 감아도 빛은 눈꺼풀을 투과하여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는 현기증을 이기지 못하고 이 방에 들어왔던 문을 찾아 벽을 더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촉각을 곤두세워도 홈이 파인 곳을 도통 찾을 수 없었다. 매끈한 벽은 감쪽같이 출구를 감춰버린 채 그녀의 탈출을 거부했다.

 

 

 

 

 

 

 

 삐―.

 

 

 

 

 

 

 

 돌연 귀를 찌르는 경고음에 이세은은 몸을 움츠린 채 벽을 관찰했다. 그녀는 벽에서 물러나 방의 한가운데 섰다.

 

 

 

 

 

 

 

 “어서 오십시오, 신자님.”

 

 

 

 

 

 

 

 이번엔 남자의 육성이 들렸다. 구의민의 것이었다.

 

 

 

 

 

 

 

 “긴장을 풀고 편히 쉬십시오.”

 

 

 

 

 

 

 

 그는 최면을 걸 듯 나긋나긋 말했다. 이세은은 시선을 한 데 두지 못하고 불안한 듯 주위를 살폈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벽에서 소리가 출력되고 있었다.

 

 

 

 

 

 

 

 “당신은 곧 방주에 탑승하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는 되셨습니까?”

 

 

 

 

 

 

 

 “그딴 건 필요 없어. 할 거면 어서 시작해.”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긴장을 풀라고. 그렇게 겁먹을 것 없습니다.”

 

 

 

 

 

 

 

 “누가 겁을 먹었다는 거야!”

 

 

 

 

 

 

 

 이세은은 발악스레 대들었다. 그녀는 사방에서 구의민의 시선을 느꼈다. 동시에 흰 벽들이 거대한 카메라 렌즈로 변모하는 환시까지 보았다. 구의민은 실험을 주관하는 과학자답게 소독약을 바른 듯 감정 비슷한 것은 모두 휘발되어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현재 방주에는 하동훈 신자님이 탑승 중입니다. 기다리느라 지루하실 테니 맛보기로 실험 과정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한쪽 벽이 쑥 뒤로 빠지며 방이 기형적으로 길어졌다. 이세은은 가상의 소실점에 시선을 고정한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풍경이 동일하니 가도 가도 도통 나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제자리걸음을 하는 기분을 애써 무시한 채 걷다 보니 서서히 공간 감각이 사라졌다. 그녀는 어느 새 방안에 들어왔다는 기억을 잊어버렸고 설원에 서 있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러자 실제로 뼈가 시릴 정도로 극도의 추위가 몰려왔다. 그녀는 손발이 얼어붙는 고통 속에서 몸을 움츠렸다. 그녀는 몸에 대한 감각까지 차차 망각했고 나중엔 오로지 생각으로만 존재했다.

 

 

 

 

 

 

 

 그녀는 보고, 듣고, 느끼고 있었으나 몸이 없었다. 비로소 그녀는 외부의 힘으로 오감을 통제당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가상이라기엔 지나치게 현실감이 컸고 현실이라기엔 이성적인 사고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쨌든 그녀는 철저히 관찰자가 되어 그곳에 존재했다. 저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인지할 때도 그녀는 상대의 눈에는 자신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미지의 상대가 가까워질수록 그녀는 그 사람이 불구자인 것을 알아챘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다리가 기괴하게 꺾이었고 몸의 균형이 형편없이 무너졌다. 뚜벅뚜벅, 털레털레 걷는 것이 아니라 기우뚱기우뚱 걸어왔다. 얼굴을 식별할 정도로 가까워졌을 즘 이세은은 그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조금이라도 눈길을 두기 싫을 징그러운 이목구비였지만 그녀는 강제로 그래야 했다. 그 자는 눈 하나가 빠져 있었으며 코는 괴이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고 입술은 바깥쪽으로 뒤집혀 있었다. 살갗에는 자잘하고 시꺼먼 종기가 피고름을 흘리며 우둘투둘 솟아 있었다. 그 자는 그녀의 코앞에서 푹 쓰러졌다. 푹신한 눈 위로 그의 몸은 소리도 없이 엎어져 점차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녀는 그가 꼬리처럼 끌고 오던 것이 등 뒤로 튀어나온 내장이라는 것을 그 때에 깨달았다.

