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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32. Je t'aime, Mon beau prince.
작성일 : 19-10-26 11:31     조회 : 165     추천 : 0     분량 : 8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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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았어! 이번에 최단기간으로 오십만 찍어보자고! 가즈아!"

 

  민호는 아침 댓바람부터 기운을 냈다. 며칠 전에 버스킹 할 때 올렸던 영상의 조회수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꽤 인지도가 생긴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팬클럽까지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더는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생계 유지가 가능했다.

 

 "이게 다 그 노래 덕분인가."

 

  직접 작곡한 곡 '새벽달'을 노래한 영상이 올라가고 나서부터 팬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매회 버스킹 때마다 따라다니는 팬들이 생겼고, 팬클럽이 형성되자 인터넷 상에서 유명세를 타는 건 한순간이었다.

 

 "벌써 일 년이 다 돼 가네. 잘 지내고 있을까."

 

  민호는 뜨거운 저녁 햇살을 맞으며 눈을 감았다. 그녀를 생각하며 쓴 곡이 벌써 세 곡이나 됐다. 지금 작업하는 이 곡도 그녀를 떠올리며 썼다. 아직 가사는 쓰지 못했지만, 악보는 거의 완성 단계였다.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마땅한 게 없냐, 왜. 모르겠다! 고민하면 뭘 하나."

 

  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통기타를 집어들었다. 날이 저무는 중이었다. 오늘도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팬들을 위해 버스킹 준비를 갖춰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분수대 앞에는 이미 민호의 팬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버스킹을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보다 먼저 와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민호는 팬들의 익숙한 얼굴을 보며 인사했다. 모두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기 위해 온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산등성이 너머로 해가 사라지자 기온이 빠르게 서늘해졌다. 낮아진 체온을 높이기 위해 공연을 일찍 시작했다.

 

 "오늘도 제 노래를 듣기 위해 찾아와주신 팬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오늘의 첫 곡은 언제나처럼 제 자작곡인 '새벽달'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공연도 잘 부탁드려요!"

 

  분수대를 둘러싼 팬들이 환호하며 손뼉을 쳤다. 공원을 지나다니는 산책객도 무슨 일인가 싶어 그 옆을 기웃거렸다. 그의 노래를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더운 여름밤. 그대는 소나기처럼 내렸어. 나는 밤이 새도록 노랠 불렀지. 그대와 눈을 맞추며..."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공원에 가득 울렸다. 예전보다 더 깊어진 목소리였다. 산책객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하늘이 어둠과 별빛으로 서서히 물들어갔다.

 

  그는 한 곡 한 곡 부를 때마다 열과 성을 다했다. 그의 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어둠이 더욱 짙어지자 길을 지나던 산책객이 대부분 돌아가고, 그의 팬들만 남았다. 민호는 마지막 곡을 준비했다.

 

 "오늘의 마지막 곡입니다. 아직 미완성 곡이지만, 지금까지 제 노래를 들어준 팬들을 위해 조금만 미리 들려드릴게요."

 

  팬들은 숨을 죽이고 그의 마지막 곡에 귀 기울였다. 마이크를 타고 통기타의 감미로운 선율이 흘러나왔다. 쓸쓸하고, 슬픈 음률이었다. 그 음울한 선율 위로 그의 흥얼거림이 더해졌다.

 

  아무 가사도, 다른 악기도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의 음악이 말하고 싶은 진심이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졌다. 짧은 노래가 끝나자 그가 마무리 인사를 했다.

 

 "오늘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과 모레는 공연이 없습니다. 이틀 쉬었다가 다시 이 시간에 나올게요. 다들 감사해요."

 

  민호는 고개 숙여 인사하며 버스킹을 끝마쳤다. 팬들은 뒷정리를 하는 그를 응원한 뒤, 하나둘 공원을 떠났다. 분수대 앞에 그만 혼자 남게 되었을 때, 그는 고개를 들어 눈을 감았다.

