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1일간 안보이기 닫기
모바일페이지 바로가기 > 로그인  |  ID / PW찾기  |  회원가입  |  소셜로그인 
스토리야 로고
작품명 작가명
이미지로보기 한줄로보기
 1  2  3  4  5  6  >>
 1  2  3  4  5  6  >>
 
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14. 나는 엄마 같은 거 없어! 그러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져!
작성일 : 19-10-26 11:26     조회 : 170     추천 : 0     분량 : 8203
뷰어설정 열기
뷰어 기본값으로 현재 설정 저장 (로그인시에만 가능)
글자체
글자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오늘 최고였어요!"

 "이렇게 기쁜 날, 이대로 보낼 순 없잖아요. 집에 가서 맥주 한잔 할래요?"

 

  민호와 지수는 편의점에서 맥주캔과 마른안주를 사서 집으로 향했다. 시원한 밤공기가 뜨거웠던 열기를 차츰 식혀주었다.

 

 "엄마는 어떻게 만난 거예요?"

 "카페에서 만났어요.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엄마가 나타났어요. 기적처럼 말이에요."

 "역시, 그 사람이..."

 

  민호는 그녀에게 들리지 않게 혼잣말로 속삭였다. 지수는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이게 다, 민호 씨 덕분이에요!"

 "왜, 왜요. 내는 아무것도..."

 "민호 씨가 알바를 구해줬잖아요. 그 덕분에 엄마도 만나게 됐고. 생각해 보면 내 첫사랑도 민호 씨 덕분에 만나게 된 거잖아요!"

 

  그녀가 제자리에서 방방 뛰었다.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이 보름달처럼 밝게 빛났다.

 

 "어쩌면 민호 씨는 내 수호천사인가봐요!"

 "이제는 수호천사에요? 수호천사는 프랑스어로 뭔데요?"

 "우죠 가르지앙."

 "우, 우죠 가르빙?"

 "우죠 가르지앙. 우, 죠, 가르지앙."

 "우지, 가르징, 에이, 내는 그냥 모나미가 딱 좋은 것 같아요."

 

  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손사레 쳤다.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웃음기가 사라졌다. 멋쩍은 목소리로 수줍게 물었다.

 

 "그럼 사랑합니다, 는 프랑스어로 뭔데요."

 "쥬뗌므."

 

  지수가 해맑게 웃으며 불어를 말했다. 말랑말랑한 음성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민호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두 눈을 마주봤다. 아이처럼 티 없이 맑은 눈동자였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쥬뗌므."

 

  투박한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짧은 침묵이 그들 사이에 찾아왔다.

 

 "연습해본 거예요, 연습.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한테 해줄려고요."

 

  민호가 먼저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지수는 해맑은 얼굴로 그를 뒤따라갔다.

 

 "프랑스인이랑 연애하려고요?"

 "그거야 모르죠. 프랑스인일지, 프랑스어를 잘하는 한국인일지."

 

  잡담을 나누는 사이, 그들은 어느새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서 거실로 향했다. 왠일인지 거실 불이 켜져 있었다.

 

 "한이 형?"

 

  고독한이 부엌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민호가 지수의 안색을 살피며 그에게 맥주캔을 들어 보였다.

 

 "같이 한잔 할래? 오늘 지수 씨가..."

 "엄마 찾았으면 이제 이 집에서 나가."

 "한이 형!"

 

  고독한은 도수 높은 술을 마시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을 삼켰다. 민호가 그에게 소리쳤지만,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엄마 찾으려고 이 집에 있는 거 아니에요."

 

  지수가 해맑게 웃었다. 그녀의 집게손가락이 고독한을 가리켰다.

 

 "고독한 씨를 유혹하려고 이 집에!"

 "형, 일단 나랑 얘기해."

 

  민호는 상황이 더 복잡해지는 것 같아서 고독한을 데리고 부엌 한편으로 갔다. 고독한은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렸다. 협상의 의지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용건 끝났으면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해. 너도 들었지. 쟤가 나를..."

