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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그 이름, 용사
작가 : NewtDrago
작품등록일 : 2019.10.25

용사, 오백 년 만에 눈을 뜨다.

 
그 이름, 성인
작성일 : 19-10-28 01:01     조회 : 199     추천 : 0     분량 : 4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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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몇 백 년 전에 사람이었습니다. 당신께서 망나니에게 목이 잘릴 때, 일곱 살이었죠.”

 

  “지금은 서기 몇 년이오?”

 

  “저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나이 80에 결국 언데드에게 목숨을 잃고, 같은 언데드가 되어서 일어난 후로 살이 썩어나고, 결국 뼈만 남은 모습이 되었죠. 50년이 지난 후부터는 날을 세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살아 있던 시기는 최소한 몇 백 년 전입니다.”

 

  “그렇군.”

 

  용사는 정확한 시간을 알 수 없는 것에 아쉬워했다. 해골이기에 겉으로 표가 나는 건 아니었지만 노인은 느껴지는 분위기만으로도 충분히 그 감정을 짐작해냈다.

 

  “용사께선 알지 못하는 듯 하여 말씀드립니다만 지금 우리가 대화하는 언어는 고대어입니다.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힐류브리트어의 다양한 방언을 사용하고 있으니 거의 말이 통하지 않죠.”

 

  “허, 그럴 수가. 언어가 쪼개졌다니······.”

 

  힐류브리트어 그러니까 고대어는 용사가 살아있을 적만 해도 인류의 하나뿐인 공통어였다. 무려 신이 만들어서 인간에게 하사한 물건이었으니, 그것이 변질되었다는 것에 용사는 다소 놀라고 말았다. 거기다가 언어가 바뀌었다는 건 같은 인간을 만나도 의사소통조차 하기 힘들다는 말이 된다.

 

  “노인장은 지금의 말을 좀 할 줄 아시오?”

 

  용사는 약간의 기대를 걸고 물었지만, 노인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조금은 기대를 걸었던 용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저도 이 모습이 되고 나선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보았더라도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먼 발치에서였죠. 그들은 언데드를 반기지 않으니까요.”

 

  “대체 내가 죽고나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요?”

 

  “간단합니다. 당신이 돌아가신 후로 신께선 모습을 감추셨고, 교단의 패악이 극에 이르렀습니다. 땅이고 하늘이고 신의 가호가 없으니 예전처럼 작물도 자라지 않고, 서서히 음기가 짙어지더군요. 밤은 길어지고, 낮에도 안개가 자욱하니 햇빛이 거의 비추지 않게 되더군요. 적어도 이백여년 전부터 이런 상태였습니다. 모두가 불안에 떠는데도 그것을 추스를 여유도, 추스러줄 인간도 없었죠. 그야말로 지옥도였어요.”

 

  노인은 참으로 오래된 일이라며 끌끌 웃었다.

 

  “식량이 부족해지니 가장 먼저 일어났던 일이 무엇인지 압니까? 이웃의 식량을 약탈하는 것이었습니다. 곳간에 곡식이 줄고 채 보름이 안 되어서 그런 일이 벌어졌어요. 일곱 살인 제가 무엇을 알았겠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그곳은 이미 다른 세상으로 보였습니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웃고 떠들며 지내는 같은 도시 사람이었는데, 그저 쌀 한 됫박 때문에 악귀가 되더군요. 신과 당신의 희생으로 너무나 풍족하게 살아왔으니, 어찌 궁핍을 알았을까요.”

 

  “노인장은 어찌했소?”

 

  용사는 여러 의미를 담아 그렇게 묻는다.

 

  “곡기도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도시를 버리고 떠났고, 저도 부모와 함께 그 대열에 합류했죠. 그리고 그건 올바른 선택이었습니다. 그 어둡고 우중충한 안개가 닿으니 시체가 하나 둘 언데드로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 뿐입니까? 아지랑이 같이 검은 기운이 피어오르더니 괴물도 나타났습니다. 묘지가 있는 도시에 남았더라면 저도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고 이지를 상실한 채 떠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용사는 눈을 뜬 뒤로 해를 정면에서 바라 본 적이 없었다. 매일 같이 안개가 껴 있었으니까. 하지만 사실상 낮이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보다 그를 경악하게 만든 건 괴물이라는 두 글자다.

 

  “괴물이라니? 그것이 정녕 사실이오? 괴물은 내가 모두 지옥 저 밑바닥에 가두었거늘.”

 

  “멀지 않은 곳에도 있습니다. 당신이 건너온 저 산맥에도 있었을 텐데요?”

 

  “그것이 동물의 기척이 아니었단 말이지······.”

 

  괴물은 영악하다. 그리고 죽지 않는다. 때문에 모든 괴물은 용사를 안다. 용사가 그 모두를 한 번씩 상대해 무찔렀고, 지옥에 가둬버렸으니까. 산속에서 멀리서 그를 지켜보던 시선은, 아마 그를 감시하던 괴물의 시선이었을 것이다. 용사는 입술을 짓씹으려 했지만 짓씹을 입술이 없는 탓에 이가 서로 딱딱 부딪혔다.

