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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19. 반쪽 짜리. 다음에 또 보자고.
작성일 : 19-10-26 11:27     조회 : 173     추천 : 0     분량 : 7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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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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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거울 앞에 선 지민은 오늘 외출할 옷을 골랐다. 꽃무늬 스커트를 몸에 대보기도 하고, 심플한 원피스를 입어보기도 하고, 치마 바지와 청핫팬츠 중에 고민하기도 했다.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엊그제 제모를 했는데 벌써 올라오네."

 

  그가 다리털을 깎을까 고민하다가 오늘은 그냥 긴 청바지를 입기로 결정했다. 상의는 프릴이 들어간 티셔츠를 입고, 신발은 굽 높은 하이힐을 신었다. 외출복을 다 갈아입자 거울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았다.

 

 "오늘은 더우니까 산뜻하게, 뽀샤시한 것도 좋겠지. 하지만 조금 쌔 보일 필요도 있어."

 

  그의 앙상한 손이 마스카라로 눈가를 짙게 칠했다. 새빨간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날카로운 인상을 줄 수 있도록 샤프하게 음영을 줬다. 모든 준비를 끝마치자 거울 앞에는 예쁘게 치장한 청년이 서 있었다.

 

  그는 만족한 얼굴로 상큼하게 향수를 뿌렸다.

 

 "그럼 선전 포고하러 가볼까."

 

  지민이 거리를 활보하자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봤다. 키가 크고, 늘씬한 몸매 때문에 어디서든 주목받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위화감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꼈다.

 

 "뒷모습은 여잔데, 얼굴이..."

 "엄마, 저 사람 남잔데 여자 옷을 입었어."

 

  그가 어린 소녀의 목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그의 눈이 갸름하게 웃었다.

 

 "맞아. 난 남자야. 너보다 아름다운 남자."

 

  소녀는 깜짝 놀라 엄마 뒤로 숨었다. 소녀의 시선이 화사하게 웃고 있는 그의 얼굴에 고정되었다.

 

 "눈 마주치지 마. 저런 사람한테 함부로 말 거는 거 아니야."

 

  소녀의 부모는 딸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급하게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지민이 달아나는 모녀에게 소리쳤다.

 

 "너희들은 몰라! 아름다움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넓은 보폭으로 그들을 가로질러 갔다. 그의 발걸음이 3층 건물 앞에 멈춰섰다.

 

 "여긴가."

 

  그의 눈에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는 카페가 보였다. 여성들의 시선은 한 사람을 향해 있었다.

 

 "얼마나 잘 났는지 한 번 보자고."

 

  지민은 당당하게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앙칼진 목소리가 카페에 울렸다.

 

 *

 

  새벽 일찍 일어난 고독한은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창문을 활짝 열고, 햇살을 온몸 가득히 맞았다. 시원한 아침 공기로 가슴이 부풀어올랐다.

 

 "좋은 아침이네."

 

  그는 찌뿌둥한 몸을 천천히 스트레칭 했다. 깨끗한 하늘만큼이나 머릿속이 맑았다.

 

  어제와 오늘은 전혀 다른 날이었다. 그의 얼굴은 고요한 아침 풍경처럼 평온했다.

 

 "내려가볼까."

 

  고독한은 일하러 갈 준비를 마치고, 거실로 내려갔다. 거실 소파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가 앉아 있었다.

 

 "고독한 씨! 좋은 아침이에요."

 

  지수는 아빠 다리를 한 채로 관광 팜플랫을 살펴 보는 중이었다. 그녀의 민소매 티 안으로 분홍색 브래지어가 비쳐 보였다. 짧은 반바지는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의 눈이 그녀를 몰래 훔쳐보다가 놀랐다. 그는 괜히 딴청을 피우며 고개를 돌렸다.

 

  왜 여자 다리에 눈이 가는 거야. 그냥 다리일 뿐이라고.

