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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광무의 꿈
작가 : 백두혼
작품등록일 : 2019.10.22

대한제국의 마지막 모습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홍종우의 삶을 보면 된다. 조선인 최초로 프랑스로 건너가 근대화를 통한 조국 조선의 부국강병의 길을 도모한 자. 김옥균 등을 수괴로 한 친일 매국노들과 벌인 흉험한 싸움.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 밀사는 이용익이었고 그의 곁에는 홍종우가 있었다. 근대사 전체를 통째로 뒤집는 위험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6. 히야신스(야셍뜨) 신부 (1)
작성일 : 19-10-27 16:26     조회 : 249     추천 : 0     분량 : 6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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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히야신스(야셍뜨) 신부

 

 

 

 

 

  시간의 관성은 이 곳 프랑스에서도 여전히 작동했다. 이제 그는 세 번의 겨울을 넘겼다. 그렇게 길었던 두 번째 겨울까지의 일 년에 비해 세 번째의 겨울은 너무나 쉽고 빨리 다가왔고, 또 지나갔다. 파리가 너무 익숙해졌다. 그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파리에 사는, 혹은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이 파리를 사랑하게 되었다. 파리의 봄 공기가 얼마나 달콤한지, 파리의 여름 햇살이 얼마나 간지러운지, 파리의 가을 가로수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옷을 입는지, 파리의 겨울비는 얼마나 사색적인지 속속들이 알아버렸고 그 파리를 떠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돌아가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챙겨서 분류한 아름다운 조선의 유물들은 이제 기메 박물관의 한 전시실을 당당히 차지했다. 물론 전시된 물품들은 그것들 중의 아주 일부분이었고 나머지는 여전히 박물관 지하의 수장고에 보관물로 쌓여 있다. 도자기들의 대부분은 정리해서 파리 근교의 세브르에 있는 국립 도자기 공장의 박물관으로 보냈다. 그것들을 보낼 때 그는 차분히 그것들을 쓰다듬어 줬다. 고국에 두고 온 딸이 다시 생각났다.

 

  직성행년편람의 번역은 지지부진했다. 그는 지금 또 다른 조선의 소설을 번역하는 중이었다. 아니, 번역이라기보다는 직접 쓰고 있었다. 심청전. 가장 조선적인 이야기가 심청전이라고 그는 결정했다. 그가 쓰는 이 소설을 프랑스 사람들이 읽어서 그의 조국 조선을 정말 잘 이해하고 사랑하게 됐으면 했다. 이제 프랑스 어에 관한 통역이나 번역을 맡아 줄 사람은 필요 없었다. 이 소설을 마무리 지으면 조선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어서 끝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은 잘 가고 있었다.

 

 

  겨울이 끝나 버리고 봄비가 담담하게 내리는 어느 토요일 오후에 파리 외곽의 뉴이에 위치한 히야신스(야쎙뜨) 롸종 신부의 집을 방문했다. 그가 이 집을 방문하는 것은 그의 파리 생활 중 가장 즐거운 일과였다. 처음 ‘여행자 클럽’에서 본 이후 그와 롸종 교수는 종종 만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더구나 그는 르낭 교수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르낭 교수는 작년 1892년 10월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르낭 교수가 조금 더 건강했다면 그와 같이 할 시간이 훨씬 많았겠지만 교수는 그를 만날 무렵부터 이미 극도로 건강이 나쁜 상태였고 작년 7월에 기어이 쓰러졌고 몇 달의 투병 끝에 사망한 것이다. 그 장례식에서도 그의 옆에 앉았던 사람은 롸종 신부였다. 그리고 그 장례식 이후로 한 달에 한 번 정도 롸종 주교의 집을 방문해서 하룻밤을 지내고 돌아오곤 했다.