 

  이제 자신의 노래를 들어줄 사람은 많아졌지만, 정작 자신이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사람은 없었다. 공연을 마치고 나면 부쩍 그녀가 더 그리웠다. 그녀는 영영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걸까.

 

 "벌써 끝났어요?"

 

  그리운 목소리가 들렸다. 눈이 번쩍 뜨였다.

 

 "한 곡만 더 들려줘요."

 

  그의 눈앞에 머리가 긴 흑발의 여성이 나타났다. 예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였지만, 얼굴은 여전했다. 일 년이 지났어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지수 씨!"

 "민호 씨! 반가워요!"

 

  지수가 그에게 다가가 그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민호는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벅찬 숨을 가다듬고 물었다.

 

 "언제 왔어요? 어떻게 온 거예요? 아니다, 밥은 먹었어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로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민호 씨..."

 

  그녀의 얼굴이 어둠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어둠 사이로 투명한 액체가 그녀의 턱선을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나 어떡해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민호 씨에게 이렇게 찾아오면 안 되는데... 그 사람을 잊으려고 왔는데... 이곳에 오니까 더 그가 보고 싶어요. 나 좀 도와줘요... 그 사람 잊을 수 있게 도와줘요... 제발..."

 

  민호는 심장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그녀의 눈물이 가슴에 닿았다. 이대로 그녀의 바람을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 그러나 가슴 속에 뜨거운 기운이 그 생각을 가로막았다.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그녀를 마주 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빛나고 있었다.

 

 "지수 씨... 사실은... 아직 살아있어요."

 

 *

 

 "지수 씨가 프랑스에서 보낸 바이올렛 꽃. 겨울 동안 죽은 줄 알았는데. 봄이 되이까 다시 꽃이 피었지 뭐예요."

 

  민호는 거실 창가에 놓인 바이올렛 꽃을 보여줬다. 작은 화분에 보라색 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화분에도 노란 꽃이 피어나는 중이었다.

 

  지수는 노란 붓꽃을 보며 프랑스에 도착해서 한국에 보낼 선물을 고를 때를 떠올렸다.

 

 '어떻게 오셨어요?'

 '한국에 보낼 선물을 찾고 있어요.'

 '한국이라... 어떤 분한테 보내실 건가요?'

 '음. 세 명한테 보낼 건데요. 한 명은 엄마고, 한 명은 친구, 한 명은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꽃에 대해 잘 몰라서 어떤 꽃을 선물해야할지 모르겠어요.'

 '호홋. 특이하네요. 우선 엄마한테는 카네이션을 보내는 게 어떨까요. 카네이션은 보기에도 좋고, 키우기에도 그리 힘든 꽃이 아니랍니다. 친구한테는 바이올렛이라는 꽃이 좋을 것 같은데. 바이올렛의 꽃말은 영원한 우정이에요.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꽃으로 할게요.'

 '이 꽃은... 노란 아이리스. 꽃이 핀 모습이 나비 같다고 해서 관상용으로 많이들 키우죠. 시련을 극복하는 사랑을 의미하기도 하고요. 좋은 꽃을 고르셨네요.'

 

  지수는 기억의 잔상을 지우고 눈을 떴다. 노란 붓꽃은 반쯤 피어난 상태였다. 울컥울컥 차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더는 그것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벅차오르는 숨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뒤돌아섰다.

 

 "민호 씨. 나 좀 도와줘요."

 "뭐든 말만 해요.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요?"

 

  민호가 안쓰러운 눈으로 그녀를 봤다.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그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알고 싶어요. 그를 죽인 마녀에게 데려다줘요."

 

 *

 

  간수는 한기를 느끼며 자신의 팔뚝을 매만졌다. 여름이 벌써 코앞이건만 이곳에만 오면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헛기침을 한 뒤, 곤봉으로 철창을 두드렸다.

 

 "1108호. 면회다."

