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마 장 부장이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어?"
"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
" 어떻게 해? 촬영한 사람 찾아야 하나?"
" 절대 못 찾아 우리 방송국 직원 아닐 거야."
" 어떻게든 찾아야지."
" 하루가 지났어. 악마의 편집을 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 그런데 뭐 딱히 책잡힐 건 없잖아?
어머니가 뭐 부정한 방법을 쓰시는 것도 아니고."
" 미신 조장, 이장 강요, 부당이득……
날조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지."
" 걱정이네. 이게 방송이라도 된다면 파급력이 클 것 같은데?"
" 공중파에서 방송이 안 된다고 해도 요즘 같은 시대에
개인 방송으로 올리면 걷잡을 수 없어."
" 뭐 방법 없어?"
"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한데.
위험 할 수 있어.
이번 일엔 빠져라."
" 뭔데?"
" 나야 어차피 그만 둬도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내가 다 치우고 가면 돼."
" 어쩌려고?"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장 부장 잡으러 간다."
" 장 부장이 어쨌는데?"
" 아직 몰라. 그냥 추측일 뿐이지."
" 그래도 뭔가 잡히는 게 있어서 그런 거잖아?"
"너 장부장 볼 때 마다 뭐 느낀 거 없냐?
맨날 쾡 해가 지고 눈도 다 풀려 있고
쉬는 시간마다 혼자서 이상한 말하고."
" 그거야 그 사람 원래 좀 특이하잖아."
" 분명히 냄새가 나."
" 나도 도와줄게."
" 아냐. 네가 끼면 또 오해 받을 수 있어.
장부장 그 새끼가 또 선수 칠 수 있어."
" 그래도…… 너 혼자 어떻게 하려고?"
" 어떻게든 해 볼 테니 걱정 마.
나 당분간 연락 안 되도 걱정 하지 마라.
차장님께는 그냥 조금 더 쉰다고 말해 줘
어차피 휴가 주셨으니까 별 문제 없을 거야."
" 당장 어디로 갈건 데?"
" 비밀……."
"……."
# 주차장.
귀남은 차에 앉아서 장부장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미행을 해서 의심이 가는 부분을 촬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장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 맨날 이렇게 늦게 퇴근하나? 별로 할 일도 없으면서……."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바로 그때였다.
귀남의 차가 열렸다.
" 야 뭐하냐?"
" 아오씨 놀래라!!"
차에 탄 사람은 동일이었다.
" 나 찾지 말라니까 왜 또 나타난 거야! "
" 아니 나는 네가 뭐하고 있나 그냥 지켜보고 있었지."
" 그냥 가! 내 문제라니까."
" 야 그래도 우리 엄마 이장까지 시켜 준 놈을 어떻게 외면 하냐?"
" 그럼 조용히 있어라."
" 근데 너 장 부장 기다린다고 하지 않았냐?"
"어."
" 장 부장 갔는데?"
" 무슨 소리야?"
" 퇴근했어. 장 부장 여기에 차 안 세워 둬."
" 왜 그걸 이제 말해!"
" 계속 따라 오지 말라고 하는데 걱정이 되니까
나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지.
뭔가 다른 계획이 있는 줄 알았더니."
" 아 진짜 큰일이네. 내일 기사 뜰 것 같은데……
어머니 곤란해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
" 걱정하지 마. 내가 장 부장 집을 아니까.
찾아가서 꼬투리 잡으면 되지."
귀남은 장 부장에 대해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동일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 아니 그걸 왜 이제 말 하냐고!!"
" 네가 안 물어봤잖아."
" 너 지금 내가 얼마나 심각한 줄 모르지?"
" 똥줄 타겠지. 내일 방송에 나올 수 있는데……."
" 그걸 아는 놈이 이렇게 한다고?"
동일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내비게이션에
장 부장 집 주소를 입력했다.
" 너 어떻게 집 주소까지 아냐?"
" 술 한 잔 먹고 집에 데려다 준 적 있어."
" 장부장이랑 술 먹으면 목구멍으로 넘어 가냐?"
" 어차피 난 술 못 먹잖아. 그냥 맛있는 거 먹으러 가는 거야.
야, 우리랑 차원이 달라. 너 맨날 돼지갈비만 먹지?
장 부장은 일단 시작이 무조건 참치야."
" 좋겠다! 친구는 지금 그 놈한테 탈탈 털려서
사회에서 매장 당하게 생겼는데……."
"걱정 마라. 그런 일 없다."
" 어째서?"