 "형,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지수 씨는 진심으로 형을... 일단 조금만 더 시간을 줘. 오늘 엄마를 찾았는데 당장에 내일 헤어질 수는 없잖아."

 "굳이 이 집에서 지낼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정 뭐하면 엄마한테 재워달라고 하던가."

 

  고독한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엄마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민호는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의 과거사를 어느정도 알고 있기 때문에 더 골치가 아팠다.

 

 "형, 이십 년 만에 오늘 드디어 처음 만난 친부모야. 어떻게 바로 친부모 집에 들어갈 수 있겠어."

 "부모가 자기를 버린 게 아니라는데, 왜 그 정도도 못 해줘. 부모가 자식을 자기 집에서 재우는 게 힘든 일이야?"

 "내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다른 형제가 있을 수도 있고, 또 다른 가정을 꾸렸을 수도 있잖아."

 "다 핑계고, 변명이야. 버린 건 버린 거라고. 지금 다시 찾아봤자 똑같이 또 버림받을 거라고!"

 

  고독한은 벅차오르는 숨을 가다듬으며 목에 스카프가 있는지 손으로 살폈다. 스카프를 매만지는 손이 떨렸다. 시선 끝에 그녀가 계속 들어왔다.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생각해보니 답은 하나였다.

 

  그녀가 정말로 엄마를 찾을 줄 몰랐다. 제풀에 지쳐서 프랑스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런데 진짜 엄마를 찾고 말았다. 바보같이 해맑게 웃는 얼굴로.

 

  신경을 쓰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녀가 엄마를 찾든, 그 사람한테 다시 상처를 받든, 다 상관없는 일이니까.

 

  그런데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 그녀를 마주치는 게 불편하고, 그녀를 보는 게 불편하고, 그녀가 상처받을 사실이 불편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 마음을 떼어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게 우선이었다.

 

 "한이 형..."

 

  민호는 안쓰러운 눈으로 그를 지켜봤다. 그의 심정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였다. 그러나 분명 그의 반응은 평소보다 과민했다.

 

 "빠른 시일 내에 쫓아내. 아니면 너도 같이 쫓겨날 줄 알아."

 

  고독한은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거실로 간 민호는 그녀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애써 웃으며 상황을 둘러댔다. 지수는 위층으로 향한 계단을 올려다봤다. 어둠 속에 잠긴 계단은 형벌장으로 가는 통로처럼 보였다.

 

 "왜, 왜..."

 

  고독한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목을 손톱으로 긁었다. 흉터가 점점 거대하게 자라났다. 손톱으로 긁어도 사라지지 않는 흉측한 흉터였다.

 

 "버려질 거야. 분명히 다시 버림 받을 거라고."

 

  그는 거울 속의 목을 제 손으로 조르며 눈을 감았다. 감은 눈으로 지수의 어깨를 친근하게 안아주는 여성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 여성의 얼굴 위로 어릴 적부터 끈질기게 따라다닌 저주의 형상이 겹쳐 떠올랐다.

 

 "안 돼. 사라져. 꺼지라고..."

 

  그날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그날의 고통이 선명히 떠올랐다. 그날의 공포가 목을 졸랐다.

 

  서서히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어떻게든 입을 벌리고 숨을 쉬려 했지만, 대기 중에 공기가 모두 사라진 듯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아주 느리게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괜찮아. 내가 옆에 있으니까."

 

  고독한은 천천히 눈을 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뒤로 백발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 사내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고독한의 목을 매만졌다.

 

 "내 허락 없이 죽을 생각하지 마. 감히."

 "로이..."

 

  로이의 붉은 혀가 고독한의 목을 훑었다. 손톱으로 피멍이 든 목의 상처, 희미하게 사라진 흉터 자국, 부드러운 그의 살결을 세심하게 어루만졌다. 흰 뱀이 그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듯했다.

 

 "나한텐 전부 토해내도 괜찮아. 모조리 다 받아줄게."

