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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고독한 쥬뗌므
작가 : gloryr****
작품등록일 : 2019.10.26

우리는 저마다 어떤 사랑을 할까?

헌신적인 사랑을 믿는 리아
사랑에 의해 상처만 받는 고독한
사랑을 집착하고 소유하려는 로이
곁에서 바라만 봐도 행복한 민호
사랑을 투쟁으로 쟁취하려는 지민
제각기 다른 사랑을 믿는 이들이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멋진 공주와 예쁜 왕자 동화 속으로
​지금 당장 들어가볼까요?

 
8. 내가 구해줄게요. 나의 예쁜 왕자님.
작성일 : 19-10-26 11:24     조회 : 162     추천 : 0     분량 : 8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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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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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은냄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거실 전체에 라면 냄새가 진동했다.

 

  지수는 매콤한 냄새에 입맛을 다시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녀의 두 눈이 어느 때보다 반짝거렸다.

 

 "먹어요?"

 

  그녀가 식탁 앞에서 젓가락을 들고 물었다. 민호는 그릇에 손수 라면을 덜어주며 그녀에게 건넸다.

 

 "혀 델걸요. 천천히 먹어요."

 "앗뜨뜨!"

 

  지수는 라면을 입에 문 채로 허겁지겁 입김을 불었다. 혀 천장이 뜨거울 것인데도 한 번 입에 들어간 라면을 절대 놓지 않고 열을 식혔다.

 

  그 모습을 본 민호가 웃으며 그녀에게 찬물을 줬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찬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렇게 뜨거워요? 눈물까지 흘릴 만큼?"

 "아니요. 너무 마시어요!"

 

  지수는 울먹거리면서 본격적으로 라면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민호는 라면 두 개를 혼자서 뚝딱 해버리는 그녀의 식성에 감탄했다.

 

 "배 마이 고팠나 보네요."

 

  그녀는 대답할 여유도 없는지 고개만 끄덕거리며 잘 익은 계란도 꺼내먹었다. 매일 먹었던 계란도 라면에 넣으니 또 다른 맛이었다.

 

 "너무 마싰서..."

 

  지수가 순수하게 놀라며 국물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그녀의 먹방이 순식간에 끝이 났다.

 

 "어! 내가 혼자 다 먹어서 어떡해요."

 

  다 먹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지수가 걱정하며 물었다. 그녀의 입주위에 라면을 먹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괜찮아요. 원래 아침은 거르는 편이라서."

 "그래도..."

 "진짜 괜찮으니까. 입에 뭐 마이 묻었는..."

 

  그가 자신의 입을 가리키며 그녀의 입주위에 묻은 라면 자국을 가리켰다. 그녀가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하자 휴지를 든 손을 그녀의 입 주위로 가져갔다.

 

 "줘요. 내가 할게요."

 

  지수는 그의 손에서 휴지를 받아서 입주변을 대충 닦았다. 민호는 깨끗하게 닦아내지 못하는 그녀를 보며 슬그머니 웃었다.

 

 "그럼 이제 첫사랑도 찾았고. 엄마 찾는 일만 남았네요?"

 "네! 다 민호 씨 덕분이에요."

 "내가 뭘요. 한 것도 없는데. 대신 엄마 찾는 건 진짜 도와줄게요. 근데 정말로 사진 한 장만 들고 왔어요?"

 

  그녀는 해맑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더이상 놀라지도 않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입양 센터부터 찾아가야 겠네요. 어쨌든 국외로 입양을 했으면 그 기록이 남아 있을 테이까요."

 "정말요? 난 생각지도 못했어요."

 "내는 왠지 지수 씨라면 그럴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말, 나 무시하는 거예요?"

 

  지수가 허리에 손을 얹고 뾰로퉁한 표정을 지었다. 민호는 그녀의 귀여운 행동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닌데요. 다 먹었으면 나가요. 빨리 엄마 찾아야죠."

 "맞는 것 같은데. 지금 나보고 계획 없고, 대책 없고, 답이 없다고 생각한거잖아요."

 

  그가 그녀의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가 사실 계획이 없는 척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나도 그 정도는 아니에요. 사실 사진 말고 하나 더 있어요."

