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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이름, 용사
작가 : 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9.10.25

용사, 오백 년 만에 눈을 뜨다.

 
그 이름, 아이리스
작성일 : 19-10-28 01:04     조회 : 193     추천 : 0     분량 : 4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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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 이름, 인류

 

  도시를 떠난 용사는 어느덧 지도의 끝자락에 와 있었다. 흐릉달에서 여기까지 직선으로 정확히 나흘 거리. 그걸 토대로 다음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한다. 그레이스가 알려준 도시는 이곳에서 한참을 남쪽으로 내려가야 있다.

 

  “대략 200km······. 한 달은 걸어야 하나.”

 

  왕복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두 달, 책도 옮겨야 하니 족히 반년은 잡아먹을 대장정이다. 무엇 하나 충족된 게 없는 상황. 특히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손이 너무 부족했다. 처음엔 생각했다. 책을 구하기 전에 사람을 먼저 모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그 어떤 인간이 언데드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라주겠는가. 용사는 시도 해 볼 엄두도 나지 않아 일찌감치 단념했다.

 

  도시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거든, 인간이 거주하기 좋은 환경이 되거든 사람은 모이지 말래도 저절로 모일 거라 믿는다. 그러니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200km는 멀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걸어야 한다. 지금만큼은 식사도 수면도 필요 없는 언데드의 몸이 그저 고맙다. 용사는 부지런히 걷는다.

 

  ↓

 

  한편 그레이스는 망가진 토지를 되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용사가 남기고 간 다양한 지식과 농사꾼으로서의 삶이 그것에 큰 도움이 된다.

 

  “다행이도 지맥이 상하진 않았군.”

 

  가장 먼저 살펴본 건 지맥이었다. 땅의 맥. 사람 몸으로 따지면 핏줄이라 할 수 있는 그것은 한 번 망가지면 복구하기가 참 어렵다. 완전히 말라비틀어진 지맥은 생물이 살 수 없는 땅이라 보는 게 옳다. 그걸 복구하느니 다른 토지를 이용하는 편이 더 쉽다. 하지만 이곳은 언데드가 창궐한 것 치곤 토양의 상태가 좋은 편이다. 그러니 터를 옮길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다.

 

  “용사님이 말한 대로야. 이곳은 터가 참 좋군.”

 

  어차피 주어진 시간은 많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면 될 일이다. 그레이스는 느긋하게 마음먹기로 했다. 지맥을 복구할 필요는 없으니 토양만 수복하면 될 일.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수레를 만들고 산에서 부엽토(나뭇잎이 미생물에 의해 썩어 만들어진 흙. 약한 거름으로 쓰인다.)를 실어와 지렁이를 배양하는 일이다.

 

  대지의 메마른 흙과 부엽토를 적당히 섞어 1제곱미터 당 지렁이를 적당히 배분해두면 토양이 윤택해지는 건 그야말로 금방이다. 이렇게 어느 정도 힘을 되찾은 땅에다 클로버 및 다양한 콩과 식물을 심는다. 지렁이가 토양을 부드럽게 만들어 식물이 뿌리내리기 쉽게 만든다면 클로버 같은 콩과 식물은 그 식물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6개월쯤 지나니 토지에 수분기가 가득해지고 씨를 맺은 식물이 알아서들 퍼져서 조금만 관리해줘도 괜찮을 정도로 쓸만한 토양이 되었다.

 

  초식동물들은 먹을 것이 풍부하고 주변에 마실 물도 있는 호릉 평야로 모여들었고, 그것들이 싼 배변을 모아 클로버로 만든 건초와 섞어 두엄을 만들었다. 나중에 작물을 재배할 때 사용할 예정이다. 그리고 가을이 다가올 때쯤, 그레이스는 자신의 초막 옆에 축사를 만들어 산토끼 다섯 마리와 멧돼지 암수 한 쌍, 야생마와 야생우野生牛를 각각 한 마리씩 거둬들였다.

 

  그 뒤로 난폭한 야생동물을 기들이는 작업으로 들어간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계속해서 정성을 쏟으니 한 달 뒤에는 아홉 마리 모두 순한 가축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몇 주 지나지 않아 클로버로 된 사료를 받아먹던 토끼 세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 설사를 하며 죽고 말았다. 그레이스는 그 모습에 상심했다. 가축들을 잘 돌본다고 돌봤지만 그는 언데드. 잘 참아냈지만 가끔 살아있는 그것들을 보다보면 살의를 느낄 때가 있었다. 마치 그것 때문에 토끼들이 죽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실은 클로버에 있는 독성분이 토끼를 죽인 것이지만, 아무리 그레이스라도 그것까진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게 돼지나 말처럼 덩치가 큰 동물에게는 치사량까지 치닫는 일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얼마 안 가 다섯 마리 토끼가 모두 죽어버리자 그는 처음의 의욕적이던 모습을 잃은 채, 흐릿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리고 거기에서 사색에 잠기는 나날이 늘어만 간다.