 

  로이의 목소리가 뱀의 혀처럼 귓속을 유린했다. 어둠이 하얗게 타올랐다.

 

 *

 

  창문 밖으로 푸른 하늘과 높은 한강 다리가 보였다. 해는 한강 다리를 타고 솟아올랐다. 햇살이 창문을 넘어와 바닥으로 기울었다.

 

 "일찍 깼네."

 "잠이 안 와서."

 

  고독한은 창문가에 앉아서 먼 하늘을 봤다. 넓은 창문으로 보이는 아침 풍경이 눈부셨다. 로이가 그의 어깨에 턱을 기대며 그를 뒤에서 안았다.

 

 "무슨 일인데. 어젯밤부터 계속 이상했어."

 

  햇살이 차츰 그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낮은 목소리가 햇살을 따라 고요한 공기 중에 깔렸다.

 

 "엄마를 찾았대."

 "그 납치범 말이야? 잘됐네."

 "이십 년 만에 만난 엄마래."

 

  로이는 아무 말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살갗에 닿는 햇살이 따사로웠다.

 

 "로이. 이십 년 전에 버린 엄마를... 어떻게 하면 웃는 얼굴로 맞이할 수 있을까."

 

  고독한이 먼 하늘 속에서 다른 풍경을 보며 물었다. 눈을 뜨고 있어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난 모르겠어. 어떻게... 그 엄마도... 자기가 이십 년 전에 버린 자식을 보며, 그렇게 친근하게 안을 수가 있지."

 "한."

 

  로이가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차츰 푸른 하늘이 하얗게 물들었다.

 

 "내가 말했잖아. 여자는 다 똑같다고. 그 여자도, 그 엄마도 모두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우리는 절대 이해 못 해."

 "맞아."

 "그러니까 더이상 우리 삶에 여자를 끌어들이지 마. 내 말 들어. 전부 우릴 위한 거니까."

 

  고독한은 넋 나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걸어갔다. 옷장에서 여러가지 옷을 골라서 스탠드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어두었다.

 

 "오늘은 날이 좋아서 스타일리쉬 하게 꾸며봤어. 괜찮지?"

 

  로이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그의 발걸음이 고독한에게 향했다.

 

 "날 봐. 지금 무슨 생각해?"

 "아무 생각도."

 

  로이가 고독한의 턱을 손으로 붙잡았다. 흐릿한 그의 눈을 깊이 응시했다.

 

 "한 번 버려진 건 두 번, 세 번 다시 버려질 거야. 너도 알잖아. 그 여자도 결국 다시 버려져 상처 받을 거고, 그 여자는 또 누군가를 버리겠지. 버리고, 버림 받고, 그게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야. 왜, 너도 그렇게 해줄까? 다시 돌아가고 싶어!"

 

  로이는 고독한의 양쪽 어깨를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고독한은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벙긋거렸다. 그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넌 내 소유야. 아무대도 못 가."

 

  로이의 입술이 숨을 갈망하는 고독한의 입술을 덮쳤다.

 

  고독한은 눈을 질끈 감으며 주먹을 와락 쥐었다. 그토록 갈망하던 숨이 로이의 입속에서 뿜어져나왔다. 온몸의 혈관이 뜨거운 타액으로 물들어갔다. 격찬 떨림이 피부끝에서부터 혈류 속으로 퍼져갔다.

 

 "제발, 널 괴롭히게 하지마. 언제나 칭찬만 해주고 싶다고."

 

  로이가 품 안으로 고독한을 끌어안았다. 고독한은 힘없이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힘겹게 내쉬는 숨소리만 들렸다.

 

 *

 

 [아빠들! 오랜만이야!]

 [리아! 며칠 만에 연락하는 거니! 매일매일 연락하기로 했잖아!]

 [안드리아가 한국에 간다는 걸 겨우 말렸다. 리아,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안드리아와 가브리엘이 작은 영상 속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리아가 입술을 꾹 다물고, 말을 아꼈다.

 

 [왜 그래, 무슨 일이니? 숙소는 구했어? 밥은? 한국 음식은 입에 잘 맞니?]