 

 

 

 

 

 

 

 그녀는 더없이 잔인한 악몽을 꿨을 때처럼 겁에 질렸다. 잠시 뒤 그보다 더 심한 생김새를 한 자들이 지평선 너머에서 끊임없이 넘어왔다. 팔이 뽑혔거나 발목이 잘렸거나 하는 것은 예사고 연거푸 구토를 하며 내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녀는 그들의 외모에 거듭 충격을 받다가 어느 순간 그들이 자신에게 덤비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서 달아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의 시선은 순식간에 그들이 등장하던 지평선 뒤쪽으로 쑥 이동했다.

 

 

 

 

 

 

 

 그곳에선 한 남자가 무지막지한 손길로 누군가의 목을 뽑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도망가야 한다는 본능이 발동될 정도로 잔혹한 광기가 느껴졌다. 그는 보이지 않는 힘에 휘둘리는 것처럼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몸을 놀리고 있었다. 그의 광포한 손길이 닿는 족족 한 사람의 몸은 흉물스런 형상으로 변해갔다. 무자비한 짓을 자행하고 있음에도 그에 대한 분노를 누그러뜨리는 지점이 있었으니 바로 무법자의 완벽한 외양이었다. 그의 몸은 천재 예술가의 조각상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그에게 눈길이 오래 머물수록 그의 주위를 밝히는 후광은 더욱 강해졌다. 이세은은 스스로 깨달았다. 이 자가 바로 하동훈임을.

 

 

 

 

 

 

 

 “역겨운 것들. 이게 너희들의 본모습이야.”

 

 

 

 

 

 

 

 하동훈은 닥치는 대로 상대방의 사지를 뒤틀며 분노에 찬 말을 찍 내뱉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며 찡그리는 동시에 웃었다. 그 기괴한 표정 속에서 성취감과 승리감이 진하게 묻어났다. 실제로 그가 더 많은 사람을 망가뜨릴수록 그의 외모는 눈에 띄게 완벽에 가까워졌다.

 

 

 

 

 

 

 

 질투.

 

 

 

 

 

 

 

 이세은은 칠계명의 여섯 번째 항인 그 말을 떠올림과 동시에 열기를 느꼈다. 그 말이 품고 있는 온도였다. 아늑함과 평온함을 주는 종류가 아니라 가까이 오는 것은 모조리 태워버릴 듯 잔인한 열화였다. 그녀는 그 말이 무거운 쇳덩이가 되어 자신을 지질 듯이 내리누르는 기분이었다. 허상의 살갗이 벌겋게 데이다 못해 벗겨지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녀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자신이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이 구의민의 계략이라는 자각을 끝까지 밀고 간 덕분이었다.

 

 

 

 

 

 

 

 그녀는 섣불리 하동훈을 말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의 정신은 완전히 악의 힘에 정복당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다 그의 행동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그의 손길이 점차 느려지면서 표정 또한 괴로움에 버무려졌다. 결국 어깨가 축 내려가고 팔이 밑으로 쳐졌다. 하동훈은 고개를 푹 숙이며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울음 섞인 그 말은 너무 많이 뭉개져서 한 어절도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감정만은 오롯이 느껴졌다. 그는 심한 자책에 빠져 진이 빠질 때까지 오열했다. 정신을 놓은 게 아닌가 싶을 때쯤 그는 또 변화했다. 그의 몸은 서서히 기운을 되찾았고 다시 열성을 다해 멀쩡한 사람들의 몸을 망가뜨리기 시작했다. 더 많은 이들을 불구로 만들수록 그는 아름다워졌다.

 

 

 

 

 

 

 

 하동훈이 누군가의 살갗을 표면이 거친 돌로 사정없이 문지르고 있을 때, 그의 시선이 돌연 정면을 향하더니 이세은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공포가 사지를 꼼짝없이 붙드는 압박을 그녀는 생생히 느꼈다.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입조차 벌려지지 않았다. 아니 입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하동훈은 한 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녀에게 똑바로 걸어왔다.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무표정이지만 얼굴 전체로 무시무시한 위협감을 표출하며 다가왔다. 이세은은 겁에 질려 아득바득 몸을 틀어보았지만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하동훈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이세은은 극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흰 방에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녀는 손을 보고야 자신이 떨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가 극한의 공포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구의민의 목소리가 다시 사방에서 들려왔다.