 

  “언데드가 생물을 키운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인 건가.”

 

  분명 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테지. 솔직히, 죽은 자가 산 자를 위해 식량을 재배하고 도시를 재건하려는 생각을 하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용사는 얼마나 고귀한 사람인가. 자신은 나이 80을 먹고도 죽음이 두려웠고, 죽은 후에 언데드가 되어 일어날 일도 두려웠다. 하지만 죽고자 해도 죽지 못하는 것이 언데드. 하는 수 없이 꾸역꾸역 살아가던 그에게 나타난 광명이 바로 용사였다. 그분께선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계실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여전히 안개는 걷힐 생각을 안 하고, 그가 여느 때와 다름없이 클로버를 재배하고 토끼를 제외한 가축 수를 하나 둘 늘려가던 때였다. 닭에게 먹이로 지렁이를 주며 길들이고 있는데 밖에서 아기울음 소리와 함께 풀밭을 헤치며 달려가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와 보니 힘이 없는지, 자꾸만 비틀거리면서도 어떻게든 달려가려는 사람의 윤곽이 안개 너머로 어렴풋이 보였다. 그인지 그녀인지, 아무튼 그 사람을 쫓아 달리려 했지만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발길을 붙잡아 차마 따라갈 수 없었다.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그레이스는 강보에 싸인 채 초막 앞에 버려진 아이를 안아 든다. 아직 채 한 살이 안 되었을 것이다. 아직 어미의 품이 필요할 나이이거늘, 어찌 이럴 수 있는지.

 

  “이 어린 것이 무슨 죄가 있을꼬.”

 

  아이는 더없이도 사랑스러웠다. 이런 아이를, 이런 가엾은 것을 언데드가 사는 집 앞에 버리고 가다니. 그레이스는 분에 겨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다가도 안개 너머로 사라진 그를 동정한다. 얼마나 삶이 힘겹기에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하고. 그러자 아이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마음속으로부터 솟아났다. 토끼도 제대로 기르지 못하는 자신이지만, 이 아이가 이곳에 버려진 것에 어떤 운명을 느낀다.

 

  아이의 볼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니 차가운 뼈일 텐데도 젖인 줄 알고 입을 가져와 대차게 빨아먹는다. 아이에게서 뜨거운 생명을 느낀다. 아이가 살아있음에 환희를 느끼는 감정이 있다. 아무런 증오도, 살의도, 부정적인 감정 한 톨조차 솟아나지 않는다. 울적했던 마음은 달아나고 금방 마음속으로 방긋 미소가 떠오른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와 초막에 구멍을 내고 불을 피운다. 불 쓸 일이 거의 없어서 아궁이를 만들지 않은 탓이다. 건초를 한 아름 모아서 불가에 가깝게 쌓은 뒤 그 위에 토끼 가죽을 얹고 강보를 올렸다. 아이는 배가 고픈지 연신 울고 있었다. 어떻게든 안기기 위해 쭉 뻗은 두 팔, 그레이스는 급히 움직인다.

 

  한 컵 정도 되는 양의 소젖을 짜고, 손을 깨끗이 씻고 그거로도 모자라 우유를 따뜻하게 끓이면서 뼈를 불에 달궜다. 불에 타는 고통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웠지만, 그레이스는 웃으면서 아픈 손가락을 우유에 담근다. 우유가 방울진 손가락을 아이의 입가에 가져다대니 아이는 그것을 받아먹었다. 너무 뜨겁진 않을지 걱정했는데, 다행이도 온도가 적당한 모양이었다. 그레이스는 정말로 오랜만에 진심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잘 먹는구나! 잘 먹어.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그렇게 우유를 다 먹이고 난 후, 트림을 하도록 등을 두드려주니 아이는 노곤했는지 금방 잠에 빠져들었다.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던 그레이스는 강보 안에 아이와 함께 싸여있던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꺼내보았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죄송합니다. 아내에게서 아이를 먹일 젖이 나오지 않습니다. 두 사람을 모두 살리려면 이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염치없는 부탁인 줄 압니다. 저를 저주하신다 한들 응당한 일이니 달게 받겠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우리 가족을 가엾이 여기시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부디 그 아이를 거두어주십시오. 아이의 이름은 아이리스입니다.’

 

  남자는 몇 달 전 그레이스를 먼발치에서 보았다. 그리고 그를 유능하고 유복한 농부로 착각했다. 너무나 기운이 없고 안개가 지독히도 많이 낀 탓에 뼈만 남은 언데드가 사람처럼 보였다. 그레이스는 그 사정을 다 알지 못했다. 그래도 이 아이가 자신을 찾아와 준 것에 내심 감사했다. 그는 죽은 몸으로라도 살아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그리고 잊었던 신께 감사한다.

 

  “마할라, 마할라아도나이מַהֲלָל, מַהֲלָ,לאֲדֹנָי(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주여.)”

 

  아이리스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분명히 썩어 없어진 그레이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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