 [안드리아. 하나씩 물어야 리아도 대답을 하지. 지금 있는 곳은 어디야?]

 

  안드리아와 가브리엘 부부가 카메라 속에 비치는 곳을 살펴봤다. 일반 가정집 같아 보이기도 하고, 꽤 넓은 집의 거실처럼 보였다. 특이한 건 리아가 앉은 소파 말고는 주위가 휑하다는 것이었다.

 

 [아빠들.]

 

  리아는 눈을 감으며 눈물을 참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환한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내가 엄마를 찾았어.]

 

  그녀의 말이 영상을 통해 그들에게 전달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잠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녀의 말을 이해하고 반응하기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걸렸다.

 

  안드리아가 가브리엘의 어깨에 기대며 미소 지었다. 가브리엘은 안드리아의 어깨를 보듬어주었다.

 

 [정말 잘됐구나. 그럼 지금 있는 곳은 친엄마 집이니?]

 [아니, 여기는 고독한 씨 집이야. 내가 말했던 첫사랑.]

 

  안드리아와 가브리엘이 두 눈을 번쩍 뜨고 소리쳤다. 리아는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주위를 살피며 볼륨을 낮췄다.

 

 [아빠! 여기는 지금 이른 아침이라서 조용히 해야해. 방에서 민호 씨도 자고 있단 말이야.]

 

  그녀의 폭탄 선언에 한 번 더 경악스런 소리가 났다. 가브리엘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카메라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의 붉어진 얼굴이 화면에 크게 나타났다.

 

 [리아! 당장 그 집에서 나와! 지금 우리 앞에서 사내들이랑 동거하고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거야! 리아!]

 [가브리엘 아빠. 화내지 말고 진정해요.]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설마 동거하는 남자가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사실...]

 

  리아는 잠시 뜸들이며 말했다.

 

 [동거하는 건 아니지만. 집에서 자고 가는 남자가 한 명 더 있긴 해요.]

 

  안드리아와 가브리엘은 더이상 놀랄 힘도 남아 있지 않은지 허탈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자 당장에라도 한국에 쳐들어갈 것처럼 소리질렀다.

 

 [아빠들. 프랑스에는 조금 더 있다가 갈 것 같아요. 내 걱정 말아요! 나는 지금 최고로 행복하다구요! 다시 연락할게요!]

 

  리아는 노트북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며 영상 통화를 끊었다. 시끌벅적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거실이 조용해지자 부엌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독한 씨! 오늘 일찍 일어났네요."

 

  고독한이 못마땅한 얼굴로 대꾸 없이 밖으로 나갔다. 리아는 시원하게 차려입은 자신의 옷차림을 훑어보며 심각하게 고민했다.

 

 "역시, 가죽이 아니면 안 되나."

 

  그녀가 옷차림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고독한은 카페로 내려가 오픈 준비를 했다. 커피의 원두를 볶고, 바닥을 청소하고, 테이블을 닦았다. 그때 오픈도 하지 않은 카페에 누군가가 불쑥 찾아왔다.

 

 "뭐 도와줄 거 있어요? 말만 해요!"

 

  지수가 활기찬 목소리로 소란스럽게 등장했다. 고독한이 무심한 얼굴로 물었다.

 

 "왜 왔어."

 "고독한 씨 보려고요."

 "나가."

 "엄마랑 아침에 이 카페에서 보기로 약속했어요. 엄마 올 때까지 있어도 돼요?"

 

  그녀는 무심한 그의 태도에 금세 꼬리를 내리며 사실을 말했다. 그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대신 가만히 있어."

 "네!"

 

  지수가 다리를 꼬며 오픈 준비를 하는 고독한을 훔쳐봤다. 청 핫팬츠를 입은 그녀의 긴 다리가 늘씬했다. 일부로 그에게 잘 보이도록 다리를 연달아 바꿔서 꼬았다. 그러나 그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고독한 씨."

 "말 걸지 마."