 

  감방 안의 죄수에게서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1108호. 면회라니까. 대답... 안 해?"

 

  간수는 꺼림칙한 얼굴로 감방 가까이 다가갔다. 등지고 앉아있는 1108호 죄수가 보였다. 곤봉으로 철창을 두드리자 죄수의 고개가 반쯤 돌아갔다. 죄수의 얼굴이 반쯤 드러났다.

 

 "으씨. 놀래라...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된다니까..."

 

  간수는 뒷걸음질 치며 침을 꿀꺽 삼켰다. 죄수는 다시 등지고 앉았다.

 

 "이, 이봐. 그러지 말고 면회 나가지 그래... 면회자가 자기 이름을 말하면 올 거라던데..."

 

  간수는 철창 가까이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러자 죄수가 제자리에서 천천히 뒤돌아섰다. 죄수의 서늘한 눈빛이 간수를 향했다. 간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하얀 눈동자 속에서 시린 바람이 불어오는 듯했다.

 

 *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마녀의 독 사과를 먹고 영원히 잠든다. 동화 속에 나오는 마녀는 항상 공주를 싫어한다.

 

  왜 마녀는 공주를 죽이려 했을까. 마녀에게 그 이유를 물으면 뭐라고 대답할까.

 

 "왜 그를 죽인 거예요."

 

  지수는 맞은 편에 앉은 로이에게 물었다. 로이는 하얀 눈으로 그녀의 눈을 마주 봤다. 그의 변한 눈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본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차가운 유리 벽이 얼음벽처럼 그들을 갈라놓았다.

 

 "당신이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수도 없이 고민했어.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왜 그를 죽인 거지."

 

  그녀의 눈이 하얀 눈동자 속에 숨은 광기를 응시했다.

 

 "내가 그런 짓을 했다고? 내가 그 애를 그렇게 만든 거라고 생각하니?"

 

  뿌연 장막에 가려진 그의 동공이 위아래로 벌어졌다. 숨소리가 크게 떨리기 시작했다.

 

 "다 너희들이 자초한 거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모두 너희 탓이라고!"

 

  로이가 제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차갑게 갈라진 목소리가 유리관을 넘어서 뿜어져나왔다.

 

 "적어도 난 그 애를 사랑했어! 그 애가 상처받지 않게! 더는 아프게 않게 사랑한 거라고!"

 

  지수는 눈을 질끈 감은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이 그를 사랑했다고?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고?"

 

  실내에는 싸늘한 공기가 맴돌았다. 그녀의 감은 눈가에서 눈물이 새어나왔다.

 

 "그건 사랑이 아니야. 독선적이고, 편협해! 어리석은 집착일 뿐이라고!"

 

  그녀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좁은 공기 중에 메아리쳤다.

 

  로이는 차분해진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차가운 유리 벽 앞으로 고개를 내밀고 속삭였다.

 

 "그러는 너희들은 제대로 사랑했니?"

 

  로이가 반쯤 감은 눈으로 지수를 응시했다. 그의 혼탁한 눈동자에 좌우로 크게 흔들리는 지수의 상이 맺혔다.

 

 "너희들은 사랑을 알아? 너희들이 하는 건 사랑이니? 사랑이 뭔지 아냐고!"

 

  지수는 그의 성난 고함에 어깨를 떨었다. 울먹이는 그녀의 목소리가 차가운 유리 벽 너머로 힘겹게 넘어갔다.

 

 "몰라... 모르겠어... 그런데... 사랑은 이기적이면 안 되잖아.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사랑은... 상대를 위해야 하잖아..."

 "아니. 사랑은 구속하는 거야. 사랑은 가지는 거라고."

 "그렇지 않아. 사랑하면... 나를 희생해야 해.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내가 더 아픈 거라고. 당신은 그를 사랑한 게 아니야.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로이는 고개를 숙인 그녀를 무심히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메마른 목소리가 유리 벽을 통해 흘러나왔다.