 

  그의 손에는 알사스 지방의 백포도주 한 병과 프로방스 지방의 분홍 색 포도주 한 병이 들려 있었고 롸종 신부의 부인을 위해 튤립 꽃 한 다발을 챙겼다. 신부의 집은 이 층의 단독 주택이었고 정원에는 야채 종류를 심어 먹을 수 있는 텃밭이 있었다. 그는 이 텃밭의 야채들이 정말 맛있었다. 특히 조선의 상추처럼 생긴 로메인이나 열무와 비슷한 빨간 무는 집에 싸 가지고 가곤 했다. 또한 그가 처음 먹어봤던 토마토라는 야채는 참으로 놀라웠다. 그저 툭툭 잘라 올리브 기름과 식초를 조금 두르고 소금과 후추를 살짝 뿌려 먹을 뿐인데도 정말 맛있었다.

 그가 롸종 신부의 집을 찾는 날이면 두 부부와 그 세 사람이 동시에 주방에 들어가 같이 요리를 했다. 이 곳 프랑스 남자들은 요리하는 일을 부끄러워 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 하기는 동방의 중국과 일본 역시 남자들이 요리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었다. 유독 우리 조선만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궁중의 요리는 남자 숙수들이 대부분 책임졌지만 시중과 인민들의 풍속은 그렇지 않았다.

 

  롸종 신부의 요리 실력은 정말 훌륭했다. 요리 실력만이 아니라 롸종 신부는 정말 존경할만한 사람이었다. 본명은 샤를 롸종. 히야신스 신부는 그의 별명이었다. 1827년 생으로 그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였지만 그에게는 영혼을 나누는 친구로 대해줬다. 이기적인 프랑스 사람들 중에 그 같은 사람은 참으로 흔치 않았다.

 

  신부는 일찍이 파리 마들렌 성당과 노틀담 성당에서의 웅변적인 설교로 유명해졌다. 그의 설교는 그 당시 파리의 카톨릭 신자들을 충격에 빠뜨렸고 동시에 흥분시켰다. 기존의 카톨릭 체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신부의 설교라니. 그의 설교는 간단했다. 하느님은 저 하늘의 햇빛과 같은 존재이고 이 세상 만물과 모든 인간들을 만드시고 주제하시는 분인데 어찌 인간의 모자란 틀로 한정시킬 수 있는가. 인간들의 모든 사상과 종교와 인종, 국가 역시 모두 그분의 피조물이고 뜻인데 그 중 어느 것은 맞고 어느 것이 틀린 것이라고, 어떤 것은 우월하고 어떤 것은 열등할 수가 있는가를 대체 누가 판단하겠는가 하는 논리였다. 하느님의 사랑은 천지만물 모두에게 평등하고 모든 인간들은 그들의 하느님을 그들의 방식으로 맞아들여 섬길 권리가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종교 개혁 이후 무수한 유혈 사태 후에 겨우 균형을 맞추고 있는 유럽 종교계를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었다. 롸종 신부는 카톨릭 교회가 세상 교회의 으뜸일 리 없고 그런 권리는 주어지지 않았다면서 개신교, 유태교, 영국 성공회, 동방 정교회 등등 예수를 믿고 그의 대속과 부활을 믿는 교회라면 하느님 앞에 똑같은 교회일 뿐이고 어떤 교회에 다니건 똑 같은 하느님의 소중한 양들이라며 카톨릭 도그마의 분쇄에 나섰다. 당연히 로만 카톨릭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했고 신부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의 신념을 동의하는 수많은 인사들에게 설교를 하고 돌아와 스위스 제네바와 네덜란드의 주교에 선출됐다. 그리고 미국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 에밀리 제인 버터필드와 결혼을 했다. 미국인인 그녀는 더구나 결혼했다가 남편을 먼저 보낸 미망인이었다. 기존의 카톨릭 사제로선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이었지만 그는 그런 것에 구애 받는 사람이 아니었다.