 

  고독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기세등등했던 그녀의 어깨가 풀이 죽었다.

 

  어떻게 하면 그를 반하게 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사랑 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게 더 힘들다고 하지만, 그녀에게는 사랑하는 것보다 사랑 받는 게 더 어려웠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서 차근차근 오픈 준비를 끝마치는 그를 지켜봤다. 그의 예쁜 얼굴은 언제봐도 한결같이 예뻤다. 하루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아. 손님들이 왜 하나같이 카페를 떠나지 않는지 이해는 된단 말이지. 그녀의 얼굴이 헤벌레 웃었다.

 

 "이십 년 만에 보는 엄마가 그렇게도 좋아?"

 

  그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지수는 빠르게 표정을 감추며 말을 둘러댔다.

 

 "그야 당연하잖아요. 이십 년 만에 헤어진 엄마를 만난 건데."

 "헤어졌다니. 그 사람이 그렇게 말했어?"

 "네. 엄마가 나에게 고맙다고 했어요.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의 시선이 지수에게로 향했다.

 

 "엄마는 나를 버린게 아니었어요. 혹시나 버린 건 아닌지 걱정도 했었는데. 그런데 잃어버렸대요. 나를 버린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지수는 어제 마주했던 엄마를 떠올렸다. 그때의 포근함과 따뜻함이 되살아났다.

 

 "이십 년 만에 엄마가 안아줬는데. 정말 포근했어요. 엄마 품이 그렇게 따뜻하다는 걸,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제 알았다니까요. 고독한 씨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요. 괜찮아요. 원래 사람은 익숙한 것에 고마움을 잘 못 느끼잖아요."

 "나는..."

 

  고독한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엄마의 품이란 게 어떤 느낌인지 기억속에서 찾아보려 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쉼없이 흔들렸다.

 

 "어렸을 때, 엄마랑 소풍을 간 친구들을 보면 부러웠거든요. 이제 나도 할 수 있어요. 엄마랑 놀이공원에도 가고, 간식을 싸들고 등산도 하고. 어떤 게 좋을 것 같아요?"

 

  지수가 해맑게 웃으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공포에 잠긴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갑자기 카페 문이 열리면서 불청객이 들어왔다.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마. 내가 못 올 곳에 온 것도 아니고."

 

  이영화는 자기 허리만한 백을 들고 카페에 나타났다. 그녀에게서 독한 향수 냄새가 났다.

 

 "나가..."

 

  고독한은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아도 온몸에 퍼지는 향수 냄새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점점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너 정말 말 뽐새가 글러 먹었구나."

 

  화장기 짙은 이영화의 얼굴이 구겨졌다.

 

 "제발, 나가라고!"

 "엄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

 

  이영화는 입에 담기 힘든 험한 욕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그가 애원하듯이 소리쳤다.

 

 "당신이 왜 엄만데! 나는 엄마 같은 거 없어! 그러니까 내 눈앞에서 사라져!"

 "고독한 씨..."

 

  지수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오는 입을 가로막으며 놀랐다. 이영화가 그녀의 존재를 확인하고 헛기침을 했다.

 

 "손님이 있었니. 그렇다고 말하는 싸가지 봐. 여자 친구니? 아니, 여자 친구가 있을 리가 없지. 뭐, 우리 애 쫓아다니는 얼빵한 여자겠지. 이봐요. 우리 애, 게이인 거 알아? 이놈 게이라고. 남자 좋아하는 게이."

 

  고독한은 벽에 기대어 서며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감은 눈속으로 매일밤 혼자서 잠들던 그때가 떠올랐다. 캄캄한 어둠이 느껴졌다. 어둠은 벌레처럼 온몸을 기어 다니며 목을 향해 움직였다. 서서히 목이 조여왔다.

 

 "지수야."

 

  마침 새로운 손님이 카페에 찾아왔다.

 

 "이게 무슨..."

 

  명품 옷으로 말끔히 차려입은 류미리는 카페 안의 심각한 분위기를 느꼈다. 카페 안에 있던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들은 서로를 살펴보며 서로의 얼굴을 확인했다.