 

 "사랑은 원래 이기적인 거야. 그 애 엄마한테 가서 그날에 대해 물어봐. 난, 그날 내가 살린 목숨을 가져간 것뿐이니까."

 

  지수는 면회실에 홀로 남아 그가 남기고 간 목소리에서 불어오는 추위를 온몸으로 느꼈다. 사방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듯했다. 그녀는 아무도 살지 않는 설원 속을 천천히 걸어가는 중이었다.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

 

 "괜찮아요?"

 

  민호가 공원 벤치에 힘없이 앉은 지수에게 물을 건넸다. 지수는 초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반짝이던 그녀의 눈빛이 어두웠다.

 

 "지금 지수 씨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민호는 어렸을 때 본 포켓몬스터의 질퍽이 같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녀의 시선이 잠깐 스쳐 가자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와아. 드디어 웃었네요. 지수 씨가 웃기만 한다면야 하루종일 이라고 있을 수 있는데."

 "아니에요. 민호 씨 덕분에 조금 괜찮아졌어요."

 "지수 씨. 지나간 건 그냥 그대로 둬요. 좋은 추억으로 기억한다면... 그걸로 최선을 다한 거이까."

 

  지수는 그의 말에 살며시 눈을 감았다. 모든 걸 지나간 일로 하기에는 여전히 정리하지 못한 물음이 산더미 같았다.

 

 "민호 씨. 민호 씨는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네? 사랑이요? 갑자기 그런 걸 물으이까..."

 

  민호가 당황해 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다 진지한 그녀의 표정을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사랑은 뭘까. 어려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정답은 쉬웠다. 그녀의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사랑은..."

 

  그녀의 눈이 오롯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녀의 시선 속에 꽃이 숨어 있었다. 그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행복해지는 그런 마법 같은 꽃이었다.

 

 "곁에서 지켜보는 게 아닐까요."

 "지켜보는 거라고요?"

 "네. 사랑하는 사람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냥 자기가 좋아서 지켜만 보아도 행복한 게, 사랑 아닐까요."

 

  민호는 고개를 돌리는 그녀를 지켜보며 말을 끝맺었다.

 

  지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그의 말을 되뇌었다.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였지만, 마음 한편의 짐이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쳐들었다.

 

 "민호 씨. 나, 고독한 씨 엄마를 보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는 벤치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를 눈으로 좇았다. 어느새 기운을 차린 얼굴로 뒤돌아보는 그녀에게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등 뒤에서 햇살이 쏟아졌다.

 

 *

 

 "여기는 집으로 가는 길이잖아요."

 "네. 맞아요. 그 사람은 한이 형이 그렇게 되고 나서 카페를 이어받았어요. 뭐가 미련이 남았는지. 이젠 카페에 손님도 없는데 말이에요."

 

  민호는 멀리서도 안이 훤히 보이는 카페를 보며 혀를 찼다. 지수는 그와의 기억이 가득한 카페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그들이 카페 안으로 들어가자 카페 사장이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았다.

 

 "어서오..."

 

  이영화는 손님의 정체를 발견하자 말을 끝맺지 못했다. 서서히 다가오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물어보고 싶은 거라니... 손님이 아니라면 나가지 그래..."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지수의 물음에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이영화는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했다. 지수가 끈질기게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날 일은 사고였어... 그땐 너무 힘들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도대체... 고독한 씨에게 무슨 짓을 한 건데요?"

 

  지수가 끓어오르는 울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날... 그날...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한 건데요... 고독한 씨 목을 졸랐어요? 고독한 씨를 죽이려 한 거예요? 왜? 왜 엄마가 자식을 죽이려 했어요... 왜... 무슨 이유 때문에..."

 

  이영화는 자신의 눈앞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그날의 전경이 아직도 선명했다. 어떻게 그날을 잊을 수 있을까. 영원히 속죄하지 못할 죄를 자식에게 지은 그 날을.