 

 

 

 

 

 

 

 “어떠십니까? 날것의 욕망을 목격하신 소감이?”

 

 

 

 

 

 

 

 이세은은 이가 부서지도록 턱에 힘을 주며 중얼거렸다.

 

 

 

 

 

 

 

 “닥쳐…….”

 

 

 

 

 

 

 

 “하동훈 신자님이 생각보다 오래 버텨주시는 군요. 퍽 즐거우신가 봐요.”

 

 

 

 

 

 

 

 “시끄럽다고! 그만 해!”

 

 

 

 

 

 

 

 이세은은 목에서 칼날이 빼내듯 날카로운 소리로 악을 썼다. 그리고 제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말했다.

 

 

 

 

 

 

 

 “하동훈 신자는 괴로워했어. 당신이 그 사람의 마음을 왜곡한 거잖아. 당장 그 자를 풀어내.”

 

 

 

 

 

 

 

 “모르는 말씀입니다. 그 자는 생전 겪어보지 못한 희열 속에 빠져 있어요. 괜한 오해 마십시오.”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하동훈 신자는 분명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어.”

 

 

 

 

 

 

 

 “아, 그것 또한 제 계획의 일부입니다. 잠시 동안 쾌락의 고삐를 늦추어야 그자가 감추고 있는 양심을 재볼 수 있으니까요. 본능을 똑똑히 목도한 뒤 그자가 받는 충격과 자책감이 방주 내에서 즉각적으로 수치화되거든요. 그 정보는 차곡차곡 싸여 귀중한 자료로 쓰일 예정이고요.”

 

 

 

 

 

 

 

 “당신은 미치광이야.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맞습니다. 저는 악에 환장한 놈입니다. 두고 보십시오. 언젠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도덕과 양심에서 해방시킬 겁니다. 제가 그 위업을 달성할 때 이세은 신자님도 꼭 계셨으면 좋겠군요. 물론 방주에서 살아 나와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나를 방주에 집어넣는 순간 모든 걸 오류로 만들어버릴 거야. 당신 계획 따위 완전히 망가뜨려버릴 거라고.”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보시죠.”

 

 

 

 

 

 

 

 구의민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응했다. 이세은의 도발은 그에게 아무런 공포감도 주지 못했고 오히려 그를 들뜨게 만들었다.

 

 

 

 

 

 

 

 “신자님을 위해 특별히 한 가지 힌트를 드리죠. 이 사실만 명심한다면 신자님이 방주에서 마음껏 쾌감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잘 들으십시오. 타인에게 입히는 가해의 크기만큼, 당신의 쾌락도 자라나는 겁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타인을 괴롭히세요. 그들을 당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발판으로 삼으세요. 더 많은 자들이 당신에게 복종할수록 당신은 크고 아름다운 존재가 되어 구름 위에서 그들을 내려다보게 될 겁니다.”

 

 

 

 

  *

 

 

 

 

  이세은은 천천히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몽롱한 기운이 온몸에 퍼져 몸을 가눌 의지조차 솟지 않았다. 사위는 여전히 흰 벽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구의민과 어디까지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건 희뿌연 연기가 방안에 가득 차는 것을 보다 정신을 잃었다는 사실이었다. 억지로 기억을 떠올리려 애쓸수록 울렁거림과 메슥거림만 강해졌다. 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져 있는데 방이 통째로 떠오르고 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정신을 집중하자 더 확실해졌다. 분명 공간이 움직이고 있었다. 속도감은 더욱 더해졌다. 하지만 방향은 갈수록 불분명했다. 위로 붕 치솟는 건지 아래로 푹 꺼지는 건지 알쏭달쏭했다. 그녀는 극심한 어지럼을 느끼며 머리를 짚었다. 공간 감각이 허물어지며 그녀는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잠시 뒤 그녀는 데몬이 모셔진 신당 안에 있었다. 신전의 가장 비밀스런 공간답게 사방이 온통 보안과 관련된 전자 장치였다. 데몬은 믿음직스런 호위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다 차례차례 보안 장치가 해제되며 출입문이 열렸고 누군가 신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 자는 힘없는 발걸음으로 데몬 앞에 섰다. 예승아 목사였다. 이세은은 반가운 마음에 냅다 그녀를 불렀다.