 

 파리로 돌아 온 롸종 신부는 곧바로 로마 교황의 절대적인 교황 무오류설을 반박하고 공격했다. 그리고 로만 카톨릭에서 독립된 프랑스만의 카톨릭 교회를 세웠다. 영국의 성공회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영국의 국왕이 수장이 되는 성공회 방식 역시 그의 신학 철학과는 맞지 않았다. 민주적인 형태의 구조를 갖춘, 오히려 개신교와 그 구조가 비슷한 프랑스 카톨릭 교회였다. 이를 프랑스 말로는 에글리즈 갈리칸(Eglise Gallicane)라고 했다. 롸종 신부는 스스로 진실한 하느님의 종이라 자신했고 그의 신념을 가리는 모든 것들과 평생에 걸쳐 투쟁해 온 사람이었다. 롸종 주교로 불리우는 것보다 히야신스 신부라는 별명으로 불리길 더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홍종우가 그를 이해하고 존경하듯 롸종 신부도 그를 사랑하고 이해했다. 그들의 생각과 행동 방식은 상당히 닮은 면이 있었던 것이다.

 

  현관의 초인종을 흔들자 히야신스 신부가 하얀 머리를 나부끼며 그를 반겼다.

 

 “오랜만일세. 어서 오게.”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양 뺨에 소리뿐인 키스를 하는 프랑스 식의 인사를 했다. 파리에서 어느 누구도 그에게 이런 식의 인사를 해 온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히야신스 신부는 두 번째 만남부터 늘 이렇게 인사를 해왔다. 그가 두 병의 포도주를 내밀자 함박웃음이 터졌다.

 

 “여전히 백포도주와 분홍색 포도주군. 자넨 아직 프랑스의 맛을 모르는 거야.”

 

 그는 아직도 프랑스의 이름 높은 붉은 포도주의 맛을 즐기지 못했다.

 

 “이봐. 프랑스를 알기 위해선 두 가지만 알면 되. 치즈와 포도주. 특히 로크포르 치즈의 지독한 냄새와 지롱드 강 좌안 적포도주의 떨떠름한 맛을 즐기기 시작하면 프랑스 사람이 다 되는 거지. 하하하..”

 신부는 늘 밝고 활기 넘쳤다.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였지만 하얀 머리칼을 제외하면 젊은 얼굴이었고 신체도 건강했다.

 “프랑스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는 곧 거실로 들어가 신부의 부인 에밀리에게 튤립 꽃다발을 안기고 역시 같은 방식의 인사를 했다. 그녀는 갈색 머리칼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포근한 인상의 노부인이었다.

 

 “튤립이 아직 많이 비쌀텐데 무리를 한 거 아뇨?”

 “대신 많이 먹고 마시고 가겠습니다. 마담.”

 

 그들은 떠들썩하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오늘은 말이야. 기가 막힌 닭 한 마리를 사 놨어. 소 등심도 조금 샀고. 내일까지 즐겨보세.”

 “여보. 오늘 너무 많이 마시지 말아요. 특히 노래는 정말 부르지 말고요. 난 홍공의 노래로도 충분하니까요.”

 

 신부는 벌써 그가 사 온 백포도주의 마개를 열고 있었다.

 

 “하필 알자스 포도주로군. 에르네스트 르낭이었으면 자네 혼났을 거야.”

 “르낭 교수님에겐 슬프게도 포도주 한 병 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천국에서 열심히 마시고 있을 테니까 걱정 말게. 그나저나 지금이 사월이니 굴을 먹을 철이 지나버렸군. 참 아쉽단 말이야. 알자스 리슬링 백포도주를 굴 없이 마시려니 아쉬워. 흐흐..잠시 후면 그 맛있는 미라벨 자두도 나올 텐데 이미 그 곳은 프랑스가 아니란 말이지. 독일 땅이 된 지 벌써 이십 년이구만.”

 “저는 ‘심청전’이라는 소설을 하나 쓰고 있습니다. 조선의 오래된 이야기를 소재로요.”

 “자넨 아주 소설가로 남지 그래. 조선과 중국과 일본 쪽 이야기를 소재로 쓴다면 무궁무진할텐데. 더구나 요즘 그런 책들이 아주 잘 팔리잖아?”