 

  잊으려 했지만, 어제 한강 다리 위에서 뜨겁게 입맞춤한 사실이 떠올랐다. 얼굴이 붉어졌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듯 자기 할 일에 집중했다. 왠지 기분이 불편했다.

 

  그녀에게 입맞춤은 아무것도 아닌 걸까. 여자는 원래 사랑한다는 말을 실없이 내뱉고, 쉽게 입 맞추고 금방 잊는 걸까.

 

  그녀가 어떤 마음일지 궁금했다. 그녀 옆으로 슬쩍 다가갔다.

 

 "뭐 하는데."

 "서울 관광지를 보고 있어요. 엄마랑, 아니... 나 혼자 여행하려고요. 서울에 왔으니까 어디가 좋은지 보는 거예요. 절대 엄마랑 같이 가려고 하는 건 아니고. 엄마 얘기를 하면 안 되는데, 계속 엄마라고 말해서 미안해요. 절대 엄마랑 상관이 없어요. 또 엄마라고..."

 

  그녀가 당황한 목소리로 얼버무렸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내 앞에서 억지로 엄마 얘기 피하려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그래도 고독한 씨 앞에서는..."

 

  지수는 금세 울상을 지었다. 오히려 고독한이 당황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지, 지금 네가 하는 행동이 더 부담스러워."

 "헙! 미안해요. 내가 부담스럽게 해서..."

 "아니,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네가 부담스럽다는 게 아니라."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네가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야. 이건 내 개인적인 문제니까."

 

  그가 멋쩍은 듯이 고개를 돌렸다. 왜 이런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 그럼 고독한 씨 앞에서 엄마 얘기 해도 돼요?"

 "그, 그래..."

 "와! 사실 엄마랑 함께 놀러갈 곳 보고 있었어요! 이런 말 하면 안 믿겠지만, 나 사실 거짓말을 잘 못해요. 어렸을 때, 이빨 안 닦았는데 닦았다고 거짓말 했다가 가브리엘 아빠한테 엄청 혼난 적이 있어서..."

 "믿어. 너, 거짓말 못 하는 거 엄청 티나거든."

 "정말요? 티 안 내려고 엄청 노력한건데. 아, 고독한 씨! 그럼 서울에 놀러갈 곳 추천 좀 해줘요! 어디가 좋을까요?"

 

  지수는 해맑은 얼굴로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는 그녀의 손에 이끌려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그녀의 손이 관광 지도를 활짝 펼쳤다. 그녀가 발랄한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서울 하면 남산타워? 그런데 여름이라서 등산하기에는 더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궁에 가볼까요? 한국의 궁궐은 베르사유 궁전과 또 다른 멋이 있을 것 같아요. 한복도 입어 보고 싶은데. 한옥마을 같은데도 괜찮지 않아요?"

 

  그녀의 몸이 그에게 가깝게 밀착했다. 그는 팔에 닿는 물컹한 감촉에 자꾸 움츠러들었다.

 

  뭐, 뭐야. 이 감촉은... 왜 여자 몸은 전부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건데. 왜 몸에 닿기만 하면 뜨거워지는 거냐고.

 

  앉은 자리가 불편해졌다. 그녀에게 닿은 피부에서 땀이 나는 듯했다.

 

 "그... 너무 가까운데..."

 

 "네? 그럼 조금 멀리 가볼까요? 그래도 너무 멀리는 가기 힘들어요. 아직 한국 지리도 잘 모르고, 엄마도 갈 수 있을지 몰라서..."

 

 "그게 아니라... 계속 닿으니까... 좀 옆으로..."

 "옆으로 가라고요? 서울 옆이면 어디를 말하는 거예요?"

 

  지수는 자꾸만 멀어지려는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고독한이 그녀를 떨쳐내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몰라! 가까우니까 좀 떨어져서..."