 

  지수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숨 죽이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 이름."

 "이름이요?"

 "네! 지수라는 내 이름!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라고요."

 

  민호는 그녀의 대답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랐다. 조심스럽게 한 번 더 물었다.

 

 "그럼... 성은 뭐에요?"

 "성은..."

 

  그녀가 말을 뜸 들였다. 그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그녀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대했다.

 

 "성은 몰라요. 그런데 한국식 이름은 확실히 엄마가 지어준 거래요. 안드레아가 그랬어요."

 

  민호는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나, 이 여자는 감히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무계획성을 가지고 있었다.

 

 "아, 네... 그거라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럴까요? 빨리 엄마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사진 한 장이랑, 이름뿐이면 조금 서둘러야겠는데. 지금 바로 갈까요? 내는 기타만 챙기면 되는데."

 

  둘은 각자 나갈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갔다. 계단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지수 씨는 몇 살이에요?"

 "열아홉이에요."

 "나보다 한 살 어리네... 요. 한국에서는 여자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남자한테 오빠라고 부르는데..."

 

  민호는 쑥스러운 듯이 끝말을 삼켰다. 지수가 갑자기 계단에 멈춰서서 뒤돌아봤다.

 

 "고독한 씨는 왜 집에서도 스카프를 메요?"

 "한이 형이요? 내도 잘 모르겠는데."

 

  그는 어색하게 반말을 섞어 말하며 뒷목을 긁적였다. 생각에 잠긴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고독한 씨 스카프를 풀어주려 했는데."

 "아, 그래서 형이 밀쳤구나. 지수, 씨... 야. 내도 형이랑 거의 일 년 넘게 같이 살고 있는데. 형 스카프 벗은 걸 못 봤다. 워낙에 집에서도 단정한 편이라."

 "그런데 그때 표정이..."

 

  그녀는 겁에 질린 듯한 그의 눈을 기억해냈다. 그건 마치 상처 입은 짐승의 눈과 비슷했다. 그는 무언가를 지켜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스카프를 붙잡고 있었다. 그의 목에 무슨 비밀이라도 있는 걸까.

 

 "표정이 뭐?"

 

  지수가 고개를 저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민호는 어색하지 않게 반말을 튼 것에 흡족해하며 그녀를 뒤따라갔다.

 

  그들은 건물을 빠져나와 거리로 나갔다. 그가 주변을 둘러보며 카페 안을 훑었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움직이다가 카페에서 멈췄다.

 

 '아니, 카페에서 대놓고 뭐 하는 거야! 사람들 다 보는구만!'

 

  민호가 빠르게 지수를 찾았다. 지수가 카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지수야!"

 

  그가 별안간 소리치며 그녀의 시선을 돌렸다.

 

 "네?"

 "그러이까... 오빠라고 불러볼래?"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싫어요."

 

  지수가 그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 민호는 속으로 눈물을 삼키며 그녀의 시선을 끈 것만으로 다행이라고 만족했다.

 

 "그럼 엄마 찾으러 갈까... 요?"

 

  그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높임말을 섞어서 물었다. 시간이 지나도 대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반말한 게 기분이..."

 

  그가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눈이 슬그머니 그녀를 훔쳐봤다. 그녀는 어느새 카페 안을 보고 있었다.

 

 "지수 씨..."

 

  지수는 카페 안에 있는 두 명의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를 품에 안은 채로 진한 입맞춤을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백발의 사내에게 가려진 다른 한 명의 남자에게로 향했다.

 

  그 남자의 외모는 여자로 착각할 만큼 예뻤다. 무겁게 닫힌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고독한 씨가 게이였다니..."

 

 *

 

  어제보다 더 따뜻해진 공원은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붐볐다. 아직 초여름인데도 불구하고, 다들 반팔티와 반바지를 입고 산책했다. 그들은 공원에 활짝 핀 꽃과 연꽃으로 뒤덮인 연못 주위를 활기차게 걸어 다녔다. 그 가운데 우울하게 벤치에 앉아 있는 남녀가 있었다.