 

 "화영?"

 "마리..."

 

  이영화와 류미리가 서로를 마주 보며 놀란 눈을 깜박였다. 지수는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는 이 상황을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봤다. 고독한은 조용해진 어둠 속에서 가쁜 숨을 진정시켰다.

 

  활짝 열린 카페 문으로 더운 바람이 불어왔다. 실내 온도가 빠르게 상승했다.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글자
36 36. 에피소드-12 2019 / 10 / 26 175 0 1494   
35 35. 우리 키스할까. 날씨가 좋잖아. 2019 / 10 / 26 173 0 8093   
34 34. 사랑하니까 보낼 수 없다고! 사랑하니까! 2019 / 10 / 26 178 0 7448   
33 33. 에피소드-11 2019 / 10 / 26 169 0 1912   
32 32. Je t'aime, Mon beau prince. 2019 / 10 / 26 165 0 8607   
31 31. 여기, 한국행 비행기 표야. 내일 당장 한국… 2019 / 10 / 26 165 0 8750   
30 30. 에피소드-10 2019 / 10 / 26 194 0 1796   
29 29. 아무도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아무도... 2019 / 10 / 26 169 0 8805   
28 28. 내 눈에는... 예쁜 나비가 보여요. 2019 / 10 / 26 168 0 7388   
27 27. 에피소드-9 2019 / 10 / 26 168 0 1532   
26 26. 날 벗어나면 어떻게 되는지 그 고통 속에… 2019 / 10 / 26 167 0 8924   
25 25. 내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니... 2019 / 10 / 26 170 0 6922   
24 24. 에피소드-8 2019 / 10 / 26 180 0 1337   
23 23. 넌 충분히 매력적이야. 게이가 봐도 말이… 2019 / 10 / 26 156 0 8563   
22 22. 저 사람이 저 여자 엄마니. 2019 / 10 / 26 165 0 6590   
21 21. 에피소드-7 2019 / 10 / 26 161 0 1516   
20 20. 처음이자 마지막 경고니까 새겨들어. 이 … 2019 / 10 / 26 172 0 7240   
19 19. 반쪽 짜리. 다음에 또 보자고. 2019 / 10 / 26 170 0 7762   
18 18. 에피소드-6 2019 / 10 / 26 162 0 1594   
17 17. 난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두 가지 있어. … 2019 / 10 / 26 170 0 8145   
16 16.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내도 알자, 좀! 2019 / 10 / 26 159 0 7486   
15 15. 에피소드-5 2019 / 10 / 26 162 0 1351   
14 14. 나는 엄마 같은 거 없어! 그러니까 내 눈앞… 2019 / 10 / 26 171 0 8203   
13 13. 민호씨. 내가 엄마를 찾았어요! 2019 / 10 / 26 159 0 6661   
12 12. 에피소드-4 2019 / 10 / 26 153 0 1356   
11 11. 엄마... 이거 꿈이에요. 2019 / 10 / 26 173 0 8317   
10 10. 이건 나만 아는 비밀인데. 고독한씨... 게… 2019 / 10 / 26 162 0 6834   
9 9. 에피소드-3 2019 / 10 / 26 177 0 1180   
8 8. 내가 구해줄게요. 나의 예쁜 왕자님. 2019 / 10 / 26 161 0 8367   
7 7.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네. 엄마한테… 2019 / 10 / 26 164 0 6979   
 1  2  
이 작가의 다른 연재 작품
등록된 다른 작품이 없습니다.

    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거부   |   신고/의견    
※ 스토리야에 등록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본사이트는 구글 크롬 / 익스플로러 10이상에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주)스토리야 | 대표이사: 성인규 | 사업자번호: 304-87-00261 | 대표전화 : 02-2615-0406 | FAX : 02-2615-0066
주소 : 서울 구로구 부일로 1길 26-13 (온수동) 2F
Copyright 2016. (사)한국창작스토리작가협회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