 "계속 어디가 가깝다는 거예요? 그럼 먼 곳이라도 추천해줘요. 어디 가요? 고독한 씨!"

 

  그녀의 목소리가 집 밖으로 나가는 그를 불렀다. 그는 현관문을 열고 나가서 빠르게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숨이 차올랐지만, 항상 목을 조르던 그 느낌과는 달랐다.

 

 "진정해. 난 게이야. 난 게이라고."

 

  그의 주문이 복도에 울렸다.

 

  그는 주먹을 꽉 쥐고 숨을 깊게 내쉬었다. 떨리던 가슴도 진정됐다.

 

 "왜 계속 이러는 건데. 이상해. 이번주 안에 무조건 내쫓아야겠어."

 

  고독한은 무심한 얼굴로 다짐하며 카페에 내려갔다. 평소와 같이 오픈 준비를 마치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언제나처럼 카페에는 여성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은혜로운 시간이야. 저 외모로 말미암아 내 죄가 사라지는 기분이랄까."

 "나보다 어리지만 오빠라고 부르고 싶어. 오빠. 사랑해요, 오빠!"

 

  여성 손님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그에게 향하는 시선이 많아졌다.

 

  그는 따갑게 느껴지는 관심에 고개를 숙였다. 평소대로라면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아야 정상인데 이상하게 부끄러움이 들었다. 모든 여자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처럼 보였다. 아랫입술이 윗입술보다 두툼하고, 장미처럼 붉은 그녀의 입술.

 

 "정신 차려. 난 게이야. 게이. 남자를 좋아한다고."

 

  그가 중얼거리며 일에 집중했다. 그의 손이 점점 빨라지고, 일에 집중하다보니 잡생각이 사그라들었다. 그의 표정이 원래의 무심한 얼굴로 돌아왔다.

 

  그때 중성적인 목소리가 카페에 울렸다.

 

 "당신이 이 카페 사장이야?"

 

  지민은 고독한에게 도발적인 눈빛을 보내며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

 

 "듣던 대로 얼굴은 예쁘네. 근데 가진 걸 하나도 사용할 줄 모르잖아."

 

  지민의 눈이 멀뚱히 서 있는 고독한을 위에서 아래로 쓱 훑었다.

 

 "이건 나태하다는 증거야. 나태한 사람은 절대 성실한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법이지. 고로 당신은 나한테 안돼."

 

  지민이 화장을 하지 않은 고독한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콕콕 집어가며 따졌다. 고독한이 무심한 표정 그대로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음료 시키겠어요?"

 "음료? 하핫! 내가 여기 뭐 마실려고 온 줄 알아?"

 "그럼 손님은 아닌 것 같은데."

 "이것봐. 난 당신에게 오늘 선전 포고를 하러 왔어."

 

  지민은 한쪽 발을 뒤로 크게 내밀며 고독한에게 온몸으로 삿대질 했다. 카페에 온 손님들이 그의 모습을 보며 수군거렸다.

 

 "뭐야, 저 사람. 왜 우리 사장한테 삿대질이야. 얼굴은 완전 남자처럼 생겨가지고."

 "저 여자, 남자 같은데? 옷은 여자 옷인데, 얼굴이 남자잖아. 뭐야, 변태인가 봐. 목소리도 완전 저질이야."

 

  지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신에게서 로이를 뺏아가겠어!"

 

  지민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며 소리쳤다. 고독한이 처음 보는 그를 찬찬히 살펴보다가 혼잣말을 했다.

 

 "미친 것 같은데."

 "미, 미쳤다니! 나한테 어쩜 그런 소리를!"

 

  지민이 소스라치게 호들갑을 떨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눈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봤다.

 

 "이 말을 듣고도 나한테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 있을까."

 

  그가 고독한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고독한은 뒤로 반걸음 물러났지만 그가 고개를 내밀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로이 같이 멋진 남자한테 애인이 너뿐이라는 생각은 버려. 거기다..."