 

 

 

 

 

 

 

 “목사님!”

 

 

 

 

 

 

 

 그러자 예승아는 겁먹은 얼굴로 주변을 살폈다. 잔뜩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세은은 다시 한 번 외쳤다.

 

 

 

 

 

 

 

 “예승아 목사님! 저예요! 저 이세은이에요!”

 

 

 

 

 

 

 

 예승아는 굳은 얼굴을 풀면서도 여전히 사방에 주의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신자님? 도대체 어디 계세요?”

 

 

 

 

 

 

 

 이세은은 비로소 상대가 자신을 볼 수 없음을 깨달았다. 자신은 그녀를 정면에서 내려다보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저 목사님 바로 앞에 있어요. 여기 있다고요!”

 

 

 

 

 

 

 

 예승아는 의아한 얼굴로 데몬을 올려다보더니 조심스레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갔다.

 

 

 

 

 

 

 

 “정말 이세은 신자님이에요?”

 

 

 

 

 

 

 

 “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주세요. 갇혀 있었더니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예승아는 복잡하고도 미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모든 게 구의민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조금 전 하동훈 신자의 시체가 ‘질투’를 형상화한 동상 앞에서 발견되었어요.”

 

 

 

 

 

 

 

 “결국……그렇게 되었군요. 하긴…….”

 

 

 

 

 

 

 

 이세은은 ‘그럴 만 했다’는 말은 끝내 침묵 속에 묻어두었다. 예승아 목사에게 자신이 목격한 걸 되감기하듯 묘사할 자신도 없었고 그런 말로 하동훈 신자의 자결에 당위성을 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혹사당했을 그의 양심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그의 명복을 빌었다. 그는 앞선 다섯 신자와 마찬가지로 쾌락이라는 전쟁터에서 끝까지 저항하다 장렬히 전사한 용사였다. 예승아가 말했다.

 

 

 

 

 

 

 

 “손잡이 세력도 극악 교회 신자들도 시체가 신전에서 옮겨졌다는 걸 눈치 챘어요. 곧 비밀 통로의 존재도 알아챘고요. 지금 이곳을 향해 무지막지하게 돌진하고 있을 거예요.”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요. 어서 피신하셔야죠.”

 

 

 

 

 

 

 

 “아니요. 아무래도 좋습니다.”

 

 

 

 

 

 

 

 예승아는 생기 없는 목소리로 대답한 후 고개를 숙였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겠다고요?”

 

 

 

 

 

 

 

 “신자님. 저는 좀 전에 손잡이 세력의 수장과 접선했습니다.”

 

 

 

 

 

 

 

 이세은은 반색하며 달뜬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역시! 목사님이라면 찾아낼 줄 알았어요. 그 자가 일러주던가요? 데몬교를 한 번에 무너뜨릴 방도를?”

 

 

 

 

 

 

 

 예승아의 표정은 영 암울하기만 했다. 이세은은 답답한 마음에 예승아에게 마구 질문을 던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예요? 그 자가 혹시 구의민의 손에 당한 건가요? 아니면 목사님을 배신이라도 했어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예승아는 담담하게 내뱉었다.

 

 

 

 

 

 

 

 “손잡이의 수장은 구의민입니다.”

 

 

 

 

 

 

 

 이세은은 그 짧은 한 마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말실수를 한 건가 싶었지만 예승아는 그런 게 아니라고 강변하듯 반복해서 말했다.

 

 

 

 

 

 

 

 “구의민이 바로 선의 수호자였습니다.”

 

 

 

 

 

 

 

 “그게 무슨…….”