 

 "와이리 힘이 없어요. 힘 좀 내요."

 "네... 그럴게요."

 "그런 얼굴로 말해봤자 하나도 힘 안 날걸요.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라이까요. 스마일!"

 

  민호는 자신의 입꼬리를 양 손가락으로 올리며 웃었다.

 

  지수는 놀리는 듯한 그의 얼굴을 보자 괜히 울컥해졌다. 백발의 사내와 예쁜 왕자가 진하게 입 맞추는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민호의 멱살을 잡고 애처롭게 외쳤다.

 

 "사실이 아니라고 해요! 내가 잘 못 본 거라고 말해요!"

 

  공원을 산책하는 주위 사람들이 쳐다봤지만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살려달라며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그녀가 급속도로 시무룩해진 얼굴로 물었다.

 

 "내가 본 게 다 꿈이 아니고 현실이에요? 고독한 씨가... 진짜 게이에요?"

 "꼭 알아야겠어요? 그기 그리 중요해요?"

 "그럼 당연히 중요해요!"

 "게이면... 그라면 포기할라고요?"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우리 집에서 나갈 거예요? 한이 형이 게이면?"

 

  지수는 그의 멱살을 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내 첫사랑이 게이라는 건 전혀 생각도 못 해봤다고요!"

 "마이 당황스럽겠네요. 내 같아도..."

 

  민호는 잠시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상상해봤다. 상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졌다.

 

 "어떻게 만난 내 첫사랑인데..."

 "한국에 온지 하루만에 만났잖아요. 내 때문에."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만약에 민호 씨가 사랑하는 사람이... 민호 씨를 사랑할 수 없다면 어떨 것 같아요? 민호 씨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내는..."

 

  그가 헛기침을 하며 목을 풀었다. 그의 눈빛이 잠깐 그녀를 스쳐갔다.

 

 "곁에서 지켜볼라고요, 내만 좋으면."

 

  민호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었다. 지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곁에서 지켜봐도 나를 봐주지 않는다구요, 게이는..."

 "한국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그는 등에 메고 온 기타를 꺼냈다. 기타줄을 빠르게 조율하고, 기타 피크로 줄을 튕겼다. 공원에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울렸다.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내 생에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이었어. 잘 살고, 못 사는 건. 타고난 팔자지만. 당신만을 사랑해요. 영원한 동반자여."

 

  이 곡을 처음 듣는 사람은 원래 트로트였다는 걸 전혀 모를 정도로 감미로운 선율이었다. 밝고, 신나는 노래가 애절하고, 담백한 노래로 색다르게 바뀌었다. 산책객들이 걸음을 멈추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트록 주법으로 시작했던 기타 연주는 아르페지오 주법으로 끝을 맺으면서 긴 여운을 남겼다. 그가 마지막 가사를 읊조리면서 미소 지었다.

 

 "영원한 동반자여. 영원한 동반자여."

 

  노래가 끝나자 지수가 밝은 얼굴로 손뼉을 쳤다. 언제 우울했냐는 듯 한껏 들뜬 표정이었다.

 

 "브라보, 브라보! 진짜 좋아요!"

 "아니, 그이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한 곡 더 해줘요. 한 곡 더!"

 

  민호는 활기찬 얼굴로 보채는 그녀를 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게 그녀의 매력이었다. 그의 손이 강하게 기타 줄을 튕겼다.

 

 "배 나온 남자. 아저씨라 부르지 좀 말아줘요. 날씬하진 않지만 깜찍하고 귀엽기만 하잖아. 술 없는 남자. 아저씨라 부르지좀 말아줘요. 평생을 혼자 벗겨질까 불안함에 살아가요."

 

  강한 기타 음이 공원에 울렸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어깨를 들썩거리며 기타를 쳤다.

 

 "머리 큰 남자. 아저씨라 부르지 좀 말아줘요. 사진 찍으면 그대 얼굴 콩만 하게 만들어요. 이렇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나. 왜 나를 괴롭히나. 제발 아저씨라 부르지 마."

 

  지수가 손뼉을 치며 그와 함께 리듬을 탔다. 흥겨운 노랫소리에 아이들이 그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지나다니는 산책객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관심을 가졌다.