 

  지민의 눈썹이 위로 솟았다. 그의 목소리가 더욱 은밀하게 다가왔다.

 

 "네가 로이와 잠자리를 가지지 않는다는 걸 다 알고 왔다고. 어떻게 알았냐고? 내 앞에서 그는 항상 폭발하기 직전의 상태거든."

 

  고독한이 무심한 눈으로 지민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민은 비아냥거리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넌 반쪽 짜리야. 딱 보면 알 수 있지."

 

  지민은 뒤돌아서서 머리 위로 손을 내저었다.

 

 "반쪽 짜리. 다음에 또 보자고."

 

  카페문이 열리고, 카페에는 차가운 정적만 남았다. 손님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들리지 않게 웅성거렸다. 그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 향했다.

 

  고독한은 평소의 무심한 얼굴 그대로 커피를 내렸다. 검은 에스프레소 위로 지민의 말이 떠올랐다. 그 말을 지우기 위해 에스프레소를 한 입에 삼켰다. 새까맣게 탄 것처럼 쓴 커피맛이 입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

 

  늦은 아침, 샛노란 햇살이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민호는 평소와 다르게 깨어나 있었다. 헤드셋을 끼고, 컴퓨터를 빤히 들여다봤다. 그의 손이 바빴다.

 

 "민호 씨! 뭐해요!"

 

  갑자기 지수가 방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민호는 깜짝 놀라서 순식간에 헤드폰을 벗고, 모니터 전원을 껐다. 그 모든 일이 불과 일 초 만에 이루어졌다.

 

 "야동 봤어요?"

 "무, 무슨 소리예요! 야동이라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요!"

 "한국어 사전에 다 나오던데요. 괜찮아요. 나도 그 정도는 이해해요. 방해해서 미안해요. 그럼 계속 즐겨요."

 

  그녀가 방문을 반쯤 닫았다. 절박한 그의 외침이 문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이까요! 들어와요!"

 "정말 괜찮아요? 하다가 중간에 끊으면..."

 "지수 씨! 정말 안 봤어요! 근데 무슨 일인데요?"

 

  그가 얼굴을 붉히며 화제를 돌리려 애썼다. 그의 이마 옆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게... 엄마랑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어디 가야 할지 몰라서요."

 

  지수는 관광 팜플랫을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민호는 창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를 시켰다.

 

 "엄마랑 여행을 간다고요? 몇 박 며칠로 갈지 정했어요?"

 "아니요. 아직 엄마한테 물어보지도 못했어요."

 "서울 근교까지는 하루 안에 다 갔다 올 수도 있긴 한데. 멀리 가려면 자고 와야하이까요. 며칠 있다 올 거라면 부산도 괜찮아요. 내 고향이 부산이라 잘 알거든요. 추천해줄 관광지나, 맛집 같은 델..."

 "너무 멀리는 안 될 것 같아요. 여기서 가깝지 않으면서, 서울 옆이 좋겠어요."

 

  그녀가 갑자기 뜬금없는 목표를 말했다.

 

 "네? 서울 옆이라면... 인천이나 춘천을 말하는 거예요?"

 "음. 그냥 여기서 가깝지 않고, 옆이라고 했어요."

 "뭔가 굉장히 추상적이네요. 그렇게 해서는 찾기 힘들겠는데요."

 "그래도 고독한씨가 직접 추천해준거라서..."

 "한이 형이요?"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러지 말고 엄마한테 직접 물어보는 건 어때요?"

 "엄마한테요?"

 "엄마랑 같이 여행을 가는 거니까 엄마 의견도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지수씨 엄마도 이십 년 만에 만난 딸이랑 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 같은데."

 

  창가에 비치는 햇살을 맞으며 민호가 미소 지었다. 지수도 그를 따라 활짝 웃었다.

 

 "와아! 역시 민호씨! 고마워요!"