 

 "사랑해서...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야..."

 "사랑... 이라고... 사랑해서... 그런 짓을 했다고요..."

 "그래...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넌 몰라! 아무것도 모른다고! 차라리 죽는 게 나은 삶을 네가 알아!"

 "당신이 고독한 씨를 죽였어. 당신이 죽인 거야... 그 사람을 더 아껴줬더라면... 다른 엄마처럼 보살펴줬더라면... 그렇게... 그렇게..."

 

  지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두 볼 위로 뜨거운 기운이 흘러내렸다.

 

 "죽지 않았을 거라고..."

 

  이영화는 칼로 심장을 후벼파는 듯한 그녀의 말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결국 그를 그렇게 만든 건, 그녀 자신이었다. 그러나 지수의 마지막 말에 참아왔던 감정이 터져나왔다.

 

 "죽었... 다니? 무슨 소리야. 그 애는 아직 살아있어. 누가 그래! 누가 우리 애가 죽었다고 그러냐고! 내가 살릴 거야... 우리 애가 어떤 애인데... 다시 깨어난 사례도 많아... 죽은 게 아니라고..."

 

  지수는 그녀의 격앙된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살아있다고 절박하게 외치는 그녀의 말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다. 그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살아있다니... 살아있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나가! 당장 이 카페에서 나가!"

 

  이영화는 소리 지르며 뒤돌아섰다.

 

  지수는 등지고 선 그녀에게 손을 뻗으며 애원했다. 다시 깨어난다니... 죽은 게 아니라니... 그녀의 말이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숨이 가빠왔다. 누군가 심장을 꽉 움켜쥐고 있는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그때 그녀의 어깨에 따뜻한 손길이 닿았다. 민호가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따라와요. 데려다줄 곳이 있어요."

 

 *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눈 부셨다. 바람은 시원하고, 거리는 따뜻했다. 길은 가로수가 끝없이 펼쳐진 깊은 숲속으로 향했다. 일곱난장이가 살고 있는 동화 속 숲으로 가는 걸까. 주위에는 울창한 나무만 보였다.

 

  울창한 숲속 길의 끝에는 높은 나무 뒤로 삼 층 높이의 요양원이 있었다. 요양원 마당에는 간호사와 의사, 노인,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보였다. 그들을 지나쳐 요양원의 삼 층으로 올라갔다.

 

 "여기에요."

 

  민호 씨는 굳은 얼굴로 문 앞을 가리켰다. 문은 반쯤 닫혀 있고, 그 사이로 어둠이 새어 나왔다.

 

  여기에 그가 있는 걸까. 모두가 숨겨온 진실이 이곳에 홀로 숨죽이고 있던 걸까.

 

  나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옅은 어둠이 사방에 가득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어둠은 더욱 짙어졌다. 짙은 어둠에 피부가 시렸다.

 

  한 걸음. 한 걸음.

 

  어둠 속으로 내딛는 걸음마다 세상은 새하얀 눈밭으로 변했다. 어느 순간, 온세상이 깨끗한 설원으로 둔갑했다. 그 새하얀 설원의 중심에 그가 있었다.

 

 "고독한 씨..."

 

  그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투명한 침대 위에 잠들어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볼은 헬쑥하게 야위었지만, 그의 아름다움은 꿈에서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그의 곁으로 가서 그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심장 고동이 머릿속을 울렸다.

 

  이 순간을 얼마나 바랐을까. 그의 얼음처럼 차가운 가슴 위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예쁜 왕자님. 드디어 당신을 구하러 왔어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갔다. 파랗게 질린 그의 입술이 보였다. 무엇을 해야 할지 이미 가슴이 알고 있었다. 그의 새파란 입술에 입을 맞췄다.

 

  Je t'aime, Mon beau prince.

 

  열린 창문으로 나비가 날아들었다. 나비는 아름다운 날갯짓으로 그의 가슴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잠들어 있어도 그는 언제나처럼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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