 

 "오빠라고 불러다오!"

 

  민호는 벤치 위로 올라가서 하늘을 보며 소리 질렀다. 그러자 아이들이 신난 목소리로 그의 노래를 다 같이 따라불렀다.

 

 "오빠라고 불러다오!"

 

  흥을 돋우는 후렴구에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나자 어느새 그들 주위로는 수십 명의 관객이 몰려 있었다.

 

  민호가 구슬땀을 흘리며 지수를 봤다. 지수는 관객 중 한 명이 되어 그를 응원하는 중이었다. 그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떠올랐다.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곧 알바 시간이 다 돼서 오래 할 수는 없지만, 점심 전까지 내랑 같이 즐겨볼 사람 소리질러!"

 

  사람들이 손을 들고 환호했다. 민호는 벤치 손잡이 위로 발을 치겨들며 기타를 위로 들었다. 신나는 락앤롤 선율이 공원 가득히 울려퍼졌다.

 

 *

 

  예쁜 왕자님. 왜 그렇게 예쁜 거예요. 남자가 반할만큼 예쁜 건 너무하잖아요.

 

  눈을 감으면 예쁜 왕자가 백발의 사내와 입맞추는 모습이 보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고독한 씨가 게이라니. 믿을 수 없지만 사실이야.

 

  백발의 사내와 입맞추는 그의 얼굴이 선명히 떠올랐다. 한폭의 명화처럼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그러나 가슴 한 편에 묘한 거부감이 들었다.

 

  이렇게 첫사랑과 평생 동반자로만 지내야 하는 걸까. 이럴 때, 안드리아와 가브리엘이 옆에 있었다면 무슨 말을 해줬을까.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안드리아 아빠. 아빠는 어쩌다 게이가 된 거야?"

 "뭐? 호홋. 리아. 게이는 직업이 아니야. 자기가 되고 싶다고 될 수가 없어."

 "그럼? 아빠는 왜 게이야?"

 "음. 왜라는 건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질문을 바꿔볼게. 내가 리아한테 왜 여자냐고 물으면 어때?"

 "그거야... 몰라! 내가 여자로 태어났는데 왜가 어딨어!"

 "나도 마찬가지야. 게이로 태어난 걸 왜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가 없지."

 "그럼... 그럼 나도 게이인 거야? 애들이 게이도 옮는다고 그랬어."

 "이런... 리아. 게이는 옮거나 그런 게 아니야. 그건 그냥 애들이... 놀리려고 지어낸 헛소문이야. 그리고 게이라는 건 남자 동성애를 말하는 거지, 여자 동성애는 레즈비언이라고 부른단다."

 "안드리아. 그럼 나는 레즈비언이야?"

 "그건... 그건... 이럴 땐 정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네. 동성애는 물려받거나, 옮거나 그런 게 아닌데. 그러니까 그건... 자기만 알 수 있는 거란다."

 "어떻게?"

 "음... 확실한 건 아닌데, 우리끼리는 쉽게 판별하는 방법이 있지."

 "뭔데, 뭔데?"

 "바로 키스야. 동성과 진심으로 입을 맞출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동성애라고 볼 수 있지. 가브리엘도 그래서 알 수 있었어. 대학교 술자리에서 그에게 키스해야만 하는 벌칙에 걸렸거든. 다른 사람들은 질색했지만, 내가 대뜸 그에게 가서 키스 했지. 그리고 그 순간, 알았단다. 가브리엘도 나와 같다는 걸."

 

  마침 가브리엘이 집으로 들어왔다. 안드리아는 여느 때처럼 가브리엘에게 입을 맞췄다. 입을 맞추는 서로의 얼굴에 은은한 미소가 맴돌았다.

 

  안드리아와 나눴던 대화를 생각하니 더욱 힘이 빠졌다. 머릿속에 남자들끼리 키스하는 장면이 마구 엉켰다.

 

  이대로 예쁜 왕자를 옆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는 걸까. 그것만으로 괜찮은 걸까.

 

 [괜찮을리가 없잖아. 괜찮지 않다고!]