 “돈 때문에 쓰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아시잖아요. 조선을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특히 이 소설의 중심은 ‘효’입니다. 동양 유교 사상의 가장 핵심이 되는 윤리죠. 효도를 이해하지 않고는 조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하네. 부모에 효도하고 국왕에게 충성하자. 이게 유교의 핵심이 아닌가? 자네에게 수도 없이 들은 이야기지. 하지만 말이야. 공자는 성인이기는 해도 신이나 하느님이 아니고 신에 대해 예언하거나 선지하거나 하지도 않았어. 단지 착하고 올바르게 살자, 이거지. 유교는 아주 훌륭한 윤리와 도덕을 제시하는 학문이지 종교는 아닐세. 우리가 그렇게 싫어하는 도그마가 아니란 얘기야. 그런데 그 유교가 도그마가 되서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 신앙이 된다면 그야말로 바보 짓 아닌가?”

 “신부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유교는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고 수천 년간 만들어진 동양의 고유한 ‘세계관’ 그 자체입니다. 기독교라는 종교도 그 ‘세계관’의 하나라는 점을 신부님이 인정하신다면 유교도 그 방식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시겠지요.”

 “물론 인정하네. 하지만 세상을 창조하고 그 세상을 완전히 주재하시는 존재를 인정하고 그 존재에 순응하여 사는 것과 단지 사는 방법과 기준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는 철학 체계를 같은 방식으로 논하는 것은 다른 것 아닌가?”

 “신부님. 그 천지창조설을 믿습니까? 이미 진화론이 세상에 나온 지 벌써 수십 년이 됐습니다.”

 “겨우 수십 년일세. 논리가 진리가 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지. 찰스 다윈 등 그 몇몇의 진화론자, 그들이 아무리 유능하고 훌륭한 학자들이라도 이 세상 만물의 모든 기원과 진화의 비밀을 밝힐 수는 없네. 물론 언젠가 미래에는 가능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자네도 알다시피 난 그렇게 꽉 막힌 사제가 아니라네. 지금 이 곳 파리의 신부들 중엔 그 진화론을 인정하고 그 진화론을 카톨릭 신학에 반영하기 위한 연구를 하는 친구들이 몇 명 있다네. 르로이 신부, 떼야르드 샤르뎅 신부 등등. 로만 카톨릭의 폐쇄성을 미워하기는 하지만 기독교 신앙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야. 나도 천지창조설을 완전히 신봉하는 바보는 아니야. 성경의 한 줄도 진리 아닌 것이 없다는 둥, 교황은 전적으로 무오류해서 진실로 천국의 열쇠를 쥐고 우리의 속죄를 결정한다는 둥, 인간의 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그 바보 같은 도그마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때려 부수기 위해 나는 싸워왔어. 평생을. 하지만 말일세. 인류의 이성을 믿더라도 맹종하지는 말게. 그 이성이라는 것이 또 다른 도그마가 될 수도 있어. 진정한 진리는 하느님만이 아시는 거야. 아니 그 진리 자체가 하느님이고 하느님이 바로 진리일세. 바로 예수님의 말씀이시지. 우리는 겸손해야 하네.”

 “기독교는 비과학적인 세계관, 겨우 유대 민족 일족들의 신화를 세계 민중에게 강요해서 지금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그 점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로만 카톨릭이 아주 나쁜 짓을 많이도 했지만 오히려 나는 유교 쪽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보네. 개인적으로 자기 수양과 깨우침, 국가적으로 인민을 사랑하여 자애롭게 다스리는 치국의 철학에 근본이 있다면 오히려 자연과학적 발전에 더욱 적극적일수도 있었을 테고 사회를 더욱 발전시키고 민중들이 잘 먹고 잘 살도록 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일세. 동 아시아의 유교 체계는 생각하는 방식을 제한해왔고 그 스스로의 체계를 방어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로만 존재하고 말았네. 정말 반성할 일이야. 내가 유교 학자였으면 이런 상황을 그만 두고 보지는 않았을 거네...껄껄껄..”

 

 히야신스 신부는 웃고 말았다. 이 정도의 논쟁은 그들이 만나면 늘 하는 방식이었고 수준이었다.

 

 “어쨌든 그 심청전 잘 쓰기를 바라네. 기대되는군. 이제 슬슬 주방으로 가 보세. 예수님이건 공자님이건 먹어야 살 것 아닌가.”

 

  그들은 주방으로 가서 그 날 저녁을 위한 요리를 시작했다. 히야신스 신부는 닭 한 마리를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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