 

 

 

 

 

 

 

 “저를 이곳에 순순이 들여보내준 것도 구의민이었습니다. 저더러 그러더군요. 자신 있으면 데몬을 부숴보라고.”

 

 

 

 

 

 

 

 이세은은 예승아 목사가 하는 말을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구의민이 그럴 위인이 아닌데, 하는 의문에 붙들려 혼돈의 구렁텅이로 끌려가는 심정이었다.

 

 

 

 

 

 

 

 “그는 이미 연옥 교회의 정체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연옥 교회를 설립하겠다고 했을 때 오히려 반가웠다더군요. 손잡이 세력으로는 음지 활동밖에 할 수 없어 답답했다고요. 그에겐 선을 배양할 터전이 필요했어요. 철저한 관리와 감독 밑에서 마음 놓고 관찰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구의민이 얻는 게 뭐죠? 적이 있어야 자신의 권력을 이어갈 수 있다 이겁니까? 신자들에게 더 철저한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명분을 위해서? 신자들을 공격적으로 도발하기 위해서?”

 

 

 

 

 

 

 

 “과학자가 실험쥐를 교미시키는 목적이 뭐겠습니까. 실험을 완성시키기 위해서죠. 그는 가장 이상적인 실험체를 이용하여 방주의 결함을 보완할 생각이었습니다. 실험쥐가 되면 방주 안에서 양심을 소진시키다 죽는 길밖에 없어요. 실험쥐의 사체가 쌓일수록 데몬은 양심을 측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겠죠.”

 

 

 

 

 

 

 

 이세은은 분통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목사님! 그냥 이 기계덩이를 부숴버리세요. 망할 데몬만 사라지면 데몬교도 허상처럼 사라질 겁니다. 우리도 똑같이 갚아주자고요. 당장 도끼로 데몬을 내리쳐요!”

 

 

 

 

 

 

 

 “……전 못합니다.”

 

 

 

 

 

 

 

 예승아의 비통한 목소리에는 어느 새 물기가 어려 있었다.

 

 

 

 

 

 

 

 “구의민이 절 여기로 들여보낸 건 허세가 아닙니다. 구의민은 데몬이 계시를 내렸다고 했습니다. 선이 사라지면 악도 사라진다. 실제로 방주를 설계한 초창기에 모의실험을 했더니 선이 멸종한 땅에서는 악도 동시에 자취를 감췄답디다. 아무리 과학 기술을 동원하여 영원의 땅을 창조한들 거기는 선도 악도 없는 진공 상태가 되더라 그 말입니다. 제가 만약 눈앞의 데몬을 파괴하면, 네, 어쩌면 데몬교를 무너뜨릴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이후는요? 세상은 어떤 질서도 없는 혼돈의 땅으로 되돌아갈 것이고 선의 힘은 지금보다 더 약화될지도 모릅니다.”

 

 

 

 

 

 

 

 이세은은 예승아가 이미 선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음을 깨닫고 벌컥 성을 냈다.

 

 

 

 

 

 

 

 “그러니까 목사님은, 데몬교의 비호 없이는 선이 존재할 수 없다, 그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예승아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세은은 들끓는 배신감에 예승아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예승아는 무기력한 목소리로 뇌까렸다.

 

 

 

 

 

 

 

 “선은 홀로 설 수 없어……. 늘 악에 기대 있어야 해…….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데몬님을 모셔야 해…….”

 

 

 

 

 

 

 

 이세은이 몸을 얻은 것은 그 때였다. 그녀는 우악스런 손길로 예승아의 머리채를 낚아챈 후 사정없이 벽에 머리를 찧어댔다. 예승아는 아무런 저항 없이 이세은에게 휘둘렸다. 이세은은 분이 안 풀리는 듯 이미 기절한 예승아를 패대기친 뒤 험한 발길질을 이어갔다.

 

 

 

 

 

 

 

 퍽, 퍽, 퍽, 퍽…….

 

 

 

 

 

 

 

 자비 없는 타격이 한동안 이어진 후 이세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낮게 재깔였다.

 

 

 

 

 

 

 

 “그러니까 애초 자만하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그런 건 나처럼 완벽한 사람한테나 어울리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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