" 장 부장은 널 조련하고 싶은 거야. 자기 말 잘 듣도록……
그 사람 생각보다 계획이 없어. 뭐 그게 더 무섭긴 하지만."
" 계획이 없다고? 그러면 우리 고향까지 가서 왜 촬영을 해?"
" 그 사람이 어떤 계획이 있었으면 우리 같은 그저 그런
PD들은 당장이라도 지방으로 발령 보낼 수 있어.
뭐 도둑 촬영하고 그딴 거 필요 없이."
" 그러면 도대체 왜……."
" 자기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거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나 힘세니까 여기 붙어라!
네가 하도 말을 안 듣고 이상한 소리만 하니까
협상할 때 쓰려고 네가 꼼짝 못 할 무기를 만드는 거지."
"비열한 새끼."
"일단 출발하자."
귀남은 동일이 찍은 주소대로 출발했다.
"2시간30분?"
"왜?"
"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 장부장 집 서울 아닌데?"
" 아니 좀 심하잖아."
" 뭘 별 일도 아닌 걸로 예민해 지냐?"
" 너 혹시……. 장 부장이랑 짜고 나 납치하는 거냐?"
" 너 납치해서 뭐하게?"
" 딱히 뭐 쓸데는 없지만……."
" 세상은 너에게 아무 관심도 없어. 걱정하지 마."
" 말을 또 그렇게 하냐?"
한참을 달렸지만 급한 귀남의 마음과 달리 차는 점점
외곽으로 빠져 나가고 있었다.
" 야, 너 이 주소 진짜 맞아?"
" 맞아."
" 지금 고속도로 타는데?"
" 뭐 이상할 거 있어?"
" ……."
" 아직도 의심 하냐?"
" 그게 아니라 굳이 이렇게 서울을 벗어 나 살 이유가 없잖아?"
" 왜?"
" 아니 현금이 그렇게 많은 집안인데 피곤하게 뭐 하러
이렇게 먼 곳에 집이 있냐는 거지."
" 그게 너와 나의 한계야. 여기만 집이 있을 것 같아?"
"아, 그런 거야?"
" 심지어 부산에도 있고 제주도에도 있단다."
" 넌 그런 거 대체 어떻게 알아?"
" ……."
" 너 진짜 장부장 프락치냐?"
"프락치라니! 그냥 정보력이 풍부한 것뿐이야."
" 웃기네. 또 뭐 있구먼?"
" ……."
" 말 안하면 진짜 프락치로 소문 내 버린다?"
" 자기 세컨 하우스가 거기에 있데.
놀러 가면 거기서 묵어도 된다고 해서……."
" 아니, 지긋지긋하다. 대한민국 학연! 지연! 혈연! "
" 나 지금 너랑 같은 고향 친구라서 여기 있는 건데?"
귀남은 어이가 없었다.
" 아니 집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 30분 더 가야 해."
"여기서 30분? 장부장 농사짓냐?"
" 거기가 신기한 게 주변에 집이 하나도 없어."
"집이 없다고?"
" 어. 집이 없어. 그냥 완전히 고립되어 있어.
너 그때 장부장 데려다 주고 어떻게 집에 왔는데?"
" 택시 탔지. "
" 아니 이런 첩첩산중에 택시가 들어와?"
" 미리 많이 불렀지. 기사님들도 먹고 살아야 되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 돈도 많다."
" 장부장이 줬어."
"……."
귀남은 기가 막힌 듯 동일을 쳐다봤다.
" 별거 아니야. 나도 여기까지 운전 해줬는데
택시비는 받아야 할 거 아냐!"
" 야……."
" 왜?"
" 설마 여기야?"
귀남은 장 부장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은 온갖 잡귀들이 득실거렸기 때문이었다.
" 그때 왔던 집이 여기야?"
" 어 맞아. "
"확실해?"
"어. 이런 외딴 곳에 3층 집이 떡 하니 있잖아.
잊을 수가 없지."
"안에……들어가 봤어?"
" 아니……자기 많이 피곤하다며 들어가 버렸어."
" 상상을 초월하는데? 장 부장 이 새끼 정체가 뭐야?"
" 왜? 뭐 잘못 됐어?"
귀남은 혹시나 장 부장이 헤드라이트를 보고 나올까 봐
서둘러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외진 곳에 차를 댔다.
하지만 라이트에서 잠깐 비춰진 집 앞 정원의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너무 멀리 온 거 아냐?"
" 어쩔 수 없어. 장 부장 눈치 채면 안 되니까."
" 뭐 챙기면 돼?"
" 카메라는 내가 챙겼으니까 트렁크에 후레쉬 있어.
그거 챙겨."