 

  “아무튼 그 아비규환 속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정신이 똑바로 박힌 언데드로 일어났죠. 처음엔 죽음이 사라진 것에 기뻐하던 사람들도 백여 년쯤 지나니 정신이 무너지고, 결국 다른 흉악한 언데드와 다를 바가 없어졌습니다. 의지가 굳고 선한 이들이 그나마 오래 버텼지만 어차피 결과는 똑같았죠. 그거뿐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곳곳에 마을을 만들었고, 너무 오래 떨어져있다 보니 그곳 생활에 맞게 방언이 만들어지고, 시체는 더 이상 매장되는 일 없이 평야에 버려지고, 불태워지고, 그러다 괴물들의 습격이 있으면 무너지고. 그렇게 근근이 살아가는 게 현재 인류입니다.”

 

  “그거 참, 내가 아직 용사가 아니던 때의 이야기 같군.”

 

  “용사께서 용사가 아니었을 적이라니. 참 까마득한 옛날입니다, 그려.”

 

  노인은 작게 웃어보였다. 용사는 낚싯대에 걸린 쭉정이를 풀어주며 이야기를 곱씹는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그대는 참 오래 버텨주었소.”

 

  그리고 낚시대를 다시 바다에 드리운다.

 

  “솔직히 슬슬 버겁다 느끼던 참입니다.”

 

  노인은 이미 죽었지만, 그의 공허한 눈구멍에는 다시금 죽음이 어려 있다. 정신이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이제 그만 쉬고 싶어 한다. 용사는 그걸 알았지만, 말의 토대를 다시금 깔았다.

 

  “사람이 아무리 마음을 굳세게 먹는다 한들 시간이라는 것은 그것을 깎아내리기 마련입니다.”

 

  그의 삶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기에, 용사는 말을 높였다.

 

  “이거 참 용사께서 이 범부에게 말을 높여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당신은 높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백년을 채 버티지 못했는데 어떤 깨달음으로 이 긴 세월은 견디셨습니까. 그러니 맘 같아선 현인인 당신께 이제 그만 안식을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은 저 혼자 도저히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 부디 이쪽을 선택해주셨으면 하여 묻습니다. 현인이시여 저는 지금 다시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모험을 떠나려 합니다. 가장 먼저 저 옛 도시 흐릉달을 복원할 계획이죠. 만약 당신이 이것에 뜻이 있다면, 아직 삶을 살아가고 싶으시다면 저를 도와 또다시 그 풍유했던 시대를 만들어보지 않겠습니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그저 당신의 뜻이 따르는 대로 저 또한 따르겠습니다.”

 

  “그거 참 틀림없이 외로운 여행이 되겠군요······.”

 

  노인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찌가 왔다갔다 움직이지만 그것을 낚으려는 움직임은 없다. 이게 몇 년 만의 대화이고, 몇 년 만에 내밀어진 손길인지 노인 스스로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드문드문 전구가 깜빡이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정신을, 인류의 영웅이었던 용사는 과연 구원해줄 수 있을까? 이 늙고 늙어 뼈다귀만 남은 몸에게 허무함과 공허로의 안식이 아닌 빛과 희망의 안식을 안겨줄 수 있을까? 거절한다면 그야 편안히 쉴 수 있겠지만, 도대체 그 편안함에 남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기다랗게 이어져 온 진부하고도 기구한 삶, 그 삶 아닌 삶의 연속만이 남을 뿐이다. 이렇게 되어서까지 무언가를 남기고자 하는 것을 보니, 자신도 아직 인간인 것 같다며, 노인은 마음속으로 씁쓸하게 웃는다. 그리고 생각 끝에 노인은 용사에게 물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어째서 당신은 이 추악한 인류를 위해 싸우는 겁니까?”

 

  그것은 그가 용사를 만나고 줄곧 품었던 질문이다. 분명 아플 것이다. 괴로울 것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들의 손에 목이 잘려 죽었다. 평생을 바쳐 지켜온 인류의 손에. 그들은 탐욕적이고, 악하며, 구재불능이다. 노인이 아는 인류는 그렇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 한 명을 찾으려고 들이는 시간, 노력 그리고 마음은 어느새 닳아 없어져버렸다. 그 염증을 다시는 느끼기 싫었기에, 인간과 접촉하지 않은 채 허구한 날 낚시만 하며 세월을 축내고 있었다. 노인은 그랬다. 하물며 용사는 어떻겠는가? 노인은 그의 대답이 듣고 싶었다.

 

  그러자 용사가 답했다.

 

  “그들이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대답에 담긴 숭고한 뜻을 노인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말이 얼마나 높은 곳에 있는 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그 뜻을 이해하지도 이해 할 수도 없었지만, 노인은 인류가 아닌 이 고귀한 이를 위해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노인은 기꺼이 그 왜소하고도 구부정한 몸을 기울여, 용사에게 깊은 절을 올린다.

 

  “이 약소한 이가 얼마나 그대의 도움이 될지는 모르나 그래도 여기서 맹세하겠습니다. 그대의 사랑을 실천해보겠노라고.”

 

  용사는 현인의 동근 등을 바라보다 천천히 마주 절했다. 그러곤 천지가 울리도록 크게 외친다.

 

  “그대야말로 성인의 생生이로다!(אָגוּר’חֶלֶדÂgûwrcheled아구르헬랴드) 만세! 만세! 만만세!”

 

  어느덧 두 사람의 낚싯대는 파도에 휩쓸려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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