 

  그녀는 기쁜 마음을 마구 표출하며 그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의 볼이 빨갛게 물들었다.

 

 "지금 엄마 만나러 가볼게요. 엄마가 올 시간이 거의 다 됐거든요. 나중에 봐요!"

 

  방문이 닫히고 방에는 불규칙적인 숨소리만 들렸다.

 

  민호는 떨리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심장이 공연의 마지막 곡을 부를 때처럼 빠르게 뛰었다. 헤드셋을 끼고, 다시 컴퓨터를 켰다.

 

  모니터에는 복잡한 기호가 떠올랐다. 그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헤드셋으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컴퓨터를 보는 그의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

 

  한국의 이름난 패션지의 편집실. 직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빨리 움직였다. 편집실에는 명품 옷과 가방, 장신구가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이거, 이거랑 저것도. 저 가방은 어디 거지?"

 

  로이는 바쁜 사람들 속에서 중심을 잡고, 작업을 진두지휘 했다. 부편집장이 로이 옆에서 그를 거들었다.

 

 "샤넬 겁니다."

 "저 옷은?"

 "프라다 겁니다."

 "괜찮네. 프라다 말고 다른 건?"

 "로랭이랑 구찌도 있긴 한데 가격이 다 만만치가 않아서..."

 "가격이 낮은 거는?"

 "슈프림이랑, 언티피드, 베이프, 스투시가 있었긴 한데 편집장님 눈에 맞는 옷은 없었습니다."

 "그럼 일단 이렇게 하고, 다음 가을옷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니?"

 

  로이는 부편집장에게 성과물이 담긴 서류를 건네며 물었다. 부편집장은 재까닥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편집장님. 옷은 거의 준비를 마쳤는데, 아직 모델을 다 구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말했지.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라고. 사람이 먼저고, 그다음이 옷이라고."

 

  로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편집실에 낮게 깔렸다. 편집실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바쁘게 움직이던 직원들의 발소리조차 사라진 듯했다.

 

 "일단 모델 한 자리는 비워놔."

 "네? 혹시 그 분..."

 

  부편집장이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로이는 갑자기 한 손을 들어 보이더니 편집실로 들어갔다. 그의 손이 귀에 꽂힌 인이어를 눌렀다. 편집실 문이 닫히고, 그가 미성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분명히 연락은 내 쪽에서만 한다고 말 했을 텐데."

 "오늘 자기 집으로 갈까? 아니면 우리 집에 올래?"

 "끊어. 다신 연락하지마."

 

  그의 손이 다시 인이어 쪽으로 향했다.

 

 "잠깐만! 이 말은 듣고 끊어. 자기 애인..."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인이어를 통해 바람 섞인 목소리가 속삭이듯이 울렸다.

 

 "꽤나 예쁘장하게 생겼더라."

 "너 설마..."

 "방금 보고 오는 길이야. 근데 반쪽짜리던데."

 

  로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 애한테 말했어?"

 "뭘? 우리가 자는 사이라고? 아니면 자기 애인은 우리랑 다르다고?"

 "맥스!"

 "어머. 자기가 날 그렇게 불러줄 때, 난 흥분되더라. 참고로 말하자면 둘 다 얘기했어."

 "이제 우리가 보는 일은 다신 없을 거야!"

 

  로이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작게 소리질렀다. 인이어에서 중성적이면서 차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자기가 그 반쪽 짜리한테 집착하는 걸까? 자기랑 나는 누구보다 잘 어울려. 취향도 맞고, 성격도 비슷하고, 완전하다는 것까지."

 "널 계속 만나는게 아니었어. 내가 만만하니?"

 "자기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나도 자기랑 같아. 내가 갖고 싶은 게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쟁취하지. 결국 자기는 나를 필요로 할 거야."

 

  로이는 인이어를 빼내어 바닥에 힘껏 집어던졌다. 인이어는 차가운 바닥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다. 그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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