" 뭘 봤는데?"
" ……."
" 야! 설마 귀신 있는 거야? 그럼 나 못해!"
" 아 빨리 와! 나도 확실하진 않아."
" 너 지금 부들부들 떨고 있잖아."
" 추워서 그래. 빨리 가 보자."
" 나 진짜 귀신 있으면 싫은데?"
"그러니까 왜 따라왔어!"
" 난 도와 주려고 온 거지."
"그러면 빨리 도와."
" 야. 이게 다 뭐야!"
" 조용히 해! 장 부장 나오겠다.
나도 믿을 수 없어.
장 부장 집이 이런 곳일 줄은……."
" 장 부장 이거 완전 미친 것 같은데?"
장 부장 안으로 들어가 수가 없었다.
온갖 것들을 다 주워 와 집에 넣어 놓은 듯 했다.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저장 강박증이
있는 듯 했다.
온갖 폐기물들을 건너 들어가자
쓰레기 더미 밑에서 쥐와 바퀴벌레들이 튀어 나왔다.
" 아오씨! 야야! 이게 뭐야! 내 종아리 타고 올라온다!"
귀남의 동일의 몸에 붙어 있는 바퀴벌레와 거미들을
주변에 있던 빗자루로 떨어뜨렸다.
" 야 시끄러! 나오겠다!"
" 집이 왜이래?"
"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은데?"
" 이건 뭘 생각했든 최악이다.
일단 여기 벗어나자. 이러다 피부병 걸리겠다."
귀남과 동일은 어기적거리며 일단 쓰레기 더미에서 나왔다.
" 아니 이걸 왜 모으는 거야?"
"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겠지."
" 이거 그냥 다 쓰레기야. 죄다 못 쓰는 것뿐이야!"
" 장 부장은 그렇게 생각을 안 하는 거야.
이것들이 자기를 지켜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 이거 그냥 신고해야 되는 거 아냐?"
" 뭐라고 신고 할 건데?"
" 이거 완전 민폐지. 지금 여기 밑에 쥐 돌아다니는 소리 안 들리냐?
주변에 집들이 없는 것도 다 이유가 있을 거야."
" 촬영부터 하자. 이거 완전 대박인데?"
" 아냐. 이건 촬영 못 하겠다.
이걸 찍으면 나도 장 부장과 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이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게 아니잖아.
개인의 질병이야. 치료를 받게 해야 해.
사실 난 장 부장이 사이비 종교에 빠진 줄 알았어."
" 사이비 종교?"
" 그래. 겉과 속이 다른 이중 교리를 가지고
교주를 신격화하는 반사회적이고 비윤리적인……
어리석은 자들을 미혹 시키는 사악한
집단이자 암적 존재라고 생각했어. "
" 뭘 보고?"
" 장 부장에 붙어 있는 잡귀들을 보고……."
" 잡귀들?"
"그래."
"그럼 사이비 종교와는 상관없는 거야?"
" 잘은 모르겠지만 장 부장 방에만 가면 왜 토악질이
나오고 썩은 내가 진동했었는지 알 것 같다."
" 이 쓰레기들 때문이야?"
" 이 쓰레기들이 직접적인 냄새를 풍긴 건 아냐.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
"그럼 뭐 때문에 잡귀들이 보인 걸까?"
"이 물건들에 귀신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남의 집 물건을 함부로 들이면 안되는 게
그 물건 하나하나에 귀(鬼) 들이 있기 때문이야.
" ……."
"이것 봐."
귀남은 쓰레기 더미 속을 이리저리 뒤지더니 뭔가
끄집어 올렸다. 그리고 동일에게 보여줬다.
" 야 이거 뭐야!"
" 남의 집 가족사진."
" 아니 이걸 왜 모으는 거야?"
" 이건 정말 물건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버려진 것들을 집에 채워 놓은 거야."
" 대체 왜?"
" 이것들이 안정을 찾아 주겠지."
"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심각하다."
" 사진은 영혼을 불러올 수 있는
완벽한 도구야."
" ……."
"사진 속엔 그 사람들의 영혼이 들어있어.
그래서 사실 죽은 사람이 있는 가족사진도
집에 함부로 걸면 안 좋아.
그 영혼이 떠나지 못 하고 갇히게 되거든."
"너 쫄았냐?"
" 아니…… 정신이 없어.
머리가 아파. 토할 것 같아……."
"야 안 되겠다. 빨리 나가자."
귀남은 쓰레기 더미에서 허우적거리며
동일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어둠 때문에 미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공포에 질린 것들을 보고 온 몸이 굳어 버렸다.