 

  낯선 프랑스어가 저물어 가는 공원에 나지막이 울렸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힐끗 자신을 쳐다보며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어깨너머로 노을이 졌다. 날이 빠르게 선선해졌다.

 

  민호 씨가 날이 저물기 전에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늦었잖아.

 

  벤치에서 일어나 시계를 확인했다.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이런 기분으로 돌아가기 싫어. 아직 예쁜 왕자를 볼 자신이 없단 말이야.]

 

  눈물이 새어 나오려 했다. 그때 글썽이는 눈가에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이 들어왔다.

 

 [예쁘다...]

 

  한강 다리가 알록달록 형광빛을 내뿜으며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위로 자라면서 매일 봐왔던 센강의 다리가 겹쳐 보였다. 발걸음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잘 지내지? 밥은 먹었어? 당신의 영화, 이제 시작입니다. 이리 와 봐요. 이번에도 '잘' 넘을 수 있을 거예요. 힘든 일들, 모두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라, 생각해보면 어떨까?"

 

  한강 다리에는 많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하나 같이 긍정적이고, 밝은 의미를 가진 글귀였다.

 

  왜 다리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는 거야. 괜히 눈물 나잖아. 이건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나는 거야. 내가 약해서 우는 게 아니라고.

 

  젖은 눈가를 소매로 닦으며 한강 다리를 반 정도 넘었다. 몸을 휘청거리게 할 정도로 강바람이 세게 불었다.

 

  잠깐, 저기 누가 있는 것 같은데.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눈을 크게 떴다. 다리 난간 앞에 한 사람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강하게 부는 바람에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그의 옆으로 '용기를 내세요' 라는 문구가 보였다. 그제야 난간 마다 글귀가 적혀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안 돼!"

 

  빠르게 달려가서 난간 앞에 선 사람을 덮쳐서 넘어트렸다. 그의 허리를 붙잡고 소리쳤다.

 

 "왜 죽을려고 해요! 왜! 왜!"

 

  그가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그를 붙잡은 손에 꽉 힘을 주고 버텼다.

 

 "안 돼요! 다른데 가서 또 죽을려고 하는 거 다 알아요! 안 죽겠다고 해요! 말하기 전까지 안 놔줄 거야!"

 

  그의 신음이 들렸다. 팔에 힘을 너무 줬는가 싶어 힘을 조금 뺐다. 그가 힘겹게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안 죽으니까 이것 좀 놔요... 당신 때문에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익숙한 목소리였다. 눈이 번쩍 뜨였다.

 

 "고독한 씨!"

 "당신 뭔데. 왜 자꾸 나타나서..."

 

  고독한 씨가 내 손길을 뿌리치며 뒤로 물러나려 했다. 그 순간,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그의 스카프가 다리 너머로 날아갔다.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그래, 저 표정. 백발의 사내와 입맞출 때 이런 얼굴이었어.

 

  그는 다급하게 스카프가 사라진 목을 자신의 손으로 가렸다. 그를 붙잡은 손에 힘이 빠졌다.

 

 "봤어? 본 거냐고."

 

  고독한 씨는 반쯤 상체를 일으킨 상태로 낮게 속삭였다. 그의 얼굴 위로 매일 아침 서로에게 입 맞추는 안드리아와 가브리엘의 얼굴이 생각났다. 잔뜩 움츠러든 그에게 손을 뻗었다.

 

 [안드리아는 이런 표정이 아니야.]

 

 "무슨 소리 하는 건데. 다 본거지..."

 

  그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목을 꽉 움켜쥐었다. 스스로 목을 조르는지도 모르고 숨을 힘겹게 내쉬었다. 바르르 떨리는 그의 볼에 손을 갖다 댔다. 겁에 질린 듯한 그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고독한 씨..."

 

  그의 눈동자가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흔들렸다. 뜨거운 기운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어떡해. 나, 이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할 건 가봐.

 

  붉은 노을이 그를 아름답게 비췄다.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의 한쪽 손을 잡았다.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어릴 적부터 가꿔온 꿈을 그에게 말했다.

 

 "내가 구해줄게요. 나의 예쁜 왕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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